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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괴담 규칙: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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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얼굴이 노인의 얼굴이야

선하윤이 나타나자 할머니는 문소이를 지나쳐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그 눈빛에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아가씨, 저 할망구는 대체 뭘 봤길래 아가씨한테 이리 호의적이야?”할머니가 언성을 높이면서 추궁하듯 묻자 선하윤이 온화하면서도 무심한 말투로 답했다.“알고 싶어요? 이 건물을 나가는 방법만 알려주면 그 질문에 대답할게요.”그러자 할머니가 기괴한 웃음을 지었다.“이 건물을 나가는 방법?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가면 돼. 동쪽 비상계단으로 내려가도 되고. 지하실까지 내려가서 차를 따라 차고 출구로 나오면 돼.”‘빌어먹을 나쁜 할망구, 아주 날 죽음으로 몰아넣는구나.’악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할머니를 보며 선하윤은 더는 이 층에서 시간을 낭비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5층으로 내려갔다.505호의 젊은 연인은 더 이상 다투지 않았다. 검은 머리 여자가 붉은 치마를 입은 채 품에 안고 있는 아기를 달래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이찬우는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외투를 벗어 어깨에 걸쳐주었다.“여사님, 괜찮으세요?”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흐느꼈다.“투자에 실패한 바람에 남자친구가 헤어지재요. 흑흑... 아이만 없었더라면 진작 죽었을 거예요.”이찬우가 재빨리 방법을 생각했다.“친정으로 돌아가면 되잖아요. 여기를 떠나서 아이랑 같이 친정으로 가요.”“못 나가요. 여길 나갈 수가 없어요.”그러더니 아이를 이찬우에게 넘기고는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춤을 추기 시작했다.그녀의 몸이 세 조각으로 접힌 것처럼 기괴한 각도로 뒤틀렸다. 발광하듯 춤을 추면서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터뜨렸는데 노래를 하는 것 같았다.“그놈들은 일부러 그런 거야. 무서워서 신고도 안 하고. 우리가 여기에 갇히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어. 우리 모두 여기에 갇혀서 죽을 때까지 영원히 나가지 못해... 하하.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신장 기능이 망가질 때까지 갇힐 거야. 하하하하.”품에 안은 아기를 내려다본 순간 이찬우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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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검은 제복의 경비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자는 아기를 안은 채 발뒤꿈치를 들고 빙글빙글 돌았고 붉은 발레 슈즈가 바닥을 타고 경쾌한 소리가 났다.여자는 인간 같지 않았지만 던진 경고는 정확했다.4층에는 불타버린 시체가 가득하여 불길한 기운이 짙게 감돌았다.3층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거대한 살덩이 같은 거상이 이찬우에게 인육을 준 바람에 이찬우가 경미하게 오염되어 하마터면 규칙 위반으로 지하 차고에서 죽을 뻔했다.선하윤 일행은 4층에 도착했다. 불타버린 시체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검은 단발머리에 빼어난 용모의 남자가 복도에서 블루투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검은 마스크로 얼굴을 절반 가렸는데도 깊고 매혹적인 눈매는 가려지지 않았다.평범한 검은색 경비복마저 그가 입으니 더욱 귀티가 흐르는 것 같았다.