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431 - Chapitre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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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1화

오래 싫어했던 사람과 갑자기 거리를 좁히려니 은혁은 몸이 굳는 것 같았다.‘이게... 말로만 듣던 생리적 거부감인가?’속으로 중얼거리며 깊게 숨을 들이켰다.그리고 억지로 차분한 목소리를 만들었다.“지 대표, 오늘 저녁 시간 돼? 내가 밥 한 끼 살게.”천후가 코웃음을 쳤다.[네가 나한테 밥을? 무슨 함정 파티냐.]“아니야. 진심으로 초대하는 거야. 시간 내줘.”천후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좋지. 배 대표가 나한테 밥 산다는데, 이런 날 다시 오겠냐? 꼭 나간다.]“고마워. 그럼 저녁에 봐.”전화를 끊고, 은혁은 이마를 눌렀다. 속마음이 실수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누르고 있었다.예전 같으면 두 사람은 얼굴만 봐도 싸울 준비가 됐을 것이다.‘이런 일 아니었으면... 지천후랑 친구로 지낼 일도 없었겠지.’은혁은 씁쓸하게 웃었다.‘그때라도 내가 서하를 꽉 붙잡았으면... 지천후가 끼어들 틈도 없었을 텐데.’돌이킬 수 없는 3년.그 3년은 은혁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로 남았다.이미 잃어버린 시간을 돌릴 수 없으니 앞으로의 시간으로 서하와 아이에게 보상해야 했다....서하는 은혁과의 통화를 끊고 손님방 문 쪽을 바라봤다.소진은 침대 헤드에 기대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소리를 들었는지 바로 고개를 들었다.“왜? 무슨 일 있어?”“너 왜 안 자?”“이제 잘 거야.”서하는 침대에 올라와 앉으며 핸드폰을 소진에게 내밀었다.“이거 봐.”갤러리에는 대부분 이한의 사진이었다.소진은 사진을 보자마자 싱긋 웃었다.“왜, 우리 아들 보고 싶어졌어? 우리 아들 완전 잘생겼지? 이 얼굴 좀 봐, 얼마나 예뻐.”서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소진아, 너도 애 낳으면 이한이만큼 잘생길 거야. 아니, 이한이보다 더. 너 정말... 포기할 수 있어?”“그래서 갑자기 사진 보여준 거구나.”소진은 핸드폰을 밀어냈다.“여기서 날 흔들려고 기다렸네, 너.”“소진아, 나 생각해봤는데... 이건 너 혼자서 결정할 일이 아닌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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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선우는 처음엔 분노로 숨소리까지 거칠었지만, 그 뒤에는 오직 하나의 감정만 남았다.바로 마음 아픔이었다.[저도 알아요. 소진이 마음에 제가 있다는 거... 잘 압니다.]“변호사님, 제가 전화한 건 소진이 편을 들려고 한 게 아니에요. 소진이는 제가 이런 얘기하는 것도 절대 원하지 않을 겁니다.”“제가 변호사님과 변호사님 부모님 사이에 갈등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고요. 정말로 소진이와 함께하고 싶으시다면 가족분들을 제대로 설득해야 합니다.”“그렇지 않으면... 소진이는 변호사님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알고 있습니다.]“그리고 가족분들한테 따지러 가시면 안 돼요. 가족분들도 결국 변호사님 생각해서 그러신 거니까요.”“변호사님도 아시잖아요, 소진 성격... 소진이 ‘아이 낳기 싫다’라고 말한 건... 어른들에게 받아들이기 정말 힘든 일입니다.”선우는 짧게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네...]서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변호사님, 지금... 국내에 들어오실 수 있으세요?”선우는 낮게 답했다.[요즘은 어렵습니다. 일정도 꽉 차 있고... 정리해야 할 게 많아서요.]“그런데요, 변호사님.”서하는 말투를 가다듬었다.“소진이... 임신했어요.”선우는 그 말이 끝나는 순간 머릿속이 ‘웅’ 소리를 냈다. 전혀 믿기지 않아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몇 초간 말이 끊겼다.