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출산의 밤, 하 대표님이 첫사랑을 따라 죽었다: Chapter 291 - Chapter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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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1화

“응.”강준은 짧게 대답했다.다음 날 이른 아침.별아는 강준과 함께 병원에 왔다.미리 예약을 해 두었기 때문에 진료는 순조로웠다.강준은 간호사의 안내를 받아 촬영실로 이동했고, 별아는 밖에서 기다렸다.별아는 이곳에서 마동기를 마주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마동기는 휠체어를 밀고 있었다.휠체어 위에는 얼굴빛이 누렇게 뜬 소녀가 앉아 있었다. 그 소녀는 몹시 마른 데다가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나이는 대략 15, 16살쯤 되어 보였는데, 전반적으로 지쳐 있고 쇠약해 보였다.그 옆에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는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여자가 함께 걷고 있었다.부드러운 인상의 여자는 아직 젊고 외모도 단정했다. 그러나 눈동자에는 절망만이 가득 차 있었다.마동기 역시 별아를 발견했다.그는 놀란 기색 속에서 어딘가 설명하기 힘든 기류를 느끼는 듯했다.딸을 데리고 투석실 쪽으로 들어가면서도 마동기는 한 번 더 고개를 돌려 별아를 바라봤다.그러나 그 시선이 닿기 전에 별아는 이미 시선을 거둬들였다.“뭘 그렇게 봐? 예쁜 여자만 보면 발이 안 떨어지지? 지금 딸 상태가 어떤데, 그 방탕한 마음 좀 거두면 안 돼?”여자가 마동기의 팔을 세게 비틀었다.마동기는 아파서 숨을 들이켰다.“당신 미쳤어? 사람 좀 볼 수도 있지.”“봐, 또 봐. 여자 보는 건 참 부지런해. 마동기, 내가 당신이랑 결혼해서 이렇게 늙어 가는데도 당신 마음은 하나도 안 가라앉네.”“진작 알았어야 했어. 당신이 이렇게 바람기 못 고칠 인간인 줄 알았으면, 그때 가족들 다 등지고 당신한테 시집오지 말았어야 했어.”여자는 억울함에 울음을 터뜨렸다.휠체어에 앉은 소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아빠, 엄마... 제발 그만 싸워.”마동기는 여자를 노려봤다.“됐어. 그만해.”소녀는 간호사의 손에 이끌려 투석실로 들어갔다.부부는 투석실 밖으로 나와 기다리게 되었다.“딸이 이대로 안 좋아지면 나도 못 살아. 마동기, 얼른 방법을 찾아. 젊을 때 그렇게 바람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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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2화

“그건 오해였습니다.”마동기는 억지로 변명했다.별아는 더 이상 대꾸할 마음도 없어서, 강준의 팔을 부축한 채 그대로 밖으로 향했다.뒤에 남은 마동기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순식간에 계산을 끝냈다.곧 죽을지도 모르는 병든 딸 하나.K시 최고 재벌에게 시집간 딸 하나.마동기에게 더 쓸모 있는 쪽이 어느 쪽인지, 답은 너무도 분명했다....차에 올라탄 뒤.별아는 강준의 오늘 검사 결과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방금 병원에서 있었던 일은, 겉으로 보기엔 큰 파문을 남기지 않은 듯 보였다.“주연식 교수님 말로는 최소한 수술을 여덟 번은 더 받아야 지팡이를 완전히 놓을 수 있대. 회복이 빠르면 1년, 늦으면 3년 정도 걸린다고 하셨어. 치료랑 재활은 계속 적극적으로 해야 하고.”강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너 때문에라도 꼭 제대로 치료를 받을게.”별아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검사 결과지를 차분히 정리해 가방에 넣었다.“아직 시간도 이른데, 회사로 갈 거야? 나도 작업실에 출근해야 해서.”별아의 말에 강준은 마동기와의 일에 대해 묻고 싶어서 잠시 망설였다.“너... 나한테 할 말은 없어?”별아는 강준을 보지도 않은 채 운전석을 향해 말했다.“이미 의미 없는 일이야.”“기사님, 출발하세요.”차는 그대로 움직였다....별아가 말하지 않으려고 해도 강준이 알아낼 방법은 있었다.다만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마동기가 별아한테 상처라면... 괜히 건드리지 말자.’작업실 앞에 별아를 내려준 뒤, 강준은 하산그룹 사무실로 향했다.재환이 서류봉투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대표님, 이건 오이범은 하태산 어르신께 전달하라고 한 서류입니다. 원본은 진차균 집사님 쪽에 넘겼고요, 이건 사본입니다. 좀 이상한 점이 있는데요. 원래 봉인돼 있던 건데, 제가 열기 전에 이미 한 번 열렸던 흔적이 있었습니다.”재환은 당시 CCTV도 확인했다.하지만 그날의 기록은 누군가 의도적으로 삭제해 놓은 상태였다.서류 안의 내용은 빠진 것도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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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3화

