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Chapter 861 - Chapter 870

966 Chapters

제861화

“중현이 정말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면 너희가 이렇게 나오진 않을 텐데.”도현은 강 비서를 바라봤다. 안경 너머의 눈에는 날카로운 관찰과 의심이 담겨 있었다. “적어도 지금처럼 태평하진 않았겠지.”“그건 대표님이 잘못 보신 겁니다.” 강 비서가 바로 정정했다.“뭘 잘못 봤는데?”“동생분이 아무 지시도 안 남겼기 때문에 저희가 이렇게 있는 겁니다.” 강 비서는 진심을 털어놓는 사람처럼 말했다. “정말 지시가 있었다면 맡긴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느라 이렇게 편하게 있지 못했겠죠.”도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사실일 수도, 잘 꾸며 낸 말일 수도 있었다.지금 당장 어느 쪽인지 가려내기는 어려웠다.“게다가 이건 대표님의 집안싸움 아닙니까? 머리가 있는 사람이면 괜히 끼어들지 않는 게 맞습니다.” 강 비서는 아주 진지한 어조로 속내를 말하는 척했다. “솔직히 말해서 대표님과 동생분이 싸워 동생분이 이기면 저희는 풀려나서 다시 일하면 됩니다. 동생분이 지더라도 어차피 나가게 될 테니, 그때는 다 같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되고요.”도현은 사람 속까지 꿰뚫어 보려는 눈으로 강 비서를 바라봤다.강 비서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도현의 시선을 맞받았다.둘 사이에 말 없는 침묵의 시간이 길어졌다.몇 분에 불과한 시간이 끝도 없이 길게 늘어져 영원할 것 같았다.그러다 마침내 도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중현이는 기억을 잃었잖아.”“그래서 저희는 여기서 기다리는 겁니다.”강 비서의 대답에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 “오랫동안 기억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때는 저희 셋도 다른 살길을 찾아야겠죠.”“그럼 실컷 기다려.” 더 캐낼 게 없다고 판단한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하는 대로 되면 좋겠네.”“감사합니다.”도현은 그대로 걸음을 옮겼다.두어 걸음 가다 무언가 떠오른 듯 멈춰 선 도현은 비서에게서 서류 한 부를 받아 강 비서 앞에 내밀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느리고 차분했다. “앞으로 한동안 중현이 공들여 키워 둔 사람
Read more

제862화

상진은 중현 쪽을 한번 바라봤다. 검은 재킷을 걸친 상진은 짧은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했고, 목에는 값비싼 남성용 목걸이를 걸고 있었다.평소의 무겁고 딱딱한 분위기는 조금 덜어내고, 대신 젊고 자유분방한 느낌이 더해져 있었다.[전부 정상.] 상진은 도현에게 답을 보낸 뒤 핸드폰을 넣었다.“강솔 있는 데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해?” 중현이 물었다.“집으로 안 가.” 상진은 마중 나온 전용 차량의 문을 열며 말했다. “회사로 갈 거야.”중현이 눈을 살짝 들었다. 무언가 물으려 했지만 기사가 먼저 뒷문을 열어 주자 말을 삼키고 차에 올랐다. 아연은 당연하다는 듯 중현 옆자리에 앉았다.차 문이 닫히자, 아연이 중현의 팔을 끌어안으며 살짝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비행기에서도 계속 강솔 얘기만 하더니 지금도 또 묻네. 그렇게 강솔이 좋아?”중현은 티 내지 않고 몸을 움직여 아연의 손길을 피했다.중현의 팔을 잡지 못하고 허공에 손을 두른 아연은 잠깐 굳었다.중현을 올려다보는 눈에는 상처받은 기색이 담겼다.“미안해.” 중현은 차분하고 예의 있는 태도로 아연과 눈을 맞추며 방금 행동을 설명했다. “아직은 너랑 이렇게 가까이 닿는 게 불편해.”“나는 네 여자 친구야.” 아연이 강조했다.“그 사실을 증명할 방법이 없잖아.” 중현은 철저히 이성적으로 따졌다. 깨어난 뒤 머릿속에 떠오른 기억은 아연이 여자 친구라고 말하고 있었지만, 몸이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건 중현도 어쩔 수 없었다.“둘이 같이 찍은 사진도 없고, 주고받은 메시지도 없고, 서로 선물하거나 같이 결제한 기록도 없어.” 중현은 하나씩 되짚었다.“맨날 같이 있었는데 무슨 메시지가 필요해.” 아연이 반박했다. 기억까지 잃었는데도 중현이 여전히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을 줄은 몰랐다. “사진 찍기 싫어하는 것도 너잖아. 내가 억지로 찍을 수는 없지.”중현은 대꾸하지 않았다.아연이 다시 물었다. “네 부모님, 형, 친구, 주변 사람들 말까지 전부 못 믿겠다는 거야?”“응.”
Read more

