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의 모든 챕터: 챕터 411 - 챕터 420

589 챕터

제411화

은혁은 서하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환하게 웃는 표정과 선명한 입술에 시선이 멈췄다. 머릿속에서 종이 한 번 울리는 것처럼 멍해졌다.자연스럽게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그때의 두 사람은 소통이라는 걸 제대로 하지 못했다.말로 풀기보다는 감정에 기대는 쪽에 가까웠다.그런데도, 부부로서의 속궁합은 이상하리만큼 잘 맞았다.은혁은 그 시절의 서하에게 깊이 빠져 있었다.지금도 그 기억을 떠올리면, 숨이 막힐 만큼 선명했다.‘지금이라면...’은혁은 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서하에게 입을 맞추는 장면만 떠올려도, 마음이 지나치게 가득 찼다.은혁은 말없이 생수를 한 모금 마시며 자신을 진정시켰다....학교에 도착하자, 서하는 곧바로 업무를 보러 가야 했다.은혁도 함께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차도, 집도 다 상관없어. 당신의 프로젝트에 필요한 자금은 전부 투자할게.”서하가 물었다.“만약 끝이 안 보이는 밑 빠진 독이라면?”은혁은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그럼 더 열심히 벌어야지. 밑 빠진 독에서 물이 빠져나가는 것보다 더 많이, 더 빨리 채우려면.”서하는 웃었다.“고마워. 그럼 나 갈게.”서하는 몇 걸음 옮기다가 다시 돌아봤다.“오늘 밤에 만나.”은혁의 입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그래, 밤에 봐.”서하가 자리를 떠나려는 찰나, 은혁이 다시 불렀다.“서하야.”서하는 웃으며 돌아섰다.“또 무슨 일?”“민석이 일은... 그래도 사과하고 싶어.”은혁이 말했다.“민석이는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친구야. 민석이 생각에 일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오래된 인연이라서.”“알아.”서하가 말했다.“유민석 씨는 유민석 씨고, 당신은 당신이야. 난 그 정도는 구분해.”“고마워.”이번에는 서하가 정말로 돌아섰다....은혁은 자신의 차에 올라타자마자 민석에게 전화를 걸었다.민석은 곧바로 받았다.[무슨 일이야?]은혁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앞으로 또 네가 몰래 서하 찾아가는 거 알게 되면, 너랑 나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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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민석은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앞으로 내가 괜히 배은혁 일에 한마디라도 더 얹으면, 진짜 대머리 돼도 상관없어.’은혁은 민석의 이런 속사정을 전혀 알지 못했다.어쨌든 할 말은 다 했고, 민석이 또다시 서하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면, 은혁은 민석에게 주먹을 휘두를지도 모를 일이었다....오후 내내 은혁은 일정에 쫓겨 움직였다.네 시가 조금 넘자 배효산에게서 전화가 왔다.[오늘 저녁 시간 있냐? 집에 한 번 들어와라. 할 말이 있다.]은혁은 오늘 밤 따로 약속이 없었다.저녁을 먹고 나서 서하를 만날 때까지 충분히 시간이 있었다.“네, 알겠습니다.”은혁은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마침 잘 됐다.서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도 슬슬 꺼낼 생각이었다.하지만 은혁은 몰랐다.주인정이 이미 은혁의 혼사에 대해 다른 쪽으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는 걸.주인정은 정작 본인이 직접 나설 용기가 없었다.대신, 배효산의 귀에 조심스럽게 말을 흘렸다.그래서 배효산이 은혁을 부른 것이었다....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자, 배효산이 입을 열었다.“너 이혼한 지도 벌써 몇 년 됐다. 계속 혼자 지내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야.”주인정도 맞장구쳤다.“그러게요. 일이 그렇게 바쁜데, 옆에서 챙겨줄 사람은 있어야죠.”배효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마침 괜찮은 집안에, 조건 좋은 아가씨가 하나 있다. 내일 만나보고, 마음에 들면 일단 정리부터 해라.”은혁의 미간이 바로 찌푸려졌다.“전 안 나갑니다.”배효산의 표정이 굳었다.“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이런 말이나 하고 있냐? 배씨 집안의 대는 이어야 할 거 아니냐.”은혁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차분하게 말했다.“그래서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전 서하를 다시 만나려고 합니다. 지금 다시 다가가고 있고요.”배효산이 잠시 말을 잃었다.“서하? 임서하 말이냐?”“네. 가능하면 다시 결혼하고 싶습니다. 아직 서하가 허락한 건 아니지만, 제가 노력하고 있습니다.”은혁은 숨기지 않았다.“미리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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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은혁은 돌아오는 길에 배효산에게서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첫 번째 전화는 일단 받았다.