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제 와서 빌어? 나 임신했어!: Chapter 461 - Chapter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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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1화

질문을 던진 온채아는 성유준이 미간을 찌푸리는 것을 보고 얼른 말을 돌렸다. “아니. 질문이 틀렸어. 그러니까 속 만드는 건 누구한테 배웠냐고.”성유준은 아까 분명 만두를 직접 빚었다고 했던 사실을 깜빡할 뻔했다.본인이 빚었다면 그런 거겠지. 이제는 성유준이 해가 서쪽에서 뜬다고 해도 반박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괜히 토를 달았다가 또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성유준은 온채아를 훑어보았다. “왜? 제자로라도 들어가게?”온채아는 할 말을 잃고 웅얼거렸다. “아니거든. 그냥 궁금해서 그래.”온채아는 이미 요리에는 소질이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인 상태였다. 자신을 괴롭히고 싶지 않았다.성유준은 두툼하게 부쳐낸 계란말이 반 접시를 그녀 앞으로 밀어주었다.“얼른 먹어. 먹고 건너가서 약 마시고.”“응?”온채아는 멍해졌다. 곧이어 상황 파악이 됐다. 약이라면 어떻게든 미루고 보는 그녀의 성미를 여승운은 이미 꿰뚫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예 아침 일찍 손정원을 시켜 약을 달여놓으신 게 분명했다.온채아가 넌지시 물었다. “아침 일찍 교수님 댁에 다녀온 거야?”“응.”억지로 끼워 맞추자면 다녀온 셈이었다. 만두를 가지러 갔을 때 두 분은 이미 깨어 계셨으니까.손정원은 요가를 하며 한약을 달이고 있었고 여승운은 막 아래층에서 아침 식삿거리를 사 들고 돌아오던 참이었다. 두 분은 성유준을 보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싸늘한 표정을 지었지만 온채아의 아침을 챙겨주려 한다는 말에 그나마 안색이 조금 누그러졌다.어젯밤에는 너무 늦어 경황이 없었던 터라 인터넷 상황을 묻지 못했다. 온채아가 문득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특효약 문제는 어떻게 됐어?”아침에 일어나 정다슬의 안부 메시지를 확인하고 습관적으로 인터넷을 확인했더니 여전히 비난 여론이 거셌다. 누군가 악의적으로 여론을 주도하고 있었다. 온채아와 성유준은 부적절한 관계이며 한 이불 덮고 자는 사이에 안 봐도 뻔하다는 식이었다. 처음부터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 했다는 거친 비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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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2화

다른 사람들은 발신인을 보지 못했지만 하도연의 바로 옆에 앉아 있던 강미진은 한눈에 알아챘다. 구정훈. 하도연과 구정훈은 이혼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후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이 거의 없었다. 이 시점에 걸려 온 전화라면 틀림없이 친자 확인 결과가 나왔다는 뜻이었다.하도연 역시 강미진의 안색이 눈에 띄게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하도연은 핸드폰을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안심시키듯 강미진의 등을 토닥였다.“받고 올게요.” 강미진뿐만 아니라 하도연 역시 마음이 복잡했다. 심서정이 막내라니... 가족 모두가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이었다. 심지어 하씨 가문 사람들 모두가 처음으로 결과가 틀리기를, 진짜 막내가 어딘가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기를 바랄 정도였다.하도연은 뒷마당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인사도 없이 곧바로 본론부터 꺼냈다.“결과 나왔어?”하도연다운 성격이었다. 두 사람이 부부로 지냈던 몇 년 동안에도 그녀는 늘 이토록 덤덤했다. 가족을 제외한 타인에게 좀처럼 부드러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구정훈은 익숙한 듯 담백한 말투로 답했다. “응.”“파일은 지금 바로 카톡으로 보낼게.”“알았어.”하도연은 짧게 대답하고는 청아하면서도 차가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럼 끊을게.”말이 끝나기 무섭게 전화가 끊겼다. 구정훈은 멍하니 종료된 화면을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한 미소를 띠며 대화창을 열었다. 그리고 파일을 전송했다.[도연아, 축하해.]그는 하씨 가문이 막내딸을 찾기 위해 얼마나 애타게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메시지를 확인한 하도연은 그 문구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아직 파일을 열어보지도 않았건만 이미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녀는 부정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결과를 확인했다. 무표정하던 그녀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강미진과 심서정 사이에 생물학적 모녀 관계가 성립함.]모반. 옥 펜던트. 그리고 친자 확인 결과까지.모든 증거가 심서정이 확실한 하씨 가문의 막내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도연은 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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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3화

