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비밀의 결혼: Bab 31 - Bab 40

100 Bab

제31화

“정말 엉망진창이야.”그 말에 임설희가 피식 웃었다.그녀는 대학 시절, 각종 디자인 대회에서 수차례 금상을 휩쓸었던 인물이었다. 물론 박연우도 매번 대회에 참가하긴 했지만 성적은 기껏해야 ‘우수상’ 정도에 머물렀고 그마저도 늘 심사 위원 탓이라며 불만을 터뜨리기 일쑤였다.“참고로 말해두자면 이번 디자인 시안은 우리랑 금원 그룹이 거의 석 달 가까이 함께 맞춰온 결과물이야. 새로 디자인하는 건 어려운 일 아니지. 하지만 진짜 골치 아픈 건 그걸 조정하고 수정해 가는 과정이야. 아무리 너희가 적극적으로 협력해 줘도 금원 쪽에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만큼의 시간 낭비는 감수하지 않을 거야.”그러자 박연우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그건 네 시안에 문제가 많아서 그런 거고 나는 그런 기초적인 실수는 안 해. 우리가 시안 제출하면 금원 측에서도 별말 없이 한 번에 통과시킬걸?”임설희는 짐짓 감탄이라도 하듯 입꼬리를 올렸다.“역시 우리 천재 디자이너님답네. 자신감 하나는 인정.”물론 자신감을 갖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선을 넘으면 그건 자기 실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오만함이 된다.박연우는 딱 그런 케이스였다.“배고프지? 내가 밥 해줄게.”박연우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그냥 배달시켜 먹자.”임설희가 말렸지만 박연우는 고개를 저었다.“내가 집에 초대한 손님인데 어떻게 배달 음식으로 때워? 앉아 있어. 금방 될 거야.”다정하게 말한 뒤, 박연우는 곧장 부엌으로 향했다.임설희는 거실에 앉아 한참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물을 마시려고 주방 쪽으로 갔고 그 순간 박연우가 최현숙과 영상통화 중인 장면을 목격했다.“설희가 밖에서 파는 음식은 잘 못 먹어요. 그래서 제가 일 다 끝나자마자 부엌으로 뛰어왔죠.”그 말에 최현숙은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높였다.“걔는 무슨 낯짝으로! 네가 임신한 몸으로 쟤까지 챙겨야 돼?”“아직도 화가 안 풀린 것 같기도 하고 괜히 건드렸다가 또 기분 상하게 할까 봐요.”“너 말이야, 마음이 너무 약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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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결국, 송시운은 정말로 나타났다.그것도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정확히 45분 만에 도착했다.송씨 가문 저택에서 박연우의 아파트까지는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4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였다.즉, 송시운은 단 한 번의 연락도 하지 않았으면서, 임설희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주시하고 있었던 셈이다.아니, 어쩌면 그녀의 SNS를 손에 쥐고 분 단위로 새로고침을 하고 있었기에 이렇게 순식간에 달려올 수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박연우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하지만 그녀를 더욱 질투하게 만든 건 송시운이 빈손으로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이었다.그는 장을 직접 봐서 들고 들어왔고 지금은 벌써 부엌에서 임설희가 가장 좋아하는 잔치국수를 끓인다고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그런데 그 정성의 대상인 임설희는 송시운이 문을 열고 들어선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를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다.“시운 씨,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했을 텐데 내가 할게.”박연우는 애써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그러나 재료 손질에 집중하고 있던 송시운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단호하게 말했다.“여기 들어오지 마.”박연우는 혹시 기름이 튀거나 연기 때문인가 싶어 은근히 뿌듯해졌지만, 이어진 말은 날카롭게 그녀의 가슴을 찔렀다.“설희는 내가 만든 국수만 먹어. 면 삶는 타이밍부터 양념까지 전부 내가 손대야 그 맛이 나. 누가 끼어들면 맛이 달라져.”그 말에 박연우의 얼굴이 굳어졌다.“사실 나도 아직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그럼 가서 먹어. 여기 있으면 방해되니까.”이번엔 말끝에 분명한 날이 서 있었다.그 말을 들은 박연우의 표정은 완전히 얼어붙었다.분한 감정을 억누른 채 거실로 나온 그녀는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혼자 영상을 보며 배꼽을 잡고 웃고 있는 임설희를 마주했다.