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Chapter 71 - Chapter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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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소현성의 손이 덜컥 떨려 황태원에게 따라주던 맥주잔을 그대로 엎을 뻔했다.“예... 예?”눈이 휘둥그레졌고 순간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아까도 말했잖아. 능력 있는 사람은 밀어줄 거라고.”황태원의 목소리는 단호했고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소현성은 얼떨떨한 채로 잔을 들어 벌컥 들이켰다. 시원한 맥주가 목을 타고 내려갔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뒤죽박죽이었다.‘신입으로 들어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나한테 팀장 자리를 준다고? 이건 파격을 넘어서 아예 불가능한 일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형님, 아니, 회장님... 지금 저한테 새로운 팀을 맡기겠다는 말씀입니까?”소현성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손끝에 이어 목소리마저 흔들렸다.“맞아. 네가 맡아줬으면 좋겠어. 길드에서 네가 나 대신 레이드 지휘해서 클리어 따낸 게 한두 번이 아니잖아. 팀장 역할도 똑같아. 팀원들을 이끌고 목표를 달성하면 돼.”황태원은 가볍게 손을 내저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그래도... 게임이랑 현실은 조금, 아니,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소현성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아니, 하루에도 수십억을 다루는 트레이드본부 팀장을 어떻게 가상 세계 레이드 리더에 비유해. 그건 억지잖아...’“다르긴 뭐가 달라, 해보지도 않고 뭘 안다고 그래!”황태원이 눈을 부릅떴다.“수십 명 이끌고 레이드 첫 공략 성공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거야. 그 어려운 일도 해낸 놈이 트레이딩본부 팀 하나 못 이끌 것 같아?”‘내가 팀장 역할을 해 낼 수 있을까...’그 순간 소현성의 머릿속에 떠오른 사람은 직속 상사 주희재였다. 단단한 근육질 체격에 훤칠한 키, 늘 카리스마 있게 팀을 이끌던 모습이 겹쳤다.그에 비하면 자신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것 같았다. 게임으로 따지면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잡몹, 고작 전투력 5짜리 허수아비처럼 느껴졌다.“일반적으로 팀장급까지 오르면, 그때부터는 회사 고위직 반열에 들어간다고 봐야지.”황태원의 목소리는 은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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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그런데... 제가 정말 할 수 있을까요?”눈앞의 거대한 유혹 앞에서 소현성은 오히려 조금은 차분해졌다.“저는 이제 막 입사한 지 며칠밖에 안 됐고 제대로 된 경력도 없는데요...”다른 팀장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같은 부서의 이혜림만 해도 명문대 금융학 석사에 각종 자격증이 줄줄이 따라붙는 인물이었다.“경력? 그게 밥 먹여 주냐?”황태원이 코웃음을 쳤다.“여기서는 수익률이 전부다. 그리고 넌 이미 실적으로 증명했어.”황태원의 단호한 목소리가 이어졌다.“물론 말들이 많을 거다. 하지만 그걸 신경 쓴다고 이 기회를 날릴 순 없잖아. 못마땅하면 똑같이 80% 수익을 내 보라고 해. 그렇게 못할 거면 조용히 입 닫으라고 하고.”이 바닥은 잔인했다. 실적이 곧 권위였고 수익률이 곧 법이었다. 다른 건 다 부차적인 문제였다.“자, 어떻게 할 거냐? 내 제안 수락할 거야? 마음이 가는 대로 간단하게 말해봐.”황태원의 시선은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매섭게 소현성을 파고들었다.소현성은 무겁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 눈빛에 직면하자 어쩔 수 없이 쓴웃음이 터져 나왔다.