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121 - Chapter 130

205 Chapters

제121화

문 마님은 겸손한 태도를 유지한 채 답했다.“마님 이야말로 저를 과분하게 대해 주시네요. 마님을 자수방에서 뵙지 못했다면 제가 어찌 이런 생각까지 떠올릴 수 있었겠습니까?”강시아는 손끝으로 부드러운 비단을 살짝 눌러 보았다.“아직 뾰족한 방도가 떠오르지 않네요. 이 비단은 제가 가져가서 좀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문 마님은 얼른 하녀에게 명해 비단을 수틀에서 풀게 했다.강시아는 설강이 비단을 거두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오늘 또 작은 일 하나 부탁드리러 왔습니다.”문 마님은 지금 기분이 아주 좋았다. 강시아의 쌍면상 기법만 익혀두면 앞으로 주인에게 전갈을 더 은밀하고 안전하게 전할 수 있을 테니까.“마님, 편하게 말씀하세요.”강시아가 말했다.“제 고향은 초주인데 집에 오라버니 한 분 계십니다. 오라버니께서 머지않아 상경하여 과거를 보러 오실 텐데 문 마님께서는 세상사에 밝으시니 뭐 하나 여쭙고자 합니다. 초주에서 우주까지 수로를 따라오는 길에 배를 구할 방도가 있을까요?”“초주에서요?”문 마님이 고개를 갸웃거렸다.“초주에서 상경하려면 가주와 금주를 거쳐 올라오는 것이 가장 편리한 길이지요. 왜 하필 우주를 경유하려 하십니까?”강시아는 쓴웃음을 지었다.“다음 달이면 정실부인이 새로 들어오고, 심지어 연말엔 마님과 세자의 생신도 있습니다. 저는 정실부인처럼 재물이 넉넉지 않아 경성의 절반 값 밖에 되지 않는 우주의 남옥을 살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오라버니께서는 수고스러우시겠지만요.”그제야 문 마님은 깨달았다. 이전에 강 마님이 눈속임한 그 진주가 바로 이 수를 두기 위한 것임을 말이다. 참으로 밑천 한 푼 들이지 않은 장사였다.이 정도의 심지라면 강 마님의 앞날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터였다. 만약 그녀의 오라버니가 과거에 급제해 출세한다면 영국공부에서 강시아를 평처로 삼으라고 할지도 몰랐다. 더 멀리 내다보면 다음 국공부인의 자리에 오를 사람은 그녀일 수도 있
Read more

제122화

강시아는 공손히 예를 올렸다.“서방님, 소첩이 장객 부인의 부탁을 받아 자수 기법을 가르쳐드리고 있었습니다.”주종현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서둘러 돌아가거라. 이곳은 머물 곳이 못 된다.”그녀가 문밖으로 나서려던 찰나, 뒤쪽에서 언쟁 소리가 들려왔다. 듣자 하니 옥보루에 간첩이 숨어 있는 모양이었다.강시아는 더 들을 마음이 없어 설강을 데리고 마차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마차에 다다르자마자 바로 이상함을 느꼈다.“위심은?”설강이 뒤돌아가 살펴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강시아는 먼저 마차에 올라타며 말했다.“이미 돌아갔겠지. 그러니, 신경 쓰지 말고 우리 먼저 가자꾸나.”“제가 한 번 더 찾아보겠사옵니다.”“그를 왜 찾는 것이냐? 덩치도 크고 무공도 있는 사내가 길이라도 잃었을까 봐?”“아, 맞네요. 그 분은 무공을 할 줄 아시지요.”설강도 그제야 마차에 올라타자 강시아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너, 나한테 할 말 있지 않느냐?”설강은 눈을 피하며 어색하게 웃었다.“아무 말도 없사옵니다. 정말이옵니다.”강시아는 잠시 그녀의 눈을 바라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너, 예전에 나한테 같이 데려가 달라 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의 통행증을 만들어 주마.”그 말에 설강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엔 머뭇거림과 망설임이 스쳤다.처음엔 장우를 따라가고 싶어 떠나려 했지만 이제는 달랐다.그녀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저… 다시 생각 좀 해보겠사옵니다.”강시아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었다. 설강은 자신이 도망칠 계획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기에 그녀를 남겨둘 수는 없었다.마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설강은 감히 강시아를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그녀는 한때 장우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모든 감정을 뜨겁게 쏟아부었었다. 그래서 강시아의 통행증을 보았을 때 이왕이면 함께 떠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장우라는 사내는 사기꾼이었기에, 지금 밖으로 나간다고 해도 그녀는 갈 곳이
Read more