절망...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별아가 강준에게 품은 감정은 그렇게까지 깊지 않았다.정말로 앞으로 10년만 더 살 수 있다면, 강준은 남은 모든 일을 차분히 정리할 수 있었다.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했다.사실 예전에 강준은 오늘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그에 비하면 지금의 삶은 이미 과분했다.하늘은 강준에게 베풀 만큼 베풀어 주었다.“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야. 지금 상태도 나쁘지 않고, 네가 말 안 했으면 이런 얘기 자체를 잊고 살았을 거야.”“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하나야. 별아랑 같이 다리 치료 잘하고, 조금만 더 노력해서 다시 내게 오게 하는 거지. 그 정도면 인생은 충분히 잘 산 거야.”강준의 말투는 가벼웠다. 마치 오래된 농담을 꺼내듯 담담했다.하지만 재환은 웃을 수가 없었다.눈, 폐, 다리, 척추에 심장까지.강준의 몸에서 온전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선택일까?’...해가 기울 무렵.강준은 별아에게 전화를 걸었다.“이따 퇴근할 때 데리러 갈게.”전화기 너머에서는 거절하지 않았다.다만 짧게 말했다.[조금 늦을 거야.]“알겠어. 기다릴게.”...차가 별아 작업실 건물 앞에 멈춘 시간은 저녁 6시 30분.오래전부터 강준의 일상에서 사라졌던 시각이었다.전생처럼 느껴질 만큼 먼 과거.강준과 별아가 막 결혼했을 무렵, 강준은 매일같이 이 시간에 여기 도착하곤 했다.작은 선물을 하나씩 들고, 별아가 좋아하던 맛의 밀크티 한 잔이기도 했고... 가끔은 소박한 장미 한 송이이기도 했다.차창 너머로 별아가 환하게 웃으며 달려오던 모습을 볼 때마다, 강준의 마음속에는 애정이 가득 차올랐다.두 사람은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입을 맞췄고, 차 안에서 더 뜨겁게 온기를 나누기도 했다.그 시절의 두 사람은 분명히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언제부터 달라졌을까?’강준도 정확한 시점은 기억나지 않았다.다만, 어느 순간부터 둘 사이가 틀어졌다는 사실만 기억에 남아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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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4화

하씨 가문 본가.오늘은 유난히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하명식과 손영애만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30년 동안 하씨 가문의 대문 근처에도 오지 못하게 했던 고남훈까지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손영애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진 듯했다. 몸을 살짝 바깥쪽으로 기울인 채 뭔가를 밀어내듯 앉아 있었다.강준은 직감했다.오늘 이 자리가 평범하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겉으로는 흔들림 없는 얼굴을 유지했지만, 그 안에는 미묘한 불안이 스며들고 있었다.“할아버님.”“강준아, 먼저 앉아라. 할아버지가 너랑 상의할 게 있다.”강준은 조용히 몸을 숙여 인사한 뒤, 모두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하태산이 입을 열기 전, 강준이 먼저 말을 꺼냈다.시선은 곧장 남훈을 향했다.“왜 저 사람이 여기 있는 겁니까?”“오늘 이야기할 일에 저 녀석이 관련돼 있다.”하명식의 얼굴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손영애의 속이 들끓었다.그녀는 20년 넘게 하명식을 따라 살면서도, 이름 하나 얻지 못한 세월은 참아 왔다.그런데 이제는 사생아까지 눈앞에 데려다 놓다니!‘이건 그 여자까지 데려다 놓은 거랑 뭐가 달라?’“회장님, 그 여자만 안 죽었어도... 설마 저 두 애들까지 전부 집에 들일 생각이었어요?”“그만해.”하태산의 낮고 단호한 목소리가 방 안을 눌렀다.더 이상의 말은 허락되지 않았다.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하태산은 본론으로 들어갔다.“오이범 쪽에서 우리 가문과 혼인을 원하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오이범은 지금 아주 높은 자리에 있지. 대통령 선거에 나설 가능성도 크고, 만약 그 자리에 오른다면, 우리 가문에 어떤 의미인지 말 안 해도 알겠지.”하태산의 날카로운 시선이 강준에게 꽂혔다.“네가 이혼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이제는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날 때도 됐지. 오씨 가문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쪽도 넌데. 어떻게 생각하느냐?”형식은 의견을 묻는 말이었다.그러나 선택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강준은 입을 열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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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5화

