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Bab 521 - Bab 530

775 Bab

제521화

장시범은 더 다급해진 얼굴로 그녀의 팔을 붙잡아 끌었다.“아, 빨리 가자. 맨날 오는 곳인데 오늘 하루 인사 안 한다고 무슨 일 나겠어.”강지연은 그 말이 괜히 마음에 걸렸다.“인사도 안 하고 가는 게 어디 있어? 그건 실례지.”명문가에서 자란 사람답지 않은 태도였다. 평소라면 누구보다 예의를 중시하던 장시범이었기에 더 낯설었다.그 사이에도 간호사들의 수군거림은 멈추지 않았다.“세상에, 어떤 사람이길래 그래요? 사장님은 신고도 안 했대요?”“안 했대요.”야간 간호사가 말을 이었다.“옆 가게 할머니가 그러는데 젊은 남자였대요. 어디서 본 얼굴 같다고 했어요. 이 근처에서 본 적 있는 사람 같다고 하더라고요. 엄청 화가 나서 가게 안 물건 다 부수고 나갔다나 봐요. 그다음에 바로 무료 나눔 안내문이 붙었다고.”그 말을 듣는 순간, 어렴풋이 짐작이 간 강지연은 고개를 들어 장시범을 바라봤다. 제발 아니길 바라는 눈빛이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버렸다.멀리 가지도 않았다. 그는 건물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지연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연습실로 돌아갔다. 장시범도 말없이 뒤를 따랐다.연습실에 들어오자마자 그녀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리허설을 정리했다.공연은 코앞이었고 에딘버러 행 비행기표도 이미 예매해 둔 상태였다. 지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오직 연습과 무대였다.연습이 끝난 뒤에도 강지연은 늘 하던 대로 연습실에 남았다. 음악을 다시 틀고 반복하고 또 반복했다.무언가를 쏟아내듯 감정을 소진하듯 끝까지 몸을 몰아붙였다.마지막엔 온 힘이 빠져 더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그녀는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한참 후에야 겨우 몸을 추슬러 밖으로 나왔지만 장시범은 처음으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지 않았다. 다시 데리러 오겠다는 말도 연락도 없었다.학교 정문까지 걸어갔지만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문제가 생기면 바로 풀자고 했던 사람이 그였다. 그런데 지금 이 상황에서 또 자신이 먼저 달래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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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2화

“아가씨, 괜찮으세요? 제가 부축해 드릴까요?”강시우가 붙여둔 경호원들은 늘 그랬다. 긴 소매에 장갑까지 낀 채 팔을 받치더라도 피부가 닿지 않도록 미묘한 거리를 유지했다.강지연은 처음엔 손을 저었다.“괜찮아요.”하지만 두 걸음 더 옮기는 순간 극도로 지친 상태에서 차 안에 웅크리고 있었던 탓인지 다리에 감각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 또 한 번 중심이 흔들렸다.경호원이 곧바로 팔을 붙들었다. 그리고 뒤에 있던 다른 경호원에게 무언가를 말했다. 영어였지만 강지연은 정확히 듣지 못했다.집 문 앞에 도착했을 즈음에서야 다리의 저림이 조금씩 풀렸다.“이제 괜찮아요.”그러자 뒤에 있던 경호원이 무언가를 들고 왔다. 앨런이 말한 건 마사지 건이었다.“저희는 훈련 끝나면 이걸로 근육을 풀어요. 소독은 다 해놨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사용법 아세요?”“네, 알아요. 고마워요.”강지연은 사양하지 않고 받았다.“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주세요.”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사지 건으로 종아리와 허벅지를 한참 풀었다. 근육이 서서히 이완되며 통증이 가라앉았다.그제야 오늘 장시범이 밥을 해두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강지연은 냉장고를 열어 남아 있는 재료를 꺼냈다. 달걀, 토마토, 베이컨.간단하게 면을 삶아 모두 넣고 끓이니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너무 지쳐서였는지 그날 밤은 베개에 머리를 대자마자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늦게 눈을 뜬 강지연은 시간을 확인하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미 연습 시간이 가까웠다.서둘러 집 안에 있던 빵 하나를 집어 들고 문을 나서며 한입 베어 물었다.문밖에는 장시범이 서 있었다. 먼저 안도의 숨이 나왔다.강지연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그의 시선이 그녀의 손에 든 빵으로 향했다.“어이구, 문 닫은 쿠키 하우스 빵이네?”비꼬는 말투에 강지연은 화가 치밀어 올라 빵을 그의 앞에 들이밀었다.“똑바로 봐. 무슨 빵인지.”장시범이 만든 빵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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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3화

