All Chapters of 아이를 잃은 날, 남편은 다른 여자 촛불 앞에: Chapter 521 - Chapter 530

629 Chapters

제521화

“역겨워.”주영도가 강루인에게 얻어맞아 돌아갔던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눈빛이 흔들리더니 이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럼 누가 안 역겨운데? 차성열?”주영도의 얼굴에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혹시 그놈이랑 잤어? 그놈이 잘해주든?”주영도가 강루인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고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대답해!”강루인이 그의 손을 쳐내려 팔을 올린 그때 주영도가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차 지붕 위로 눌러버렸다.“묻잖아. 그놈이랑 잤냐고.”싸늘한 한기를 내뿜는 그의 얼굴이 어둡기 그지없었다. 강루인이 물러서지 않고 차가운 목소리로 맞받아쳤다.“당신이 뭔데? 내가 누구랑 자든 무슨 상관이야? 다른 남자랑 자도 당신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주영도가 먹구름이 낀 얼굴로 말했다.“너 원래 이렇게 상스러운 여자였어?”강루인이 억지로 고개를 뒤로 젖히긴 했지만 눈빛만큼은 경멸과 비웃음으로 가득했다.“상스러운 거로 치면 영도 씨를 따라올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가장 상스러운 건 영도 씨야. 우린 이미 이혼했어. 난 더 이상 당신 사람이 아니고 당신도 나한테 이래라저래라할 자격 없다고.”“지금 나한테 배신이라도 당한 표정을 짓는 건 무슨 뜻인데? 내가 떠나니까 이제야 아쉬워? 아니면 영도 씨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었던 장난감이 제멋대로 구니까 불쾌한 거야?”한때는 죽고 못 살 만큼 사랑했지만 이제는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싶은 남자의 얼굴을 응시하며 강루인이 또박또박 말했다.“추태 부릴 거면 혼자 부려. 날 끌어들이지 말고.”강루인은 이미 겪을 만큼 겪고 정신을 차렸으니 다시는 늪에 빠질 생각이 없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부딪혔다. 단호하게 선을 긋는 강루인의 모습에 주영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팽팽하게 긴장했던 근육이 풀리며 그녀의 턱을 쥐고 있던 손에도 힘이 빠져나갔다.주영도가 허리를 살짝 굽힌 채 마른침을 삼켰다. 목소리도 무척이나 무기력했고 그녀에게 달리 방법이 없다는 말투로 말했다.“우리 예전처럼 제대로 대화 좀 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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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주영도가 말했다.“너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나 해?”강루인이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당연히 알지. 두 사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오래오래 잘 먹고 잘 살라고 축복하는 거잖아.”‘이번 생은 물론이고 다음 생, 그다음 생까지 딱 붙어 지내길 빌어줄게. 진심으로.’주영도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솟구치는 짜증을 억눌렀다.“제발 그놈의 억지 좀 그만 부려. 연정이와의 일은 이미 다 끝난 과거야. 다시 함께할 일 절대 없어. 내가 연정이를 구하려는 건 어디까지나 지난 정을 생각해서야.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엮으면서 사람 몰아세우지 마.”“그래서?”주영도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그래서라니? 뭐가?”강루인의 목소리가 서릿발처럼 차갑게 내려앉았다.“당신의 그 구질구질한 과거에 대한 대가를 내가 목숨으로 치러야 한다는 거야? 구아정이 범인이긴 하지만 영도 씨랑 구연정이 결백하다고 장담할 수 있어?”강루인이 주영도의 치부를 가차 없이 들춰냈다.“구연정이 아니었으면 구아정이 당신한테 달라붙었을까? 구연정의 심장이 아니었더라면 당신이 구아정을 그렇게 오냐오냐 봐줬겠냐고. 영도 씨가 계속 용납한 바람에 우리 할머니가 처참하게 죽었어. 그런데 이제 와서 구연정을 안 좋아한다고? 그저 옛정일 뿐이라고?”마음 같아서는 주영도를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었다.“영도 씨가 상스럽다고 한 게 오히려 과분한 칭찬이었네. 당신은 곱게 죽는 것도 사치야.”천 번을 베어 죽여도 이 증오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강루인이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분노 때문에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그녀가 떨고 있다는 걸 알아챈 주영도가 다가가 안아주려 했지만 강루인이 가차 없이 거절했다. 그러고는 들고 있던 가방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꺼져!”주영도가 고개를 뒤로 젖혀 간신히 공격을 피한 뒤 호흡을 가다듬으며 애써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많이 힘든 거 알아. 이해해. 내 마음도 편치 않아. 하지만 제발 애먼 데 화풀이하지 마. 