제123화

그날 오후, 연아의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자 강시아는 직접 본원으로 그녀를 마중하러 갔다. 연아는 언제나 해바라기처럼 따뜻하고 환한 아이였다. 강시아는 딸의 웃는 얼굴을 보기만 해도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어머니!”강시아는 연아를 품에 안았다.“연아야, 우리 아버지의 서재에 가서 책 한 번 찾아볼까?”그녀는 이미 떠날 날짜와 목적지를 정해 두었다. 이제 필요한 건 간단한 노선도를 그리는 일이었다.대성산하지그 책에는 각 주현의 지세와 풍속, 성읍의 구조가 자세히 그려져 있었다. 비록 정식 여지도처럼 정밀하진 않지만 그녀에게는 이것 만으로도 충분했다.연아는 요즘 어머니를 만날 날이 드물었기에 그저 강시아의 목소리에 전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좋습니다!”강시아는 딸의 작은 코끝을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주종현의 서재에는 책이 가득했다. 예전 강시아가 잠시 그곳에서 지낼 때, 그녀는 책장 사이에서 소설책을 찾아 읽곤 했었다.뜰에는 아무도 없었기에 적막만이 감돌았다. 주종현이 첩을 들이기 전에 이곳은 이렇게까지 싸늘하지 않았다. 강시아가 첩이 된 이후 그는 이유를 붙여 사람들을 모두 내보내고 청소를 맡은 소년 하인 둘만 남겨 두었다.과거의 시절을 떠올리자 강시아는 냉소를 터뜨렸다.어쩐지 온 집안이 자신을 헐뜯는다 했다.세자의 침상에 오른 여자라느니, 세자가 다른 여인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막았다느니... 그녀는 그저 그럴듯한 방패막이였던 셈이다.서재는 정청 옆에 있었는데 채광이 좋았고 그녀의 침실보다 훨씬 넓었다. 그 안의 책은 네 해 전, 그녀가 이곳에 머물던 때보다 훨씬 많아져 있었다.강시아는 가득 찬 책장을 보며 잠시 멍해졌다.책이 이렇게 많은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찾아야 한단 말인가?“어머니, 이 붉은색 나는 거 엄청 예뻐요!”연아는 어느새 태사 의자를 타고 올라 책상 위에 앉아 있었는데, 그녀의 통통한 작은 손이 하나의 비녀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그것은 바로 그날 자림원에서 주종현이 활쏘기 시합에서 이겨 돌아와
Read more