“그래도 좀 그렇지 않아? 만약 막내가 알기라도 하면 상황이 더...”하지훈이 짜증스럽게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외부인인 네가 뭐가 좋네 나쁘네 참견이 많아? 큰누나가 말하면 그냥 듣기나 해.”정말이지 주제 파악도 못 했다. 하지훈은 오히려 하도연이 하루빨리 기회를 잡아 진상을 밝혀내길 바랐다. 심서정이 친동생이라니! 그건 앞으로 고개도 못 들고 다닐 인생 최대의 오점이 될 게 뻔했다. 오늘 오후 경성으로 돌아가면 성유준이 얼마나 비웃어댈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하지훈이 무심결에 내뱉은 외부인이라는 단어는 순식간에 분위기를 깼다. 하예원은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며 하선호를 향해 울부짖듯 따졌다.“아빠! 들으셨어요? 이제 막내를 찾았으니 제 자리는 없다는 거죠?”...강미진은 하도연의 말을 듣자마자 집사를 시켜 휠체어를 밀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식탁 위 공기에서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선호가 입을 열기도 전에 하용건이 쾅 하고 식탁을 내리쳤다. 본래 위엄 넘치던 얼굴에 분노가 서리자 더 공포스러웠다.“울긴 왜 울어! 정말로 하씨 가문에 네 자리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지금 당장 나가도 좋다!”20년 넘게 애지중지 키워놨더니 결국 돌아오는 게 이런 비난이라니. 좋은 소리 한 번 듣지 못하는 처지가 하용건은 무척이나 억울했다. 툭하면 울고불고 매달리는 저 옹졸한 모습이라니. 마치 온 세상이 자기에게 죄라도 지은 듯한 저 태도가 진저리났다. 예전 같으면 집안의 이런 사소한 일에는 간섭조차 하지 않았을 하용건이었다.그의 불호령에 하예원은 울음을 그쳤다. 하씨 가문을 떠난 그녀는 해성에서 거지보다도 못한 신세다. 하지훈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비아냥거리며 마당 쪽으로 턱끝을 까닥였다.“들었지? 할아버지가 지금 당장 나가도 된대.”“그만해라.”하선호는 하지훈이 사랑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미웠다. 하씨 가문의 아이들은 모두 침착하고 예의 바르게 교육받았건만 유독 하지훈은 늘 이렇게 가시가 돋쳐 있었다.하선호가 꾸짖었다. “또 제멋대로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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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4화

하씨 가문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지만 머릿속은 모두 복잡하기 짝이 없었다. 심서정을 어디에 어떻게 머물게 할지 대책을 세우기도 전에 유치장에서 풀려나 돌아온 것도 모자라 임신까지 했다니.누구의 아이인가. 하씨 가문 사람들은 그 생각만으로도 눈앞이 캄캄해졌다. 만약 시동생인 주율천의 아이라면 백 년 넘게 이어져 온 하씨 가문의 명성에 이보다 더 큰 수치는 없을 것이다.심서정도 분위기가 온채아 쪽으로 기울었다는 걸 눈치챘는지 잔뜩 저자세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를 냈다. “그때는 제가 잠시 무언가에 홀렸었나 봐요. 지금은 제 잘못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고 이제부터는 정말 새사람이 되어서...”“새사람 되는 건 나중 일이고.”하지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자르며 다급하게 물었다. “뱃속의 애가 누구 애인지부터 말해봐.”심서정이 입을 꾹 다물자 하지훈이 혀를 찼다. “주율천이야?”“...”심서정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하지훈은 눈썹을 치켜뜨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하도연을 바라보았다. “큰누나, 난 급한 일이 있어서 경성으로 먼저 갈게. 집안일은 누나가 좀 고생해 줘.”심서정을 단 일 초도 더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하희민 역시 손목시계를 확인하더니 같이 일어섰다. “나도 가봐야겠어. 오후에 지사 임원들 회의가 있거든.”“...”하도연은 대답 대신 그들을 훑어보기만 했다.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며 강미진이 다시 내려왔다. 곁에 선 집사의 손에는 작은 여행 가방이 들려 있었다.하도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엄마...”“치료도 계속 받아야 하니 이만 경성으로 돌아가련다.”강미진의 시선이 담담하게 심서정을 스쳐 지나갔다. 속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씁쓸했다.심서정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비위를 맞추려 들었다. “엄마, 저도 예전에 한의학을 공부했었는데 제가 좀 봐드릴까요?”강미진은 거절하려 했지만 그래도 제 핏줄이라는 생각에 차마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했다. 막내가 저런 성격으로 자란 데에는 어미인 자신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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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5화

