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e Kapitel von 애걸복걸! 도련님의 고백: Kapitel 271 – Kapitel 280

362 Kapitel

제271화 이혼

하병우가 조경순을 어떻게 구슬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날 오후 그는 하시윤에게 전화를 걸어 인맥을 좀 동원한 덕분에 이혼 서류 정리가 끝났다고 전해왔다.하시윤이 믿지 않을까 봐 사진까지 찍어 보내더니, 또 얼굴을 직접 보고 싶다고 청했다.배가 불러 거동이 불편한 딸을 배려한답시고 그는 직접 서씨 가문 본가 앞까지 오겠다고 했다.집 안으로 들어올 배짱은 없는지 그저 대문 앞에서 만나 이혼 서류만 확인시켜 주겠다는 식이었다.사실 하시윤이 굳이 서류를 눈으로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서지혁에게 부탁해 조사해 보면 금방 나올 일이었다.하지만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하병우의 제안을 수락했다.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다리도 불편한 양반이 이 먼 곳까지 오느라 고생 좀 해보라는 심보였다.전화를 끊은 그녀는 대문 앞 흔들의자에 앉아 휴대폰으로 잔잔한 클래식을 틀어놓았다.서지혁은 이게 태교 음악이라고 했지만 정작 그녀는 뭐가 좋은지 잘 몰랐다. 뱃속의 아이는 좀 알까 싶었다.30분쯤 지났을 때, 하병우에게서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하시윤은 전화를 끊고도 일부러 한참을 더 앉아 있다가 느지막이 몸을 일으켜 유유히 밖으로 나갔다.하병우는 택시를 타고 왔다. 상처가 아물고는 있다지만 운전대를 잡을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는 뒷좌석에 앉아 문만 열어둔 채 내리지는 못했다.“발에 아직 힘을 줄 수가 없어서 못 내리는구나. 이해해 줘.”그는 이혼 신고 접수증과 함께 이혼 합의서를 내밀었다.하시윤은 그것들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이혼 서류라는 걸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합의서를 보니 조경순이 완전히 빈손으로 쫓겨난 건 아니었다. 어느 정도 돈을 챙기긴 했지만 액수는 그리 크지 않았다.재산의 대부분은 여전히 하병우의 몫이었다. 집과 차, 그리고 회사 지분 모두 그의 단독 소유로 명시되어 있었다.상식적으로 조경순이 그 오랜 세월을 함께 살며 재산을 불렸는데 작정하고 덤볐다면 혼인 기간 중 형성된 재산을 훨씬 더 많이 가져갈 권리가 있었다.하시윤이 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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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정략결혼

하시윤은 아무것도 못 들은 척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연재윤이 한숨을 내쉬며 변명을 늘어놓았다.“아, 주변에 사람 없으면 이놈의 입이 방정이라니까요. 시윤 씨, 제 말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세요. 아시겠죠?”서지혁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곧이어 화제를 돌렸다.“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회장님이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연재윤은 조금 생각하더니 대답했다.“책임자가 서 대표님이라는 걸 알고, 또 서 대표님이랑 계약한 걸 알고 좀 놀라신 눈치더라고요.”그가 덧붙였다.“영감님은 서 회장님이랑 손잡고 싶어 하셨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책임자가 대표님으로 바뀌니까 영 미덥지가 않으신 모양이에요. 오늘 식사 자리에서 아마 대표님 밑바닥까지 훑어보려 들 텐데, 마음 단단히 먹는 게 좋을걸요?”서지혁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훑어본다고요? 저를요? 그거참 재미있겠네요.”“절대 그 영감님 우습게 보지 마세요. 성격이 아주 지랄 맞거든요. 저도 이제 한계라니까요.”연재윤은 소파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큰아들도 사람 구실 못 하게 키워놓은 거 보면 그게 다 자식 탓만은 아니지 않겠어요? 본인 교육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걸 좀 반성해야죠. 아니면 그냥 연성 그룹 종자가 문제인 건가?”그러더니 그는 갑자기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했다.“아, 나도 별종인 거 보니까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여기 하나 더 있네요.”하시윤은 뭐가 저렇게 즐거운지 알 수 없었지만 연재윤은 몸까지 들썩이며 한참을 웃어댔다.조명 아래 번쩍이는 커다란 귀걸이와 심드렁한 눈매, 그리고 완벽하게 차려입은 슈트의 조합은 그야말로 ‘점잖은 쓰레기’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모습이었다.서지혁은 그의 말을 받아주는 대신 하시윤의 손을 끌어당겨 그녀의 약지에 끼워진 반지를 만지작거렸다.십여 분이 지나자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서강 그룹과 연성 그룹의 실무 직원들이었다.하지만 연성 그룹의 회장 연상훈은 보이지 않았다.그 모습을 본 연재윤이 거침없이 내뱉었다.“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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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손을 쓰다

