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111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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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주종현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다루 대인, 이게 무슨 짓입니까? 혹시 약조를 깨겠다는 것입니까?”주종현의 뒤에는 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바로 어사대인 유한석이었다. 유한석은 방 안에 있던 강시아를 보자 잠시 멈칫하더니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시선을 옮겼다. 그는 태연한 표정으로 다루를 바라보며 말했다.“다루 대인, 이건 지난번에 이미 충분한 논의가 끝난 사안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다루는 유한석을 여러 번 만나봤기에 그를 말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난 너랑 말하고 싶지 않다. 오늘은 주종현을 찾으러 왔다. 어제 태후께서 친히 우리 조건을 허락하셨다. 우린 공물을 두 배로 바치고 너희는 공주의 의장대와 함께 십만 병력을 출병시키기로 했단 말이다.”주종현의 미간 또한 단단히 찌푸려졌다.“다루 대인, 사람을 잘못 찾았습니다. 저는 화친 사절도 아니고, 혼사를 보내는 통솔자도 아닙니다.”애초에 자신은 이 일에 끼어들지도 않았거니와 태후가 내놓은 그 조건 역시 너무 터무니 없는 것이었다. 고작 공물 몇 짐으로 공주 한 명과 십만 병력을 바꾼다니. 예전 대성조가 국력이 강성하던 시절, 삼십칠 부를 평정하기 위해 몇 해 동안이나 전쟁을 치르지 않았던가? 진국공 일가는 충렬로 이름이 높았으나 지금은 백발의 맹 노장군 한 사람만 남아 있는 정도였다. 지금 십만의 병사를 보내겠다는 건 결국 그들을 죽음으로 내몰겠다는 뜻 아닌가.다루는 주종현보다도 머리가 반 이상이나 더 컸다.그는 손을 내밀어 주종현의 어깨를 툭툭 건드리며 말했다. “지금 당장 협상하게 만들어 주지.”주종현은 자신보다 훨씬 거구인 그를 똑바로 마주 보면서도 기세 하나 꺾이지 않았다. 그의 칼자루 끝이 다루의 손가락을 쳐내며 공중에서 멈추었다. 두 사람의 기싸움은 이미 시작되었다.유한석은 말없이 둘을 지나쳐 강시아와 설강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나가라는 눈짓을 보냈다.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강시아는 힘이 풀려 난간 옆에 기대고 섰다. 갈비뼈와 아랫배가 욱신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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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하 유모는 불경을 외우며 연신 중얼거렸다.“세자께서는 분명 마님을 데리고 덕흥루에 갔다 하지 않았사옵니까? 한데 어쩌다 화루로 간 것이옵니까? 제발 무슨 일이 생기지 말아야 할 텐데요! 집안이 이제야 겨우 숨 좀 돌리게 생겼는데...”강시아와 설강은 서로 마주 보았지만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이튿날에도 주종현은 돌아오지 않았고 주 가의 다른 주인들마저 모두 집에 없었다.국공부의 하늘 아래엔 묘한 먹구름이 깔린 듯 답답한 기운이 내려앉아 숨쉬기조차 어려웠다.만약 주종현에게 정말 무슨 일이 생겼다면 위로는 국공 대인부터 아래로는 하인과 시녀들까지 단 한 사람도 무사하지 못할 터였다.강시아는 그 복잡한 내막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했지만 이 혼란스러운 틈이야말로 자신이 성 밖을 나갈 상단을 찾을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느꼈다.송하윤은 문밖에서 오라버니의 이야기를 엿듣다가 참지 못하고 문을 벌컥 열고 뛰어들었다.“오라버니, 어떻게 종현 오라버니를 구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그 사람은 제 미래의 부군입니다!”“감히 누가 들어오라 했느냐, 어서 나가라!”송이당은 여동생의 버릇없는 태도에 낯빛이 어두워진 상태로 준엄하게 꾸짖었다.“안 됩니다! 오라버께서 종현 오라버니를 구하겠다고 약속하면 그때 나갈 겁니다!”송하윤은 고개를 꼿꼿이 세웠다.