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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1화

변도영이 메시지를 열어보니 신지아가 보낸 건 단 한 줄의 간결한 문자였다. [본가에 있어요.]변도영은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데리러 가서 같이 가기로 했잖아?]신지아가 답장을 보냈다.[당신이 늦었어요.]변도영은 시간을 확인했다.[겨우 한 시간 늦었을 뿐이야.]생신 잔치에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되니까 사람을 더 고용해 순찰을 강화하고 준비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됐다.오늘은 박수미의 생신 잔치였으니 신지아도 그 정도는 이해해 줄 거로 생각했다.신지아가 변도영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그녀는 본가 거실에서 박수미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변도영의 답장을 보고도 신지아는 놀라지 않았다.겨우 한 시간이라니 익숙한 말이었다.변도영에게 한 시간은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는 시간이었다.그는 약속에 자주 늦었고 기분이 좋을 때는 두세 시간쯤 늦는 일도 흔했다. 기분이 나쁠 때는 아예 그 자리에 신지아를 밤새도록 기다리게 했다.한 시간쯤이야 그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예전엔 신지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지만 이번엔 이상하게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신지아가 답장을 보내지 않자 변도영은 짧게 물음표를 보냈다.신지아는 차분하게 답장했다.[한 시간도 시간이고 저도 그 한 시간 동안 할 일이 있어요. 아무도 계속해서 당신만 기다려주진 않아요.]신지아의 답장을 받은 변도영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고 그는 신지아가 지나치게 과민반응한다고 생각했다.‘그 말 패기가 좀 있어 보이네.’이런 일은 예전에도 있었지만 신지아가 이렇게 단호한 말투로 답장한 적은 없었다.이번 UME 발표회가 신지아에게 자신감을 준 모양이었다.변도영은 신지아와 결혼한 지 벌써 5년이 되었기에 그녀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평범한 대학교를 졸업했고 석사나 박사 학위도 없으며 신지아 가문의 딸이라는 신분 외에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그저 평범한 여자였다.이번 로봇 개발은 신지아가 직접 실력으로 이뤄낸 것이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아마도 고우빈이 어떻게든 신지아에게 허울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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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신지아는 잠시 멈칫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끄덕였다.변씨 가문에 시집온 이후 박수미는 신지아를 친딸처럼 대했다. 신지아는 박수미가 자신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설령 박수미가 오늘 밤 자신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더라도 신지아는 지난 몇 년 동안 박수미가 자신을 보살펴준 것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하며 응할 것이다.몇 마디 더 나눈 후 박수미는 부축받으며 침실로 들어가 수연 현장으로 갈 준비를 했다.신지아도 호텔로 출발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차에 타자마자 시동을 걸기도 전에 조수석 문이 갑자기 열렸고 신지아는 눈앞에서 변하늘이 잽싸게 차에 타더니 능숙하게 조수석에 앉는 것을 멍하니 바라봤다.“출발해요.”변하늘이 말했다.신지아는 변하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저랑 같이 호텔에 가려고요?”변하늘은 콧소리로 짧게 응답했다.“변하늘 씨는 운전할 줄 알잖아요?”신지아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변하늘은 약간 찔렸지만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차가 고장 났어요. 다른 차는 익숙하지 않아요.”변하늘의 차는 사실 고장 나지 않았다.신지아에게 먼저 차를 같이 타자고 하는 것이 조금 민망했지만 신지아가 지금 UME에 있고 게다가 고양이와 아주 친해 보이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신지아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좀 있었다.신지아는 변하늘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게다가 변씨 가문에는 차가 많으니 변하늘이 탈 수 있는 차가 많을 텐데 전부 익숙하지 않을 리가 없다.정말 익숙하지 않더라도 변씨 가문의 기사를 불러 데려다 달라고 할 수도 있다.예전의 변하늘은 기사를 불러 달라고 하는 편이었지 신지아에게 부탁하지 않았다.분명 변하늘은 할 말이 있어서 신지아를 찾아온 것이다.신지아는 더 이상 예전처럼 변하늘을 봐주지 않고 말했다.“할 말이 있으면 돌려 말하지 말고 직접 말해요.”변하늘은 잠시 멈칫하며 시선을 피했다.“오해에요. 아무 말도 할 생각 없어요.”“그래요? 그럼 내려요. 