강지연이 돌아섰다.“장시범, 나는 그 일 때문에 화난 게 아니야. 그냥 사람마다 자기 삶의 공간이 있다는 거야. 우리는 우리 할 일만 잘하면 돼. 온하준이 어떻게 살든 내가 이혼한 순간부터 나랑은 상관없는 사람이야. 이 말, 내가 몇 번째 하는지 모르겠다.”“애초에 네 주변에 나타나질 말았어야지!”장시범의 목소리가 높아졌다.“파리처럼 네 주위를 맴돌면 안 되는 거잖아! 그런데 넌 그 사람 때문에 나랑 싸워. 도대체 누가 네 남자 친구야?”“나 너랑 싸운 적 없어.”강지연은 끝까지 차분하려 애썼다.“어제 말도 없이 사라진 건 너야. 갑자기 나를 피한 것도 너고. 나는 그냥 네가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게 놀라웠어. 그건 다른 사람의 공간을 침범하는 거니까.”“내가 걔 공간을 침범하든 말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너랑 아무 관계 없다며. 그러면 왜 화를 내?”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말에 강지연은 아침부터 마음이 지쳐갔다.“장시범.”그녀는 여전히 싸우고 싶지 않았다.“사람은 누구나 자기 공간이 있어. 그 사람이 온하준이든, 너든, 나든 상관없어. 공간이 없는 관계는 결국 숨 막혀.”“난 모르겠어.”그는 고개를 저었다.“네가 나한테 공간 얘기하는 건 알겠는데 온하준 공간이 너랑 무슨 상관이야?”강지연은 더는 설명할 힘이 없었다.“그 사람 공간이 나랑 상관있다는 게 아니잖아. 우리 사람 떼고 생각하면 안 돼?”“그런데 넌 이미 온하준을 생각하고 있잖아.”그가 몰아붙였다.“그 가게 문 닫고 나서부터 네가 달라졌어.”강지연은 결국 포기했다.“됐어. 연습하러 가자.”그녀는 돌아섰다. 몇 걸음이 지나도 장시범은 따라오지 않았다.“이제는 내가 데려다줄 필요도 없겠던데.”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비틀려 있었다.“어제 보니까 경호원이랑도 꽤 가까워 보이더라.”강지연의 속에서 짜증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경호원이랑 뭘 어쨌는데?”“집까지 데려다주고 부축도 해주고 마사지 건까지 챙겨 주고.”그의 눈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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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4화

냉전 중이었지만 장시범은 연습만큼은 성실했다.다만 더 이상 강지연과 함께 오고 가지 않았고 밤에도 기다리거나 데리러 오지 않았다.강지연도 점점 익숙해졌다. 어차피 밤마다 혼자 연습을 마치고 학교 밖 도로로 나가면 경호원의 차가 도착해 있었다.그날은 에딘버러로 떠나기 전 마지막 연습이었다.다음 날 새벽 비행기였기에 강지연은 단원들을 오래 붙잡지 않았다. 오후에 동선만 한 번 맞추고 일찍 해산시켰다. 장시범도 다른 단원들과 함께 먼저 나갔다.강지연은 짐을 정리한 뒤 한의원으로 향했다.근처 카페에서 커피와 빵으로 간단히 요기하려던 그녀는 유리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안쪽에 장시범과 방예란이 마주 앉아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몸을 기울인 채 낮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유리문 너머에 선 순간 장시범의 시선이 스쳐 갔다.그녀는 그가 자신을 봤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장시범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못 본 걸까? 그럴 리는 없을 텐데.’강지연은 결국 들어가지 않고 조용히 발길을 돌려 한의원으로 향했다.재활을 마친 뒤에는 다시 연습실로 돌아가 개인 훈련을 했다.끝났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오늘은 더더욱 장시범이 오지 않을 것 같아 그대로 가방을 메고 캠퍼스 밖으로 향했다.학교 정문을 거의 벗어날 즈음 네 명의 취객이 길을 막았다.“헤이.”그중 한 사람이 휘파람을 불며 말을 걸었다.“아가씨, 매일 밤 혼자 다니면 안 외로워?”강지연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며칠째 나를 지켜본 건가.’그녀는 걸음을 재촉하며 앨런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전화를 꺼냈다.“전화 못 하게 해! 잡아!”전화를 걸 틈도 없이 강지연은 있는 힘껏 달렸다. 하지만 체격이 큰 네 남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그녀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학교 밖 도로와 반대 방향으로 끌려갔다.살려 달라고 외치려는 순간 곧 입이 틀어막혔다.가슴 깊은 곳에서 절망이 밀려왔다. 오늘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나왔다.만약 평소처럼 늦게 나왔더라면 앨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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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5화

