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Chapter 101 - Chapter 110

192 Chapters

제101화

서하는 미치도록 화가 났다. 하지만 은혁의 기세를 보아하니, 오늘 여기서 나갈 생각은 전혀 없어 보였다.그렇다고 해서 같은 침대에서 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게다가 은혁의 옷은 홀딱 젖어 있었고, 덩달아 소파까지 축축해졌다.서하는 몸이 몹시 피곤했는데, 잘 곳마저 없으니 더 짜증이 났다.결국 서하는 옆에 있는 1인용 소파에 털썩 앉았다. ‘이대로 대충 버티고 자면 되겠지.’그렇게 생각하면서.하지만 앉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은혁이 침실에서 걸어 나왔다.“뭐 해? 아직 안 쉬어?”“당신이 내 침대를 차지했잖아. 내가 어디서 쉬어?”은혁은 소파 옆에 서서 서하를 내려다보았다.“이제... 나랑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도 싫어?”“우리 이혼할 거야.”“아직 안 했어.”“난 당신이랑 같은 침대에서 자고 싶지 않아.”서하는 고개를 들어 은혁을 똑바로 보았다.“전에도 싫었고, 지금은 더 싫어.”은혁은 아무 말 없이 서하를 바라보기만 했다.서하는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오늘 밤은 그냥 넘어가. 내일 아침 일찍 옷이나 가져오라고 해.”말을 마친 서하는 눈을 감았다. 더 이상 은혁에게 말도 걸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서하의 몸이 허공으로 확 들려 올라갔다.서하는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반사적으로 무언가를 붙잡았고, 눈을 뜨자 은혁의 품 안이었다.서하는 은혁의 목을 감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숨이 막힐 정도로 당황했다.은혁은 그대로 서하를 안은 채 침실로 향했다.“배은혁!!”서하는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하지만 은혁의 두 팔은 마치 강철처럼 단단했고, 흔들리지도 않았다.서하의 힘은 은혁 앞에서 그야말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침대 옆에 선 은혁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계속 움직이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 나도 몰라. 생리 중이면 어때?”서하는 씹어 삼킨 욕을 눈으로 퍼붓듯 은혁을 노려봤다.은혁은 한숨처럼 말 이어갔다.“얌전히 있으면 그냥 자는 거야. 늦었어. 그만 좀 해. 나도 피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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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서하의 귀끝이 더 간질거렸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두어 번 끙 하고 소리를 내며 이불을 뒤집어쓰려고 손을 들었다.하지만 바로 몸 위로 무게가 덮쳐왔다.그리고 눈을 뜨기도 전에 남자가 서하의 입술을 막아버렸다.은혁의 입술이 거칠게 내려앉았고, 혀가 파고들어 서하의 혀를 휘감았다.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안 깨어나면, 그건 그냥 인형이나 마찬가지다.“읍...읍!”서하는 본능적으로 은혁의 어깨를 밀어냈다.그러나 두 손목은 금세 붙잡혀 머리 위로 제압됐다.서하가 크게 몸부림치자, 은혁이 입을 떼며 낮게 말했다.“계속 움직이면... 키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야.”서하가 딱 멈추자 은혁은 다시 고개를 숙여 입술을 맞췄다.그녀는 거부 할 수는 없어도 협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서하는 이 끔찍한 키스가 끝도 없이 이어질 거로 생각했다.어쩌면 은혁이 짐승처럼 변해버릴지도 모른다고.그런데 예상보다 훨씬 빨리, 은혁은 갑자기 서하를 풀어줬다.그리고 서하를 쏘아보듯 매섭게 한 번 바라보곤, 일어나 욕실로 들어가 버렸다.곧 샤워기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배은혁, 몸이 반응해서 스스로 미치겠으니까 찬물로 식히는 거야?’