“전 오라버니 말대로 요 며칠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단 말입니다!”송이당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안 구하는 게 아니다. 이번 일은 태후 마마께서 일부러 놓은 덫이란 말이다. 한데 내가 어찌 감히 구하러 갈 수 있단 말이냐?”하지만 송하윤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오라버니, 한 달 뒤면 저희는 혼례를 올립니다. 정녕 저보고 죽은 사람을 상징하는 위패에 시집가라는 것입니까?”송이당은 성깔을 억눌러가며 말했다.“주종현이 정말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다면 태후께서는 자연히 풀어주실 게다. 하나 만약 그 마음이 달라져 있다면 이 오라버니가 직접 칼을 들고 감옥으로 가서라도 그 혼사를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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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강시아가 막 문을 나섰을 때, 마침 주온청과 정면으로 마주쳤다.“셋째 아가씨.”주온청은 원래 그녀를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지만 강시아가 외출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대체 어디를 가려는 겁니까? 지금 집안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것입니까?”강시아는 고개를 숙이고 공손히 말했다.“소첩에게 고향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분은 친정 오라버니의 옛 벗이며, 현재는 감찰어사로 계십니다. 그래서 그분께 직접 찾아가 사정 좀 해보려 합니다.”그러면서 고개를 들어 결연한 표정으로 덧붙였다.“소첩은 무릎을 꿇어서라도 어사 대인이 문을 열게 만들 겁니다. 어차피 잃는 거라곤 낯짝 한 장뿐이지 않습니까.”주온청은 잠시 얼이 빠진 듯 멈췄다.“당신에게… 아직 그런 인맥이 있었단 말입니까?”“무슨 인맥이요? 그저 예전에 한 번 스쳐간 인연일 뿐입니다.”강시아는 부드럽게 웃어 보이다가, 갑자기 눈빛을 반짝이며 주온청을 바라보았다.“셋째 아가씨, 우리 함께 문 앞에서 무릎을 꿇읍시다! 아가씨는 무려 영국공부의 셋째 따님이지 않습니까? 대인께서도 가냘픈 여인을 보면 마음이 약해지실 겁니다. 분명 봐주실 거란 말입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녀는 손을 뻗어 주온청의 팔을 잡고 성큼성큼 밖으로 향했다. 마치 주온청이 도망이라도 갈까 봐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주온청은 깜짝 놀라 그녀의 손을 홱 뿌리치며 거절했다.“전 안 갑니다!”그 반응이 너무 격해 스스로도 놀란 듯 주온청은 곧바로 억지웃음을 지었다.“저, 저는 궁문 앞에 가서 할머니를 모셔와야 해서요...”강시아도 잠깐 멈칫하더니 곧 미소를 지었다.“그렇군요. 다들 궁에 들어가 계시니 집안을 지킬 사람도 필요하겠지요. 제가 생각이 짧았던 것 같습니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공손히 예를 올리고는 설강을 데리고 당당히 정문을 나섰다.주온청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조금 전, 그녀는 송부를 찾아가 송하윤 언니를 만나려 했다. 미래의 혼인으로 맺어질 인연을 빌미로 송 대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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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표두는 고개를 끄덕였다.“요즘은 곡식을 운송하려는 화표가 꽤 많습니다. 마님께서는 언제쯤 출발할 생각입니까?”“처서쯤이요.”“처서요?”표두는 고개를 저었다.“지금 예약된 일정으로는 좀 더 일찍 떠나야 다른 일행과 함께 탈 수 있습니다. 처서쯤이면 늦어서 마차도, 사람도 없을 겁니다. 다른 표국을 더 알아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강시아는 표국의 일이 이렇게 잘 풀릴 줄은 몰랐다. 그녀는 설강과 함께 서너 군데의 표국을 더 들렀다.설강은 끝내 풀이 죽어 중얼거렸다.“마차가 없으면 저희는 못 가는 것이옵니까?”