네 사람은 비웃음을 지으며 괜한 일에 참견하지 말라고 했다.그 몸으로 네까짓 게 뭘 어쩌겠느냐는 조롱이 담긴 말이었다.온하준은 키는 컸지만 마른 편이었고 특히 지난 1년 사이 더 수척해져 있었다.몸싸움이 붙으면 네 명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건 그들도 분명히 아는 듯했다.그는 네 사람을 막아선 채 강지연에게 말했다.“틈 보이면 바로 뛰어. 알겠지? 바로 도망가.”강지연은 다시 일어섰을 때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그녀는 온하준의 등 뒤에 몸을 숨긴 채 그의 말대로 기회만 생기면 뛰려고 했다.여기서 버티는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 앨런을 부르든, 경찰을 부르든, 무엇이든 해야 했다. 그래야 두 사람 모두 살 수 있었다.하지만 상대는 네 명이었고 빈틈은 쉽게 나지 않았다.강지연이 조금이라도 빠져나가려 하면 곧장 가로막혔다. 결국 네 사람이 동시에 달려들었다.한 명은 온하준이 들고 있던 의자를 걷어찼고 세 명은 그를 붙잡거나 돌아서서 강지연을 향해 손을 뻗었다.사 대 이.거의 막다른 길이었다. 그 순간, 온하준은 몸을 돌려 강지연을 감싸안아 그녀를 통째로 자신의 몸 뒤로 숨겼다.주먹이든 발길질이든 전부 자신의 몸으로 받았다.“온하준, 너...”강지연의 목소리가 떨렸다.“나 안 죽어.”그는 낮게 말했다.“조금만 버티면 돼. 곧 올 거야.”온하준은 있는 힘을 다해 그녀를 감싼 채 조금씩 교실 밖으로 몸을 옮겼다.강지연의 목덜미로 뜨거운 것이 떨어졌다.처음엔 무엇인지 몰랐다. 하지만 손등 위로 한 방울이 떨어지는 순간, 피라는 걸 알아차렸다.“온하준...”어디서 피가 나는지 몰라 더 불안해졌다.“괜찮아, 걱정하지 마.”말이 끝나기도 전에 또 한 줄기 피가 떨어졌다.“악!”그때 비명 하나가 터졌다. 취객 중 한 명의 목소리였다.온하준도 고개를 돌려 보는 순간, 앨런과 다른 경호원들이 교실 안으로 뛰어 들어오고 있었다.“왔어.”온하준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드디어 왔네. 이제 괜찮아.”그는 강지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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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6화

앨런도 차에서 내렸다. 그제야 강지연은 차 문을 붙잡고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온하준...”겨우 정신을 추스른 그녀가 물었다.“넌 어떻게 거기 있었던 거야?”온하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옅게 웃기만 했다.“말해!”강지연이 터지듯 소리쳤다.온하준의 코에는 아직 솜이 양쪽으로 박혀 있고 얼굴은 군데군데 부어 있어 꼴이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고함에 온하준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냥 좀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말했잖아. 이하나가 유럽에 있다고. 결국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네가 위험해질까 봐. 요 며칠 장시범도 안 보이고 해서...”그래서 밤마다 강지연이 연습하는 동안 온하준은 학교 안팎을 맴돌았다. 그저 설마 하는 마음으로 주변을 맴돌았을 뿐인데 정말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다.온하준은 순간 아까 자기 피가 강지연의 목까지 흘러내리던 장면이 떠올랐다.슬쩍 살펴보니 아직도 그녀의 귓가에는 피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귀 옆을 살짝 문질러 봤지만 굳어버린 핏자국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이미 말랐네. 집에 가서 깨끗이 씻고 오늘은 그냥 자. 오늘 밤은 앨런이 집에 같이 있어 줄 거야.”강지연은 미간을 깊이 찌푸린 채 그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 그녀의 모습에 온하준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걱정할 필요 없어. 어차피 내가 빚진 거잖아. 강지연, 내가 너한테 진 빚은 이생에 뭐로 갚아도 다 못 갚아.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걱정 안 했어.”강지연은 등을 돌렸다.“그리고 웃지 마. 웃으니까 더 못생겼어.”순간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앨런은 차를 다른 경호원에게 맡기며 말했다.“온하준 씨를 모셔다드리고 내일 아침 아홉 시 비행기니까 시간 맞춰서 데리러 오세요.”그 말을 남기고 그는 강지연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온하준은 두 사람이 집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는 것도 기다리지 못한 채 서둘러 차에 올랐다. 문이 닫히자마자 방금 앨런이 건네준 휴지를 움켜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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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7화