제124화

주종현이 서재로 돌아왔을 때, 그는 단번에 무언가 사라졌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산하지가 없어졌다. 누가 서재에 다녀갔는지 당장 조사하거라.”위심과 만천이 동시에 멈춰 섰다.“예.”세자의 서재에는 평소 사람이 없었지만 날마다 청소하러 드나드는 소년 하인들은 있었다. 그 하인이 오늘 강 마님과 어린 아가씨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고 위심이 보고했다.주종현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오늘 갓 옥보루에서 그녀를 봤는데 돌아오자마자 태후 일당의 죄증을 숨겨둔 “산하지”가 사라졌으니 말이다.그의 시선이 책상 위로 향했다. 비녀가 움직여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조그마한 발자국 하나가 찍혀있는 것이 보였다.위심이 머뭇거리며 말했다.“혹시… 오해일지도 모르옵니다.”요 며칠 비록 강 마님과 마주한 날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녀는 결코 간첩처럼 보이지 않았다.성왕은 태후의 손에서 자랐고 그의 저택에는 태후의 어린 아들인 일곱 째 왕야가 살고 있었다. 게다가 송이당 역시 태후파에 속하지 않았던가?이 와중에 송 아가씨와 강시아는 서로 싸우느라 바쁜데 설마...만천은 납득하지 못했다.“세상에 그렇게 많은 우연이 대체 어디 있겠사옵니까? 사실인지 아닌지는 조사해 보면 알 일이지요.”주종현은 낮은 목소리로 명했다.“오늘 옥보루에서는 별다른 걸 찾지 못했다. 지금 당장 그곳의 장객 부인을 감시하도록 하거라.”그는 곧이어 말을 이었다.“너희는 물러가거라. 그녀의 처소는 내가 직접 가보겠다.”그가 강시아의 작은 뜰에 들어섰을 때, 오직 그녀의 방에서만 은은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느릿하고 조용한 발걸음으로 기척 하나 없이 침전 안으로 스며들었다.강시아는 책상 앞에 엎드려 붓을 휘날리며 글을 쓰고 있었다. 그녀의 필체는 단정하고 고운 해서체 같았다. 주종현의 시선이 책상 위에 펼쳐진 “산하지”로 향했다. 그가 발걸음을 내딛자 바깥의 등불이 그의 그림자를 길게 늘여 틀었다. 그의 그림자가 흔들리며 책상 위로 드리워졌으나 글을
Read more

제125화

그의 얼굴빛이 좋지 않자 강시아는 재빨리 말했다.“소첩의 뜻은… 지금 바로 쓰겠다는 말입니다!”주종현은 소매 속에 감춘 책을 쥔 채 낮게 응했다.“그래, 나는 아직 처리할 공무가 남았다.”강시아는 고개를 숙여 예를 올렸다.“예, 서방님을 배웅하겠습니다.”그러다 문득 무엇인가 떠오른 듯 고개를 들었다.“서방님, 지난번 드린 옷은 몸에 잘 맞으시옵니까?”“응? 아… 잘 맞는다.”그가 막 서재의 이상함을 알아차리자마자 서둘러 돌아왔기에 옷을 입어볼 겨를조차 없었다.강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맞는다니 다행입니다.”주종현은 산하지를 품에 안고 서재로 돌아갔다. 그는 아무렇게나 책을 위심에게 던져주고는 곧바로 속옷을 갈아입었다.“세자 저하, 소인 생각에는... 어? 저하 괜찮으시옵니까?”옆방에서 걸어 들어온 위심은 주종현이 목을 쭉 빼들고 안간힘을 다해 옷깃의 단추를 푸는 모양을 보고 말았다. 위심의 목소리를 듣자 주종현은 손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무슨 일이냐?”길게 늘린 옷깃은 뻣뻣하게 그의 턱을 짓눌렀고, 두툼한 어깨선은 그의 목을 더 짧아 보이게 만들었다. 단추를 겨우 풀고서야 주종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괜히 잘 맞는다며 입을 놀리지 말 걸.위심은 시선을 돌렸다. 자칫 잘못하면 웃음이 터져 나올까 두려웠다.“물건은 손대지 않은 듯하옵니다. 한데 그 물건들이 아직 남아 있사옵니다 소인은… 지금 이 집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하옵니다.”주종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며칠 후 강 씨를 동산 장원으로 보내는 날, 그 틈을 이용해 물건을 장원으로 옮기거라. 의심을 사지 않게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예.”“세자 저하, 방금 보고가 들어왔사옵니다. 여 가가 방금 습격을 받았다고 하옵니다.”주종현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드디어… 하늘이 변하려는군.”그는 잠시 침묵하다 낮게 명했다.“야행의복을 갈아입거라. 행궁으로 간다.”“예.”다음 날. 강시아는 완성된 ‘편지’를 들고 집을 나섰다. 겉보기엔 역
Read more