변하늘 씨를 데려다주지 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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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전에는 변하늘이 고우빈에게 스캔들 상대로 의심되는 여자가 있다는 사실에 슬퍼하기도 했다.왜냐하면 고우빈은 평소 사생활이 깨끗하고 여자와 스캔들이 난 적이 없다는 것이 공공연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게 여자에 대한 소식이 들려온다면 거의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그 스캔들의 주인공이 신지아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오히려 안심되었다.어쨌든 신지아는 이미 자신의 오빠와 결혼했고 오빠를 매우 사랑하며 오빠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그동안 애쓰는 모습을 모두가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함이 남아 있었다.고우빈 또한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능력 무엇보다 한결같은 성격으로 많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기 때문에 신지아가 인터넷의 뜬소문을 믿고 흔들려 고우빈에게 마음이 생길까 봐 걱정스러웠다.신지아는 고개를 돌려 변하늘의 기대와 긴장이 뒤섞인 눈빛을 보고서야 변하늘이 화를 내면서도 굳이 자신의 차에 타려 했던 이유를 깨달았다.결국 고우빈 때문이었다.신지아는 운전하면서 말했다.“첫 번째 질문에만 대답할 수 있어요. 나머지 두 질문은 상대방에게 해야지 저한테 할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해요.”변하늘도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그럼 신지아 씨와 고우빈 씨는 무슨 관계죠?”“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예요.”신지아가 답했다.변하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소꿉친구?”“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변하늘은 순간 심장이 쿵쾅거렸다.비록 연애 경험은 없지만 소꿉친구는 서로에게 감정이 생기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태연한 척하며 말했다.“그럼 신지아 씨는 고우빈을 좋아하지 않겠네요?”‘그렇지 않다면 왜 고우빈과 함께하지 않고 오빠와 결혼했을까?’신지아는 그 말을 듣고 살짝 눈썹을 치켜올렸다.신지아도 십 대 시절을 겪었고 십 대 시절의 설렘을 느껴봤기에 변하늘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신지아는 변하늘의 말에 동조하지 않고 오히려 말했다.“고우빈 씨는 잘생겼고 능력도 뛰어나니 당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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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변도영도 자신처럼 화를 내며 자신의 제안에 동의할 줄 알았지만 수화기 너머로 몇 초간 침묵이 흐른 뒤 냉담한 목소리로 훈계하듯 말했다.“변하늘,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신지아는 네 올케야. 신지아와 이혼할지 말지는 내가 알아서 결정할 문제지 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변하늘은 의문이 들었다.“...?”“게다가 변씨 가문에서는 결혼이 장난이 아니며 사람을 겁주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걸 가르치지 않았어? 다시는 나에게 이혼하라고 부추기면 할머니께 말씀드려 네 행동을 바로잡게 할 거야.”변하늘은 어이없었다.“...오빠, 변했어.”“그래. 더 바빠졌어. 너와 이야기할 시간이 없으니까 끊을게.”변도영은 전화를 끊었다.그는 발코니에 서서 손에 든 다이아몬드 반지를 바라보며 검은 눈동자를 멍하니 빛냈다.변도영은 어떻게 하면 신지아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자연스럽게 건네줄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어떤 방식으로 줘도 너무 작위적일 것 같았다.그들은 이미 결혼한 지 5년이나 되었다.결혼식 날에도 주지 못했던 다이아몬드 반지를 다른 남자가 준 반지를 받은 뒤에 주다니.마치 자신이 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하지만 주지 않는다면...’변도영은 다시 신지아의 중지에 끼워진 다른 남자가 준 다이아몬드 반지를 떠올렸고 방금 변하늘이 신지아가 고우빈을 좋아한다는 말을 했던 것도 생각해 냈다.변도영은 신지아가 홧김에 한 말일 거라고 여겼지만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짜증이 났고 모든 것이 불쾌하게 느껴졌다....변하늘은 전화를 끊은 후 한숨을 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하늘을 올려다봤다.‘망했어. 완전 망했어. 오빠가 정말 신지아에게 홀린 것 같아.’예전에는 그녀가 그에게 고자질하면 그는 이렇게 냉담하게 대하지 않았다.변하늘은 안절부절못하며 초조해하다가 결국 화가 난 채 호텔 휴게실로 들어갔다.이나은은 휴게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었는데 잔뜩 화가 난 변하늘을 보고 눈빛이 살짝 흔들리더니 곧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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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이나은은 눈빛을 살짝 흔들며 물었다.“신지아가 그런 짓도 했어? 그런데 네가 어떻게 신지아가 한 짓이라는 걸 알아?”