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자의 혼례날, 첩은 아이와 함께 사라졌다: Chapter 471 - Chapter 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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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1화

정 포두가 초상화를 손에 든 채, 천천히 몸을 돌렸다. 아람은 그의 움직임을 곁눈질로 알아채고는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함께 한 바퀴를 돌아섰다. 주종현의 시선이 그림 위에 내려앉는 순간, 그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 초상 속 인물은 다름 아닌 아람이었던 것이다.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초상화를 낚아채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버렸다.“정 포두께서는 먼저 가서 일 보십시오.”“아… 예, 주 대인.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정 포두는 막 손에 들어온 초상화가 눈앞에서 산산조각 나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이내 모든 걸 알아차렸다는 듯 얼굴빛을 바꾸었다.성왕비가 혼인을 피해 달아났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 지금, 주 대인이 직접 나서서 이런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생각을 정리한 그는 더 머뭇거리지 않고 부하들을 재촉해 서둘러 자리를 떴다. 이곳은 오래 머물러선 안 될 곳이었다.“성왕비라니, 설명 좀 해보거라.”사람들의 기척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서야 주종현은 팔짱을 낀 채 아람을 내려다보았다.아람은 그를 흘겨보며 입을 열었다.“이 지경까지 몰렸는데 무슨 설명이 필요합니까? 소휘가 왜 미쳐 날뛰는지 묻는 거라면, 저도 몰라요. 궁금하면 직접 가서 물어보세요. 어쩌면 답을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죠.”주종현은 말없이 숨을 고르는 듯했다.“너 혼자 연아랑 복동이 데리고 여기까지 온 거야?”그의 시선이 그녀 손에 들린 약으로 옮겨갔다.목소리엔 어느새 긴장이 묻어났다.“연아가 아픈 거냐, 아니면 복동이가 아픈 거냐?”아람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선아가 아파요.”그녀는 그가 자신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알게 될까 경계하는 듯 고개를 돌리며 억지 웃음을 지었다.“구휼로 바쁘실 텐데 사소한 일로 시간 뺏지 않겠습니다. 주 대인께서는 얼른 가서 일 보세요.”하지만 주종현은 움직이지 않았다.“정현이라면 네가 원치 않는 이상, 난 간섭하지 않겠다. 헌데 금주는 다르다.”“당신…”“금주 자사는 소휘의 사람이다.”그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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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2화

잠시 말을 멈추었던 그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언제 성문을 나설 생각이지?”“선아가 나으면 바로 금주를 떠날 거예요.”주종현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나가서는 어디로 갈 작정이지?”“그건… 말 안 할래요.”아람은 이제 누구도 믿고 싶지 않았다. 서북영을 한 입이라도 떼어 먹고 싶어 하는 사람은 수두룩했지만 정작 맹여산에게 손을 댈 배짱을 가진 이는 없었다. 오라버니는 관직에 몸담고 있으니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어 결국 모두가 만만해 보이는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것이었다.주종현이 가볍게 혀를 찼다.“그래도 알아둬. 지금 네가 갈 수 있는 곳은 경성 빼고는 어디도 없다는 걸. 그는 일을 저질러 놓고 나중에 보고하려는 쪽이야. 네가 맹 장군의 외손녀라는 점을 이용해서 서북영 한 몫을 떼어내려는 거지. 지금의 넌 그저 기름진 고깃덩어리에 불과해. 소휘 말고 다른 사람들은 욕심을 안 낼 거라 생각해?”아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틀쯤 뒤로 하죠. 선아가 지금 열이 있습니다. 