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가면을 쓴 남편: Bab 281 - Bab 290

394 Bab

제281화

차가 법원 앞에 부드럽게 멈춰 섰다. 30분이면 충분했을 거리를 그는 굳이 한 시간에 걸쳐 운전했다.오늘 법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주차 공간도 텅텅 비어 차 몇 대만 듬성듬성 세워져 있을 뿐이었다.차에서 내릴 때, 하정훈은 여느 때처럼 젠틀했다. 송남지가 막 안전벨트를 풀자, 그는 반대편으로 돌아와 조수석 문을 열었다.송남지는 그 익숙한 행동이 낯설었다.그녀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맙다고 말한 뒤 차에서 내렸다.어차피 법원에서 나오는 순간, 그녀는 더 이상 하정훈의 아내가 아닐 테니 이제 그가 해주는 모든 일에는 감사를 표해야 했다.두 사람 사이에는 서먹함과 함께 정중함이 공존했다.하정훈이 무심결에 미간을 찌푸렸다.송남지가 자신과 확실히 선을 그으려는 것 같아 그는 시큰둥하게 대꾸했다.“별말씀.”법원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유난히 길고 가파르게 느껴졌다.하정훈은 이 계단이 조금 더 길었으면, 영원히 끝에 닿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계단을 반쯤 올랐을 때, 하정훈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오늘 인터넷에서 난리 난 영상, 나도 봤어.”송남지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저 화를 내는 데 정신이 팔려 하정훈이 그 영상을 보게 될 가능성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이 사람 화났겠지? 사랑하든 아니든, 명목상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프러포즈 받는 걸 어떤 남자가 가만히 볼 수 있겠어? 이건 자존심이 제대로 짓밟힌 문제인데.’송남지는 입술을 깨물며 죄책감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 영상이 찍혀 인터넷에 유포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어요.”그녀는 늘 사과가 습관이었다.사실 그녀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이다.‘남지가 너무 순하고 잘못을 모두 자기 탓으로 돌리니 윤해진이 이를 빌미로 남지를 만만하게 여긴 것은 아닐까? 훗날 남지가 윤해진과 함께하면서 상처받고 부당한 일을 겪으면 어떡하지?’온갖 잡념이 하정훈의 명석한 두뇌를 어지럽혔다. 그는 불쑥 물었다.“이혼 서류 처리하고 나면 윤해진이랑은 언제 결혼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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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하정훈의 날카로운 눈썹 사이에 짙은 안개가 서렸다.“허상미는 지금 독이 오를 대로 올라있어. 너와 윤해진의 재결합이 이 시점에 알려진다면, 그 여자는 눈이 뒤집혀서 무슨 짓을 할지 몰라.”허상미가 인터넷에 송남지가 자기 남편을 뺏었다고 떠들어대기만 해도 악플러들의 마녀사냥에 송남지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터였다.하정훈은 어두운 표정으로 그녀에게 경고했다.“이런 때에 윤해진과 재혼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야.”송남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하정훈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어요?”하정훈은 화들짝 놀라며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눈동자에 감출 수 없는 희열이 피어올랐다.“방금... 뭐라고 말했었어?”송남지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말했어요.”하정훈은 미간을 살짝 풀며 의심과 망설임이 섞인 말투로 물었다.“무슨 말을?”송남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하정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저는 윤해진과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요.”그 찰나, 하정훈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지금 윤해진의 신분은 윤강현이고 법적으로는 사망한 사람이니, 그녀가 ‘윤해진’과 결혼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하정훈이 정정해주었다. “난 지금의 윤강현을 말하는 거야.”송남지는 즉시 말을 받았다.“윤해진이든 윤강현이든, 전 그 누구와도 결혼 안 해요. 윤씨 가문이라는 불구덩이에 이미 한 번 뛰어들었으니 두 번 다시 뛰어들 생각은 없거든요.”서경의 계절은 한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고 있었다. 가을바람이 불어오자 더위가 한풀 꺾이고 오히려 마음까지 시원해지는 옅은 청량감이 느껴졌다.하정훈은 송남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 십 초가 넘는 시간을 썼다. 한 글자 한 글자는 모두 알아듣겠는데, 합쳐진 문장은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는 얇은 입술을 달싹이며 중얼거렸다.“윤해진이 살아있다는 걸 알면서도 윤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거야?”