“형님,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시죠.”“그래, 부담이 클 거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책임도 커지는 법이니까.”황태원은 갑자기 분위기를 바꿔 마치 응원이라도 하듯 덧붙였다.“전례 없는 파격 제안이라는 것만 알아둬. 말 그대로 한 번에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거야. 이성적으로 잘 판단해.”솔직히 말하면 매일 아침 주희재 팀장처럼 정장을 빼입고 데일리 시장 브리핑을 주도하며 여유롭게 큰 그림을 그리고 카리스마로 팀원들을 휘어잡을 자신은 없었다.소현성 자기가 그런 모습으로 팀원들 앞에 선 모습을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 정도의 기세와 무게감을 갖추기에는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느껴졌다.‘하지만 잠깐... 지금 성과가 증권업계에 대한 깊은 이해 덕분이었나? 아니지. 빌어먹을! 나조차 설명 못 하는 이 촉, 전부 이 특별한 능력 덕분이었잖아. 그렇다면 두려워할 게 뭐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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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오빠, 나 오늘은 진짜 할 말 있어서 온 거야.”소현지가 휴대폰을 내려놓고는 괜히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할 말? 그게 뭔데?”“지난주에 오빠가 밥 사줬잖아. 오빠도 이제 막 취직해서 아직 월급도 안 나왔을 거란 거 알아. 괜히 내가 얻어먹은 거 같아서 찝찝했단 말이지. 그래서 오늘은 내가 밥 한 끼 사려고 왔어.”그녀는 작은 가방을 툭툭 두드리며 덧붙였다.“아, 그리고 오빠한테 정장도 한 벌 사줄 거야. 취직했으니 맞춤 정장 한 벌 제대로 맞춰 입어. 오늘 저녁에 엄마 아빠 오시면 다 같이 맛있는 거 먹고 옷 가게도 들르자.”“야,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돼...”소현성이 멋쩍게 고개를 긁적였다.“됐어, 내가 하자는 대로 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소현지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을 잘랐다.“오빠도 내가 처음 취직했을 때 선물로 구두 한 켤레 사줬던 거 기억 안 나? 오빠가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사줬잖아. 난 아직도 그거 신고 있어.”‘와... 그게 몇 년 전 일인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네. 게다가 아직도 신고 있다고...’소현성의 가슴에 알 수 없는 따뜻함이 스며들었다.‘이 계집애 진짜... 괜히 울컥하게 만드네.’“현지야, 진짜 괜찮아. 혼자 자취하면서 돈 들어갈 데가 얼마나 많은데. 너도 빠듯한 거 아니까 오빠한테 돈 쓰지 마.”“걱정하지 마, 나 이제 돈 잘 번다고.”소현지가 괜히 가슴을 쑥 내밀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어제 월급에 성과금까지 받았거든? 이제 나도 부자야, 무시하지 마.”소현성은 피식 웃으며 소현지를 바라봤다.‘예전에는 툭하면 삐지고 울고 맨날 내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이가... 언제 이렇게 커서 의젓한 말까지 하네...’“그리고 말이야, 오빠. 네오투자캐피탈이 대기업이라고 해도 오빠는 채용 연계형 인턴이라며? 월급이 많을 리 없잖아.”갑자기 소현지의 말투가 진지해졌다. 인생 조언이라도 하려는 듯 진지한 목소리였다.“이럴 때일수록 미리 준비해야 해. 사모펀드라고 해도 결국은 신입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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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주말이 막 지나자, 네오투자캐피탈 트레이딩본부 여러 팀장의 눈에서는 거의 불꽃을 튀길 지경이었다.모두가 하나같이 같이 소현성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있었다.‘소현성, 소현성 그 친구 지금 어디 있는 거야?’그들이 생각하기에도 소현성은 단순히 회장이 직접 챙기는 낙하산 수준이 아니었다.