어제 막 배에서 내린 후 이쪽 기후에 적응을 못 하는 것 같아요.”주종현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그때가 되면 소만을 보낼게.”소만.익숙한 이름이 불쑥 귀에 닿자 아람은 잠시 멍해졌다. 처음 보았을 때는 아직 덜 자란 사내아이였는데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주종현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 아직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고 여긴 듯했다.“내가 정말 널 잡아둘 생각이었다면 정현에 있을 때부터 잡아두었겠지. 방법은 수두룩한데 굳이 여기서 이렇게 입 아프게 설득하고 있을 리가 있겠어?”아람이 마지못해 대꾸했다.“네, 주 대인께서는 참으로 좋은 분이시죠.”여관 안은 손님이 많지 않아 한산했고 공기도 조용했다. 주종현이 문을 열자마자 침상 위에 나란히 누운 두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주 대인?”단낭은 여기서 그를 보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얼굴이었다.아람은 문간에 서 있던 주종현을 밀치듯 비켜 세우고 안으로 들어왔다.“복동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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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3화

여관 맞은편에는 가마 하나가 멈춰 서 있었다. 그곳에서 양서월의 관사 어멈이 종종걸음으로 걸어나왔다.“아가씨, 알아봤습니다. 우주에서 온 여자 둘에 아이 셋을 데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여자아이 둘은 네다섯 살쯤 되어 보였고, 하나는 품에 안은 어린아이로, 대략 한 살 남짓이라더군요.”관사 어멈은 말을 하다 잠시 멈칫했다.“그 아이들이 혹시 주 세자께서 밖에서 키운 자식들은 아닌지…”양서월은 부용꽃 같은 얼굴에 스치는 한기를 숨기지 않았다.“밖에서 고양이를 키우든, 개를 키우든 그건 그의 일이지. 명분 없는 여인은 언제든 흩어질 수 있는 한 줄기 꽃향기일 뿐이다. 집 안으로 들이지 않는 한 난 영원히 신경 쓰지 않을 거야.”관사 어멈은 입술을 다물었다.아가씨는 아직 계례를 막 넘긴 나이였지만 언행과 처신은 이미 충분히 단정하고 침착했다.본래 대감께서는 아가씨를 입궁시킬 생각이었으나 황제가 연달아 두 차례나 대선을 취소하는 바람에 부부는 요구를 낮출 수 밖에 없었다.“가자.”양서월은 가마의 휘장을 내리며 더는 뒤돌아보지 않았다.“전하, 찾지 못했습니다.”성왕부의 서재에는 다섯, 여섯 명의 호위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들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추적에 나섰던 자들로 대부분 체포 경험이 풍부한 이들이었다.그러나 이번에는 단서 하나 발견하지 못했다. 멀쩡한 사람 하나가, 그것도 아이 둘을 데리고 마치 세상에서 증발해 버린 것처럼 자취를 감췄다.“쾅!”소휘의 손에서 찻잔이 날아가 바닥에 내리꽂혔다.“사람이 이리 많은데 여인 하나를 못 찾는단 말이냐!”그의 눈빛에서 살기가 터져 나왔다.“왕비 자리가 언제 모욕감을 줬다고 도망가는 것이지? 정현을 봉쇄해거라. 아설과 강세오가 돌아오면 반드시 살아 있는 채로 잡아 와야 한다!”경 총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전하, 강 대인은 조정의 명을 받은 관리이니, 함부로…”“언제부터 네가 본왕을 대신해 판단했느냐!”소휘의 시선이 얼음칼처럼 날아들자 경 총관은 온몸이 덜컥 굳었다. 마치 누군가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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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4화

탕약을 몇 첩 먹고 나자 선아는 이튿날 오후가 되어서야 눈에 띄게 기운을 되찾을 수 있었다.연아와 선아는 나란히 창가에 엎드려 여관의 작은 안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아이 셋을 내려다 보았다.두 아이는 금세라도 아래로 뛰어내려가고 싶다는 듯 눈길이 뜨거웠다.언니인 연아는 아람의 당부를 기억하고 있었다.“선아야, 아직 완전히 낫지도 않았잖아. 경성에 가서 놀자.”아람은 고개를 돌려 두 아이의 머리를 차례로 쓰다듬었다.“그만 봐. 선아는 이제 막 나았잖니.”“어머니, 선아가 당과를 먹고 싶대요.”연아가 의자에서 내려와 아람의 옷자락을 살짝 흔들었다.어제 주종현이 다시 한 번 다녀가며 아이들에게 당과를 사다 주었다. 