강시아는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아까 어떤 표국에서 말하길, 처서쯤이면 우주로 가는 상단이 있을 거라고 하던데... 우주는 수로가 있어서 그곳으로 가면 배로 옮길 수 있다.”설강은 아직도 영문을 몰랐다.“수로요? 마님께서는 읍주에 가신다 하지 않았사옵니까?”읍주는 금주와 멀지 않은 곳이었다.강시아는 살짝 웃으며 그녀의 말에 대답해 주었다.“내가 정말 곡식을 사러 가는 것도 아니잖느냐. 당연히 중간에 길을 바꿔야 하지.”그제야 설강은 눈치를 챘다. 마님은 세자에게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려는 것이었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 소식을 장우에게 전해주어야 겠다고 마음먹었다.그때, 고개를 돌리자 맞은편 골목 어귀에서 낯익은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설강은 본능적으로 강시아의 팔을 잡아끌어 근처의 작은 노점 뒤로 몸을 숨겼다.강시아는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왜 그러는 것이냐?”설강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서생 차림의 한 남자가 젊은 여인의 팔을 조심스레 부축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여인의 배는 불룩하게 솟아 두세 달 안에 출산할 듯했다.그 서생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강시아는 저도 몰래 숨을 죽이고 말았다.설강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하얘졌다.그건 다름 아닌, 그녀가 연심을 품었던 장우였다.강시아는 그 절망스러운 얼굴을 보며 조용히 손을 내밀어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일찍 아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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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설강이 그녀의 손을 꽉 붙잡으며 말했다.“가지 마십시오. 저는 더이상 망신당하고 싶지 않사옵니다.”그녀는 마님이 자신 같은 하녀의 사소한 일에 직접 발 벗고 나서게 할 수는 없었다. 말을 마치자 설강은 조용히 강시아의 손을 뿌리치고는 곧장 마차가 있는 쪽으로 돌아섰다. 하지만 강시아가 아무리 불러도 그녀는 끝내 차에서 내리지 않았기에, 결국 강시아는 설강을 데리고 두 번째 표국으로 가서 보증금을 내고 계약을 마쳤다.집으로 돌아오니 온 집안이 잔치라도 벌인 듯 흥겨운 분위기였다. 땅바닥에는 이미 폭죽을 터뜨린 흔적이 남아 있었고 대문 앞에는 치우지 않은 화로가 아직 붉게 식고 있었다.강시아의 눈빛이 어느새 의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벌써 풀려났다고?전생의 기억을 놓고 보자면 주종현은 분명 며칠간 고초를 겪은 뒤에야 풀려날 예정임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번엔 겨우 이틀 만에?그녀가 막 중문을 들어서자 하인 하나가 허겁지겁 뛰어와 보고했다. 그녀가 작은 뜰로 돌아오기도 전에 조 씨의 곁에서 늘 시중을 들던 향 유모가 찾아왔다. 그녀의 얼굴에서 그토록 환한 미소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생각지도 못했사옵니다! 유 대인과 마님께서 인연이 있을 줄이야! 오늘 세자께서 무사히 돌아오신 건 전적으로 유 대인의 의리 있는 변호 덕분이었사옵니다. 작은 마님께서 뵙고 싶다 하시옵니다.”응? 유 대인?강시아는 입술만 껌뻑거렸다.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향 유모를 따라 화정으로 들어가자 드물게 국공까지 자리에 함께하고 있었다. 전생에 미움을 받던 연아도 지금은 국공의 품에 안겨 있었다. 국공은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이 아이는 참 총명하구나.”조 씨는 기분이 한껏 좋아져 목소리에도 웃음이 묻어났다.“그 까다롭기로 유명한 장 선생님께서도 연아를 칭찬하셨습니다. 국공께서도 기억하시지요? 백마사의 혜능법사께서 연아의 사주를 보셨을 때 장차 복이 길게 이어질 아이라 하셨잖습니까? 