그제야 숨을 한번 길게 내쉰 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뭐라고요?]“소진이 임신했다고요. 오늘 검사하고 알게 됐어요.”서하는 천천히 이어 말했다.“내일 소진이 임신중절수술 받으러 간대요. 제가 아무리 말려도 안 들어요. 변호사님이... 정말 말리고 싶으시면 하루라도 빨리 오셔야 합니다.”선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저 지금 바로 돌아갑니다!]서하는 당황했다.“아까는 일정 많다고 하셨잖아요...”[제 아이가 없어질 상황인데... 일정 따위가 눈에 들어오겠습니까!]선우의 격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서하는 비로소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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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서하는 선우에게 그 이야기를 꺼낸 이상... 언제든지 따져 묻는 연락을 받을 각오까지 되어 있었다.‘소진이가 나한테 화내도 괜찮아.’‘욕을 하든, 때리든... 그래도 애를 바로 수술하게 둘 수는 없어.’서하는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시계를 보니 이한의 슬슬 수업이 끝날 시간이었다.은혁이 도착했을지 모르겠지만, 조경 번호도 알려줬으니, 둘이서 연락하면 문제없을 거로 생각했다.괜히 서하가 중간에서 더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이 시간, 은혁은 이미 도착해 있었다.몇 시에 수업이 끝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주차를 마치고 기다렸다.기다리는 동안 설렘과 긴장이 뒤섞여 가슴이 조여왔다.시간이 다가오자 은혁은 조경에게 전화를 걸었다.조경은 은혁을 두 번 정도 본 적이 있었다.은혁이 오감놀이 수업 마치고 아이를 데리러 오겠다고 하자 조경은 짧게 대답할 뿐, 더 묻지 않았다.그저 아이를 돌보는 시터일 뿐.주인집 사정은 최소한으로 알아야 덜 피곤한 것.은혁의 태도는 깔끔했고, 예의도 흠잡을 데가 없었다.하지만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아무나 가까이 가기 어려운 데다 왠지 모르게 ‘고급스러움’이 배어 있었다.그래서 조경은 말할 때 조금 경직된 상태였다.하지만 ‘아이 얘기’가 나오자 조경은 바로 표정이 풀렸다.“아유, 저는 이한이처럼 예쁘고 똑똑한 애 처음 봤다니까요. 얼굴도 잘생겼지, 애교도 많지, 말도 알아듣게 하죠.”조경은 손을 흔들며 계속 말했다.“어제는 제가 칼질하다가 손을 살짝 베었거든요? 그랬더니 ‘할머니 아야?’ 하면서 손가락을 잡고 후후 불어주더라고요.”“엄마 오면 먼저 슬리퍼 갖다드리고, 천후 대디, 소진 마미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다 자기 애처럼 대해요.”“외국 나가 있어서 그런지 발음도 좋고, 영어도 곧잘 하고... 참, 머리 회전도 빨라요!”조경은 말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어휴, 죄송해요. 나이가 드니까 말이 많아지네요.”“괜찮습니다.”은혁은 부드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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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서하는 소진을 붙잡아 이틀 더 머물게 했지만, 선우에게 연락한 일은 차마 말하지 못했다.말하는 순간 소진이 홧김에 곧장 병원으로 가버릴 것만 같았다.‘이건... 지금 말할 타이밍이 아니야.’‘소진이 더 무너지기 전에 하 변호사님이 와야 해.’5시가 조금 넘자 조경과 이한이 집으로 돌아왔다.은혁은 위층까지 올라가지 않았다. 건물 1층에서 이한을 내려준 뒤, 둘이 엘리베이터에 타는 걸 보고서야 발길을 돌렸다.오늘 저녁엔 천후와 약속이 있었다.아이를 집까지 데려다주는 짧은 거리.은혁에게는 그 길이 너무도 짧게 느껴졌다.‘이 길이... 끝없이 이어졌으면 좋겠다.’심지어 속으로는 ‘이 차 안에 서하까지 함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까지 했다.하지만 그건 욕심이었다.