‘꼴 좋네. 자업자득이지!’서하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얼른 몸을 일으켜 옷을 챙겨 입고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나갔다.피곤은 여전히 쏟아졌고, 그녀는 1인용 소파에 몸을 구겨 넣자마자, 은혁이 곧 어떻게 나올지 생각할 틈도 없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한편 은혁은 새벽부터 뜨거운 키스를 해놓고도 정작 서하를 어떻게 해보지 못하는 바람에 몸 안이 활활 달아올랐다.결국 서하를 더 건드리게 될까 봐, 다시 차가운 물로 샤워할 수밖에 없었다.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나온 은혁은 소파에 웅크린 서하를 발견했다.작은 머리가 조그맣게 끄덕끄덕, 마치 병아리가 모이를 쫄깃쫄깃 쪼는 것처럼 졸고 있는 모습이 귀엽고 어딘가 좀 멍청하게 보였다.서하는 은혁 앞에서 늘 차갑고, 단정하고, 요즘엔 짜증내는 일도 많았다.은혁은 이런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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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그때 은혁은 아직 옷도 입지 않은 상태였다.상반신은 완전히 드러난 채였고, 아래에는 겨우 욕실 타월 하나만 걸쳐져 있었다.서하가 은혁의 무릎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자, 타월이 슬그머니 풀려버렸다.고개를 아래로 내리는 순간, 서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서하는 남자의 가슴에 손을 짚고 밀어내며 외쳤다.“배은혁!”손바닥 아래로 느껴지는 남자의 가슴도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마치 뜨거운 몸에 데인 듯한 손을 재빨리 거둬들이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하지만 은혁은 서하의 허리를 움켜쥐고 꼼짝도 못 하게 잡았다.겨울이라 해도 실내 난방은 빵빵했고, 서하의 집에서 입는 홈웨어는 보수적이긴 했지만 얇았다.그 얇은 천 위로 전해지는 은혁의 뜨거운 손바닥에 서하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당신 뭐 하는 거야?”서하의 목소리는 더 날카로워졌다.“놓으라고!”“어제 말했잖아. 오늘 이혼합의서 얘기한다고.”은혁의 느긋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목소리는 서하 귀에 유난히 거슬렸다.왜 이 남자는 언제 어디서든 침착하고, 여유롭고, 단정한 걸까?그럴수록 서하는 자신만 초라해지는 것 같아서 더 미웠다.“그래, 우리가 얘기하는 건 ‘이혼합의서’라고!”서하는 이를 악물고 노려보았다.“이혼하는 사이에서 이렇게 붙어 앉아 있는 게 말이 돼?”은혁은 고개를 낮춰 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래서 아직 얘기 중이지, 이미 이혼한 게 아니라.”서하는 크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배은혁, 당신 무슨 조건 있어?”“조건?”“이혼합의서에 사인 안 하는 이유. 내가 꼭 받아줘야 할 조건 있는데, 그게 말하기 애매해서 끌고 있는 거 아니야?”은혁은 미동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없어.”서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그럼 일부러 괴롭히는 거야?”“내가 왜 당신을 괴롭혀?”은혁은 차분하게 말했다.“난 그냥... 이혼하기 싫어.”서하는 멍해졌다.며칠 전 은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결국 경제적 문제 때문에 주식 변동을 신경 쓰는 것 같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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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은혁의 하반신을 감싼 타월은 이미 풀린 지 오래였다.그대로 벌떡 일어서니, 사실상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로 서하 앞에 적나라하게 서 있게 된 셈이었다.“뭘 그렇게 부끄러워해.”