잘못한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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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노윤환의 말을 듣고도 주영도는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누가 봐도 몹시 불쾌한 상태였다.노윤환이 백미러로 입술이 터진 상사의 얼굴을 살피며 속으로 생각했다.‘강루인 씨를 만나러 와서 상처 하나 안 남기면 섭섭하지. 이것도 일종의 방문 인증이라고 할 수 있겠어.’그가 미리 준비해둔 구급상자를 뒤로 건넸다. 이런 상황이 올 줄 알고 미리 챙겨둔 자신을 감탄하면서....구아정과 시간을 끌 생각이 없었던 주영도는 다음 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그런데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경호원으로부터 구아정이 투신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주영도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노윤환에게 더 빨리 달리라고 했다.병원에 도착한 그때 창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당장이라도 뛰어내릴 듯한 구아정의 모습이 보였다.노윤환의 시선이 잘려나간 구아정의 다리로 향했다. 몸은 망가졌어도 독기는 여전했다.‘저 지경이 됐는데도 가만히 있지 않다니.’주영도가 험악한 얼굴로 입원 병동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소식을 듣고 달려온 양동운과 마주쳤다.“영도야.”양동운을 본 순간 주영도가 흠칫 놀랐다. 하지만 대꾸하지 않고 걸음을 재촉했다.병실.경호원들이 기회를 엿보며 대기 중이었고 채정화가 친어머니라도 죽은 것처럼 대성통곡하고 있었다.“아정아, 제발 내려와. 엄마 놀라게 하지 말고.”그 광경을 본 양동운 역시 안색이 창백해진 채로 채정화와 함께 구아정을 달래기 시작했다.주영도는 눈앞의 소란을 덤덤하게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가 들어온 순간부터 구아정의 시선이 오로지 그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구아정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었던 주영도가 천천히 물었다.“어떻게 협상하고 싶은데?”구아정의 두 눈에 광기가 서려 있었다.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무리를 한 탓에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붕대 위로 피가 배어 나왔다.그 모습에 노윤환이 혀를 내둘렀다.‘정말 독한 여자야. 남한테 잔인한 건 그렇다 쳐도 본인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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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양동운의 태도가 무척이나 당당했고 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강루인은 고작 다리 두 개를 잃는 것이지만 구연정은 목숨을 잃을 처지 아니냐는 식의 태도였다.사람은 죽으면 모든 게 끝이지만 다리가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었다. 과학기술이 발전했으니 다리가 없어도 얼마든지 정상인처럼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구아정은 양동운의 그런 태도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양동운은 잘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구연정에게 마음이 있다는 걸 구아정은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그가 그녀에게 잘해준 이유 또한 구연정의 동생이었기 때문이었다. 구연정이 죽은 뒤에 갈 곳 잃은 사랑이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그녀에게 옮겨졌다.양동운에게 있어 구아정은 그저 다른 방식의 감정적 안식처일 뿐이었다.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구아정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구연정 그년은 참 복도 많아. 이렇게나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다니. 난 그년을 이용해서야만 사랑을 받을 수 있는데.’구아정은 구연정을 증오했고 여기 있는 모두를 증오했다.‘다들 눈이 삐었어? 내 장점은 하나도 안 보여? 구연정이 뭐가 좋다고 다들 이렇게 그리워하는 건데.’살아있는 구아정이 그들 앞에 버젓이 있는데도 구연정을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다.구아정이 계속해서 양동운을 홀렸다.“맞아. 언니 목숨이 지금 강루인의 손에 달렸어. 강루인이 나랑 똑같은 꼴이 되면 그때 언니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게. 동운 오빠, 언니 보고 싶지 않아? 둘이 예전에 친했잖아. 구하고 싶지 않아?”양동운의 머릿속에 오로지 구연정이 살아있다는 말만 맴돌았다. 이미 사고 능력을 상실하여 구연정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 하나에 사로잡혔다.구아정에게 홀린 양동운과 달리 주영도는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눈빛이 이미 살기로 번뜩였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행동을 보였다.구아정은 주영도가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알아챘을 땐 목을 죄어오는 질식감이 온몸으로 퍼져나갔다.