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하온이 낮게 말했다. 그 순간 그녀의 눈빛은 뜻밖에도 매우 평온하고, 끝을 알 수 없는 검은 정체수처럼 고요했다.정윤재는 그녀를 뚫어지라 바라보았다.“하온아, 뭘 하려는 거야?”“그자가 사람 마음을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나는 그 뜻대로 안 해 줄 거야.”심하온은 힘겹게 왼손을 들어, 자폭 명령이 새겨진 터치스크린을 손끝으로 스쳤다.“이 세상에 부술 수 없는 건 없어. 이른바 ‘옛사람’도 포함해서...”심하온의 손가락이 곧 화면에 닿으려던 바로 그 순간, 실험실 깊은 곳의 한 번도 열린 적 없던 금속 암문에서 지문 잠금이 해제되는 ‘삐’ 소리가 났다.흰 가운을 입고 금테 안경을 쓴 남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심하온의 호흡이 그 순간 완전히 멎었다.‘심기찬?’아니, 눈앞의 남자는 심기찬과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 눈에 극도의 냉정함과 낯선 기운이 서려 있었다.“하온아, 오랜만이구나.”남자가 안경을 밀어 올렸다. 말투는 심씨 가문 서재에서 날씨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평온했다.“나는 당세혁이야. 혹은... 진짜 ‘그림자’라고 해도 되겠지.”심하온의 동공이 급격히 좁아졌다.이 사람이 당세혁이라면, 방금 지하에서 죽은 그 사람은 누구였단 말인가?이 사람이 그림자라면, 정윤택이 손에 쥔 것은 또 누구의 목줄이란 말인가?“그 버튼은 건드리지 마.”심기찬의 얼굴을 한 남자, 심씨 가문의 껍데기를 빌린 그 ‘그림자’가 경멸하듯 차갑게 웃었다. 그의 시선은 정윤재에게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정 대표, 네가 상대하고 있는 게 큰형 정윤택이라고 생각해? 아니야. 그자처럼 스스로 고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어떻게 직접 이런 더러운 지하에 발을 들이겠어. 진짜 정씨 가문 큰형은 지금 숨어서, 이 카메라를 통해 너희들이 죽어 가며 발버둥을 내려다보고 있어. 다만 아쉽게도...”남자는 손끝을 멈추더니 말투가 섬뜩해졌다.“그자는 잊었더군요. 그림자에도 마음이 있다는 걸. 내가 보낸 저격수는 이미 그자의 창문 아래까지 접근했어. 맞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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