‘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자신은 그렇게 애를 써도 겨우 말 한마디 건네는 게 버겁고 임설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도 송시운의 마음을 통째로 쥐고 있다.질투가 안 날 수 없었다.임설희가 보고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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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접시를 떨어뜨린 건, 분명 송시운의 말에 치밀어 오른 분노 때문이었다.“설희야, 면 불겠다. 얼른 먹어.”송시운은 거의 애원하듯 그녀 앞에 국수 그릇을 내밀었다. 하지만 임설희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이제 그만 가.”“설희야...”“시운 씨가 한 그 말, 한 글자도 믿을 수 없어.”“내 말, 진심이야...”“꺼져.”그 순간, 송시운의 눈에도 분노의 기색이 스쳤지만 그는 꾹 눌러 삼켰다.“내일 다시 올게.”말을 끝낸 그는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밖으로 나섰다.“시운 씨, 내가 바래다줄게요!”박연우는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허둥지둥 내려놓고는 그를 따라나섰고 겨우 엘리베이터 앞에서 그를 붙잡고는 급히 다독였다.“설희가 너무한 거야. 당신이 그렇게 낮춰 사과했는데 아직도 그걸로는 안 풀리다니.”그러자 송시운의 눈빛이 싸늘하게 돌아섰다. 이번 일의 시작이 누구였는지를 떠올린 그는 차갑게 쏘아붙였다.“그 일, 당신이 아니었으면 설희가 이렇게까지 화내지도 않았어.”“나는 그저...”박연우는 고개를 떨구었다.“나는 그냥 당신을 너무 사랑했을 뿐이야. 감정이 앞서서 멈출 수가 없었어.”“날 사랑한 게 잘못은 아니야. 하지만 설희한테 들키게 만든 게 문제였어.”“다신 안 그럴게. 정말이야.”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옷자락을 손으로 꾹 쥐고 있었다. 입술을 질끈 깨문 얼굴엔 불안함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고 눈가엔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듯한 기색이 감돌았다. 마치 한순간에 무너질 것만 같은 모습에, 송시운의 얼굴도 다소 누그러졌다.“이번 일은 그냥... 넘기자.”그 말에 박연우는 숨길 수 없는 기쁨에 고개를 번쩍 들었다.“정말 고마워, 여보.”그녀는 다정히 그의 품에 안기며 조심스레 속삭이듯 말했다.“여보, 우리 오늘 밤은...”하지만 송시운은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무심한 목소리로 한마디를 남겼다.“아, 맞다. 오늘 밤 기온이 많이 떨어진대. 설희 방에 이불 하나 더 덮어줘. 밤에 깨면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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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자, 다들 잘 보세요. 6년간 제가 뼈를 묻은 이 회사가 사람을 어떻게 모욕하는지 직접 보여드릴게요.”“제가 매일 야근하면서 가까스로 따낸 대형 프로젝트 하나 성사시키자마자 아무 이유 없이 해고당했어요. 그것도 모자라 인수인계까지 완벽하게 마쳤는데 제 개인 물건까지 회사 밖으로 못 가져가게 막는다니까요? 이게 정상입니까?”임설희는 휴대폰을 손에 든 채 영상 촬영을 하며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카메라가 향하는 곳마다 직원들은 눈을 피하듯 고개를 푹 숙이고는 누구 하나 그녀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분위기가 점점 더 숨 막히게 가라앉아가자 양 비서는 안절부절못한 채 그녀의 휴대폰을 빼앗으려 다가섰지만 임설희는 재빠르게 밀쳐냈다.“어디 손대기만 해봐요. 바로 경찰 부를 테니까.”양 비서는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뒤로 물러났다. 그녀 역시 윗선의 지시대로 움직였을 뿐, 경찰과 대치할 배짱은 없었기에 결국 부랴부랴 회장에게 보고하러 자리를 떴다.임설희는 다시 휴대폰을 정면으로 들이대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여러분도 이 회사 이름 궁금하시죠? 지금 바로 알려드릴게요. 여기는...”“임설희! 그만 못 둬?!”숨을 헐떡이며 계단을 뛰어 내려온 송영석이 그녀를 향해 고함쳤다.임설희는 고개를 천천히 돌려 그를 바라보더니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카메라를 그의 얼굴로 향하게 했다.순간 당황한 송영석은 반사적으로 얼굴을 손으로 가렸다가 자신의 행동이 더 우습다는 걸 깨달은 듯 손을 치우고는 소리쳤다.“지금 당장 내 방으로 와!”그는 성급히 엘리베이터에 올라타 위층으로 향했고 임설희는 코웃음을 치며 그의 뒤를 따라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겼다.그때, 문지원이 조용히 다가왔다.“부장님, 너무 멋져요. 완전 사이다.”임설희는 그녀의 이마를 툭 밀며 말했다.“너는 얼른 네 일이나 해.”“일이 없어요. 부장님 나가고 나서 박연우가 금원 프로젝트를 혼자 다 끌어안았거든요. 우리한텐 뭐 하나 맡기질 않아서 그냥 손 놓고 있어야 해요.”임설희는 피식 웃음을 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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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당신이 나한테 기회를 줬고 가르쳐주셨죠. 