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림받은 아내의 화려한 귀환: Chapter 61 - Chapter 70

100 Chapters

제61화

상호가 다가서며 얼굴이 확 밝아졌다.“학빈 형, 진짜예요?”오학빈은 담배에 불을 붙이며 음란한 시선으로 서하를 아래위로 훑어봤다.“진짜 네 누나 맞아?”상호는 적당히 훈훈한 인상이었지만, 학빈이 지금까지 본 여자 중 서하는 단연코 최고의 미인이었다.서하는 병원에서 나온 터라 옷차림이 수수했다. 짧은 패딩 점퍼에 진청색 팬츠 차림. 평범한 청바지는 서하의 쭉 뻗은 다리를 더 돋보이게 했다.무엇보다 눈부시게 하얗고 매끈한 서하의 얼굴은 단번에 시선을 붙잡았다. 특히 깊고 또렷한 까만 눈동자는 바라보는 이의 넋을 빼놓을 만큼 매혹적이었다.서하의 차분하면서도 차갑게 느껴지는 분위기는 학빈의 정복욕을 자극했다.그는 이렇게 도도한 여자가 자신 앞에서 다른 모습을 보일 때 어떤 표정을 지을지 알 수 없는 궁금증에 사로잡혔다.머릿속은 이미 서하를 굴복시킨 후의 상상으로 가득 찼다.학빈은 곁에 있던 여자를 거칠게 밀어내고 문 쪽으로 다가섰다. 가까이서 보니 화장기 없는 민낯인데도 서하의 미모는 더욱 빛났다.상호는 학빈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학빈의 집안이 상당한 재력가인 것은 맞지만, 학빈은 행실이 문란하기로 유명했다. 그는 여자 친구를 수시로 갈아치우는 건 기본이고, 예전에 여고생 하나를 망가뜨려 결국 그 아이가 투신자살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학빈의 집안은 돈으로 모든 것을 덮었고, 한 사람의 목숨이 그저 가볍게 묻혀버리는 것을 보았다.상호는 본능적으로 누나를 보호하려고 했다. 투자받고 싶긴 했지만, 학빈이 누나와 엮이는 건 원치 않았다.상호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학빈 형, 제 누나 맞아요. 말했잖아요. 배은혁이 제 매형이라고요.”상호는 은혁의 이름을 언급하면 학빈이 좀 수그러들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학빈은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다.서하는 은혁의 이름이 나오자 미간을 더 찌푸렸다.“상호야, 나와. 누나랑 가자.”상호는 학빈의 음탕한 눈빛을 보고 누나를 함부로 부른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다.학빈은 괜히 멋있는 척 담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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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서하는 상호를 데리고 차에 올라탔다. 하지만 출발하기 전에 시동을 걸지 않고 운전석에 조용히 앉아 한참 침묵했다.“상호야.”상호는 알 수 없는 죄책감에 목소리를 흐렸다.“누나...”서하는 상호를 보지 않고 차창 너머 주차장 바닥만 응시했다.“네 마음에 상처 주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아. 네 부모님 두 분이 돌아가신 뒤 우리 부모님은 널 친아들처럼 대했고, 나 역시 친동생처럼 아꼈어.”상호가 작게 말했다.“누나, 저도 다 알아요.”서하는 말을 이었다.“오늘 같은 일,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어. 우린 그저 평범한 집안 사람이야. 돈도 권력도 없어...”상호가 참지 못하고 반박했다.“누나는 배은혁 아내잖아요. 배씨 집안은...”그제야 서하는 상호를 바라보며 맑고 차가운 눈동자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나 곧 이혼해. 그 사람 배경은 이제 너랑 아무 상관 없어.”상호는 순간 초조해졌다.“누나... 큰아빠, 큰엄마한테 이혼 안 하겠다고 약속했잖아요?”서하가 다시 상호를 쳐다봤다. 상호는 그 짧은 시선에서 서하의 복잡한 감정들을 읽어냈다.서하가 말을 이었다.“상호야, 난 널 친동생처럼 생각하지만, 넌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어. 우리 부모님이 널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해 내가 간섭할 권리는 없지만, 적어도 나한테는...”서하는 상호를 똑바로 보며 또렷하게 말했다.“함부로 선 넘는 짓 하지 마. 알겠어?”상호는 왠지 모를 위압감을 느끼며 그녀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누나, 알겠어요. 그냥 전... 너무 성공하고 싶어요.”서하는 한숨을 쉬었다.“누구나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건 아니야. 오늘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봤어?”“하지만 돈이 있잖아요.”서하는 단호하게 말했다.“내 말이 듣기 싫을 수도 있겠지만, 누나는 네가 정직하고 믿을 만한 좋은 사람들이랑 어울렸으면 해.”상호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다. 사업하는 사람은 간사해야 장사를 한다는 말도 있는데, 정직하고 착하게만 굴다간 오히려 남에게 이용당할 거로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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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서하를 제자로 맞이하게 된 기중환 교수는 기쁨에 겨워 술을 몇 잔 더 마셨다.