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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화

“나한테 손대기만 해봐. 바로 이혼이야.”임설희의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흔들림 없었고 그 차가운 평온함이 오히려 송시운의 분노를 더욱 자극했다.몇 번이나 손이 들썩였지만 그녀가 던진 단 한마디에 그는 끝내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다.“임설희... 내가 너한테 너무 잘해줬나 봐. 그러니까 네 멋대로 말도 안 되는 짓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해왔겠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달라. 내가 어디까지 참을 수 있는지 똑똑히 보여줄게.”“내가 시운 씨를 배신했다고? 그럼 당신은? 바람피운 건 뭐라고 설명할 건데?”“그거랑... 그거랑은 다르지!”“어떻게 다른데?”“우선 난 바람피운 적 없어. 게다가 설령 다른 여자랑 뭔가 있었다 해도 난 남자잖아. 남자와 여자는 본질적으로 달라. 그리고 무엇보다 난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어. 넌 날 사랑한다면 내 입장을 이해해야지.”“하.”그의 궤변은 시대를 수백 년은 거슬러 올라가야 들을 법한 소리였다.“개소리도 이런 개소리가 없네.”임설희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송시운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이를 악물었다.“좋아. 어디 한번 보자. 내가 지금 당장 서 부장 그 자식 찾아가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주지!”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그대로 문을 박차고 나가버렸다.최현숙과 박연우는 그 말을 듣자마자 놀라서 급히 뒤를 쫓았다.“얘야, 금원 프로젝트는 우리 회사의 생명줄이야! 이런 일로 협력 끊기면 어떡해!”“시운 씨, 지금은 감정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해야 해요!”“아들아, 가봤자 소용없어. 분명 설희가 먼저 꼬드긴 걸 거야!”셋이 모두 나가고 나서야 거실엔 다시 적막이 흘렀다.임설희는 난장판이 된 집안을 천천히 둘러보았다.처음엔 어이가 없었지만 곧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불륜남이 내연녀의 집을 박살 내고 갔네? 이건 뭐, 누가 손해 본 건지도 모르겠는걸. 내 속이야 시원하다만...’얼마 후 박연우가 먼저 돌아왔다.엉망이 된 거실을 본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으며 입을 떼었다.“이게 뭐야...”“시운 씨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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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최현숙이 준비한 건 단순한 파티용 의상이 아니었다.그녀는 온 정성을 다해 온갖 드레스를 꺼내놓고 고심 끝에 순백의 롱드레스를 골랐다.가볍고 은은하게 퍼지는 소재가 바람결에 따라 살랑였고 허리에는 같은 색감의 커다란 꽃장식이 달려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한층 더 돋보이게 했다.정제된 우아함 속에 소녀다운 청순함까지 담긴, 그야말로 이상적인 조합이었다.여기에 전문 스타일리스트까지 동원되어 손질한 가는 웨이브 머릿결은 어깨 위로 부드럽게 흘러내렸고 목에는 진주 목걸이가 정갈하게 자리 잡았다.“넌 이렇게 예쁜데 왜 평소에 그렇게 안 꾸며? 항상 쟤한테 밀리는 이유가 그거야.”최현숙은 감탄을 연신 터뜨리며 박연우의 손을 꼭 잡았다.그 말에 가만히 있던 임설희는 속으로 조용히 혀를 찼다.‘이젠 가만히 있기만 해도 저런 식으로 화살이 날아오는구나.’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본 박연우는 얼굴을 붉히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시운 씨가 이런 스타일 좋아할까요?”“당연히 좋아하지!”둘은 모녀처럼 다정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를 칭찬하며 웃어댔다.임설희는 시계를 슬쩍 확인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향했다.옷장에서 와인빛 끈 드레스를 꺼내 입고는 긴 머리는 대충 하나로 틀어 올린 뒤 길이가 다른 다이아몬드 목걸이 두 줄을 겹쳐 걸었다.연한 메이크업까지 마친 그녀는 미련 없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마침 그때, 송시운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그녀를 본 순간, 그의 눈빛이 찰나 흔들렸다가 이내 얼굴에 분노가 다시 드리워졌다.“오늘 저녁 파티, 난 애초에 널 데려갈 생각 없었어.”임설희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리며 대꾸했다.“혼자라고 못 간다는 법 있어?”“허. 우림 건설 연말 파티야. 초대한 사람들 전부 운성에서 손꼽히는 인물들이라고. 나 없이 그 자리에 설 수 있을 것 같아?”그의 말투는 싸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 시운 씨가 데려가 줄래?”임설희가 일부러 도발하듯 묻자, 송시운의 눈빛이 매서워졌다.“꿈도 꾸지 마. 