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내가 좋아하는 건, 내가 내 돈으로 사.”은혁은 무언가 덧붙이고 싶어 입을 뗐다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다물었다.대신 담담하게 말했다.“좋아. 당신이 직접 사.”짧은 정적이 흘렀다.서하는 몇 초 동안 말이 없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아까 전화는... 엄마였어.”“무슨 일인데?”서하가 먼저 얘기를 꺼낼 줄 몰랐던 은혁은 바로 반응했다.“상호가 또 사고 치고 돈이 필요하대.”서하는 자조하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 말에 은혁의 머릿속에 예전 일들이 스쳐 갔다.그때도 상호가 돈을 요구했고, 은혁은 서하를 붙잡으려고 그녀에게 일부러 갚으라고 말했었다.지금 떠올려 보면, 너무 선명해서 어제 일 같다.하지만 현실은 이미 이혼한 지 3년.많은 시간이 흘렀다.“내가 집을 나온 뒤로, 엄마 아빠는 단 한 번도 나한테 관심 가진 적 없어. 마치 내가 그 집 딸이 아니었던 것처럼.”서하의 눈가가 붉어졌다.“가끔은... 세상에 어떻게 그런 부모가 있을 수 있나 싶어.”은혁은 원래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런데도 무언가 말해야 할 것 같아, 마음속을 뒤져가며 간신히 입을 뗐다.“잘못한 건 그쪽이야. 당신 같은 딸 두고도 모르고 사는 거면, 그건 부모가 잘못된 거지.”서하는 은혁을 쳐다보며 말했다.“내 부모나, 당신 아버지나... 다 거기서 거기니까. 그러니까 당신도 너무 마음 쓰지 마.”은혁은 멍하니 서하를 보다가 뒤늦게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챘다.서하가 자기 부모 이야기를 꺼낸 건, 사실 은혁을 위로하려고 한 것이었다.서하는 원래 누군가를 위로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친구들에게는 언제나 참을성과 따뜻함을 보였다.하지만 은혁을 위로하는 건 쉽지 않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결국 자기 부모를 예로 든 것뿐.서하의 부모에 비하면, 배효산은 그나마 덜한 편일지 모른다. 최소한 서하의 부모처럼 노골적으로 방치하지는 않았으니까.은혁은 서하를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난 괜찮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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