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얘기에 미쳐 버린 내 남편의 모든 챕터: 챕터 181 - 챕터 190

390 챕터

제181화

“못 봤어? 강덕순 어르신이 허씨 가문 아가씨를 전혀 예뻐하지 않잖아.”“그렇지. 허인영 씨는 명분도 없는데다, 저 나이대는 특히 예절과 이름이 중요하지. 주 대표님이 아무리 좋아해도 어르신 마음을 못 얻으면 소용없지.”“근데 주 대표님도 참 대놓고 저러네. 이런 날에도 허인영 씨를 데리고 오다니, 감정은 확실한가 보네.”“그래 봤자 어르신이 살아 계신 동안엔 허인영 씨는 이름을 못 올릴 거야. 주 대표님도 이혼 못 할 거고.”“그 말이 맞네...”“...”무대 위에 오른 유한은 아래쪽을 한 번 훑다가 장영옥의 옆에 놓인 휠체어와 그 위에 앉아 있는 성빈을 발견했다.유한의 시선이 곧바로 차갑게 굳어지면서, 곧바로 리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그 싸늘한 시선을 느낀 리은이 고개를 들었다.유한의 눈빛은 싸늘하게 가라앉아 있어서, 의아해진 리은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누가 저 사람 데려오랬어?”“뭐?”유한은 짧게 웃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낮게 물었다.“저기 아래 앉아 있는 내 처남, 누가 오라고 했냐고.”말은 크지 않았으나, 주변 사람들에게 충분히 들릴 만큼의 음량이었다.리은은 표정은 크게 변하지는 않았지만, 잠시 목이 굳어지는 듯했다.본능적으로 성빈 쪽으로 눈을 돌렸다.성빈 역시 들을 수 있는 거리였다. 휠체어 손잡이를 천천히 움켜쥐면서 손등까지 하얗게 변했다.주변에서 작은 소리가 터졌다.“처남? 저 사람... 누구지? 얼굴이 낯선데?”“그러게. 저 사람 처음 본다. 누구 집 사람이야?”“강덕순 어르신이랑 작은 사모님이랑 같이 들어오던데? 난 주씨 가문 쪽인 줄 알았는데?”“...”여러 시선이 성빈에게 꽂혔다.곤란함과 의문이 섞인 눈빛들이 대놓고 오르내렸지만, 성빈은 오히려 담담했다.색안경을 끼고 자신을 보는 사람들 앞에서 성빈은 눈을 피하지 않고 무대 위의 리은을 바라보았다.리은과 성빈의 시선이 공중에서 맞닿았다.둘만이 공유하는 묘한 단호함이 오갔다.리은의 눈빛에 스며든 걱정을 읽은 성빈이 고개를 살짝 저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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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강덕순은 유한을 흘끗 바라봤다.그 시선을 본 유한은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하는 불길함에 입술을 얇게 다물었다.억지로 침착함을 유지하며 낮게 말했다.“할머니, 무슨 일이든 저랑 상의하고 결정하시면 안 될까요?”강덕순은 눈썹을 치켜세우면서 되받아쳤다.“뭐? 내가 결정하는 데 네 허락이 필요해? 내가 너 눈치까지 봐야 하냐?”말문이 막힌 유한은 그저 입술만 꽉 다물었다.강덕순의 기세 앞에서는 누구라도 조용해질 수밖에 없었다.강덕순은 짧게 코웃음을 치고는 리은의 손을 덥석 잡았다. 바로 마이크 앞으로 리은을 끌어 세운 강덕순이 돌연 선언했다.“지금부터 내가 발표할 게 있어요. 주씨 가문의 모든 재산을 내 손주며느리 진리은 씨 명의로 전부 이전하겠습니다.”장내가 단번에 술렁였다.“뭐라고? 주씨 가문 재산 전부?”“어르신 정신이... 혹시 연세가 들어 판단이 흐려진 거 아닐까?”“백 년 기반의 주강그룹까지 그걸 다 넘긴다고?”“...”인영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손이 벌벌 떨리면서, 눈동자는 살얼음처럼 차갑고 예리해졌다.‘이 미친 늙은이가 지금 뭐라고 했어?’‘주씨 가문 재산을 진리은 이름으로 넘긴다고?’‘정신이 나간 거 아냐?’충격으로 얼굴이 사색이 된 인영의 부모도, 딸의 손을 붙잡으며 낮게 물었다.“인영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니? 어르신이 왜 저 여자에게 전부 넘긴다고 하는 거야?”인영은 이를 악물고 머리를 내리며 낮게 씹었다.“미쳐도 단단히 미쳤죠...”그뿐만 아니다.수혁, 연준, 태현 역시 동시에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연준은 입을 벌린 채 어물거리다 결국 말이 튀어나왔다.“아... 내가 지금 잘못 들은 거 아니지? 뭐라고 한 거야?”수혁이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답했다.