넌 다른 남자랑 바람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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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어쨌든 우리 송씨 가문은 이런 며느리는 필요 없어! 시운아, 너도 이 여자랑 이혼할 생각 없으면 당장 집에서 나가!”최현숙은 마지막 일갈을 날리듯 외친 뒤, 박연우의 손을 꽉 잡아끌며 현관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문턱에 다다랐을 무렵, 무언가 떠올랐는지 그녀는 다시 돌아서서 날 선 목소리로 덧붙였다.“그리고 이 집, 비록 임대지만 절대 네가 저 여자한테 월세 대신 내주는 건 용납 못 해! 아이도 하나 못 낳으면서 이런 좋은 집에 살 자격이 어딨어?”그 말을 듣는 순간, 임설희는 더는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언성을 높였다.“여긴 내 집이야. 당신들이야말로 전부 다 꺼져!”심장이 쿵 내려앉고 머릿속은 잠깐 새하얘졌다가 이내 피가 거꾸로 솟는 듯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았다.“송시운! 당신 엄마가 그렇게 이혼하라잖아? 우리 당장 이혼해!”그녀의 외침에 송시운의 안색이 돌처럼 굳었다. 잿빛이 깃든 눈동자에는 냉혹한 기색만이 가득했다.“정말 내가 너랑 이혼 못 할 줄 알았어?”“그럴 리 없지. 딴 여자까지 있으니까 뭐가 아쉽겠어?”“임설희!”“송시운, 네가 먼저 날 배신했어. 내가 다른 남자를 만나든 말든 시작은 너였다고!”송시운의 눈이 이글거렸다.그 속엔 분노와 증오, 모욕당한 남자의 자존심이 마구 뒤섞여 있었다.“임설희, 넌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야. 하지만 난 절대 널 용서하지 않아. 우리 사이 이걸로 끝이야.”“그 말 내가 먼저 하려고 했어.”임설희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이걸로 끝내. 송시운, 오늘부로 너랑은 완전히 끝이야. 다시는 절대 엮이지 말자.”그 순간, 송시운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이건 그가 예상하지 못한 결말이었다.하지만 그는 남자였고 자존심이 있었다.무엇보다 이 여자가 다른 남자를 입에 올리며 자신을 모욕하는 그 모습은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좋아. 완전히 끝내자.”그렇게 말한 그는 더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임설희는 분노에 휩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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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송씨 가문 식구들은 단숨에 찬밥 신세가 되어버렸고 누가 봐도 외면당한 분위기 속에서 네 사람은 잔뜩 굳은 얼굴로 행사장 안으로 먼저 들어갔다.직원의 안내를 받아 중간쯤 되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은 그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그리고 곧, 하나같이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한 방향으로 쏠려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 시선의 끝에는 맨 앞자리에 앉은 한 남자가 있었다.강씨 가문의 어르신인 강무헌 옆에 자리한 그는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고 뒷모습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저 사내가 성씨 가문의 그분이지?”송영석이 눈을 번뜩이며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송시운도 고개를 끄덕였다.“아마 맞을 겁니다.”강씨 가문의 연회에서 어르신 옆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건 그 자체로 이미 다른 손님들과는 격이 다르다는 뜻이었다.“얼마 전에 해외에서 막 귀국했다더라. 성씨 가문도 숨 돌릴 틈도 없이 그를 최고 경영진 자리에 앉혔으니 그 의미가 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원래 우리랑 성씨 가문은 접점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새로 실권을 쥔 사람이 생겼으니 이 기회에 관계를 만들어야 해. 강도진을 통해 먼저 발판을 마련해 봐.”송영석의 말에 송시운은 어딘가 못마땅하다는 듯 입꼬리를 삐죽였다.“혹시 또 그저 그런 재벌 2세 아니겠어요? 능력은 없고 돈만 많은 그런 스타일이면 어쩌시려고요.”“그런 놈이면 더 좋지. 잘만 구슬리면 금방 형님 동생 하지 않겠냐. 넌 일단 어울리기만 해도 반은 성공한 거야.”송시운은 여전히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살짝 저었다.“근데 저랑 도진이는 고등학교 때도 그리 친하지 않았어요. 괜히...”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강도진이 환한 얼굴로 누군가를 이끌며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그 옆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임설희였다.그 광경을 본 순간, 최현숙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콧방귀부터 뀌었다.“사람들이 저 여자 아직도 진우 그룹에 있는 줄 아는 거겠지. 