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Bab 511 - Bab 520

775 Bab

제511화

“어머, 하준이 왔네!”서정희가 반색했다.“오늘 못 들어온다더니.”강지연은 그 말속에서 단어 하나를 또렷하게 짚어냈다. 들어온다.온하준이 이 집에 오는 걸 서정희는 자연스럽게 ‘들어온다’라고 말했다.“다행히 음식은 넉넉히 준비했어.”차정욱이 말했다. 오늘은 강지연과 최아현까지 손님으로 온 터라 그는 처음부터 상을 크게 차릴 생각이었다.강지연은 속으로 씁쓸하게 욕을 삼켰다. 어디를 가든 결국 온하준을 마주쳐야 한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밀었다.현관 쪽에서 서정희가 사람을 맞이하는 소리가 거실까지 또렷하게 들려왔다. 들뜬 목소리였다.“아이고, 오길 잘했다. 마침 네 동창들도 와 있어. 조금 있다가 같이 밥 먹자.”“동창이요? 누구요?”온하준의 목소리였다.“여자 동창 둘.”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강지연? 최아현? 너희가 어쩐 일이야?”최아현은 기다렸다는 듯 눈을 흘기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반갑다 같은 소리 할 생각이면 하지 마. 하나도 안 반가우니까.”온하준은 피식 웃으며 서정희를 돌아봤다.“학교 다닐 때부터 만나면 싸웠는데 지금도 이래요.”“그렇지, 그렇지. 다 이해해.”서정희도 웃으며 맞장구쳤다.“아버지랑 나도 마찬가지야. 하루라도 안 싸우면 허전할 정도라니까.”강지연은 그 말에 다시 한번 귀를 세웠다.‘아버지? 온하준이 이제 두 사람을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나 보네.’최아현은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어른들이 있는 자리에서 지나치면 결국 자신들만 불편해질 게 분명했다.“너희 둘은 나가 있어. 내가 도와주면 돼.”온하준이 말하자 서정희도 거들었다.“그래, 그래. 부엌이 좁아서 사람 많으면 복잡해. 너희 둘은 나가서 놀아. 안나랑 같이 얘기 좀 해.”안나까지 왔다는 말에 최아현은 곧장 강지연의 팔을 붙잡았다.“그럼 우린 나가 있을게요. 필요하면 부르세요.”“그래, 가. 빨리 가서 편하게 놀아.”서정희가 재촉했다. 거실로 나오니 안나가 소파에 단정히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 최아현은 강지연을 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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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2화

온하준은 그 말을 듣고 안나를 한 번 보더니 소리 내 웃었다. 안나 역시 화내기는커녕 눈을 접어 웃었다.최아현은 속으로 물음표를 세 개쯤 띄웠다.‘이 상황에서 웃는다고?’그녀는 강지연을 힐끗 보며 눈짓했다. 너는 이해가 가냐는 듯한 시선이었다.강지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라고 알겠냐는 표정이었다.차씨 집에서 식사하는 동안 강지연은 생각보다 많은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온하준은 귀국할 때마다 이곳에 안나를 데리고 와 함께 밥을 먹었고 잠만 밖에서 잘 뿐 일상의 대부분은 이 집에서 해결해 온 듯했다.차씨 부부 역시 온하준을 친자식처럼 대했다. 조카라기보다는 아들처럼 가까운 사이였다.두 어른 앞에서 익숙하게 웃고 자연스럽게 말을 받는 온하준을 보며 강지연은 묘한 착각에 빠졌다.온하준은 어쩌면 남편이라는 역할만 빼면 모든 역할을 다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착각.좋은 사장, 좋은 형, 좋은 친구, 좋은 후배.다만 남편이라는 자리에서만 형편없었을 뿐. 물론 안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그 형편없음이 오직 자신에게만 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스쳤다.오늘 이 집에 온 목적은 단순했다.차씨 부부가 잘 지내는지, 몸은 괜찮은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다. 두 사람이 생각보다 건강해 보이자 강지연의 마음도 조금 놓였다.돌아가는 길 온하준이 물었다.“두 사람 데려다줄까?”강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는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게 숨 막히게 싫었지만 그 밤의 납치 사건 이후, 그리고 아직 행방이 묘연한 이하나 때문에 지금은 혼자 다니지 않았다.오늘도 경호원들은 함께 왔지만 식사 자리까지 동석시키기는 애매해 근처에서 대기하게 했을 뿐이었다.온하준이 몇 걸음 다가오자 강지연은 문득 웃으며 말했다.“너를 좋은 사람이라고 하자니 짐승만도 못하고 짐승이라고 하자니 또 가끔은 사람 같고. 참 신기해.”그 말을 남긴 채 강지연은 최아현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경호원이 문을 열어 주었고 두 사람은 차에 올랐다.온하준은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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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3화