식사를 마친 후, 시현과 서하가 기중환 교수 내외를 집까지 배웅했다. 저녁 식사 자리에는 시현이 학교에서부터 기중환 교수와 서하를 태우고 왔기에 차는 한 대뿐이었다.시현이 조수석 문을 열어주자 서하가 차에 올라탔다. 서하는 가방에서 차용증을 꺼내 시현에게 건넸다. 시현은 그것을 흘긋 보더니 말했다.“그냥 거기 둬.”서하는 차용증을 수납함에 넣었다.“선배, 학교까지만 데려다주세요. 제 차가 거기 있어요.”시현이 말했다.“학교는 돌아가는 길이라 불편해. 그냥 집으로 데려다줄게.”“네?” 서하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내일 차를 써야 하는데.”“내일 아침에 내가 데리러 가면 되지.” 시현이 말했다. “내일 마침 학교에 들러야 하거든.”서하는 시현을 바라봤다. 시현은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다. 서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선배. 그럼 신세 좀 질게요.”곧 아파트 앞에 도착했다. 서하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자 시현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가볍게 작별을 고한 뒤 그대로 떠났다. 단지를 벗어난 뒤, 시현은 서하가 건넨 차용증을 꺼내 한참 들여다보았다. 그러곤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여 종이가 재로 변하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았다....다음 날 아침 일찍, 서하는 시현의 차에 올랐다.“아침 먹어.”시현이 종이봉투를 내밀었다.포장을 열자 서하는 반가운 듯 말했다.“이 샌드위치, 거기 샌드위치죠?”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선배는 드셨어요?”“응, 나는 먹었어.”서하는 감사 인사를 하고는 차 안에서 커피와 함께 샌드위치를 먹었다.가는 길에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학교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린 서하는 다시 한번 시현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서하는 기중환 교수를 찾아 연구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서하는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땡-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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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고고하고 냉정한 은혁은 병원의 평범한 둥근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남자의 온몸에서 풍기는 귀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서하를 보자 노숙진이 활짝 웃었다.“이제야 왔어? 배 서방이 너 기다린 지 한참 됐어.”‘배은혁이 나를 기다렸다고? 말도 안 돼.’은혁이 입을 열었다.“온 지 얼마 안 됐어.”‘이 사람이 나를 기다릴 리 없지.’부모님이 은혁 앞에서 비굴할 정도로 안절부절못하며 비위를 맞추는 모습에 서하는 너무나 괴로웠다.서하가 물었다.“무슨 일로 왔어?”서하는 은혁이 아빠를 문병하러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은혁이 입을 떼기도 전에 노숙진이 서하의 팔을 툭 쳤다.“얘 말하는 것 좀 봐! 네 아빠 보러 온 거지!”서하는 애써 미소를 지었다.몇 마디 더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부모님이 은혁이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해 보여 서하는 결국 말했다.“바쁘면 먼저 돌아가.”노숙진이 말했다.“너도 배 서방이랑 같이 가렴. 상호가 이따가 나 데리러 올 거야.”은혁은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럼 저희 먼저 가보겠습니다.”그 한마디에 서하가 은혁을 혼자 보내려 했던 생각은 쑥 들어갔다.부모님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서하는 은혁을 따라 병실을 나섰다.두 사람은 나란히 복도를 걸었다. 서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고마워.”어쨌든 은혁이 여기까지 와 준 덕분에, 부모님의 걱정을 조금은 덜 수 있을 것 같았다.은혁은 무심하게 대답했다.“괜찮아.”그 후로 두 사람은 내내 침묵했다.병원 주차장에 도착하자 서하는 은혁과 헤어지려 했다.“내 차는 저쪽에 있어. 그럼 먼저 갈게.”이제는 예전보다 훨씬 강해졌다고 느꼈다. 전에는 은혁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지금은 놀랄 만큼 마음이 잔잔했다.은혁은 말이 없었다. 서하는 은혁이 인사 같은 걸 건넬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기에 몸을 돌려 걸었다.몇 걸음 걷다가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자, 은혁이 뒤따라오고 있었다.