손을 대는 종목마다 마치 황금으로 바꿔 놓듯, 팀의 수익률을 직선으로 끌어올리는 ‘살아 있는 보물’ 그 자체였다.하지만 주말 내내 소현성은 회사에 그림자조차 비치지 않았다.“뭐, 그럴 만도 하죠. 그런 말도 안 되는 수익률을 낸 사람한테 주말까지 출근하라고 하면 오히려 그 팀이 이상한 겁니다.”사무실 한쪽에서 낮게 흘러나온 목소리에는 은근한 질투와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우리도 똑같지 않습니까. 주간 실적이 제일 좋은 팀은 주말에 쉬는 게 불문율이잖아요. 다들 인정하는 관행 아닙니까.”이 세계에는 보이지 않는 전통이 있었다. 차라리 철칙이라고 부르는 게 더 어울렸다.경력 따위는 아무 의미 없었다. 이 판에서는 오직 차갑고 냉정한 수익과 숫자만이 모든 것을 재단하는 절대 기준이었다.채용 연계형 인턴이든, 수년 차 베테랑이든, 아니면 팀 전체를 이끄는 팀장이든, 진짜 회사에 돈을 벌어다 줄 수 있는 실적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했다.‘월요일에 출근하면... 반드시 내가 먼저 찾아갈 거야!’‘한발 늦으면 끝이다.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찾아내서 어떻게든 구워삶아 꼭 우리 팀으로 데려와야 해.’트레이딩본부 팀장들의 속내는 똑같았다. 그들의 눈빛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늑대 같았다.각자 수십 년간 쌓아 온 화술과 설득력을 총동원해서라도 회장님이라는 든든한 뒷배는 물론이고 실력까지 증명된 ‘보물 같은 인재’를 어떻게든 자기가 이끄는 팀으로 끌어오겠다는 계산뿐이었다.불과 닷새 만에 80%라는 수익률을 찍어낸 괴물 같은 신인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소현성은 갓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이었지만 마치 ‘주식의 신’이 빙의한 듯한 존재감으로 모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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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팀장님, 오늘 아침 갑작스러운 인사이동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주희재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며 고개를 들었다.“아... 혹시 새로 신설된 팀으로 발령받은 것 때문에 찾아온 건가요?”양건우의 마음은 뒤죽박죽이었다. 출근하자마자 인사 발령장이 책상 위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었다.‘새 팀으로 옮기는 건 그렇다 쳐도... 문제는 그 팀의 리더가 소현성이라는 점이지.’예전에 앙금이 있었고 애써 분위기를 풀긴 했지만 직속 상사라니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다.양건우는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예, 들은 얘기가 조금 있습니다. 소현성 씨가 낙하산이라고요... 회장님이 직접 데려오신 분이라고 들었습니다.”“흠... 양 수석은 그 얘기만 들었나봅니다?”주희재의 목소리에 묘한 뉘앙스가 섞였다.“예? 그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내 말은 낙하산이라는 꼬리표 말고는 다른 소문은 못 들으셨느냐는 겁니다.”양건우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아직은 딱히 전해 들은 게 없습니다만...”주희재는 가볍게 손을 저으며 말을 거두었다.“괜찮습니다. 굳이 제가 알려드릴 필요는 없겠네요.”그러고는 태연히 화제를 돌렸다.“솔직하게 말하면 나쁘지 않은 자리입니다. 그쪽으로 가시면 당분간 실적 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겁니다. 좋은 기회라 생각하시죠.”양건우는 트레이딩본부 1팀이 막 월간 최우수팀으로 뽑혔고 소현성은 개인적으로 최우수 트레이더까지 차지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바로 그때문에 회사 안에서 ‘회장님 재량으로 밀어 넣은 낙하산이 아니냐는 막장 시나리오’와 같은 유언비어가 돌기 시작한 것이니까.그런데 하필이면 이 시점에, 불과 몇 주 전 채용 연계형 인턴으로 들어왔던 소현성의 팀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니 어안이 벙벙했다.‘설마... 