혜능법사의 점괘와, 일곱째 왕야께서 주신 옥호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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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조 씨는 미간을 찌푸렸다.“싫다고?”강시아는 고개를 숙인 채 겸손한 표정으로 말했다.“국공님과 작은 마님께서 저를 아껴주심에 매우 감사드리긴 하지만, 소첩은 감히 그런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사옵니다. 그리고 연아가 이렇게 예의 바르게 자란 것은 다 작은 마님의 가르침 덕분이지요. 저는 아무 공도 없는데 어찌 조모님과 함께 종사에 들 수 있겠습니까.”조 씨의 얼굴에 억누를 수 없는 웃음이 번졌다.“이렇게까지 세심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어쩐지 그때 종현이가 기어코 널 들이겠다고 고집을 부리더라.”국공은 품에 안고 있던 연아를 내려놓고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얘야, 어서 네 어미에게 가거라.”연아는 그제야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치며 어머니에게 달려와 그녀의 다리를 꼭 끌어안았다. 방금 전 하 유모와 약속했던 일은 까맣게 잊은 채였다.국공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본공이 괜찮다 하면 괜찮은 것이다.”그는 곧이어 작은 마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누가 입방아를 찧거든 곧장 가법을 들이거라.”그러자 강시아는 더 이상 거절하지 않았다.“국공님의 은혜에 감사드리옵니다.”국공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 씨를 향해 덧붙였다.“녹봉도 함께 올려주거라. 상벌은 분명해야 한다.”조 씨가 맞장구쳤다.“그래야지요. 젊고 고우니 더 단정히 가꾸어야지요.”그러고는 시선을 향 유모에게로 돌렸다.“태후의 회갑연에서 받은 비단꽃이 있었지? 강 씨에게 어울릴 만한 걸로 하나 고르거라.”향 유모는 즉시 알아차리고 말했다.“그 분홍빛 꽃은 참 좋지요. 색도 밝아서 강 마님하고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그 비단꽃을 받을 당시 주온청은 이렇게 말했다.‘송 언니가 분홍색을 좋아합니다.’“그래, 분홍으로 하지.”조 씨의 웃음은 한층 깊어졌다.강시아가 화청을 나설 때에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상태였다. 뜻밖의 오해가 오히려 좋은 결과로 이어진 셈이었다. 연아는 들뜬 듯 어머니의 손가락을 꼭 잡고 뛰어다녔다. 오늘 밤은 어머니와 함께 잘 수 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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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지금 그가 서 있는 이 자리는 딱 설강의 방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위치였다. 그녀의 두 눈은 울어서 잔뜩 부어 있었다. 설강은 문을 닫은 것도 모자라 창문까지 꼭 닫아걸었다.위심은 그 자리에 서서 세자를 기다렸다. 달이 버드나무 끝에 걸릴 때까지 기다렸지만 설강의 방은 끝내 불이 켜지지 않았다.주종현은 그가 멍하니 서 있는 모습을 보고 물었다.“뭘 그렇게 보고 있는 것이냐?”위심은 입을 열자마자 실수를 해버리고 만다.“설강 아가씨를… 아, 아니!”그는 급히 정신을 차리고 다시 말을 고쳤다.“아니옵니다. 설강 아가씨께서 울고 있는 걸 봐서…”“운다고?”주종현이 그의 시선을 따라 측옥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가 다시 오랫동안 자신의 곁을 지켜온 부하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 어딘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렸다.“그럼 잘 달래주거라.”“예? 세자,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위심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주종현은 그의 가슴을 툭 치며 웃으며 말했다.“방금 녹봉을 받지 않았느냐? 그걸 너무 아끼지 말고 좀 쓰거라.”그는 몇 걸음 가다가 돌아서서 한마디 더 덧붙였다.“내일 하루 쉬게 해주마. 만천에게 네 자리를 부탁해 볼 테니.”쉬는 건 좋다. 