제863화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차는 곧 의강소프트웨어 건물 앞에 도착했다.상진은 조수석에서 내려 턱으로 건물을 가리켰다. “강솔은 저 위에 있어. 가자.”“온다고 미리 연락했어?” 중현이 물었다.상진은 태연하게 거짓말했다. “응.”“그쪽에서는 만나는 것도 허락했고?”“응.”중현의 유일한 걱정이 사라졌다. 상진과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가던 중 옆을 따라오는 아연을 봤지만, 여러 번 생각한 끝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아직 무엇이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일단 직접 보고 판단하기로 했다.강솔은 세 사람이 회사로 찾아올 거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원래 일정대로라면 지금쯤 자신이 투자한 다른 회사를 방문해 현황을 살펴보고 있어야 했다. 하지만 가는 길에 의강소프트웨어 매니저에게서 여러 직원이 한꺼번에 퇴사 의사를 밝혔다는 전화를 받았다.그 바람에 급히 회사로 돌아왔다.현재 강솔은 퇴사를 원하는 직원들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편하게 말해 보세요. 왜 퇴사를 생각하게 됐어요?”제품기획팀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시선은 퇴사를 신청한 직원 스무 명에게 향해 있었다. “여러분에 대한 회사의 대우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휴가 신청도 비교적 자유로웠고, 법정 공휴일 외에 회사가 별도로 주는 휴일도 있었다.각종 복지와 처우도 빠지는 게 없었다. 회사가 거의 문을 닫을 뻔했던 시기에도 나가지 않던 사람들이 정작 중요한 프로젝트를 앞두고 동시에 퇴사하겠다고 하니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직원들은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하세요. 눈치 볼 필요 없습니다.”강솔은 회의실 상석에 앉아 있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저는 각자 선택을 존중해요. 다만 그 선택이 정말 본인에게 좋은 건지는 한번 같이 따져 보고 싶습니다.”“요즘 너무 지쳐서 더는 버티기 힘듭니다.” 한 직원이 먼저 말했다.강솔은 바로 답했다. “그럼 쉬어요. 유급으로 3일 휴가 드릴게요.”
Read more