은혁은 태연하게 타월을 다시 허리에 감았다.“처음 보는 것도 아니잖아.”서하는 부끄러워하기 싫었지만 얼굴이 제멋대로 달아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은혁은 주방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서하 옆을 지나칠 때 고개를 숙여 서하의 귓가에 나지막하게 속삭였다.“보기만 한 것도 아니고... 만지기도 했잖아, 우리.”서하 머릿속에서 무언가 폭발했다.‘이 미친 개XX...!’은혁은 말만 던지고 주방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잠시 뒤 투덜거리듯 말했다.“냉장고가 왜 이렇게 텅텅 비었어.”그리고는 핸드폰을 들어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서하는 정신을 가다듬고 말했다.“당신 옷도 챙기라고 해.”그러자 은혁은 핸드폰 너머로 말했다.“내 옷도 몇 벌 가져와.”‘몇 벌?’‘무슨 뜻이야?’서하는 곧장 은혁을 쏘아보았다.‘여기서 지낼 생각이야?’‘꿈도 꾸지 마라!’비서는 금방 도착했다.은혁이 상반신을 드러낸 채라 문을 열 수도 없었고, 서하는 비서를 집 안으로 들일 수 없어 문 앞에서 비서가 가져온 봉지를 받아 들고 감사 인사를 했다.봉지는 두 개였다.하나는 과일과 채소, 다른 하나는 은혁의 옷.서하는 채소와 과일이 든 봉지를 은혁에게 건네고, 은혁의 옷들은 꺼내 하나하나 살펴본 뒤 한 벌만 골라서 주었다.나머지는 다시 봉지에 넣어 현관 앞에 내려놓았다.나갈 때 들고 가라는 뜻이었다.은혁은 주방으로 돌아가 계란을 깨고, 햄을 굽고, 반죽을 만들어 계란지단처럼 부쳤다.그 위에 계란, 햄, 양상추를 올리고 소스를 발라 돌돌 만 후 접시에 올렸다.“이게 금방 되니까. 배고프다며? 우선 이걸로 때워. 다음엔 제대로 해줄게. 코스요리로.”그렇게 말하며 은혁은 접시를 서하 앞으로 내밀었다.서하는 내려다보며 깜짝 놀랐다.은혁에게 이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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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서하는 곧장 말했다.“나는 아무 의견도 없고, 아무것도 바라지도 않아. 당신 돈도, 지분도, 집도, 차도, 귀금속도 전부 필요 없어. 그러니까 이혼합의서는 아주 쉽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네가 생각하는 만큼 단순하지 않아.”은혁은 커프스를 고쳐 끼고 외투까지 정돈해 입었다.“그럼 그렇게 알고 있어. 저녁에 데리러 올게. 나가서 밥 먹자.”서하는 말없이 은혁을 바라보기만 했다.그러자 은혁이 갑자기 다가와 고개를 숙여 서하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기다려.”문이 닫힌 뒤에도 서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한참이 지나서야 현실로 돌아왔다.‘배은혁... 미쳤나?’‘아니면 누가 자극이라도 준 거야?’‘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데 이 인간이 이렇게까지 이상하게 굴어?’서하는 오후에 공장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며칠째 시현이 계속 같이 가자고 했지만, 서하는 매번 거절했다.사실은... 함께 가기 싫어서였다.어제도 일부러 기중환 교수에게 부탁했다.자신의 이혼 이야기는 절대 시현에게 말하지 말아 달라고.‘하지만... 이건 오래 숨기긴 어렵겠지.’‘몰라, 오면 오는 대로 막지 뭐.’‘물이 덮쳐오면 둑 쌓고, 불나면 끄면 되지.’서하는 책을 읽고 기중환 교수가 내준 과제도 좀 할 생각이었는데, 배를 너무 채운 탓인지 눈꺼풀이 제멋대로 내려왔다.서하는 원래 늦잠도 안 자고, 낮잠도 일정에 따라 자지 않을 정도로 철저했다.그런데 요 며칠은 이상하리만큼 아침에 못 일어나고 낮에도 끝없이 졸렸다.‘최근 너무 피곤했나 보다.’‘감정도 계속 신경 쓰고, 버티다가 긴장 풀리니까...’‘그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온 거겠지.’그렇게 이유를 만들어 자기 자신을 납득시키고 나서 서하는 다시 침대로 가 누웠다.그리고 눈을 감자마자 바로 잠들어버렸다.핸드폰 진동이 울려 서하는 비몽사몽 사이 전화를 받았다.[임 선생님, 오늘도 오시는 거 맞죠?]시간을 본 순간, 서하는 잠이 확 달아났다.