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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첫사랑만 구한 남자: Chapter 201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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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최근 들어 UME 로봇의 반응이 꽤 괜찮았다.한때 그 열기가 부성 그룹과 맞먹을 정도였지만 안타깝게도 부성 그룹은 재력부터 달랐다.거대한 자본 앞에서 UME의 인기는 오래가지 못했다.신지아는 돈을 마케팅에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에 대신 직접 움직였다.광고를 찍고 협력사를 찾아다니며.이번 박수미의 칠순 잔치는 절호의 기회였다.변씨 가문이 연성시의 유력 가문, 기업인, 정치인, 심지어 학교나 병원 관계자들까지 모조리 초대했기 때문이다.이런 자리에선 인맥 하나가 평생의 발판이 된다.‘이혼만 하면 다시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없겠지.’그 생각이 신지아의 머리를 스쳤다.“정말 이렇게 할 거야?”고우빈이 무대 위에 있는 변도영을 흘긋 보며 낮게 물었다.“이러면 변 대표님... 완전히 기분 상할 수도 있어.”“이미 기분 상하게 한 게 한두 번도 아닌데 이제 와서 신경 쓸 필요 있어요?”신지아의 목소리는 담담했다.“원래 사업이란 게 그런 거예요. 큰 회사는 약자를 잡아먹고 작은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뭐든 해야죠. 변도영 씨가 그걸 모를 만큼 순진하지 않아요.”그녀의 눈에는 미련이 없었고 남은 건 오직 기회에 대한 갈망과 미래에 대한 집념뿐이었다.고우빈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그게 옳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우빈아.”그때, 귀에 익은 낮은 목소리가 뒤에서 울리자 둘이 동시에 돌아보았다.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 짙은 와인색 외투를 입은 중년 남자였다.표정은 엄격했지만 별다른 말 없이도 사람을 압도하는 힘이 있었다.신지아는 단번에 알아봤다.고씨 가문의 주인, 고우빈과 고이진의 아버지인 고청산.고청산의 첫 아내, 즉 고우빈과 고이진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뒤 그는 무려 6번이나 아내를 바꿨었다.그중에는 이혼도 있었고 병으로 죽은 경우도 있었다.그런데도 고청산은 모든 아내와 자식들을 깔끔하게 정리했고 가문 안팎의 평판도 흠잡을 데 없었다.그는 집안을 관리하는 능력도, 사업 수완도 완벽한 남자였다.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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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신지아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정신이 다른 데 팔려 변도영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무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전혀 알지 못했다.다만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자신에게 쏠려 있다는 걸 느꼈을 뿐이었다.당황스러웠지만 신지아는 습관처럼 미소를 지었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가볍게 손뼉을 쳤다.무대 위에서 그 모습을 본 변도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조금 전, 이나은이 느닷없이 그에게 다가와 사람들 앞에서 볼에 입을 맞췄던 순간 청중은 환호했고 박수가 터졌다.그런데 신지아, 그녀마저 웃으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무심하고 차분한 얼굴에는 마치 아무 감정도 없는 듯한 표정이 그 어떤 반항이나 분노보다도 변도영의 신경을 더 거칠게 긁었다.‘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변도영의 눈빛은 싸늘하게 식어갔다.신지아가 자신을 아예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 그게 더 불쾌했다.그녀는 그 시선을 느꼈지만 도통 왜 그런 눈빛을 보내는지 알 수 없었다.예전 같으면 괜히 마음이 흔들려 이유를 찾으려 했겠지만 이젠 그럴 에너지도 없었다.잠시 후, 사회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다음 순서는 무도회입니다.”음악이 바뀌자 무도회장 한쪽이 자연스레 춤을 추는 무대로 변했다.행사의 주인공인 변도영과 그의 동반자 이나은이 첫 무대를 열었다.두 사람은 완벽한 호흡으로 클래식한 왈츠를 추기 시작했다.이나은은 한쪽 손으로 변도영의 어깨를 감싸고 다른 한 손은 그의 손바닥 위에 얹었다.그녀의 몸짓은 부드럽고 유연했다.마치 빛 아래에서 춤추는 나비처럼.어떤 어려운 스텝도 이나은은 자연스럽게 소화했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변도영의 머릿속에 문득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다.처음 신지아를 데리고 이런 자리에 나왔을 때 그녀는 무도회의 기본 스텝만 겨우 익힌 상태였다.