강지연은 문득 기운이 빠졌다.그 말에 굳이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곁에 최아현이 있기에 어쩔 수 없이 화면을 향해 웃어 보였다.“웃기는.”장시범이 다시 물었다.“같이 간 동창 또 누구 있어?”강지연은 잠시 망설였다.온하준의 이름을 말할지 말지 아주 짧은 순간 고민했다. 말하면 분명 또 기분이 상할 게 뻔했다.그렇다고 약속하고 간 자리도 아니었고 우연히 마주친 일을 숨기고 싶지도 않았다.무엇보다 매번 이런 일을 거짓말로 덮으며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그 짧은 침묵 사이 화면 너머 장시범의 표정은 이미 굳어 있었다.“설마 온하준도 있었어?”“응.”강지연은 더 망설이지 않았다. 대신 덧붙였다.“같이 약속해서 간 건 아니고 원래 자주 다니나 봐.”“그래?”그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고 말투는 점점 뭉개졌다.“두 사람 참 인연도 깊네.”강지연은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차분히 말했다.“그 사람은 차유준이랑 아주 가까운 사이였어. 지금은 차유준 부모님을 자기 부모님처럼 모시고 있고 귀국하면 거의 그 집에서 지내는 것 같아.”“그래.”그는 더 시큰둥해졌다.“네 마음속에 온하준은 참 좋은 사람이네. 남의 부모까지 챙기는 다정한 사람.”강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미소를 유지했다.대꾸하면 다시 설명이 필요할 게 분명했고 그 설명이 지금은 무의미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잠시 뒤, 장시범도 자신의 말이 지나쳤다는 걸 느낀 듯 화제를 돌렸다.“자기야, 나 내일 점심쯤 도착해. 공항에 나와 줄 수 있어? 우리 같이 게살 볶음밥 먹자.”강지연은 감정을 고른 뒤 대답했다. 그가 한 걸음 물러선 이상 자신도 그 선에서는 멈추기로 했다.“응. 내가 데리러 갈게. 예약도 미리 해놓고.”장시범은 다시 웃음을 되찾았다.“그래. 그러면 끊을게. 최아현이랑 잘 놀고 내일 보자.”“내일 봐.”영상이 끊기자 최아현이 강지연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였다.“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강지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감정은 아무리 숨겨도 곁에 있는 사람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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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4화

다음 날, 장시범은 커다란 꽃다발을 들고 나타났다.그것도 진경에서 해성까지 직접 안고 온 꽃이었다.강지연이 해성에 꽃집이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거기서부터 들고 왔냐는 눈빛을 보내자 장시범이 웃으며 말했다.“네가 나를 보는 하루하루가 꽃처럼 아름다웠으면 좋겠어. 첫눈에 기분부터 좋아지게.”그 한마디에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응어리가 스르르 풀렸다.사랑이 있다면 작은 마찰쯤은 결국 넘을 수 있는 게 아닐까.그날 이후 남은 시간 동안 두 사람은 해성에서 거의 붙어 지냈다.비자 절차를 마친 뒤에는 근처로 짧은 여행도 다녀왔고 8월 초 다시 엘리로 돌아왔다.이어진 다정함과 평온한 날들이 두 사람 사이에 생겼던 작은 균열쯤은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거라 믿게 했다.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조금씩 달라지면 된다고.엘리에 도착하자마자 그들은 에딘버러 페스티벌을 앞두고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해성에 머무는 동안 강지연은 절에 다녀온 며칠을 제외하고 하루도 재활을 거르지 않았고 돌아온 뒤에도 매일 한의원에서 침 치료를 이어갔다.곽현성은 이번 달 들어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말했다. 다친 쪽 발에 힘이 붙었고 반대쪽 다리와의 차이도 거의 느껴지지 않을 만큼 회복됐다고.강지연은 들뜬 마음으로 물었다.“그러면 완전히 예전처럼 무대에 설 가능성도 있는 거예요?”그녀가 말한 ‘예전처럼’은 지금처럼 동작을 가려 추는 게 아니라 어떤 고난도 동작이든 거리낌없이 해내던 시절을 뜻했다.곽현성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이론적으로는 가능합니다. 다만 현실은 쉽지 않을 거예요. 매우 힘들 겁니다.”“괜찮아요.”가능성이 있다면 붙잡는 건 그녀 몫이었다.그날 이후 강지연은 연습실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단원들과 합을 맞춘 뒤 모두 돌아가면 혼자 남아 두 시간, 세 시간씩 더 연습했다. 몰입이 깊어지면 시간 감각조차 사라져 어느새 밤이 깊어 있었다.체력 소모가 커진 만큼 장시범은 그녀를 위해 영양식을 준비했다.하루 종일 버틸 수 있으면서도 살은 찌지 않고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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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5화