선하윤 일행을 본 남자는 손을 들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선하윤은 그의 무전기를 찾으려다가 문득 남자의 주머니에서 검은색 모서리가 삐져나와 있는 걸 발견했다. 왠지 무전기의 모서리처럼 보였다.문소이는 남자가 그녀를 향해 웃는 걸 보고는 살짝 빨개진 얼굴로 물었다.“경비원 오빠, 여기서 뭐 하고 있어요?”잘생긴 경비원이 4층의 유선 전화를 가리키면서 쉰 목소리로 말했다.“4층 유선 전화선을 쥐가 갉아먹었는지 끊어져서 수리 신고가 들어와 보러 왔어요.”목소리가 하도 심하게 쉬어 바람이 숭숭 새는 것 같았다.“목소리가...”문소이는 바로 경계하기 시작했다.하마터면 던전이라는 걸 잊고 남자의 외모에 혹해 정신을 놓을 뻔했다. 선하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수리하러 왔다면서 수리 도구는 하나도 안 가지고 왔네요?”“일단 올라와서 보려고요. 나도 수리할 줄 잘 모르거든요.”경비원이 눈웃음을 지으면서 자신의 목을 문질렀다.“요 며칠 순찰하다가 찬바람을 맞아서 목이 쉬었어요. 듣기 거북해도 이해해줘요.”선하윤이 유선 전화기 앞으로 다가갔다. 쥐의 이빨 자국 같은 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가위로 자른 것처럼 가지런하게 끊어져 있었다.규칙에 순찰 업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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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재물신

그 말에 이찬우와 문소이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규칙에 따르면 경비원은 좋은 사람이었다. 경비원이 직접 그들을 데리고 나가겠다고 하니 던전 클리어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했다.기쁜 마음에 내려가는 발걸음마저 경쾌해졌다.3층에 발을 들이자마자 역겨운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3층의 거상이 자단으로 조각된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쟁반 위의 물건을 붉은 벨벳 천으로 덮고 있었다.선하윤을 본 거상이 금니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두툼한 입술로 말했다.“예쁜 아가씨, 또 만났네? 마음이 바뀌었어? 우리 집 파티에 안 올 거야?”“괜찮아요.”선하윤의 시선이 그의 쟁반에 고정되어 있었다.“아저씨, 손에 들고 있는 게 뭐예요?”“이건 나의 재물신이야.”거상은 흠집이라도 날까 조심스럽게 행동했다.“얼마 전에 산에 가서 스님한테 특별히 부탁해서 만든 재물신이야. 며칠 동안 향을 피우고 목욕재계한 끝에 겨우 집에 모셨어.”선하윤은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비린내가 이 쟁반에서 나는 듯했다.전설 속 재물신은 소오방 재물신과 대오방 재물신으로 나뉜다. 소오방 재물신은 조공명과 그의 부하 무관 넷을 가리키고 대오방 재물신은 동방 재물신 비간, 남방 재물신 시영, 서방 재물신 관공, 북방 재물신 조공명, 중앙 재물신 왕해를 가리킨다.선하윤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아저씨는 어느 재물신을 모시나요?”거상이 수상쩍게 다섯 손가락을 펼치자 선하윤이 의아해하며 물었다.“오방 재물신을 모두 집으로 모셨어요?”“난 오통신을 모셔. 신을 모시는 자는 영원히 부자가 된다고 하지.”거상의 두 눈에 광기가 어려 있었다.“오통신은 평범한 재물신보다 훨씬 더 대단해. 오통신을 모시기 시작한 이후로 사업이 날로 번창했는데 1년도 채 안 돼서 도박 빚도 모두 갚고 이 건물까지 샀어. 하하.”그러더니 말하면서 붉은 천을 벗겼다. 쟁반 위의 신상은 다섯 명의 남자였다. 푸른 얼굴에 이를 드러낸 험악한 표정이 아니라 짙은 눈썹에 옥관을 쓰고 있었고 미간의 팔자 주름이 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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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쓸모없는 위어드