송남지는 가볍게 웃었다.“차라리 지옥에 갔으면 갔지 윤씨 가문으로는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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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송남지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하정훈은 몸을 숙여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아 올렸고 그녀의 키는 하정훈보다 머리 반 개는 더 높아졌다.그녀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중심을 잡기 위해 하정훈의 목을 끌어안았다.주위에서 드문드문 사람들이 쳐다보자 송남지는 조금 민망해져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하 대표님,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이 사람, 미친 거 아니야? 너무 이상한데.’송남지는 하정훈의 얼굴에서 이런 표정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늘 절제하며 웃던 그가 지금은 유난히 활짝, 심지어 거침없이 웃고 있었다.그가 이렇게 기뻐하는 모습에 송남지는 오히려 어리둥절했다.‘지금 우리는 이혼하러 온 길이 아니었던가?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결혼하러 온 줄 알겠네.’송남지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일깨웠다.“하 대표님, 저 좀 내려주세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요...”하정훈은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는 듯했다. 송남지를 높이 들어 올린 뒤에는 기뻐서 펄쩍 뛰기라도 할 기세였다.얇은 입술이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에 닿아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둘 사이에 풍기는 달콤한 분위기에 지나가던 사람들마저 민망해하며 알아서 옆으로 두어 걸음 비켜 갔다.원래도 어리둥절했던 송남지는 기습 키스까지 당하자 더욱 멍해졌다.‘대체 이 남자의 의도가 뭘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지? 정말로 정신이 나간 걸까?’입맞춤이 끝나자, 송남지는 멍한 상태로 하정훈에게 말했다.“회사 일 바쁘지 않으세요? 우리 지금 빨리 서류 처리 안 하면 줄 서야 할지도 몰라요.”줄 서는 시간에 시내로 돌아가는 시간까지 더하면 오후 시간을 통째로 낭비하게 될 터였다.격한 기쁨 뒤에 정신을 차린 하정훈은 그제야 자신들이 법원 계단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는 멋쩍게 웃으며 송남지를 내려주었다.방금 하정훈이 한바탕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송남지의 머리는 보기 좋게 헝클어져 있었다.그녀는 머리를 정돈하고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가요.”송남지가 막 몸을 돌려 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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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이혼 안 한다고?’송남지는 동그래진 눈으로 하정훈의 얼굴을 응시했다.‘이 사람은 무슨 생각인 걸까? 결혼과 이혼을 손바닥 뒤집듯 하더니 이제는 법원 문턱까지 와서 안 하겠다니?’송남지는 하정훈이 자신을 희롱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었지만 증거가 없어 그저 나직이 투덜거릴 뿐이었다.“사람 갖고 장난치나.”하정훈은 송남지의 투덜거림을 똑똑히 들었지만 지금의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기에 개의치 않았다.지금 송남지가 욕을 몇 마디 퍼부어도 그는 신경 쓰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큰 소리로 웃을지도 몰랐다.투덜거림이 끝나자마자 송남지는 하정훈에게 허리가 붙들린 채 주차장으로 끌려갔다.그녀는 거의 하정훈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했고 발걸음은 허공에 뜬 듯 가벼웠다.중간에 송남지가 멈추라고 소리쳤다.“잠깐만요! 왜 갑자기 이혼을 안 한다는 거예요?”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의 물음에 돌아온 것은 하정훈의 되물음이었다.“이혼하고 싶어?”송남지는 잠시 멍해졌다. 그녀는 당연히 이혼하고 싶지 않았다.하정훈이 변덕스럽긴 했지만 그는 충분히 젠틀했고 심지어 좋은 사람이었다.한때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윤해진조차 그녀에게 이토록 다정했던 적은 없었다.만약 정말 이혼하게 된다면, 송씨 가문에 설명하기도 난감했고 부모님께서도 괜한 걱정을 하게 될 터였다.무엇보다 하씨 가문이 아버지를 크게 도와주었는데 이렇게 애들 장난처럼 이혼해 버리면 시부모님 뵐 낯이 없었다.“당신이 원치 않는다면, 나 역시 이혼할 생각 없어요.”그 말에 하정훈은 안심한 듯 자연스럽게 송남지를 감싸 안고 차에 올라탔다.차에 앉아서도 송남지는 이 모든 상황이 실감 나지 않았다.마치 한바탕 꿈을 꾸는 것 같았다.하정훈은 시동을 걸었고 기분이 좋은 나머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그는 뒷좌석에 놓인 화구를 흘끗 보더니 곧바로 비서에게 전화를 걸었다.