온하준은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유 없이 널 찾아오진 않아.”그는 손에 들고 있던 더스트백을 내밀었다.“네 가방 찾았어. 안에 있던 것도 그대로야. 휴대전화도 있고. 빠진 게 있는지는 네가 직접 확인해.”강지연은 가방을 받아 들고 안을 대충 훑어보았다.“네 연락처도 없고 낮에는 가게가 바빠서 밤에 온 거야.”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덧붙였다.“그리고 그 사람이 항상 네 곁에 있잖아. 내가 나타나면 싫어할 테고.”“오빠 번호 있잖아. 굳이 나를 찾아올 필요 있었어?”온하준의 얼굴이 잠깐 난처해졌다.“국내 번호만 알아. 해외 번호는 모르고. 지금 너도 국내에 있는 게 아니잖아.”“그러면 한의원에 맡기면 됐잖아.”그녀가 매일 드나드는 곳이라는 걸 온하준이 모를 리 없었다.온하준의 얼굴에 무력감이 스쳤고 씁쓸한 웃음이 뒤따랐다.“한의원에 맡기면서 뭐라고 말해? 이게 누구 가방이냐고 물으면 뭐라고 답해? 왜 내가 네 가방이랑 휴대전화, 지갑을 갖고 있냐고 하면 전처라고 말해?”“그만해.”강지연은 더 듣고 싶지 않아 말을 끊었다.온하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물건은 경찰이 찾아서 연락한 거야. 네 휴대전화로 전화했는데 연결이 안 돼서 나한테 전화했던 거고 그래서 내가 받아온 거야.”“경찰이 널 뭐 믿고?”강지연의 말투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전처라고 했고 이혼 증명도 있다고 말했어.”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강지연은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말도 안 돼. 경찰이 전남편한테 물건을 넘겨줄 리 없잖아.”온하준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경찰에게 그런 말을 했을 리도 없었고 어찌 됐든 가방은 돌려줬다. 그걸로 끝낼 생각이었다.“더 할 말 없으면 갈게.”그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본 뒤 덧붙였다.“강시우가 경호는 붙여 놨겠지?”“응. 있어.”그녀는 경호원이 눈에 띄지 않는 거리에서 늘 자신을 지키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다행이네.”온하준은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요즘 조심해. 이하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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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6화

피하고 싶던 순간은 결국 찾아왔다.강지연은 이런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막혔다.그녀의 가슴 깊은 곳에서 무력감이 밀려왔고 설명하려는 목소리조차 힘이 빠져 있었다.“나 납치당한 얘기 했었잖아. 휴대전화랑 가방도 다 잃어버렸다고 말했고.”장시범이 잠시 멈칫했다.“그래도 굳이 직접 갖다줄 필요는 없잖아. 제대로 된 전남편이면 죽은 사람처럼 사라져 주는 게 맞는 거 아니야?”강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그럼 어떡할까? 내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넌 왜 늘 그런 말만 하는 거야? 네가 부른 것도 아니고, 약속한 것도 아니고. 그럼 두 사람 인연이 그렇게 깊다는 거야?”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강지연은 오래전에 아물었다고 믿었던 상처가 거칠게 다시 벌어지는 느낌을 받았다.그녀와 온하준의 관계가 어떤 시간이었는지, 얼마나 아프게 지나왔는지, 그는 알고 있다고 믿었다.그래서 숨기지 않고 흉터를 보여줬다. 그런데 지금 그 흉터가 그의 입에서 칼날이 되어 돌아오고 있었다.그는 어떻게 저 말을 할 수 있을까.강지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등을 돌려 집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장시범이 다급히 따라와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았다.“미안해, 자기야. 미안해.”그 순간, 강지연은 처음으로 그의 품을 거부했다.“그러지 마. 나 무시하지 말아 줘. 이러면 나 너무 슬퍼.”장시범은 놓지 않겠다는 듯 팔에 힘을 주어 더 세게 끌어안았다. 강지연은 그의 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단단한 팔이 숨을 조여오자 이미 답답하던 공기가 더 희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장시범, 이미 말했었잖아. 온하준이랑 결혼했던 오 년이라는 시간은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고. 그게 계속 신경 쓰인다면 다시 생각해도 돼. 어떤 결론이든 난 감당할 수 있어.”사실상 이별에 가까운 말이었다. 장시범은 오히려 더 세게 그녀를 끌어안았다.“아니야. 난 싫어. 나 신경 안 써. 진짜야. 그냥... 그냥 네가 그놈이랑 다시 가까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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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7화