저도 그 은혜 기억하고 있었어요.”“그래서 존경했고 어른 대하듯 극진히 모셨죠. 하지만 아드님과 결혼한 건...”임설희는 어이가 없어 말끝을 흐렸다.‘그건 은혜가 아니라 그때부터 날 견제하기 시작했다는 증거였지. 날 속이고 깎아내리고 자존심을 짓밟아가면서도 그걸 고마움으로 기억하길 바란다고? 정말이지 너무 뻔뻔하잖아?’“너!”송영석은 분노에 차 입술을 파르르 떨었지만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그 틈을 타 임설희가 태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영상 지울게요.”“그럼 당장 가서 빨리 지워!”그의 목소리엔 조급함이 묻어 있었다.“대신 조건이 있어요. 제 개인 물건, 전부 가지고 나가게 해주세요.”송영석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지만 끝까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듯 한마디 보탰다.“앞으로 다시는 이 회사에 발도 들이지 마!”그 말에 임설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낮게 말했다.“회장님이나 그 말 잘 기억해 두세요.”“무슨 뜻이야?”“말 그대로예요. 이런 쓰레기 같은 곳, 다시 오라 해도 안 와요. 돈을 준다 해도 사양이에요.”그 단호한 대답에 송영석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임설희는 통쾌하다는 듯 미소를 머금은 채 사무실을 빠져나왔다.프로젝트 부서로 돌아오자, 문지원이 그녀를 반기며 다가왔다.“아까 박연우가 부장님 짐 들어다 안쪽 회의실로 옮겼어요.”임설희가 회의실 문을 열자, 그 안에서는 박연우와 양 비서가 그녀의 짐을 이리저리 뒤적이고 있었다.“뭐 하세요?”박연우는 놀라며 급히 변명했다.“나도 네가 뭔가 숨길 거라곤 생각 안 해. 그냥 회장님이 걱정하셔서... 형식적으로 한 번 보는 거였어.”“어라? 여기 뭔가 있네요.”양 비서가 짐 속에서 작은 노트 하나를 꺼내 들었다. 한 장을 넘기자 숫자와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었고 그녀는 그것이 회사의 중요 고객 명단이라 판단했다.“이건 안 됩니다. 회사 보안상, 이건 두고 가셔야 해요.”그 말에 임설희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그 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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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다음 날 아침, 임설희는 다시 한의원을 찾았다.대문에 다다르자 멀리서부터 고성이 들려왔고 중년 여성이 진료소 앞에서 언성을 높이며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뭐가 명의야? 당신 같은 사람은 그냥 사람 잡는 돌팔이지! 우리 엄마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야! 만에 하나 무슨 일 생기면 여기를 싹 다 박살 낼 줄 알아!”진료소 문은 굳게 닫힌 채 안에서는 인기척 하나 없었다. 여자는 한참을 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더니 욕설을 쏟아내며 마침내 발길을 돌렸고 그녀가 완전히 사라진 직후, 그제야 문이 아주 조심스럽게 삐걱 열렸다.문틈 사이로 백발의 노인이 고개를 빼꼼 내밀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여자가 정말로 돌아간 걸 확인하자 조심스럽게 문을 활짝 열었다.“이런 게 바로 진짜 ‘진상’이지. 무서워죽겠어 아주 그냥.”허연 수염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내쉰 한의사의 얼굴엔 피로가 역력했다.임설희는 그 말에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애써 입꼬리만 끌어내리며 조용히 그를 따라 진료소 안으로 들어갔다.“오늘 성종 그룹에 들를 일이 있어서요. 혹시 성 대표님께 전달할 게 있으신지 여쭤보려고요.”말은 자연스럽게 꺼냈지만 그녀의 속내는 딴판이었다. 그날 밤 우연히 마주쳤던, 잘생긴 그 남자가 처음엔 어디서 봤던 인물인지 감이 오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이 났다.바로 이 한의원에서 봤던 그 남자였다.‘이쯤 되면 이건 우연이 아니라 운명 아닐까?’그렇다면 이 운명을 어떻게든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흠? 전해줄 건 따로 없는데.”노인은 고개를 갸웃했다.“그 분, 약 다 떨어졌을 것 같아서요. 몇 첩 더 지어주시면 제가 대신 가져다드릴게요.”“그 사람은 약 필요 없어. 병도 없는데 약을 왜 먹어?”임설희는 순간 당황스러웠다.‘이제는 약도 말 안 듣는 건가?’“그래도 혹시 전하실 말씀이라도 있나 해서요...”그녀는 어떻게든 구실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노인의 반응은 여전히 시큰둥했다.“없어. 딱히 전할 말도 없고.”‘이 노인네, 정말 하나도 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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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프론트 직원은 다시 한번 임설희가 든 쇼핑백을 힐끔 내려다보았다.