“어. 이젤이랑 화구, 세트로 준비해 줘. 그리고 서재는 화실로 쓸 수 있게 비워주고...”송남지가 의아한 듯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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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그렇게 소리친 최보라는 신발을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섰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그녀는 방 안의 두 사람을 발견하고 그대로 굳어버렸다.캐리어를 끌고 유화 두 점을 든 하정훈과 그 옆에는 한가롭게 서 있는 송남지가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하정훈이 송남지에게 고용된 이삿짐센터 직원 같아 보였다.다만 이 이삿짐센터 직원은 어딘가 귀티가 흐르고 외모는 국제적인 남자 모델 같다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최보라는 멋쩍게 입을 열었다.“하... 하 대표님이 여긴 어쩐 일로?”하정훈은 씩 웃으며 최보라의 질문에 답했다.“인터넷에 퍼진 소문이 맞아요. 성은 그룹 법무팀이 나선 게 확실합니다.”성은 그룹의 법무팀은 서경에서도 꽤 유명한 존재였다.그들이 나서면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송남지는 약간 놀란 표정으로 태연한 하정훈을 쳐다보았다.그 동영상을 올렸던 계정이 왜 순식간에 난수로 변했는지, 모든 논란이 왜 이토록 빠르게 잠재워졌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전부 하정훈의 작품이었던 것이다.그녀는 나직이 속삭였다.“고마워요.”하정훈은 두 손이 자유롭지 못했기에, 그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응시하며 답할 뿐이었다.“별거 아냐.”그러고는 최보라에게 시선을 돌렸다.“처형, 저를 하 대표라고 부르지 말고 남지처럼 편하게 정훈이라고 불러주세요.”최보라는 머릿속이 하얘졌다.‘이혼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어떻게 하정훈이 남지를 도와서 인터넷상의 문제까지 처리해준단 말인가. 심지어 이혼을 앞둔 마당에, 저렇게 대단한 사람의 이름을 어찌 함부로 부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뿐인데.’최보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외쳤다.“두 사람, 또 이혼 안 하기로 했어요?”그 말을 들은 최보라는 놀란 눈으로 송남지를 쳐다봤고 송남지는 조금 민망해졌다.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긍정하자, 최보라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뻐하며 송남지를 끌어안고 뱅글뱅글 돌았다.송남지는 현기증이 날 정도였다.최보라는 송남지의 귓가에 은밀하게 속삭였다.“혹시 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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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송남지는 전날 챙겨 나왔던 짐을 그대로 들고 다시 하씨 저택으로 돌아왔다.오늘의 하씨 저택은 어딘가 달라 보였다.착각인지는 몰라도 차고에 차가 더 늘어난 것 같았다.두 사람이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평소의 온화함은 온데간데없이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의 시부모님이 앉아 있었다.송남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았고 하정훈도 캐리어와 유화 두 점을 든 채로 조금 당황한 듯했다.먼저 입을 연 것은 하정훈이었다.“아빠, 엄마, 아직 여행 중이 아니셨어요?”하종현과 오가은의 표정은 무척이나 언짢은 일을 마주한 것처럼 굳어 있었다.송남지가 기억하는 두 분은 누구보다 인자하고 다정한 분들이었다.하씨 가문에 처음 와서 하정훈에게 생일 선물을 전해 주던 그날 이미 느꼈었다.나중에 채유리가 찾아와 소란을 피웠을 때도 두 분은 무조건적으로 자신의 편을 들어주었다.‘그런데 오늘은 대체 무슨 일일까? 이렇게 급하게 돌아오신 걸 보면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걸까?’그렇게 생각하니 송남지의 표정도 덩달아 굳어졌다.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하정훈 옆에 서 있다가, 그의 말이 끝나자 공손하게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아버님, 어머님, 오셨어요...”송남지의 호칭을 듣고서야 시부모님의 얼굴이 아주 잠시 누그러졌다.송남지는 그것이 윗사람이 그녀에게 보여주는 예의와 존중이라고 생각했다.하정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최근 회사에 별일도 없었고 하씨 가문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데 세계 일주를 한다던 두 분이 왜 갑자기 돌아온 거지? 이제 겨우 여정의 시작일 텐데...’하종현이 먼저 헛기침을 두어 번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주방에 저녁 식사를 준비하라고 했다. 짐 정리하고 내려와서 밥 먹어라.”2층 침실.송남지는 걱정이 되었다.“정훈 씨, 아버님 어머님께서 왜 갑자기 돌아오셨을까요?