선하윤이 두 번 노크하자 302호 방 안에서도 두 번의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내 말 들려요? 들리면 한 번 두드려요.”누군가 문을 한 번 두드렸다.“거상이 그쪽을 가뒀어요? 그런 거라면 한 번 두드려요.”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렸다.처음 3층에 왔을 때 선하윤은 거상이 허리에 찬 열쇠가 같은 모양임을 알아챘었다. 그리고 지난번 거상은 302호에서 나와 복도를 가로질러 304호의 문을 열었다.그렇다면 302호와 304호 모두 거상의 집이라는 뜻이었다.선하윤이 문에 바짝 붙어 물었다.“말할 수 있어요?”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말을 못 하는 거면 입을 막았나? 설마 혀가 잘린 건 아니겠지?’“거상이 강제로 그쪽을 이곳에 남게 했나요? 맞으면 한 번 두드려요.”이번에도 문을 한 번 두드렸다.붉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선하윤에게 3층 일에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무한 복도를 빠져나갈 방법을 찾으려면 더 많은 단서를 수집해야 했다.“혹시 나가는 길을 알아요? 알면 한 번, 모르면 두 번 두드려요.”노크 소리가 한 번 들렸다. 그런데 왠지 다소 망설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선하윤이 질문을 던진 후 문 너머에서 몇 초간의 침묵이 흘렀다.선하윤은 안에 있는 사람에게 기대를 심어주었다.“몸 잘 챙겨요. 기회가 되면 구해줄게요.”‘구해주긴 개뿔.’여길 나가는 단서를 제공해주지 못하면 모두 쓸모없는 위어드로 처리될 뿐이었다.그들은 계속해서 2층으로 내려갔다.205호의 노인 합창단은 여전히 목청껏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하늘은 먹구름, 길도 먹구름, 숲에서 잘생긴 남자가 나타났네. 잘생긴 남자는 배가 고파서 불을 피워 예쁜 여동생을 끓였네. 예쁜 여동생은 훌쩍거리다가 집에 계신 부자 아빠를 불렀네. 부자 아빠는 배가 불룩해서 느끼함이 흘러넘치네.”잘생긴 남자라는 노랫말에 선하윤은 잘생긴 경비원이 떠올랐다.그때 맨 뒷줄의 검은 수의를 입은 할아버지가 갑자기 격렬하게 기침하기 시작하더니 틀니까지 빠졌다. 목에 뭔가 걸린 듯 고통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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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같이 여기서 나가자

세 사람이 1층으로 내려와 보니 검은 마스크를 쓴 경비원이 이미 그들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편의점의 앵무새가 새장에 축 늘어져 있었고 경비원은 편의점 문 앞에 서서 뜨개질하는 할머니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경비원의 말에 할머니는 얼굴 가득 웃음을 띠었다.선하윤 일행을 본 할머니가 경비원의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손짓으로 몇 개의 숫자를 표시하더니 귓가에 속삭였다.경비원의 눈에 이상한 빛이 번뜩였다가 이내 선하윤을 쳐다봤다. 그건 포식자의 눈빛이었다. 원시림의 사람을 잡아먹는 맹수처럼 어두운 구석에 숨어 천천히 송곳니를 드러내는 듯했다.할머니는 잘생긴 경비원에게 물 세 병을 건넸다. 경비원이 물을 받아 들고 다가와 세 사람에게 한 병씩 나눠 주었다.이찬우는 뚜껑을 열고 몇 모금 마시고는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경비 형님을 보니까 희망이 보이는 것 같네요.”잘생긴 경비원이 손가락을 튕겼다.“길을 못 찾는다고 나한테 진작 말했더라면 바로 데리고 나갔을 텐데.”문소이도 이 경비원에 대한 인상이 좋았다. 두 손으로 물을 안고 나비 날개처럼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우리랑 같이 나갈 수 있어요?”그녀는 경비원이 마스크를 벗지 않아도 연예인 못지않은 분위기를 풍긴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나가게 도와주고 물까지 주다니, 분명 마음씨 착한 비플레이어 캐릭터라고 확신했다.만약 경비원이 던전을 나갈 수 있다면 마스크를 벗기고 현실 세계에서 친구를 넘어 연인 사이로 발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물론이죠.”뜻밖에도 경비원이 손을 들어 문소이의 볼에 묻은 먼지를 닦아주었다.“실례할게요. 얼굴에 뭐가 좀 묻어서요.”문소이의 귀가 순식간에 새빨개졌다.“갑시다. 이미 편의점 주인과 얘기도 끝났어요.”경비원이 그들을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려 했다. 승리가 눈앞에 있는 듯했다.할머니는 세 사람에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선하윤은 꿈쩍도 하지 않고 경비원에게 물었다.“4층 전화는 다 고쳤어요?”“그럼요.”경비원은 이미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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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손바닥 통조림