제864화

“하지만...”똑똑-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LIS 시스템을 담당하는 서다은이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제품기획팀장도 안에 있는 걸 보고 먼저 인사를 한 뒤 강솔에게 말했다. “대표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두 분 먼저 얘기하세요.” 제품기획팀장은 바로 자리를 비켰다.한꺼번에 퇴사하는 사람이 많아 지금부터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제품기획팀장이 나가자 강솔은 다은에게 앉으라고 한 뒤 물 한 잔을 따라 앞에 놓아줬다. 살짝 농담하듯 물었다. “설마 다은 씨도 퇴사하겠다고 얘기하러 온 건 아니죠?”“아니요, 아니요.” 다은이 급히 부정했다.강솔은 조금 안심했다.다은이 뒤의 말을 붙였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릴 일도 이번 퇴사랑 조금 관련은 있어요.”강솔은 바로 다은을 바라봤다. 감정이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는 기분이었다.일반 직원이 빠지는 건 돈을 충분히 써서 새 인력을 채용하면 어느 정도 메울 수 있었다. 일정이 조금 늦어질 수는 있어도 방법이 있었다. 하지만 각 시스템을 책임지는 팀장급 인력이 나가 버리면 진행 속도가 절반 이하로 떨어질 수 있었다.그렇게 되면 프로젝트를 약속한 날짜에 납품할 수 있을지조차 장담하기 어려웠다.더구나 다은은 성장 가능성이 큰 사람이었다. 강솔도 장기적으로 직접 키워 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저... 다른 직원들이 왜 퇴사하려는 건지 대충 알 것 같아요.”다은은 고민 끝에 아는 내용을 전부 털어놨다. “어제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어떤 회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연봉을 많이 올려 줄 테니 이직하라고 하더라고요. 회사 공식 메일로 오퍼까지 보내왔고요.”강솔의 움직임이 잠깐 멎었다.어젯밤 도엽이 자신에게 물었던 말이 떠올랐다.“메일 여기 있어요. 한번 보세요.” 다은이 핸드폰을 내밀었다.강솔이 메일을 열어 보니 상장사의 공식 도메인 메일을 통해 보낸 채용 제안이었다.회사 이름을 한동안 바라보던 강솔은 기억 속에서 그곳의 정보를 찾아냈다. 도엽 명의로 운영되는 상장사
Read more

제865화

홍일은 강솔의 뜻을 조금 다르게 포장해 중현 일행에게 전달했다. 표정은 진지했고 목소리도 평온했다. “강 대표님은 지금 자리에 안 계십니다. 세 분은 돌아가 주십시오.”중현은 의문스러운 눈을 했다.상진과 아연도 동시에 홍일을 바라봤다.세 사람의 시선은 곧 응접실 바깥으로 향했다.뜻은 분명했다. 들어올 때 안내데스크에서는 강솔이 회의 중이니 응접실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고 했었다.홍일이 태연하게 물었다. “다른 문제 있으십니까?”아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몇 달 전보다 말투가 훨씬 차분해져 있었다. “정말 여기 없는 거야, 아니면 우리를 만나기 싫다는 거야?”홍일은 원래 지나치게 솔직한 사람이었다. 가장 담담한 말투로 가장 약 오르는 대답을 내놓았다. “정확한 이유가 필요하시면, 강 대표님은 세 분 얼굴을 보면 구역질이 나고 속이 뒤집힐 것 같아서 심신 건강을 위해 만남을 거절하신 겁니다.”“우린 강솔 씨랑 간단히 얘기할 게 있어서 왔어.” 상진이 말했다.홍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상진은 더 할 말을 잃었다.아연은 처음부터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중현을 한번 봤다.고민하던 아연은 결국 홍일을 지나쳐 밖으로 나가려 했다. 오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강솔을 만나겠다는 태도였다.홍일이 앞을 막았다. “소아연 씨, 어디 가십니까?”아연은 대충 핑계를 댔다. “화장실.”홍일이 바로 말했다. “거짓말입니다.”아연이 황당하다는 듯 봤다. “뭐?”홍일은 아주 진지했다. “방금 눈을 보니 화장실이 아니라 강 대표님을 찾으러 가실 생각이었습니다.”아연은 홍일을 빤히 쳐다봤다. 그제야 눈앞의 반듯한 인상인 남자가 강솔 곁에서 경호를 맡는 실력 좋은 사람이라는 게 떠올랐다.“맞아. 강솔 찾으러 갈 거야.” 아연은 순순히 인정하고 홍일에게 두 걸음 다가갔다. “네가 날 막을 수 있어?”말을 하며 아연은 일부러 몸을 움직여 홍일의 팔에 가까이 붙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여자가 이렇게 다가올 때 괜히 닿지 않으려고 반사적으
Read more