배효산의 말을 끝까지 듣기도 전에, 은혁이 먼저 잘라 말했다.“제 일은 제가 결정합니다. 제가 결혼한다면, 상대는 서하예요. 서하가 아니라면, 저는 결혼 안 합니다.”배진국 회장이 살아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은혁 위에는 누군가가 있었다.하지만 배진국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로, 배씨 집안의 자산은 전부 은혁의 손에 들어갔다.배효산은 이제 은혁을 어떻게 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배성우는 몇 년 동안 기회를 얻었고, 그 결과를 충분히 보여줬다.손대는 사업마다 손실이 났고, 손해가 누적될수록 주인정의 얼굴은 굳어갔다.결국 주인정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아들은 끝내 은혁을 넘지 못한다는 사실을...그래서 지금 배씨 집안의 모든 자산은, 단단히 은혁의 손안에 있었다.은혁이 서하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막을 사람은 없었다.배효산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건 ‘아버지’라는 호칭뿐이었다.권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주인정이라는 새어머니 역시, 은혁에게는 아무 영향력이 없었다.아무도 막을 수는 없었지만, 배효산의 말은 은혁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은혁은 지금 서하를 다시 만나고 있었다.앞으로 함께할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고, 그렇다면 적어도 주변의 축복은 받고 싶었다.그날 저녁, 은혁은 거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았다.본가를 나와 곧장 서하가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로 향했다.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다.은혁은 차를 세워 두고, 메일을 확인하며 서하가 내려오기를 기다렸다.약속 시간은 아홉 시였다.여덟 시가 조금 넘었을 때, 건물 출입구에서 천후가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천후는 전화받으며 걷고 있었고, 은혁의 차를 보지 못한 듯했다.은혁은 차 문을 열고, 천후를 불렀다.천후가 고개를 돌려 은혁을 확인하고는 전화기에 대고 짧게 말했다.“이따 다시 전화할게.”통화를 끊은 천후는 그 자리에 서서 은혁을 바라봤다.“배 대표.”은혁은 가볍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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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무슨 말인지 알아. 나한테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어. 앞으로 내가 서하랑 다시 이어지지 않더라도 지난 3년 동안 서하 곁을 지켜준 건 고맙게 생각할 거야. 만약 내가 서하랑 다시 함께하게 된다면, 그땐 더 이상 너랑 각 세우지 않을게.”사실 따지고 보면, 은혁과 천후 사이에 깊은 원한이 있는 건 아니었다.어릴 때부터 성향이 맞지 않았고,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서로를 견제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H시 상류층에서는 은혁과 천후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심지어 중학생 시절, 천후가 은혁이 좋아하던 여자애를 가로챘다는 소문까지 돌았지만,그건 전부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였다.다만 오랜 시간 동안, 서로를 불편해하는 감정이 너무 익숙해져 버린 건 사실이었다.그래서 방금 은혁이 말한 ‘우호적으로 지내겠다’라는 말은 천후에게는 꽤 비현실적으로 들렸다.천후가 한쪽 손을 주머니에 넣고 턱을 살짝 들었다.“그럼 미안한데, 난 아마 평생 너를 좋게 보지는 못할 것 같아.”천후는 가볍게 덧붙였다.“평생 안 보고 살아도, 딱히 아쉬울 것도 없고.”그 말을 남긴 뒤, 천후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은혁은 천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사업적으로만 보면 은혁도 천후도 결코 선한 인물은 아니었다.3년 전, 은혁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천후가 서하와 이렇게 가까워질 거라는 걸.그리고 서하와의 관계에서 자신이 천후보다 더 멀어질 줄은 더더욱.은혁은 차에 바로 타지 않았다.어두워진 밤공기 속에 서서,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불을 붙이지는 않고, 손에 쥔 채 냄새만 맡았다.아홉 시까지 아직 오 분 남짓 남았을 때, 은혁의 시야에 서하가 들어왔다.은혁은 손에 담배를 들고 있는 걸 그제야 떠올렸다.미처 버리지도 못한 채, 그대로 서 있었다.서하도 은혁을 발견하고 다가왔다.“왜 차 안에서 안 기다렸어?”그러다 서하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은혁 손으로 내려갔다.‘아, 담배구나.’서하는 금방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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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아이에게는 결국 한쪽 부모만 있는 환경보다는 아빠와 엄마가 함께 있는 삶이 더 안정적일 수밖에 없었다.