“잘못 들은 거 없어. 똑같이 들었어.”“와... 씨, 진리은 저 여자가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야? 몰래 주유한이랑 할머니한테 약이라도 먹인 거냐? 전 재산? 이건 진짜 미쳤다.”연준도 믿기 어렵다는 듯 말했다.“아니,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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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연회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붙었다.모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지고,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만 겹겹이 쌓였다.“뭐, 뭐라고 했어?”“그러니까... 주 대표가 이혼하면 주씨 가문 재산을 전부 포기해야 한다는 거네? 거기에 전 부인한테 공짜로 일까지 해야 한다고?”“말이 돼? 이게 무슨 경우야? 팔이 밖으로 휘어도 정도가 있지.”“이건 진짜 상식 밖인데...”리은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강덕순의 강경한 발표 앞에 온몸이 굳어져서, 바닥이 꺼져버리는 듯한 혼란이 밀려왔다.‘할머니가... 혹시 내가 이혼 생각하는 거 눈치채신 건가?’‘그래서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서 이걸 발표하신 건가?’원망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강덕순은 리은을 막고 싶었던 것이다.이 집안에서 유일하게 자신 편이 되어 준 사람이 리은을 지키려고 나선 것뿐이었다.주씨 가문 재산을 모두 넘기는 것도 리은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이었다.유한의 표정은 흙빛으로 어둡게 가라앉았다. 이 정도까지는 상상도 못한 모양이었다.그때 인영이 먼저 튀어나왔다.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무대로 다가섰다.“할머니, 이건 유한 오빠한테 너무 불공평해요! 유한 오빠가 주씨 가문의 정식 후계자라고요!”강덕순은 인영을 잠시 쳐다보더니 단단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우리 주씨 가문 일에 네가 왜 끼어들어? 네 분수는 어디다 둔 거야?”“하지만 유한 오빠는...”인영이 더 말하려 하자, 허 회장 부부가 급히 끌어당겨 제지했다.“어르신, 화 푸십시오. 두 아이가 어려서부터 가까웠으니, 인영이도 괜히 마음이 앞서서 그랬습니다.”인영만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표정이 잿빛으로 바뀐 주은미도 리은을 노려보았다.“엄마, 연세를 드시더니 정신도 흐릿해지셨어요? 저 여자는 어차피 외부인인데, 어떻게 주씨 가문 재산을 통째로 넘길 수 있어요?”강덕순은 단숨에 되받았다.“누가 외부인이래? 리은이는 주씨 가문에 들어왔고, 그 순간부터 주씨 사람이야. 내가 내 사람한테 내 재산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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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리은은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묻고 싶은 것도 따지고 싶은 것도 설명해야 할 것도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아래에서 수십 쌍의 시선이 매섭게 꽂혀 있었다.그 눈빛 속에는 호기심, 경계, 의심, 질투가 엉켜 있었고, 리은은 그런 자리에서 말을 꺼냈다간 괜한 추측만 더 끌어올린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결국 입술을 깨물고 고개만 끄덕였다.강덕순의 팔을 조심스레 붙잡고, 천천히 단상 아래로 내려왔다.그 모습을 보고 앞으로 나서려던 주은미를 강덕순이 차갑게 제지했다.“너는 네 일이나 해.”그 한 마디에 주은미의 표정이 일시에 무너졌다. 손에 든 잔을 부서져라 움켜쥔 채, 떠나가는 강덕순과 리은의 뒷모습을 독기 어린 눈빛으로 쫓았다.