그 정도면 사회 행사에서 충분히 어울렸지만 그땐 변도영이 신지아를 미워하던 시기였다.그래서 일부러 고난도의 스텝을 시켰다.그녀가 허둥대며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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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신지아는 무대 위의 변도영과 이나은을 보지 않으려야 보지 않을 수 없었다.그들의 다정한 몸짓이 시야에 계속 들어왔지만 그녀는 애써 고개를 돌렸다.대신 손에 쥔 명함을 다시 쥐고 조용히 사람들 틈으로 들어섰다.“안녕하세요. UME의 지능형 로봇 기술은...”신지아는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UME의 기술력, 시장 전망, 그리고 협업 시의 이익 구조까지 숨 돌릴 틈 없이 설명했다.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몇몇은 입가에 억지 미소를 띠고 명함을 받았지만 돌아서자마자 바로 던져버렸다.어떤 이는 더 노골적이었다.그녀 앞에서 명함을 찢어버리고 조용히 쓰레기통에 버렸다.또 어떤 사람들은 신지아가 다가오는 걸 보자 눈을 피하며 다른 쪽으로 슬그머니 몸을 돌렸다.그들은 왜 그런지 몰랐다.아니, 신지아는 잘 알고 있었다.그건 단지 부성 그룹에 대한 충성의 표시였다.UME가 아무리 기술력이 뛰어나도 연성시에서 부성 그룹의 영향력을 흔들 수는 없었다.이 상황에서 신지아와 대화하는 것조차 누군가에겐 위험이었다.그래도 괜찮았다.명함을 받았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첫걸음이었다.언젠가 UME가 이 도시에서 진짜 발언권을 가지게 되면 그들은 다시 ‘계산기’를 두드릴 것이다.모든 명함을 다 돌리고 나자 신지아는 목이 너무 말랐다.신지아는 물 한 잔을 청하려고 주변을 둘러보다 갑자기 등 뒤에서 거센 힘에 밀렸고 몸이 앞으로 쏠리며 거의 넘어질 뻔했다.겨우 중심을 잡고 돌아보니 그 뒤엔 신하나가 서 있었다.그녀는 입꼬리를 씩 올린 채 기분 나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신하나는 코웃음을 쳤다.“내가 너라면 이런 데 안 왔을 거야. 남편이 다른 여자랑 저러고 있는 꼴 보면서 이렇게까지 창피 주고 싶진 않거든?”그녀의 손끝이 무대를 가리켰다.변도영과 이나은이 여전히 사람들 앞에서 웃고 있었다.신지아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웃었다.“내가 너라면...”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그런 말로 스스로를 더 초라하게 만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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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서서히 가라앉았고 모두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했다.붉은 비단 저고리를 곱게 차려입은 박수미가 변승주와 고미애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그녀가 등장하자 홀 안은 순식간에 숙연해졌다.박수미.연성시에서 변씨 가문을 지금의 자리에 올려놓은 이 집안의 진짜 기둥이었다.가문을 일으킨 초창기부터 누가 감히 박수미의 결단 앞에서 고개를 들겠는가.비록 일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여전히 변씨 가문의 최대 지분을 쥐고 있는 사람.그녀가 한마디 하면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오늘은 박수미의 칠순 잔치였다.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었다.오늘의 진짜 목적은 따로 있다는 걸.지분 승계.그녀의 손에서 변씨 가문의 실권이 누구에게 넘어갈지, 그 한마디에 따라 연성시 전체의 판도가 바뀔 터였다.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변도영.두려움과 경계, 그리고 아부가 뒤섞인 눈빛들.그는 아직 공식적으로 권한을 넘겨받은 게 아니지만 이미 변도영의 영향력은 연성시 안에서 절대적이었다.만약 오늘 지분이 넘어가면 그 앞에서 감히 거슬러 설 사람은 없을 것이다.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방금 전까지만 해도 변도영과 대립할 생각이던 몇몇 인사들은 슬그머니 자세를 낮췄다.그중엔 아까까지 신지아에게 명함을 받고도 몰래 찢어버렸던 이들도 있었다.‘괜히 엮이지 말자.’그들의 속내가 그대로 드러났다.심지어 몇몇은 재빨리 휴대폰을 꺼내 변도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방금 신지아 씨가 UME 쪽 명함을 돌리며 협력 얘기를 꺼냈습니다.][전 당연히 거절했습니다.][심지어 명함은 바로 버렸습니다.]충성의 표시였다.잠시 뒤, 변도영의 휴대폰이 진동했다.그는 무심히 화면을 내려다보다 조각난 명함의 사진을 보았다.“하찮군.”변도영의 눈빛엔 미세한 비웃음만이 스쳤다.UME가 아무리 잠재력이 크다 한들 부성 그룹이 나서기만 하면 버티지 못한다.그는 메시지를 닫고 휴대폰을 끄려 했다.그때, 다시 한번 진동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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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영상은 분명 멀찍이서 찍은 것이었다.