이찬우의 몸 전체가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 후 표정이 멍해졌고 눈썹 사이의 겁먹은 기색이 완전히 사라진 대신 무감각해 보였다.“와, 얼른.”그의 어휘력이 갑자기 단조로워졌고 이 한마디만 계속 반복했다. 편의점의 어둑한 조명이 그의 얼굴에 비치자 이 세상과 더없이 조화롭게 변해갔다.“난 안 나갈래.”문소이도 이찬우의 이상함을 감지하고 발을 동동 구르면서 옷자락을 움켜쥐고는 결국 선하윤에게 걸어갔다.“난 신중한 게 최우선이야.”“아쉽네. 같이 나갈 수 있었는데.”이찬우는 경비원을 따라 편의점 뒷문으로 들어갔고 뒤돌아보지도 않았다.편의점이 그를 삼켜버린 듯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말았다.편의점의 풍경이 옥과 옥이 부딪히는 듯한 맑은 소리를 냈다.문소이는 마음이 텅 빈 것 같았다. 이찬우는 떠났지만 그녀는 아직 던전 안에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정말 살아나갈 수 있을까?이 질문에 대한 답은 누구도 알지 못했다.“가자. 아직 해가 지지 않았어.”공사팀이 보이지 않아 선하윤은 1층에 더 머물 생각이 없었다. 물을 편의점의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물은 도로 놓고 갈게요.”이 복도에 볼일을 볼 만한 적절한 장소가 없었다. 건빵을 선택한 건 생리적인 현상을 줄이기 위해서였다.할머니는 얼굴을 찌푸리면서 털실 바구니에 바늘을 넣고 메마른 손을 들었다.“상품 판매 후에는 교환이나 환불이 불가해. 지금 바로 헬로 머니 10장을 지불하도록 해.”‘역시.’할머니가 돈을 요구해도 선하윤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조금 전 경비원이 편의점에서 물을 가져갔는데 선하윤은 그가 돈을 지불하는 걸 보지 못했다.이찬우는 돈을 내지 않은 데다가 할머니의 가게 앞 쓰레기도 치워주지 않고 물을 마셨기에 십중팔구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그럼 기저귀 하나랑 분유 한 병 더 살게요.”이 던전을 언제 나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선하윤은 장비를 더 챙기기로 했다.“총 120이야.”선하윤은 문소이의 물까지 헬로 머니 130장을 지불했다.“여기 다른 간식도 있나요?”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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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지금 내 손을 잡았어?

태블릿 PC의 플래시로는 가까운 곳밖에 보이지 않았다.문소이가 뒤를 따랐는데 그녀의 태블릿 PC의 배터리가 부족하다는 알림이 뜨더니 저절로 꺼져버렸다.“하윤아, 어디 있어? 안 보여.”문소이는 불안한 나머지 태블릿 PC를 마구 두드렸다.“당황하지 말고 난간을 잡고 천천히 내려가.”선하윤의 태블릿 PC는 아직 배터리가 60% 남아 있었다.계단에 음산한 바람이 불자 문소이는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 들었다.“여기 처음 내려왔을 때보다 더 추워졌어.”그뿐만 아니라 선하윤은 또 다른 사람의 고른 숨소리를 들었는데 그녀의 근처에서 나는 것 같았다.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갔고 칠흑 같은 어둠이 선하윤을 감쌌다.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선하윤은 헬로 머니 만 장을 꺼내 노하트의 해골 손에 올려놓고 명령했다.“날 계단 아래로 데려가 줘. 규칙을 절대 어겨선 안 된다는 거 명심하고.”“알겠습니다, 주인님.”어둠 속 노하트가 선하윤을 번쩍 들자 선하윤은 심장이 덜컹했다. 노하트의 몸에서 짙은 흙냄새가 풍겼다.그녀의 뜻은 앞에서 길을 안내하라는 것이었는데 안아 올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됐어. 지금은 투정 부릴 때가 아니야.’차가운 손가락뼈가 그녀의 허리에 닿았고 발걸음 소리 없이 아래로 향했다.