장시연은 결국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오빠, 진짜 제정신이야? 전남편을 의심하는 건 그렇다 쳐. 둘이 결혼했었던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경호원까지 의심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니야?”장시범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가 억지로 변명했다.“경호원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강지연이 오해받을 상황을 안 만들었으면 이런 말도 안 나왔겠지. 미혼 남자를 집에 들여서 밤새 있게 하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오해할 수도 있잖아.”“진짜 그만 좀 해! 무슨 다른 사람이야? 누가 오해해? 오빠 혼자 오해하는 거잖아. 나는 오해했어? 전남편은 오해했어? 아무도 안 하는 걸 왜 혼자서 상상해?”장시연은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덧붙였다.“이러다 진짜 언니를 잃을 수도 있어. 그러고 나서 나중에 후회하지 마.”그날 밤 강지연은 깊이 잠들지 못했다. 연속되는 악몽에 여러 번 깼고 거의 매번 비명을 지르며 눈을 떴다. 그럴 때마다 침실 밖에서 앨런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저 여기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앨런은 이미 오늘 있었던 일을 강시우에게 보고했고 그에 따라 새로운 지시가 내려왔다.앞으로는 강시우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고 다음 날 에딘버러로 가는 일정에는 경호원을 추가 배치하기로 했다.잠을 설친 탓에 강지연은 이른 시간에 눈을 떴다. 앨런은 이미 미리 싸두었던 캐리어를 차에 싣고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차에 오르기 전, 강지연은 옆집을 한 번 바라봤다. 인기척은 없었고 공항에 갔는지도 알 수 없었다.강지연이 차에 오르자 앨런은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무용단 단원들이 하나둘 공항에 도착했다. 떠나기 전 강지연이 인원을 점검해 보니 두 사람이 빠져 있었다. 장시범과 방예란, 이번 무대의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었다.“단장님, 두 사람 아직 공항에 안 온 거 아니에요?”출발 직전인데 주연 두 명이 보이지 않자 단원들 사이에서도 불안한 기색이 번졌다.이런 상황에서 사적인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칠 수는 없었다.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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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8화

무용단 단원들은 스무 살 안팎의 나이였지만 누구 하나 십여 년 넘게 춤을 갈고닦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러했기에 그 시간 동안 겪어온 고통과 무대에 대한 경외심이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내일이면 공연인데 마지막 리허설까지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다들 모를 리 없었다.오늘 무대 동선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내일 바뀌어 있는 무대에서 즉흥으로 호흡을 맞춘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매번 공간이 달라지면 아무리 숙련된 동작이라도 동선은 미묘하게 어긋나기 마련이었고 하물며 두 사람은 주연이었다.엄밀히 말하면 이건 그동안 온몸에 상처를 안고 버텨온 단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 주인공 장시범이 단장의 남자 친구라는 사실을 누구나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모든 시선이 강지연에게 쏠렸다. 이제 고작 마지막 리허설 한 번만 남아 있었다.강지연은 단원들의 눈을 하나하나 바라보다가 마침내 결심한 듯 B캐스트를 향해 물었다.“내일 공연 네가 해야겠어. 할 자신 있지?”B캐스트는 예상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으로 강지연을 바라봤다.“자신 없어?”강지연의 목소리가 한층 단단해졌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이를 악물고 크게 답했다.“있습니다!”강지연은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되뇌었다.‘그래. 이제 이 공연의 남자 주인공은 너로 정하자. 그런데 여자 주인공은 어떡하지?’강지연은 무용단을 막 꾸렸을 때부터 적합한 여자 B캐스트를 찾지 못해 방예란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적어도 이번 에딘버러 무대만큼은 문제없을 거라 믿었기에 공연이 끝난 뒤 천천히 새로운 여자 주인공 B캐스트를 키울 생각이었다.그런데 지금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꼴이 되어 버렸다.“단장님, 차라리 단장님이 직접 뛰세요.”한 단원이 조심스레 말했다.“맞아요. 공연은 단장님이 직접 짠 거잖아요. 제일 잘 아는 사람도 단장님이고요. 요즘 발도 아주 좋아졌잖아요.”“리허설도 계속 단장님이 동선 잡으셨잖아요.”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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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9화