안에 뭐가 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져 결국 그녀는 조심스럽게 대표 비서실로 전화를 걸었고 잠시 후 단정한 정장을 입은 여비서가 직접 로비로 내려왔다.“이렇게 직접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물건은 저에게 주시면 대표님께 잘 전달해 드리겠습니다.”비서는 공손하게 손을 내밀며 미소 지었다.임설희는 밝게 웃으며 쇼핑백을 건네려다 말고 잠시 멈칫했다.“그 안에 들어 있는 약재는요, 전부 같이 솥에 넣고 끓여야 해요. 그런데 용량 조절을 잘하셔야 해요. 조금 부족하면 효과가 없고, 너무 많으면 중독될 수도 있거든요.”“중독...이요?”비서는 놀란 표정으로 쇼핑백을 얼른 다시 그녀에게 되돌리며 머쓱하게 웃었다.“그럼... 수고스럽겠지만 저와 함께 33층으로 가주시겠어요? 대표님께서 10분 후 회의 일정이 있으시긴 하지만 그 전에 잠시라도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 것 같아요.”임설희는 눈을 반짝이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그럼 저야 좋죠.”성종 그룹 본사는 구름을 뚫고 솟은 초고층 건물이었다. 단순히 웅장한 외관이나 규모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위압감 그 자체가 하나의 신화였다.송씨 가문이 ‘재벌’이라면 김씨 가문은 ‘초재벌’이었고 성씨 가문은 그 위에 군림하는 말 그대로 슈퍼 엘리트의 상징이었다. 상업지구부터 의료, 게임, 인공지능, 심지어 군수산업까지 손을 뻗고 있는 성종 그룹은 국내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압도적 권위를 상징했다.임설희는 과거 진우 그룹과의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성종 그룹과 접점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직접 본사에 들어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엘리베이터가 33층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본능적으로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다.‘제발 보안요원한테 끌려 나가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문이 열리는 순간, 임설희는 어딘가 다른 세계로 떨어진 듯한 착각을 받았다.기묘한 구조의 로비와 유려하게 곡선을 그리는 벽면, 그리고 천장에까지 이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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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금원 쪽 사람이에요?”그 말에 옆에 서 있던 여비서가 화들짝 놀라며 되물었다.임설희는 미안하다는 듯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성준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성 대표님께서 잠깐만 시간을 내주셨으면 합니다. 양사 간 협력에 대해 진지하게 말씀드리고 싶어서요.”그제야 성준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맑고 단정한 이목구비는 굳어 있었고 눈빛엔 차가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단순히 불쾌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마치 무언가를 꾹 눌러 참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그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며칠 전 밤의 기억이 스치듯 떠올랐다.술에 취해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그녀에게 다가와 하룻밤에 얼마냐고 묻던 그 기억이그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자, 임설희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눈을 꼭 감았다. 어떻게든 잊고 싶었지만 그 기억은 뇌리 한가운데 고집스럽게 박혀 있었다.“그 손에 든 건 뭐죠?”성준이 물었다.“어... 자라예요.”임설희는 어색하게 기침을 한 번 하며 말했다.“한의사 할아버지가 꼭 전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성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다시 물었다.“제가 말한 건, 그 반대 손에 들고 있는 겁니다.”“아... 맞다.”그제야 그녀는 다른 손에 든 봉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대표님 셔츠예요. 깨끗이 세탁해서 가져왔어요.”그렇게 말하며 셔츠가 담긴 봉투를 조심스레 책상 위에 내려놓고는 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자라가 든 봉투도 함께 올려두었다.“아침부터 술 마시는 걸 좋아하시나 보죠?”성준은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며 물었다.“네? 아니요, 안 마셨는데요...”“그래요? 그런데 왜 정신이 덜 든 사람처럼 보여요?”임설희는 눈을 한두 번 깜빡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들어도 이건 명백한 비꼼이었다.“성 대표님, 저희 두 회사는 충분히 협력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유 비서, 손님을 보내드리세요.”