분명 우리 체면 봐서 들여보낸 걸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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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어르신께서 왜 그렇게 급하게 나왔냐고 묻는데요.”성준이 미간을 살짝 좁히며 말했다.“네? 그게 무슨...”임설희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되묻자 성준은 짧게 한숨을 쉬며 그녀를 바라봤다.“당신 뒤에 지퍼가 안 올라가 있대요.”그 말에 임설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당황한 그녀는 급히 손을 뒤로 뻗어 지퍼를 올리려 했지만 원래도 손이 닿지 않아 제대로 잠그지 못했던 부분이라 아무리 애를 써도 지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망설이던 순간, 성준이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돌아섰다.“뒤돌아봐요.”임설희는 순간 얼어붙었다가 그 말의 뜻을 늦게야 알아차리고 잠시 망설였다.거절하고 싶었지만 오늘 이 자리에 온 목적은 결국 그에게 조금이라도 다가가기 위한 것이었고 그의 호의를 뿌리치는 건 처음부터 세운 계획과 어긋나는 일이었다.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그 순간, 주위 시선이 한층 더 뜨거워졌지만 임설희는 아무렇지 않은 척 허리를 곧게 펴고 미소까지 띠며 최대한 당당한 태도를 유지했다.처음에는 그저 지퍼만 올리면 될 줄 알았다.하지만 드레스 안감이 걸렸는지 성준은 몇 번이나 손을 움직였지만 지퍼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멈춰 있었다.결국 그는 등을 의자에 기대고 있던 자세에서 앞으로 몸을 숙여 그녀의 허리를 가까이 붙잡고 지퍼를 조심스레 다시 손에 쥐었다.손끝이 몇 번이고 그녀의 맨살을 스쳤고 그때마다 피부가 움찔하며 속이 저릿하게 조여들었다.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의 숨결과 손길이 지나치게 신경 쓰였다.그리고 마침내, ‘딸깍’ 지퍼가 올라갔다.“앞으로 이런 옷은 입지 마요.”성준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내뱉었다.“알겠어요...”임설희는 작게 중얼거리며 대답했지만 곧 정신이 번쩍 들었다.‘근데 이 남자, 지금 무슨 자격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지?’물론 그런 생각을 입 밖에 꺼낼 용기는 없었다.“성 대표님, 저희 참 인연이 깊네요. 또 이렇게 뵙게 됐어요.”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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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임설희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성준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만 흩어지기만 하면 망설이지 않고 본론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듣든 말든 상관없어. 한마디라도 해야지.’그런데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꽉 잡았다.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송시운이었다.“뒤로 가서 앉아. 여기서 더 추한 꼴 보이지 말고.”그는 허리를 굽혀 낮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임설희는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이 남자는 도대체 무슨 자격으로 이런 말을 하는 거야?’“내 자리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게 뭐가 그렇게 추한 꼴이야?”“네가 여기 앉아 있는 건 송씨 가문 덕분이지. 아니었으면 이런 자리에 끼지도 못했어.”“그래? 그렇다면 당신네 집안 사람들은 왜 저 뒤쪽에 앉아 있지? 말이 된다고 생각해?”그 말에 송시운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그러니까 어서 일어나. 여긴 원래 내 자리였어.”임설희는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송시운, 여기 사람 많은 거 안 보여? 나 당신이랑 유치하게 싸우고 싶지 않아.”오늘은 감정에 휘둘릴 수 없는 날이었다. 그녀에겐 더 중요한 목적이 있었고 이따위 유치한 말다툼에 에너지를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오히려 그녀의 팔을 억지로 붙잡아 끌어내리려 했다.그 순간, 임설희는 단호하게 팔꿈치로 그의 팔을 밀쳐냈고 거칠게 엉킨 팔에서 몸을 빼내며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임설희!”그가 낮게 으르렁거리듯 부르며 다시 손을 뻗으려는 순간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성준이 고개를 돌렸다.표정은 거의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무표정 속에 담긴 눈빛은 서늘하고 냉정했다.그 차디찬 눈과 마주한 송시운은 순간 움찔했고 본능적으로 손을 거두었다.“송 대표님, 왜 거기 서 계세요?”멀리서 강도진이 환한 얼굴로 다가와 말을 붙였다.“자리 찾기 어려우셨나 봐요? 여기 아닌 거 아시죠? 