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출산의 밤, 하 대표님이 첫사랑을 따라 죽었다: Chapter 271 - Chapter 280

280 Chapters

제271화

연구 책임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고, 공포에 잠긴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빠르게 말을 하느라 숨까지 찼다.[로렌프 교수님이... 최근에 실종됐습니다. 연구실도, 가족도 전부 연락이 끊겼습니다. 제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맥을 써서 겨우 조금 알아냈는데요... 그, 그 사람이... 고남훈 쪽으로 붙은 것 같습니다.]말이 끝나자 전화기 양쪽에는 숨을 죽인 침묵만이 남았다.‘고남훈에게 붙었다고?’‘배신...?’강준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핏빛이 스며든 듯한 눈빛이었다.“쓸모없는 놈.”그 약물은 강준이 아들을 살리기 위해 직접 준비하던 것이었다.그런데 중간에 이런 변수가 터질 줄은 상상도 못 했다.자기 목숨을 내놓고 아들의 목숨을 바꾸는 것과, 프로젝트 성과가 고남훈 손에 넘어가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전제는 단 하나였다.모든 결과는 반드시 강준의 손 안에 있어야 했다.책임자는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하지만 대표님,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보완책을 마련했습니다. 신약이 곧 완성될 예정이고, 효과도 기존보다 더 좋을 겁니다.]“서둘러.”[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뒤, 강준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고남훈은 이미 미완성된 약을 손에 넣었고, 그걸로 별아와 어떤 거래를 했을 거야.’‘나와 별아가 함께 정리해 온 모든 계획이... 전부 무의미해졌네.’‘별아가 나와 아이를 갖지 않아도 좋아. 약으로 은준을 살릴 수만 있다면...’‘하지만 고남훈에게 이용당해선 안 돼!’‘고남훈 그 사생아 새끼는... 속이 얼마나 음흉한지 모를 인간이야. 별아가 다칠 수 있어.’...별아는 은준을 데리고 유명하지 않은 한 리조트로 향했다.부모님에게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약은 이미 검사를 마쳤다.독성도 없었고, 은준의 병에 실제로 반응하는 유효 성분이 확인됐다.몇 번이고 확인한 뒤, 별아는 불안한 마음을 안고 은준에게 약 한 알을 먹였다.효과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다.보름이 지나자 은준의 수치는 눈에 띄게 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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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화

별아는 선뜻 약을 내주지 않았다. 눈빛부터 거절의 의사였다.“왜 내가 너한테 줘야 하는데?”“너는 아무 생각도 없으니까.”강준은 별아가 진짜로 순진한 건지, 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건 일반적인 약이 아니라 출처도 불분명한 약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건넨 약을, 그것도 아무 검사도 없이 아이에게 먹이다니. 이건 미련한 걸 넘어서 거의 광기에 가까웠다.“내가 왜 생각이 없다는 건데? 하강준, 너 지금 이러는 거 은준이를 데리고 네 집으로 안 돌아가서 그런 거잖아.”“그래서 이렇게 화풀이하는 거지? 세상이 다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별아는 강준을 똑바로 노려보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강준의 통제와 간섭에 대한 거부감이 눈빛에 선명하게 배어 있었다.강준도 이성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서 최대한 차분하게 설득하려고 했다. 하지만 별아는 이미 고남훈에게 완전히 말려든 상태였다.강준이 말을 할수록, 별아의 반발은 점점 더 거세졌다.“약 줘. 내가 전문가한테 맡겨서 검사해볼게. 진짜 문제가 없으면, 그때 은준이한테 먹여.”별아는 고개를 홱 돌린 채 아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강준이 결국 목소리를 낮췄다.“나 정도면... 고남훈보단 믿을 수 있지 않겠어?”그래도 별아는 반응이 없었다.그녀는 강준이 약을 가져간 뒤 다시는 돌려주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손끝에 쥔 약병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줘.”강준의 목소리가 단호해지면서 굳어졌다.그 소리에 화들짝 놀란 별아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뭘 그렇게 소리를 질러? 내가 왜 너를 믿어야 하는데? 너가 뭐라도 되는 줄 알아?”별아는 눈물이 쉽게 터지는 체질이었다. 독한 말보다 눈물이 항상 먼저 나왔다.강준은 그 눈물을 보는 순간, 마음이 무너졌다.“나 화낸 거 아니야.”별아는 고개를 돌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쉴 새 없이 눈물을 닦을 뿐이었다.손수건을 내민 강준이 어느새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거의 달래듯이 말했다.“알았어,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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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3화