연상훈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불쾌한 기색을 전혀 숨기지 않는 바람에 직원들은 그의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그는 상 위에 젓가락을 올려둔 채 처음부터 끝까지 손 한 번 대지 않았다.10분이나 지났을까. 그는 다시 몸을 일으키더니 잔을 들었다. 급한 용무가 있어 먼저 일어나야 하니 다들 천천히 즐기라는 의례적인 인사였다.그 말을 들은 연재윤이 아쉬운 척하며 끼어들었다.“아니, 벌써 가시게요?”그는 비아냥 섞인 투로 덧붙였다.“거봐요. 제가 뭐 하러 오시냐고 했습니까. 몇 분 앉아 있지도 못하고 일어날 걸, 몸만 고생이시네.”연상훈은 아들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그는 사람들과 마지막으로 술잔을 부딪친 뒤 단숨에 술을 비워냈다. 잔을 내려놓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그는 곧바로 몸을 돌려 나갔다.떠나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빨랐다.하시윤은 이 틈을 타 서지혁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저분, 막내아들을 정말 버거워하시는 것 같네.”“말도 마. 나도 버거워 죽겠으니까.”서지혁이 연재윤을 힐끗 보며 대답했다.룸 문이 닫히자마자 연재윤은 들고 있던 젓가락을 상 위에 휙 던져버렸다.“드디어 가셨네.”그가 투덜거렸다.“영감탱이가 버티고 있으니까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더라고.”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고?그의 말에 대꾸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입가에 기름기가 번들거릴 정도로 잘만 먹어놓고 저런 소리가 나오나 싶어서였다.어쨌든 연상훈이 떠나자 룸 안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부드러워졌다. 사람들은 다시 웃고 떠들며 식사를 즐겼다.하시윤은 일찌감치 식사를 마치고 구석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하병우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조바심이 났는지 서지혁에게 화성 그룹 이야기를 꺼냈냐고 채근하는 내용이었다.그녀가 답장을 하지 않자 메시지는 대여섯 통이나 이어졌다.순간적으로 감정이 앞서 재촉을 퍼붓던 하병우는 뒤늦게 아차 싶었는지 딴소리를 늘어놓으며 수습에 나섰다. 다리 회복이 더뎌서 걷기도 힘들다느니, 조경순과 이혼해서 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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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도망갈까 봐 무서워서