온채아는 심서정이라는 사람을 정말 좋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강미진은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다.“채아 씨.”가라앉아 있던 강미진의 기분은 온채아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듣자 왠지 모르게 가벼워졌다. 말투에도 미소가 묻어났다. “나 오늘 경성으로 돌아가요. 시간 편할 때 언제든 그린 빌라로 와서 치료 계속해 줘요.”온채아는 조금 의외였다. “벌써요?”강미진이 막내딸에게 느끼는 애정과 죄책감이 얼마나 깊은지 온채아도 알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이제 겨우 찾은 막내딸을 위해서라도 본가에서 며칠은 함께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강미진은 온채아의 말뜻을 알아차렸지만 별다른 설명 대신 농담조로 말을 건넸다. “왜, 나랑 이제 교류하기 싫어진 거예요?”“그럴 리가요.” 온채아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대답했다. “다리를 고쳐드리겠다고 약속했으니 다 나을 때까지는 반드시 책임질 거예요.”그 대답이 강미진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온채아의 말은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가 철저히 의사와 환자 사이에 머물 것이라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온채아 역시 실제로 그럴 생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과 심서정 사이의 악연 때문에 그 중간에 낀 강미진만 더 괴로워질 게 뻔했다.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옆으로 던져버린 온채아는 문득 궁금해졌다. ‘나의 부모님은 어디에 있을까. 하씨 가문 사람들이 하아린을 그리워했던 것처럼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경성 공항.하늘에 긴 비행운을 남긴 비행기가 활주로에 부드럽게 내려앉았다. 정다슬은 선글라스를 벗고 한 손으로 캐리어를 밀며 익숙하게 출구로 향했다.멀리서 하지훈이 단번에 정다슬을 알아봤다. 익숙하기도 했지만 그녀가 워낙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온순한 느낌의 온채아와 달리 정다슬은 이목구비가 공격적이라 느껴질 만큼 아주 화려하고 선명했다. 어깨 위로 아무렇게나 흩어진 웨이브 긴 머리, 피부 톤을 살려주는 와인색 실크 셔츠를 청바지 안으로 자연스럽게 받쳐 입었다. 성큼성큼 걸을 때마다 드러나는 가늘고 매끄러운 발목이 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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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6화

온채아는 성유준에게 말하고 싶었다. ‘알고 보니 나 엄마 아빠가 없더라.’아니다.‘사실 난 수년 동안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 살아온 거였어. 온채아라는 이름조차 내 것이 아니었어.’자신이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되어버린 현실.성유준은 억울함이 가득 담긴 온채아의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마음이 약해진 그는 입을 맞추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한 손으로는 그녀의 허리를 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귀 옆의 잔머리를 넘겨주었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낮고 다정한 목소리로 달래듯 물었다.“도대체 왜 그래? 인터넷에서 욕먹은 게 그렇게 서러워?”다른 사람이 지금 성유준의 모습을 봤다면 분명 귀신이라도 본 듯 기겁했겠지만 온채아는 이런 그의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다. 예전에도 온채아가 슬퍼할 때면 그는 늘 이렇게 진지하게 물어봐 주곤 했다. 성유준은 온채아의 어떤 감정도 가식적이거나 유난스럽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두 사람이 완전히 틀어지기 전까지 그는 항상 그녀의 감정을 존중했고 그 모든 것을 온전히 받아주었다.온채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성유준을 바라보며 나직이 물었을 뿐이다.“나는 도대체 누구일까?”성유준이 그녀의 얼굴에서 이런 막막한 표정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어릴 때부터 성유준 앞에서 응석을 부릴 때를 제외하면 온채아는 늘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아는 영민한 아이였다.머리카락을 넘겨주던 성유준의 손이 멈칫했다. 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뜨더니 장난스러우면서도 진지하게 입을 뗐다.“내 동생이지.”“...”온채아는 어이가 없어 몸을 버둥거리며 일어나려 했다. 성유준은 그녀를 억지로 눌러 앉히고 묘한 눈빛으로 온채아를 바라보았다.“네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중요한 건 너는 너라는 거야.”그녀는 고개를 들어 성유준을 올려다보았다. 눈가에는 이미 눈물이 맺혀 있었고 말투는 무심한 듯 투박했다.“내가 나인 것만으로 충분해?”그것은 그녀가 요 며칠 사이 단 한 번도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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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7화

