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Chapter 121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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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1화

너무 귀여워서 안아주고 뽀뽀해 주고 싶었다.유지원이 언니라고 부르자 허아연은 마음이 사르르 녹으며 아이에게 말하는 투로 말했다."지원이, 언니 보러 와줘서 고마워."유지원은 문에 기대어 작은 손으로 손잡이를 잡은 채 앳된 목소리로 물었다."나 언니랑 같이 놀아도 돼요?"허아연이 시간을 확인하니 11시 40분이었다. 어차피 오전 업무도 다 끝난 터라 유지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허락을 받은 유지원이 그제야 사무실 문을 활짝 열고 기뻐하면서도 수줍은 듯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허아연의 책상 앞까지 와서 까치발을 들더니 초콜릿 몇 알을 책상 위에 올려놨다."언니 주는 거예요."어린 아이가 초콜릿을 선물로 가져온 걸 본 허아연이 활짝 웃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며 아이는 정말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허아연은 책상 앞에서 일어나 유지원 옆에서 같이 놀기 시작했다.다섯 살 반이라 아직 어린 유지원은 허아연과 얘기하려면 고개를 한껏 젖혀야 했다. 허아연은 유지원 앞에 쪼그리고 앉아 눈을 맞추며 얘기했다.한없이 부드러웠다.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이야기가 잘 통했다.그때, 위층에서 유건희와 얘기를 마무리하고 배웅을 받으며 아래층으로 내려온 주현우는 허아연 사무실 쪽으로 걸어갔다.사무실 문 앞에 도착한 순간, 허아연이 유지원 옆에 쪼그리고 앉아 같이 노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고개를 들어 유지원을 바라보는 허아연의 반짝이는 눈에 다정함과 애정으로 가득했다. 순간 문을 밀려던 주현우의 손이 멈췄다.허아연이 엄마가 된다면 정말 따뜻하고 좋은 엄마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엄마를 일찍 여읜 만큼 자신이 받지 못한 모성애를 아이한테 다 쏟아줄 것 같았다. "주 대표님.""주 대표님."주현우는 문 앞에서 꼼짝 않고 사무실 안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러다 스타라이트 직원들이 인사를 하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허아연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유지원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허아연이 노크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주현우가 온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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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허아연은 손에 든 본인 잔에도 차를 따랐다. 아이를 몇 명 낳자는 주현우의 말에 차를 마시다 그만 뿜을 뻔했다. 사레가 들려 얼굴과 귀까지 빨개졌다.허아연은 컵을 내려놓고 주현우를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화제를 돌렸다."전에 유 대표님과 얘기가 잘 되는 것 같던데 왜 계약을 안 한 거예요?"주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갑자기 변수가 생겨서 아직 얘기 중이야.""아." 허아연이 답하고 바로 물었다. "밥은 아직이죠? 주문해 줄게요.""아니야." 주현우가 시계를 확인하며 말했다.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그래요, 바쁠 텐데 방해하지 않을게요."허아연은 말하며 문 앞까지 배웅하고 나서 식당에 배달을 시켜 유지원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다음 날 오전.허아연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데 옆에 놓은 휴대폰이 울렸다.시선을 돌려 화면을 확인하니 오지은의 전화였다.아래층 카페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허아연은 사실 만나고 싶지 않았는데 오지은이 포기하지 않았다. "아연아, 내려오기 불편하면 내가 올라갈게."그 말에 허아연이 말했다."내려갈게요, 잠깐 기다려요."허아연은 전화를 끊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오지은이 스타라이트에 찾아오는 게 싫었다.저번에 왔을 때 오지은과 주현우가 딱 붙어 다닌 탓에 그 뒤로 며칠간 동료들의 동정 어린 눈빛을 받아야 했다. 허아연은 그런 동정이 불편했다.잠시 뒤, 허아연이 카페 유리문을 밀고 들어서자 안쪽 VIP 자리에서 오지은이 손을 흔들었다."아연아, 여기야."허아연이 걸어가 자리에 앉으며 라테를 주문했다.직원이 커피를 가져오자 허아연이 맞은편의 오지은을 보며 차분하게 말했다."지은 언니, 할 말 있으면 해요."허아연의 말에 오지은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스타라이트에서 갑자기 오성 그룹을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게 해. 