서하가 이한이 은혁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려준 것만으로 은혁은 이미 벅찰 만큼 감사했다. 더 이상 무리한 욕심을 부릴 용기도 없었다....천후와 만나기로 한 장소에 도착했을 때, 천후는 아직 오기 전이었다.은혁은 룸 안의 직원들을 모두 내보내고 스스로 차를 따라놓은 뒤, 핸드폰을 보며 조용히 기다렸다.조금 전 이한이 조경 품에 안겨 내려오면서 뒤돌아 자신에게 손을 흔들던 모습.그 장면을 은혁은 놓치지 않고 찍어두었다.사진 속 이한의 이목구비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은혁을 닮아 보였다.‘집에 가면... 나 어릴 때 사진도 꺼내 봐야겠다.’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천후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배 대표, 생각보다 일찍 왔네?”은혁은 천후를 쳐다보고 일어섰다. 그리고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지 대표, 와줘서 고마워.”천후는 잠시 멈칫했다.은혁이 먼저 일어나 인사를 하고 악수까지 청할 줄 몰랐다.하지만 손을 내민 사람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천후도 손을 내밀며 짧게 말했다.“별 말씀을.”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천후가 직설적으로 물었다.“배 대표가 갑자기 나를 부른 이유가 뭐지?”은혁은 숨을 골라 말문을 열었다.“감사 인사하려고. 식사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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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실은... 은혁은 생각한 적이 있었다.하지만 천후가 말하는 그런 뉘앙스는 아니었다.은혁은 매일같이 서하와 다시 과거로 돌이키고 싶었다.꿈에서도, 현실에서도.하지만 그게 어떻게 ‘다 내 계획 안에 있다’ 그런 식이 될 수 있겠나?서하는 은혁 인생에서 유일하게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다른 사람, 다른 일들은 언제나 위에서 내려다보며 판단하고 선택할 수 있었다.그게 잘난 척이 아니라 은혁에게는 실제로 그만한 능력과 배경이 있었다.하지만 서하는 달랐다.철저히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은혁 마음의 가장 약한 지점에 있는 사람.은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난 정말 서하를 다시 붙잡고 싶어. 서하가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그거면 돼. 서하가 허락해 주면 최고지.”“근데... 만약 안 된다면, 억지로 붙잡지 않을 거야. 그냥 서하 옆에서, 서하랑 같이 우리 아들 키울 거야.”그 말투는 지금까지의 은혁과는 전혀 달랐다.천후는 잠시 멍해졌다. 은혁이 이렇게까지 저자세로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이렇게까지 진심이면... 여자로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겠지.’그렇지만 천후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서하가 이렇게 빨리 은혁에게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식의 은혁은 여자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타입이었다.그게 더 짜증났다.천후가 벌떡 일어섰다.“딴 얘기 없으면, 난 간다.”은혁도 두 사람이 앉아서 평화롭게 밥을 먹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그래서 차분히 말했다.“나는 이한이 아빠고, 넌 대디니까... 앞으로 자주 볼 수밖에 없잖아. 그러니까...”“그런 말도 필요 없어.”천후는 뒤도 안 돌아보고 걸어 나갔다.“대충 너 월수금, 나 화목토. 이렇게 나눠서 보면 되겠네.”이어서 문을 쾅 닫았다.은혁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쓴웃음이 나왔다.천후를 만나자고 할 때부터 이미 마음속으로 결심했다.다시는 천후와 적처럼 굴지 말자고.