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훈은 얄밉게 구는 유경태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짙은 눈썹을 찌푸린 채 잠시 침묵하던 그는 얇은 입술을 떼려다 이내 관두었다.그럴 기분이 아니었다.“회사에 일이 좀 있어서 먼저 갈게.”하정훈은 이 한마디만 남기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유경태의 사무실을 나섰다.하정훈의 오만하고도 고귀한 뒷모습을 보며 유경태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속으로 중얼거렸다.‘송남지, 배짱 한번 두둑하시네. 하 대표를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고 바람까지 맞히다니.’...한편 송남지는 류무영과 온유미를 서경 공항까지 배웅했다.비행기에 오르기 전, 공항 귀빈실에서 온유미는 송남지의 손을 꼭 잡았다.“남지 씨, 다음 달 라쿠는 단풍이 머물고 겨울이 고개를 내미는 참 아름다운 계절이에요. 그때 열릴 선생님과 나의 결혼식에 남지 씨를 초대하고 싶은데, 꼭 라쿠로 놀러 오세요.”송남지는 류무영과 온유미의 결혼 소식을 접한 적이 없었기에 내심 깜짝 놀랐다.아마도 지난번 온유미가 말했던 ‘중요한 결심'이 바로 이 일인 모양이었다.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류무영이 온유미의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세월의 흐름 탓에 그의 눈동자는 다소 탁해 보였으나 눈빛만큼은 의아함으로 가득했다.“유미야, 정말 결심한 거야? 전에는 남들이 뭐라고 한마디씩 하는 걸 그렇게 힘들어했잖아.”온유미는 모든 짐을 내려놓은 듯 화사하게 미소 지으며 조용히 입을 뗐다.“지난번 축하 파티가 끝나고 남지랑 대화를 좀 나눴는데, 군자는 마음이 아니라 행동으로 판단한다는 말에 깊이 공감했어요. 진심을 일일이 증명할 수 없다면 차라리 마음을 보여주려 애쓰지 않기로 했죠. 대신 행동으로써 그 시기 어린 소문들을 모두 잠재울 생각이에요.”류무영은 그제야 안심한 듯 미소 지었다.사실 그는 온유미에게 정식 아내라는 명분을 만들어주지 못할까 봐 늘 노심초사해 왔다.이 나이에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녀가 간절히 원하고 자신이 기꺼이 줄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을 주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훨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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