노란 콩가루가 솔솔 뿌려진 당과는 달콤한 향이 짙었고 쫀득해 이가 붙을 만큼 맛이 진했다.연아는 세 개를 먹고서야 겨우 멈출 수 있었다.아람은 웃으며 아이의 코끝을 살짝 긁었다.“선아가 먹고 싶은 거야, 아니면 네가 먹고 싶은 거야?”단낭이 말했다.“이따가 이모가 연아 거 사 줄게.”“버릇을 그만 들여. 정현을 떠난 뒤,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가 요 며칠 겨우 따뜻한 두 끼 먹더니 또 가리는 구나.”선아도 이제 거의 다 나았기에 다음 날 아침이면 떠나야 했다.단낭은 미리 짐을 챙겨 두었다.처음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귀중품 몇 가지만 챙겼을 뿐, 옷가지 같은 건 거의 들고 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커다란 보퉁이가 세 개나 되었다.초주에서 왕 마님이 챙겨 준 물건들과 금주에 와서 아람이 다시 마련한 살림들이었다.“마님, 경성에 가면 얼마나 머무를 겁니까?”“아마 한 달쯤. 먼저 오라버니께 편지를 보내 우리가 무사하다는 것부터 알릴 생각이다.”단낭은 그날, 아람이 말 위에서 세네 시각을 내리 달리던 모습을 떠올렸다.“성왕 전하께서 여기까지 쫓아오지는 않겠죠?”아람은 주종현이 찢어버린 그 초상화를 떠올렸다. 단낭을 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그녀는 일부러 가볍게 말했다.“이제 곧 경성이잖아. 게다가 지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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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5화

결국 오늘, 양 아가씨가 자사부에 들렀다가 그 초상화를 보게 되었고 그림 속 인물이 어디선가 본 듯하다며 말을 꺼냈다. 그래서 두 사람은 급히 여관으로 달려온 것이다. 왕비를 찾아내는 공이라면 좀처럼 얻기 힘든 큰 공적이었으니.그중 한 명이 점점 인내를 잃은 듯 투덜거렸다.“왜 이렇게 늦어? 세수하고 머리 단장하는 데 시간이 이렇게 걸리나?”다른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기다리지 말고 올라가 보자.”두 사람은 곧장 계단을 올라갔다.“관부의 협조 요청입니다. 문을 열고 응하세요.”그러나 문안에서는 아무 기척도 없었다.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맞췄고 이내 한 명이 발을 들어 문을 걷어찼다.방 안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기다란 탁자가 세로로 창틀에 걸려 있었으며 그 위에는 침대보가 단단히 묶여 늘어져 있었다.두 사람은 창가로 달려갔다. 침대보에 일곱여덟 벌의 옷가지가 이어 묶여 있었다.아람과 단낭은 이미 아이 셋을 데리고 자취를 감춘 뒤였다.두 관병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변했다.“도망쳤다!”공을 세울 줄 알았던 기회가 목이 달아날 위기로 바뀌었다.아람은 다행히도 미리 마차를 빌려 두었던 터였다. 지금 그녀는 단낭과 아이들을 데리고 마차 안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누구도 크게 숨을 쉬지 못했다. 금주에 얼마나 많은 추격 인원이 풀렸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주종현은 저녁이 되면 연아를 데리고 금주에서 가장 유명한 화병을 먹으러 가자고 했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가 와서 상황을 알아차리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아람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저리 돌아보아도 결국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은 주종현뿐이었다.강세오는 변주에 도착하기도 전에 단비영의 편지를 먼저 받았다. 단낭의 말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하긴 했지만 그는 주 대인의 발탁과 아람이 자신의 처자식을 살뜰히 보살펴 준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니 이제 아람이 위기에 처한 지금, 그는 반드시 강 대인에게 편지를 보내야 했다.강세오는 변주에 도착한 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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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6화

