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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비밀의 결혼: Chapter 41 - Chapter 50

100 Chapters

제41화

쏟아지는 비는 냉기를 몰고 왔다.임설희는 온몸이 으슬으슬 떨릴 정도로 추웠고, 그 추위를 견디기 위해선 따뜻한 어딘가가 간절했다.그래서였을까, 정신이 들었을 땐 이미 차를 몰아 한때는 진심을 집이라 여겼던 송씨 가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하지만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창문 너머로 환하게 불이 켜진 실내가 눈에 들어왔다.그 안에는 그녀가 한때 가족이라 믿었던 사람들이 식탁을 둘러싸고 즐겁게 식사 중이었고 그들의 웃음의 중심에는 한 장의 초음파 사진이 있었다.늘 무표정하던 송영석은 그 사진을 들여다보며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었고 최현숙은 손가락으로 사진 속의 작은 점을 짚으며 말했다.“여기, 여기야. 우리 송씨 가문의 금쪽같은 손자.”송시운 역시 말할 것도 없이 들떠 있었다.평소 집에서는 술 한 모금도 안 하던 그는 술을 따르더니 가득 채운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그러고는 이내 박연우를 끌어안고 연신 중얼거렸다.“고마워. 정말... 고마워.”한편, 박연우는 임설희가 예전부터 앉아 왔던 그 자리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앉아 있었다.그 모든 장면을 바라보는 임설희의 입가에 조용한 냉소가 번졌다.‘이 집엔 더 이상 내 자리는 없어. 아니 애초부터 없었던 건지도...’그들은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처참한 방식으로 속였다.그녀는 복수하고 싶었고 그들의 웃음을 짓밟아버리고 싶었다.하지만 단 한 발짝 내디딘 순간, 그대로 비에 젖은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쏟아지는 빗줄기가 몸을 짓누르듯 떨어졌고 실내에서 울려 나오는 웃음소리조차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몸을 일으킬 힘도, 분노를 외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남은 건 그저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본능적인 감정뿐이었고 임설희는 다시 차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다.빗속의 도로를 달렸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거리는 젖어 있었고 다른 차들은 방향을 잃지 않은 채 제각기 제 집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에겐 그런 집이 없었다.그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여러 차례 울린 후에야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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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김영수는 이혼 후 다시는 재혼하지 않았고, 외아들은 전처에게 갔으니 집에는 그 혼자뿐이었다. 심지어 사촌이나 먼 친척 같은 가족도 일절 없었다.다만 넓은 별장에는 사람이 없을 뿐, 여러 명의 가정부가 집을 지키고 있었다.임설희는 그중 젊은 여직원에게 이끌려 2층 안방으로 향했다.그런데 방에 들어서는 순간,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아무리 봐도 이건 분명 남자의 방인데...’“저 그냥 게스트 방에서 잘게요.”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가정부 이안이 눈을 깜박이며 고개를 갸웃했다.“여긴 도련님의 방이에요. 그러니까 당연히 사모님의 방이기도 하죠.”“저, 그쪽 도련님하고 전혀 안 친해요.”안 친한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 정식으로 얼굴을 본 적도 없었다.이안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앞으로 친해지면 되죠.”“나 좀 불편해서 그래요. 이해하죠?”“아니요...”임설희는 말문이 막혔다.‘김 회장이나 가정부들이 다 정상은 아닌 것 같네...’하지만 지금은 춥고 배도 고파서 더 따지고 들 기운도 없었다. 