저쪽이에요.”그는 자연스럽게 송시운의 어깨를 밀며 뒤쪽으로 몸을 돌렸다.송시운은 억지로 웃으며 중얼거렸다.“임설희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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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임설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혀 판단이 쉽지 않았다.그런데 그녀가 머뭇거리는 사이, 성준이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표정은 여전히 담담했지만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들려 있었고 임설희는 그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지금이 아니면 더는 기회가 없을지도 몰라.’마음을 굳게 다잡은 그녀는 와인잔 두 개를 든 채 그에게로 다가갔다.“성 대표님, 오늘... 오늘 날씨 참 좋죠. 달도 밝고 별도 드문드문하고...”말을 꺼내자마자 임설희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대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얼굴을 감싸 쥐고 싶은 심정이었다.성준은 여전히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다만 그녀의 손에 들린 두 잔의 술을 보는 순간, 그의 얼굴빛이 살짝 어두워졌다.임설희는 당황한 듯 급히 말했다.“제 거예요! 이거 두 잔 다 제가 마시려고요!”그리고 속으로 간절히 외쳤다.‘제발 오해하지 마요. 꼬시러 온 게 아니라 진짜 일 얘기하러 온 거라고!’하지만 성준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는 다시 멀리 시선을 고정했다.말수는 적었지만 그의 표정은 이상할 만큼 차분했다.그의 희고 단정한 얼굴선은 밤하늘 아래 달빛처럼 은은하게 빛났고 멀리서 비추는 조명이 그의 옆얼굴에 아련한 빛무리를 그려냈다.임설희도 그 시선을 따라가 봤다.성준이 바라보고 있던 대형 LED 광고판에는 지금 가장 핫한 배우이자 가수, 도예지의 얼굴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아, 맞다. 도예지 열혈 팬이라 했지.’그녀는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했다.무뚝뚝한 성준이 아이돌 팬이라니 그 모습이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저도 도예지 좋아해요. 얼마 전에 주연한 드라마 봤는데 거기서 맡은 공주 역할이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성 대표님도 보셨어요?”혹시 연예인 이야기라면 반응이 있을까 기대했지만 그는 여전히 침묵을 지킨 채 광고판만 응시하고 있었다.임설희는 속으로 긴 숨을 토했다.‘이렇게까지 무반응이면 도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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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당연히 아니죠! 저도 어쩌다 끈이 끊어진 건지 모르겠어요...”임설희는 황급히 해명하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랐다.아까 연회장에서 송시운이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잡아끌던 순간, 몸을 뿌리치며 몇 차례 밀쳐냈던 그 사이 어깨끈이 헐거워졌던 게 분명했다.그러다 마침 성준 앞에서 ‘운 나쁘게’ 끊어져 버린 것이다.“이 수법 사실 그리 새롭진 않은데.”성준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그래서 지금 제가 일부러 그랬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성 대표님을 유혹하려고?”임설희는 억울함에 목소리가 날카롭게 솟구쳤다.성준은 그녀가 두 손으로 가리고 있는 곳을 슬쩍 아래로 내려다보며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고 조롱이 살짝 섞인 미소에 임설희의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방금... 혹시, 봤어요?”“나 보라고 그런 거 아니었어?”“아니거든요!”“정말 그래요?”그의 느긋하면서도 비꼬는 말투에 임설희는 점점 열이 뻗쳤다.“봤으면 봤다고 솔직히 말하세요! 저... 나름대로 꽤 괜찮았을 텐데요?”성준은 어이없다는 듯 피식 웃었다.“그럼 내가 제대로 못 본 모양이네요.”“뭐라고요?”“지금이라도 제대로 볼 기회 줄래요?”“짐승 같으니라고!”임설희는 눈까지 벌게진 얼굴로 그를 노려보았다.하지만 성준은 낮게 웃었다.목 깊은 데서 울리는 듯한 그 웃음은 부드러우면서도 묘하게 심장을 간질였다.‘이 남자 그냥 잘생긴 게 전부인 줄 알았더니 위험하잖아.’정신을 붙잡고 고개를 숙여 어깨끈을 다시 확인하려던 찰나 성준과 거리가 너무 가까웠는지 그녀의 이마가 그의 턱에 툭하고 부딪혔다.놀란 그녀는 황급히 몸을 뒤로 물리려다 발뒤꿈치가 무언가에 걸렸고 비틀거리며 성준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그 순간, 반대쪽 어깨끈마저 스르르 흘러내렸다.“이래도, 우연이라고 할 수 있어요?”이제 와서 어떤 변명을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임설희는 체념한 듯 중얼거렸다.“그냥 고개 좀 돌려주세요.”그러나 애초에 돌릴 필요도 없었다.