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서하와 이한 곁을 천후가 지켜준 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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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아니거든.” 서하가 조용히 말했다. “왜 네 입에서 나온 말은 뭐든 색이 달라지는 것 같지?”소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남자들 본능 같은 거잖아. 몇 천 년 동안 이어져 온 건데 쉽게 안 고쳐져. 너 앞으로 어쩔 생각이야? 너희 둘... 금방 다시 결혼하는 거 아냐?”“말도 안 돼.” 서하가 잘라 말했다. “그런 건 생각도 안 했어.”“만약에 배은혁이 애를 핑계로 들이대는 상황이면?”“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소진은 단정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라면 일단 연애부터 해볼 것 같아. 어느 정도 지켜본 다음에 결혼 얘기는 그 후에. 그렇게 하는 게 안전하지.”“지금 난 그럴 마음 없거든.” 서하가 대답했다. “지금 삶도 만족스럽고, 연애할 생각도 없어.”서하가 진심으로 말한 거라는 걸 잘 아는 소진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혼자서 김칫국물 마시는 불쌍한 배은혁.”서하도 따라 웃었다. “나 자료 좀 더 볼게. 너 먼저 자.”“응, 가. 나 좀 더 핸드폰 보고 잘게.”서하가 방을 나와 자신 핸드폰을 확인했을 때, 은혁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방금 소진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자, 더 이상 은혁에게 잘못된 신호를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서하는 답장을 보냈다.[무슨 일 있어? 여기서 말해도 똑같아.]이한이 은혁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전한 건, 화해의 의도를 내비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하지만 은혁에게는 곡해의 소지가 있었다.그건 서하가 원치 않았다.애초에 어떤 오해도 남기기 싫었다.은혁은 서하의 답장을 보고, 서하가 내려올 생각이 없다는 걸 곧바로 알아챘다.그리고 메시지를 보냈다.[아무 일 아니야. 오늘 지천후 대표 만나서, 지난 3년 동안 당신이랑 이한아 돌봐준 거 고맙다고 인사했는데, 지 대표가 오해한 것 같더라. 우리가 다시 잘해보는 줄 알던데.]서하는 짧게 답했다.[괜찮아. 내가 지 대표에게 설명할게.]그 메시지를 본 순간, 은혁은 확신했다.서하에게는 재결합 의도가 전혀 없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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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서하가 급히 말했다.“우리 집이에요. 하 변호사님, 밤새 오신 거예요?”[네. 곧 올라갈게요.]전화를 끊으려던 선우는 다시 말을 붙였다.[위치 좀 보내주세요. 감사합니다.]통화가 끊기자마자 서하는 위치를 보내고 조심스레 안방으로 들어갔다.소진이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확인하자 그제야 숨이 놓였다.선우는 예상보다 훨씬 빨랐다. 20분 남짓 지났을 때 서하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서하는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답장했다.[지금 올라오실 거예요?]곧바로 선우의 메시지가 들어왔다.[소진이는 아직 자고 있나요?][네.][그럼 제가 아래에서 기다릴게요. 깨면 알려주세요. 조금 더 자도 괜찮아요. 저는 급하지 않아요. 어차피 돌아왔으니까.][알겠어요.]서하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오늘은 학교에도 미리 양해를 구해 놓았기에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가 돌아오긴 했지만, 소진이 혹시라도 심하게 반응할지 계속 걱정됐다.만약 소진이 수술을 고집하면, 서하는 반드시 함께 있어야 했다.