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Chapter 771 - Chapter 775

775 Chapters

제771화

“그는 굴곡진 삶을 살았습니다. 성공도 했고 잘못도 저질렀습니다. 평생 가족의 용서를 구하며 살았고 마지막에는 병마 속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부디 천국에는 고통이 없기를, 다음 생에서는 더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강지연의 머릿속은 윙윙 울리고 있었고 귀에도 솜이라도 들어찬 듯 소리가 아득하게 멀어졌다.앞에 선 사람이 많은 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귀에 제대로 들어오는 문장은 몇 마디뿐이었다.그 사람은 말을 마치고 문득 고개를 들었다가 강지연을 발견하자 얼굴빛이 확 바뀌더니 곧장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 다가왔다.“지연아.”그는 강지연의 어깨를 붙잡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얼굴을 본 그는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강지연은 그의 어깨 너머, 흐릿하게 번진 시야 속에서 교회 안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관 위에 꽃 한 송이씩 내려놓는 모습을 보았다.그중에는 낯익은 사람도 있었다. 예전에 본 적 있는 세레니아 여관 주인이었다.“지연아...”그는 멍한 강지연의 눈을 바라보다가 품에 안으려 했지만 그녀는 있는 힘껏 그를 밀어내며 쉰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저기 누워 있는 사람 누구예요?”강시우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그 이름을 차마 꺼내지 못했다.“오빠는 왜 여기 있어요? 누가 죽었길래 오빠가 유족 대표로 추도사를 하는 건데요? 오빠 가족이면 내가 아는 사람이어야 하잖아요. 맞죠?”끝없이 쏟아지는 질문이 강시우를 궁지로 몰아넣었다.“오빠, 뭐라고 말 좀 해봐요.”강시우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미안하다, 지연아...”강지연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오빠는 누구한테도 미안할 필요 없어요. 오빠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오빠잖아요. 나는 그냥... 그냥 저 안에 누워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요...”강시우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온하준이야.”“하... 하하...”강지연은 사실 이미 그 답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이름을 정말로 듣는 순간 웃음 같은 것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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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2화

그는 편지를 강지연에게 내밀었다.“온하준 씨의 마지막 부탁까지 다 들어줬으니 저도 이제 제 임무를 다 마친 것 같네요.”“감사합니다.”편지를 받아 든 강지연은 봉투 위에 적힌 ‘강지연에게’라는 글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차마 뜯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강시우가 그녀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지금 당장 보기 힘들면 안 봐도 돼.”“난 영원히 안 볼 거예요.”강지연의 마음속에서는 시큰한 원망이 치밀어 올랐다.“그래. 그러면 영원히 보지 마.”강시우는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잠시 뜸을 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온하준은 그의 아버지랑 같은 병에 걸렸어. 다만 아버지보다 조금 더 일찍 발견한 거지. 그때 교통사고가 났을 때, 그 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 거야.”강시우는 강지연의 얼굴을 한 번 살폈다. 하지만 강지연이 아무 표정도 없자 오히려 손을 더 세게 감싸 쥐며 말을 이었다.“온하준이 부탁했어. 너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라고. 자기가 두 다리를 잃은 것도, 병에 걸린 것도 전부 말하지 말라고 했어. 그래서 혼자 숨어 지냈고 치료를 하면서 2년을 버틴 거야. 그런데 결국 그 병을 이기지는 못했어. 작년쯤에는 본인도 더는 안 된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 굳이 세레니아에 가겠다고 하더라. 거기 가고 얼마 안 돼서 바로 의식을 잃었고 내가 병원 중환자실로 옮겼어. 그렇게 중환자실에 1년 넘게 있다가 어제 세상을 떠난 거야.”흐릿한 의식 속에 두 개의 시점이 또렷하게 박혔다. 작년에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들어갔고 1년 뒤인 어제 죽었다.그제야 강지연은 어렴풋이 뭔가를 알 것 같았다.‘그래서였구나. 그래서 차유준이 그렇게 낯익게 느껴졌구나. 그래서 마지막에는 강지연이 차유준과 함께하게 되었구나. 그래서 어제 꿈속에서 본 차유준이 그렇게 이상한 반응을 보였구나.’“다음 생이 있다면 난 정말 그 사람 소원을 하나하나 다 이루어주고 싶어.”“하하하...”강지연은 다시 한번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눈가가 자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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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3화

오후가 되자 강지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예정된 시간에 맞춰 극장 리허설에 나타났다.그리고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녀의 귓가에서 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맴돌고 있다는 사실을. 마치 주문처럼, 지워지지 않는 메아리처럼.“모든 불운은 내가 다 가져갈게. 앞으로 남은 네 삶에는 건강과 행복, 기쁨, 그리고 수많은 아름다운 일들만 가득할 거야.”“지연아, 지난날은 모두 잊고 앞만 보고 용감하게, 행복하게 걸어가. 다시는 뒤돌아보지 말아 줘. 알겠지?”“지연아, 이제 안녕.”리허설이 끝나고 진이 빠진 채 무대 위에 드러누웠을 때, 그제야 그녀는 마음속에서 조용히 울리는 대답을 들었다.‘그래, 안녕. 나는 앞만 보고 걸어갈게. 다시는 뒤돌아보지 않을게.’강지연은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다짐했고 정말 그렇게 했다.공연이 끝난 뒤 그녀는 민다혜 일행과 함께 미련 없이 돌아갔다. 그 후로도 강지연은 거의 매년 한 번씩 세레니아를 찾았다.여름이든 겨울이든 언제나 더블린에서 교류 일정을 마친 뒤 잠깐 들렀다가 떠나는 식이었다.그녀는 알고 있었다. 한때 이곳에 내려앉았던 눈송이가 아무 소리 없이 사라졌음을.그렇다면 그것으로 된 일이었다.그가 말한 것처럼 인연과 업보는 눈이 녹아 사라지는 것처럼 끝나면 되는 거였고 그 뒤는 존재하지 않는 거였다.가족들은 강지연이 툭하면 며칠씩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지 못하던 증세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고 무척 기뻐했다.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강지연이 그 뒤로 단 한 번도 다른 세계의 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는 걸.마치 온하준이 말했던 것처럼 모든 인연과 업보가 정말 끝나버린 것 같았다.그녀는 앞으로의 날들이 계속 이렇게 무난하고 건강하고 평온한 행복 속에서 이어질 거로 생각했다.그런데 사 년 뒤 여름, 고모가 정원에 심어둔 금잔화에 첫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하던 무렵 그녀는 또다시 꿈속에서 다른 시공간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그리고 이번에는 뜻밖에도 병원이었다.간호사 데스크 위에는 전자시계가 놓여 있었는데 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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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4화