건물 안쪽 구석에는 커다란 철제 탁자가 놓여 있었다. 탁자라기보다는 거대한 작업대 혹은 도축용 도마에 가까운 형태였다. 직접 용접해서 만든 듯한 네 개의 철제 다리 위로 스테인리스 상판이 육중하게 얹혀 있었다.거리가 좀 떨어진 탓에 조명 빛이 끝까지 닿지는 않았다.서지혁은 한참 동안 그 형체를 응시했다. 가까이 다가가지는 않은 채 멀찍이서 손전등으로 1층 전체를 훑었다.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이제 그 기괴한 제단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공간이었다.그는 몸을 돌려 밖으로 나왔다. 다시 세 개의 자물쇠를 단단히 채웠다.주변을 살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것을 확인한 뒤에야 그는 방으로 돌아갔다.샤워를 마치고 몸을 정돈한 서지혁이 하시윤의 방으로 향했다.문을 열자마자 무언가 날카로운 기세로 날아왔다. 그는 본능적으로 팔을 뻗어 그것을 낚아챘다.베개였다.고개를 드니 하시윤이 침대에 앉아 있었다. 불이 꺼진 어둠 속에서도 그녀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나가. 여기 오지 말라고.”서지혁이 픽 웃으며 베개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왜 이래? 내가 없어서 잠이 안 왔어?”하시윤이 씩씩거리며 다시 누웠다.“진짜 짜증 나. 지혁 씨 너무 귀찮다고.”서지혁은 웃음을 머금은 채 침대에 올라가 그녀의 옆에 누웠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녀를 품으로 끌어당겼다.“잠깐 할머니 뵙고 왔어.”그가 덧붙였다.“기력이 예전 같지 않으신데 간병인이 새로 온 지 얼마 안 됐잖아. 마음이 안 놓여서 정성껏 모시고 있는지 확인 좀 하느라 늦었어.”하시윤은 그런 설명 따위 듣고 싶지 않다는 듯 몸을 뒤척이며 그의 품을 벗어나려 했다.“나 막 잠들려고 했는데 지혁 씨 문 여는 소리에 깼단 말이야.”“그래, 그래. 다 내 잘못이야. 내가 죽을죄를 지었네.”서지혁이 능글맞게 대답하며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더 바짝 다가갔다.“다음에는 더 일찍 올게.”“오지 말라니까.”하시윤의 목소리가 이불 속에서 웅얼거렸다.“나 혼자 자는 게 훨씬 편해.”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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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진짜 화낸다?

점심시간까지는 아직 여유가 좀 있었다. 서지혁은 회의가 있다며 잠시 자리를 비워야 했다.“금방 끝날 거야. 몇 가지만 지시하면 되니까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줘. 10분이면 올게.”하시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바쁘든 말든 어차피 여기서 기다릴 생각이었다.서지혁이 회의실로 향하자 그녀는 안쪽에 마련된 휴게실로 들어갔다. 침대 시트가 새로 바뀌어 있는 것 말고는 예전 모습 그대로였다.잠이 오지는 않아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대고 앉아 휴대폰으로 연예가 뉴스나 뒤적이며 시간을 때웠다.휴게실 문은 잠그지 않았다. 어차피 서지혁 외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장소라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2분도 채 지나지 않아 문밖에서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누구세요?”하시윤은 흠칫하더니 물었다.“하시윤 씨, 잠깐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누구의 목소리인지 가늠이 가지 않아 하시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누구신데요?”잠시 침묵이 흐른 뒤, 밖에서 다시 대답이 돌아왔다.“저예요.”그제야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윤혜리였다.하시윤은 문을 열어주지도,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은 채 다시 물었다.“무슨 일이죠?”윤혜리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했다.“들어가서 직접 뵙고 말씀드리면 안 될까요? 시간 오래 뺏지 않을게요.”그녀의 목소리에 다급함이 묻어났다.“서 대표님 돌아오시기 전에 끝내고 싶어서 그래요. 그분은 제가 여기 온 걸 모르셨으면 좋겠거든요. 안 될까요?”하시윤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잠시 생각에 잠겼다.“들어와요.”문이 열리더니 윤혜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뒤로 문을 굳게 닫았다.그녀는 맞춤 제작한 듯한 고급 정장 세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굵은 웨이브가 들어간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채 정교하게 화장을 마친 모습은 전보다 훨씬 화려하고 요염해 보였다.방에 들어선 그녀의 시선은 곧장 하시윤의 배로 향했다.쓸데없는 인사를 나눌 여유 따위는 없던 하시윤이 곧장 본론을 던졌다.“할 말이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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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를까 봐 무서워서