화질이 그리 선명하진 않았지만 영상 속의 여자가 신지아라는 걸 알아보지 못할 사람은 없었다.누군가 일부러 티 나게 편집이라도 한 듯 그녀의 손가락에 낀 다이아몬드 반지, 그리고 목에 걸린 진주 목걸이가 화면 한가운데 확대되어 있었다.그 반지는 지금도 신지아의 손에 있었고 목걸이 또한 그대로였다.딱 두 번만 눈길을 주면 그게 누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남자는 등만 보였지만 분명 변도영이 아님을 누구나 눈치챘다.순식간에 연회장은 얼어붙었다.곧장 들려오기 시작한 속삭임들.“저거 신지아 아니야?”“다른 남자랑... 저건 좀 너무하잖아.”“이러면 완전 변 대표님을 배신하는 거잖아.”“이혼 확정이겠네.”“설마 각자 따로 노는 사이라 그래도 괜찮다 생각한 건가?”“하긴 변씨 가문에 먹칠한 건 용납이 안 되겠지. 어르신도 이번엔 감싸주기 어렵겠네.”이리저리 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이 비수처럼 날카롭게 신지아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한편화면 속 낯선 남자의 품 안에서 웃고 있는 신지아의 모습을 본 변도영의 표정은 잔뜩 굳어버렸다. 순간적으로 머리끝까지 피가 치밀었다.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무표정하게 신지아를 바라봤다.그녀는 딱히 놀라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화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신지아의 눈동자는 잔잔했다.이미 이런 일이 일어날 걸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그렇다.그녀는 예상하고 있었다.자신의 모든 움직임은 누군가 감시하고 있었고 실패를 기다리는 눈이 수없이 많다는 걸.그래서 이미 ‘들키는 것’ 조차 감수하고 있었던 것이다.다만 놀라운 건 화면 속의 자신이었다.등은 곧고 눈빛은 차갑게 빛났다.자신감과 당당함, 예전의 그 불안했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신지아는 잠시 생각했다.한 달 전 공항 유리에 비쳤던 자신의 얼굴.그때의 초라한 자신과 지금의 자신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변도영은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보고 오해했다.‘놀라서 아무 말도 못 하는 건가?’그는 속으로 이를 악물었다.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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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목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쏠렸다.윤형우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키가 크고 걸음에는 여유가 있었으며 입가에는 예의 바른 미소가 살짝 걸려 있었다.“어르신, 장수하시고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그는 공손히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고개를 들어 이나은을 잠시 바라봤다.말 한마디 없이.그 한 번의 시선만으로도 이나은은 마치 숨이 막히는 듯 입을 다물었다.얼마 전 윤형우에게 논리적으로 완전히 눌려 말을 잃은 기억이 순식간에 되살아났기 때문이다.이 자리에서 감히 더 말해봤자 자신에게 불리할 게 뻔했다.하지만 곧, 이나은의 눈빛이 은근히 빛났다.‘이건 뜻밖의 행운이야.’신지아의 영상, 그 남자의 정체, 윤씨 가문의 윤형우.이제 명백해졌다.윤씨 가문의 남자라면 이 일은 변씨 가문에도 치명적이다.감정이든, 체면이든 이혼은 피할 수 없었다.이나은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고 멀리서 하민재와 시선을 맞추며 미묘하게 웃었다.하민재는 가슴을 툭툭 치며 ‘OK’ 사인을 보냈다.변도영이 결단을 못 내리면 신지아를 무너뜨리는 건 가장 친한 본인 몫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그의 계산은 명확했다.신지아의 이름이 더럽혀진 이상 박수미가 아무리 감싸려 해도 변씨 가문의 어른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결국 이혼은 확정이니 신지아가 자리를 비우면 이나은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채우게 된다.하민재는 잔을 들어 올리며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끝났어.’그러나 정작 변도영은 조금도 그 ‘승리’를 즐기지 못했다.이제야 그는 깨달았다.며칠 전부터 변도영을 짓눌러오던 이상한 불안감의 정체를.그건 바로, 이날 이 자리에서 터질 일.그는 윤씨 가문이 뭔가 꾸미고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이렇게 신지아를 겨냥해 올 줄은 몰랐다.변도영의 시선이 윤형우에게로 향했다.그러나 이상하게도 분노보단 냉기가 돌았다.고우빈이 아니라 윤형우라서일까, 의외로 그는 차분해졌다.“신지아.”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오늘은 할머니의 생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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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박수미의 마지막 한마디가 떨어지자 연회장은 순식간에 술렁였다.