그래서 현우가 지금 스타라이트와 계약을 못 하고 있어."그 말을 들은 허아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쩐지 그제 주현우가 계약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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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떠나는 허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오지은의 표정이 굳어갔다. 전에 알던 허아연이 맞아?아무 말도 없이, 아무런 반박도 없이 시키는 대로 다 하던 그 허아연이 맞나?정말 매정하네. ……카페를 나와 스타라이트로 돌아오던 허아연은 로비에서 마침 유건희와 마주쳤다."대표님."허아연이 깍듯하게 인사했다."네."유건희가 손에 들고 보던 자료를 덮으며 담담하게 허아연의 인사에 답했다. 엘리베이터 앞으로 간 허아연이 버튼을 누르자 문이 열렸다. 두 사람이 차례로 엘리베이터에 탔다.엘리베이터가 올라가는 동안 유건희가 말했다."지원이가 아연 씨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시간 나면 또 같이 놀고 싶다고 했어요."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지원이 너무 귀여워요, 아는 것도 많고요. 저도 같이 노는 게 재밌어요." 허아연이 화제를 바꾸며 물었다."그런데 대표님, 스타라이트에서 갑자기 오성 그룹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걸 거절했다는 건 왜예요?"이 일을 나서서 해결해 줄 생각은 없었다. 그냥 순수하게 유건희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는지 궁금했다.허아연의 물음에 유건희는 방금 누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인지 짐작 갔다.유건희가 자료를 든 두 손을 등 뒤로 모으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오성 그룹은 자격이 부족해요. 그리고 인생이 너무 완벽해서는 안 돼요. 오지은 씨는 다른 부분에서 충분히 행복하고 많은 걸 가지고 있을 테니 스타라이트 협력이 하나 빠진다고 해서 크게 아쉬울 건 없을 거예요."원래는 오지은과 주현우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날 밤 병원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던 순간, 허아연은 오지은의 눈빛을 봤는지는 몰라도 유건희는 똑똑히 봤다.오지은이 허아연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득의양양함과…… 도발로 가득했다. 그래서 마음을 바꾼 것이다. 유건희의 이유를 들은 허아연이 피식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대표님이 철학에도 일가견이 있으시네요."유건희가 허아연을 보며 물었다."설마 오성 그룹도 프로젝트에 넣어달라고 나한테 부탁하러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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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허아연의 말을 들은 주현우가 책을 넘기며 아무렇지 않은 듯 힐끗 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내가 서두르지 않는데 네가 뭐가 그렇게 급해?"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은 천천히 머리를 닦으며 바라봤다.혹시라도 허아연이 나쁜 마음을 먹고 주식을 가지고 튀는 게 전혀 걱정되지도 않는 모양이었다.한참 꼼짝않고 주현우를 바라보던 허아연은 더 이상 말이 없자 자리에서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한 번 더 말리고 자기 자리 쪽 침대에 조용히 앉았다.옆에 놓인 전공 서적을 들고 막 펼치려는데 주현우가 고개를 돌리고 덤덤하게 물었다."집 보러 갔었어?"주현우의 말에 허아연은 움찔하며 바로 고개를 돌렸다. 뚫어지게 바라봤지만 주현우는 크게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집을 사려는 진짜 의도는 미처 짐작하지 못한 채, 그냥 물은 듯했다. 사실 그날 허아연도 전서진이 어떤 여자와 같이 일 보러 온 걸 봤었다. 인사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전서진은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아서 따로 이사하지 않고 궁금한 정보만 확인하고 떠난 것이었다. 그날 일이 떠오른 허아연도 숨기지 않고 주현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보러 갔어요."다만 봐둔 집이 여러 채 있지만 아직 살 돈이 없었다.허아연이 솔직하게 인정하자 주현우가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더니 몸을 살짝 오른쪽으로 기울여 침대 협탁 서랍을 열었다.서랍 안에서 부동산 등기권리증을 꺼내 허아연에게 건넸다.주현우가 내민 부동산 등기권리증을 고개 숙여 확인한 허아연은 다시 주현우를 바라봤다. "이게 뭐예요?"이혼 얘기라면 등기권리증 하나만 내밀 게 아니라 합의서도 있어야 했다.허아연은 권리증을 받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주현우가 느긋하게 말했다."