은혁과 서하는 아파트 단지 옆 작은 정원을 거의 한 시간 가까이 걸었다.서하는 졸렸는지 몇 번이나 하품했다.낮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데다가 은혁이 옆에서 계속 말을 이어가다 보니 더 피로가 몰려온 듯했다.은혁은 더 함께 있고 싶었지만, 서하가 피곤한 모습을 보고는 마음을 접었다.서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일찍 쉬라고만 말했다....다음 날 아침.서하는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번호는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끝자리가 어딘가 익숙했다.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받자 상대가 먼저 이름을 밝혔다.[서하야, 나 배효산이다.]서하는 잠시 말을 잃었다.이미 연락처를 바꾼 지 오래였고, 이전 인연들의 번호는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다.무엇보다 지난 3년 넘는 시간 동안 배효산과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왜 지금 연락을...?’배효산은 서하에게 만나자고 했다.서하가 가능한 시간은 점심뿐이라 둘은 점심 식사로 약속 시간을 잡았다.전화를 끊기 전, 배효산이 덧붙였다.[오늘 나랑 만나는 건, 은혁이한테는 말하지 말고.]서하는 더더욱 이유를 알 수 없었다.지금의 서하와 배효산 사이에 굳이 따로 만날 일이 있을까 싶었다.은혁과 아직 결혼 생활을 유지하던 시절, 배효산은 서하에게 나쁘게 대하지 않았다. 크게 잘해줬다고는 할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온화한 사람이었다.다만 일이 생기면, 배효산은 늘 민레나 쪽을 먼저 챙겼다.그 점은 분명했다....약속 장소는 한 중식당이었다.서하가 도착했을 때, 배효산은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서하가 먼저 말했다.“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배효산이 손짓했다.“나도 금방 왔다. 앉아라. 서하, 정말 오랜만이구나.”서하는 자리에 앉으며 웃었다.“그러게요. 정말 오랜만이에요. 건강은 괜찮으시죠?”배효산은 아직 예순이 채 되지 않았고, 관리도 잘 되어 있어 나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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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서하는 그제야 알았다.배효산이 왜 갑자기 자신을 찾았는지.아마 은혁이 무언가를 말했을 것이다.그래서 배효산이 다급해졌을 것이다.서하가 다시 배씨 집안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자체가 배효산에게는 불편한 일이었을 테니까.배효산이 말을 이었다.“서하야, 네가 좋은 아이인 건 맞다. 하지만 우리 집안은 너희 집안과는 달라. 특히 내 나이쯤 되면, 체면이 중요해진다. 은혁이가 너랑 다시 결혼이라도 하면, 나는 집안 다른 사람들한테 웃음거리가 된다.”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물론 네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지금 너는 아이도 있고, 너랑 은혁은 여기서 끝내는 게 맞다.”서하가 조용히 물었다.“은혁 씨는 이사장님 뜻을 알고 계신가요?”“알면 뭐 하고, 모르면 뭐 하겠냐.”배효산의 말투는 단호했다.“은혁이는 이런 집안에서 태어나서 집안이 준 지위와 힘을 누리며 살았다. 그만큼, 치러야 할 대가도 있는 거다.”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배효산은 서하가 말하지 않자 다시 물었다.“지금 네 생각은 뭐냐? 너희 둘, 어디까지 온 거야? 내가 보기엔, 너희가 이혼까지 갔다는 것 자체가 이미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다. 특히 너 말이야, 서하야. 그때 네가 나한테 이혼 도와달라고까지 하지 않았냐.”“맞아요.”서하가 차분히 말했다.“그때 일은... 도움 주셔서 감사합니다.”“고맙다는 말은 됐다.”배효산이 바로 잘랐다.“이번에는 그냥 은혁이랑 엮이지 말아라.”서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은혁 씨가 지금 저를 다시 만나자고 하고 있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저는 아직 대답하지 않았습니다.”배효산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자기 아들 성격이 어떤지, 배효산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이혼할 때 그렇게까지 등을 돌렸던 은혁이 다시 서하를 쫓아다니며 구애한다는 건, 그만큼 마음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하지만 배씨 집안을 책임지는 위치에서 그런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은혁에게 가장 적합한 결혼은 집안이 맞는 상대와의 결합, 그리고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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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서하는 과장하지 않았다.배효산이 한 말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었다.