비릿한 냄새가 나는 차가운 바람이 그의 가슴을 뚫고 선하윤의 얼굴을 스쳤다. 찬 기운이 모공을 따라 피부 속으로 스며들어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문소이가 더듬거리며 내려가던 그때 갑자기 차가운 손이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하윤아, 지금 내 손을 잡았어?”하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았다. 문소이는 순간 심장이 덜컹했고 그 손을 뿌리치려고 애썼다.“나야... 킥킥킥...”귓가에서 들리는 소리였는데 선하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은 문소이는 다른 한 손으로 손목을 잡고 있는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으악.”문소이의 손목이 무언가에 긁히고 말았다.선하윤은 숨소리가 바로 뒤에서 들린다는 걸 알아챘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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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숨바꼭질

선하윤은 피를 피해 701호 문을 계속 두드렸다.기운 없어 보이는 여자가 문을 열었는데 고개를 절반만 내밀었다. 선하윤을 보자마자 놀란 얼굴로 말했다.“아직도 안 갔어요?”“언니 찾으러 왔죠.”여자가 선하윤의 뒤를 힐끗 보더니 겁에 질린 얼굴로 물었다.“같이 다니던 두 친구는요? 그때 봤을 때 남자 하나 여자 하나가 더 있던데 지금은 왜 혼자예요?”선하윤이 태연하게 말했다.“내 친구는 사정이 있어서 같이 못 왔어요.”그러자 여자가 당황하기 시작했다.“그럼 빨리 가요. 여기 위험해서 계속 있으면 안 돼요. 그 사람이 언제 그쪽을 발견할지 몰라요. 그리고 혼자 7층에 오지 말아요. 그 사람한테 들키면 도망치지 못해요.”‘그 사람이 누구지?’선하윤은 궁금했지만 시간을 아껴야 했기에 더 이상 물을 수 없었다.여자가 다시 문을 닫으려 하자 선하윤은 물병을 문틈에 끼워 넣고 눈웃음을 지었다.“언니, 아직 닫지 말아요. 언니 아들이 그러는데 아들이랑 숨바꼭질할 테니 숨어서 1000까지 세라고 했다면서요? 언니 아들 이미 1부터 1000까지 다 셌고 언니가 찾아주길 기다리고 있어요. 아주 찾기 쉬운 곳에 숨었으니까 어서 아들 데리고 집에 가요.”그 말에 여자는 문을 닫으려다가 멈칫했다. 입을 가린 순간 뜨거운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어머니의 부서진 마음이었다.“내 아들과 숨바꼭질한 건 어떻게 알았어요?”여자는 눈물을 닦고 흔들리는 마음을 감추려 애썼다.선하윤은 그녀가 한쪽 팔에는 붕대를 감고 다른 한쪽 팔은 칼로 살점을 도려낸 듯 울퉁불퉁한 상처가 있는 걸 봤다.어떤 핏자국은 이미 말라버렸고 움푹 팬 검은색 흉터가 보였다. 그리고 오래된 상처에 새로운 상처가 더해져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 이러니 초췌하고 얼굴에도 핏기가 없을 수밖에.“언니 아들이 말해줬어요. 엄마가 데리러 오길 기다린다고요.”그 말에 여자는 또다시 눈물을 왈칵 쏟았고 손마저 떨렸다.“불쌍한 내 아들.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아가씨, 어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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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양국밥

남자아이는 통조림을 집어 들더니 혀로 가장자리를 핥고는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얼굴을 천진난만하게 들었다.“고마워요, 누나. 우리 엄마를 찾았어요?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요. 계단에 혼자 있기 싫어요. 집에 가서 엄마랑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요.”선하윤은 남자아이의 얼굴을 보지 않고 붉은 실을 꺼내 손목에 묶었다.“찾았어. 네 엄마가 붉은 실을 손목에 묶으면 널 데리러 오겠다고 했어.”그러고는 나머지 한쪽 끝을 등 뒤로 던졌다.느슨했던 붉은 실이 천천히 당겨졌다. 남자아이는 붉은 실이 이끄는 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왼손에는 손바닥 통조림을, 오른손에는 검은색 유골함을 안고 있었다.아이가 일어선 순간 머리에 쓴 노란 모자가 툭 떨어졌다.