고미애와 변승주는 동시에 굳어버렸고 변승주가 재빨리 무대로 올라가 마이크를 낚아챘다.“어머님이 피곤하셔서 잠시 헛소리를 하신 겁니다. 얼른 모시고 들어가 쉬시죠.”고미애도 곧 정신을 차리고 부드럽게 웃으며 박수미의 팔을 붙잡았다.하지만 박수미는 움직이지 않고 오히려 문 쪽을 가리켰다.그 순간, 검은 정장을 입은 변호사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한 장의 서류를 신지아 앞에 내밀었다.“이건 주식 양도 계약서입니다.”신지아는 그대로 굳어버렸다.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박수미의 지분은 변씨 가문의 절반 가까이였다.그건 곧, 그녀가 이 문서에 사인하는 순간 변씨 가문의 절반이 자신의 손에 들어온다는 뜻이었다.변하늘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며 앞으로 뛰어나오더니 변호사의 손에서 서류를 빼앗으려 하며 신지아를 노려봤다.“신지아 씨, 당신 도대체 할머니께 무슨 짓을 한 거예요? 이런 지분을 왜 외부인한테 넘기시겠어요? 약이라도 먹인 거예요?”변호사는 미동도 없이 서류를 되찾아 들었다.“변하늘 씨, 오해하지 마세요. 유언과 양도 계약은 모두 법적으로 유효합니다. 서류 작성 당시, 어르신의 정신 상태도 완전히 정상으로 판명됐습니다.”변호사는 다시 신지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서명 부탁드립니다.”신지아는 숨이 가빠졌고 머릿속이 하얘진 채 한참을 망설였다.그때, 박수미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지아야, 내가 말했지? 오늘 무슨 말을 하든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라고. 기억나니?”신지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호텔에 오기 전, 박수미가 굳이 불러서 한 말이었다.하지만 그때까진 이런 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이건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었다.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된 일이었다.신지아는 이유를 물었다.왜 자신에게 이런 거대한 재산을 물려주려는지.박수미는 담담히 말했다.“너희 어머니가 내 아들의 목숨을 구했지. 그 일이 없었으면 변씨 가문도, 나도 지금 여기 없었을 거야. 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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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박수미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신지아와 윤형우도 조용히 연회장을 빠져나왔다.윤형우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축하해요. 이제 곧 연성시 제일의 부자가 되시겠네요?”그는 눈을 찡긋하며 웃었다.“제 안목이 역시 좋은 것 같네요. 이렇게 예쁘고 돈 많은 여자 친구를 만나다니.”윤형우가 웃으며 신지아의 손을 들어 손바닥을 자신의 뺨에 대고 살짝 비볐다.그녀의 손끝엔 미세한 굳은살이 있었지만 손바닥은 따뜻하고 부드러웠다.그 온기와 촉감이 묘하게 중독적이었다.입을 맞췄던 그날 이후, 윤형우는 마치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사람처럼 신지아의 손끝 하나에도 자꾸 시선이 갔다.조금 전 연회장 무대 위에서도 그는 몰래 신지아의 손을 잡았다가 그녀의 차가운 눈빛에 곧바로 손을 뗐다.그 순간조차 귀엽다고 생각한 자신이 우스웠다.“이제 부자가 되면 저 같은 사람은 싫어지겠죠?”윤형우는 일부러 애교 섞인 목소리로 투정하듯 말했다.신지아는 웃음 섞인 숨을 내쉬었다.이제는 피할 이유도 없었다.이미 모두가 알게 된 관계라 그는 그녀의 손을 계속 쥐고 있었다.“싫어질 리 없어요.”신지아는 담담히 말했다.“게다가 전 부자가 될 일도 없어요. 변씨 가문이 절 가만히 두겠어요? 그 사람들은 제가 그 지분을 진짜로 손에 쥐게 내버려두지 않을 겁니다.”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박수미의 진심은 고마움이었지만 변씨 가문은 그렇게 단순한 곳이 아니었다.오늘 사인을 한 것도 일종의 계획에 불과했다.신지아는 연회장에서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태도가 어떻게 미묘하게 바뀌었는지 느꼈다.몇몇은 몰래 명함을 내밀며 은근히 다가왔고 몇몇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태도를 바꿨다.한때는 ‘버려진 사람’이라며 외면하던 이들이 이제는 다시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윤형우는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손등에 입을 맞췄다.그의 숨결이 닿자 향긋한 향수 냄새가 살짝 흩어졌다.“그럼 지아 씨는 그걸 갖고 싶어요?”그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의미심장한 미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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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신지아, 우리 제대로 한 번 이야기하자.”