변하늘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날 만난 사람은 언니와 오빠 말고는 신지아밖에 없었어요. 신지아 씨가 아니면 누구겠어요? 언니와 오빠는 나를 해치지 않을 거잖아요.”이나은은 눈빛을 가볍게 빛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변하늘은 계속해서 말했다.“더 기가 막힌 건 그날 제가 정말로 신지아 씨가 진심으로 저를 잘 대해주는 줄 알았다는 거예요. 하지만 모두 가짜였어요. 그러니 분명 오빠도 그렇게 속였을 거예요. 그런 사람은 절대 오빠와 함께하게 둘 수 없어요.”“나은 언니, 제 말이 맞죠? 속이 시커먼 그런 여자는 우리 변씨 가문에 발도 들여놓을 자격이 없어요.”변하늘은 고개를 들어 이나은에게 물었다.이나은은 어색하게 웃었다.변하늘은 이나은의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해서 말했다.“나은 언니, 안심해요. 오빠가 저렇게 홀린 듯이 있는 꼴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을 거예요. 제가 꼭 언니를 도와줄게요. 제가 직접 고른 새언니는 마음씨 착하고 저와 오빠에게 모두 잘해주는 사람이어야 해요.”그렇게 말하며 변하늘은 팔을 뻗어 주먹을 쥐고 승리의 포즈를 취했다.이나은은 입꼬리를 당겨 미소를 지었다.변하늘의 순진한 모습을 바라보며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변하늘은 정말 나를 의심하지 않는 걸까? 아니면 방금 했던 말이 일부러 나를 떠보려 한 걸까?’그때 생신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이 많아 호텔 아래 주차장이 꽉 차 있었고 신지아는 주차장 안을 빙빙 돌다가 겨우 빈자리를 찾아 주차했다.신지아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로 올라갔고 로비에서 나오자마자 문 앞에서 윤형우를 발견했다.오늘 그는 와인색 정장을 입고 있었는데 원래도 훤칠한 얼굴이 더욱 창백해 보였고 높은 콧대에는 여전히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하지만 왠지 모르게 이전과는 다른 사람처럼 변해 있었다.윤형우는 더 온화해졌고 마치 한 마리 나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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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어떻게 이럴 수가...”그녀는 식은땀이 순식간에 등줄기를 타고 흘렀고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고우빈은 재빨리 신지아를 붙잡아 몸을 지탱하며 말했다.“고씨 가문에서 연성시 바닷가에서 발견한 거야. 어쩌면 이진이가 실수로 잃어버린 것일 수도 있어.”“아니요. 그럴 리 없어요.”신지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 귀걸이는 이진이가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건데 잃어버렸다고 해도 무슨 수를 쓰든 되찾으려고 했을 거예요. 혹시...”끔찍한 생각이 신지아의 머릿속을 스치자 그녀는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고이진이 떠난 후 신지아는 항상 이 일을 다시 떠올렸다.그녀는 몇 번이고 후회하며 자신이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했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만약 자신이 고이진이 도망치는 것을 돕지 않았다면 신씨 가문이 복수를 당해 지금과 같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을 것이다.고이진은 자신이 원했던 결혼을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무사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생사를 알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럴 때마다 신지아는 고이진의 수척하고 창백한 얼굴과 자신에게 울며 애원하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신지아의 눈가가 붉어졌다.고우빈은 신지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고 어깨를 감싸안았다.“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 일을 숨길 수는 없어. 신지아, 그 사람이 어떤 미치광이인지 알잖아. 당분간 조심해야 해...”윤재혁을 떠올리자 신지아의 눈앞에 윤씨 가문에서 수백 명을 살해하고 피투성이 손으로 후계자 자리를 차지했던 극단적인 남자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신지아는 온몸을 가늘게 떨었다.자신이 고이진이 도망치는 것을 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윤재혁은 그동안 여러 번 신지아를 추궁했다.하지만 신지아는 어쨌든 부성 그룹의 며느리였기에 윤재혁은 아무리 미워하고 해코지하려 해도 정도를 조절했다.신지아가 이혼하고 부성 그룹과 인연을 끊게 된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신지아는 숨을 가쁘게 쉬었다.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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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변도영은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정해놓고 있었다.신지아는 분명 이 신분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예전에 신지아는 자신을 사랑해서 무슨 수를 쓰든 결혼하고 싶어 했다. 