주영도가 그녀의 목을 움켜쥐고 상체를 창밖으로 밀어냈다.구아정의 눈에 경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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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구아정의 자줏빛 안색이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목에 남은 선명한 손자국이 방금 그녀가 주영도의 손에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원한과 두려움이 그녀를 휘감았다.“연정이 어디에 숨겼어?”주영도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사이의 거래는 아직 유효해. 말하면 놓아줄게.”만약 강루인이 보낸 녹음 파일을 듣지 않았더라면 조금 전 저승에 갈 뻔한 두려움 때문에 구연정의 위치를 불었을 것이다. 죽는 게 진심으로 무서웠으니까.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입을 여는 순간 그녀에게 남은 결말이 죽음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여 입을 굳게 다물고 있어야만 실낱같은 생명이 연장될 것이다.죽음과 한 줄기 생존의 기로에서 구아정이 후자를 선택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주영도가 계속 몰아붙이자 구아정은 궁여지책으로 눈을 뒤집으며 정신을 잃은 척 쓰러졌다. 살길을 도모할 시간이 필요했다.구아정은 똑똑히 보았다. 주영도가 그녀를 진심으로 죽이려 한다는 것을. 고작 강루인의 다리를 탐냈다는 이유만으로 구아정을 없애려 했다.구아정의 마음속에 분노가 들끓었다. 주영도가 대체 무슨 권리로 구아정에게 베풀던 호의를 한순간에 거둬간단 말인가?그리고 주영도의 마음을 얻어낸 강루인 역시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다. 모든 걸 잃은 구아정과 달리 강루인은 다 얻었다.‘강루인, 너도 나 같은 처지가 돼야지. 주영도의 마음을 얻지 못한 실패자가 되어야만 한다고.’구아정이 쓰러졌는데도 주영도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고 오히려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 양동운이 사색이 된 얼굴로 의사를 부르러 뛰쳐나갔다.구아정의 상태가 연기가 아니었다. 주영도에게 목이 졸리고 내팽개쳐지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엔 기절한 척이었으나 밀려오는 고통 때문에 정말로 의식을 잃고 말았다.응급 처치를 마친 의사가 신신당부했다.“겨우 고비를 넘긴 환자입니다. 자극해서는 절대 안 돼요. 환자분의 생존 본능이 워낙 강해서 이 정도지, 아니면 정말 위험했을 겁니다.”의사의 당부에 양동운이 구아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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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정곡을 찔린 탓인지 양동운의 두 눈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쳤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딱 잡아뗐다.“대체 날 어떤 놈으로 보는 거야?”수십 년 지기인 주영도가 양동운의 표정 변화를 알아채지 못할 리 없었다. 예전에는 무심코 넘겼을지 몰라도 지금은 모르는 척하기가 더 힘들었다.양동운이 그런 마음을 품고 있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게다가 구아정조차 눈치챘다. 어쩐지 양동운을 이 자리에 불렀더라니...주영도가 입을 꾹 다물었다. 때로는 날 선 추궁보다 침묵이 더 견디기 힘든 법이다. 주영도의 시선에 양동운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그 시선에 굴복한 것인지, 아니면 이젠 말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인지 양동운이 결국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털어놓았다.“그래. 나 연정이 좋아했어. 하지만 너한테 미안한 짓은 하지 않았어. 너희 둘이 사귀는 동안 선을 넘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연정이 같은 좋은 여자를 누가 안 좋아하겠어? 좋아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양동운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실렸다. 친구의 여자를 마음에 품은 게 도덕적으로 옳지는 않지만 빼앗으려 한 적도 없었고 늘 본분을 지켰다. 구연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만약 구연정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구아정이 말하지 않았다면 이 마음이 그녀의 죽음과 함께 영원히 묻혔을 것이다.그런데 구연정이 살아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갑작스러운 희소식에 당황해 숨기는 걸 잊은 바람에 결국 주영도에게 들키고 말았다.남자는 자신의 것이었던 물건에 대해선 설령 더 이상 쓰지 않더라도 남이 탐내는 꼴을 보면 불쾌감을 느꼈다.양동운이 주영도에게 미안한 짓을 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안 그러면 지금까지 몰랐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게 다 뼛속 깊이 박힌 소유욕 때문이었다.이렇게 된 이상 양동운도 더는 숨기지 않고 그의 생각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무슨 일이 있어도 연정이를 반드시 구할 거야. 