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혁은 돌아오는 길에 배효산에게서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첫 번째 전화는 일단 받았다.배효산의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은혁이 먼저 잘라 말했다.“제 일은 제가 결정합니다. 제가 결혼한다면, 상대는 서하예요. 서하가 아니라면, 저는 결혼 안 합니다.”배진국 회장이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은혁 위에는 누군가가 있었다.하지만 배진국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로, 배씨 집안의 자산은 전부 은혁의 손에 들어갔다.배효산은 이제 은혁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배성우는 몇 년 동안 기회를 얻었고, 그 결과를 충분히 보여줬다.손대는 사업마다 손실이 났고, 손해가 누적될수록 주인정의 얼굴은 굳어갔다.결국 주인정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아들은 끝내 은혁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을...그래서 지금 배씨 집안의 모든 자산은, 단단히 은혁의 손안에 있었다.은혁이 서하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막을 사람은 없었다.배효산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건 ‘아버지’라는 호칭뿐이었다.권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주인정이라는 새어머니 역시, 은혁에게는 아무 영향력이 없었다.아무도 막을 수는 없었지만, 배효산의 말은 은혁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은혁은 지금 서하를 다시 만나고 있었다.앞으로 함께할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적어도 주변의 축복은 받고 싶었다.그날 저녁, 은혁은 거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본가를 나와 곧장 서하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은혁은 차를 세워 두고, 메일을 확인하며 서하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약속 시간은 아홉 시였다.여덟 시가 조금 넘었을 때, 건물 출입구에서 천후가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천후는 전화받으며 걷고 있었고, 은혁의 차를 보지 못한 듯했다.은혁은 차 문을 열고, 천후를 불렀다.천후가 고개를 돌려 은혁을 확인하고는 전화기에 대고 짧게 말했다.“이따 다시 전화할게.”통화를 끊은 천후는 그 자리에 서서 은혁을 바라봤다.“배 대표.”은혁은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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