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의 모든 챕터: 챕터 421 - 챕터 430

589 챕터

제421화

[우리 그런 얘긴 나중에 하고, 서하야. 일단 돈부터 보내...]전화기 너머 노숙진의 목소리가 들렸다.“엄마, 혹시 상호가 뭐만 하면 무조건 다 받아주는 거예요? 설령 사고 치고, 엉망으로 살아도요?”서하의 말이 아주 차갑게 울렸다.[네 동생한테 어떻게 그렇게 말하니?]노숙진의 목소리는 불쾌함으로 가득했다.“저도 제 돈 쉽게 버는 거 아니에요. 이번 부탁은 못 들어드립니다.”말을 끝내자 서하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숨을 들이쉬고, 코끝을 훅 들먹였다. 손등으로 눈가를 아주 빠르게 훔쳤다.‘울지 마. 울 이유도 없어.’‘이미 3년 전부터 부모님이 나한테 얼마나 냉정한지 똑똑히 알았잖아.’그때 뒤쪽에서 은혁의 목소리가 들렸다.“무슨 일 있었어?”조금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던 은혁은 통화 내용은 정확히 들리진 않았지만, 서하의 표정과 어조를 보며 분위기가 좋지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서하가 전화 끊는 걸 보고 다가왔다.“별일 아냐.”서하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고 은혁을 돌아봤다.“결정했어? 걷고 싶어, 아니면 앉아서 얘기할래?”“앉자.”은혁은 몇 걸음 앞으로 가서 서하 쪽 차문을 열어줬다.“여기가 좀 조용하니까.”둘이 이야기하기에 적당한 공간이었다.둘은 나란히 뒷좌석에 앉았다. 넓은 고급 세단의 뒷좌석은 답답함 없이 여유로웠다.서하가 통화 얘기를 꺼내지 않자, 은혁이 먼저 말을 돌렸다.“민레나가 당신한테 뭐라고 했어? 딱히 다른 말은 없었지?”서하는 고개를 저었다.“없어. 그런데 몇 번을 강조하더라. 구예랑이 당신 첫사랑이라고.”“그 말 절대 믿지 마!”은혁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그런 식으로 말할 상황이 아니었어. 사실이 아니야.”“응.”서하는 조용히 말했다.“당신 말 믿어.”“고마워.”은혁은 긴장이 풀린 듯 숨을 길게 내쉬었다.“어쨌든 민레나가 뭐라고 해도 듣지 마. 다 엉터리야.”서하는 살짝 웃었다.“응, 안 믿어.”은혁은 잠시 서하를 바라보다가 물었다.“혹시... 예전에 민레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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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2화

서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내가 좋아하는 건, 내가 내 돈으로 사.”은혁은 무언가 덧붙이고 싶어 입을 뗐다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다물었다.대신 담담하게 말했다.“좋아. 당신이 직접 사.”짧은 정적이 흘렀다.서하는 몇 초 동안 말이 없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아까 전화는... 엄마였어.”“무슨 일인데?”서하가 먼저 얘기를 꺼낼 줄 몰랐던 은혁은 바로 반응했다.“상호가 또 사고 치고 돈이 필요하대.”서하는 자조하는 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 말에 은혁의 머릿속에 예전 일들이 스쳐 갔다.그때도 상호가 돈을 요구했고, 은혁은 서하를 붙잡으려고 그녀에게 일부러 갚으라고 말했었다.지금 떠올려 보면, 너무 선명해서 어제 일 같다.하지만 현실은 이미 이혼한 지 3년.많은 시간이 흘렀다.“내가 집을 나온 뒤로, 엄마 아빠는 단 한 번도 나한테 관심 가진 적 없어. 마치 내가 그 집 딸이 아니었던 것처럼.”서하의 눈가가 붉어졌다.“가끔은... 세상에 어떻게 그런 부모가 있을 수 있나 싶어.”은혁은 원래 위로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런데도 무언가 말해야 할 것 같아, 마음속을 뒤져가며 간신히 입을 뗐다.“잘못한 건 그쪽이야. 당신 같은 딸 두고도 모르고 사는 거면, 그건 부모가 잘못된 거지.”서하는 은혁을 쳐다보며 말했다.“내 부모나, 당신 아버지나... 다 거기서 거기니까. 그러니까 당신도 너무 마음 쓰지 마.”은혁은 멍하니 서하를 보다가 뒤늦게 그 말의 의미를 알아챘다.서하가 자기 부모 이야기를 꺼낸 건, 사실 은혁을 위로하려고 한 것이었다.서하는 원래 누군가를 위로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었다. 친구들에게는 언제나 참을성과 따뜻함을 보였다.하지만 은혁을 위로하는 건 쉽지 않았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결국 자기 부모를 예로 든 것뿐.서하의 부모에 비하면, 배효산은 그나마 덜한 편일지 모른다. 최소한 서하의 부모처럼 노골적으로 방치하지는 않았으니까.은혁은 서하를 보며 목소리를 낮췄다.“난 괜찮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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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3화