결국 옷을 좀 찾아달라고 부탁한 뒤 욕실로 들어갔다.따뜻한 물줄기가 머리 위로 쏟아지자, 그녀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모든 게 지나간 일이었고 후회한들 소용없는 과거였다.‘지나간 일들은 잊어, 잊으면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이 되겠지.’하지만 송씨 가문의 세 사람 그리고 박연우, 그들만큼은 결코 가만두지 않을 작정이었다.욕실엔 거의 모든 용품이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대부분이 남성용이었고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새 제품들이었다.아까 들렀던 안방처럼 욕실도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먼지 하나 없이 잘 관리된 상태였다.‘아마 김 회장은 아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오길 바랐던 모양이네.’.‘그래서 방도 준비해 두고 필요한 것도 모두 갖춰줬는데 그 아들은 결국 한번도 이곳에 머문 적이 없었던 거겠지...’따뜻한 샤워 덕에 그녀는 조금씩 살아나는 기분이었다.수건을 두른 채 욕실에서 나왔을 때, 침대 위엔 남성용 반팔 운동복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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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누가 도망치래! 당장 내 손 안으로 와!”김영수는 소파 등받이 위에서 여전히 나비를 찾으며 허공에 손을 휘젓는 임설희가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지기라도 할까 봐 초조한 눈빛으로 아들을 불렀다.“야, 빨리 받아줘! 떨어지겠어!”성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손목시계를 흘깃 확인했다.늦은 새벽이 아니었다면 그는 아마 경찰에 먼저 신고했을지도 모른다.“꺄악!”그 순간, 임설희의 발이 허공을 딛었고 그녀의 몸이 앞으로 기우뚱 넘어졌다.성준은 그녀가 대리석 계단 모서리에 부딪히기라도 할까 봐 본능적으로 달려가 잡으려 했고 그 순간 손끝에 닿은 예상치 못한 부드러운 감촉에 움찔하며 손을 거둬들였다.그러는 사이, 임설희의 몸은 그대로 그의 품에 안기듯 쓰러졌고 하필 그녀의 입술이 정확히 그의 입술에 닿았다.달큰한 술 냄새가 그대로 입안으로 밀려들었고 성준의 표정은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그는 이를 악문 채 그녀를 떼어내려 했지만 임설희는 찰싹 달라붙어 고개까지 그의 어깨에 포개며 흐느적거리며 중얼거렸다.“음, 냄새 좋다...”성준은 이를 악문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려 김영수를 노려보았다.노인은 민망한 얼굴로 헛기침을 하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려 했다.“그... 그러니까 네가 안아서 위층에 좀 데려다줘. 나는 먼저 잘게!”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도망치듯 자리를 떴다.“앞으로 손주 보시려면 제발 이 여자 술 좀 못 마시게 하세요.”성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등을 돌렸다.그러자 김영수는 오히려 태연하게 받아쳤다.“넌 걔랑 결혼 안 한다며? 안 한다면서 왜 술 마시는 것까지 간섭이야?”성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되물었다.“다른 후보라도 있으세요?”“없어. 내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사람은 임설희 하나야.”“그럼 제게 선택권이란 건 있긴 한 건가요?”“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내 생각 안 바뀐다.”성준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그럼 술은 마시게 하지 마세요. 술 마시게 두면 석 달은커녕 삼 년이 가도 손주 못 봅니다.”그 말에 김영수는 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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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다음 날, 거의 정오가 다 되어서야 임설희는 서서히 술기운에서 깨어났다.