주희재 팀장님도 회사가 앞으로 소현성 씨가 이끄는 팀에 자원을 집중적으로 퍼줄 거라고 내다본 건가? 그래서 그 팀으로 가면 실적은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하신 건가? 뭐, 성과급이 많으면야 좋은 일이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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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소현성은 팀장으로 출근하는 오늘이 첫 출근 날보다 더 긴장되는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저도 모르게 손끝이 미세하게 떨릴 만큼 긴장이 온몸으로 번졌다.이제 그는 더 이상 트레이딩 어시스턴트도, 단순한 선임 트레이더도 아니었다.팀장이란 실제 자금을 굴리고 팀원들의 성과와 앞날까지 책임져야 하는 자리였다.‘예전에 게임에서 공대장 맡아서 수십 명 이끌고 레이드만 해도 숨 막혔는데... 지금은 대형 사모펀드 트레이딩본부 소속팀의 팀장이라니. 이건 아무래도 현실보다는 판타지 드라마에 가깝잖아.’“추가로 몇몇 시설은 결정권자만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조금 전 발급받으신 새 사원증으로 바로 출입 가능하세요.”인사본부 직원이 반듯한 목소리로 설명을 덧붙이며 새 사원증을 내밀었다.“네, 알겠습니다.”소현성은 담담하게 새 사원증을 받았다.“그리고 기술지원팀에서 이미 팀장님 집무실 모니터 새 장비를 설치하고 있습니다. 새 장비가 들어갔으니, 별도로 사용법 안내를 한 번 더 받으셔야 할 겁니다.”소현성은 손에 쥔 카드를 내려다보았다.하얀 바탕에 머쓱하게 웃는 증명사진 한 장과 함께 새로운 직함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네오투자캐피탈 트레이딩본부 7팀 팀장 소현성]“승진 축하드립니다. 소현성 팀장님.”인사본부 담당자의 얼굴에 형식적인 미소가 스쳤다.처음으로 직장 동료에게 ‘소현성 팀장님’이라고 불리는 순간, 소현성은 자기도 모르게 흠칫 긴장했다. 마치 희미한 전류가 척추를 타고 지나가는 듯한 감각이었다.“아... 감사합니다.”그는 목소리가 떨리지 않도록 신경 쓰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새로 목에 건 사원증이 명치까지 묵직하게 내려앉자 팀장이 되었다는 현실이 더 크게 와닿았다.인사본부 사무실을 나서고 트레이딩본부로 돌아가려던 그때, 뒤에서 다소 들뜬 목소리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소현성 팀장님, 잠시만요.”고개를 돌리니 방금까지 구석에서 몰래 상황을 지켜보던 인사본부 본부장 한문빈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아이고, 제가 인사가 좀 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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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주희재와 스치듯 마주쳤을 뿐,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하지만 소현성은 그 짧은 순간, 스치듯 마주친 주희재의 미묘한 웃음에서 인정과 응원을 읽어냈다. 그 짧은 교감이 소현성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네오투자캐피탈에서 주희재는 겉으로 늘 냉담하고 도도해 보였다. 얼음처럼 차갑게 굳어 있는 냉혈한 같았다.그러나 소현성이 트레이딩본부 1팀에 몸담았던 시간을 돌이켜 보면, 누구보다 묵묵히 윗선의 압박을 견디며 그에게 기회를 열어 준 사람도 다름 아닌, 겉과 달리 속정 깊은 주희재 팀장이었다.그러니 소현성이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주희재가 건네준 신뢰와 기회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나중에 꼭 찾아뵙고 정식으로 감사드려야겠다.’소현성은 속으로 다짐했다.‘주 팀장님은 운동이 취미이니... 덤벨 세트 같은 걸 선물하면 잘 어울리려나?’그는 피식 웃으며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내고 다시 사무실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복도 끝에는 ‘트레이딩본부 7팀 팀장실’이라는 문패가 눈에 들어왔다. 팀장만 쓸 수 있는 독립 사무실이었다.‘이제부터는 매일 아침, 저 방으로 출근하게 되는 거구나.’