성준은 그녀에게 제대로 된 말할 기회조차 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그러나 임설희는 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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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필요 없어요. 같이 가져가요.”성준의 얼굴에 순식간에 그늘이 드리워졌다.“한의사 선생님이 대표님 몸보신하라고 챙겨주신 거예요. 제가 뭐 정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이걸 굳이 제가 들고 갈 이유는 없잖아요.”임설희의 말에 성준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지금 나보고 한 말이야?’“어쨌든 보약 같은 건 많이 먹어두면 좋잖아요. 효과가 있든 없든 속는 셈 치고 한 번 드셔보세요.”그 말을 끝으로 성준이 폭발하기 직전이라는 걸 직감한 임설희는 잽싸게 자리를 떴다.엘리베이터를 타고 성종 그룹 건물을 빠져나오자 그녀는 참아왔던 웃음을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그대로 터뜨렸다.하지만 웃음도 잠시였다.유 비서에게 들은 내용을 가능한 한 빠르게 정리해 맞춤형 제안서로 다듬어야 했다.한편, 유지은은 엘리베이터 앞까지 임설희를 배웅한 뒤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성준은 책상 앞에 앉아 위에 놓인 두 개의 쇼핑백을 번갈아 바라보며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하나는 셔츠가 든 쇼핑백이었고 다른 하나는 협력 제안서가 담겼다는 서류봉투였다.“임 부장이 놓고 간 협력 제안서, 프로젝트팀에 넘겨서 검토시킬까요?”유 비서가 조심스레 묻자 성준은 몇 초간 침묵하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일단 열어보세요.”유 비서는 조심스레 봉투를 열었고 곧 당황스러운 목소리를 냈다.“이건, 백지네요?”그 안에는 아무런 내용도 적히지 않은 빈 종이뿐이었다.“역시나 그 제안서는 그냥 미끼였던 거예요. 우리를 떠보려고 일부러 가져온 거죠.”“우리를 떠봤다고요?”유지은의 눈이 동그래졌다.성준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금원이 우리와 단 한 번도 제대로 협상한 적이 없다는 건 그쪽이 우리가 뭘 원하고 뭘 꺼리는지 전혀 모른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백지 제안서를 핑계 삼아 우리가 왜 금원과 협상을 꺼리는지, 그 이유를 알아내려 한 거죠. 그리고 그 모든 걸 유 비서가 직접 떠먹여 줬고요.”그제야 유지은은 상황을 깨닫고는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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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차에 돌아온 임설희는 여전히 멍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유리창 너머로 병원 건물이 희미하게 번져 보였다. 빗물에 뿌연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녀의 의식은 어느덧 3년 전 그날로 되돌아가 있었다.“너희 엄마가 너 찾으러 갔어. 그런데, 네 엄마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는 게 말이 돼?”그날, 그녀는 교통사고 후 며칠간 의식을 잃었다가 간신히 회복한 직후였다. 마침 걸려온 의붓아버지 전화를 받고서야 정신이 들었고 급히 핸드폰을 뒤적였다.그제야 확인한 문자 한 통에는 엄마가 자신을 만나러 운성에 왔다는 내용이었고 약속 장소는 어릴 적 자신이 늘 엄마 손을 끌고 뛰놀던 그 동네 공원이었다.“벌써 5일이나 지났잖아...”다급히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신호는 닿지 않았고 임설희는 전화를 끊자마자 침대에서 일어나 병원 복도로 뛰쳐나갔다.“환자분! 방금 의식 회복하신 데다 상처도 아물지 않았어요! 침대에서 일어나시면 안 돼요! 병실을 벗어나시는 건 더더욱 위험해요!”간호사의 다급한 외침이 귀를 스쳤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택시에 올라탔다.공원은 그리 크지 않았다.몇 걸음만 들어가자 쏟아지는 장대비 속에서 긴 벤치에 앉아 미동도 없는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그렇게 비가 퍼붓는데 왜 엄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을까...’“엄마! 이렇게 비가 오는데 왜 여기 계세요? 아무 데도 안 가시고...”“전화가 안 됐다면 그냥 집에 가셨어야죠. 전 나중에 꼭 찾아뵌다고 했잖아요!”“혹시 제가 아직도 엄마한테 화가 난 줄 알았어요?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그냥 제가 집에 돌아갈 용기가 없었어요...”“엄마, 제발 눈 좀 떠봐요. 절 좀 봐요... 엄마!”끼익!현실로 돌아온 임설희는 급히 차를 세우고는 조수석에 있던 우산을 움켜쥐고 차 문을 열었다.그리고 그날처럼 그녀는 비를 맞으며 다시 엄마를 향해 달려갔다.엄마는 아직 거기 있을 것만 같았고 아직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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