누이의 몸에는 어머니가 남겨 준 옥패가 하나 있었다. 그 옥패에는 어머니의 이름과 맹가군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소휘는 분명 오래전부터 누이를 주시하고 있었을 것이다. 때를 기다리며 그녀를 이용할 생각으로.그때, 한 시녀가 공손히 고개를 숙인 채 들어왔다.“아가씨, 강 대인. 장군께서 두 분을 화청으로 부르십니다. 맹 노장군께서 도착하셨습니다.”강세오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하연은 단번에 그 변화를 알아차렸다.그녀는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보고 싶지 않으면 안 봐도 돼. 내가 대신 갔다올게.”강세오는 고개를 들어 걱정이 묻어 있는 그녀의 눈을 보았다.“괜찮습니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이에요.”화청에서는 맹여산이 하문정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옛날 일을 꺼내자 두 사람은 웃으며 지난 시절을 되짚었다.강세오와 하연이 들어서자 화청 안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하연은 성격이 호방했지만 지켜야 할 예는 알고 있었다.“아버지, 맹 노장군.”강세오는 시선을 내리고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하 백부님, 맹 노장군.”맹여산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하문정은 두 사람을 한 번 바라본 뒤 입을 열었다.“다들 들어와 앉거라.”“세오가 먼 길을 두 번이나 오갔더니 제 셋째 아들 하주도 칭찬을 아끼지 않더라고요.”강세오는 무의식적으로 맹여산을 힐끗 보았다. 하연은 분명 집안에서 날짜를 봤고 혼담을 꺼내기엔 내일이 길일이라고 했다.그런데 맹여산이 이 자리에 있고 하 장군이 어런 말투로 얘기하고 있는 것을 보면...그때, 하문정은 강세오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자네는 좋은 사람일세. 여기까지 오는 게 쉽지 않았겠지. 내 딸은 평범한 규수는 아니네. 그래서 높은 집안의 귀부인이 되길 바라진 않았지만 고생하는 것은 원치 않네.”하연은 아버지가 이렇게까지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어색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려 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웃음은 그대로 얼어붙었다.하문정이 자리에서 일어섰기 때문이다.“강세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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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7화

맹여산은 젊은 시절 전장에서 여러 차례 다리를 다쳐 이제는 지팡이 없이는 한 걸음도 떼기 어려운 몸이 되었다.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그의 보폭은 여전히 보통 사람보다 크고 멀었다.강세오가 입을 열었다.“맹 노장군, 제 성은 강입니다. 헌데 제 누이는 이제 그 성조차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 아이는 수많은 일을 겪고 나서야 아이들과 함께 겨우 평온한 나날을 얻을 수 있게 되었어요. 그런데도 이른바 신분 하나 때문에 집을 잃고 또다시 숨어 다니는 처지가 됐습니다.”맹여산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자신이 이 남매에게 안긴 짐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사람처럼.“맹 가에서 태어난 아이가 감당해야 할 일이다. 네 어미도 그랬고 네 누이도 마찬가지다.”어머니라는 말이 나오자 강세오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의 목소리도 단숨에 식었다.“그래서 제 어머니께서 겪었던 일을 시은에게도 다시 겪게 하시겠다는 겁니까!”시은.누이의 본래 이름이었다. 그녀가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때부터 불러 온 이름이었고 어머니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입에 올리던 이름이었다.맹여산의 발걸음이 멎었다. 손에 쥔 지팡이에도 힘이 더 들어갔다. 그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내겐 아들 다섯과 딸 하나가 있었다. 네 어미는 늦은 나이에 얻은 막내딸이었지. 어릴 때부터 비단옷에 금붙이를 두르고 자랐다. 황성의 공주라 해도 그만큼은 못 누렸을 게다. 