제866화

신동은 웃었다.‘전남편이 양심은 조금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운이 참 없다고 해야 하나.’“중현아...” 아연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도현이 따로 당부한 일을 잊지 않고 있었다. 어렵게 소송 문제에서 벗어나 도현과 거래까지 했다. 이번에도 실패할 수는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아연의 부모는 다시 딸을 붙잡고 늘어질 것이다.겨우 빠져나온 지옥 같은 생활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다.“진짜 여자친구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신동은 일부러 말을 이어 갔다. 얼마 전 강솔이 큰마음을 먹고 중현을 찾아갔다가 차갑게 거절당했다는 걸 안 뒤로는 중현에게 좋은 감정이 없었다.중현이 신동을 바라봤다. “무슨 뜻이야?”“하 대표님이 강 대표님과 이혼한 이유에는 이 여자친구의 영향이 꽤 컸습니다.” 신동은 마지막 ‘여자친구’라는 표현을 유난히 또렷하게 눌러 말했다.중현의 미간이 좁혀졌다.신동의 말이 바로 이해되지는 않았다.“쉽게 말하면 집에는 아내를 두고, 밖에서는 다른 여자까지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강솔 곁에서 일한 시간이 쌓이며 신동도 과거 일을 꽤 많이 알게 됐다. “욕심 사납게도 둘 다 가지려고 하셨던 거죠.”중현은 선뜻 믿지 않았다. 대신 더 정직해 보이는 홍일 쪽을 본능적으로 바라봤다.홍일은 망설이지 않고 한마디했다. “맞습니다.”“난 강솔을 직접 만나야겠어.” 중현은 눈앞의 말을 바로 믿기보다 당사자인 강솔을 직접 보고, 강솔의 입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신동이 단호하게 말했다. “강 대표님은 하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두 사람은 한동안 물러서지 않았다.응접실 안의 분위기도 차츰 무거워졌다.상진이 적당한 때 끼어들었다. “그냥 강솔 씨 집에 가서 기다리자. 받아들일 시간도 필요하겠지.”중현이 상진을 봤다. “아까 강솔한테 얘기해 놨다며?”상진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신동은 출입문 쪽을 손으로 가리켰다. “그럼 이제 나가 주시죠.”상진이 중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일단
Read more

제867화

강솔의 몸이 아주 잠깐 굳었지만 대답은 하지 않고 그대로 안쪽으로 걸어갔다.중현의 시선은 강솔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강솔이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된 뒤에도 한동안 같은 곳을 바라봤다.신동이 출입문을 가리켰다. “나가 주시죠. 보안팀 사람들한테 끌려 나가고 싶지는 않으실 테니까요.”이번에는 중현도 드물게 순순히 따랐다.상진, 아연과 함께 아래로 내려가 차에 올라탔을 때도 중현의 심장은 아직 빠르게 뛰고 있었다.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말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했다. 자신은 강솔을 좋아했다. 머리는 기억하지 못해도 심장이 먼저 답을 내렸다.“중현아...”아연도 차에 올라탔다.중현의 검은 눈이 아연에게 향했다. 사람 자체가 전과 달라진 듯했고 목소리에도 훨씬 분명한 거리감이 생겼다. “넌 앞에 앉아.”아연은 이해하지 못했다.상진도 중현을 바라봤다.두 사람은 믿기 힘들다는 눈이었다.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보였다.아연이 움직이지 않자 중현은 차 문을 열고 내려 조수석으로 갔다. 거기 앉아 있던 상진을 직접 끌어내리는 태도는 기억을 잃기 전의 중현이 다시 돌아온 듯 거침없었다.상진이 황당해하며 물었다. “뭐 하는 거야?”“네가 아연이랑 같이 앉아.” 중현은 이미 조수석에 앉아 안전벨트까지 맸다. “앞으로 며칠 동안도 아연이를 같이 데리고 다닐 거면 아연이 앞에 앉든지, 둘이 뒤에 같이 앉든지 해.”“아연이는 네 여자친구잖아.” 상진은 최대한 말이 되게 설득하려 했다. “내가 아연이랑 같이 앉는 건 좀...”“아니야.” 중현의 말에는 확신이 있었다.상진의 말이 끊겼다.아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때 아연은 한 가지를 선명하게 깨달았다.‘하중현이 먼저 만난 사람이 나였든 강솔이었든, 결국 좋아하는 사람은 강솔이었겠구나.’상진은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설마 강솔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는 소리는 아니지?”
Read more