“죄송합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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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은혁은 서하에게서 아무런 대답이 없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서하가 깊이 잠든 걸 확인하고 은혁은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을 맞췄다.다시 눈을 떴을 때 주변은 이미 캄캄했고, 서하는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았다.화면을 켜는 순간, 그녀는 깜짝 놀랐다. 이미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었다.핸드폰엔 부재중 전화가 줄줄이 떠 있었다.모두 은혁이었다.서하는 급히 전화를 걸었다.몇 번 울리다가 받지 않았다.그런데 동시에 집 안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서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뛰어내렸지만, 제대로 서기도 전에 안방 문이 열렸다.“당신... 여기서 뭐 해?”서하는 숨이 멎을 뻔했다.은혁은 내려다보며 말했다.“내가 문 두드리니까, 당신이 열어줬어. 근데 열어주고 또 자던데.”“아... 까먹었네...”서하는 머리를 살짝 두드렸다.“잠이 덜 깼나 봐. 근데... 왜 온 거야?”은혁은 미간을 찌푸렸다.“같이 저녁 먹자고 했잖아.”“지금... 여덟 시 넘었어...”서하는 애초에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됐고, 당신 그냥 가.”“뭐 먹고 싶은데?”은혁은 태연하게 말했다.“예약하게.”“안 먹어.”서하는 안방에서 나와 소파에 툭 앉았다.“먹기 싫다고.”그제야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식탁 위에 펼쳐진 노트북.서하 자는 동안 은혁은 여기서 일하고 있었다.“저녁은 먹어야지.”은혁은 담담했다.“자극 없는 음식 어때? 식당에 말해서 국이랑 반찬 다시 받게 하지.”“싫어.”서하는 속이 뒤틀리는 느낌까지 들었다.“당신 가. 지금 당신이랑 말도 하기 싫어.”“몸이 안 좋아?”말이 끝나기도 전에 은혁의 손바닥이 서하의 이마에 닿았다.서하는 숨이 멎은 듯 멍해졌다.그러고 나서 고개를 들어 은혁을 올려다봤다.자신은 몰랐지만, 그 모습은 너무 무방비했다.눈은 촉촉하고, 표정은 흐릿하고, 입술은 살짝 벌어져 있었고, 얼굴은 은혁 쪽으로 약간 들린 상태.누가 봐도 ‘키스해달라’는 모양새였다.그리고 은혁은 한 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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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일단... 서하는 깨달았다.요 며칠 은혁 앞에서 자신이 너무 대담해지고 있다는 걸.‘누가 준 용기야, 진짜?’둘째, 요 며칠 서하는 유난히 예민했다.예전엔 이 정도로 감정 기복이 있지 않았다.게다가 입도 짧지 않고, 자꾸 졸리고...어제만 해도 밥 두 공기에 탕수육 반 접시를 해치웠고, 오늘도 하루 종일 잠만 잤다.아직 아이를 낳아본 적 없지만, 그렇다고 기본적인 생리 지식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지금 자신의 변화들... 딱 들어맞는 증상이었다.‘임신?’서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른 채 멍하니 서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두 손으로 자신의 아랫배를 감쌌다.‘정말... 임신한 거야?’‘여기... 나랑 배은혁의 아이가 있는 거야?’예전 같았으면, 이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기뻐서 울었을지도 모른다.아무리 은혁의 마음이 차갑더라도 자신과 은혁의 아이는, 서하에게 커다란 의미였을 테니까.부부 사이를 이어줄 연결점이 될 수도 있다고 믿었을지도...하지만 지금 서하와 은혁은 이혼을 앞두고 있었다.이건 화풀이도 아니고, 눈치 보기 위한 시도도 아니고, 완전히 마음이 꺾여버린 뒤의 단절이었다.그런데, 만약 정말 임신이라면...‘왜 하필 지금...?’의식이 돌아온 순간, 서하는 자신이 맨발인 걸 알아챘다. 급히 신발을 신고, 옷을 갈아입고, 몸을 단단히 여미고는 바로 밖으로 나섰다.주변 지리에 익숙하지 않아 핸드폰으로 가장 가까운 병원을 검색했다....