하지만 이런 이유로 쉬는 건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설강이 그걸 알면 또 울며불며 난리를 치겠지. 그땐 정말 답이 없을 텐데.이튿날, 결국 위심은 휴식을 얻지 못했다. 연위영에 새 병사들이 또 들어왔기에 그는 만천과 함께 신병 훈련을 맡아야 했다. 문 앞에 이르기도 전에 그들은 줄지어 선 병사들을 보고 동시에 얼굴을 찌푸렸다.“우리 연위영이 이제 겨우 사람 사는 곳처럼 정돈되어 가고 있는데 이것들은 또 어디서 굴러들어온 것들이냐? 여기가 무슨 공동묘지도 아니고... 온갖 잡것들은 다 모여 있구나!”이번 달만 해도 두 번째였다. 위심이 만천의 팔을 툭 치며 말했다.“됐네. 그만 불평하고 가자고.”그들이 막 말을 마치기도 전에 서생 차림의 사내 하나가 허둥지둥 다가왔다.“귀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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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여인은 한숨을 내쉬었다.“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한데 그 애가 공부를 하질 않으니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귀군, 제발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이번 한 번만요!”위심은 더는 말하지 않고 소만을 데리고 그대로 연위영 안으로 들어갔다.여인은 분한 듯 발을 쾅 구르다가 배 속의 아이를 생각하며 조심스레 손으로 배를 어루만졌다.소달구지로 돌아오자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장우의 등을 세게 내리쳤다.“분명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쪽에서 창이를 잘 봐줄 거라고! 한데 옷 한 벌도 못 넣어준다니... 이게 대체 무엇입니까! 그 송 대인가 뭔가 하는 사람한테 다시 부탁해 보십시오!”장우는 짜증 섞인 얼굴로 몸을 홱 돌렸다.“부탁은 무슨 부탁! 부탁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는데! 네 아우를 그 뭐시기 영에 들이겠다고 집안 돈은 이미 다 썼단 말이다!”여인은 그의 팔을 붙잡았다.“그때 그 누구 더라... 설강이란 하녀 말입니다. 당신이 그 애는 속이기 쉽다고 했잖습니까. 대갓집에 금은보화가 얼마나 많은데요. 하나 둘쯤 없어져도 모를 것입니다. 그 애를 구슬려서 좀 빼오십시오.”장우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힐끗 보았다.“지난번에 겨우 쉰 냥을 속여냈는데 이번에도 또 속아줄 것 같더냐?”그 말에 여인은 버럭 성을 냈다.“그게 국공부라면서요! 주인 손가락 사이로 새는 돈만 모아도 우린 몇 년은 먹고살 수 있다면서요!”그녀는 말이 통하지 않자 곧바로 협박으로 돌렸다.“당신, 전에 아들 갖고 싶다 하지 않았습니까? 정말 안 할 겁니까?”장우는 두 손을 들며 물러섰다.“알았다고! 가면 되잖아, 가면!”한편 그 시각, 위심은 말을 끌며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 부부의 대화를 들은 그는 비웃음을 흘렸다.어느 국공부의 하녀가 저런 놈들한테 속아 돈이나 뜯기는 것일까?위심은 저택으로 돌아와 작은 정원에서 세자를 찾아 밀보를 올리다가, 나오는 길에 무심코 측옥 쪽을 바라보았다. 문과 창은 활짝 열려 있었지만 사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오후에는 순찰 인원을 정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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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설강.”“설강,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하 유모가 벽을 치며 문을 두드리자 그제야 설강은 놀란 듯 정신을 차리고 손에 쥔 단도를 황급히 등 뒤로 감췄다.“하, 하유모…”그녀는 깜짝 놀라 거의 혀를 깨물 뻔했다. 하 유모는 그녀를 한 번 훑어보며 말했다.“어제는 죽을 듯이 기운이 없더니 오늘은 혼이 나가 있구나. 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이냐?”설강은 문득 어제 자신을 대신해 화를 풀어주던 위심의 모습이 떠올라,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사기꾼을 만났습니다.”