진짜 헤어지더라도 주식 10%까지는 못 줘도 그렇다고 빈손으로 나가게 하지는 않아." 주현우의 말에 허아연도 더 이상 토 달지 않고 등기권리증을 받으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고마워요."굳이 사양하지 않은 건 사양했다가 이혼 절차가 더 길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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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빨리 증손주를 보고 싶다면 오히려 허아연과 주현우의 이혼을 서둘러야 했다.허아연의 말을 들은 주현우가 고개를 들고 나른하게 말했다."허아연, 나 보면 이혼 말고 다른 생각은 없어?"주현우의 말에 허아연도 요즘 재촉하듯 이혼 얘기를 너무 자주 꺼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아연은 시선을 거두고 고개를 떨군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주현우와 똑같이 침대에 기대어 앉아 책을 펼쳤다.졸음이 밀려올 때쯤 허아연이 책을 내려놓으며 주현우에게 말했다."시간 늦었으니 현우 씨도 빨리 자요."그러다 결국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더 했다."절차 밟으러 갈 시간 최대한 빨리 내요. 절차만 끝내면 나도 다시는 얘기 안 할 거예요. 앞으로 재촉하는 사람도 없을 거고요."차분하게 말을 마치고 눈을 감는 순간, 주현우가 내려다보는 게 느껴졌다.허아연은 얇은 이불을 덮으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다만 속으로는 스타라이트와의 협력에 관해 주현우가 오성 그룹을 버리고 계속 진행할지, 아니면 오지은과 함께 포기할지 궁금하긴 했다. 옆에서 허아연의 말을 듣고 있던 주현우는 시간이 너무 늦어서 자려고 누운 것만 아니면 일으켜서 매일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따지고 싶었다. 한참 꼼짝 않고 허아연을 바라보던 주현우는 결국 말없이 리모컨으로 불을 끄고 책을 내려놓은 뒤 함께 침대에 누웠다.……다음 날 오후, 허아연이 사무실에서 데이터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데 주민경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출장에서 돌아왔다며 같이 밥 먹자는 것이었다.그동안 주민경이 너무 보고 싶었고 하고 싶은 말도 잔뜩 쌓였던 허아연은 바로 알겠다고 답했다.퇴근 시간이 되자 허아연은 야근하지 않고 짐을 챙겨 퇴근했다. 건물 밖으로 나오니 주민경의 차가 이미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허설아는 조수석 문을 열고 환하게 웃으며 차에 탔다.차가 출발하자 주민경이 회사 얘기, 업계 얘기를 쉴 새 없이 늘어놓았다. 조수석에 앉은 허아연은 진지한 표정으로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주민경 편을 들며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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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그리고 그동안 너무 지쳤어. 이제 그만하고 싶어."잠깐 말을 멈췄던 허아연이 다시 이어 말했다. "요즘 이직하고 나서 덜 답답한 것 같아. 이혼하고 나면 할아버지랑 같이 살지, 아니면 따로 집 구해서 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지금보다 훨씬 나을 것 같아."우울증 얘기는 주민경이 걱정할까 봐 지금까지 말하지 않았다.주씨 가문 사람들한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그냥 빨리 주현우와 이혼해서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었다.아마 아레아 베이 집에서는 살지 않을 것이다.그곳에는 힘들었던 기억, 숨 막혔던 기억이 너무 많아서 마주하고 싶지도,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허아연이 이혼을 고집하자 주민경이 말했다."넌 역시 성격이 옛날과 똑같아. 평소엔 죽도록 참다가 못 참겠다 싶어서 한번 마음 굳히면 소가 열 마리 와도 못 끌잖아.""근데 우리 오빠도 진짜 사람 진 빠지게 하는 건 맞아, 그러니 나도 말리지 않을 거야. 이혼하고 나면 내가 좋은 사람 소개시켜줄게. 우리 오빠 코 납작하게 만들어서 엄청 후회하게 만들 거야."주민경의 말에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알겠어, 나중에 남자친구 소개해 주길 기다릴게.""걱정하지도 마, 우리 오빠보다 백배는 나은 사람 데려올 테니까."얘기하던 주민경이 또 한숨을 쉬며 미간을 찌푸리고 말했다."넌 계획이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요즘 엄마, 아빠한테 치여 죽겠어, 맞선 보라고 난리도 아니야. 솔직히 너랑 오빠 보고 있으니까 결혼하기가 완전 싫어졌어."허아연이 주민경에게 반찬을 집어주며 달랬다."모든 결혼 생활이 우리 같은 건 아니잖아. 너희 부모님도 잘 사시고 다들 잘들 살아. 나랑 주현우 씨가 잘 못 지내는 건 그 사람이 나를 안 좋아해서 그런 거야.""주현우 씨도 나중에 좋아하는 사람 만나면 그땐 행복하게 살 거야."주민경을 달래려고 한 말이었지만 왠지 좀 쓸쓸했다.결국 자기 상처를 스스로 드러낸 셈이니까.