말은 많지 않았다.그러나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내뱉는 순간, 그 의지는 누구도 흔들 수 없을 만큼 단단했다.하태산은 결국 폭발했다. 지팡이를 바닥에 내리치자 거실에 둔탁한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다시 데려오겠다고? 별아가 네 옆으로 돌아오겠다고 하더냐? 만약 거절하면 어쩔 셈이냐? 그때도 계속 기다릴 거냐?”“강준아, 너는 하씨 가문의 자손이야. 남녀 간의 정에만 매달릴 위치가 아니야. 우리 가문을 생각해야 하고, 국면 전체를 봐야 해.”강준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하태산이 과거에 직접 건네주었던,하산그룹을 상징하는 조상들의 이름이 새겨진 옥패를 두 손으로 받쳐 내놓았다.“제가 하씨 가문의 자손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신다면, 하산그룹 대표이사 자리에서도 물러나겠습니다.”강준은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었다.하산그룹 대표이사로 살아온 세월 동안, 강준은 단 한 번도 ‘하강준’으로 살았던 적이 없었다.‘이제는... 후회만은 남기고 싶지 않아.’설령 하씨 가문에서 쫓겨난다 해도 강준은 감수할 수 있었다.남훈의 시선이 옥패에 꽂혔다.오랫동안 꿈꿔 왔던 물건.남훈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탐욕이 번뜩였다.강준이 당연하게 누려 온 모든 것.그 모든 것이 남훈에게는 치명적인 유혹이었다.그는 당장이라도 손을 뻗어 빼앗고 싶었다.하지만 그럴 수 없었고 감히 그러지도 못했다.그럼 남훈이 혹시 속으로 원망이라도 했을까?당연히 원망했다. 남훈은 자신이 하씨 가문의 사생아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하씨 가문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했다.그러나 여전히 하명식에게 기대야 했다.하씨 가문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남훈에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지금은 참아야 해. 기회는... 이렇게 내게 굴러오고 있어.’남훈은 손끝이 무의식적으로 옥패 쪽으로 향했지만, 이내 이성을 되찾고 주먹을 단단히 움켜쥐었다.옥패를 내려다보던 하태산은 망설임 없이 손을 들어 강준의 뺨을 후려쳤다.“이 무책임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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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6화

“이제 그만 좀 해.”하명식의 시선에는 철없는 행동을 꾸짖는 기색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그 순간, 손영애 스스로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하명식의 앞으로 성큼 다가간 손영애가, 주저 없이 손을 들고 따귀를 내리쳤다.“하명식 씨, 이건 당신이 나한테 진 빚이에요. 오늘로 끝이에요. 이제 우리는 남남이에요.”“하씨 가문의 체면이니 뭐니 하지만, 더 이상 당신 곁에 내가 머물 이유가 없어요. 잘 있어요.”손영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하명식은 숨을 들이켰다가 곧바로 뒤따라 나갔다.“멈춰. 거기 서! 손영애, 거기 안 서?”넓은 거실에는 결국 강준과 남훈만 남았다.같은 공간에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던 강준이 지팡이를 짚고 몸을 돌리려는 순간, 남훈이 입을 열었다.“형님, 오씨 가문과의 혼인은 정말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조금만이라도 생각해 보실 수는 없으신가요?”눈썹을 미세하게 찌푸린 강준이 고개를 돌려 남훈을 노려봤다.“누가 네 형님이지?”남훈은 어깨를 으쓱하며 가볍게 웃었다.“그렇게까지 예민하실 필요 있습니까? 형제끼리 힘을 합치면 못 할 게 없잖아요. 제가 다 가져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형님이 필요 없는 몫만 조금 챙기겠다는 건데, 왜 그렇게 적대적으로 나오십니까?”강준은 짧게 웃었다.차갑고 조롱이 가득한 웃음이었다.금속 지팡이를 들어 올린 강준이 지팡이 끝부분으로 남훈의 가슴을 강하게 눌렀다.“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네가 말하는 그 ‘자투리’조차 손대지 못해. 고남훈, 내 아들한테 가짜 약 먹인 일... 난 아직도 안 잊었어. 계산은 천천히 할 테니까 서두르지 마.”남훈은 두 손을 들어 보이면서 항복의 제스처를 취했다.그러나 눈빛에는 도발적인 웃음이 가득했다.“알겠습니다, 형님.”지금의 남훈은 지나칠 만큼 대담했다. 혼인은 이미 자기 몫이라고 확신하는 표정이었다.강준은 하명식을 잘 알고 있었다.하명식이 먼저 나서서 남훈을 대신 세우자고 말할 인물은 아니었다.그건 하태산 앞에서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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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7화