제868화

상진은 도현이 짜 둔 이야기대로 연기하기 위해 중현을 한번 몰아붙였다. “멍하니 뭐 해. 빨리 아연이 따라가야지.”중현은 기사에게 말했다. “출발해 주세요.”기사가 답했다. “네.”상진은 더 말하지 못했다.결국 포기한 듯 뒷문을 열어 차에 탔다.차가 1킬로미터 넘게 달리는 동안에도 중현이 차를 돌리라는 말을 하지 않자 상진이 물었다. “진짜 여자친구를 길에 혼자 버려두고 가는 거야?”중현은 느긋하게 받아쳤다. “귀가 쓸모없으면 떼 버리든가.”“아연이가 화나서 볼일 있다고 한 거잖아. 설마 그것도 못 알아들은 건 아니지?” 상진은 정해진 역할을 계속 이어 갔다. “남자친구가 너처럼 굴기도 쉽지 않다.”중현은 대꾸하지 않았다.아연이 두 사람 관계를 증명할 수 있는 물건이나 기록을 하나라도 제대로 보여 줬다면 중현도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하지만 깨어난 뒤 지금까지 아연이 보여 준 건 지갑 속 사진 한 장과 최근에 새로 만든 듯한 몇 줄의 대화 기록이 전부였다. 아연은 핸드폰을 바꿔서 예전에 주고받은 메시지가 없다고 했고, 중현의 기존 핸드폰도 사고 때 망가져 기록이 사라졌다고 했다.우연이라고 보기엔 맞아떨어지는 일이 너무 많았다. 믿어 보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더구나 강솔을 직접 본 뒤에는 몸의 반응이 먼저 답을 내렸다.중현은 화제를 바꿨다. “이따 강솔은 나 혼자 만나면 돼. 넌 다른 데로 가 있어.”상진이 눈을 들어 중현을 바라봤다. 눈에 생각이 깊어졌다.혹시 기억이 조금이라도 돌아왔는지 묻고 싶었지만 괜히 경계하게 할까 봐 참았다.“도현이 나한테 너 잘 챙기라고 했어.” 상진은 티가 나지 않게 예전처럼 부르는 방식도 자연스럽게 맞췄다. “너 혼자 낯선 데 다니다가 누가 속여 먹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중현은 옆으로 고개를 돌려 상진을 한번 봤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솔은 신동과 홍일에게서 중현이 자신의 집까지 찾아갈 생각이라는 걸 뒤늦게 들었다.“정확히 뭐라고 했는데?” 강솔이 물었다.홍일
Read more

