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심서정이 하씨 가문 아가씨가 맞더라도 하씨 가문은 앞뒤 가리지 않고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하용건부터 하도연에 이르기까지 모두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에 심서정의 몇 마디 말 때문에 주씨 가문에게 어떻게 하진 않을 것이다.하지만 민은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말은 그렇게 해도 하씨 가문이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만 그러는 게 아닐까?”백 년 가문인 만큼 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권력을 남용할 수는 없으니까.하지만 사적으로는 어떨지 누가 알겠나.“율천아, 걔는 줄곧 너 좋다고 매달렸잖아. 정 안 되면...”민은하 역시 주씨 가문을 생각해서 그러는 거라 자부하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그냥 걔랑 결혼해...”주율천은 마치 웃긴 농담이라도 들은 듯 비웃으며 말했다.“어머니는 참 큰 그림을 잘 그리시네요. 차라리 제 아버지를 무덤에서 파내서 심서정과 결혼시키는 게 어때요?”말을 마친 주율천은 그나마 남아 있던 모자간의 정도 지워버린 채 가방을 들고 재빨리 걸어 나갔다.민은하는 아들의 말에 머리가 멍해질 정도로 화가 났고 곧이어 쾅 닫히는 문소리에 정신이 들었다.그녀는 문짝을 벌컥 열고 뛰어나가며 소리쳤다.“주율천, 네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알기나 해? 어디서 네 아빠와 엄마한테 그런 식으로 얘기해! 날 엄마로 생각하긴 하는 거니?”주율천은 짐을 담결에게 건네며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러는 어머니는 절 아들로 생각하긴 하세요?”정말 그랬다면 그의 뜻을 묻지도 않고 혼자서 결혼을 끝내지 않았을 거다.지금 이 순간 심서정을 아내로 삼으라고 제안하지도 않았을 거다.민은하의 얼굴에 잠시 죄책감이 스쳤다.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한 채 검은 마이바흐가 먹빛 밤공기를 가르며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오랜 시간이 흘러 한밤중의 바람이 스치며 오싹함이 감돌아서야 민은하는 뒤늦게 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갔다.‘내가 잘못한 거야?.’아니, 그녀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그저 남편이 남긴 가업을 지키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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