하 유모는 더 이상하다고 느껴 물었다.“사기꾼을 만났다는데 왜 얼굴이 빨개지는 것이냐?”설강은 황급히 둘러댔다.“화가 나서요… 하 유모, 저를 왜 부르신 겁니까?”그녀는 급히 화제를 돌렸고 하 유모는 그제야 안주인이 시킨 말이 떠올랐다.“마님께서 그러시길 세자에게 드릴 속옷을 대신 가져다주라 하셨다.”설강이 강시아의 방에 들어갔을 때,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아랫배를 문지르고 있었다.“마님, 또 아프신 것이옵니까?”요 며칠 그녀는 종종 복통을 호소하곤 했었다.강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괜찮다. 평소처럼 달거리 때문에 그런 것이다. 며칠 지나면 나을 게다.”설강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의원을 부르는 게 좋지 않겠사옵니까?”강시아는 태연하게 미소 지었다.“괜찮다. 이번엔 통증도 훨씬 약하니까. 네가 그 속옷을 서방님께 전해주고 그다음엔 이렇게 전하거라. 우린 옥보루에 다녀올 거라고.”“예, 마님.”설강이 속옷을 들고 세자의 뜰에 갔을 때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그녀가 돌아가려던 찰나, 위심이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설강이 들고 있는 옷에 닿았다.“그건 저한테 주는 겁니까? 이렇게까지 정성드릴 필요는 없는데요.”설강은 원래 그를 마주 보는 것조차 부끄러웠는데 이런 말까지 하니 얼굴이 굳어버렸다.“이건 마님께서 세자에게 드리라고 하신 겁니다!”위심은 코끝을 한번 쓱 만졌다.“아, 그렇군요. 사실...”“꿈이나 꾸고 계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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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그 사기꾼의 처남 또한 위심에게 혼이 나, 아침에는 울며불며 그의 누이에게 부탁해 소달구지로 실려 왔다.위심이 바로 마차 밖에 있었기에 설강은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마님… 전 이제 괜찮사옵니다. 그런 일까지 마음에 두지 않아요.”강시아는 사정을 몰랐기에 그저 설강이 아직 상처받은 일을 떠올리기 싫은 거라 생각했다. 그녀는 설강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두드려 주었다.옥보루에 도착하자 강시아는 설강을 위로할 생각으로 산호 비녀 한 쌍을 골라 주었다.“설강 아가씨는 얼굴이 고우니 이 홍산호가 참 잘 어울리겠네요.”문 마님은 며칠째 기다리던 강시아를 드디어 맞이했다. 지난번에 분명 약속을 하였건만 그녀가 돌연 나타나지 않아 수소문을 해보니 옥보루로 오던 길에 자객을 만났다는 것이었다.“이 비녀는 제가 마님께 선물로 드리도록 하지요.”그녀는 말을 마치자마자 하녀에게 지시했다.“이 비녀는 내 장부에 기입해 두고 며칠 전에 들어온 작은 소어도 함께 가져오너라.”문 마님이 엄지손가락만 한 작은 옥물고기를 내밀었다.“며칠 전 좋은 옥 원석을 구했는데 남은 자투리 돌은 버리려다 장인 하나가 그 가운데서 아주 맑은 옥심을 발견했습니다. 버리기엔 아깝고 그렇다고 큰 옥 장식을 만들기에도 어려워서 난처해 하고 있었는데 한참 보고 있으니 마님의 따님이 떠오르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린아이 목에 걸면 딱 알맞을 것 같지 않습니까?”강시아는 손바닥 위의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옥빛은 투명하고 크기는 작고 정교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손이 가게 만드는 물건이었다.문 마님은 그녀의 손을 잡고 웃으며 위층으로 이끌었다.“오늘은 거절하시면 안 됩니다. 그날 일부러 저를 도우러 오셨다가 그런 일을 당하셨잖습니까. 며칠 동안 제 마음이 얼마나 불편했는지 아십니까?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안심이 되네요.”강시아는 가볍게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마음속으로는 그날의 일을 잊지 않았다.그때 문 마님이 자신을 어떻게 협박했는지, 그녀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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