이걸 강준이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약 전부 바꿔. 당장은 병세를 안정시키는 쪽으로 가야 해. N국에서 개발 중인 신약 있지? 거의 막바지라고 했잖아. 네가 계속 체크해. 출시되면 바로 은준이한테 쓰도록 해.”고남훈이 그렇게 손을 대는 바람에, 은준의 몸은 이미 속이 다 비어 버린 상태였다.임신해서 제대혈을 뽑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 같은 건 이제 없었다.설령 강준의 생리 인자를 사용한다 해도, 좋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알겠습니다.”“그리고 이 일은 별아한테 말하지 마. 괜히 자기 탓으로 돌릴 수 있으니까.”강준의 말에 재환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강준은 결국 별아와 은준을 집으로 데려오는 걸 고집했다.이유는 단순했다. 아빠가 곁에 있으면, 아이는 더 빨리 나아진다는 거였다.아들을 위해서라면 별아는 참을 수 있었다.다만 선은 분명히 그었다. 각자 방에서, 각자 잠을 자는 걸로.강준은 집에 있는 날이면 빠짐없이 제시간에 들어왔다.매일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서 은준과 게임을 했다.강준은 다리가 좋지 않았다.가끔 분위기에 휩쓸려 놀다 보면, 오히려 은준한테 당하기도 했다.별아는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하강준... 한창일 나이인데.’‘저 다리는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그 다리... 평생 절게 되는 거야? 다시 나을 수는 없어?”아들과 장난을 치던 강준은 마치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별아를 힐끗 봤다.“네가 은혜 갚는다고 나 평생 돌봐줄 거면, 난 평생 절어도 괜찮아.”“미쳤어.”별아는 고개를 돌려 마당 쪽을 바라봤다.그때 노숙현이 급하게 들어왔다.그리고 그 뒤를 따라 들어온 사람은... 가인이었다.‘하강준의 약혼녀가 왔네.’별아는 은준을 안아 올렸다.“아빠가 할 얘기가 있대. 우리 먼저 방에 가자.”강준은 잠시 멍해졌다. 뒤돌아보는 사이 가인이 이미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대표님, 서 교수님 오셨습니다.”매트에서 일어난 강준이, 살짝 구겨진 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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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4화

별아는 방 안에 있었다.강준과 가인의 대화는 희미하게 들릴 뿐 또렷하지는 않았다.‘한때는 결혼까지 약속했던 사람이잖아.’‘그 사이에 정리되지 못한 감정이 하나도 없을 리가 없지.’별아는 은준을 재워놓고도 한동안 아이 곁을 떠나지 못했다.아이의 숨결을 확인하면서도, 눈빛에는 여전히 걱정이 묻어 있었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강준이 들어왔다.아들을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별아와 단둘이 있을 시간이 필요했다.“며칠 안에 새 약이 들어와. 은준이 병에 꽤 효과가 좋을 거야. 너무 불안해하지 말고... 앞으로는 고남훈하고도 가급적 만나지 마.”강준에게는 조심스러운 당부였다.하지만 별아의 귀에는 경고처럼 들렸다.“내가 누구를 만나든, 그건 내 자유야.”“자유 찾다가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잖아.”강준은 별아의 말을 되묻듯 확인하고 있었다.정말로 강준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서 별아는 답답해졌다.일부러 강준이 듣기 싫어할 말을 골라 말했다.“고남훈은 잘생겼잖아. 인상도 나쁘지 않고 친절했어, 내 아들 병을 낫게 하겠다고 약도 줬어. 네가 고남훈을 싫어하는 건, 그냥 네 아버지의 사생아라서 그런 거잖아. 네가 속이 좁은 거지.”강준은 웃었다.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손을 뻗어 별아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나 화나게 하는 거, 그렇게 재밌어?”“손대지 마. 우리 아무 사이도 아니야. 너나 잘해. 내 일에 참견하지 말고.”강준의 손길이 닿자, 별아의 얼굴이 은근히 달아올랐다.뜨거워진 뺨을 짚으면서, 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은준의 방을 나왔다.심호흡을 두 번쯤 하고, 욕실로 들어가 찬물로 얼굴을 씻었다.강준이 그 뒤에 서 있었다. 오른손에는 여전히 금속 지팡이를 짚은 채.강준의 다리는 별아가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외면할 수 없는 존재였다.처음으로 그가 다친 모습을 봤을 때부터 지금까지, 별아는 그의 고통에 대해 제대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별아는 거울에 비친 강준을 바라보며 물었다.“걸을 때... 많이 아파?”“응.”강준은 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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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5화