그 후 흘러간 3년이라는 시간은 은혁에게 완전히 놓쳐버린 시간이었지만, 앞으로의 하루하루를 더는 허투루 흘려보낼 생각이 없었다.은혁이 그 말을 하고 나자 차 안이 조용해졌다.서하는 어쩐지 불편해진 듯,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정리했다.은혁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사과는 내가 해야지. 예전에 내가 잘못한 게 많아. 나한테도 다시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다 지난 일이야. 이제 그 얘긴 하지 말자.”“그래.”은혁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그럼 어머니가 전화하신 건... 어떻게 할 생각인데?”“아직 생각 못 했어.”서하는 힘없이 웃었다.“아마 결국엔 또 돈 보내겠지. 아무리 그래도... 엄마니까.”그 말엔 체념이 섞여 있었다. 서하는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사람이다. 아무리 상처받아도, 결국 손을 내미는 쪽은 늘 서하였다.“돈이 모자라면...”은혁의 말은 원래 다르게 나오려다, 부드럽게 방향을 틀었다.“내가 빌려줄게.”“고마운데, 괜찮아. 나 그 정도는 있어.”서하는 고개를 저었다.“전에 이미 당신한테 너무 많은 민폐를 끼쳤어.”“민폐는 무슨.”은혁은 바로 반박했다.“그때는... 나도 당신 가족한테 잘 보이고 싶었어. 나중에 당신한테 돈 갚으라 한 것도, 그냥 당신 붙잡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거였어. 당신이 날 떠나지 못하게 하려고.”서하는 작게 웃었지만, 그 웃음은 어쩐지 씁쓸했다.“지금 생각하면, 우리 둘 다 진짜 쓸데없이 입이 너무 무거웠어. 그렇게 오해할 일만 쌓아놓고도, 한 번도 서로에게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그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지.”“앞으론 그러지 말자.”은혁은 힘 있게 말했다.“서로 잔소리 좀 해도 되고, 뭐든 바로 말하자. 오해 생기면 바로 풀고. 숨기지 말고.”그가 ‘앞으로’라는 단어를 쓸 때, 서하는 말없이 창밖을 보았다.‘앞으로의 일이라니... 그걸 누가 장담해.’시간을 확인해 보니 거의 밤 열 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서하는 슬슬 일어설 준비를 했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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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4화