깡통 뚜껑이 반쯤 열린 것처럼 두개골이 열려있었고 안에서 끈적한 액체가 흔들리고 있었다.남자아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하더니 두 눈에서 붉은 눈물이 흘러내렸다.“누나, 고마워요. 엄마가 드디어 절 데리러 오려나 봐요.”남자아이는 선하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그 순간 선하윤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느꼈다.아이의 손이 시체처럼 차가웠다. 선하윤의 손바닥을 펼치더니 검은 입을 벌려 호두 한 알을 토해냈다.엄지손톱만 한 호두가 손안으로 굴러떨어졌고 손바닥이 부식되는지 약간 따끔거렸다.“감사의 선물이에요.”남자아이는 호두를 남기고 붉은 실을 따라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갔다.선하윤은 남자아이의 감사 선물을 주머니에 넣고 난간을 잡고 내려갔다.6층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복도 밖을 내다보니 맞은편 건물 주민들의 창문에서 붉은빛이 반짝였다.선하윤은 하늘에 거대한 붉은 달이 떠 있어서 이 기괴한 세상을 이렇게 밝고 화려하게 장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6층 할머니의 아들이 양 반 마리를 어깨에 메고 집으로 들어갔다. 양 냄새가 공기 중에 가득 퍼졌다.양이 하도 무거워 남자를 짓누르는 듯했다. 반으로 가른 터라 양 머리 반쪽이 남자의 어깨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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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정확한 때와 장소

위어드는 감정이 없다. 그들은 오염원에서 탄생하여 세상의 어둠과 왜곡을 한데 끌어모았고 오직 파괴와 멸망만을 위해 존재한다.선하윤은 이 사실을 굳게 믿어야 했다. 하지만 위어드 사이의 차이가 너무도 커서 마음이 저도 모르게 흔들렸다.던전의 통제를 받아 일정한 행동 패턴을 보이는 위어드 외에도 신채린이나 노하트처럼 인간과 계약을 맺은 위어드들이 있었다.신채린보다 영리한 노하트는 배고픔을 표현했고 스스로 먹을 것을 찾아 나섰다. 심지어 선하윤에게 불평을 늘어놓기도 했다.겉으로는 친근하고 공격성이 없으며 대화가 가능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들은 극도로 위험한 존재였다. 양날의 검처럼 칼날이 바깥을 향하는 동시에 검을 쥔 자에게도 겨눠져 있었다.소설 [호러 강림]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위어드가 인간과 계약을 맺는 이유는 인간에게서 피와 살, 헬로 머니 등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기 위함이라고.충성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기나긴 계약의 과정에서 위어드는 절대 인간에게 정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어리석고 순진한 인간들이 위어드와 감정을 나누려 들었다.일부 고위 위어드들은 감정이 있는 척하면 주인에게서 더 많은 보상을 얻는 데 유리하다는 걸 깨닫고 감성적인 척 행동하기도 했다.이런 감정을 덜컥 믿었다가는 위어드에게 역으로 삼켜질 가능성이 컸다.소설에 이런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한 남자가 위어드 신부와 계약을 맺은 뒤 그녀의 능력 덕에 몇 번이나 목숨을 구하자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위어드 신부가 생전에 심장이 못에 찔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두려움은커녕 오히려 연민을 품었고 평생 그녀를 아껴주겠다고 맹세했다.나중에 위어드 신부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을 때도 그의 피와 살로 그녀를 먹여 살렸다.위어드 신부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면사포도 씌워줬으며 밤마다 그녀의 차가운 시체를 끌어안고 잠들었다.그렇게 뜯겨 먹히다가 숨이 끊어지는 마지막 순간에도 사랑의 감정에 빠져있었다.위어드 신부는 주인이 죽은 뒤 주인의 허벅지 뼈를 뜯어 먹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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