유한은 처음 발표가 나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하지만 유한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기는 칼날처럼 싸늘하고 무거웠다.표정은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고, 어깨와 턱이 굳어 있는 모습만으로도 현재 심경이 얼마나 어지러운지 짐작할 수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누가 감히 비웃거나 말을 붙일 수도 없었다.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모두 유한의 성격과 수완을 알고 있었고, 웃어넘길 인물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고 있었다.게다가 강덕순의 선언은 조건부였다.이혼만 하지 않는다면 주씨 가문의 모든 것은 여전히 유한의 것이다.결국 강덕순은 ‘이혼’이라는 조건으로 리은과 유한을 강제로 결박해 놓은 셈이었다.주씨 가문의 재산은 일반적인 기준으로는 계산이 불가능했다. 이 정도 규모를 가진 남자가 사랑 때문에 모든 걸 버릴 거라 생각하는 건 어리석음에 가까웠다.대부분은 이 자리가 끝나기 전부터 유한이 이혼을 선택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판단했다.그렇다 보니, 시선은 자연스럽게 인영에게로 옮겨갔다.수년간 이어져 온 유한과 인영의 관계 소문은 사실상 반쯤 공공연한 비밀이었다.양측 모두 적극적으로 부정한 적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더 큰 확신을 주었다.“이번엔 제대로 한 판 벌어지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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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오빠, 나보고... 가라고?”인영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유한은 미동도 없었다.표정에는 얼핏 감정 비슷한 것도 비치지 않았고, 몸에선 낮고 묵직한 압박이 뚝뚝 흘렀다.눈빛은 얼어붙은 수면처럼 냉담하고 잔잔했다.잔잔해서 더 무서운, 그런 평온함이었다.“아니면 지금 내가 데려다줄까?”인영의 눈동자가 번쩍였다.유한이 정말 인영을 데리고 나간다면, 언뜻 보기엔 인영이 이기는 듯 보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그건 가장 치명적인 패배였다.지금 유한이 인영이랑 함께 나가면 곧바로 리은과의 혼인 자체를 포기하겠다는 의미였고, 주씨 집안에서 갖고 있는 모든 권한을 한꺼번에 내려놓는다는 뜻이기도 했다.그 사실을 떠올리자 인영의 손끝이 떨렸다.결국 인영은 유한의 손목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손을 놓으면서도 속에서 끓는 불만과 억울함을 숨길 수 없었다.“유한 오빠...”“먼저 가서 쉬어.”유한은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다. 냉정하게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유한이 사라지자 시선들이 인영에게 더욱 대담하게 꽂혔다.아쉬움, 조롱, 구경꾼의 흥미가 뒤섞여 있었다.인영은 태어나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굴욕과 창피함에 몸을 떨었다.피가 스멀스멀 번질 만큼 입술을 꽉 깨물었고, 손끝도 싸늘하게 얼어붙었다.그때 태현이 다가와서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외투를 벗어 인영의 어깨에 걸쳤다.“가자. 내가 데려다 줄게.”허 회장 부부 역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인영아, 우리 먼저 나가자. 지금은 이 자리에 있는 게 더 힘들 거야.”결국 태현이 인영을 부축해 빠져나갔다.뒤편에서 연준이 얼굴을 감싸며 혼잣말을 내뱉었다.“아... 진짜 미친 날이네. 뭔 상황이냐, 이게?”수혁은 고개를 흔들며 낮게 중얼거렸다.“역시 어르신이야. 손 한 번 휘두르니 판도가 뒤집히네.”“난 그냥 미쳤다고 봐. 주씨 집안 재산 전부를 걸다니... 그게 말이 되냐?”수혁은 연준을 흘겨보며 말했다.“그 말, 직접 할머니한테 해봐. 난 못 들은 걸로 할게.”