[화내는 건 당연하지.]소진이 단정하듯 말했다.[아마 그걸로 너 협박할걸. 다시 같이 살자, 이런 식으로.]“내가 말할까 말까 고민한 것도 그 때문이었어.”서하가 침대에 기대며 말했다.“내가 인정하긴 하지만... 난 아직도 배은혁 같은 스타일 좋아해. 근데 예전에 살던 방식이 내게 남긴 그림자가 너무 커. 우리 둘이 앞으로 제대로 소통하자고 말은 했지만, 말이랑 행동은 완전히 다른 거니까.”소진은 빨대로 마지막 한 모금의 쥬스를 마시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그건 누구도 장담 못 하는 거야. 결혼도 마찬가지잖아? 네가 결혼한다고 해도, 그 남자가 절대 문제없는 사람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어?]서하는 피식 웃었다.“그 말도 맞네.”말이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이 진동했다.서하는 화면을 내려다보았다.은혁이었다.딱 한 문장.[서하야.]이름만 적힌 메시지.다른 말은 없었다.“내 생각에 배은혁이 알았나 봐.”서하가 말했다.“근데 내가 오늘 밤에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 혹시 연락 오면... 나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소진이 바로 말했다.[그게 정상 반응이지. 갑자기 자기한테 아들이 있었고, 그것도 두 살 넘었다? 누가 안 미치겠냐고.]“미치는 정도까진... 아니지 않을까.”[음, 사람에 따라 다르지.]소진은 쿡 하고 웃었다.[야, 나 배고프다. 뭐 좀 먹어야겠다.]서하는 의아해했다.“방금까지 쥬스 마셨다며. 이 밤중에 또 먹는다고? 이 닦는 거 잊지 마라. 쥬스 엄청 치아 상한다고.”[알았어.]소진이 대답했다.[나 방금 매운닭발 시켰어. 금방 도착했는데 갑자기 너무 당기네. 너도 먹을래? 지금 와서 같이 먹자.]서하는 웃음을 터뜨렸다.“됐어, 너 혼자 먹어. 그리고 술 너무 마시지 말고.”소진은 매운닭발만 먹으면 맥주를 찾는 편이었다.[집에 술 없어. 그냥 쥬스랑 먹을 거야.]“그럼 됐고.”서하는 몇 마디 더 주고받다가 통화를 끊었다. 핸드폰 화면에 남아 있는 은혁의 이름을 보며 망설이다가 짧게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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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5화

“밤새 여기 있었던 거야?”서하는 걷던 속도를 높였다. 가까이서 보니 은혁의 거칠어진 얼굴엔 짧은 수염이 올라와 있었다.그게 오히려 성숙한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그가 이 아래에서 밤을 지새웠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었다.“많이 지저분해 보이지?”서하의 시선이 머무는 걸 느낀 은혁이 턱을 쓰윽 만졌다.“어제 내가 너무... 흥분해서. 그래서 못 갔어.”현실 같지 않아서 은혁은 자신이 집에 돌아가면 새로 알게 된 사실이 사라질까 봐 걸음을 떼지 못했다.무엇보다 그 서류.이한의 진짜 출생일.정확한 임신 주수까지 몰라도, 계산은 됐다.그 아이는 둘이 이혼하기 전에 생긴 아이였다.하지만 그때 서하는 분명히... 임신중절수술을 받았다고 했다.그럼 거짓말은 둘 중 하나였다.방사선에 노출됐다는 그 말이 거짓이었거나 임신중절수술 자체가 거짓이었거나.그러나 지금 은혁은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머릿속에 꽉 들어찬 건 오직 하나였다.임서하가 배은혁의 아이를 낳았다.그리고 몇 년을 혼자 키웠다.그 아이는... 둘의 아이였다.서하는 은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아니, 사랑이 더 깊었다.그렇기에 혼자 감당했고, 혼자 키웠다.그 사실은 은혁의 머릿속을 한밤중 내내 뒤흔들었다.숨도 안 쉬어질 정도였다.‘혹시 서하가 농담으로 나를 놀리려고 한 건 아닐까?’‘혹시 진짜가 아니면...’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이 끝없이 올라왔다.서하가 오늘 밤 연락하지 말라고 했기에 은혁은 묻고 싶은 걸 참아야 했다.억누르고 눌렀다.그는 서하를 보자마자 쏟아질 질문이 수도 없이 많았는데, 막상 눈앞에 서하가 나타나자 말문이 막혔다.서하는 조용히 말했다.“지저분하진 않아. 근데 잠 안 자고 버티면 힘들잖아.”“힘들지 않아.”은혁은 그녀만 바라봤다.“나한테 보여준 그 서류... 진짜야?”서하는 예상은 했던 듯, 또는 은혁이 믿기 어려워할 거로 생각했던 듯 고개를 끄덕였다.“응. 진짜야.”그 말을 듣는 순간, 은혁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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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6화