제126화

강시아는 더 이상 그녀와 쓸데없는 말다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송하윤과 오래 지내다 보니 머리마저 굳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녀와 논쟁하는 건, 한마디 한마디가 고스란히 시간 낭비였다.“제가 부끄러운 짓을 한다고 생각하신다면 그냥 가서 고하시지요.”말을 끝내자마자 강시아는 곧장 그녀를 지나쳐 밖으로 걸어 나갔다.주온청은 잠시 얼어붙었다. 이게 정말 그동안 고개 숙이며 살던 강 씨가 맞단 말인가? 떠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어제 적모가 들여온 혼사 화상을 떠올렸다. 주온청은 이를 악물고 발을 구르더니 결국 강시아를 따라 나섰다.마차가 막 출발하려는 찰나, 강시아는 얼굴을 찡그리며 아랫배를 문질렀다. 통증이 며칠째 이어지는데, 정작 달거리는 오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때, 발걸음 소리와 함께 발칸이 들리며 마차의 발막이 들추어졌다.주온청이 올라타서, 원래 두 사람이 타고 있던 작은 마차는 이제 숨이 막힐 정도로 좁아졌다. 그녀는 자신과 마주 앉은 강시아의 찌푸린 얼굴을 보고는 콧대를 치켜세우며 퉁명스럽게 말했다.“저는 오늘 꼭 당신을 따라 나갈 겁니다!”그때 또다시 복통이 몰려왔다. 이미 신경이 곤두서 있던 강시아는 더 이상 주온청을 상냥히 대할 여유가 없었다.“셋째 아가씨, 송 아가씨한테도 미움 받는다고 들었는데 소첩은 지금 그럴 시간이 없습니다.”“당신!”주온청은 눈이 부릅떴다. 하지만 곧, 화상 이야기가 떠올라 주먹을 움켜쥔 손끝의 힘을 풀었다. 그녀는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렸다. 오늘 적모가 혼담 화상을 들여왔는데, 그 첫 번째 초상화의 주인공은 바로 유한석 대인이었다. 그는 지난번 오라버니를 위해 의리 있게 나서 준 사람이며, 심지어 강시아의 오라버니와는 과거 급제 동문이라는 얘기도 있었다.초상화 속의 청년은 얼굴이 곱고 곧은 인상이었다. 중매쟁이의 말에 따르면 그는 풍모가 단정한 젊은 신귀족이라고 했다. 출신은 미천하지만 지금처럼 그녀가 마음에 들어한다면 선택할 수 있는 시기는 길지 않다고 했다. 머지않아 유한석이 여
Read more

제127화

강시아는 그녀를 힐끗 보았다.“셋째 아가씨도 참 이상하네요. 소첩에게 다른 사내의 성격을 묻는 건 또 무슨 뜻입니까? 설마 저를 부끄러운 짓이라도 하는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던 겁니까?”주온청은 그제야 도끼를 들어 스스로 제 발등을 찍는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강시아 쪽으로 한 발 더 다가가더니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았다.“강 마님, 제발 좀 알려주세요.”강시아는 귀신이라도 본 듯 재빨리 손을 뺐다.“셋째 아가씨, 제정신이십니까?”그러면서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어쩐지 요즘 송 아가씨 쪽이 잠잠하다 했습니다. 이제 보니 그 계책을 아예 셋째 아가씨한테 돌려놓은 거군요.”그 말에 주온청은 이해하지 못한 눈빛으로 물었다.“무슨 소리입니까? 전 하윤 언니를 못 본 지는 벌써 보름… 아니, 거의 한 달은 됐습니다!”그녀는 잠시 기억을 더듬었다.“아마… 태후 마마의 회갑연 전이었겠죠. 그날 오라버니께서 구금되었을 때, 저도 송 대인께 도움을 청하기 위해 송 가로 갔습니다. 한데 그때도 하윤 언니를 보지 못했지요.”강시아는 코웃음을 치자 주온청은 성이 나서 홱 돌아보았다.“왜 웃는 것입니까!”강시아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별건 아닙니다. 셋째 아가씨께서 라고 아직도 다정하게 언니라고 부르는 게 좀 신기해서요.”주온청의 관자놀이가 불끈거렸다. 예전엔 강시아가 그저 무른 반죽 같은 여자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이건 반죽이 아니라 손끝만 닿아도 따끔하게 데는 밤송이였다.“웃고 싶으면 웃으세요! 저는 하윤 언니와 어릴 적부터 한솥밥 먹은 사이입니다. 그날은 아마 집에 없었던 것일 겁니다.”강시아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 독하고 이기적인 송하윤이 어떻게 이런 단순한 아이와 친해질 수 있었을까.“어릴 적 정분이라… 그래도 아무 느낌 못 받았습니까?”주온청은 멍한 표정으로 되물었다.“느낌이요? 무슨 느낌 말입니까? 하윤 언니는 줄곧 경성에 있었던 건 아닙니다. 송 가가 그 일 겪은 뒤로 그녀
Read more