제869화

모든 설명을 마친 아연은 현재 상황까지 덧붙였다. “하도현이 시킨 대로 계속 연기하고는 있어. 그래도 중현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날 여자친구로 받아들인 적 없어. 여자친구라고 하는데도 몸을 가까이 닿으려고 하지도 않고.”강솔이 물었다. “그 이야기를 왜 나한테 해?”“한번 걸어 보려고.” 아연이 답했다.강솔의 눈에 의문이 떠올랐다.“요즘 네가 예전에 나한테 했던 말을 계속 생각해 봤어.”아연이 하는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이 선택이 맞는지 계속 고민했는데, 오늘 너 보고 확실해졌어.”강솔은 더 이해하지 못했다. 앞뒤 설명이 부족한 말이라 무슨 뜻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그냥 내가 어느 편인지 보여 주는 증거라고 생각해.”아연은 돌려 말하지 않았다. “너희랑 하도현 중에서, 난 너희가 이길 쪽에 걸겠어.”H시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계속 고민했다. 자신과 중현의 실제 관계를 강솔에게 알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알려 주면 도현이 알아챘을 때 아연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그렇다고 숨기면 강솔과 중현이 서로 오해하며 엇갈리는 모습을 또 지켜봐야 했다. 그것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아연은 같은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특히 중현이 강솔을 본 뒤 태도가 크게 달라지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선택에 더 확신이 생겼다.“가능하면 이 이상한 연극을 빨리 끝냈으면 좋겠어.”아연은 진심으로 말했다. “이 역할 오래 하고 싶지도 않고, 솔직히 피곤하고 재미도 없어.”강솔은 여전히 대답하지 않았다.하지만 아연이 뒤에 말하지 않은 뜻까지 이해했다.진실을 알려 주기는 했지만 도현과 약속한 게 있는 이상, 당분간은 계속 첫사랑이자 여자친구인 척해야 한다는 뜻이었다.“너희 여기 얼마나 있을 거야?” 강솔이 물었다.“그건 중현한테 물어봐야 해.” 아연은 사실대로 답했다. “우리 일정은 중현이 뭘 하겠느냐에 달렸어.”할 이야기를 모두 끝낸 뒤, 아연은 오래 머물지 않고 돌아갔다.아연이 회사 밖으로 나가는 걸 본 신동이 궁금함을 못
Read more

제870화

[강솔?]중현은 바로 전화받았다. 낮고 부드러우면서도 울림 있는 목소리였다.강솔은 곧바로 본론부터 물었다. “지안이는 지금 어디 있어?”중현은 서재에서 숙제하고 있는 아이를 한번 바라봤다.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느긋하게 물었다. [지안이 걱정하네. 혹시 내가 예전에 너랑 양육권 놓고 싸운 적 있어?]강솔은 말이 막혔다. 실제로 중현이 양육권을 빼앗으려고 한 적은 없었다.다만 지금의 중현이라면 갑자기 그러겠다고 나올까 봐 조금 걱정됐을 뿐이다.[지금 네 집에 있어.]중현이 먼저 상황을 알려 줬다. [네 부모님이 들어오라고 하셨어.]강솔은 그제야 지안에 대한 걱정을 조금 내려놓았다. 대신 다른 문제들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중현이 물었다. [왜 말이 없어?]강솔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중현에게 더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강솔이 집에 도착한 건 30분쯤 뒤였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중현이 이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긴 다리로 몇 걸음 만에 강솔 앞까지 온 중현은 강솔이 말하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받아 들었다.중현이 얇은 입술을 열었다. “가자. 저녁 식사 준비가 거의 다 됐대. 손만 씻고 바로 먹으면 된다고 하더라.”강솔은 어리둥절했다.신동과 홍일도 중현을 이상하게 바라봤다.세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어째서 중현이 이 집 주인이고 자신들이 손님인 것 같은지 알 수 없었다.강솔은 잠깐 중현이 사실 기억을 잃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하지만 시선이 마주치자 바로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중현은 예전의 중현이 아니었다. 지금의 중현은 정말 강솔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강솔을 바라보는 눈에는 예전에 얽혀 있던 복잡함이나 무거움이 없었다. 대신 훨씬 단순한 감정만 담겨 있었다.하나뿐인 감정.숨기지 않는 곧은 감정.서무진과 관련된 일이 마음을 짓누르기 전의 사람처럼 보였다.“아가씨?”“흠흠.”홍일과 신동이 옆에서 강솔을 불러 정신을 돌려놨다.강솔은 곧 정신을
Read more
PREV
1
...
8586878889
...
97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