이제 서하는 아이가 두 살이 넘도록 혼자 키웠다.그 사실만 떠올려도 은혁의 가슴은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숨을 제대로 들이마실 수 없을 만큼.은혁은 서하를 너무 세게 안고 있어서 서하는 약간의 갑갑하고 답답했다.그래도 움직이지 않았다.서하의 목덜미를 타고 따뜻한 액체가 흘러내렸다.은혁의 눈물이었다.예전의 서하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은혁 같은 사람이 사랑에 빠지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더구나 그 사랑이 자신을 향한 것이라면.하지만 지금 그녀는 이미 두 번이나 은혁의 눈물을 직접 느꼈다.사람들은 말한다.남자는 쉽게 울지 않는다고.아무리 힘들어도 버티고 버틴다고.하물며 은혁 같은 성격의 사람이 그렇게 눈물을 보인다는 건...그만큼 마음이 무너졌다는 뜻이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서하는 다리가 저리기 시작했다.작게 몸을 움직이자 은혁이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급히 팔을 풀고 넘어질까 봐 서하를 잡아줬다.“미안...”은혁은 한발 물러났다.서하의 시선과 마주치자 급하게 눈을 피했다.붉게 충혈된 눈, 속눈썹 끝에 매달린 눈물방울.은혁은 어색하게 목을 움직였다.많은 말이 차올랐지만, 입 밖으로 나온 건 단 세 글자였다.“미안해.”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사실... 미안한 건 나야. 그때는... 사정이 있었어.”서하는 그동안 숨겨온 모든 걸 하나부터 열까지 말했다.이번엔 피하지도 않았고, 돌려 말하지도 않았다.그때 자신도 정말로 두려웠다고.혹시 진짜로 방사능에 노출된 건 아닐지 죽을 만큼 걱정했다고.그 상황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위험이었다.아이에게 어떤 영향이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었다.그래서... 그래서 아이를 포기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말해야 은혁이 그녀를 미워할 것이고 떠나게 될 거로 생각했다.그러면 은혁도 편할 테니까.하지만 사건 당일, 화공 공장의 방사능 기계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서하는 자신이 살면서 받은 어떤 축복보다 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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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7화

은혁은 꿈에서도 상상 못 했던 일을 지금 눈앞에서 마주하고 있었다.이전까지는 신이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했다.맞다, 좋은 집안과 외모를 줬다.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나?정작 가장 좋아했던 여자를 지키지도 못했는데...그런데 지금 그는 신에게 정말 고마웠다.너무 크게 돌려준 것 같았다.하지만 그 모든 행복은 서하 혼자서 버틴 외로움과 고통 위에 쌓인 것이었다.“나한테 ‘미안하다’라고 할 필요 없어.”은혁은 또 껴안고 싶은 충동을 눌러가며 말했다.“서하야, 미안한 건 나야.”“우리 그냥 서로 사과하지 말자.”서하는 부드럽게 웃었다.“내가 지난 일 다 끝났다고 하면... 정말 끝난 거야.”“알았어.”은혁은 손목의 시계를 내려다봤다.“지금 학교 가는 거야?”“응.”서하가 말했다.“집에 가서 자. 한숨이라도 자야지.”“그래.”서하가 혹시 그가 회사에 바로 가려나 걱정했는지 덧붙였다.“밤새 한숨도 못 자면 아무리 튼튼한 사람도 버티기 힘들어. 당신은 집에 가서 푹 쉬어. 저녁에... 혹시 아이랑 같이 밥 먹고 싶으면 다시 와.”“정말 가도 돼?”은혁의 눈이 반짝였다.“당신... 신경 안 쓰는 거 맞지?”“내가 뭘 신경 써.”서하는 담담했다.“신경 쓸 거였으면 애초에 당신한테 말도 안 했지.”“그래... 그래.”은혁은 말이 꼬일 정도로 들뜬 목소리였다.“그럼 나 쉬고, 오후에 연락할게.”“응. 나 간다.”서하의 차가 떠나는 걸 보고서야은혁도 움직일 줄 알았는데, 그는 그대로 서 있었다.그리고 또 30분.조경이 이한의 손을 잡고 나왔다.은혁은 차에서 내리지 못했고, 멀리서 바라보고만 있었다.그 아이.작은 몸.걸음걸이.표정.모두 자기 아이였다.자신과 서하의 아이.은혁의 눈앞이 다시 흐려졌다.혈연이라는 건 정말 신기했다.처음 봤을 때부터 끌렸던 이유가 있었다.자신과 무관한 아이라 생각했을 때도 이상하게 정이 갔다.알고 보니... 자기 아이였다.정신을 차렸을 때, 조경과 이한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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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8화