서지혁은 차를 몰아 시내를 벗어났다.하시윤은 조금 의외라는 듯 창밖을 내다보며 물었다.“어디 가는 거야?”“친구가 추천해 준 식당이 있는데 맛이 꽤 괜찮다고 하더라고. 너에게도 맛 좀 보여주려고.”그가 덧붙였다.“대단한 레스토랑은 아니고. 그냥 소박한 밥집이야.”하시윤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농담조로 대답했다.“깜짝이야. 난 또 지혁 씨가 나 어디 팔아넘기려는 줄 알았네.”“내가 아까워서 어떻게 그래?”서지혁이 능청스럽게 말을 받았다.“네 뱃속에는 우리 딸까지 있는데. 하나 팔아 둘을 잃으면 완전 밑지는 장사잖아.”“가격을 좀 더 세게 부르면 될 거 아니야.”하시윤이 툴툴거리자 서지혁이 나직하게 웃었다.“얼마를 준대도 안 돼. 이 나이 먹도록 겨우 만난 내 사람인데 세상 그 무엇과도 안 바꿔.”하시윤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더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서지혁이 그런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시윤아, 넌 꼭 이렇더라. 내가 이런 말만 하면 입을 꾹 다물지.”“그럼 지혁 씨도 이런 말 좀 안 하면 되잖아. 매번 일부러 나 들으라고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아.”서지혁의 입꼬리가 매끄럽게 올라갔다.“응, 일부러 하는 거 맞아.”그가 진지한 목소리로 덧붙였다.“내가 표현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네가 모를까 봐 무서워서.”이번에도 완패였다. 하시윤은 다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식당은 교외에 있었지만 위치가 무색할 정도로 손님이 바글바글했다.입구에는 주로 오토바이나 트럭이 가득했는데 근처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즐겨 찾는 가성비 맛집인 듯했다.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홀은 이미 만석이었다.직원은 두 사람의 차림새를 보더니 2층으로 안내했다.“저희 식당에 룸이 따로 마련되어 있습니다.”룸이라고 해봐야 건물 2층 구석을 판자로 대충 막아둔 좁은 공간이었다. 작은 탁자 하나가 겨우 들어갈 정도의 방이 두 개 있었는데 두 사람이 식사하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서지혁과 하시윤은 안으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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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불효자

서지혁은 먼저 차를 몰아 하시윤을 본가로 데려다주었다.차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대문 앞에 멈춰 섰다. 하시윤이 차에서 내리자 그도 따라 내렸다.한 손으로 배를 받치고 선 하시윤이 말했다.“지혁 씨, 가서 일 봐.”그의 휴대폰은 차 안에서 오는 내내 쉴 새 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성문영뿐만 아니라 서경민에게서 온 연락도 수두룩했다.서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안까지는 안 들어갈게.”그가 다가오더니 하시윤 앞에 멈춰 섰다.“저녁에 최대한 일찍 올게.”사실 일찍 오든 늦게 오든 별 상관은 없었지만 하시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서지혁은 몇 초간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그녀의 얼굴을 감싸 쥔 채 입을 맞췄다.“내 생각 하고 있어.”그러고는 다시 차에 오르더니 서서히 액셀을 밟았다.차 형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하시윤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순간 멈칫했다.옆쪽 작은 길에서 차 한 대가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그녀 곁에 멈춰 섰다. 창문틀에 팔꿈치를 기댄 채 입술을 달싹이던 하민지가 비아냥거렸다.“아주 금슬이 좋으시네.”그녀가 덧붙였다.“결혼한 사이가 아니라서 더 짜릿한가 봐?”“지금 네 부모님 상황도 꽤 짜릿할 텐데.”하시윤이 받아쳤다.“마음껏 즐기고 있으시겠다.”하민지의 안색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녀는 차갑게 비웃으며 대꾸했다.“이혼 좀 했다고 뭐 대단한 일이라도 생긴 줄 알아? 겨우 그따위 서류 한 장으로 우리 가족을 찢어놓을 수 있을 것 같니?”그녀의 목소리에 독기가 서렸다.“아빠는 여전히 엄마를 끔찍이 챙기고 엄마도 전처럼 잘 지내고 있어. 네가 두 사람 몸은 떨어뜨려 놨을지 몰라도 그 사랑까지는 절대 못 막아.”“그래?”하시윤은 우스운 구경이라도 하듯 그녀를 쳐다봤다.“아직 그런 소리 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은데. 일단 지켜보자고. 네가 언제까지 떵떵거리며 큰소리를 치는지 말이야.”그녀가 차갑게 덧붙였다.“네 아빠는 네가 여기 온 거 모르시지? 너도 참 멍청해. 이 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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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아, 그랬었군요