같은 방향으로 가는 거겠지 싶어, 서하는 아무 말 없이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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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은혁은 한참 침묵을 지킨 뒤 입을 열었다.“우린 아직 이혼 전이야.”이 말은 벌써 몇 번이나 되풀이했던 말이었다.서하의 입에서 헛웃음이 나왔다. 물론 기뻐서 웃은 것은 아니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서하가 입을 열었다.“배은혁, 당신은 사랑이 있든 없든, 상대가 누구든, 필요하다면 잠자리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해?”은혁의 눈빛은 칠흑처럼 깊었다. 남자는 대답 없이 서하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서하는 마음이 흔들려 순간 시선을 피했다.은혁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우린 부부잖아. 내가 욕구가 있는데 아내를 찾지 않으면, 누구를 찾아야 하는 거지?”“우린 곧 이혼할 거야.” 서하가 말했다. “당신이야 감정 없는 사람과도 그럴 수 있겠지만, 미안해. 난 그렇게 못해.”결혼 전, 서하는 은혁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은 사람들이 은혁을 두고 ‘차갑고 냉정하다, 여자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는 것이었다. 권력과 재력이 있는 남자가 그렇게 깨끗한 사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전설처럼 여겨졌고, 심지어 여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의혹까지 있었다.그러나 막상 결혼해 보니 현실은 정반대였다. 겉은 냉정한 신사였지만, 속은 욕망으로 가득 찬 짐승이나 다름없었다. 절제, 품위, 고고함... 그런 단어들은 침대 위에선 모두 무의미했다. 심지어 이혼에 합의한 지금도, 여전히 아무렇지 않게 그런 짓을 요구했다.그때는 서하도 은혁을 사랑했기에, 주저 없이 몸을 내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마음이 식어버렸으니, 은혁과 그 어떤 친밀한 접촉도 원하지 않았다. 잠자리는 더더욱.하지만 은혁은 분명 달랐다. 마음엔 레나가 있었지만, 서하와 잠자리를 할 때는 전투적이었고 폭발적이었다. 매번 서하를 기진맥진하게 했다.서하는 속으로 자조했다. ‘이런 남자, 진작에 놓아야 했는데.’“못 한다고?”귓가에 은혁의 목소리가 더욱 싸늘하게 울렸다.“되새겨줘야 해? 당신이 아래에 깔려 두 다리로 내 허리를 휘감고 절정에 매달리던 순간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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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하지만 서하는 은혁이 마음속에서 언제든 육체를 팔 수 있는 여자로 자신을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이 순간, 치욕과 모멸감 외에 ‘사람이 영혼을 잃어버리는 것보다 더 비통한 것은 없다’라는 말의 의미를 비로소 절감했다.“그 돈, 갚을게.”서하는 그 돈을 당장이라도 남자의 뻔뻔한 얼굴에 냅다 뿌려버리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만한 돈이 없었다.“갚는다고?” 은혁이 코웃음을 치듯 웃었다. “지난번 1억까지 전부 다?”서하는 치솟는 수치심과 분노에 숨이 막혔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가자.”은혁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 담담하고 여유로웠다. 마치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는 듯,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태도였다. 하지만 서하의 귀에는 오직 모욕과 굴욕으로만 들렸다.서하의 손은 떨리기 시작했고, 운전대를 제대로 잡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눈물이 시야를 흐렸다. 이를 악물고 눈물이 흘러나오지 않게 막으려 했지만, 감정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어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목은 시큰거렸고, 눈가는 부어올랐다.차 안은 정적이 감돌았고, 은혁도 더 이상 아무 말이 없었다.시간이 흐른 뒤 서하는 운전대에서 손을 놓고 안전띠를 푼 뒤,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서하는 미련 없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어갔다.은혁은 차 안에서 한참 서하를 바라보다가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뒤쫓아갔다. 팔을 잡으려 하자, 서하는 온 힘을 다해 뿌리쳤다. 어깨를 감싸안으려 하자, 서하는 달아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은혁은 순간 앞으로 나서서 강제로 여자를 품에 안았고, 다음 순간 가로로 번쩍 안아 들었다. 여자의 몸부림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자신의 차 앞에 도착한 은혁은 서하를 뒷좌석에 거칠게 던지듯 내려놓았다.