그 말에 연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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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사람들 시선이 닿지 않는 곳까지 오자, 거의 참을 수가 없어서 리은이 입을 열었다.“할머니...!”“쉿.”강덕순은 손가락을 입가에 갖다 댔다. 말을 멈추라는 뜻이었다.“무슨 말 하려고 하는지 다 알아. 네 얼굴에 드러난 변화도 다 보고 있었어. 솔직히 말하면, 나는 기쁘다. 드디어 너도 벗어날 줄 알고, 내려놓을 줄 아는구나 싶어서.”리은은 한순간 멈칫했다. 입술이 떨리면서, 말도 나오지 않았다.강덕순이 오늘 일부러 했던 말들.그 모든 게 이미 눈치채고 한 행동이라는 걸... 그제야 정확히 알 수 있었다.리은은 숨을 고르고 강덕순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할머니, 이혼은 제가 오래 고민한 결정이에요. 감정적으로 화가 나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일시적인 충동도 아니에요. 정말... 이혼하고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강덕순은 짧은 숨을 내쉬고 리은의 손등을 부드럽게 두드렸다.“나도 안다, 안다. 근데 나는 여든이 넘었어.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살겠니...”“할머니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돼요.”리은은 즉시 얼굴을 찌푸렸다.“생신날 이런 불길한 말씀은 하지 마세요.”강덕순은 작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알았다. 안 할게. 리은아.”단어 하나하나가 힘을 담고 있었다.“그동안 그놈 때문에 고생 많이 한 거 내가 모를 것 같아? 네 마음에 쌓인 서운함도 다 느껴졌다. 원망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고.”“할머니, 저는...”리은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몇 년 동안 겪어온 모든 일.억울함과 외로움과 버림받은 감정과 감당할 수 없던 시간들.그걸 ‘괜찮다’고 말하는 건... 반대로 할머니를 속이는 일이었다.“다 이해해. 그런데 나는 너희 둘이 이혼까지 가는 모습은 정말 보고 싶지 않구나. 루이는 어떻게 하려고 그러니?”“저랑 유한 씨 사이는 이제...”“리은아, 너는 아직도 모르니? 유한이 마음에는 네가 있어. 널... 소중하게 생각해.”강덕순의 확신 어린 얼굴을 보고 리은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삼켰다.‘어떻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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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리은은 더 이상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강덕순 앞에서는 큰소리로 맞서지도 못하고, 감정적으로 폭발할 수도 없었다.부모님 다음으로 자신에게 잘해준 사람인데, 그 마음을 함부로 밀어낼 수가 없었다.“할머니...”강덕순은 리은의 태도가 조금 누그러진 걸 느끼자 천천히 숨을 내쉬며 말했다.“리은아, 내가 처음으로 널 본 게 언제인지 아니?”리은은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왜 이야기가 바뀌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때 네가 대학 다닐 때였다. 멀리서 차 안에서 네 모습을 한번 본 적이 있어.”“언제요?”“유한이가 네 학교에 도시락 싸 들고 갔던 날.”“도시락... 가져왔던 날이요?”그날을 잊을 리 없었다.리은은 유한과 있었던 과거는 작은 일조차 흐릿해지지 않고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그 시기 리은은 실험 데이터를 맞추느라 하루 종일 실험실에 틀어박혀 있었다. 마감이 다가오면서 압박은 심해졌고, 밥 먹을 생각조차 하기 힘들 정도였다.리은이 며칠째 밥을 굶다시피 한다는 걸 알게 된 유한은 직접 도시락을 들고 학교로 왔다.다만 그때 반찬 맛이 너무 없어서 리은은 단순히 근처에서 사온 줄만 알았다.그래서 ‘어디서 산 거야? 맛은 그냥 그렇네.’하고 물었고, 유한은 무심하게 ‘길가에 있는 데서 샀어. 이름은 기억 안 나. 