제128화

강시아는 배를 움켜쥐었다. 방금의 충격은 마치 누군가 커다란 손을 뻗어 그녀의 오장육부를 거칠게 틀어쥐고 비트는 것처럼 무척이나 고통스러웠다.주온청이 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그녀의 창백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괜찮습니까?”강시아는 마차 벽에 몸을 기대어 한참 동안 숨을 고르고서야 얼굴에 조금씩 핏기가 돌아왔다.“괜찮다.”“괜찮긴 뭐가 괜찮습니까!”설강이 울먹이며 외쳤다.“마님께서는 며칠 째 배가 아프시지 않사옵니까!”그러자 주온청이 곧 말을 이었다.“근처에 의원이 있으니 당장 가서 보는 게 좋겠습니다.”설강은 얼른 강시아를 부축해 마차에서 내렸다.그제야 유한석이 마차 안의 강시아를 보고 놀란 듯 다가왔다.“마님, 괜찮으십니까?”주온청은 곧게 선 그의 모습에 눈빛을 반짝였다가 이내 다시 얼굴을 굳혔다.“이게 괜찮은 모양입니까?”그녀는 고개를 홱 돌리며 명했다.“설강, 어서 강 마님을 의원으로 모시거라. 나는 유 대인과 이야기를 좀 해야겠구나. 대낮에 거리에서 말을 질주 시켜 사람을 다치게 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짓인지!”설강은 강시아를 부축해 의원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바로 그때, 밖에서 갑자기 말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터지더니 곧 주온청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은 그 소리에 놀라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주온청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유한석이 한 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감싸 안고 있었다.타고 있던 말은 완전히 미쳐 날뛰다가 마차를 뒤엎고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고, 네 다리를 허공에서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쳤다. 무거운 마차가 말을 짓누르고 있지 않았다면 벌써 사람들 속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강시아는 설강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렸다.“어서 가서 보거라. 셋째 아가씨께서 다치기라도 한다면 우리 둘 다 무사하지 못 할 것이다.”설강은 망설였다.“마님께서는요…?”강시아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이곳에 의원이 있지 않느냐? 설령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여기서 죽을 일은 없겠지.”“퉤, 마님, 그게 무슨 말씀이시옵니까!”설강
Read more