이 결혼은 신지아의 어머니가 목숨과 맞바꾼 것이기도 하다.신지아가 이 신분을 포기하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이 헛된 것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게다가 고씨 가문 사람들은 득실을 따지는 데 능숙하니 고우빈이 결혼 경력이 있는 여자 그것도 변씨 가문과 결혼했던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신지아가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다면 그런 어리석은 짓은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신지아의 대답을 기다리는 몇 초 동안 변도영은 손을 주머니에 넣고 미리 준비해 둔 반지 케이스를 움켜쥐었다.그는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네가 영원히 고우빈 씨와 엮이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나는…”“안 할래요.”신지아는 확신과 자신감으로 가득 찬 변도영의 눈빛을 마주하며 담담하게 말을 잘랐다.변도영은 당황하며 되물었다.“뭐라고?”“변씨 가문의 며느리 더 이상 안 할래요. 그리고 당신과 저는 이미 이혼했어요.”그렇게 말하며 신지아는 미리 준비해 둔 이혼 신고서를 가방에서 꺼내 변도영에게 건넸다.표지에 찍힌 이혼이라는 두 글자를 보자 변도영은 멍하니 굳어버렸다.잠시 후 무슨 생각을 했는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신지아, 날 속이려고 꼼수를 부리지 마. 가짜 이혼 증명서를 만들어서 날 속이는 게 재밌어?”“진짜예요.”신지아가 말했다.“말도 안 돼.”만약 정말로 이혼했다면 자신이 전혀 모를 리가 없다.게다가 결혼한 지 벌써 몇 년이나 되었고 그동안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 이혼할 때 재산 분할 협의서도 작성해야 한다.신지아는 전에 자신에게 이혼 협의서를 건넨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서명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신지아는 변도영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그날 밤 당신에게 서명하라고 했던 것은 신씨 가문의 협력 문서가 아니라 우리의 이혼 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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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신지아는 변도영의 말에서 약한 모습을 숨기려는 의도를 알아챘지만 그저 웃음을 지었다.‘나는 변도영 씨가 너그럽게 사모님 자리를 내어주는 것에 감사라도 해야 하는 걸까?’“됐어요.”신지아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보상은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을 주는 거예요. 지금 제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당신과의 결혼이겠죠. 저는 당신들의 사랑을 위해 자리를 비켜줄 생각이에요.”그녀는 변도영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변도영은 화가 난 듯 다른 손까지 붙잡으며 이마에 핏대를 세웠다.관자놀이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변도영은 신지아의 말에서 흠잡을 데가 없음을 알았고 그로 인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지만 그는 그 분노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결국 그는 솔직하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하지만 난 너와 이혼하는 것에 동의한 적이 없어.”신지아는 변도영이 그런 말을 할 것을 이미 예상했다.그는 아마 이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이 소식을 듣고 당황하며 상징적으로 만류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생각했다.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무엇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었다.5년 동안이나 밥을 준 강아지도 정이 들기 마련이듯 신지아도 변도영과 5년 동안 부부로 살았다.변도영이 그녀를 붙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신지아는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단지 습관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변도영이 이나은과 다시 가까워지면 곧 이 습관도 잊혀질 것이다.신지아는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오늘은 통보하는 자리지 당신의 동의를 구하러 온 자리가 아니에요. 오늘은 할머니의 생신 잔치이니 이 일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지만 할머니께서 저희를 많이 걱정하시니 이미 짐작하고 계실 거예요. 언제 소식을 발표할지는 당신이 결정하세요. 어쨌든... 정이 있었으니 나중에 제가 협조해야 할 일이 있으면 최대한 협조할게요. 제 할 말은 다 끝났으니 더 이상 질문이 없으시면 먼저 돌아갈게요.”깔끔하게 말을 마친 신지아는 이혼 증명서를 변도영의 손에 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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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변도영이 멍한 틈을 타 신지아는 변도영을 밀어내고 호수 속으로 뛰어들었다.