그러다 곧바로 어젯밤의 기억이 파도처럼 밀려들자 그녀는 얼굴을 이불에 파묻은 채 한동안 꿈쩍도 하지 못했고 결국 반 시간쯤 지나서야 얼굴을 폭 감싸 쥔 채 김씨 가문의 대저택을 조심스레 빠져나왔다.술에 취해 모든 기억이 선명한 건 아니었지만 대강의 흐름은 떠올릴 수 있었다.예컨대 나비를 잡겠다고 소파 위를 뛰어다녔던 일은 생생했고 그 후 누군가 그녀를 안아 2층으로 옮겼던 기억도 어렴풋이 있었다.“분명히 잘생긴 남자였는데...”물론 그 ‘잘생긴 남자’라는 기억은 그녀가 지어낸 환상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김씨 가문 사람들 중 외모가 ‘잘생김’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었으니까.그녀가 다시금 머릿속으로 그 ‘훈남’의 얼굴을 떠올려보려던 찰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전화는 서준호였다.“박연우가 금원에 막 다녀갔어요.”“그 여자가 왜 거길...”“설계안 제출하러 왔답니다.”예상보다 빠른 소식에 임설희는 다소 놀랐다.“벌써요?”“직접 와서 보면 왜 그렇게 빨리 냈는지 알 겁니다.”임설희는 곧바로 금원으로 향했고 서준호의 사무실 문을 밀고 들어섰다.서준호가 건넨 설계안을 몇 장 넘겨보는 순간, 그녀는 저절로 미간을 찌푸렸다.“박연우가 자신 있게 떠들던 새로운 콘셉트가 고작 이 정도였어?”클라이언트의 요구사항은 물론 현장 조사 결과나 현실적인 제약까지 모조리 무시한 채, 그저 자기 상상력에만 의존해 그려낸 설계안이었다.서준호가 냉소 어린 말투로 덧붙였다.“애초에 진우 그룹이 이 설계안 들고 우리한테 왔더라면 반년이나 고생할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그날 바로 ‘협업 불가’ 통보했을 테니까요. 디자인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회사랑은 우린 앞으로 절대 함께 일하지 않을 겁니다.”그 말에 임설희조차 얼굴이 뜨거워질 지경이었다.그녀는 손에 쥐고 있던 설계안을 책상 위에 툭 던졌다.“지금 당장 진우 그룹에 연락하세요. 이 설계안의 수준을 고려하면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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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박연우가 어느 정도 실력인지 임설희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비서에게 가볍게 지시를 내렸다.“소문 좀 흘려요. 다른 인테리어 회사들이 먼저 찾아오게.”아직 그녀가 회사를 떠나기도 전에, 진우 그룹 쪽 사람들은 벌써부터 서준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임설희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막 차에 오르려던 순간, 맞은편에서 한 대의 차량이 멈춰 섰다. 운전석에서 내린 송시운의 얼굴은 잔뜩 구겨져 있었고 조수석에서 따라 내린 박연우는 불안한 표정으로 허둥대고 있었다.“아버지가 그렇게 중요한 프로젝트를 너한테 맡긴 건, 너를 믿었기 때문이야. 그런데 이걸 망쳐?”송시운은 참았던 분노를 더 이상 억누르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박연우는 그의 말에 눈가가 붉어졌고 억울한 감정을 억누르며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난 내 디자인에 정말 자신 있었어. 왜 그쪽이 불만족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가. 어쩌면 그들이 괜히 트집 잡은 걸 수도...”“금원 쪽은 이미 시공업체 교체하겠다고 통보했어. 네 눈엔 그것도 그냥 트집이야?”박연우는 그 자리에서 움찔하며 고개를 떨궜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두 사람은 임설희의 차가 바로 옆에 있는 것도 모른 채 서둘러 엘리베이터로 향했다.그녀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조용히 시동을 걸었고 금원을 빠져나와 자신이 좋아하는 조용한 카페로 향했다.일에 치여 그동안 제대로 마셔보지도 못했던 커피를 오늘은 여유롭게 즐길 수 있었고 게다가 기분도 완벽했다.지금쯤 송씨 가문에서 어떤 난리가 벌어지고 있을지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그렇게 느긋한 오후를 보내고 막 자리를 정리하려던 찰나, 송시운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설희야, 어디야? 당장 집으로 와. 큰일 났어!”“집이라니? 나한테 집이 있긴 했나...”