네가 강루인한테 손을 쓰지 못하겠다면 내가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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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이 말을 끝으로 주영도가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양동운이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어두운 눈빛으로 지켜봤다....강루인이 꽃 한 다발을 사 들고 할머니의 묘를 찾았다. 묘비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손수건을 꺼내 먼지를 정성스럽게 닦아낸 다음 제사상을 차리고 바닥에 주저앉았다.사진 속 할머니가 자애로운 미소를 머금은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미소와 눈이 마주치자 강루인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할머니, 저 왔어요. 손녀 보고 싶었어요?”강루인이 혼자서 질문을 던지고 또 알아서 답했다.“알아요. 할머니는 분명 절 보고 싶어 하셨을 거예요. 저도 할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요.”세상살이에 지치고 상처 입었을 때 할머니는 강루인이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안식처였다. 할머니의 옆에만 있으면 강루인의 부서진 몸과 마음이 잠시나마 위안을 얻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곤 했다.하지만 그녀의 피난처가 주영도와 구아정에 의해 무참히 파괴되었다.강루인이 잔 두 개에 술을 가득 채웠다. 한 잔은 묘 앞에 뿌리고 남은 한 잔은 단숨에 들이켰다. 턱에 흘러내린 술을 닦아내며 그녀가 나직이 읊조렸다.“할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할머니한테 몹쓸 짓을 한 사람들 절대 가만 안 둬요.”그들 모두 할머니에게 속죄해야 할 것이다. 그녀도 포함해서 말이다.사진 속에서 인자하게 웃고 있는 할머니를 보고 있자니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을 참으려고 입술을 꾹 깨물었지만 속눈썹이 금세 젖어 들었고 목소리도 속절없이 떨렸다.“할머니, 보고 싶어요. 진짜 너무 보고 싶어요...”이젠 할머니가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강루인이 할머니를 지켜주지 못해서 손녀를 원망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원망하는 게 아니라면 왜 한 번도 꿈에 나타나 주지 않는 것일까?그때 미풍이 나뭇잎을 스쳤다가 강루인의 머리와 볼을 부드럽게 훑고 지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길이 그녀를 어루만지는 것 같았다. 온기 없는 바람이었지만 강루인은 따스함을 느꼈다.강루인의 몸이 살짝 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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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주영도가 바닥에 떨어진 케이크를 내려다보았다. 오후 내내 시간을 쏟아부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 완성해낸 그의 작품이었다.“내가 직접 만든 거야.”‘그래서?’강루인의 두 눈에 혐오감이 서렸다.“그 값싼 자기만족 그만 좀 집어치워.”주영도를 위해서라면 스스로를 짓밟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았던 강루인은 이미 그의 손에 죽었다.예전의 그녀라면 주영도가 이토록 공을 들인 모습을 보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강루인은 과거의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스스로를 낮추고 비굴하게 굴었기에 무시당하는 건 당연했다. 이 모든 게 다 강루인이 자초한 일이었다.주영도의 눈동자에 침울한 기색이 스쳤다.“왜 나 때문에 너 자신을 깎아내려?”그의 오만한 질문에 강루인이 대놓고 비웃었다.“어디서 나온 자신감이야? 사람들이 치켜세우니까 본인 꼴이 어떤지 잊어버린 거야? 당신을 혐오하는 사람한테 당신은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라는 걸 몰라? 쓰레기는 재활용이라도 되지, 당신 같은 건 수거해가는 사람도 없어.”강루인이 하던 말을 멈췄다가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비웃었다.“아, 아니지. 영도 씨가 아무도 안 찾는 쓰레기는 아니네. 구아정이랑 구연정 자매가 영도 씨를 좋아하잖아. 끼리끼리 잘 만났어. 쓰레기들끼리 쓰레기장에 모여 있는 꼴이라니, 아주 찰떡궁합이야.”이토록 모욕적인 말에도 주영도는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철없는 아이의 생떼를 받아주는 것처럼 여유로웠다.“욕 다 했어? 부족하면 더 해.”강루인이 말을 잇지 못했다. 주영도의 낯가죽이 이토록 두꺼울 줄은 미처 몰랐다. 체면을 중시하고 남들 앞에서 망신당하는 걸 무엇보다 견디지 못하던 남자가 아니었던가.역시 사람이 작정하고 뻔뻔해지면 파렴치한 행동마저 얼마나 당당해질 수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루인아.”그때 뒤에서 차성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루인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얼굴에 서려 있던 차가움이 순식간에 걷히고 온화한 기색이 감돌았다.“선배?”그녀가 물었다.