소현성은 성큼성큼 걸어가 사무실 문을 열었다.안에는 눈에 익은 동료가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번 장비 설치와 세팅을 도와줬던 IT본부 담당자였다.“소 팀장님, 오셨군요. 셋업 끝내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IT본부 담당자가 반갑게 다가오며 인사를 건넸다.“아, 감사합니다. 이렇게 또 뵙네요.”소현성도 미소를 지었다.“그러게요, 이렇게 금방 다시 뵐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벌써 팀장님이 되셨다니.”상대는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감탄을 덧붙였다.“제가 회사에 들어온 뒤로 이렇게 초고속 승진을 하신 분은 처음 봅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소현성의 시선이 담당자를 지나 방 안으로 옮겨졌다.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입이 살짝 벌어졌다.‘아니... 모니터가 여섯 대에서 아홉 대로 늘어난 거야?’책상 앞을 병풍처럼 둘러싼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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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마침내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졌다.소현성은 이제는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이 된 팀장실 한가운데에 멍하니 서 있었다.팀장이 되었다는 희열이나 흥분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대신 그의 마음을 채운 건 긴장과 책임이 주는 무게, 그리고 막연한 당혹스러움이었다.앞으로 어떤 첫걸음을 내디뎌야 할지 모른다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서서히 옥죄어왔다.주위를 둘러보자, 아홉 대의 커다란 모니터가 침묵 속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장 시작 전에 리서치본부에서 넘겨준 자료를 먼저 분석해야 하고... 그다음에는 팀원들을 모아 짧게라도 회의를 열어 오늘의 트레이딩 전략을 정해야 해. 아, 그러고 보니 아직 정식으로 인사도 못 드렸네...”소현성은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해야 할 일들이 한꺼번에 떠올라 눈앞이 어지러워졌다.‘오늘 갑작스러운 발령을 받고 내 밑으로 편성된 팀원들도 지금쯤은 나만큼이나 혼란스럽고 막막할 거야.’정식으로 인사 발령이 내려오기 전, 그는 이미 팀 구성원 명단을 받아 본 적이 있었다.대부분은 처음 보는 이름들이었다.그러나 낯선 이름들 사이에서 양건우, 그리고 또 하나의 반가운 이름이 눈에 들어왔었다....‘똑똑...’바로 그때, 짧은 노크가 들리더니 팀장실 문이 살며시 열렸다.“소 팀장님, 들어가도 될까요?”맑고 청아하면서도 살짝 들뜬 기운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조금 전 머릿속에 스쳐 간 그 이름의 주인공이었다.“그럼요, 들어오세요.”소현성이 곧장 대답했다.문이 열리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바로 이혜림이었다.“소현성 팀장님, 좋은 아침이에요.”이혜림은 경쾌한 발걸음으로 방 안에 들어서며 해맑게 인사했다.“어...”그녀의 입에서 ‘팀장님’이라는 호칭이 나오자, 소현성은 왠지 모르게 어색해졌다.“혜림 누나가 그렇게 부르니까 좀 낯설게 느껴지네요.”이혜림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가볍게 웃었다.“어머, 저도 사실 조금 어색하긴 해요. 그런데 막상 불러 보니까 ‘팀장님’이란 호칭이 금방 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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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현재 시장 상황은 사실상 모든 단기 유동성이 국내 증시로 몰리고 있습니다.”회의실 안, 수석 트레이더 양건우가 첫 순서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새로 꾸려진 7팀의 첫 데일리 브리핑 회의는 그렇게 시작됐다.