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얘기에 미쳐 버린 내 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171 - 챕터 180

390 챕터

제171화

표를 사려는 줄이 상당히 길게 늘어서 있었다.유한은 곧바로 핸드폰을 꺼낼 기세였다. 그런 움직임만 봐도 무슨 생각인지 짐작이 된 리은이 먼저 입을 열었다.“패밀리권 이미 샀어. 따로 줄 설 필요 없어. 그대로 들어가면 돼.”동작을 멈춘 유한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리은을 보며 낮게 말했다.“그런 건 미리 말했어야지.”리은은 힐끗 쳐다보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내가 뭘 더 말해?’어젯밤 예매할 때도, 유한이 정말로 함께 올 거라고 확신할 수 없었다.이런 장소를 좋아할 리는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표정만 봐도 분명했다.리은은 다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지금 돌아가도 돼.”그 말에 곧바로 리은을 향해 고개를 돌린 유한이 깊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계속 나보고 가라고 하는데, 왜? 혹시 누구랑 약속이라도 있어?”리은의 미간이 좁혀졌다.“넌 이런 데 싫어하잖아.”“싫어하는 게 많아도, 다 피해서 살 수는 없지.”유한의 짧은 반박에 리은의 생각은 더 굳어졌다.‘맞지. 유한이 나를 싫어해도 결국 결혼은 했잖아.’얼굴이 싸늘하게 굳어갔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기회는 줬어. 떠나지 않은 건 당신이지.’놀이공원에 오기 위해 셋 모두 편한 옷차림이었다.리은과 유한은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고, 루이도 어린이용 선글라스를 착용했다.놀이기구는 다양했고, 리은은 루이와 웬만한 건 다 경험해 본 상태였다.하지만 유한에게는 거의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리은은 그 마음을 읽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기 싫었으면 안 왔겠지. 왔으니까 버텨.’‘아이들 놀이기구라도 아이 혼자 타는 건 아니잖아.’‘이 사람은 괜히 어색한 척하는 거지. 결국 티를 내고 싶지 않은 것뿐.’“너 루이 데리고 타. 루이가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고 했거든. 금방 사올게.”리은이 돌아서서 아이스크림 매대로 향하자, 유한은 그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그리고 시선을 내려 루이를 보았다. 아이가 반짝이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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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광윤은 그 말을 듣고 놀란 얼굴로 위를 올려다보았다.롤러코스터 위에서는 끊임없이 비명이 터져 나왔다.“주 대표님이 저 위에 계세요?”리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놀랍지? 나도 예상 못 했어.’광윤의 시선이 다시 리은에게로 돌아왔다.“리은 씨, 주 대표님이랑... 혹시 화해라도 하신 건가요?”‘화해? 그 단어는 우리 사이에 맞지 않아.’리은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광윤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자연스럽게 화제를 일로 돌렸다.“업무는 좀 어떻습니까? 많이 빡빡하죠?”리은은 담담하게 말했다.“지금까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다들 열심히 하고 있어서요.”광윤은 고개를 끄덕였다.“수고가 많네요.”“당연한 일이에요. 최대한 빨리 마무리하겠습니다.”“너무 무리하지만 말아요. 균형이 필요해요.”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동안, 롤러코스터는 천천히 멈춰 섰다.한 바퀴 도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두 사람이 고개를 돌리자, 유한이 기세 좋게 루이를 안고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광윤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주 대표님, 이런 곳에서 뵙네요. 아이 데리고 나오셨군요.”유한은 광윤을 흘끗 보고, 광윤 옆의 남자아이로 시선을 옮겼다.“허 대표님 아드님인가요?”광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 아들이에요.”그 아이는 말수가 적어 보였고, 루이보다 몇 살은 더 많아 보였다.광윤이 결혼이 늦었으니 자연스럽게 아이도 늦게 얻은 셈이었다.“인사드려야지.”광윤이 아들에게 말했다.아이의 시선이 유한과 리은을 한 번씩 스쳤다.그러고는 광윤을 향해 작게 물었다.“형, 누나라고 불러요? 아니면 아저씨, 아주머니?”모두 예상치 못한 질문에 그대로 굳었다.“그게...”광윤도 난처한 표정이었다. 자신은 곧 마흔이지만, 유한은 아직 서른도 되지 않았다.아저씨라 하기도 애매하고, 형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했다.리은이 웃음을 흘렸다.“편하게 불러. 그냥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면 돼.”