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걸까요? 아니면...”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지만, 오늘의 분위기가 유독 이상하다고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 원인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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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그게 뭐가 그렇게 기분 좋을 일이에요?”송남지는 솔직하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그렇게 부르는 게 웃긴가? 나랑 하정훈은 법적인 부부이니 시부모님을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게 당연하잖아.’그녀는 조금 시무룩해졌다.그러나 다음 순간, 하정훈은 다정하게 손을 뻗어 그녀의 뺨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넌 날 여보라고 부르는 걸 싫어하니까, 늘 우리 관계가 진짜 같지 않다고 느꼈어. 그런데 네가 두 분을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니까 정말 온전히 내 아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하정훈의 그 말에 송남지의 얼굴이 순간 확 붉어졌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 스스로도 이따금씩 이 관계가 진짜인가 싶었다.하씨 저택의 침실에서 매일 아침 눈을 뜨지 않았다면 이 모든 것을 그저 길고 긴 꿈이라 여겼을지도 모른다.이토록 뜬구름 같은 관계였기에, 그녀는 도저히 그 두 글자를 내뱉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본 하정훈의 눈에 장난기가 어렸다. 그는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넘기며 속삭였다.“지금 한번 들려주면 안 될까?”송남지는 화들짝 놀라 그를 올려다보았다.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거절하기는 더더욱 민망했다.결국 그녀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다행히도, 식사를 재촉하는 이미란의 목소리가 이 아슬아슬한 정적을 깼다.송남지는 구세주를 만난 듯 문 쪽을 가리켰다.“저... 이제 식사하러 가요.”하정훈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쳤지만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몰아붙이지 않았다.그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자.”오늘은 시부모님이 돌아오신 날이라, 긴 식탁 위에는 정교하고 향기로운 음식들이 가득했다.하씨 가문의 요리사는 5성급 특급 호텔 출신으로 요즘 들어 송남지는 이곳에서 너무 잘 먹은 탓인지 몸에 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그녀는 하정훈의 옆에 단정하게 앉았고 하종현과 오가은은 상석의 양쪽에 나란히 앉았다.송남지는 마치 판결을 앞둔 죄인 같은 표정이었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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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송남지는 앞에 놓인 접시가 그 진동에 못 이겨 뒤로 2센티미터나 미끄러지는 것을 생생히 목격했다.평소 고상하고 부드럽던 사람이 돌변하니 그 서슬 퍼런 기세는 더욱 위협적이었다.송남지는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오가은의 갑작스러운 분노에 놀란 탓이었다. 그 바람에 접시에 담긴 장미 식초 참조기의 비린내가 코끝으로 스며들었다.원래대로라면 향긋해야 할 냄새가, 그녀의 코에는 유독 역한 비린내로 느껴졌다.그녀가 불편한 듯 미간을 찌푸리자 오가은이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렸다.“하정훈! 네 그딴 식은 우리한테는 안 통해!”송남지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하정훈을 훔쳐보았다. 이 폭풍 속에서도 그는 너무나도 태평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녀는 대신 긴장해서 하종현과 오가은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먼저 나서서 해명해야 하나 고민했다.하지만 막 입을 열려는 순간, 하정훈이 그녀를 가로막았다.“제 수법이 안 통한다니 아쉽군요. 그럼 이 귀한 참조기나 더 드시죠. 주방장님이 애써 공수해온 겁니다.”여전히 장난기 가득한 그의 태도에 하종현의 인내심도 바닥을 드러냈다.그는 핵심을 찔렀다.“왜 이혼하려는 게야? 이혼 서류는 접수했어?”하정훈은 그제야 느긋하게 젓가락을 내려놓고 부모님을 마주 보았다.“아빠, 엄마, 식사 중에는 식사만 하죠. 남지도 여기 있고 배고플 텐데. 다 먹고 얘기하면 안 될까요?”오가은은 속에서 천불이 났다.원래 남편과 즐겁게 세계 여행 중이었는데 도키오에 도착하자마자 이미란에게서 두 사람이 이혼하겠다고 싸우고 있다는 전화를 받았다.그래서 그들은 혹시나 막을 수 있을까 싶어 하씨 가문의 전용기를 타고 곧장 돌아온 것이었다.하지만 전용기까지 타고 도키오에서 날아왔음에도 아무래도 한발 늦은 모양이었다.“남지 핑계 대면서 우리를 속일 생각 마라. 이건 네가 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이 지경까지 왔는데 아직도 뭘 숨기는 거야? 