서하는 마치 스프링이라도 달린 듯, 은혁이 몸을 일으키자마자 튀어 올라 남자를 밀쳐내고 차에서 내리려 했다.은혁은 더는 참지 못했다. 순식간에 서하를 뒷좌석에 눌러놓고, 싸늘하게 내뱉었다.“한 번만 더 움직여 봐.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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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다이아몬드 귀걸이, 그날 아침 식사, 그리고 연회장에서 하이힐 때문에 발이 아플까 걱정했던 일까지...이 모든 것은 레나와 비교했을 때 자신이 은혁에게 얼마나 보잘것없고 우스운 존재인지를 더욱 분명하게 각인시켰다.서하는 피하지도, 움직이지도 않고 은혁이 얼굴을 닦아주는 대로 가만히 있었다.혹시 은혁이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꼈나 싶어 오늘 밤은 자신을 건드리지 않을 거라고 잠시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만한 착각이었다.‘아마 나를 깨끗하게 닦은 다음 잠자리를 가지려는 거겠지.’‘눈물범벅 된 얼굴이 지저분해서 키스하기 싫었을 뿐이야.’서하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은혁에게 얼굴을 맡겼다.얼굴이 깨끗하게 닦이자 서하는 확실히 좀 더 개운함을 느꼈다.“배 안 고파?” 은혁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나가기 싫으면, 사람 시켜서 밥 가져오게 할게.”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입맛이 없었다.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의 병과 최근의 과도한 피로가 식욕을 앗아간 탓이었다.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난 후, 은혁의 발소리가 다시 멀어졌다.서하는 이불을 끌어당겨 온몸을 감쌌다.과거의 서하는 은혁에게 마음을 완전히 빼앗겼고, 설명할 수 없는 두려움도 동시에 품고 있었다.애초에 은혁은 자신이 가질 수 없는 남자라는 것을 서하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 은혁에게서 우러나오는 압도적인 기세 때문에 서하는 감히 무례하게 생동할 수도 없었다.하지만 지금 서하는 이미 마음이 죽어 재가 되었고, 곧 이혼을 앞둔 처지였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은혁은 다시 돌아왔을 때, 이불 속에 꽁꽁 싸인 서하를 발견했다.다가가 이불을 끌어 내리자 아름답고 청아한 서하의 작은 얼굴이 드러났다.평소 서하는 항상 차가운 표정으로 타인을 멀리하는 분위기를 풍겼다. 하지만 지금은 방금 울음을 그친 후라 여성 특유의 나약함이 얼굴에 서려 있었다. 내리깐 눈에 나비 날개처럼 가지런히 내려앉은 속눈썹은 마치 잠든 모습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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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은혁은 동작을 잠시 멈추더니 고개를 들어 서하를 바라봤다. 언제나 태연자약하여 그 어떤 일로도 놀라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없는 남자였다. 서하는 평생 은혁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이런 상황에 이혼합의서를 언급하는 게 적절하다고 보나?” 은혁이 물었다.서하는 무표정하게 되물었다.“적절하지 않을 건 또 뭐가 있어?”은혁은 낮게 웃더니 다시 식사를 시작했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서하는 눈앞의 풍성한 음식들을 보면서도 전혀 입맛이 없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은혁이 서하를 보며 물었다.“배 안 고파?”서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았다.“먹고 싶지 않아.”“입에 안 맞아?” 은혁이 식탁 위 음식을 흘끗 살폈다.이전에 가본 적 있는, 평판이 좋은 식당의 음식들이었다.바로 그때, 서하의 배에서 ‘꼬르륵’ 하는 소리가 갑자기 울렸다.방 안이 워낙 조용했기에 그 소리는 너무나도 컸다. 서하는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지며 극도로 민망해졌다.은혁은 잠깐 멍해졌다가 이내 낮게 웃었다.“나랑 기싸움하는 건 좋지만, 당신 몸까지 상하게 하지는 마. 다른 사람의 잘못 때문에 자신에게 벌주는 건 가장 어리석은 짓이야.”“어리석은 건 당신이야.” 서하는 민망함이 가신 후 불쑥 솟아난 분노로 말했다. “당신이 시킨 음식, 전부 다 싫어.”은혁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뭘 먹고 싶어? 사람 시켜서 보내게 할게.”은혁의 말은 꽤 온화하고 사려 깊게 들렸다. 이런 남자가 한번 마음먹고 상대를 달래려 들면 누구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하지만 서하는 과분한 총애를 받는다고 느끼지 않았다. 은혁은 돈과 권력이 있으니, 한마디만 하면 누구든 알아서 일을 처리해 줄 터였다. 감동할 이유가 없었다.서하는 자신이 이런 도리를 이제야 깨달은 것에 화가 났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마라탕 먹고 싶어.”