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전각 안에서 다른 대신들을 접견 중이라 주종현은 전각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속이 타들어 가도 그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그때 마침, 영국공이 조정에서 미소를 가득 담은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다 문밖에 서 있는 아들의 몰골을 보는 순간, 그 웃음이 그대로 얼굴에 얼어붙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그는 곧장 다가가 아들의 소매를 거칠게 움켜쥐고 이를 악물며 낮게 말했다.“입궁해 폐하를 뵙는 자리다. 너 스스로 좀 보거라, 이게 무슨 꼴이냐?”주종현은 급히 궁으로 들어오느라 옷만 갈아입었을 뿐, 제대로 씻을 겨를도 없었다.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피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인 기운이 느껴졌다.주종현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부친께서는 어서 돌아가십시오. 괜히 연루되실까 염려됩니다.”“너 이놈!”영국공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전 내관이 밖으로 나왔다.“주 대인, 들어오시지요.”주종현은 아버지를 지나쳐 곧장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영국공은 아들의 뒷모습을 노려보다가 콧김을 거칠게 내뿜고는 끝내 소매를 휘두르며 먼저 돌아갔다.황제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아 미간을 찌푸린 채, 손가락으로 콧등 양옆을 천천히 눌러 주무르고 있었다.“신, 주종현. 폐하를 뵙습니다.”“주 경, 오늘은 평소와 다르구나. 집에 물이 없어 목욕을 못 했느냐?”황제는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옅은 피로가 묻어 있었다.주종현은 깊이 몸을 굽혔다.“사정이 급했습니다. 폐하께서 벌을 내리신다 해도 달게 받겠습니다.”“급하다고 했으니 돌려 말하지 말고 바로 말하거라.”주종현이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정현 현령 강세오가 자객의 추격을 받았고 현재 맹독에 중독되어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민간의 의원들은 손을 놓은 상태입니다. 신이 감히 강 대인을 대신해 해독약을 청합니다.”황제가 눈을 떴다.“누가 그리 대담하단 말이냐? 감히 조정의 관리를 추살하다니.”“강 대인은 서남군 하 장군의 셋째 아가씨 하연과 함께 정현에서부터 도망쳐 경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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