“지금 그런 말장난할 때가 아니야. 제발, 집에 좀 와 줘.”“나 지금 바빠.”“바쁘다니, 뭐가 그렇게 바빠?”“휴가 가려고 준비 중이거든.”순간, 전화기 너머 송시운의 숨소리는 거칠었다. 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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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돌아오는 길에 얘기 들었지? 금원 프로젝트 말인데...”“그 빨간 속옷 얘기요?”“뭐? 아니 내가 말하는 건...”“그거 어떻게 해명할 건지 생각해 보셨냐는 말이에요.”두 번이나 말을 끊긴 송영석은 한숨을 내뱉었다.하지만 오늘 임설희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그 문제 역시 피해 갈 수 없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 빨간 속옷만 생각만 하면 속이 울렁거렸다. 그걸 닭곰탕에 처박은 장면이 자꾸 떠올라 기분이 더러웠고, 그게 다름 아닌 박연우의 것이란 걸 떠올리자 그녀를 보는 것조차 역겨워졌다.그 짧은 눈빛에 담긴 노골적인 경멸을 읽어낸 박연우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꽉 쥐었다.“설희야, 지금은 그 얘기 할 때가 아니야. 회사가 큰일 났어...”“그럼 언제가 적당한데?”“지금 그걸 따지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바람피운 주제에 내가 너무하다고?”“나, 나 바람 안 피웠어!”“그럼 설명해 보라니까.”송시운은 도무지 할 말이 없었다.어이없고 억울한 그 상황 속에서, 그는 박연우를 노려보더니, 이내 뭔가를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설희야, 너 결혼식하고 싶어 했잖아. 우리 결혼식 올리자. 그럼 된 거지?”“결혼식?”임설희의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송씨 가문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건 곧 모든 사람 앞에서 그녀가 ‘공식적인’ 송시운의 아내로 인정받는다는 뜻이었다.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혼인신고는 위장된 것이었고 누군가 의심을 품고 조사라도 한다면 송시운은 법적으로 중혼죄에 걸릴 수밖에 없다.송시운은 이 정도로 바보일 리 없었고 즉, 결혼식 얘기를 꺼낸 순간 그는 이미 박연우와 이혼까지 염두에 둔 것이었다.그리고 그 사실을 누구보다 먼저 눈치챈 박연우의 표정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당연히 나도 결혼식은 원하지만...”그녀가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박연우가 얼굴이 굳은 채 차갑게 말했다.“설희야, 나 솔직히 말할게. 그 속옷, 내 거야. 나랑 시운 씨는...”“닥쳐.”임설희보다 먼저, 송시운이 날카롭게 그녀의 말을 끊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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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박연우는 모든 것을 폭로해 버리고 싶었지만 임설희는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이미 시작된 이 게임은 그녀가 질릴 때까지 누구도 끝내선 안 되는 것이었다.임설희는 송영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그럼, 전 뭘 하면 될까요?”그제야 송영석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막상 부탁할 일을 떠올리자 과연 임설희가 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스쳤다.하지만 달리 선택지도 없었다.“금원 측에서 지금 우리와의 모든 소통을 끊었어. 전화도 안 받고 시운이가 직접 찾아가도 문전박대야.”“그래서 저더러 서 부장이랑 직접 연락하라는 말씀이세요?”“그동안 금원이랑 계속 연락해 온 게 너잖아. 서 부장이랑도 친분 있을 테고.”“친분이야 있죠.”“그러니까 네가 가서 우리한테 시간을 조금만 더 달라고 설득 좀 해 줘. 설계를 다시 손보고 그들이 만족할 때까지 고치겠으니 절대로 다른 회사에 넘기면 안 된다고 잘 부탁 좀 해 봐.”“그렇군요.”임설희는 천천히 생각을 굴리며 잠시 침묵했고 그 옆에서 최현숙이 송시운에게 작게 속삭였다.“쟤가 너희 아버지나 너만큼 체면이 있겠니? 내가 보기엔 글렀어.”