허아연의 말을 듣던 주민경이 손을 저었다."됐어, 아연아. 나한테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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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허아연이 국을 한 모금 마시며 조용히 말했다."나 게임 못 해. 그리고 너희 오빠도 거기 있을 테니 안 갈게."금요일이라 주현우도 있을 것이고 십중팔구 오지은도 있겠지. 굳이 끼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결혼하고 나서 몇 년 동안, 단체 활동에 참가하는 일이 드물었다. 주현우가 못마땅해하는 바람에 다 같이 모이는 자리는 의도적으로 피했다. 마지막으로 다 같이 식사를 한 건 전서진 생일이었다.그날, 우연히 주현우와 전서진이 베란다에서 나누는 대화를 듣다가 그때 주현우가 이혼 합의서에 사인을 하지 않은 이유가 재산 분할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허아연이 핑계를 댄다는 걸 눈치챈 주민경이 대놓고 말했다."아연아, 오지은 때문에 분위기 어색할까 봐 그런 거잖아. 넌 우리 오빠랑 당당한 부부야. 오지은 그 뻔뻔한 게 오빠한테 달라붙어서 인맥 좀 넓히려고 기웃거리는 건데 네가 왜 어색해 해?""난처해야 할 사람은 오빠랑 오지은이야, 네가 아니라. 나였으면 가서 개 같은 것들 기를 확 눌러버렸을 텐데." 화나면 자기 가족이고 뭐고 없는 주민경 덕에 허아연은 그만 웃음이 터졌다. 허아연이 뭐라고 대답할까 생각하고 있는데 전서진한테서 전화가 왔다."아연아, 민경이랑 같이 밥 먹고 있지? 내일 주말이니까 이따 민경이랑 같이 와서 좀 놀다 가."전서진의 초대에 허아연이 고개를 들어 맞은편 주민경을 보자 주민경이 바로 말했다."대답해."주민경의 단호한 말에 허아연이 시선을 거두고 말했다."알겠어요, 서진 씨. 이따 민경이랑 같이 갈게요."전서진은 허아연에게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고 전화를 끊었다.테이블 맞은편에 있던 주민경은 허아연이 동의한 걸 보더니 말했다. "그래야지. 나중에 오빠랑 이혼하고 나서도 계속 피하면서 살 거야? 친구들 다 버릴 거야?"주민경의 기세등등한 말에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맞아, 맞아. 앞으로 다 주민경 말대로 할게."주민경 말에 맞춰주긴 했지만 사실 주현우와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주현우를 피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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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비록 허아연한테 가서 주현우와 오지은 기를 죽여놓으라고 했지만 뒤에서 몰래 전서진한테 문자를 보내 더러운 꼴 보기 싫으니 처리하라고 했었다.전서진은 걱정말라며 오지은이 없다고 했다.그런데 막상 문을 열자마자 오지은이 주현우 옆에 떡하니 앉아 있었으니 주민경 표정이 좋을 리가 없었다.옆에 있는 허아연은 주현우와 오지은을 보고 아무런 감정 변화도 없이 모든 걸 내려놓은 듯 시선을 돌렸다. 이런 상황을 예상했고 보는 것도 익숙했다.보드게임 테이블 쪽에서 허아연과 주민경이 들어오는 걸 본 전서진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맞이했다.주민경이 다가오는 전서진을 보고 팔짱을 낀 채 오지은을 싸늘하게 흘겨보며 퉁명스럽게 물었다."이게 어떻게 된 거야?"전서진이 해명하듯 말했다. "원래 없었는데 네 오빠한테 전화하더니 알아서 온 거야."말하며 두 사람을 앞으로 밀었다. "가자, 가자. 일단 가, 가서 얘기해."마지못해 밀려가는데 오지은이 두 사람이 들어오는 걸 보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아연이랑 민경이 왔네, 어서 앉아."허아연은 별 감정 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대신했다. 주민경은 대놓고 오지은을 흘기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때 심유환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민경한테 자리를 양보했다. 주민경이 테이블에 앉자 주현우는 그제야 두 사람에게 눈길을 주고 허아연에게 무덤덤하게 인사했다. "오늘 야근 안 했어?"주현우의 인사에 허아연은 짧게 "네" 하고 대답하며 주민경 옆에 자리를 잡았다.보드게임 테이블을 왁자지껄했지만 전서진은 허아연이 옆에서 심심할까 봐 직원한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잔뜩 가져오라고 했다. 또 허아연을 작은 테이블 쪽으로 불러 이야기를 나눴다.주로 허아연 업무 얘기였다.보드게임 테이블 쪽에서 주현우는 가끔 허아연을 쳐다봤다. 전서진과 신나게 얘기하며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걸 보자 신경이 쓰였다. 허아연이 저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은 주현우만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절대 저런 웃음을 보여주지 않았다.주현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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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복도의 어둑어둑한 노란 조명이 두 사람을 비추었고 누구 하나 밀리지 않아 보였다. 