30분 뒤, 두 사람은 병원을 나왔다.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운전해 소진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왔다.차 안에서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다.서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이 아이는 선우의 아이라는 걸.아마 지난번 선우가 잠깐 귀국했을 때 생긴 아이겠지.하지만 소진이 이 아이를 원할지, 서하는 도무지 짐작할 수 없었다.서하로서는 소진에게 이 아이를 낳으라고 하고 싶었다.그리고 가능하면 선우와 결혼해서 둘이 함께 아이를 키우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 될 것이다.‘혼자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아니까.’서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그래서 단순히 친구라서가 아니라 그 고단한 시간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소진은 이 아이를 원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아니, 거의 확실했다.이전에도 소진은 여러 번 말했다.자기는 아이 같은 거 낳지 않을 거라고.그리고 무엇보다 소진과 선우 사이에는 풀리지 않은 문제들이 너무 많았다.그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둘이 같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소진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서하는 가는 내내 입도 못 떼고 있었다.집에 도착하자 서하는 소진을 소파에 눕히듯 앉히고 물도 떠 오고, 쿠션도 등에 받쳐주고, 배고픈지 물어보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계속 움직였다.소진은 쿠션에 기대어 늘어지듯 앉아 있었다.“됐어. 너 너무 바쁘게 움직이지 마.”소파 옆에 앉은 서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보며 소진이 피식 웃었다.“우리 그동안 피임 계속하고 있었잖아. 이번엔... 내가 좀 방심했지. 하선우가 급하게 와서... 나도 정신없었고, 사후피임약 먹는 걸 잊어버렸어. 근데 이게 된 거지.”“소진아...”서하는 어렵게 입을 뗐다.“이 아이... 낳고 싶어?”소진은 단칼에 잘랐다.“말도 안 돼. 내 인생 계획에 애는 없어. 임신해서 아홉 달 넘게 배에 품어야 하고, 낳고 나서도 끝이 아니잖아. 그럼 내 사업은? 애 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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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9화