병원을 나섰을 때, 벌써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서하는... 정말 임신이었다.그녀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걸은 뒤에야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외래에서 주차장까지 걸어오는 동안 10분은 족히 걸렸다.방금 진료실에서 의사가 던진 첫 마디가 아직도 머릿속에서 울렸다.“이 아이, 유지할 건가요? 아니면... 중절 쪽으로 보시나요?”서하는 막 임신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는데, 곧바로 ‘키울지 말지’를 생각해야 했던 현실은 충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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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8화

서하는 삶은 계란을 한입씩 베어 물면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차분하게 정리하고 있었다.이제 서하는 임신했다. 선택지는 둘이었다.첫째, 이 아이를 포기하는 것. 그러면 계획대로 은혁과는 이혼하면 된다. 임신중절수술을 하면 아무도 이 아이가 세상에 왔다 가려 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모든 건 원래 계획대로 흘러갈 것이고, 서하의 인생 궤도 역시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둘째, 아이를 낳는 것. 하지만 은혁에게는 말하지 않고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이미 은혁에게 완전히 마음이 떠난 서하는 아이로 은혁을 붙잡고 싶지 않았다.아이 때문에 억지로 이어지는 관계라면, 그런 결혼은 아무 의미가 없다.그리고 서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이 아이를 절대 지우지 못할 거라는 걸.하지만 엘리베이터에서 있었던 그 장면... 그리고 TV에서 흐르던 드라마의 대사까지 떠올리니, 혼자 아이를 키우겠다는 결심이 또다시 흔들렸다.‘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서하는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그런 생각들이 뒤엉킨 채로 어느 순간 깊은 졸음이 밀려왔고, 서하는 다시 잠이 들었다....아침,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눈을 떴다.더듬더듬 핸드폰을 집어 든 서하가 말했다.“여보세요...”[서하야, 아직 안 일어났니?]“응... 엄마.”몸을 일으키며 인사를 건넸다.[어제 배 서방한테서 전화 왔어.]순간, 서하는 완전히 정신이 돌아왔다.“배 서방이... 뭐라구요?”[배 서방이 네 아버지 보러 오겠다고 하더라.]노숙진의 목소리엔 기분 좋은 미소가 실려 있었다.[어제는 너무 늦어서 너한텐 전화 안 했대. 그래서 오늘 물어보는 거야. 너희 둘, 언제 오기로 했니?]서하는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조차 없었다.“엄마, 제가 배 서방이랑 얘기 좀 더 해보고 알려드릴게요.”[그래도 배 서방은 참 좋은 사람이야. 자기 일도 그렇게 바쁜데, 너희 아버지 생각도 하고... 서하야, 이혼 얘기는 이젠 그만해라, 응?]“네, 엄마.”전화를 끊자 서하는 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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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서하가 침착하게 말을 꺼냈다.“이번에 내려가면... 우리 엄마가 상호 공무원 시험 얘기 꺼낼 수도 있어.”[알고 있어.]“당신이... 어떻게 알아? 우리 엄마가 당신한테 말했어?”서하는 눈이 동그래졌다.[처남이 말했어.]순간, 서하는 속에서 불이 확 치솟았다.“상호가 또 뭐라고 했는데?”[아는 사람 있냐고, 상호 좀 도와줄 수 있냐고 묻더라.]“안 돼!”서하는 핏대가 설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당신... 상호한테 혹시 대답한 건 아니지?”은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몇 날 며칠, 왜 이렇게 예민하고 감정 기복이 큰지 의아했던 서하는, 지금에서야 그 이유를 명확히 깨달았다.