“앉아.”별아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타박하면서, 알코올이 묻은 솜으로 강준의 코 주변에 남은 피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봐라. 밤에 늦게까지 안 자니까 이런 벌을 받는 거지.”알코올의 차가운 촉감에 강준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찔했다.별아는 고개를 숙인 채 상처에 집중하고 있었다.길고 곱게 말린 속눈썹이 조명 아래에서 그늘을 만들었다.부드럽고 지나치게 온화한 얼굴이었다.별아에게서 은은한 난초 향이 흘러나오면서, 계속 강준의 숨결을 파고들었다.더 치명적인 건, 몸을 숙이는 순간 실크 잠옷의 깃 아래로 드러난 매끄러운 피부였다.강준의 시선 한가운데로 정확히 들어왔다.겨우 멎었던 코피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다시 쏟아졌다.“하강준, 설마 백혈병 같은 거 아니지? 왜 이렇게 피가 안 멎어?”놀란 별아가 강준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치면서 물었다.억지로 강준의 고개를 젖히면서 별아가 말했다.“안 멎으면 그냥 삼켜. 기침하다가 더 다치면 안 돼.”급하게 휴지를 뽑아 코에 틀어막은 강준이 잔뜩 코가 막힌 목소리로 말했다.“병은 없어. 그냥 열 받은 거야.”“열 받았으면 물을 많이 마셔.”별아가 물을 가지러 가려고 돌아섰다.그 순간, 강준이 손목을 붙잡았다.그리고 가볍게 끌어당기자, 별아의 몸이 그대로 강준의 품 안에 들어왔다.강준의 몸은 뜨거웠다.얇은 잠옷 따위로는 이 열기를 가릴 수가 없었다.숨결 사이에 애매한 열기가 맴돌았다.“별아.”강준의 목소리는 심하게 잠겨 있었다.눈빛에는 별아가 너무도 잘 아는, 그래서 더 불안한 욕망이 일렁이고 있었다.“나 경계하지 마. 혼자서는 잠이 안 와. 같이 자면 안 될까?”강준의 팔이 별아의 허리를 단단히 감쌌다. 고개를 든 남자의 얼굴에는 체면도 자존심도 없는 애원만 남아 있었다.“안 돼.”별아는 단호하게 말했다.그러나 심장은 말과 다르게 뛰고 있다는 걸 별아 스스로도 느낄 수 있었다.강준은 별아를 놓지 않은 채 그대로 별아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거절하지 마. 그러면... 나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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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8화

별아의 일상은 아주 단조로웠다.출근하고, 강준의 다리 치료에 동행하고, 주말이면 은준을 어린이집에서 데려왔다.철저한 집과 회사만 반복하는 생활.은준이 집에 있을 때만 그 공간에 웃음소리가 흘렀다.그때 노숙현이 급히 들어왔다.“사모님, 하태산 어르신께서 오셨습니다.”‘할아버님?’별아가 잠시 멍하니 서 있는 사이, 하태산은 이미 진차균의 부축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은준에게 하태산은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별아의 뒤로 살짝 숨고는, 커다란 눈을 굴리면서 호기심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다.“은준이가 얼마 전에 아팠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내가 시간이 나질 않아서 찾아오질 못했구나.”하태산이 은준을 향해 손짓했다.“은준아, 나는 증조할아버지란다. 이리 와서 얼굴 좀 보자.”은준은 낯선 기운이 무서웠다.앞으로 나가지 않고, 오히려 별아 뒤로 더 숨어버렸다.“무서워하지 마. 증조할아버지는 안 잡아먹어. 이리 온.”은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별아가 몸을 돌려 은준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가서 증조할아버님께 인사드려야지. 예의 바르게.”“응...”고개를 끄덕인 은준이, 조심조심 하태산 앞으로 다가가서 작은 목소리로 인사했다.“증조할아버님, 안녕하세요.”“그래. 네가가 별아 아들이지? 이름이 뭐야?”“송은준.”그 순간, 하태산이 미간을 단번에 찌푸렸다.그리고 묵직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되물었다.“왜 송은준이냐?”놀란 은준은 곧장 별아 뒤로 달려가 숨어버렸다.하태산의 시선이 별아에게로 옮겨졌다.“별아야, 이건 네가 잘못한 거야. 이 아이는 하씨 가문의 핏줄인데, 왜 송씨를 쓰게 놔뒀어? 당장 ‘하은준’으로 이름을 바꿔.”별아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할아버님, 오늘 찾아오신 이유가 있으신가요?”하태산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물렸다.진차균만 자리에 남았다.“할아버지가 오늘 온 건, 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어서다.”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별아야, 이 할애비도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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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9화