오지은도 더욱 빈틈없고 능수능란하게 보였다.허아연은 오지은의 인사치레를 듣고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지은 언니 다른 일 없죠? 없으면 먼저 들어갈게요.""응, 없어. 같이 들어가자."오지은은 말하며 허아연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자정이 넘은 시각, 허아연이 작은 티 테이블에서 꾸벅꾸벅 조는 걸 보고 나서야 주현우가 판을 끝냈다.주민경은 그 소리에 기지개를 쭉 켜며 돈을 세어보더니 오늘 밤 졌다며 투덜거렸다. 돈에 눈이 반짝이는 주민경을 본 주현우는 자기 서랍의 돈을 전부 꺼내 주었다. 500만 가까이 되는 돈이었다. 돈을 받은 주민경은 신나서 웃으며 말했다. "오빠, 감사합니다."주민경의 감사 인사에 주현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티 테이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고 허아연을 내려다봤다. 허아연의 머리가 좌우로 흔들리다 갑자기 툭 아래로 떨어지는 순간, 주현우가 반사적으로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꺼내 허아연의 턱을 받쳐줬다.뒤에서 주현우가 재빠르게 움직이는 걸 보고 쫓아오던 오지은의 발걸음이 멈춰버렸다. 그 자리에 멈춘 채 주현우를 바라봤다.오지은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주현우가 요즘 허아연을 꽤 신경 쓰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집에 돌아가는 것뿐 아니라 다른 부분도 신경 쓰고 있었다. 티 테이블에서 갑자기 턱을 받쳐주는 주현우 손길에 허아연은 잠이 퍼뜩 깼다.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더니 주현우가 앞에 서 있었다. 허아연이 나른하게 물었다."다 끝났어요?"아직 주현우가 턱을 받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허아연이 깬 걸 본 주현우가 손을 거두고 조용히 바지 주머니에 다시 찔러 넣으며 말했다."응, 끝났어."주현우가 끝났다고 하자 허아연이 의자에서 일어나 주민경 쪽으로 걸어갔다.주현우는 그 뒷모습을 돌아봤다.허아연은 점점 더 예의를 지키며 더 멀어지고 있었다.호텔 입구에 도착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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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주민경은 정신이 번쩍 들어 허아연을 돌아보며 말했다."아연아, 나 지은 언니 데려다줘야 해서 넌 태우기 불편하니까 오빠랑 같이 가."허아연은 말문이 막혔다. 주민경이 오지은을 데려가려 했던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주현우와는 이혼할 텐데 쓸데없는 짓 아닐까 싶었다. 주민경의 활약으로 주민경이 오지은을 데려가고, 주현우가 허아연을 데려가는 상황이 만들어졌다.주민경은 허아연과 주현우가 이혼하더라도 오지은한테 잘해줄 생각도 없었고 주씨 가문에 들어오게 할 생각도 새언니 자리를 내줄 생각도 없었다.호텔을 나선 흰색 포르쉐 안, 주민경이 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지은을 무표정하게 보더니 느긋하게 말했다."오빠가 아레아 베이 집 명의를 아연이한테 넘겼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내년에 증손주 안겨드리겠다고 약속도 했어."조수석에 앉은 오지은은 주민경의 말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손을 들어 뺨 옆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살며시 쓸어 올리며 여유롭게 웃었다."민경아, 넌 너희 오빠랑 아연이가 같이 있는 거 반대하잖아. 너희 오빠가 아연이한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그러니까 넌 내가 돌아와서 아연이 구해준 걸 고마워해야 해. 아연이가 더 많은 다른 여자들을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거니까."오지은의 태연함과 강심장에 주민경이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주민경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오지은이 그 모습에 침착하게 웃으며 말했다."민경아, 앞에 봐."앞을 보라는 오지은의 말에 주민경은 정신을 차리고 앞을 보며 핸들을 두 손으로 꽉 쥐고 피식 웃었다."오지은 씨, 대단하네. 진짜 강철 멘탈이네."이 뻔뻔함, 이 멘탈 아주 기가 막혔다.오지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주민경이 다시 말했다."근데 주씨 집안에 들어오거나 내 새언니 되는 건 꿈도 꾸지 마. 절대 있을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소리니까."오지은을 데려다주는 건 이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오지은은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민경아, 그건 네가 결정하는 게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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