성유준은 빤히 알면서도 물어왔다. “어디 가? 나보고 안아달라더니 이제 싫어?”“누가 안아달래.”온채아는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쥐어짜며 잡아뗐다. 성유준이 일어서더니 새끼손가락에 걸린 힘을 이용해 그녀를 가볍게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빈틈없이, 그리고 단단하게 그녀를 안아준 것이다.성유준은 온채아의 허리와 등을 꽉 감싸안으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내가 너한테 안기고 싶어서 그랬어. 됐지?”“뭐해, 얼른 더 꽉 안아주지 않고?”성유준의 가슴은 넓고 따뜻했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온채아의 귓가를 두드렸고 숨결마다 익숙한 침향이 묻어났다. 예기치 못한 이 포옹에 며칠 동안 정처 없이 떠돌던 그녀의 마음이 비로소 안착하는 듯했다. 온채아의 귀끝이 더욱 타오르듯 붉어졌다. 온채아가 용기를 내어 몸 옆에 늘어뜨리고 있던 손을 올려 성유준의 허리를 감싸려던 찰나였다.“딩동.”갑작스러운 초인종 소리에 온채아는 몸이 파르르 떨렸다. 성유준은 코웃음을 쳤다. “왜 긴장해? 불륜 저지르는 것도 아닌데.”“...”어렴풋이 도어락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려왔다. 정다슬이 예정보다 일찍 돌아온 게 분명했다! 온채아는 허둥지둥 성유준을 밀쳐내고는 그를 한 번 흘겨본 뒤 빛의 속도로 문을 향해 달려갔다. “나가요!”“내 말 좀 들어.”문을 여는 사이, 하지훈의 목소리가 문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모처럼 둘이 같이 산다는데 네가 왜 굳이 끼어들어서 초를 치냐고.”정다슬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자발적인 동거인지 아니면 성유준의 일방적인 행동인지 내가 직접 확인해야 할 거 아니에요?”현관문이 활짝 열리는 순간, 여섯 개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온채아는 그들의 말을 들었고 그들도 온채아가 들었다는 걸 알아챘다. 정다슬은 온채아의 새빨개진 귀 끝을 보고는 헛기침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내가 정말 오지 말아야 할 때 온 거야?”보아하니 일방적으로 당하는 분위기는 아닌 듯했다. 온채아는 정다슬의 입을 틀어막고 싶다는 마음을 안고 그녀를 집 안으로 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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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8화

정다슬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내심 놀라지는 않은 기색이었다. 이 두 사람 사이에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라는 것, 심지어 부모님의 원한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정다슬은 그들에게 대화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눈치껏 입을 뗐다. “내가 돌아갈게. 얼굴만 한 번 보러 온 거니까 무사한 거 확인했으면 됐어.”온채아가 절친한 친구를 홀대하는 것 같아 미안해하는 기색을 보이자 성유준이 적절한 타이밍에 거들었다. “온 김에 밥이나 먹고 가.”그는 턱끝으로 식탁을 가리켰다. 정다슬이 사 온 저녁 거리였다. 분명 2인분보다는 많은 양이었고 애초에 다 같이 먹으려고 사 온 게 분명했다. 막상 와보니 성유준과 온채아 사이의 분위기가 묘해서 도망치려 했던 것뿐이었다.온채아는 친구를 감싸며 툭 내뱉었다. “다슬이가 사 온 거니까 같이 당연히 먹어야지.”“...”성유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뜰 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정다슬과 하지훈도 딱히 빼는 성격들이 아니었기에 말이 나온 김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어찌나 태연한지 마치 처음부터 갈 생각이 없었던 사람들 같았다.성유준은 하지훈을 향해 픽 웃으며 물었다. “누가 너더러 먹으래?”“...”하지훈은 성유준의 이런 독설에 익숙한 듯 그를 흘겨보았다. “내가 돈 냈어. 내가 내 돈 내고 사 온 걸 왜 못 먹어?”그는 온채아에게 형제자매가 없는 게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성유준을 매제나 형부로 둬야 한다면 누구라도 못 견딜 게 뻔했으니까. 만약 제 여동생 남편감이 저런 놈이라면 하지훈은 죽어라 반대했을 것이다. 성유준은 친구로서는 의리 있고 최고지만 가족으로 엮이기엔 입이 너무 험했다.그러다 문득 무언가 생각났는지 하지훈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이제 막 집으로 돌아온 그 여동생이라는 애가 이상한 놈을 매제라고 데려올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식사 도중 정다슬이 무심코 심서정의 이야기를 꺼냈다. 온채아에게 들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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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9화