은혁은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눌러가며,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를 유지하려 애썼다.[서하야, 아버지 말 신경 쓰지 마.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 아버지와는 아무 상관 없어.]서하가 조용히 말했다.“그래도... 그분은 당신 아버지잖아.”[그게 뭐 어때서? 어릴 때부터 아버지는 나한테 관심 없었어.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은 전부 내가 내렸어.]사실 결혼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서하는 배효산과 은혁의 관계를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었다.다른 재벌가의 부자 관계는 알지 못했지만, 적어도 배효산과 은혁이 가깝지 않다는 것은 확실했다.같은 지붕 아래 살아도 서로를 배려하거나 대화하는 모습은 거의 보지 못했다.은혁이 배효산에게 보이는 태도는 부자라기보다는 같은 공간에 사는 낯선 사람에 가까웠다.또 하나 분명했던 건... 배효산이 주인정을 아내로 들인 일에 대해 은혁이 마음 깊이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었다.하지만 배효산은 아들의 감정을 고려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은혁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낮게 울렸다.[난 할아버지 손에서 컸어. 내가 의지한 사람도, 정붙이고 살았던 사람도 할아버지뿐이야. 할아버지가 지켜주지 않았다면, 배씨 집안 재산은 이미 주 여사가 다 가져갔을 거야.]서하는 집안의 사정을 자세히 알지는 못했다.하지만 주인정이 자신에게 던졌던 비아냥과 냉소를 떠올리면, 어린 은혁이 어떤 대접을 받았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배진국 회장이 없었다면, 주인정이 은혁에게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는 짐작이 갔다.그 생각에 서하 마음 한구석이 조용히 저렸다.[그러니까 서하야, 아버지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 내가 내리는 선택은, 전부 내 책임이야.]은혁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다시 말했다.[그리고... 앞으로 우리가 함께하게 된다면...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결혼을 다시 하게 되더라도 아버지랑은 같이 살 생각 없어.]말이 거기까지 가자, 은혁은 예전에 본가로 들어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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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퇴근 무렵, 주차장에서 서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보았다.민레나였다.레나는 서하의 차 옆에 서 있었다.꽤 오래 기다린 듯한 모습이었다.“이제 나오네.”레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신분이 많이 달라졌네. 대학 교수님이라니, 말만 들어도 그럴듯하더라.”지난번 예랑의 생일 파티 이후로 레나는 계속 은혁을 만나려고 했지만, 은혁은 단 한 번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주인정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어 은혁이 지금 서하를 다시 만나고 있다는 사실도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레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자신이 은혁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절대 서하에게 다시 돌아가게 둘 수 없다고.서하가 다시 명문가에 들어가 자기보다 더 좋은 삶을 살게 되는 모습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서하는 레나를 바라보며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지금 레나를 상대할 여유도, 기력도 없었다.“무슨 일이야?”서하가 물었다.“볼일 없으면 비켜. 차 빼야 해.”“이 차... 은혁 오빠가 사준 거지?”레나가 차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그렇게 깨끗한 척하더니, 예전에 은혁 오빠랑 결혼한 게 돈 때문이 아니라고 했잖아? 임서하, 지금 와서 그렇게 말하면 안 부끄러워?”서하는 작게 웃었다.“이 정도 차는 나 혼자 힘으로도 살 수 있어.”“이 차, 튜닝된 거야.”레나가 말했다.“개조 비용이 찻값보다 더 들어.”서하가 잠시 멈칫했다.레나는 알고 있었다. 은혁이 차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은혁이 가진 차들 대부분이 고급 튜닝을 거쳤다는 사실도.그리고 그렇게 개조한 차는 절대 남에게 주지 않는다는 것도.그런 차를 서하에게 줬다는 건, 은혁에게 서하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 명백한 증거였다.그 사실이 레나의 속을 떨떠름하게 뒤집어 놓았다. 가슴이 꽉 막혀 한숨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아, 그래?”서하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나중에 튜닝 비용은 배은혁한테 따로 보내주면 되지.”서하는 다시 물었다.“그리고 또 할 말 있어?”