밤의 호수는 유난히 차가웠고 신지아는 물에 들어가자마자 온몸을 떨었다.예전에 수영장에서 익사할 뻔한 이후로 시간을 내어 수영을 배웠지만 수영장은 경험했어도 외부 호수에서는 시도해 본 적이 없었고 낯선 호수와 지지대가 없는 가장자리에서는 여전히 공포감을 느꼈다.그 다이아몬드 반지를 떠올리고 그것이 어머니가 남겨준 마지막 유품이라는 것을 생각하자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머리를 물속에 넣고 사방을 둘러보며 다이아몬드 반지를 찾았다.그때 변도영도 정신을 차리고 호수를 바라봤다. 호수에는 더 이상 신지아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다.변도영은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미쳤어. 정말 미쳤어. 그 남자가 준 다이아몬드 반지 때문에 저 지경까지 하다니. 정말 저렇게 사랑하는 걸까?’변도영은 뺨의 화끈거리는 고통을 느끼며 분노에 휩싸여 당장이라도 몸을 돌려 떠나고 싶었지만 왠지 모르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몇 초 후 그는 외투를 벗었다.막 뛰어내리려는 순간 갑자기 누군가가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도영아, 뭐 하는 거야? 너무 위험해.”다정하고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변도영은 몸을 돌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나은을 보며 말했다.“신지아가 물속에 있어.”“호숫 물은 깊지 않으니 괜찮을 거야. 하지만 오늘 밤은 할머니의 생신 잔치이니 네가 주최해야 하잖아. 감기에 걸리면 어떡해?”이나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게다가 방금 일은 내가 봤어. 신지아 씨는 네가 간섭하는 걸 원하지 않아. 네가 정말 뛰어내린다고 해도 신지아 씨는 고마워하지 않을 거야.”사실 아까 변도영이 신지아를 데리고 이곳에 왔을 때 이나은은 두 사람을 따라왔고 두 사람이 다투는 소리도 들었다.당연히 두 사람이 이미 이혼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원래라면 매우 기뻤겠지만 신지아가 그런 극단적인 행동을 할 줄은 몰랐다.신지아가 일부러 호수에 뛰어들어 변도영에게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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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신지아는 온몸이 물속에 잠긴 채 입을 벌리자 사방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콧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소리를 지르려 해도 나오지 않았다.손을 흔들어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시야 너머로 변도영이 이나은을 부축하며 뭍으로 헤엄쳐 가는 모습만 보였다.마치 한 달 전 교통사고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신지아는 이미 결과를 예상했기에 더 이상 생각할 겨를 없이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리에 휘감긴 물풀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그때야 이쪽 수면 아래에 물풀이 훨씬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심지어 이나은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스쳤지만 곧바로 머릿속에서 밀려 나갔다.물풀을 잡아당길수록 오히려 더 강하게 조여왔고 손으로 뜯어내려 해도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산소가 부족해지자 머리가 어지럽고 숨이 막히는 듯한 질식감이 몰려왔다.‘안 돼. 죽을 수 없어.’이제 막 인생의 방향을 찾았고 이제 막 새롭게 태어났으며 오랫동안 자신을 옭아매던 결혼에서도 벗어났는데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신지아는 필사적으로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고 물풀이 뜯어지지 않자 차라리 뿌리째 뽑아내기로 결심했다.마치 어머니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것처럼 물풀의 뿌리는 이미 끊어져 있었고 그저 돌 밑에 눌려 있을 뿐이었다.신지아가 온 힘을 다해 잡아당기자 물풀이 뽑혀 나왔다.그녀는 안도감과 함께 기쁨이 밀려와 몸을 돌려 수면 쪽으로 헤엄쳤다.그러나 산소 부족이 오래 이어진 탓에 물 위로 떠오르는 순간 눈앞이 점점 어두워지며 시야가 캄캄해졌다.그녀의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갔다.필사적으로 팔을 휘저어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몸은 말을 듣지 않았다.순식간에 차가운 물이 입과 코 귓속으로 밀려들었고 기침하고 싶어도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입안과 폐 속에 퍼지는 피비린내가 더욱 짙어졌다.신지아는 희미하게 반짝이는 수면을 절망적으로 바라보았다.물결 사이로 비치는 흐릿한 시야 너머 변도영이 연약한 이나은을 부축한 채 뭍으로 올라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는 돌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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