이나은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을 꺼냈지만 그 미소에는 날이 서 있었다.신지아는 그녀의 속내를 단번에 읽어냈다.“저희 사이에 더 얘기할 게 있을까요?”그녀는 냉담하게 대꾸하고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이나은을 스치듯 지나쳤다.하지만 이나은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오히려 미소를 유지한 채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변하늘 말로는 오늘 아침에 네가 변씨 저택에 다녀왔다던데... 그러니까 할머니가 지분을 네게 넘기겠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거 맞지?”그녀는 한 발 더 다가서며 씩 웃었다.“그동안 다 참고 산 것도 다 그걸 위해서였어? 그렇게 다 참아가며 5년이나 견딘 이유가 결국 변씨 가문의 돈 때문이었던 거야?”그 말은 날카로운 비수처럼 던져졌다.신지아가 그 어느 한마디라도 잘못 반응하면 그걸 증거 삼아 여론을 조작하려는 속셈이 분명했다.이나은의 머릿속에는 이미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부성 그룹의 협력사들 대부분이 이번 유언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내가 신지아가 재산 때문에 접근했다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면 그들은 당연히 할머니한테 유언 철회를 요구할 거야.’변씨 가문은 박수미를 막을 수 없지만 협력사들이 손잡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그녀는 다시 웃으며 신지아를 도발했다.“왜 대답 안 해? 겁나? 할 담은 있으면서 인정도 못 해?”신지아가 마침내 발걸음을 멈췄다.고요한 복도에 그녀의 목소리가 차분히 울렸다.“그런 일은 변씨 가문과 제가 알아서 해결할 문제예요. 이나은 씨 같은 외부인이 끼어들 일은 아니죠.”이나은의 눈이 번쩍였다.“그럼 인정하는 거네?”신지아는 짧게 그녀를 바라보고는 그 질문을 무시하듯 조용히 말했다.“전 오히려 이나은 씨가 기뻐할 줄 알았어요.”“뭐?”“그렇게 원하던 그 자리... 다 내줬잖아요. 그토록 원하던 사람도 다 넘겼는데 이나은 씨는 고마워하기는커녕 이제 와서 저한테 재산 문제를 따져요?”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아니면 변도영 씨랑 있는 이유가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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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윤씨 가문 저택.짙은 어둠이 가라앉은 듯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두꺼운 문밖에는 검은 정장을 입은 보디가드들이 줄지어 서 있었지만 그 누구도 감히 숨소리 하나 크게 내지 못했다.문이 열리자 윤형우는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멈췄다.거실 한가운데 윤해원이 서 있었다.차가운 조명 아래, 그녀의 얼굴은 유리처럼 매끄럽고 차디찼고 손에는 채찍이 들려 있었다.이내 윤해원이 팔을 휘두르자 채찍이 허공을 갈랐다.순간, 유리 테이블이 산산이 부서지며 날카로운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윤형우는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지만 곧 깨달았다.그녀가 진짜로 그를 때리려던 건 아니라는 걸.늘 그랬다.윤해원은 보여주는 방식으로 분노를 다스렸다.그는 태연한 척 미소를 지었다.“우리 예쁜 누나, 누가 또 누나를 화나게 했어? 이렇게 예쁜 손으로 채찍을 휘두르면 다칠 텐데? 누가 그랬는지 말해. 내가 대신 처리해 줄게.”윤형우가 장난스럽게 다가가 윤해원의 손에서 채찍을 빼앗으려 했지만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무릎 꿇어.”윤형우는 순식간에 반응했다.주저 없이 매끄럽게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그 빠른 동작이 오히려 윤해원을 웃게 만들었다.화가 나야 하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녀는 채찍을 들어 올리더니 가볍게 윤형우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너 신지아 씨랑 사귄다면서?”윤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전에 뭐라고 했지?”윤해원의 목소리는 한층 더 서늘해졌다.“신지아 씨는 변도영의 아내였어. 변씨 가문 사람이야. 윤씨 가문과 변씨 가문의 관계가 어떤지는 너도 알잖아. 게다가 신지아 씨는 연성시에서 조롱거리야. 그런데도 너는... 왜 하필 신지아 씨야?”그녀는 채찍을 감아쥔 채 윤형우의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너는...”결국 윤해원은 허탈한 표정으로 소파에 털썩 앉았고 윤형우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지아 씨는 이제 변 대표님이랑 이혼했어. 우린 합법적인 연인이야. 그리고 지아 씨가 세간의 비웃음을 산 건 지아 씨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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