맛없으면 다음엔 거기서 안 사오면 되지.’라고 대답했었다.“기억나요.”“그날 말이다. 유한이 집에서 영옥 아주머니한테 계속 붙어서 요리를 가르쳐달라고 했어. 내 기억엔... 갈비찜이랑, 계란토마토볶음이었지?”리은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맞았다.그날 도시락 반찬이 정확히 그 두 가지였다.갈비찜은 바닥이 탄 맛이 났고, 계란토마토볶음은 설탕이 안 들어가서 새콤하고 짜기만 했다.“그럼... 그 반찬이...”“그래. 유한이가 직접 한 거란다. 직접 해서 도시락에 담아서 들고 간 거야. 나는 차에서 멀리서 둘이 있는 걸 다 보고 있었고.”말을 잇지 못한 리은은 가슴속 어딘가가 조용히 흔들리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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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복도 끝에서 멈춰 선 리은은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숨이 가빠졌다.“리은아...”성빈의 목소리가 들리자 리은이 돌아보았다.“오빠.”성빈은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를 살폈다.“괜찮아?”강덕순이 방금 전 자리에서 한 발언은 연회장의 공기를 순식간에 얼어붙게 만들 만큼 강했다.“괜찮아.”리은은 대답을 했지만, 표정엔 한 치의 여유도 없었다.성빈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강덕순의 뜻은 너무도 분명했다.리은을 주씨 가문의 ‘정식 며느리’로 세운다는 결심.리은은 말없이 숨을 골랐다.‘이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지.’“아직도... 이혼하고 싶어?”리은의 입술이 살짝 떨렸다. 허망함과 체념이 뒤섞인 눈빛이었다.“오빠... 이혼이... 되기는 하겠어?”강덕순의 반대는 절대적이다.강덕순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상 리은이 혼자서 밀어붙일 방법은 없다.성빈의 시선이 어둡게 가라앉더니 휠체어 손잡이를 꼭 쥐며 말했다.“리은아, 우리 그냥... 같이 떠나버릴까?”“진리은!!”성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날카로운 외침이 복도에 울렸다.리은이 몸을 돌리자마자 얼굴에 강한 충격이 날아들었다.주은미가 따귀를 때린 것이다.성빈의 표정이 급격히 일그러졌다. 손등 위로 핏줄이 불거졌다.“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주은미는 비웃음을 머금은 얼굴로 두 사람을 고압적으로 내려다봤다.“네가 뭔데 나한테 따져? 네 주제에 감히 나한테 따져?”“오빠, 하지 마.”리은이 성빈의 어깨를 눌러 앉힌 뒤, 자신의 따끔한 뺨을 천천히 손끝으로 쓸었다.아릿한 작열감이 손끝에 그대로 전해졌다.그러나 말투는 차분했다.“어른이라도... 이유 없이 함부로 때리시면 안 되죠.”주은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을 과시하듯 바라보았다.“때린다고 뭐 어쩔 건데? 네 같은 건 맞아도 싸. 대체 우리 엄마한테 무슨 요술을 부린 거야? 그 연세에 정신이 이렇게 흐려져서 주씨 가문 걸 전부 네게 넘기겠다니!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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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네까짓 게 뭔데 나한테 큰소리를 쳐? 다리도 성하지 않고 병약한 게... 오늘 아주 제대로 가르쳐 줘야겠네!”‘이런 말을, 성빈 오빠한테?’리은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리은은 서늘한 시선으로 주은미의 일그러진 얼굴을 바라보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한 가지... 잊고 계신 것 같으세요.”“뭐?”“저는 아직 주씨 가문의 며느리입니다. 하지만 고모님은 이미 다른 집으로 시집가신 분이죠. 시집간 딸은 출가외인이라고 하잖아요. 그러니... 저를 훈계하실 권한은 없는 걸로 아는데요.”그 말에 주은미 표정이 새파랗게 질리면서 분노가 눈동자에 그대로 드러났다.