“마라... 탕?” 은혁의 눈에 약간의 의아함이 스쳤다. “마라탕이 뭐야? 그런 메뉴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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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화려한 불빛에 묻힐 법한 순간에도, 은혁은 홀로 빛나고 있었다. 잘 다듬어진 이목구비와 기품 있는 차림새는 그야말로 사람들의 눈길을 빼앗았다.서하는 수많은 시선이 자신들에게 쏟아지는 것을 똑똑히 느꼈다.은혁의 크고 긴 손이 서하의 손목을 타고 내려와 그녀의 손가락을 감쌌다.서하는 저항하지 않고 은혁을 바라봤다.은혁의 긴 손가락이 서하의 손가락 마디 사이로 파고들어, 완전히 깍지 끼었다.서하는 뒤늦게 고개를 숙여 맞잡은 두 사람의 손을 내려다봤다.“사람이 많으니, 떨어지지 말고 내 옆에 바짝 붙어.” 은혁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이미 잠자리까지 함께한 사이라, 서하는 그 어떤 친밀한 접촉도 자신을 동요시키지 못하리라 여겼다. 하지만 이 순간, 깍지 낀 손을 잡자 심장이 한 박자 멈추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서하는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곧 마라탕 가게에 도착했다. 앞에 이미 몇몇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서하와 은혁은 조용히 맨 뒤에 섰다.“정말 맛있어?”귓가에 은혁의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서하가 눈을 들자, 진지하게 바라보는 은혁의 눈빛과 마주쳤다.“조금 있다가 맛보면 알겠지.”“냄새는 괜찮네.” 은혁이 말했다. “어쩐지 먹고 싶어 하더라니.”서하는 주변 많은 사람이 은혁을 몰래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시선은 자신에게도 꽤 쏟아지고 있었다.서하도 자신이 꽤 괜찮은 외모임을 알지만, 만인의 시선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주로 보는 것은 역시 은혁이었다.명품 맞춤 정장에 검은 캐시미어 코트 차림이었는데, 온몸에서 고귀함과 냉정함이 풍겼다. 이런 시끌벅적한 야시장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음식을 포장해 가기로 했다. 식당 사장도 이 두 손님의 비주얼과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챘다. 특히 남자는 야시장에 올 것 같지 않은 아우라를 풍겼다.서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사장님에게 주문했다.“덜 맵게 해주시고요, 고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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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은혁은 아무 말 없이 서하의 손목을 잡고 앞으로 걸었다.곧 두 사람이 차를 세워둔 곳에 도착했고, 은혁은 서하를 조수석에 밀어 넣은 다음 자신도 운전석에 올라탔다.차에 탄 은혁이 말했다.“왜 안 먹어?”서하는 남자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 내숭 떨지 않았다. 일회용 젓가락을 꺼내 면 몇 가닥을 집어 볼을 부풀리며 불더니, 후루룩 소리를 내면서 면치기 실력을 뽐냈다.맵지만 맛있는 자극적인 맛에 서하의 입에 침이 가득 고였고, 연거푸 면을 흡입했다.차에 타자마자 은혁은 시동을 걸고 따뜻한 바람을 틀었다. 잠시 후 서하의 이마에는 잔잔한 땀방울이 맺혔다.은혁이 문득 옅게 웃었다.서하는 먹는 동작을 멈췄다.젓가락에 있던 마라탕 면이 다시 그릇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국물이 튀었다. 몇 방울은 차의 가죽 시트에 떨어졌고, 한 방울은 서하의 콧잔등에 튀었다.서하가 코를 훌쩍거릴 때, 눈앞에 커다란 손이 불쑥 나타났다.은혁이 서하의 콧잔등에 묻은 빨간 국물을 닦아주며 말했다.“조심해, 눈에 들어가지 않게.”서하는 뒤늦게 약간 민망해졌다.은혁를 데리고 나와 놓고는 먹어보면 안다고 말해놓고, 막상 차에 타자마자 혼자서 먹느라 바빴다.오늘은 무슨 일인지, 그 냄새를 맡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제야 정신이 든 서하는 은혁을 힐끗 보고는 마라탕 그릇을 내밀었다.“당신도 먹어봐.”두 사람이 잠자리를 몇 번이나 함께했는데, 같은 그릇에 담긴 마라탕을 같이 먹는 것쯤이야 별일 아니었다. 서하는 굳이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은혁은 젓가락을 받아 면 한 가닥을 집어 입에 넣었다. 먹는 순간, 서하는 눈을 빛내며 남자를 바라봤다.“어때?” 서하가 기대에 차서 물었다. “맛있지?”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맛있네.”“내 말이 맞지.” 서하가 조금 신나서 말했다. “이 집이 최고야. 매번 줄 서서 먹는다니까. 그래서 말인데...”은혁이 더 이상 젓가락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자, 서하의 입가에 맴돌던 말이 갑자기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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