아이의 시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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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그럼 난 아들 데리고 저쪽으로 가볼게요. 세 가족 시간 방해하면 안 되니까.”광윤이 웃으며 인사하자, 리은도 고개를 숙였다.“허 대표님, 안녕히 가세요.”광윤이 멀어지자마자 루이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엄마 엄마! 롤러코스터 진짜 재밌어요! 아빠 하나도 안 무서워하고요. 소리도 안 질렀어요! 아빠 진짜 멋져요!”고소공포증이 없는 유한에게 이런 정도의 기구는 아무렇지 않았다.반면 리은에게는 롤러코스터가 거의 생명을 위협하는 장치에 가까웠다.“멋지지. 루이 다음엔 뭐 하고 싶어?”루이는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켰다.“귀신의 집이요! 저기 가고 싶어요!”리은은 한순간 대답을 잃었다. 예전에 루이를 데려올 때마다 철저하게 피해왔던 곳이 바로 그 귀신의 집이었다.리은은 높은 곳도 무서워하지만 귀신도 무서워했다.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유한이 리은을 힐끗 보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엄마는 쫄보라 못 들어가.”“엄마, 귀신 무서워요?”루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그 모습에 리은은 얼른 생각을 돌리려고 했다.“루이, 너 아직 어려. 귀신의 집은 진짜 무서워서 들어갔다가 울고 열이 날 수도 있어. 나중에 조금 더 크면 그때 같이 가자.”루이는 이전부터 귀신의 집에 관심이 많았지만 늘 기회가 없었다.이번에는 아빠가 함께 있으니 기회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루이는 재빨리 유한의 목을 덥석 끌어안았다.인상을 살짝 찌푸린 유한이 루이의 팔을 톡 쳤다.“왜 이렇게 꽉 껴안아? 목 조를 거야?”“아빠, 데려가 주세요! 저 진짜 들어가고 싶어요!”유한은 담담하게 말했다.“안 데려간다는 말은 안 했는데.”리은이 바로 반박했다.“안 돼. 루이 나이가 너무 어려. 놀라면 어떡해?”루이는 어릴 때도 한번 크게 놀란 적이 있었다.그때도 계속 열이 나면서 거의 일주일이나 고생했다.리은은 다시 물었다.“루이, 안 무서워?”루이는 고개를 반듯하게 저었다.“아빠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안 무서워요.”그 말에 유한의 눈빛이 순간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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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유한은 눈썹 끝이 미세하게 올라갔다.그런데도 리은은 그걸 못 본 듯, 그대로 귀신의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서늘한 공기가 몸을 감싸며 파고들었다.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리은의 발걸음이 멈춰섰다.‘내가 왜 들어온 거지?’고개를 돌린 순간, 유한이 문 바로 안쪽에서 조용히 리은을 바라보고 있었다.“다 가짜야. 뭘 그렇게 겁먹어?”리은은 입술을 꾹 누르며 억지로 말했다.“누가 겁먹었는데?”유한은 턱을 약간 치켜들었다.“안 무서우면 먼저 가든가.”“엄마, 아빠가 있으니까 안 무서워요. 우리 같이 들어가요!”루이의 말에 리은은 더 이상 도망칠 구실이 없었다.루이는 겁도 없이 씩씩한데, 어른이 주저하면 체면이 서지 않았다.리은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그래. 같이 들어가자.”“출발!”귀신의 집 안쪽은 차갑게 냉기가 돌았고, 음산한 음악이 은은하게 깔리면서 긴장감이 훅 밀려왔다.들어가자마자 조명이 급격히 어두워져서 발밑조차 흐릿했다.리은은 유한의 옆에 바짝 붙어 걸었다.그런데 통로가 꺾일 때마다 인형이나 분장한 직원이 갑툭튀하자, 결국 억눌려 있던 비명이 새어 나왔다.“꺄악!”유한의 손이 자연스럽게 리은의 손을 잡았다. 리은의 손바닥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네 소리가 귀신보다 더 무섭다.”유한의 말이 떨어지자, 앞뒤에서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들이 반응했다.“맞아요, 앞에 계신 사모님! 너무 놀라니까 우리까지 더 놀라잖아요...”리은은 얼굴이 확 뜨거워지면서, 죄송하다고 작게 속삭였다.유한은 어깨까지 살짝 들썩이며 웃었다.리은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뭘 웃어? 빨리 좀 나가자고.”밖으로 나오자, 리은의 얼굴은 새하얘진 상태였다.반면 루이는 세상을 얻은 듯 흥분한 표정이었다.“아빠 엄마! 너무 멋있어요! 귀신의 집 진짜 최고예요!”리은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이 아이... 생김새만 나를 닮았지, 성격은 전부 다 주유한이네.’유한은 리은의 창백한 얼굴을 흘끗 보며 비꼬듯 말했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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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하나의 시선이 유한과 리은을 한번 쓸고 지나갔다.“그럼 놀고 있어. 난 얘 데리고 저쪽 좀 보고 올게.”하나는 조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굳이 남아있지도, 방해하려는 기색도 없었다.