조경이 이한을 데리고 오감놀이 수업에 가야 해서 아이가 깨어나자 서하는 이한에게 일부러 말했다.“아들, 오늘은 조용히 이야기하자. 소진 마미 아직 자.”하지만 방이 좁다 보니 완전히 조용히 지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작은 소리도 안방에 닿을 것 같아 서하의 마음은 계속 불안했다.그래서 조경과 이한이 나가고 나서 서하는 다시 안방 문을 살짝 열어 보았다.소진은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었다.서하는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선우의 차를 발견했다.차 옆에 서 있는 선우는 먼 길을 달려온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담배를 하나 피우고 있었다.“서하 씨.”선우는 서하를 보자마자 담배를 끄고 가까운 쓰레기통에 버린 후 성큼성큼 다가왔다.“하 변호사님.”서하도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했다.“소진이 돌봐주신 것... 신세 많이 졌습니다.” 선우가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뭘요. 소진이는 제 제일 친한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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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소진이 하품을 하며 안방에서 나와 욕실로 들어갔다.씻고 나오자마자 다시 소파에 쓰러지듯 누웠다.“서하야, 나 배고파. 뭐 먹을 거 없어?”서하가 대답했다.“이모님이 아침에 죽 끓여놨어. 반찬도 두 가지 있고. 그거 먹을래? 아니면 너 먹고 싶은 걸로 나가서 사 올게.”“괜찮아. 굳이 사 오지 마.”서하는 주방으로 가서 죽과 반찬을 식탁에 차려놓았다.소진은 소파에 더 늘어져 있다가 한참 후에야 겨우 몸을 일으켜 세수하러 욕실로 갔다. 얼굴을 씻고 양치까지 하고 나서야 조금 사람같이 보였다.소진이 식욕도 있고, 먹는 모습도 나쁘지 않자 서하는 조금 안심했다. 입덧 심하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직 그 시기가 아닐 수도 있었다.소진이 젓가락을 놓자, 서하는 그릇들을 정리해 주방에 두고 다시 소진 옆으로 와 앉았다.“미안해, 소진아.”소진은 접시 속 반찬의 껍질을 손가락으로 까내며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껍질을 휴지에 털어놓고 나서 서하를 힐끗 보며 말했다.“하선우한테 전화했지?”서하의 입에서 변명이 반쯤 나오다가 멈췄다.“알았어?”“너를 내가 모르냐.”소진은 피곤한 얼굴로도 간단히 진단을 내렸다.“이런 큰일이 생겼는데, 내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게 하려고 네가 하선우한테 연락했겠지.”그 말을 듣는 서하의 마음은 반쯤 죄책감, 반쯤은 미묘한 기대였다.소진이 연락 사실을 눈치채고도 병원으로 끌고 가지 않은 건...‘혹시... 소진이도 하 변호사님은 오기를 기다린 거 아닐까?’‘사실은 아이를 그렇게까지 원하지 않는 게 아닐지도...?’하지만 소진이 날리는 한마디가 그 희미한 기대를 바로 꺼버렸다.“너 괜한 생각 하지 마. 내가 네 거짓말 안 깬 건, 하선우 온다고 해서 달라질 게 없어서야.”서하의 마음속에서 막 피어오르던 작은 불씨가 그대로 사라졌다.서하는 힘없이 소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소진아...”“됐어, 불쌍한 척하지 마.”소진은 티슈로 손을 닦으며 말했다.“나 옷 갈아입고 하선우 만나러 갈 거야. 너는 학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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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선우는 황급히 팔을 풀었다.“미안. 너무 급해서... 담배 한 대 피웠어.”“뭘 그렇게 급해?”소진은 피식 웃었다. “별일도 아닌데.”“이거 큰일이야.”선우의 눈빛은 오히려 더 단단했다.“급하게 오느라 전에 사둔 반지도 못 들고 왔어. 소진아, 나랑 결혼해 줄래?”소진은 선우를 잠깐 쳐다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담배만 피운 게 아니라 술도 마셨지?”