저녁쯤, 서지혁이 집으로 돌아왔다.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섰지만 하시윤은 보이지 않았다.2층 방에도 사람이 없었다. 3층으로 올라갔으나 서정우마저 보이지 않았다.발길을 돌리려다 말고 그는 창가로 다가갔다. 이곳에서는 뒷마당의 연못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역시나 두 사람은 그곳에 있었다.연못 옆 잔디밭에 널찍한 피크닉 매트가 깔려 있었고 그 위에 서정우가 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과일과 장난감이 가득했다.하시윤은 그 곁에 앉아 아들과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열중해서 보고 있었다.서지혁의 각도에서는 자세히 보이지 않았으나 그는 굳이 서둘러 내려가지 않고 창틀에 기댄 채 그 평화로운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두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무언가를 관찰하더니 돌연 약속이라도 한 듯 깜짝 놀라며 몸을 뒤로 뺐다.서지혁은 그제야 정체가 보였다. 두 사람은 작은 유리 볼에 금붕어 몇 마리를 잡아다 놓고 구경하던 중이었다. 물고기가 꼬리를 치며 물을 튀기는 바람에 모자가 동시에 놀란 모양이었다.아이의 맑은 웃음소리가 불당 쪽에서 흘러나오는 불경 소리와 섞여 들려왔다. 서지혁은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잠시 후, 하시윤이 자세를 여러 번 고쳐 잡는 게 보였다. 배가 부쩍 불러온 탓에 앉아 있는 게 영 불편한 모양이었다. 결국 그녀는 손을 뒤로 짚고 비스듬히 몸을 기대어 앉았다.서지혁이 내려가려 몸을 돌리는 순간, 시야에 한효진이 들어왔다.가정부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불당에서 나오던 한효진은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섰다. 그녀 역시 연못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표정까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녀 또한 넋을 잃고 그 광경을 응시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이해할 수 있었다. 서정우가 저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은 처음일 테니까. 건강할 때는 너무 어렸고 조금 크자마자 투병 생활이 시작되었다.예전에도 좋은 장난감을 수없이 사줬지만 아이는 그저 적당히 기뻐했을 뿐이었다. 결국 아이를 웃게 만드는 건 유리 볼 속의 금붕어가 아니라 그 옆에 앉아 있는 하시윤이라는 뜻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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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마지막 한 번