예전 같았으면, 레나가 아무 말이나 던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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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레나는 전화를 걸고 싶지 않았다.은혁은 애초에 레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하지만 서하가 레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숨기지 않은 조롱이 담겨 있었고, 그 시선을 마주한 레나는 결국 버티지 못했다.레나는 핸드폰을 꺼냈다.“그래, 걸어 보지 뭐. 네가 과연 은혁 오빠 앞에서도 아까 말한 것들 그대로 말할 수 있는지 보자.”레나는 번호를 눌렀다.심장이 위로 바짝 올라붙은 채 신호음이 한 번, 두 번 울렸다.은혁은 레나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레나의 얼굴이 점점 굳어 갔다.체면이 무너지자, 레나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은혁 오빠 지금 회의 중인가 봐. 그래서 전화 못 받는 거겠지.”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대신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냈다.[지금 바빠? 전화 가능하면 잠깐만.]메시지를 보낸 지 2초도 지나지 않아 서하의 핸드폰이 울렸다.서하는 레나가 보는 앞에서 전화받으며 스피커를 켰다.[임서하?]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은혁의 낮고 차분한 목소리.[무슨 일이야? 퇴근했어?]서하는 고개를 살짝 돌려 레나를 보았다.레나는 핸드폰을 꽉 쥔 채로 서 있었다. 속에서는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입으로는 애써 태연한 말을 내뱉었다.“그럴 수도 있지. 아까는 핸드폰을 안 들고 있었을 수도 있고.”서하는 돌려 말하지 않았다.“별일은 아니고, 방금 민레나가 너한테 전화했는지 그것만 물어보려고.”레나의 심장이 다시 크게 뛰었다.은혁은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이럴 때일수록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었다.[봤어. 받고 싶지 않아서 안 받았어. 근데 왜? 너는 어떻게 민레나가 나한테 전화한 걸 알아?]“민레나 지금 내 옆에 있어.”서하가 말했다.“민레나 말로는 당신이 전화를 못 받은 게 핸드폰이 옆에 없어서라던데.”민레나가 서하를 찾아갔다는 사실에 은혁의 미간이 단번에 좁아졌다.[민레나한테 전해줘. 나는 앞으로도 전화 안 받을 거야. 그리고 한마디 더. 당신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서하는 레나를 바라보며 말했다.“잘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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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서하는 차 쪽으로 걸어가 창문을 가볍게 두드렸다.은혁은 이미 기사에게 돌아가라고 했고, 차 안에는 은혁 혼자 있었다.아직 9시 전이라 서두르는 기색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서류를 보고 있었다.기척을 느낀 은혁이 고개를 들자 서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은혁은 바로 문을 열며 말했다.“벌써 내려왔어?”서하는 은혁이 내리기 편하도록 두 걸음 물러섰다.“몇 시에 왔어?”“방금 도착했어.”은혁은 거의 30분 가까이 기다렸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서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지만, 굳이 더 캐묻는 것도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피곤하지 않아?”서하가 먼저 물었다.“피곤하면 차 안에서 얘기해도 돼.”“난 괜찮아.”은혁이 말했다.사실 은혁은 차 안에 그대로 앉아 서하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둘만 있는 밀폐된 공간, 가까운 거리, 조용하고 사적인 분위기.하지만 동시에 서하와 함께 조금 걷고 싶기도 했다.단지 안을 걷다 보면 산책하는 부부나 연인들을 마주치곤 했고, 그럴 때마다 은혁은 그 사람들 속에 자신과 서하를 투영하곤 했다.서하가 막 말을 꺼내려는 순간,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한 서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무슨 일이야?”은혁이 물었다.“엄마야.”지난번 집에 갔을 때의 기억은 좋지 않은 감정만 남겼다.서하는 여전히 친정에 매달 돈을 보내고 있었다.임범철의 병원비는 계속 들어갔고, 서하는 그걸 외면할 수 없었다.아무리 상호에게만 마음이 기울어 있어도 부모는 부모였다.“잠깐 전화 좀 받을게.”서하는 그렇게 말하고 은혁에게서 몇 걸음 떨어져 전화받았다.“엄마.”[서하야!]노숙진의 목소리는 다급했다.[지금 어디야? 너 혹시 사천만 원 있어? 있으면 지금 엄마한테 보내줘.]서하는 순간 말을 잃었다.전화한 이유가 다른 것도 아닌 돈이었다.부모가 집을 팔았다는 사실을 서하는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왜 친딸인 자신이 친척 아이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이혼했다고 체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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