키 차이 덕분에 그는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자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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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조건이요?”임설희는 무심결에 고개를 숙여 옷매무새를 살폈다. 이미 단단히 여며진 가슴팍을 보며 혹시 그가 엉뚱한 상상을 하는 건 아닌지 괜한 경계심이 피어올랐다.‘아니, 그럴 리 없지. 자기 입으로 그쪽 문제가 있다고 했잖아.’‘하지만 그렇다고 흑심을 못 품는다는 보장도 없지.’“내 조건은 오늘 밤, 술은 절대 마시지 않는 거예요.”임설희는 눈을 깜빡였다.‘술을 마시지 말라고? 그게 조건이라고?’어리둥절한 눈빛을 보내기도 전에 성준은 강도진에게 불려 조용히 자리를 떴다.“진짜, 뭔 소리야 도대체.”임설희는 입을 삐죽이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다 곧 연회장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서준호가 그녀를 알아보고 다가왔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눈 뒤 나란히 휴게실 쪽으로 향했다.한편, 임설희를 찾기 위해 연회장을 두리번거리던 박연우는 그녀가 서준호와 함께 안쪽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눈빛에 흥분이 번졌다. 그녀는 곧장 최현숙과 송시운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두 사람 모두 눈을 부릅뜨며 분노를 터뜨렸다.“임설희, 도대체 제정신이야?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도 모르고 우리 눈앞에서 딴 남자랑 바람을 피우다니!”최현숙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고 송시운 역시 굳은 얼굴로 말없이 안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아들, 지금은 참아야 해. 걔야 창피함도 없겠지만 우린 체면이 있잖니.”“시운 씨, 어머님 말씀대로예요. 게다가 지금은 금원 그룹과의 협력이 걸려 있는 상황이에요. 이 자리에서 괜히 소란 피우면 곤란해요.”최현숙은 마치 그를 말리는 척했지만 박연우의 속내는 전혀 달랐다. 그녀는 송시운이 임설희를 망신 주고 두 사람이 이대로 완전히 끝장나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러나 이미 송시운은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성은 분노에 타들어 갔고 지금 그의 목적은 단 하나, 임설희와 그 남자를 현장에서 붙잡아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는 것이었다.휴게실 문 앞까지 거칠게 다가간 그는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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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마음을 굳힌 순간, 박연우의 태도는 한층 당당해졌다.“설희야, 네가 이렇게까지 우릴 속여놓고 정말 양심의 가책도 없는 거야?”그 말에 최현숙의 눈빛도 날카롭게 반짝였고 이내 입꼬리를 비웃듯 올리며 말했다.“우릴 바보로 아는 거야? 이렇게 쉽게 속을 줄 알았어?”말을 마친 최현숙은 송시운의 팔꿈치를 툭 치며 몰아세웠다.“너는 저 말을 믿는 거야?”송시운은 임설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그녀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길 바라는 눈빛으로 바라봤다.하지만 임설희는 테이블 위의 와인잔을 천천히 흔들어 보일 뿐, 입을 열 기색조차 없었고 마치 굳이 해명할 가치조차 없다는 듯, 그 여유로운 태도에 송시운은 끝내 울분을 터뜨렸다.“임설희, 우리 사이가 그 정도밖에 안 됐어? 단 한마디 해명할 가치도 없다는 거야?”임설희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기울였다.“응. 그 정도밖에 안 돼.”“역시 바람피운 게 맞...”“잠깐만요, 송 대표님.”서준호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당신이 임설희 씨에게 불륜이라고 누명 씌우는 순간, 저한테도 같은 모욕을 씌우는 겁니다. 임설희 씨가 어떻든 저는 절대로 그걸 넘길 수 없습니다.”상황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자 박연우는 서둘러 분위기를 바꾸려 들었다.“서 부장님, 그냥 잠깐 흔들렸을 뿐이라는 걸 알아요. 저희도 이해해요. 남자라서 더욱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우셨겠죠. 게다가 임설희가 먼저 꼬신 것도 알고 있어요.”임설희를 확실히 '불륜녀'로 몰고 가고 싶었지만 금원 그룹 프로젝트 때문에 서준호를 적으로 돌릴 수는 없었다.최현숙도 얼른 거들었다.“맞아요. 분명 저 낯짝 두꺼운 애가 서 부장님을 꼬드긴 거겠죠. 그러니까...”그때였다.“풋.”조용한 휴게실 안에서 누군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모두의 시선이 향한 곳엔, 우아한 기품을 지닌 서준호의 아내, 진서은이 앉아 있었다.“정말 터진 입들이라고 잘도 나불대네.”“당신이 뭔데 나서요! 상관도 없는 사람이 끼어들지 마세요!”박연우가 다급히 소리쳤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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