‘그래... 내가 임신해서 그래.’‘지금도 화가 확 치밀어오르는 거 봐...’“배은혁! 당신 진짜 제정신이야?”서하는 이를 악물고 말을 쏟아냈다.“내가 뭐라 그랬어? 상호 일에 당신 절대 끼지 말라고 분명히 말했잖아!”[근데 처남은 당신 동생이잖아.]“상호는 내 친동생도 아니야! 그리고 우리는 곧 이혼할 거고! 당신이 상호랑 무슨 상관이 있는데!”[그럼 당신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는데?]“내가 말하면 당신이 듣기나 해?”서하는 진짜로 진이 다 빠져버린 듯 말했다.“나 진짜 당신한테 여러 번 얘기했어. 상호가 뭐라든, 부탁하든 말든... 그냥 무시하라고. 듣지 말라고. 근데 지금까지 당신은 내 말 들었어?”[다른 사람이었으면 신경도 안 썼어.]“상호는 나한텐 다른 사람이야!”은혁은 잠시 말이 없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지금 처남이 딱히 하는 일도 없잖아. 그래서 혹시 이상한 사람들 만나면 어쩌나 싶어서 그런 거지. 지난번 일도 있고... 반면교사잖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건 좋은 거고.]“좋아. 공무원 시험 준비 자체는 나도 좋아. 하지만 나는 상호가 자기 힘으로 시험 보길 원해. 시험에 붙으면 축하할 일이고, 떨어지면 그냥 실력이 부족한 거야.”“당신이 상호 뒤를 봐준다? 그런 건 처음부터 잘못된 거고, 다른 수험생들한테도 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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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오후, 서하는 화공 공장에 들렀다.정문 앞에서 자신과 일했던 담당자에게 미리 연락해, 준비해 온 자료들을 모두 전달했다.담당자는 자료를 훑어보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임 선생님, 다음에도 꼭 같이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처음 소개받아 왔을 때만 해도, 담당자는 서하가 일을 제대로 해낼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그리고 꽤 오만한 태도로 서하를 대했다.하지만 지금은 담당자의 얼굴 가득 웃음에 심지어 태도까지 공손해졌다.전문 지식이 필요한 일에서 실력은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다.인맥으로 될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이런 분야는 오로지 실력이 기준이다.담당자가 넉넉하게 비용을 정산해 주자 서하도 미소를 띠며 말했다.“다음에 또 기회 있으면 좋겠네요. 그동안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공장을 나와 집으로 돌아온 서하는 곧바로 소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진아, 너한테 좀 물어볼 게 있어서.”소진은 국내로 돌아오자마자 친척들, 친구들에게 인사 돌리고 바로 직장에 복귀해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말해. 뭔데?]“네 친구 중에... 그거 있잖아. 집으로 반찬 배달해 주는 사람. 고객이 메뉴 고르면 직접 만들어서 보내주는 그 친구.”서하가 임신한 이상 외식이나 배달 음식을 계속 먹을 순 없었다.게다가 요리에는 젬병이었다.전에 소진이 그 친구 음식 솜씨가 깔끔하고 음식 맛도 좋다고 했던 게 문득 떠올랐다.[아, 그 친구? 왜? 너도 시키려고?]서하는 임신 사실을 아직까 말하기 싫었다.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정리가 안 됐기 때문에 소진에게도 당장 말하고 싶지 않았다.그냥 음식 때문이라는 걸 알아챈 소진이 바로 말했다.[걔 요즘 직원도 몇 명 더 늘렸어. 내가 연락처 보내줄게. 너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바로 얘기해.]“응, 고마워.”[아니면 나 요즘 바쁘지만... 그래도 너 우리 집으로 와서 지내. 내가 해줄게.]“너 지금 연초라 더 바쁘잖아. 그리고... 설 지나면 나 학교 가야 돼.”[그것도 그렇지.]잠시 뜸을 들이던 소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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