“이 늦은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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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강루인의 분노가 차오르고 있다는 걸 알아챈 차성열이 그녀의 어깨를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내가 가서 타일러 볼게.”차성열이 문을 연 그때 주영도의 손이 허공에 멈췄고 불쾌한 눈으로 차성열을 노려보았다. 주영도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차성열이 문을 막아섰다.“영도 씨, 부디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루인이한테서 멀리 떨어져 주세요. 자꾸 이렇게 나타나면 루인이의 심신에 좋지 않아요.”강루인의 정신 상태가 정말로 불안정했다.차성열이 차분할수록 주영도의 조급함이 더욱 두드러졌다. 그가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내가 루인이를 멀리한 틈에 차성열 씨가 비집고 들어오려고요?”차성열은 마음이 간파당해도 개의치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루인이는 독립적인 인격체예요. 어떤 선택을 하든 누구를 곁에 두든 그건 루인이의 자유지, 나랑 영도 씨가 끼어들 권리가 없다고요.”그의 훈수 따위 주영도에게 들릴 리가 없었다. 강루인의 선택은 오직 그여야만 했고 그들의 관계가 끝났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혼인신고서가 그들을 묶어두었지만 이혼 증명서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했다. 주영도는 부부 관계에서 강루인을 밀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고 지금까지 여전히 그들이 가족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강루인이 독립된 인격체일 수는 있으나 그 앞에 반드시 ‘주영도의 아내’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했다. 그 사실만큼은 누구도 지울 수 없었다.주영도가 앞을 막아선 차성열을 거칠게 밀치고 안으로 발을 들이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발걸음을 멈췄다. 문 안쪽에 서 있는 강루인과 시선이 마주쳤고 이어 그의 눈길이 그녀가 들고 있는 칼로 향했다.주영도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내려놔.”강루인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칼을 주영도에게 겨눈 채 이를 악물고 목소리를 쥐어짰다.“꺼져.”주영도가 은빛으로 번뜩이는 칼을 보고도 꿈쩍도 하지 않고 어두운 얼굴로 버티고 서 있었다.“그 칼로 뭐 하려고? 찌르기라도 하게?”강루인이 칼을 거두지 않고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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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주영도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루인이 아직 날 사랑하고 있을 텐데. 설령 그 마음이 식어버렸다 해도 어떻게 목숨까지 노릴 수가 있어?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주영도의 집요한 추궁에 강루인이 완전히 폭발하고 말았다. 머릿속을 맴돌던 소음들이 하나로 뭉쳐 거대한 외침이 되었다.‘죽여버려.’강루인이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다시 주영도에게 달려들었다.“죽여버릴 거야.”주영도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경악과 강루인이 그에게 보이는 태도에 대한 깊은 상처가 뒤섞여 있었다.“너...”차성열이 주영도의 어깨에 박힌 칼을 힐끗 보더니 주영도가 말하기 전에 먼저 입을 열었다.“영도 씨, 제발 루인이 좀 그만 자극해요. 지금 불안정한 게 안 보여요? 루인이가 미쳐야 속이 후련해요?”그제야 주영도도 강루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본래의 모습을 잃고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차성열이 강루인을 방 안으로 밀어 넣었다. 주영도가 따라 들어가려 하자 차성열이 막아섰다.“들어오지 말아요.”주영도가 발걸음을 멈췄다. 문밖에 서서 차성열이 강루인에게 약을 먹이고 흥분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이런 모습의 그녀를 본 적이 없었기에 너무나 당혹스러웠다.잠시 후 강루인이 마음을 가라앉혔지만 주영도를 향한 눈빛에는 여전히 원한이 서려 있었다.차성열은 강루인이 다시 이성을 잃을까 봐 서둘러 주영도를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으려 했다.“루인이...”‘왜 이렇게 변해버린 거지? 정말로 미쳐버렸나?’주영도가 뭐라 하려던 그때 차성열이 가로챘다.“얼른 병원 가서 상처나 치료해요. 여기서 루인이 자극하지 말고.”그러고는 주영도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문을 쾅 닫아버렸다.주영도가 보이지 않자 강루인도 조금씩 안정을 찾았다.“미안해요.”그녀도 참으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차성열이 다정하게 말했다.“나한테 왜 사과를 해? 잘못한 것도 없는데.”강루인이 자책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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