제129화

“이 처방은 물 세 그릇으로 달여 아침저녁으로 한 첩씩 복용하세요.”강시아는 조심스레 손을 배 위에 얹고 나서야 깨달았다. 며칠째 이어졌던 그 통증은 바로 이 아이가 살려달라며 몸부림 치던 신호였던 것임을 말이다. 전생에 그녀는 이 아이를 지켜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생에 이 아이는 원망 한마디 없이 다시 그녀 곁으로 돌아왔다.“의원님, 더 좋은 약은 없을까요? 돈이 얼마가 들든 상관없습니다.”의원은 그녀를 한번 흘겨보더니 서랍에서 조그만 약병 하나를 꺼냈다.“이것이 효과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값이 좀 나가지요.”“살게요!”강시아는 급히 손을 뻗어 약병을 집어 들었다.의원은 턱수염을 비비며 미소를 지었다.“백 냥입니다.”“좋습니다.”그녀는 주저 없이 호주머니에서 백 냥짜리 은표를 한 장 꺼내 건넸다.“그럼 이 약은…”그녀는 잠시 머뭇거렸다.저택에서 약을 달인다면 들킬 게 뻔한데 대체 어쩌면 좋단 말인가?의원은 그녀의 마음이라도 아는 듯이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이 약은 따로 달일 필요 없습니다.”안도의 기운이 온몸을 감싸자 강시아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손안의 작은 옥병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그녀의 감각이 되살아났고 커다란 기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그녀의 아이가 정말로 돌아온 것이었다!배가 아직 불러 오르지 않았기에 그녀는 두 아이를 모두 데리고 떠날 수 있었다.이번 생에서 그녀와 두 아이는 모두 살아남아야 한다.주온청은 눈가에 눈물을 머금은 채 설강의 부축을 받으며 의원 안으로 들어왔다.그때, 눈앞에 보인 건 미소를 짓고 있는 강시아의 모습이었다.“제가 미친 말한테 밟혀 죽을 뻔했는데 마님께서는 웃고 있는 겁니까?”강시아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뺨을 만졌다.“웃었나요? 안 웃었는데요.”“웃었습니다!”주온청은 아직도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밖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유 대인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전 염라대왕을 뵈었을 겁니다.”“그 미친 말은 제압했습니까?”강시아는 감히 밖으로 나갈
Read more

제130화

“그렇습니다. 저 역시 주 세자께서 반드시 진상을 밝혀내실 거라고 믿습니다. 저는 이제 은사를 뵈러 가봐야 하니 이만 실례하겠습니다.”유한석은 마지막으로 시선을 돌려 잠시 강시아의 얼굴에 머물렀다. 그러고 나서야 발걸음을 옮겼다.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주종현은 천천히 두 사람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둘이서 어디를 가는 것이냐?”주온청은 옆에 선 강시아를 가리켰다.“전 마님을 따라 역참에 가려던 길이었습니다.”“역참이라?”주종현은 어제 강시아가 썼던 편지를 떠올렸다.“그 편지, 나한테 주거라. 만천에게 맡겨 보내도록 하겠다.”강시아는 허리춤에 꽂아둔 편지를 살짝 만지다가 잠시 고민하 후 입을 열었다.“소첩이 직접… ㄱ다녀오겠습니다.”그녀는 편지를 부치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건 부칠 편지도 아니었고...하지만 주종현은 그녀가 분명히 거절하려는 눈빛을 포착하고는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에서 편지를 빼앗았다. 그러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 앞에서 바로 봉투를 찢어 읽어보았다.“서방님!”강시아는 두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편지가 찢겨 나가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주종현은 단 몇 줄을 훑어보더니 곧 얼굴빛이 싸늘하게 굳어버렸다.“본 세자가 있는 그대로 쓰라했더니 정말 마지막에 고작 한 마디만 썼다고?”‘시집갔고 아이를 낳았다.’그 한마디에 세자에 대한 언급은 단 한 글자도 없었다.강시아는 천연스레 눈을 깜빡였다.“소첩은 서방님의 명에 따라 있는 그대로 쓴 것뿐입니다.”주종현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잠시 말을 잃더니 편지를 접어 자기 품에 넣었다.“그만 돌아가거라. 역참까지 갈 것 없다. 위심에게 맡겨 보내도록 하지.”그는 뒤쪽에 서 있던 만천을 향해 말했다.“너는 두 사람을 먼저 집으로 모시거라.”“예.”마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주종현은 말에 올랐다.“위심, 말을 정리하고 그 마차는 유 대인 댁으로 보내거라.”의원의 문 앞은 금세 조용해져, 제자 하나가 슬
Read more
PREV
1
...
1112131415
...
21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