하태산이 내민 카드는 상당했다.의도는 분명했다.별아를 강준에게서 떼어내려는 것이다.조금 순화해서 말하자면, 강준의 정략결혼 앞길을 막지 말라는 뜻이었고, 하씨 가문의 앞길을 방해하지 말라는 경고였다.하씨 가문은 원래 그런 식으로 움직였다.별아는 한때 하태산만은 다를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착각이었다.하태산 앞에서 주식양도계약서를 받아 든 별아는 바로 펼쳐서 지분율을 확인했다.전생에서의 하명식보다 훨씬 통이 컸다.이번에는 무려 하산그룹의 지분 8퍼센트였다.현금으로 환산하면, 평생 돈을 펑펑 써도 다 못 쓸 엄청난 금액이었다.집사 진차균이 다시 설명했다.“이 카드에는 현금 100억 원이 들어 있습니다. 사모님과 은준 도련님이 사는 데에는 충분한 금액이지요. 물론 아이가 짐이 되고 향후 재혼에 걸림돌이 된다면, 하씨 가문에서 책임지고 키우겠습니다.”이 정도 조건이라면, 대부분은 단번에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별아 역시 솔직한 심정으로는 시원하게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었다.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단순하게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별아는 서류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하태산을 바라봤다.시선은 차분했고 목소리도 흔들림이 없었다.“할아버님 뜻은, 제가 지금 당장 떠나라는 말씀이신가요?”하태산의 눈동자를 곧바로 마주한 채, 별아가 말을 이었다.“강준 씨에게 약속했습니다. 다리가 나을 때까지 곁에 있겠다고요. 제가 지금 떠나면, 강준 씨가 치료를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까지도... 할아버님께서 감당하실 수 있다면, 저는 상관없습니다.”말 그대로 한 수를 찔러 넣은 질문이었다.하태산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그러나 이내 입가에 다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당장 내쫓겠다는 뜻은 아니다. 네가 강준이에게 우리 가문을 먼저 생각하라고 설득해 주기만 해도, 할아버지는 충분히 고맙다.”“강준의 다리가 나을 때까지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어도 좋아. 그게 가장 이상적인 그림이지.”‘고맙다’는 말의 의미는 분명했다.별아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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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0화

별아의 눈빛에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증오감이 서려 있었다.강준은 그런 감정을 끌어내려던 게 아니었다.그 순간 더 캐묻고 싶지 않고 그저 안아 주고 싶었다.별아는 한 걸음 물러섰다. 온몸에서 쉽게 다가설 수 없는 거리감이 흘러나왔다.“너도 피곤할 거야. 이제 그만 쉬어.”“별아야, 혹시 뭔가 오해한 거 아니야?”하태산이 직접 찾아온 이유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정략결혼 이야기.돈과 지분을 내밀어, 별아를 치우고 길을 트겠다는 계산.강준은 설명하고 싶었다.그러나 별아는 단호하게 막아섰다.“오해는 없어. 우린 원래 아무 사이도 아니었어. 네 일도, 하씨 가문의 일도 나랑은 상관없어. 설명할 필요도 없고, 난 피곤해. 먼저 쉴게.”별아는 더 말할 틈을 주지 않았다.혼자 계단을 올라서 은준의 방으로 들어갔다.별아의 기색이 가라앉은 걸 본 노숙현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사모님, 하태산 어르신은 평생 강하게 살아오신 분이에요. 어르신이 하신 말씀,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세요.”별아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하씨 가문에서 여자의 쓰임은 늘 똑같았다.필요하면 쓰고, 불필요해지면 버리는 바둑판 위의 돌 신세.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손영애, 그리고 오래전의 남정이 그랬다.상처받는 쪽은 늘 여자였고, 하씨 가문을 떠나는 쪽도 늘 여자였다.하씨 가문에 남아서 좋은 결말을 맞은 여자가 과연 있었을까?별아는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이제는 더 이상 하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니까.“이모님, 저 할아버님을 원망하지 않아요. 그분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에요. 저 때문에 하씨 가문의 백 년 계획이 무너진다면, 그건 분명 큰 죄겠죠. 기회가 되면, 하 대표에게 잘 이야기해 볼게요. 할아버님 말씀을 따르도록요.”“사모님... 정말로 두 분은 다시 함께하실 수 없는 건가요?”노숙현은 그동안 강준의 변화를 지켜봤다.사람은 실수할 수 있기에, 고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게다가 두 사람 사이에는 아이가 있었다.은준은 아빠를 좋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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