긴 테이블 양쪽으로는 신임 팀장 소현성을 비롯해, 수석 트레이더 양건우, 세 명의 선임 트레이더, 그리고 한 명의 트레이딩 어시스턴트까지 정확히 여섯 명이 자리하고 있었다.양건우는 미리 준비해 온 자료를 띄우며 안정된 목소리로 분석을 이어갔다.“팀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국내 증시는 장기간 조정 국면이 이어지고 이걸 반전시키기 위해 당국이 정책 패키지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선 광한은행이 지준율을 0.5%포인트 인하해, 약 2,000조 원 규모의 장기 유동성을 공급했습니다. 동시에 증권사, 자산운용사와 보험사 간 유동성 스왑을 허용하고 주식시장 안정을 위한 특별 환매조건부대출 프로그램까지 가동했습니다. 1차로만 160조 원이 직접 투입된 상황입니다.”앞쪽 스크린에 띄워진 차트는 가파르게 치솟는 지수와 거의 수직에 가까운 상승 곡선을 보여줬다.양건우가 브리핑을 이어갔다.“현재 시장에는 과매도 구간에서 비롯된 단기 반등 모멘텀이 존재합니다. 정책 호재와 저평가 구간이 맞물리면서 단기적으로는 밸류에이션 회복 장세가 전개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 국내 증시 거래대금이 2,000조 원을 넘어섰고 동방거래소의 동기간 거래대금도 80조 원을 돌파했습니다. 외국인 자금이 빠르게 유입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그의 목소리에는 은근한 긴장감과 조급함이 배어 있었다.“이 정도로 강한 유동성이 뒷받침된다면 대세 상승은 이미 기정사실이라고 판단됩니다. 경기 회복 기대가 커지는 만큼 철강과 같은 금속 원자재 업종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해당 섹터는 단기 트레이딩으로 접근해도 충분히 기회가 있을 겁니다.”말이 끝나자, 선임 트레이더들과 어시스턴트들이 연이어 의견을 보탰다.“맞습니다. 정책 효과가 워낙 강력해서 지금은 신속하게 대응하는 게 중요합니다.”“지금 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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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그러나 그 순간 알 수 없는 힘에 홀린 듯, 소현성은 무심코 손을 뻗어 그 보고서를 다시 집어 들었다.손끝에 전해지는 종이의 거친 감촉이 유난히 선명하게 느껴졌다.[HXK300 선물 매수 풋옵션][HJK50 선물 매수 풋옵션][ZHK500 선물 매수 풋옵션]예외 없이 모두 동방 증시와 국내 증시의 하락 위험을 방어하기 위한 헤지 파생상품들이었다.하지만 지금처럼 광기에 가까운 장세에서는 사는 순간 곧바로 손해로 이어지는 물건이었다. 시장에서는 ‘덫’이자 애물단지 취급을 받으며 철저히 외면당했고, 가격은 헐값에 거래되고 있었다.평소 같았으면 소현성은 이런 참고용 자료를 애초에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왜지?’“...”바로 그때였다. 손끝이 보고서를 움켜쥐고 시선이 상품명 몇 줄에 꽂히는 순간, 형언하기 힘든 전율이 번개처럼 뇌리를 꿰뚫었다.꼬리뼈에서 솟구친 강렬한 전류가 순식간에 척추를 타고 정수리까지 치달았다.온몸이 짜릿한 떨림에 휘감겼고 보고서를 움켜쥔 손가락 마디에는 엄청난 힘이 들어가 뼈마디가 선명하게 보였다.순식간에 몰려온 한기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차갑게 파고드는 듯한 전율은 오히려 압도적인 흥분으로 바뀌어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소현성의 가슴 깊은 곳을 뒤흔들었다.“팀장님?”그때, 이혜림의 맑은 목소리가 바늘처럼 파고들어 소현성의 정신을 번쩍 깨웠다.머리를 휘감던 전율이 가라앉자, 그의 의식은 회의실로 돌아왔다.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 소현성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입사 후 지금까지 버텨온 시간 동안, 소현성은 이미 자신의 이 특별한 ‘능력’을 끊임없이 시험하며 다듬어 왔다.그건 결코 근거 없는 예감이 아니었다. 막연한 감각이 아니라 철저한 근거 위에서 돌아가는 정교한 시스템 같았다.마치 자기 안에 ‘맞춤형 정보 처리 기관’이 하나 더 자리 잡은 듯했다.무엇보다 먼저 충분한 데이터를 집어넣어야 했다. 그러면 머릿속의 비밀스러운 처리 회로가 풀가동되었다.분석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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