성문영이 돌아올 때는 서지혁과 하시윤이 저녁 식사를 마친 뒤였다.하시윤은 오늘따라 밥을 좀 많이 먹었는지 속이 더부룩해 영 불편한 기색이었다. 서지혁은 소화도 시킬 겸 그녀를 데리고 집 근처 길가를 따라 가볍게 산책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두 사람이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 마침 차에서 내려 전화를 하고 있는 성문영과 마주쳤다.정원 쪽을 등지고 서 있던 그녀는 아직 두 사람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목소리를 한껏 낮추고 말투도 다정했지만 그녀가 뱉은 말에는 은근한 압박이 서려 있었다.“그럴 것까지야 없잖아. 대체 왜 일을 이 지경까지 만들어?”서지혁과 하시윤은 동시에 발걸음을 멈췄다.성문영의 통화는 계속 이어졌다.“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아직도 이러고 있어. 애들도 다 컸잖아. 회사 일이야 그 사람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닐 테고. 이미 벌어진 일인데 이제 와서 그런 결정을 내린다고 뭐가 보상되겠어? 서로 피곤하게 왜 그래, 정말.”다정한 말투와는 대조적으로 살짝 돌아선 그녀의 미간은 짜증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그러다 서지혁과 하시윤을 발견한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하며 몸을 뻣뻣하게 굳혔다.잠시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던 그녀는 방금 자기가 내뱉은 말들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훑어보는 듯했다. 딱히 꼬투리 잡힐 말은 없었다고 판단했는지 그녀는 전화를 끊지 않고 다시 인자한 목소리로 타일렀다.“그 사람이 회사에 끼친 손해 때문에 화난 건 알아. 그래도 이미 직함까지 뺏었으면 화풀이는 충분히 된 거 아니야?”서지혁이 옆에 선 하시윤을 돌아보며 나직하게 말했다.“시윤아, 저쪽 벤치에 좀 앉아 있어. 금방 갈게.”하시윤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정원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벤치에 앉아 그쪽을 지켜보니 모자가 마주 서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성문영은 몇 마디를 더 주고받은 뒤에야 전화를 끊었다.거리가 멀어 서지혁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성문영이 이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대문 밖으로 걸음을 옮기는 게 보였다.서지혁은 하시윤과 시선이 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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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도장 찍었다

세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본채로 향했다. 술기운이 오른 서인준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에 기분이 한결 나아진 듯했다.그는 기지개를 크게 켜며 별것 아니라는 듯 한마디를 툭 던졌다.“아, 참. 심태진이랑 정경란 말이야. 벌써 이혼 서류에 도장 찍었대.”하시윤은 깜짝 놀라 서지혁을 쳐다보았다.서지혁 또한 의외라는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벌써?”“주영환 그 영감탱이한테 들었어.”서인준이 덧붙였다.“오늘 오후에 심태진이랑 통화했는데 본인이 직접 그러더래.”심태진과 주영환이 사적으로 가깝다는 건 서지혁도 잘 알고 있었다. 애초에 정부 프로젝트도 심현 그룹과 주건 그룹에서 판을 짜놓고 서강 그룹을 끌어들인 것이었으니까.“주영환이 구체적으로 뭐라던데?”“별말은 없었어. 그냥 서류에 사인 끝냈다는 정도? 법적으로 확정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일단 재산 분할 합의는 끝났나 봐.”주영환의 말에 따르면 심태진이 완전히 빈털터리가 될 판이라고 했다.결혼 생활 20년 동안 쌓인 공동 재산이 상당할 텐데 정경란이 독기를 품고 그가 회사에 끼친 손해를 근거로 내세워 지분을 바닥까지 깎아버린 듯했다.놀라운 건 그 자존심 강한 심태진이 군말 없이 정경란의 요구를 다 들어줬다는 점이었다.서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의외네, 그 사람.”“내 말이. 그 인간이 사고 쳐서 직함 날아간 거야 인과응보라 쳐도, 이혼까지 갈 줄이야.”서인준이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그 정도로 끝장낼 일인가? 더 웃긴 건 심연정도 가만히 있었다는 거야.”서지혁은 하시윤의 손을 꽉 쥐며 짧게 잘랐다.“신경 꺼. 남의 집안싸움 우리랑 상관없으니까.”“그런데 엄마랑 그 집안이 워낙 가깝잖아. 엄마가 알면 또 뒷목 잡고 쓰러지겠네.”그 말에 서지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집에 들어서니 성문영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방으로 올라간 모양이었다.하시윤은 아직 잠이 오지 않는지 거실 앞 흔들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술기운에 피곤함이 몰려온 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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