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혁은 한참 침묵을 지킨 뒤 입을 열었다.“우린 아직 이혼 전이야.”이 말은 벌써 몇 번이나 되풀이했던 말이었다.서하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기뻐서 웃은 것은 아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서하가 입을 열었다.“배은혁, 당신은 사랑이 있든 없든, 상대가 누구든, 필요하다면 잠자리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은혁의 눈빛은 칠흑처럼 깊었다. 남자는 대답 없이 서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서하는 마음이 흔들려 순간 시선을 피했다.은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린 부부잖아. 내가 욕구가 있는데 아내를 찾지 않으면, 누구를 찾아야 하는 거지?”“우린 곧 이혼할 거야.” 서하가 말했다. “당신이야 감정 없는 사람과도 그럴 수 있겠지만, 미안해. 난 그렇게 못해.”결혼 전, 서하는 은혁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사람들이 은혁을 두고 ‘차갑고 냉정하다,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권력과 재력이 있는 남자가 그렇게 깨끗한 사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전설처럼 여겨졌고, 심지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혹까지 있었다.그러나 막상 결혼해 보니 현실은 정반대였다. 겉은 냉정한 신사였지만, 속은 욕망으로 가득 찬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절제, 품위, 고고함... 그런 단어들은 침대 위에선 모두 무의미했다. 심지어 이혼에 합의한 지금도,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그런 짓을 요구했다.그때는 서하도 은혁을 사랑했기에, 주저 없이 몸을 내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이 식어버렸으니, 은혁과 그 어떤 친밀한 접촉도 원하지 않았다. 잠자리는 더더욱.하지만 은혁은 분명 달랐다. 마음엔 레나가 있었지만, 서하와 잠자리를 할 때는 전투적이었고 폭발적이었다. 매번 서하를 기진맥진하게 했다.서하는 속으로 자조했다. ‘이런 남자, 진작에 놓아야 했는데.’“못 한다고?”귓가에 은혁의 목소리가 더욱 싸늘하게 울렸다.“되새겨줘야 해? 당신이 아래에 깔려 두 다리로 내 허리를 휘감고 절정에 매달리던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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