서하는 원래 요리를 못 했다.조경이 집에 없으면, 먹고 싶어도 방법은 배달뿐이었다.하지만 지금은 입맛 자체가 사라졌다.소진의 일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며 가슴을 꽉 막은 듯 답답했다.그래도 소진이 걱정할까 봐, 서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나 지금은 배 안 고파. 좀 있다가 먹을게.”“그래.”소진은 힘없이 대답했다.“너 침대에 가서 좀 누워.”서하가 말했다.“저녁엔 이모님한테 죽 좀 끓여달라고 해. 나 원래 오늘 배은혁이랑 저녁 약속 있었는데...”“나 신경 쓰지 마.”소진이 잘랐다.“이모님이 죽만 끓여주면 돼. 먹고 나면 바로 갈 거야.”“왜 가?”서하가 단호하게 말했다.“배은혁이랑 밥 먹는 건 내일로 미뤄도 되지. 중요한 것도 아니잖아. 너 혼자 이대로 보낼 수 없어. 안심이 안 돼.”“내가 뭐가 불안하다고 그래.”소진은 억지로 웃었다.“나 완전 강철 멘탈 여자야.”“아프면 다 그냥 ‘환자’야.”서하가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무조건 말 잘 들어. 그냥 못 가.”“알았어...”소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 잠깐 누워 있을게.”그녀가 일어나 안방 쪽으로 걸어가려는데, 서하가 급히 불렀다.“소진아.”소진이 돌아봤다.“왜?”서하는 잠시 망설인 후 물었다.“너 정말... 단 1초도, 이 아이를 낳을 생각 안 해봤어?”“난 너 후회할까 봐 걱정돼.”소진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후회 안 해. 이건 내 선택이야.”그 말을 끝으로, 소진은 안방으로 들어갔다.서하는 멍하니 소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소진은 키가 크고, 마른 편이고, 어깨와 등은 생각보다 더 가늘었다.그녀는 평소엔 웃고 떠들고 활력이 넘쳤는데 오늘은 말수가 줄었고, 무겁고 깊은 느낌이 들었다.서하는 시선을 거두고, 소파에 푹 파묻히며 이마를 짚었다.머리가 지끈거렸다.‘내가 대신 결정해 줄 수도 없고...’‘억지로 마음 바꾸게 할 수도 없고... 정말 아깝다.’서하는 자신이 이혼 직전에 임신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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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0화

서하는 조용히 말했다.“알았어, 고마워.”[내가 더 고맙지. 당신 혼자서 이한이를 이렇게 잘 키워줘서.]은혁의 목소리는 다시금 떨렸다.[서하야... 정말 고생 많았다.]“괜찮아.”서하는 시계를 한 번 확인한 뒤 물었다.“당신은 안 자? 밥은 먹었어?”[방금 일어났어. 이제 먹으려고.]“그럼 얼른 먹어. 내가 이한이 오감놀이 수업 장소 찍어서 보내줄게. 그리고 조경 이모님 번호도 같이 보낼게.”[응. 알았어.]서하가 전화를 끊으려는데, 은혁이 다시 불렀다.[한 대표... 괜찮아?]서하는 잠시 멈칫했다.은혁이 곧 설명했다.[한 대표가 당신 친구잖아. 그래서 그냥 물어본 거야.]소진의 상황을 은혁에게 말할 수는 없었다.서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괜찮아. 몸이 좀 안 좋아서... 지금 우리 집에 있어.”[그래? 다행이다.]그제야 통화가 끝났다....은혁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연애 상담서에서 봤던 말들이 떠올랐다.‘여자친구의 절친과는 적당한 거리 유지.’‘하지만 너무 무심해도 안 됨.’적당한 거리라는 게 도대체 얼마나 적당한 건지... 은혁으로서는 계산조차 어려웠다.‘이게 뭐 이렇게 어려워... 수백억짜리 프로젝트보다 더 복잡하네.’얼마 지나지 않아 은혁의 머릿속을 다른 생각이 꽉 채웠다.‘오늘 오후에 이한이 데리러 가야지.’지난번에는 아이가 자기 아들이라는 걸 몰랐기에 그냥 자연스럽게 놀아줄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날 이한과 함께 보낸 짧은 시간조차 가슴이 벅차오를 만큼 소중했다.서하는 정말 아이를 잘 키웠다. 예의 바르고, 말도 곧잘 하고, 사람과의 소통 능력도 뛰어났고, 애교도 많았다.‘내가 키웠다면... 저렇게 잘 키울 수 있었을까.’문득 은혁은 오늘 옷차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지난번엔 편한 복장.그런데 정장 입고 가면 너무 딱딱해 보일까?이한이 무서워하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있었지만,결국 그는 결론 내렸다.‘그냥 캐주얼로 가자.’하지만 옷장을 열어보니 캐주얼한 옷이 별로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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