방예란은 그의 말에 설득된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슴 깊은 곳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았고 어딘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예감이 계속해서 따라붙었다.“선배, 이제 그만하고 우리 들어가요. 분장만 해도 몇 시간은 걸리는데 더 늦으면 진짜 큰일이에요.”“안 돼. 지금까지 버텼는데 마지막까지 버텨야지.”그는 강지연에게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이며 대체 불가능한 사람인지를 분명히 보여주고 싶었다.“혹시라도 단장님이 진짜 우리를 안 부르면요?”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방예란의 휴대전화는 더 이상 울리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숨이 막혀왔다.“걱정하지 마. 강지연 성격 몰라? 공연을 자기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이야. 이대로 망하게 놔둘 리 없어. 분명 다시 연락이 올 거야.”그는 이 공연이 강지연에게 어떤 의미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기회를 이용해 그녀를 흔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었다.강지연은 절대 이 무대를 망하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니까.하지만 해가 저물고 관객들이 하나둘 입장하기 시작했는데도 두 사람의 휴대전화는 울리지 않았다.방예란은 결국 참지 못하고 그동안 자신에게 연락해 왔던 단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분명히 분장하느라 전화도 못 받는 거예요. 어떡해요! 괜히 선배 말만 믿고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그녀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장시범은 차갑게 그녀를 내려다봤다.“에르메스 받을 땐 그런 말 안 했잖아. 그것도 세 개나.”방예란은 입을 다물었다.“걱정할 필요 없어.”장시범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우리 없이 공연 못 해. 한다고 해도 오늘 무대는 망칠 가능성이 더 커. 곧 연기하거나 취소한다고 발표할 거야. 들어가 보자.”장시범은 관객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고 방예란도 어쩔 수 없이 그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결국 두 사람은 관객들 사이에 섞여 맨 뒷줄에 앉아 무대를 바라봤다.“취소 분위기는 아닌데요.”방예란이 속삭였다.“기다려 봐. 시간 아직 안 됐어.”장시범은 시계를 흘끗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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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0화

방예란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왜 나는 선배가 단장님 잘되길 바라는 것 같지가 않죠?”장시범이 인상을 찌푸렸다.“내가 왜 안 바라? 이 세상에서 강지연을 제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나야. 강지연을 위해서 내가 뭘 얼마나 했는지 알아? 여기 유학 온 이유도 다 강지연 때문이야. 원래는 돌아가서 가업을 이을 수도 있었지만 강지연이 춤을 좋아하니까 따라왔어. 어떻게든 무대에 다시 세우려고 내가 얼마나 애썼는데. 그리고 원래 춤을 잘 추는 사람이기도 하고 세계 무대에 이름이 걸려야 할 사람이라는 것도 알아. 잘되길 바라지 않는다는 게 말이 돼? 난 그냥...”“선배는 그냥 너무 이기적인 거예요.”방예란이 낮게 말했다. 이제야 그녀는 잠깐의 욕심에 휘말려 여기까지 와버린 것에 후회가 밀려왔다.며칠만 끌면 강지연이 먼저 연락할 거라 했던 장시범의 말만 믿고 버틴 자신이 어리석게 느껴졌다.방예란은 무대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마음속으로 강지연이 무사히 이 무대를 끝내기만을 빌며 자신이 흘린 땀과 시간이 헛되지 않기를 바랐다.공연 내내 그녀는 한 손으로 가슴을 누른 채 숨죽여 지켜봤다. 단원들이 도약할 때마다 자신도 마치 무대에서 뛰는 것처럼 심장이 들썩였다.마지막 장면이 끝났을 때, 그녀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완벽했다. 관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만으로도 오늘 무대가 완벽했음을 알 수 있었다.국내 관객이든 외국 관객이든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환호했다. 옆자리에 앉은 외국인이 프로그램 북을 들고 ‘삼국유사’가 어떤 이야기냐고 묻자 그녀는 조용히 설명해 주었다.설명을 마치고 돌아봤을 때 장시범은 이미 자리에 없었다.순간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해진 방예란은 머릿속이 텅 빈 듯 멍해졌다.장시범은 무대를 마치고 내려오는 강지연을 기다리기 위해 백스테이지로 향했다.무용수들이 커튼콜을 마치고 돌아왔다. 성공의 열기로 얼굴이 달아올라 있었지만 장시범을 보는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은 채 각자 자리에 앉아 조용히 화장을 지우고 의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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