한때 강지연은 사랑만 있다면 서로 한 발씩 물러설 수 있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며 원칙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사소한 불편쯤은 얼마든지 넘길 수 있다고 믿었다.그러나 지금은 확신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온 뒤 강지연은 대충 저녁을 먹고 씻은 뒤 침대에 누웠다.지금은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다음 날 아침, 장시범이 아침을 들고 찾아왔다.“나 이미 먹었어.”강지연은 우유에 말은 시리얼과 작은 빵 하나로 간단히 끼니를 끝낸 상태였다.“아직도 화났어?”그가 다가와 그녀를 안았다.“우리 냉전을 벌이지 말고 문제 있으면 지금 풀자.”강지연은 숨을 고르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러면 풀자.”그녀는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장시범, 내 기준에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만 요구를 제기할 수 있어. 나는 너에게 단 한 번도 미안한 행동을 한 적 없다고 생각해. 너와 함께한 날들 전부 진심이었고 다른 마음을 품은 적도 없어.”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갔다.“하지만 시간은 길고 세상은 넓어. 나는 영원히 너만 보고 살 수도 없고 모든 사람과 인연을 끊고 살 수도 없어. 온하준도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이야. 어느 날 갑자기 마주치는 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알아, 알아.”장시범이 급히 말했다.“어제 내가 순간적으로 욱했어. 미안해.”그는 그녀의 손을 붙잡고 가볍게 흔들었다.“정말 이해한 거면 좋겠어.”강지연은 담담하게 말했다.“신뢰는 우리가 계속 걸어갈 수 있는 바탕이야.”“알았어, 자기야. 미안해.”그는 다시 그녀를 끌어안았다.“그러면 이제 연습하러 학교 갈까?”강지연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가자.”이 무용단에서 그녀는 안무가였지만 결코 단원들보다 수월하지 않았다.모든 무용수의 동작을 직접 한 번씩 몸으로 확인했고 심지어 남자 주인공인 장시범의 동작까지 하나하나 짚었다.거기에 자신의 재활 훈련까지 더해지면 하루가 끝날 무렵에는 다리를 들어 올리는 것조차 버거웠다.다행히 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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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8화

“내 가게가 방해라도 된다는 거야?”앞치마를 두르고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서 있는 온하준은, 누가 봐도 제과사였다.“방해돼.”장시범의 어조는 노골적으로 무례했다.“가게를 꾸리려면 다른 곳에서도 할 수 있잖아. 왜 하필 강지연 학교 근처야? 그리고 왜 하필 빵 가게인 건데? 내가 강지연한테 늘 케이크 만들어 주니까 경쟁이라도 하겠다는 거야?”온하준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런 생각 한 적 없어. 이건 아버지가 남겨 준 가게야.”장시범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누구거든 상관없어. 이 가게 내가 살게.”그 오만한 어조는 묘하게 낯설지 않았다.예전에 이하나가 두 가게에서 거절당한 뒤 분노하며 소리치던 말과 닮았었다.“이 보잘것없는 가게 내가 다 사버릴 수도 있어!”그리고 그때 가게를 다 사버릴 수 있었던 사람은 온하준이었다.비록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의 인과는 결국 돌아오는 법이었다.온하준은 조용히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강지연이 보내서 온 거야?”“그래.”장시범의 주저 없는 대답에 온하준은 입꼬리를 아주 미세하게 올렸다.“그럴 리가.”들통났다는 민망함은 곧 분노로 바뀌었다.“맞다고! 네가 여기서 가게를 여는 것 자체가 강지연한테는 부담이야. 네 존재 자체가 고통이고 너를 볼 때마다 지난 시간이 떠오를 거야. 양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 정도는 생각해야지. 이제 좀 눈앞에서 사라져.”온하준은 아무 말 없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왜 대답이 없어? 얼마면 되냐고. 가격 말해. 얼마든지 내가 살 테니까 넌 여기서 꺼져.”온하준은 뒤를 돌아 안나를 보며 말했다.“오늘 가게 안에 있는 케이크랑 빵 전부 무료로 나눠줘. 그동안 찾아준 손님들께 감사의 의미로.”“무슨 뜻이야?”장시범의 경계가 한층 짙어졌다.“문 닫을게.”이렇게 쉽게 물러날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장시범은 잠시 말을 잃었다.“하지만.”온하준이 덧붙이자 장시범은 비웃듯 웃었다.“그래, 조건이 붙을 줄 알았어.”“가게는 닫겠지만 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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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19화