하나가 사라지자 유한이 리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리은도 그 시선을 느끼고 천천히 유한을 보았다.몇 초 동안 묵묵히 바라보다가, 유한이 의미를 짐작하기 힘든 목소리로 말했다.“은근히 대범하네.”리은은 담담히 응수했다.“나 원래 대범해.”유한은 미세하게 웃으며 불쑥 내뱉었다.“그래? 그게 대범한 거야? 아니면... 그냥 신경 안 쓰는 거야?”“차이가 있어?”리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리은에게는 그 둘의 경계가 중요하지 않았다.관심이 있든 없든, 겉으로는 늘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했으니까.유한의 시선이 조금 어두워지면서 그저 짧게 비웃는 소리만 흘렸다.리은은 그 의미를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무슨 의도로 비웃는지 알아보고 싶지도 않아.’...한편, 조금 떨어진 곳까지 걸어간 하나는 뒤를 돌아보았다.잠시 셋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더니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그리고 바로 인영에게 전송했다.다음 순간 인영의 전화가 울렸다.[언니 어디야? 유한 오빠 만난 거 맞아?]하나가 조용히 대답했다.“응, 놀이공원. 유한도 가족들이랑 와 있었어. 우연히 마주쳤지.”[놀이공원? 오빠가 거길?]인영의 목소리는 놀람과 분노가 뒤섞여 있었다.하나는 인영의 반응에 미묘한 어색함을 느꼈다.“아이 데리고 놀이공원 오는 게 왜 그래 이상해?”[이상하지! 오빠가 그 애를 데리고 그런 곳을 갈 리가 없거든!]하나는 그 말에 순간 멈칫했다.말 속에 묘한 집착이 묻어나 있었다.“왜 ‘없어’? 무슨 이유로?”[오빠는...]인영은 말하다가 스스로 입을 닫았다.[진리은이 임신했을 때 오빠가 얼마나 울분이 터졌는지 다 아는 얘기거든. 그 애도 마찬가지고. 좋아하기는커녕... 솔직히 말하면 불편해했어.]하나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서서히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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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리은은 유한이 왜 갑자기 또 화가 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또 무슨 오해야...’마음속에선 답답함이 고개를 들었지만, 굳이 맞서고 싶지 않았고, 상황을 더 키울 이유도, 감정적으로 부딪힐 여유도 없었다.그래서 최대한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냥 예의상 한 말이야. 네가 굳이 이유를 묻는다면... 그 이유는 이거야. 루이 내가 혼자 키워 왔으니까, 고맙다고 한 건 그냥 형식적인 말이야. 너무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리은도 인정했다. 조금 전에 유한한테 굳이 감사 인사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별 생각 없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유한의 시선에는 의심이 짙게 깔렸고, 리은 쪽을 가만히 응시한 채 믿지 않는 눈빛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그 말이 진심이길 바라겠어.”짧고 단호한 목소리였다.더 설명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걸 리은은 잘 알고 있었다. 설명할 만큼 했고, 그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믿고 말고는 유한의 문제였다. 유한이 마음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결론을 내릴지까지 리은이 통제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리은은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고 돌아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유한은 움직이지 않은 채 리은의 등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끝까지 뜨겁게 따라붙는 듯한 그 눈빛은 마치 독기 서린 뭔가가 리은의 등을 짓누르는 감각을 남겼다.문이 닫히고 나서야 그 시선이 완전히 차단된 듯했다. 리은은 문 쪽을 돌아보며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유한이 따라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자, 긴장이 풀리는 듯한 감각이 찾아왔다.그날 이후 유한은 또 며칠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단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면, 리은이 더 이상 예전처럼 자기 생각을 억누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지금쯤 어디 있을까?’ ‘누구랑 뭘 하고 있는 거지?’ 같은 상상을 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저 연락이 없으면 없는 데로 편했다.유한이 보이지 않는 며칠 동안 리은은 오히려 더 숨이 트였다.