송시운은 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일단 시켜보자고요.”“내가 괜히 저 애한테 사과했나 몰라. 분해서 죽겠어, 정말.”“엄마!”박연우 역시 눈을 가늘게 뜬 채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솔직히, 임설희가 이 일을 해낼 거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대체 뭘 믿고 그런 자신감이지?’임설희는 그들의 의심 섞인 시선을 모른 척한 채, 잠시 침묵을 즐기다 결국 휴대폰을 꺼내 서준호에게 전화를 걸었다.진우 그룹 사람들이 하루 종일 전화를 해도 받지 않던 그 번호는 그녀가 걸자 두 번 울리기도 전에 바로 연결됐다.“설계안 문제 때문인가요? 우리 쪽에서 수정 가능합니다.”“쓰레기라고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기회 한 번만 더 주세요. 네, 다시 해보겠습니다.”송씨 가문 사람들과 박연우가 숨을 죽인 채 지켜보는 가운데 임설희는 천천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서 부장이 진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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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송가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이미 김 회장의 아들과의 혼인을 받아들인 순간, 임설희는 송씨 가문에서 짐을 빼 나왔고, 그것은 분명한 의사 표현이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송시운에게는 더 이상 그녀의 몸에 손끝 하나 닿게 두지 않겠다는 단호한 결심이기도 했다.그날, 임설희는 결국 또다시 박연우의 집을 찾았다.그리고 그녀들을 데려다준 사람은 다름 아닌 송시운이었다.차 안에서 그가 툭 내뱉은 무심한 한마디가 묘하게 분위기를 바꾸기 시작했다.“나, 청해 골목 쪽 간장게장 먹고 싶어.”그 말에, 그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한 시간이 넘는 거리로 운전할 채비를 했다.임설희는 선심 쓰듯 박연우를 돌아보며 말했다.“연우야, 너도 먹을래?”박연우는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시운 씨도 하루 종일 일했는데 거기까지 가서 사 오라고 하는 건 좀 무리 아니야?”“그 말 듣고 보니 그러네.”임설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송시운을 바라봤다.“시운 씨도 피곤하지?”그러자 송시운은 그녀를 보며 슬며시 눈웃음을 지었다.“네가 원하기만 하면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따다 줄 수 있어.”“그래? 그럼 가서 별을 따줘.”“내가 거기 올라가면 다시는 못 내려오는데?”“그럼 매일 밤마다 하늘만 올려다보면 시운 씨를 볼 수 있겠네.”“하지만 난 별이 되고 싶지 않아. 그냥 너만 바라보는 충직한 하인이 되고 싶어.”두 사람의 이 눈꼴 사나운 ‘연애 놀이’에 박연우는 얼굴이 서서히 파래지더니 말도 없이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임설희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등 뒤로 장난스럽게 소리쳤다.“너는 간장게장 맛으로 사다 줄까?”“난 아무거나 다 돼.”곧 송시운은 길을 나섰고, 임설희는 집에 들어와 막 현관문을 닫으려던 찰나 박연우의 방 안에서 ‘쾅’ 하고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약 두 시간이 지난 후, 송시운은 숨을 헐떡이며 돌아왔다.혹시라도 임설희가 기다리다 잠들었을까 봐, 그는 전속력으로 달려온 것이었다.한편, 박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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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처음부터 우리 분명히 얘기했잖아.”“넌 송씨 가문의 며느리 자리를 원했고 나는 아이가 필요했지. 하지만 난 절대 설희랑 헤어질 생각 없다고 네가 그렇게 하겠다고 먼저 수긍했잖아.”“그렇지만... 그렇지만 난 정말 시운 씨를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서 친구를 배신하며 시운 씨를 위해 아이까지 갖기로 결심한 거야. 그런데 당신이 나한테 이렇게까지 할 줄은... 정말 너무해!”박연우가 참아왔던 울음을 결국 터뜨렸다.