주은미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었다. ‘주씨 가문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아주 잘도 말한다? 오늘은 내가 유한이를 대신해서...”“누굴 대신해서?”강덕순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주은미의 어깨가 움찔하며 굳었다. 뒤돌아보니 강덕순이 이미 가까이 와 있었다.“엄마, 들어보세요! 이 여자가 먼저 저를 모욕했어요! 제가 그래도 이 애한테는 어른인데...!”강덕순의 시선이 리은에게 옮겨갔다.그 순간 리은의 한쪽 뺨 위에 선명한 자국이 보였다.강덕순의 눈매가 곧바로 가늘어졌다.“네가 때렸니?”“할머니...”리은이 작게 불렀지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주은미가 급하게 말을 끼워 넣었다.“맞아요, 제가 때렸어요! 근데 그건 이 애가...”성빈이 주은미의 말을 끊고 나지막하게 말했다.“할머니, 주 여사님께서 아무 이유도 없이 리은 뺨을 때리셨습니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이런 행동은...”“입 닥쳐! 장애인 주제에 어디서 나서?”그 말이 끝나자마자 강덕순의 지팡이가 허공을 가르며 주은미의 팔을 세게 내리쳤다.“아악!”주은미가 비명을 질렀다.“엄... 엄마?”강덕순의 표정은 차갑고 준엄했다.“네가 아직 ‘어른’이라고 생각하니?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해야지!”주은미는 억울한 표정으로 강덕순 뒤편의 유한을 바라봤다.“저는 그저... 유한이를 위해서 그랬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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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주은미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면서 조여들었다. 왠지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겉으로는 애써 침착한 듯 집안 어른의 체면을 유지하려 애썼다.“유한아, 그게 무슨 말이니? 너도 고모가 시집갔으니 더는 주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야?”유한은 눈썹을 미세하게 올리며 낮고 담담하게 응답했다.“그럴 리 없죠. 전제만 지켜진다면요. 고모님이 스스로 절제하고 조용히 계신다면, 언제든 주씨 가문 사람이죠. 게다가...”말끝을 흐리자, 주은미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게다가 뭐?”유한은 고개를 돌려 리은을 바라보았다. 또박또박, 한 단어도 흘리지 않는 목소리였다.“게다가 제 아내가 방금 말한 거, 틀린 구석 하나도 없습니다. 시집간 딸은 이미 출가외인인 만큼, 고모님은 시댁 쪽에 더 마음을 쓰셔야죠. 친정 일에 간섭할 자리는 없거든요.”리은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유한의 어두운 눈길이 잠깐 닿는 순간, 은근히 날이 선 의미가 숨어 있는 것처럼 마음 한구석을 스쳐 지나갔다.성빈 또한 유한을 응시했다.그러나 유한은 얼음장 같은 시선을 성빈에게 던졌을 뿐이다.짧게 부딪쳤던 두 사람의 시선이 금방 흩어졌지만, 그 사이에 싸늘한 공기가 번졌다.주은미가 억눌린 목소리로 따지듯 말했다.“유한아, 너 지금 뭐라고 하는 거니? 내가 어떻게 됐든 주씨 집안 사람이기도 하고, 네 고모인데...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게 맞아?”유한은 입꼬리를 아주 조금 비튼 채 건조하게 덧붙였다.“고모요? 그렇다면 고모답게 행동하시면 됩니다. 제 아내에게 누가 감히 훈계하려 드는 건, 허락할 생각 없습니다.”주은미의 어깨가 굳어버렸다. 그제서야 유한의 말이 리은 편을 들어준 것임을 확실히 깨달은 듯했다.리은과 유한의 관계가 언제나 냉랭하다는 소문만 알고 있었던 터라, 믿기지 않아서 주은미의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됐다. ‘혹시 내가 들은 게 잘못된 정보였던 걸까?’그런 생각이 스치자, 오래전부터 유한에게 느껴왔던 불편함과 압박감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주씨 가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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