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씨 가문 본가.한바탕 소동이 끝나고 하용건과 차경희는 모두 지쳐 있었다.온채아와 성유준이 떠난 뒤 하용건은 두 손자에게 손님들을 차례로 보내도록 지시했다.본가 안의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져 갔다.하용건은 하선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어쨌든 집안의 가장이 된 이상 너무 우유부단하게 굴지 마. 정 안 되면 다 도연이 말대로 해.”빙빙 돌려서 하는 말이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었다.가주가 되어서 머리가 멍청하면 딸 말이라도 들으라는 뜻이었다.하선호는 다소 체면이 구겨졌지만 반박하지는 않았다.“네, 알겠어요. 아버지, 피곤하시죠? 이만 올라가서 쉬실래요?”확실히 늦은 시간이라 하용건도 더 구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심서정은 조금 전 샘플 채취를 마친 후 경찰에 의해 경찰서로 연행되어 조사받게 되었다.자리에 강미진, 하도연, 구정훈, 하예원 네 사람만 남아있던 중 하예원이 갑자기 허리를 굽혀 배를 움켜쥐었다.“엄마, 언니, 정훈 오빠, 속이 안 좋아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곧장 위층으로 향했다.까다로운 성격이라 남과 화장실을 함께 쓰는 걸 싫어했고 집에서는 오직 자기 침실 화장실만 사용했기에 아무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강미진은 고개를 들었을 때 구정훈의 시선이 때때로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정훈아, 오늘 고생 많았어.”구정훈은 얇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가족끼리 당연한 거죠.”강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도연에게 당부했다.“도연아, 나도 피곤하니까 네가 정훈이 좀 배웅해 줘.”“네.”하도연이 대답했다.강미진이 엘리베이터에 오른 뒤 하도연은 구정훈 곁에 선 부하 직원을 흘끗 쳐다보고는 시선을 거두며 구정훈을 돌아보았다.“잠시 얘기 좀 할까?”사무적인 어투였다.곧 이혼 서류를 받으러 가는 전남편이 아니라 같은 회사 동료에게 하는 말투였다.옆에 있던 황아림은 하도연이 자신이 여기 있다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는 걸 눈치채고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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