“아니. 아주 멀쩡해.”“밤새 안 잤지? 잠 부족해서 헛소리하는 거 아니야?”“한소진, 그런 말 할 필요 없어.”선우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했다.“넌 알 거야. 내가 평생 결혼하고 싶었던 사람은 너뿐이야. 이번 일은 예상 못 한 거지만, 내가 널 사랑한 건 절대 우연이 아냐. 몇 년을 그랬고, 앞으로도 변함없을 거야. 소진... 나한테 기회를 줘. 내가 죽으면 첫 번째 상속자는 너야.”소진이 갑자기 그를 세게 밀쳤다. 무릎을 꿇고 있던 선우의 상체가 뒤로 흔들렸다.“유언장 쓰면 되잖아.”소진은 담담하게 말했다.“너 죽으면 네 거 다 나 주면 되지. 굳이 결혼까지 왜 해?”선우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네가 내 아내도 아닌데 왜 내 재산을 다 주냐?”“그럼 네 아내한테 줘. 내가 빼앗는 거 아니잖아.”“소진아...”선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난 네가 내 아내였으면 좋겠어.”“넌 진짜 듣기 좋은 말만 하지?”“이제라도 안 하면 늦어.”선우는 진심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이는 제발... 지켜줘. 이후에 네가 시키는 건 뭐든 할게. 절대 불평 안 해.”“말은 쉽지. 낳는 건 나야.”“가능하다면, 내가 대신 임신했으면 좋겠다.”선우는 진심처럼 말했고, 눈빛도 흔들리지 않았다.“네 아이 열 번이라도 낳아 줄게.”“너 돼지야?”“응. 그러니까 너한테 돼지 새끼 한 마리씩 낳아 준다고.”“으, 싫어. 더럽고 냄새나!”선우는 일어나서 그녀 옆에 바짝 붙어 앉고, 다시 품에 끌어안았다.“제발 그만 좀 괴롭혀. 여기 오는 길 내내 한숨도 못 잤어. 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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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소진이 서하를 보며 빙긋 웃었다.“진짜 똑똑하네.”서하는 저도 모르게 선우를 바라봤다.하지만 선우는 이미 소진 쪽으로 가서 컵에 물을 따라 건네고 있었다.“마셔. 목 막힐라.”서하는 이마를 손끝으로 눌렀다.선우는 아무래도 포기한 것 같았다. 소진을 설득하러 온 건데, 지금 느낌은... 오히려 소진 편에 서서 더 부추기고 있었다.선우는 병원에 전화를 걸어 내일 오전 예약까지 깔끔하게 잡아버렸다.소진이 말했다.“저녁은 여기서 안 먹을게. 반찬은 냉장고 넣어둬.”“왜? 나 오늘 엄청 많이 샀는데.”“쟤가 여기 있으면 불편해. 나 그냥 내 집으로 갈래.”서하는 간다는 소진을 굳이 잡지 않았다. 다만 선우를 한 번 더 바라봤다.내일로 수술 날짜까지 잡힌 상황.오늘 밤이라도 선우가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보길 바라는 눈치였다.하지만 선우는 조용히 웃기만 했다.서하가 무엇을 기대하는지 이해했지만, 어떻게 해도 소진에게는 강하게 붙잡을 수 없었다.소진에게는 늘 한없이 참아주고, 받아주는 존재였으니까.두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서하는 멍하니 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식재료들을 정리해 냉장고에 넣었다.아무리 선우가 돌아와도, 결론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았다. 소진은 임신중절수술을 할 생각이 확고했다.‘그냥 더는 관여하지 말자.’‘어떤 일은 애초에 바꿀 수 없는 건지도 몰라.’얼마 지나지 않아 조경이 돌아왔다. 손에는 바구니 가득 해산물이 들려 있었다.소진이 돌아갔다고 전하자, 둘 다 한참을 해산물과 냉장고를 번갈아 보며 한숨만 쉬었다.도무지 먹을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결국 조경이 요리를 하고, 옆집에도 나눠주는 수밖에 없었다.저녁 무렵, 소진에게서 전화가 왔다.[서하, 내일 너 그냥 정상 출근해. 내 일은 네가 신경 쓸 거 없어.]서하는 물었다.“하 변호사님은 언제 돌아간대?”소진이 옆에서 새우를 까주는 선우를 힐끔 보고 답장을 보냈다.[당분간 안 돌아간댔어. 그러니까 넌 진짜 신경 꺼. 나 챙길 사람 따로 있으니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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