송시운은 잠시 미안한 기색을 보이며 표정을 누그러뜨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다가갔다.“됐어. 울지 마. 너 지금 울면 아이한테 안 좋잖아.”“그럼 아직도 나한테 화난 거야?”“네가 내 주머니에 그 속옷을 넣은 것도 모자라 설희한테 들키게 만든 거... 솔직히 아직도 생각하면 열이 받아.”“미안해. 나 진짜 반성하고 있어. 다시는 안 그럴게...”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박연우가 그를 껴안았다.송시운은 그녀를 가볍게 안아주고는 방으로 데려다주려 했지만 박연우는 그의 목을 끌어안은 채 조심스레 발끝을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안 돼, 설희가 보기라도 하면...”“이미 자고 있어. 못 봐.”“오늘은 너무 늦었어...”“시운 씨가 원하는 사람이 설희라는 거 알아. 근데 그 애가 지금 시운 씨를 거부하고 있잖아. 그러니까 내가 대신 풀어줄게.”“그건... 너한텐 너무 불공평한 일이야.”“아냐. 나도 시운 씨한테 안기고 싶었어. 나도 사랑받고 싶다고.”그 순간, 베란다 한편에 조용히 서 있던 임설희의 시야에 거실 바닥에서 서로를 끌어안고 엉키는 두 사람의 모습이 고스란히 들어왔다.침실로 들어가기도 전에 벌어진 이 광경은 감정도 체면도 모두 내던진 짐승 같은 집착의 행위였다.‘역겨워.’임설희는 입가를 틀어막고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억눌렀다.입으로는 ‘사랑’ 운운하면서도 눈앞에선 이렇게도 가볍게 몸을 섞는 남자와 친구의 약혼자를 가로채 아이까지 품고서 마치 자신이 상처 입은 피해자인 양 행동하는 여자를 바라보며 임설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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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이른 아침, 임설희가 박연우의 집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엔 이미 송시운과 최현숙이 와 있었다.두 사람 모두 얼굴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고 박연우는 실망한 기색으로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설희야, 넌... 넌 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니? 시운이 체면은 물론이고 우리 송씨 가문 체면은 어쩌라고 그래!”최현숙의 목소리는 거칠게 울려 퍼졌다. 그러나 임설희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되물었다.“제가 뭐 그렇게 부끄러운 짓이라도 했나요?”그때 송시운이 이를 악문 채 사진 몇 장을 거칠게 탁자 위에 내던졌다.“그럼 이건 뭐야? 네 입으로 설명해 봐!”임설희는 고개를 숙여 사진을 내려다봤다.역시나 예상대로 어젯밤 그녀가 서준호와 함께 호텔에 들어가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함께 웃으며 대화하는 장면, 그의 팔에 자연스럽게 팔짱을 낀 채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모습, 그리고 호텔 객실로 들어가는 뒷모습까지 사진은 지나치게 선명했고 박연우가 얼마나 공들여 찍었는지가 그대로 느껴졌다.“이쯤 되면 변명도 필요 없지. 난 진작 알아봤어. 쟤, 하루가 멀다고 남자들 사이를 어슬렁거리고 밤새 집에도 안 들어오고. 저 남자가 처음이겠어? 벌써 몇 번째겠지!”최현숙은 그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노골적인 비난을 퍼부었다.임설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래서 지금 절 의심하신다는 건가요?”“의심이 아니라 넌 이미 바람피운 거야. 딴 남자랑 호텔에서 놀아났잖아!”최현숙이 단정하듯 쏘아붙이자 임설희는 담담히 말했다.“그 남자, 금원 그룹 서 부장이에요.”“금원 그룹의 그 서 부장이라고?”순간 최현숙의 눈빛이 날카롭게 바뀌며, 뭔가 연결된 듯 눈을 치켜떴다.“그러니까 우리가 아무리 연락해도 네가 전화를 안 받았던 거구나! 그런데 넌 서 부장이랑은 두 번 만에 바로 통화되고 몇 마디 하자마자 다시 전화해 준다고 하고... 역시 이런 이유였던 거지!”“어떤 이유요?”“너희 둘, 이미 오래전부터 그렇고 그런 사이였던 거잖아!”임설희는 코웃음을 쳤다. 이 집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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