강준의 손이 아래로 더 내려가더니, 별아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별아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별아는 강준의 몸에 생긴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곧바로 겁이 나면서, 있는 힘을 다해 강준을 밀어냈다.“너, 너... 너 몸도... 안 되는 거 아니었어?”강준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리고 다시 별아를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허리가 문제지. 거기가 문제인 건 아니야.”강준에게도 욕망은 있었다.다만 그 욕망은 오직 별아를 향할 뿐이었다.강준은 별아를 지금 당장 몰아붙이고 싶지 않았다.강준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아직 자신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적어도 한 번의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했고, 불 속이라도 뛰어들 각오로 책임지겠다는 계기가 필요했다.강준이 원하는 건 오직 단 하나, 기회였다.“별아야, 우리... 정말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안 될까?”별아는 대답하지 않았다.두 사람 사이의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긴 침묵이 흘렀다.“지금은 우리 사이를 생각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 은준이 완전히 회복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별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하지만 강준에게는 그 말이 작은 틈새처럼 느껴졌다.별아가 내준 아주 희미한 희망이지만 강준은 고마웠다.“알겠어.”...새 약이 곧 해외에서 도착했고, 은준은 병원으로 옮겨졌다.여러 약물 치료를 병행한 덕분에 은준의 회복 속도는 빨랐다.다만 완전히 흔적 없이 지나가지는 않았다.예를 들면, 밤중에 잦은 기침을 하는 것 같은 후유증이었다.남선애가 배와 백합을 푹 고아서 가져왔다.은준에게 먹이기 위해서였다.은준은 성실하게 잘 먹고 매번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별아야, 엄마가 집에 가서 은준이 좋아하는 것도 좀 더 해올게. 요즘 보니까 입맛도 많이 돌아왔더라. 혈색도 훨씬 좋아졌고. 이 정도면 금방 다 나을 것 같아.”남선애는 기쁜 얼굴로 은준을 안고 볼에 입을 맞췄다.“외할머니가 집에 가서 은준이 좋아하는 국도 끓여서 올게. 기침도 서서히 괜찮아질 거야.”“고마워, 외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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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6화

별아가 자리를 뜨려고 하자, 서가인이 막아섰다.반드시 결론을 내야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그리고 다음 순간, 가인은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송별아 씨... 제발요. 한 번만 선처해 주세요.”사람들이 오가는 대로 한복판이었다.가인이 무릎을 꿇자,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별아에게 쏠렸다.“아이고야, 이게 무슨 일이래.”한 아주머니가 가인을 일으켜 세우려고 다가왔다.“아가씨, 무슨 일이 있어도 이렇게까지 하면 안 되지. 말로 하면 되잖아.”가인은 그 손을 뿌리쳤다.“아주머니, 신경 쓰지 마세요. 오늘은 꼭 말해야겠어요. 이 여자가... 제 약혼자를 뺏었어요.”그 말을 듣자, 아주머니의 얼굴이 굳어졌다. 곧바로 고개를 돌리더니 별아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아니, 이 여자 뭐야? 남의 남자를 뺏고서, 사람을 이렇게 무릎 꿇게 만들어? 사람 마음이 그렇게 독해도 되는 거야?”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끼어들기 시작했다.“세상에, 내연녀 주제에 피해자한테 무릎까지 꿇게 하네. 요즘 세상이 왜 이래? 진짜.”“남자를 뺏겼으면 다시 데려오든가 해야지, 무릎 꿇는다고 해결돼? 저런 사람들은 원래 마지노선이 없어.”“젊은 것들이 말이야, 나이도 어린데 할 일은 안 하고. 왜 남의 집 남자가 그렇게 탐이 나? 부모가 뭘 가르쳤길래 저런 거야?”“...”사람들은 점점 더 모여들었다.별아는 순식간에 인파 한가운데 갇혔다.쏟아지는 시선과 말들이... 마치 등을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느껴졌다.별아는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사람들에게 설명하려다가 그만두기로 했다.‘설명한다고 누가 믿어줄까? 사람들은 진실엔 관심 없어.’‘이미 나는 남자를 뺏은 나쁜 여자야.’‘나쁜 여자는 욕하면 욕을 먹어야 하고, 침을 뱉으면 그대로 맞아야지.’‘맞아도 싸다고 생각하겠지.’‘구경꾼들이 원래 그래. 싸움 구경은 싸움이 클수록 재미있는 법이잖아.’“다들 좀 떨어져 주세요. 더 다가오면 경찰 부를 겁니다.”별아는 뒷걸음질 쳤지만 더 이상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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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7화