와장창!연달아 터진 굉음이 그의 말을 잘랐다.장시범은 몸을 홱 돌리더니 다리를 휘둘러 진열돼 있던 장식을 모조리 바닥으로 쓸어버렸다.“나한테 사랑을 가르치려 하지 마.”날 선 목소리가 가게 안을 찢었다.“넌 내일 당장 이곳에서 꺼지면 돼.”그 말을 던지고 장시범은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가게 안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깨진 장식과 부서진 진열대가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안나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우리 정말 가게 닫아야 해?”“응.”온하준은 대답하며 무릎을 꿇고 바닥에 떨어진 조각들을 하나씩 주워 담기 시작했다.“그만두자.”안나는 조금 울적한 얼굴로 그 옆에 앉아 함께 조각을 주웠다.“그런데...”하지만 뒷말은 끝내 잇지 않았다.그날, 쿠키 하우스에는 무료 증정이라는 팻말이 걸렸다. 소문은 금세 퍼졌고 동네 사람들은 몰려왔다.진열대는 순식간에 텅 비었다. 가게를 어디로 옮기느냐는 질문에 온하준은 웃으며 답했다.“아마 더는 안 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고마웠어요.”장시범이 연습실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리허설이 한창이었고 B캐스트가 그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자기야, 나왔어.”햇살 같은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그는 강지연을 끌어안듯 다가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리허설을 멈추게 하더니 B캐스트를 향해 말했다.“내가 할게.”리허설은 다시 이어졌다.강지연은 무대에서 내려온 B캐스트에게 다가가 물 한 병을 건넸다.“오늘 잘했어.”“감사합니다, 단장님.”“단장님이라니.”강지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난 그냥 너희보다 나이가 조금 많고 춤 좋아하는 사람들 모아놓은 것뿐이야.”B캐스트는 수줍게 웃었다. 아직 대학생인 그에게 강지연은 분명 큰 선배였다.“그래도 단장님은 대단하세요. 저희 다 진심으로 존경해요.”그 말에는 안무만이 아니라 부상을 이겨내기까지의 시간과 노력에 대한 존경이 담겨 있었다.모두가 지켜본 과정이었다. 강지연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너희는 나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어.”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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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0화

그 순간, 강지연은 장시범이 붙잡고 있는 손이 족쇄처럼 느껴졌다.“장시범.”그녀가 조용히 말했다.“넌 이런 게 재미있어? 나를 대체 어떤 사람으로 보는 거야?”장시범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그는 당황과 불안이 뒤섞인 얼굴로 그녀의 손을 흔들며 말했다.“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 난 그냥 네가 너무 소중해서 그래. 무서워서...”강지연은 아침에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문제가 있으면 바로 풀자고 했던 말. 그래서 최대한 감정을 눌러 차분히 입을 열었다.“장시범, 이렇게는 안 돼.”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내 삶에 너만 있을 수는 없어. 난 친구도 필요하고 일도 해야 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랑도 잘 지내고 싶어. 그중에 남자가 한 명도 없을 거란 보장은 없어.”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어갔다.“그런데 내가 누군가와 잘 지낼 때마다 네가 항상 이런 식으로 의심한다면 우린 이 관계를 계속 이어갈 수 없어.”장시범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알아. 내가 잘못했어. 한 번만 봐줘. 다시는 안 그럴게.”“그 말, 벌써 여러 번 했어.”강지연은 그를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봤다.“이번엔 진짜야.”그는 눈을 내리깔았다.“이번엔 정말로 약속할게.”강지연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밥 먹자.”“응.”장시범은 다시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자기야, 나 진짜로 너 많이 사랑해.”강지연은 잠시 침묵하다가 억지로 입꼬리를 올렸다.“알아.”연애를 시작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았다. 그래서 강지연은 이번 싸움이 마지막이길 바랐다.정말로 고쳐질 수 있기를, 이번만은 다르기를 바라며 자신을 스스로 설득했다.오후에 강지연은 한의원으로 향했다.재활은 한번 시작하면 두세 시간씩 걸렸고 장시범은 늘 치료실 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그날도 치료를 마치고 나오니 마침 주간 근무와 야간 근무가 교대하는 시간이었다.강지연은 야간 근무로 들어오는 간호사들 손마다 빵 봉지가 들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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