딸이 장성했을 때의 내 마음은 오늘의 하문정과 다르지 않았어.”그는 천천히 몸을 돌렸다.“헌데 그 아이가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내를 택했지.”강세오는 그 말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다.그는 냉소를 흘렸다.“저 역시 가진 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맹 장군께서는 오늘 하 백부께서 제 혼담을 허락하신 게 잘못이라 보시는 겁니까?”맹여산의 시선이 외손자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그 얼굴은 그 옛사람과 여러모로 닮아 있었다.“다르다. 너는 맹 가의 혈육이다. 조정에 서면 남들이 너를 다르게 볼 것이다. 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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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8화

”주종현.”골목 어귀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주종현의 머리와 어깨에는 눈이 잔뜩 내려앉았고 바람 속을 달려온 탓에 콧등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는 한 시각이 넘도록 그녀를 찾아 헤맸다.창가에 매달린, 길게 늘어진 도주용 줄을 확인한 후 정 포두를 붙잡아 캐묻고서야 사정을 알게 되었다. 양서월이 자사부에서 그 초상화를 보았고 그제야 자사 대인이 사람을 풀어 성 안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그러나 사람은 마치 공중으로 사라진 듯 흔적조차 남기지 않았다.주종현은 말 위에서 고삐를 꽉 움켜쥔 채 문득 눈앞에 나타난 그녀를 바라보았다.마치 우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어느 순간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난 모습이었다.“어디로 갔었지?”그는 말에서 내려 한 발은 깊게 한 발은 얕게 눈을 밟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목소리는 다소 잠겨 있었다. 지금의 그녀에게 묻는 말 같기도, 예전의 그녀에게 던지는 질문 같기도 했다.아람은 추위에 목을 움츠렸다.“갑자기 사람들이 찾는다고 해서요. 소휘 쪽 사람들인 줄 알고 창문으로 내려왔습니다. 함부로 돌아다닐 수가 없어서 여관 뒤뜰에 세워 둔 마차에 숨어 있었고요. 그러다 당신 목소리가 들려 이제야 살짝 나와서 본 겁니다.”주종현은 옷깃 안으로 얼굴을 숨기듯 웅크린 그녀를 바라보았다.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으나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손을 뻗지는 못했다.“주 대인.”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주종현은 고개를 돌려 그를 한 번 바라보았다. 눈빛이 한층 옅어졌다.그는 외투를 풀어 그녀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내가 있으니 괜찮다. 잠시 후 바로 성을 나가자. 통행증은 가지고 있느냐?”따뜻한 기운이 외투를 감싸자 몸에 스며들던 추위와 불안이 한순간에 가라앉는 듯했다.아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자 앞선 말에 대한 대답이기도 했다.금주 자사 고여의 시선이 골목 어귀의 아람에게서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저 마님은 어딘가 낯이 익군요.”주종현이 가볍게 웃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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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9화