눈물이 범벅이 된 가인이 강준의 다리를 끌어안고 매달렸다.거의 바닥에 엎드리다시피 한 채, 목이 쉬도록 애원했다.“강준 씨... 화내지 마세요. 저는 강준 씨가 송별아 씨를 사랑하는 걸 원망하지 않아요. 그냥 한 번만... 저랑 집에 가서 아버지 좀 만나 주세요.”“정말 얼마 못 사세요... 제발요. 한 번만요. 부탁드릴게요.”주변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아이고, 저 아가씨 너무 불쌍하다. 저 남자는 돌도 씹어 먹을 인간인가 봐. 세상에 저렇게 매정할 수가 있나.”“아가씨, 그만 울어. 저런 남자 때문에 이럴 필요 없어. 세상에 남자 많아. 내가 더 괜찮은 사람 소개해 줄게.”“그래, 그래. 얼른 일어나. 바닥도 찬데. 다리 부러질 때까지 빌어도, 저 두 사람은 눈 하나 깜짝 안 할 거야.”“...”가인은 고개를 저었다. 울음을 삼키며 그대로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쿵!다시 한번.쿵!이마가 바닥에 부딪힐 때마다 둔탁한 소리가 났다.금세 피가 배어 나오면서 가인의 이마를 붉게 물들였다.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강준 씨... 죄송해요... 정말... 정말 죄송해요...”강준이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그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이건 또 무슨 연극이지? 사람들 앞에서 판을 키우려는 건가?’‘별아를 더 궁지로 몰아넣으려고?’“서가인.”강준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그만해.”“이런 행동은 별아한테 상처만 줄 뿐이야. 집에 가.”강준은 별아를 감싸 안듯 팔을 둘러, 몸을 돌렸다.그대로 떠나려 했다.하지만 사람들은 쉽게 길을 내주지 않았다.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여전히 강준을 향해 손가락질했다.강준의 인내심이 끊어졌다.“뭐 하는 거야, 다들?”그는 크게 소리쳤다.“잘 들어. 이 사람이 바로 내 아내야.”강준은 별아를 더 세게 끌어안았다.“그리고 저기 무릎 꿇고 있는 사람은... 나랑 아무 관계도 없어.”강준의 시선이 사람들을 가로질렀다. 눈빛에는 단호한 냉기가 서려 있었다.“사정도 모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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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8화

별아는 침대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기척을 희미하게 느꼈다.눈꺼풀이 납덩이처럼 무거웠다.그녀는 힘겹게 눈을 조금 떠서 앞을 바라봤다.주사기를 들고 있는 ‘간호사’가 있었다.그 주사기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걸 지금 맞고 있는 수액에 주입하려는 듯 보였다.별아는 간신히 입술을 움직였다.“너... 뭐 하는 거야?”그 순간, 주사기가 크게 흔들리더니 손에서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졌다.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눈빛은 확연하게 흔들렸다.‘간호사’는 급히 바닥에서 주사기를 주워들었다.아무 일 없다는 듯,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소염제입니다.”별아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이 목소리... 너무 익숙한데.’“오늘 근무하는 간호사 아니잖아. 당신 누구야? 목소리가 왜 이렇게 익숙해... 서가인, 너지? 서가인 맞지?”별아는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다.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체형도 목소리도 드러난 눈매까지도 너무나 닮아 있었다.‘이 여자가... 뭘 하려는 거지?’여자는 별아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면서 웃었다.그리고 다시 주사기를 수액병 쪽으로 가져갔다.그 순간, 별아는 직감적으로 위험을 느꼈다.그녀는 있는 힘을 다해 손등에 꽂혀 있던 바늘을 잡아당겼다.‘간호사’는 그걸 보는 순간, 계획이 틀어졌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그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곧바로 주사기를 들어, 별아의 몸에 직접 꽂으려고 했다.별아의 몸은 너무 약해져 있었다.정면으로 맞서면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그녀는 팔로 버티면서 필사적으로 저항했다.그러다 손에 걸린 마스크를 거칠게 잡아당기자 마스크가 벗겨졌다.“역시 너였어! 서가인, 너 미쳤어? 하강준을 못 가졌다고, 날 이렇게까지 망가뜨리겠다는 거야? 진짜 미쳤어?”가인의 눈은 충혈돼 있었다. 이를 악물고 별아를 노려봤다.“송별아! 전부 다 네 때문이야. 네가 나타나서...”가인의 목소리가 갈라졌다.“우리 아버지는 화병이 나서 돌아가셨어. 나도 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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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9화