시간이 훌쩍 지나 어느새 강덕순 어르신의 생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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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사실 유한의 행방과 동선은 언제나 리은에게 알려진 적이 없었다.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의 리은은 그 막연한 불안과 궁금증에 흔들렸지만 이제는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뿐이었다.강덕순의 생신 연회는 저녁으로 잡혀 있었고, 리은은 미리 성빈을 모시고 주씨 집안의 본가로 향했다. 차를 몰고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도우미들이 나와서 반겼다.“작은 사모님 오셨어요. 이쪽 분은...?”“이모님, 제 오빠예요. 진성빈. 오늘 할머니께 축하를 드리러 왔어요.”“아, 성빈 도련님이셨구나. 어서 들어오세요.”“감사합니다.”성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리은은 휠체어를 밀며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넓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강덕순은 리은을 보자 표정부터 화사하게 달라졌다.“리은이 왔구나. 이리 와서 앉아.”리은은 성빈을 모시고 소파 쪽으로 다가가 정중히 인사했다.“할머니, 저희 오빠예요. 오빠가 할머니 생신 축하드리러 왔어요.”강덕순은 그 말을 듣자 성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나이에 쉽지 않은데도 직접 자리에서 일어나 성빈 앞까지 걸어왔다.“네가 성빈이지? 전에 병원에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몸이 안 좋아서 할머니를 기억 못 할 수도 있겠다.”성빈은 고개를 숙여 조용히 말했다.“아닙니다. 당연히 기억합니다. 병원까지 와 주셨던 거... 알고 있어요. 저하고 리은이 신경 써 주신 것도 감사드리고요. 할머니, 이것은 제가 준비한 작은 생신 선물입니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습니다.”리은은 성빈이 준비한 선물이 뭔지 몰랐지만 굳이 묻진 않았다.‘오빠가 준비한 거면 뭐든 괜찮아.’리은은 늘 성빈을 존중했고, 어떤 선물이든 성빈의 진심이 담긴 것이라면 뒤에서 지지할 마음이었다.그때, 소파 반대편에 앉아 있던 중년 여인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너한테 오빠가 있었어?”그 목소리에 리은은 고개를 돌려 바라보았다.잠시 얼굴이 굳어졌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누구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그 표정을 본 강덕순이 리은의 손등을 잡고 이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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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리은아, 유한이한테 전화 좀 해 봐. 언제 올지 물어봐라.”강덕순의 말에 리은은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꺼내 통화를 시도했다.평소 같으면 절대 받지 않을 전화였기에 리은은 연결조차 기대하지 않았다.그런데 신호음이 한 번 울리자마자, 유한의 낮고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네 핸드폰 또 정지된 줄 알았네.]익숙한 비아냥이었다.리은은 짧게 숨을 고르고 담담하게 말했다.“할머니가 물어보셨어. 언제 오냐고.”유한은 몇 초간 말이 없었다.침묵 끝에 무심한 톤의 대답이 흘러나왔다.[좀 늦게 갈 거야.]“알겠어.”리은은 더 말하지 않고 통화를 끝내려 했다.그 움직임을 느낀 듯, 건너편에서 갑자기 나지막하게 묻는 소리가 이어졌다.[나한테 할 얘기 없어?]리은의 손이 잠시 공중에서 멈췄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혹시 착각인가 잠깐 의심도 들었지만 통화 시간은 또박또박 흐르고 있었다.몇 초 뒤 리은이 되물었다.“무슨 말?”유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차가운 숨소리와 함께 짧은 비웃음이 들렸고, 통화는 일방적으로 끊어졌다.리은은 꺼진 화면을 보며 속으로 중얼렀다.‘이게 원래 패턴이지.’핸드폰을 정리한 뒤 강덕순을 향해 조용히 말했다.“유한 씨는 조금 늦게 온대요.”강덕순은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굳혔다.“그렇게 바쁘냐?”리은은 강덕순의 팔을 부드럽게 붙잡으며 대답했다.“늘 바쁘잖아요.”무엇을 하는지는 리은도 아는 바 없었다.“내 눈에는 쓸데없이 돌아다니는 걸로밖에 안 보여.”리은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귤 하나를 집어 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기고 강덕순 앞으로 내밀었다.“할머니, 귤 드세요.”“역시 리은이가 제일 속이 깊지...”칭찬을 들은 리은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그늘진 속마음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조용히 울렸다.‘죄송해요, 할머니.’‘오늘이 지나면 저는... 이제 솔직하게 말씀드릴 거예요.’강덕순은 이후 성빈과 한동안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었고, 잠시 뒤 모두 함께 연회장으로 이동했다.