다 큰 녀석이 애처럼 굴고 결혼이 소꿉장난인 줄 알아?”얼음장처럼 차가운 하종현과 오가은의 모습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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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그러나 그녀의 몸은 거의 본능적으로, 찰나의 순간에 움직였다.그녀는 망설임 없이 팔을 뻗어 하정훈의 앞을 가로막았다.“아버님, 부디 진정하세요. 정훈 씨를 때리시면 안 돼요. 저희 이혼 서류도 안 냈어요...”하정훈의 얼굴에 순간 짙은 놀라움이 스쳤다.그는 송남지가 자신을 감싸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그 순간 그의 눈빛은 깊은 동요로 물들었고 눈가마저 뜨거워졌다.공포에 질려 미세하게 떨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보자 가슴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사실 하종현의 위협은 그에게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송남지에게는 엄청난 공포였을 터였다.그럼에도 그녀는 작은 몸으로 자신의 앞을 막아선 것이었다.하종현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걷어 올린 소매가 민망해졌다. 송남지가 막아서자, 마치 자신이 힘없는 며느리를 핍박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으니 말이다.오가은이 참지 못하고 하종현의 팔을 잡아끌었다.“여보,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애가 겁먹었잖아요.”그제야 하종현은 슬그머니 소매를 내리고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이혼하지 않았다는 말에 두 사람의 마음속엔 희망의 불씨가 피어올랐다.오가은은 다정하게 송남지를 보며 미소 지었다.“남지야, 내가 해외에서 예쁜 선물을 많이 사 왔어. 1층 북쪽 방에 있으니 미란 이모랑 같이 가서 보고 오렴.”송남지는 어른들이 자리를 비키라는 뜻임을 바로 알아챘다.그녀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하정훈이 걱정되어 가기 전에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정훈 씨 때리시면 안 돼요.”그 말에 하정훈은 감동적이면서도 웃음이 나와 순간 감정이 복잡해졌다.오가은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남지야, 정훈이도 이만큼 컸는데 설마 때리겠니? 네 아버님이 아까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시늉만 한 거니 무서워하지 마라.”송남지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이미란을 따라 북쪽 방으로 갔다.송남지가 떠나자 하종현과 오가은의 얼굴에서 방금 전의 온화한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착한 며느리에게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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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송남지의 눈에는 방을 가득 채운 선물들이 들어오지 않았다.반면 이미란은 들뜬 목소리로 설명하기 바빴다.“이건 모두 사모님께서 해외에서 어렵게 구해오신 것들이에요. 유명 브랜드는 아닐지 몰라도, 그 가치는 값을 매길 수 없답니다.”송남지는 마음 없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말 다 예쁘네요.”이미란이 에메랄드 목걸이를 들어 보였다.“한번 착용해 보시겠어요? 작은 사모님의 기품과 무척 잘 어울릴 거예요.”송남지의 모든 신경은 저 멀리 식사 자리로 향해 있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그녀를 사로잡았다.바로 그때, 방문을 누군가 조심스럽게 노크했다.이미란이 문을 열자 하정훈이었다. 그녀는 송남지를 돌아보며 웃었다.“도련님, 사모님께서 계속 도련님을 걱정하셔서 선물 볼 마음이 없으셨어요. 도련님께서 사모님 곁에 있어 주세요.”이미란은 방을 나가며 문까지 살며시 닫아주었다. 북쪽 방은 크지 않아서 하정훈은 두 걸음 만에 송남지의 앞에 다가섰다.“내 걱정했어?”그가 너무나도 솔직하게 물어오는 바람에 송남지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질문을 회피했다.“아버님, 어머님께서 힘들게 하진 않으셨고요?”하정훈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방금 엄청나게 시달린 사람처럼 상처받은 눈으로 송남지를 바라보며 말했다.“힘들었지.”송남지는 가슴이 철렁해서 긴장한 채 하정훈에게 한 걸음 다가가 혹시 다친 곳은 없는지 위아래로 살폈다. 손과 팔처럼 보이는 곳에서는 상처를 찾을 수 없었다.하정훈은 그대로 송남지의 품에 쓰러지듯 안겼다.“등에 있어.”송남지는 하종현과 오가은이 회초리로 하정훈의 등을 때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눈가가 붉어진 채 서운한 목소리로 말했다.“때리지 않기로 저랑 약속하셨잖아요.”하정훈은 욕심껏 송남지의 품에 파고들어 코끝을 가득 채우는 그녀의 향기를 즐겼다.송남지는 안타까운 마음에 손을 들어 그의 등을 만져보았다.깔끔하게 다려진 정장에는 주름 하나 없었다. 송남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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