그는 소매를 거칠게 휘두르며 가마에 올랐다. 가마가 멀어지고서야 고여 곁에 서 있던 관사가 조심스레 다가왔다.“대인, 방금 그 초상화 속 인물과 아까 그 여인은 완전히 똑같았습니다. 사람이 닮을 수는 있어도 천하에 저렇게까지 같은 경우는 드뭅니다. 전하께 서찰을 올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가마 안에서 분노를 억누른 고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서찰이라니. 초상화와 똑같은 여인을 본관이 놓아주었다고 쓰겠다는 말이냐! 저만큼 멀리 달아날 수 있었다면 그건 그 여인의 수완이다. 왕부에서 사람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건, 왕부 호위들의 실책이지. 이 일이 본관과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욕을 먹자고 앞장설 생각이냐! 그 돼지 같은 머리를 쓸 줄 모르면 당장 떼어버리거라!”아람은 골목 어귀에서 고개를 내밀어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서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당신을 만나서 다행입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통행증에 제가 남자라고 적혀 있어도 그자는 저를 우주로 끌고 갔을 거예요.”주종현은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가자. 내가 너희를 경성까지 데려다주겠다.”아람은 그를 이끌고 여관의 뒷마당으로 향했다.“아직 눈사태 수습 일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저희를 경성까지 바래다주면 직무를 이탈하는 거 아닙니까?”“괜찮다. 이제 마무리 단계다. 내일 다시 돌아오면 충분히 맞출 수 있어.”등불 아래에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눈을 밟을 때마다 나는 바삭한 소리가 오래도록 귀에 남는 듯했다. 아람은 바닥에 드리운 그 그림자를 바라보다가 입술을 살짝 다물었다. 주종현은 예전과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어머니! 아버지!”연아는 마차 창가에 엎드린 채, 동그란 눈만 내놓고 있다가 두 사람을 보자마자 뛰어내렸다.주종현은 아이를 단번에 들어 올렸다.“연아!”단낭은 깊이 잠든 복동이를 안고 있다가 주 대인을 보자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주 대인이 함께라면 경성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을 테고 경성에만 닿으면 더는 불안에 떨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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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0화

경성은 예전과 다를 바 없었다. 다만 지금의 신분이 달라졌고 그에 따라 처지도 달라졌을 뿐이었다.방 안의 지룡이 따뜻하게 달아올라 있어 두터운 옷을 입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복동이는 두툼한 옷을 벗자 몸놀림이 한결 가벼워졌다.단낭 역시 처음의 신기함을 지나 이제는 이런 생활에도 익숙해진 모습이었다.“경성은 춥긴 춥지만 실내는 따뜻해서 살 만해요. 다만 장작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살림살이가 없으면 엄두도 못 낼 것 같습니다.”아람은 아직도 기침을 하고 있었다.“단낭, 소만은 왔어?”경성에 도착하자마자 이틀을 앓아누웠고 붓을 들 기력조차 없어 어제서야 겨우 편지를 마무리했다.주종현은 금주의 공무가 끝나지 않아 다시 금주로 돌아갔지만 계소만은 이곳에 남겨 두었다. 이틀 동안 소만은 매일 들러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 주었다.아람은 그에게 편지를 맡겨 역참으로 보내고 싶었다.단낭은 약 그릇을 건네며 말했다.“아직 안 왔어요. 몸부터 추스르세요. 편지야 이틀 늦어도 괜찮잖아요.”아람은 고개를 저었다.“더 미룰 수는 없어.”단낭이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그럼 제가 다녀올게요. 어제 소만이 오늘은 좀 늦을 거라 했는데 얼마나 늦을지는 모르겠어요.”“경성 길은 너무 복잡해서 길을 잘못 들면 오히려 일이 커진다.”아람은 인상을 찌푸리며 단숨에 약을 들이켰다.“이제 많이 나았으니 얼른 역참에 다녀올게.”간간이 기침을 하는 모습을 보며 단낭은 걱정을 숨기지 못했다. 그러나 아람의 마음도 이해하고 있었다. 그녀들은 겨우 몸을 숨겼지만 강 대인과 아설은 아직 아무것도 모른다. 방비가 없는 상태에서 혹여 성왕에게 붙잡혀 아람을 위협하는 일이라도 생기면 아람이 이 먼 길을 도망친 의미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단낭은 주 대인이 남기고 간 외투를 아람의 어깨에 단단히 여며 주었다.“집에서 기다릴게요. 꼭 돌아오세요.”아람은 그렇게 집을 나섰다.이 저택은 주종현의 지인인 신무후부 채 세자의 별저로 풍수가에 자리해 사계절 내내 풍경이 좋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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