해마다 강덕순은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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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할머니, 그래도 고모님이랑 같이 올라가시는 게 더 좋지 않을까요?”리은이 조심스레 말하자, 주은미는 마치 ‘이제야 알아듣네’ 하는 눈빛을 주며 위아래로 훑었다.“엄마, 제가 올라가서 도와드릴게요.”하지만 강덕순은 단단히 선을 그었다.“필요 없어. 리은아, 할머니랑 같이 올라가자.”이 정도로 못을 박자, 리은도 더는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리은은 표정이 굳은 주은미를 흘깃 쳐다보고 난 뒤 강덕순의 팔을 잡고 무대 쪽으로 향했다.무대 아래는 꽤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고, 그 시선들이 한 번에 강덕순과 리은 쪽으로 쏠렸다.리은은 짧게 숨을 고르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 자리는 어느 기자나 언론도 초대하지 않았으니, 오늘의 일이 바깥으로 흘러 나갈 일은 없을 것이다.예전에 리은과 유한의 결혼식에도 여러 사람이 왔지만, 단 한 장의 사진조차 외부로 새어나간 적이 없었다.그래서 진리은이라는 이름은 오래전부터 ‘주씨 가문의 작은 사모님’으로만 돌았고, 실제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강덕순은 마이크를 건네받아 차분히 인사를 전했다.“오늘 내 팔순에 와 줘서 고마워요. 말은 길게 하지 않겠어요. 편하게 먹고 마시고 즐기다 가면 됩니다.”그 말끝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강덕순의 목소리 톤이 조금 낮아졌다.“그리고 오늘, 여러분께 꼭 말씀드릴 중요한 이야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리은은 어깨가 살짝 긴장되며 할머니 쪽을 바라봤다.‘설마... 그때 말씀하셨던 그 이야기...?’예감은 틀리지 않았다.강덕순은 리은의 손을 제법 강하게 잡으며 한층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했다.“내 옆에 있는 사람은 내 손주며느리 진리은입니다. 성격이 조용해서 평소엔 얼굴을 잘 안 비추지만, 다들 이름은 들어봤을 겁니다.”바로 아래에서 탄성이 터졌다.“아, 이분이 주유한 대표님의 부인이시구나. 확실히 분위기가 있네.”“주 대표님 눈이 정말 좋으시네요. 어르신, 이렇게 예쁘고 효심 깊은 손주며느리를 두셨으니 복받으신 거예요.”“...”여러 목소리가 겹쳐 들렸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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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주 대표님 오신다!”누군가 크게 말하자, 술렁이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한쪽으로 쏠렸다.“주 대표님...”“작은 사모님이랑 같이 안 왔네. 옆에 있는 사람 허씨 가문 아가씨 맞지?”“맞아. 허씨 집안 따님하고 둘이 예전부터 가까웠다더라. 근데 이런 자리에도 둘이 나란히 나타나는 거 보면...”“결국 주 대표님 사모님은 강덕순 어르신 사랑은 얻어도 남편 사랑은 못 얻은 거네?”“다들 그렇게 말했지. 오늘 보니까 더 확실해졌네.”“이런 자리에 부부가 따로 오는 경우가 어디 있어. 관계가 안 좋다는 증거지 뭐.”“저기 뒤에 있는 두 분은... 허 회장님하고 사모님 아닌가?”“그러네. 오랜만에 보네.”“...”인영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추측과 소문을 또렷하게 듣고 있었다.그러나 인영의 자세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등을 곧게 펴고, 유한의 팔을 자연스럽게 낀 채 태연하게 걸음을 이어갔다.그 오만할 정도의 여유는 오히려 시선을 끌었고, 심지어는 유한의 옆자리를 당연한 듯 차지하고 있었다.인영은 무대 위의 리은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닿았다.인영의 눈빛에는 감춰지지 않는 우월감과 확신이 서려 있었다.하지만 리은은 짧게 바라보고는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다시 아래로 떨어뜨렸다.그 표정은 놀람도 불안도 분노도 없었다.그 무심한 모습을 본 인영은 속으로 잔잔하게 비웃었다.‘곧 있으면 진리은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텐데... 아직도 저렇게 태연해?’그때 인영이 먼저 강덕순 쪽으로 인사하며 말문을 열었다.“할머니,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부모님 항공편이 지연되어 어쩔 수 없이 늦게 도착했어요.”인영의 부모도 이어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어르신, 참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은 괜찮으신지요?”허 회장은 예의를 갖춘 어른이지만, 강덕순은 그보다 윗세대였다.평소라면 차갑게 대할 수도 있지만, 먼 길을 와 생신을 챙기러 온 손님을 냉대할 수는 없었다.“난 잘 지내. 너희 부부는 어때?”허 회장은 잠시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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