하지훈이었다면 진작에 물고 늘어지며 난리를 쳤을 게 뻔했다.“할 말 없어?”“...”정다슬은 반찬을 집으며 하지훈을 쳐다봤다. “말하면 자존심 상할까 봐 그래요.”온채아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긴장이 점점 풀리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성유준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온채아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곁에 있는 친구들이나 교수님이 보여준 관심과 보살핌은 그녀의 성씨가 무엇인지, 이름이 무엇인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녀는 그저 그녀 자신이면 충분했다.하지훈은 정다슬의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 없다는 걸 알고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그는 온채아를 보며 본론으로 돌아갔다. “심서정, 경찰서에서 풀려났어.”“우리 집안에서 손을 쓴 건 아냐. 임신 중이라 경찰서에서도 계속 잡아두기가 곤란했나 봐.”말을 마친 하지훈은 온채아의 얼굴에 당혹감이나 불쾌함이 전혀 보이지 않자 깜짝 놀라 말했다. “너, 심서정이... 임신한 거 알고 있었어?”다행히 중간에 말을 멈춰 주율천의 이름을 내뱉지는 않았다. 공격적이라 느껴질 만큼‘가여운 채아, 어떻게 그런 쓰레기 같은 놈의 아이를 가졌단 말인가'온채아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제 하씨 가문 본가에서 봤을 때 눈치챘어요.”임신한 여자는, 특히 개월 수가 어느 정도 차면 임신한 티가 꽤 명확하게 나기 마련이다.한창 식사를 하던 성유준은 행동을 멈췄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하지훈을 힐끗 보았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훈은 그 시선에 뒷덜미가 서늘해졌지만 못 본 척 고개를 숙이고 밥을 먹는 데 열중했다. 제발 성유준의 직감이 이렇게까지 예리하지는 않기를 빌 뿐이었다.성유준의 여동생과 하지훈의 여동생이 같은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니. 게다가 하지훈의 여동생은 남의 남자를 가로채고 아이까지 임신했다. 성유준에게 이 사실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이건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식사를 마치고 하지훈이 소파에 앉아 있던 정다슬에게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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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0화

하지훈은 성유준을 뜯어말리고 싶었다.따지고 보면 주율천이 하지훈 조카의 친아버지 아닌가?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는 순간 하지훈은 소름이 돋아 제 입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만약 이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간 이성을 잃은 성유준이 하지훈까지 한꺼번에 패버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하지훈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려 문을 두드리려던 성유준의 손을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채아 임신 중이잖아. 네가 아랫집에서 사람을 패면 채아가 놀라서 건강에 이상이라도 생기면 어쩔 거야?”이 말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성유준을 휘감고 있던 살기가 눈에 띄게 수그러들었다.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그는 허공에 멈춰있던 손을 천천히 거두어들였다. 눈가에 비친 묘한 감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성유준은 입꼬리를 비틀며 하지훈을 비꼬았다.“내가 실수로 주율천을 죽여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네 조카가 아빠를 잃을까 봐 걱정되냐?”“...”하지훈은 네 조카 아빠이기도 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헛기침을 한 번 했다.“그런 건 아니야. 진짜 내 조카가 맞는지도 아직 확실치 않으니까.”어쨌든 그의 마음속에서 심서정은 여전히 막냇동생 같지가 않았다. 친자 확인 결과가 그렇게 명백하게 나와 있는데도 믿기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세 남매 모두가 믿지 않고 있었다.아랫집, 정다슬 역시 궁금증을 가득 안고 문이 닫히기만을 기다렸다가 온채아를 붙잡고 캐묻기 시작했다.“너랑 성유준 대체 무슨 상황이야?”“네가 본 그대로야.”온채아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목소리가 조금 잠겨 있었다.“다슬아, 너 예전에 유준 오빠가 왜 나를 버렸는지 알아?”어쩌면 성유준의 심장을 스쳐 지나갔던 그 총알이 원래는 온채아를 향했을지도 모른다. 성유준이 미리 그녀를 멀리 밀어버린 것이었다.정다슬이 흠칫 놀라 물었다. “왜 그랬는데?”“나를 지키려고.”온채아는 웃고 있었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는 씁쓸함과 허망함으로 가득했다. 그녀는 차라리 자신이 그 총알에 맞는 게 나았을 거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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