가인의 몸이 벽에 부딪치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괜찮아?”강준은 다급하게 별아의 몸을 살폈다.“어디 다친 데 없어?”별아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강준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고는, 바닥에 떨어진 주사기를 집어 재환에게 건넸다.“이거 바로 성분 분석해. 그리고 저 여자부터 데리고 나가. 처리는 내가 직접 할 거니까.”“알겠습니다, 대표님.”이 일로 한바탕 소동을 치르자, 별아는 다시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강준은 마음이 미어졌다.‘아이 병간호만으로도 이미 한계였을 텐데...’‘서가인까지 이런 짓을 벌였으니, 안 아플 수가 없지.’‘다 내 탓이야.’해열제 주사를 맞힌 뒤, 별아를 품에 안은 강준은 조심스럽게 등을 토닥이며 잠들 때까지 달랬다.수없이 많은 사과의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강준은 깊은 자책에 잠겼다.별아가 잠든 틈을 타서 강준은 사람을 시켜 별아와 은준을 같은 병실로 옮겼다.남선애가 곁에서 지키고 있었기에 그제야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요즘 강준에게 쏟아지는 일은 너무 많았다.은준의 병에 대한 조사는 이제 막 시작 단계였고, 서가인의 보복은 예상보다 훨씬 집요했다.그리고 여전히 그늘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고남훈.강준은 차 안에 앉아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렀다.마음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강준이 병원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겸이 선물을 들고 병원을 찾았다.은준을 문병하러 온 길이었다.그런데 병실에 들어서자, 별아까지 병상에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별아 씨, 괜찮으세요? 어쩌다 이렇게까지 몸을 상했어요? 혼자 다 끌어안지 마세요. 힘든 일 있으면, 친구들한테도 좀 맡기셔도 됩니다.”이겸의 눈빛에는 분명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별아는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조금... 일이 있었어요. 괜찮아요.”“지난번에 수지 씨 통해서 보내드린 보석, 잘 받았습니다. 누나가 많이 좋아하더군요.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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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0화

어차피 정략결혼이라면, 누굴 선택하든 기준은 하나였다.바로 이익이다.감정 같은 건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사랑은 더더욱 아니었다.시간이 지나 정이 들 수도 있겠지만, 그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수지는 사실 정략결혼 자체를 거절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수지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정략결혼을 하지 않으면, 아마 이 생에서 결혼이라는 걸 하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수지는 아이를 좋아했다.그런데 정자은행을 통해 아이를 갖는 선택지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수지의 생각으로는, 사회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명분이 있는 방식으로 ‘그나마 괜찮은 남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는 편이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그 많은 정략결혼 후보들 가운데, 조건만 놓고 보면 이겸만 한 상대는 없었다.“유 변호사님 말씀도 맞아요. 사실 우리 집안도 이미 몇 군데를 놓고 보고 있어요. 손씨 가문도 있고, 고씨 가문도 있고요. 다들 사업적으로도 얽혀 있으니까, 혼인으로 관계를 더 굳히면 서로 좋겠죠.”이겸은 고개를 끄덕였다.‘이걸로 끝이겠지. 수지 씨 쪽에서도 나를 배제한 거라면, 그게 오히려 편해.’‘앞으로 마주쳐도 서로 예의만 지키면 되니까.’그때 수지가 고개를 돌려 이겸을 바라봤다.“유 변호사님은 강주은에 대해 잘 아세요?”“아니요.”이겸의 대답은 짧았다.수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그렇다면, 저를 한 번 고려해 보시는 건 어때요?”수지는 자신을 추천하듯 말했다.그녀는 이겸처럼 감정 앞에서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사람이 아니었다.“유 변호사님만 괜찮으시다면, 저희는 바로 약혼을 진행해도 돼요.”이겸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수지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더 깊어졌다.수지는 그의 답을 기다렸다.한참이 지나서야 이겸은 시큰거리는 눈을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수지 씨도 아시겠지만, 저는 별아 씨를 좋아합니다. 별아 씨의 친구분에게... 상처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수지의 가슴이 순간 차갑게 식었다.‘이건 거절인가?’‘하지만 정략결혼에서 누굴 선택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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