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이면, 줄 거다.”은혁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단, 당신 양심에 괜히 찔리지 않는다는 전제하에.”“내가 왜 찔려?”서하는 더는 말싸움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난 찔릴 일 없어. 그리고 당신 걸 탐내지도 않아. 그건 당신이 번 돈이지, 나랑은 상관없으니까.”“임서하.”은혁의 눈빛이 곧장 서하를 파고들었다.“부부의 의미가 뭔지는 알아?”‘알지. 하지만 우리가 부부였던 건, 이름뿐이었어.’서하는 고개를 들고 담담히 대답했다.“아마... 우리 시작 자체가 잘못이었을 거야.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그 말에, 기억이 저절로 떠올랐다.막 결혼했을 때, 그때의 서하는 설렘과 기대를 품고 있었다.낯선 남자와의 거리가 두려웠지만, 결혼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 했다.‘내가 두려웠던 건... 사실 열등감 때문이었지.’‘배은혁의 세계는 언제나 높았어. 난 그저 그 자리에 끼어든 이방인일 뿐이었고.’은혁이 곁에 둔 건 언제나 재벌가 딸들이었고, 서하는... 얼굴 말고는 내세울 게 없는 여자였다.누구라도 ‘임서하가 남자 잘 잡았다’라고 수군댔을 것이다.그래서였을까... 서하는 늘 조심스러웠다.숨죽이며 살았다.서하가 자신의 모습을 잃고 살았던 단 하나의 이유는 바로 은혁에 대한 사랑이었다.사랑했으니까... 사랑하니까 불안했고, 사랑하니까 두려웠고, 결국 사랑하니까 은혁을 미워하게 되었다. 그 길 끝에 지금의 서하가 있었다.이제 서하는 알았다. 자신이 놓아야 한다는 걸...‘이제 끝내야 해. 다시 내 인생을 살아야지.’‘내가 좋아하던 물리와 화학, 내가 가고 싶던 길. 거기에 내 전부를 쏟을 거야.’‘다시는 사랑이라는 두 글자에 목매지도, 묶이지도 않을 거야.’‘아니, 어쩌면 먼 훗날...’‘진정으로 존중하고, 아껴주고, 한결같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겠지.’‘하지만 배은혁과 임서하로는 더는 안 되겠어!’서하는 은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다시 돌아간다면, 난 당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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