“아마도...”온하준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도 이제 가야 할 때가 와서 그런가 봐.”“온하준, 너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마.”그는 아직 스물두 살이었다. 이렇게 빨리 죽을 리 없었다.온하준은 창백한 얼굴로 처연하게 웃었다.“혹시 그런 생각 안 해봤어? 나는 원래 스물두 살까지만 살 운명이었던 거 아닐까 하고.”“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강지연은 목소리를 높였다. 적어도 다른 세계의 그는 서른을 훌쩍 넘길 때까지 살았다.“네가 그때 온하준을 구하지 않았더라면 걔는 스물두 살에 차에 치여 죽었을지도 모르잖아.”온하준은 마치 남의 일 이야기라도 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강지연은 그대로 말문이 막혔다. 그 추측을 반박할 수가 없었다.그런데 문제는 이 사람이 어째서 다른 세계의 일을 알고 있느냐는 것이었다.“너만 꿈꾸는 줄 알아? 나도 꿈꿔...”그는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고 고통이 얼굴에 그대로 배어 나왔다.“온하준!”강지연은 무슨 꿈을 꿨는지 묻고 싶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에 다급하게 주변을 살펴봤지만 이 일인실 안에는 정말 온하준 혼자뿐이었다.“옆에 아무도 없어? 간호해 주는 사람도?”온하준은 숨을 고르며 힘겹게 말했다.“나... 이제 가족이 없어...”강지연의 눈시울이 시큰해졌다.‘아, 온하준을 유일하게 사랑해 주던 할머니도 세상을 떠났다고 했지.’“내가... 내가 간호사 불러올게.”강지연이 몸을 돌려 나가려는 순간, 온하준이 다시 그녀를 불러세웠다.“소용없어. 간호사는 너를 못 봐.”“그럼 어떡해? 뭐가 필요해?”혹시라도 자기가 애를 쓰면 온하준을 조금은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고개를 들어 강지연을 바라보는 온하준의 눈가가 붉게 젖어 있었다.“손... 잡아주면 안 돼?”강지연이 멈칫한 채 가만히 있자 그는 다시 처연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싫으면 말고.”“아니... 그런 게 아니라...”강지연은 창백하고 마른 온하준의 손가락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자기 손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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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5화

강지연이 그의 자세를 바로잡아주려고 몸을 기울이는 순간, 온하준이 팔을 뻗어 그녀의 목덜미를 감싸안았다.그 손길에는 힘이 있었다. 아주 가늘고도 미약한 힘이었지만 분명한 힘이었다.“지연아, 놀라게 해서 미안해.”숨결처럼 가는 온하준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바짝 붙어 흘러들었다.“아니야, 괜찮아...”강지연은 움직이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그 한마디를 끝으로 손을 놓았고 강지연의 몸도 다시 허공으로 밀려 올라갔다.“난 이제 괜찮아. 그러니까 가.”그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희미했다.“응?”강지연은 멈칫했다.‘가라고?’“네 세계로 돌아가. 네가 있던 그 세계의 온하준은 정말 형편없는 인간이었잖아. 그러니까 넌 절대로, 영원히 그를 용서하지 마... 난... 오늘 너를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매우 기뻐. 지연아, 한 번만 더 너를 지연이라고 불러도 될까?”“그래...”온하준의 말에 무슨 말로, 어떻게 그를 위로해야 할지 몰라 고작 대답밖에 할 수 없었던 강지연은 자기 언어가 얼마나 초라하게 비어 있는지를 절감했다.십수 년이 지나도 고치지 못할 병이었으니 지금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외롭지만 총명했던 온하준은 자기가 무슨 병에 걸렸는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듯했다.“지연아, 지연아...”그는 마치 재미있는 단어라도 찾은 사람처럼 자꾸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나... 아직 여기 있어.”강지연은 끝내 목이 메었다.“지연아...”온하준이 낮은 목소리로 힘겹게 말을 이었다.“나중에 온하준을 만나더라도 좋아하지 마. 가까이 가지도 마. 차라리 모르는 사람처럼 지나가. 알겠지?”“나중에? 온하준?”다른 세계의 온하준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 그녀와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내 말은... 앞으로 꿈에서든, 다음 생에서든, 아니면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든, 네 삶에 온하준이라는 사람이 나타나면 그게 어떤 온하준이든 다 멀리해. 영원히 모르는 사람으로 지내. 알겠지?”강지연은 입술을 살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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