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버린 건 나였지만, 무너진 건 너였다: Chapter 131 - Chapter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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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1화

허아연이 주현우의 손을 떼어내며 담담하게 말했다."아니에요."그냥 창밖을 보며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더 이상 창밖을 보지 않는 허아연을 보며 주현우는 손을 거두고 다시 핸들을 잡고 물었다."심유환이 오늘 자리 양보해 줬는데 왜 안 놀았어?""놀 줄 몰라요. 그냥 민경이랑 같이 간 거예요.""몇 번만 해보면 금방 배워."허아연이 짧게 대꾸하고 건성으로 말했다."다음에 기회 되면 해볼게요."허아연은 주현우가 오지은을 두고 자신과 함께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 못 했다.그 말을 끝으로 차 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허아연은 잠시 앞을 보다 또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려 오른쪽 창밖을 바라봤다.이 시간대엔 도로 위에 차가 거의 없어서 차 안팎으로 고요했다.스피커에서 음악 소리가 나지막하게 흘렀다.가끔 곁눈질하던 주현우는 조용히 곁에 있는 허아연의 모습을 보며 문득,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차가 별장 앞에 멈추고 두 사람이 함께 집에 들어왔을 땐 유미 이모도 쉬고 있었다.침실로 돌아온 허아연은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웠다.아까 호텔에서도 졸렸는데 이제는 완전히 한계였다.잠시 후, 주현우가 다른 욕실에서 씻고 들어왔을 때 허아연은 이미 잠들어 있었다. 주현우는 머리를 닦으며 피식 웃었다."겁도 없긴."다들 허아연이 주현우를 좋아한다고들 하지만 그의 눈에는 복종밖에 없었다. 이제는 예의를 차린 거리감만 남았다.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친구조차도 될 수 없었다.머리를 닦으며 한참 허아연을 바라보던 주현우가 침대 옆으로 다가왔다.허리를 숙여 허아연을 바라보다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나지막하게 물었다."허아연, 네 진짜 사랑은 누구야? 그 사람이 대체 누군데?"겉으로는 결혼을, 진짜 사랑은 가슴 속에...그 말에 허아연 일기장에 적힌 글들과 진심이 떠오른 주현우는 피식 웃었다.조금은 자조적인 웃음이었다.한참 허아연을 바라보던 주현우는 그제야 불을 끄고 허아연 옆에 누웠다.……다음 날.눈을 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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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2화

허아연이 이미 일어난 걸 본 주현우가 휴대폰을 들고 다가오며 말했다."나 오늘 일이 있어서 같이 못 가겠어."허아연이 정리한 이불을 탁탁 두드리고 허리를 세우며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요, 일 봐요."사실 주현우가 같이 가길 기대하지도 않았다.허아연은 늘 혼자 가서 할아버지와 밥을 먹었다.방금 그 전화는 오지은 전화였다. 허아연에게도 들렸다.좀 거리가 있었지만 여전히 오지은 목소리가 들렸다.허아연의 얌전한 모습에 주현우는 휴대폰을 들고 조용히 내려다봤다.막 결혼했을 때는 집에 들어오지 않고 대꾸하지 않으면 실망하거나 주현우를 바라보는 눈에 슬픔이 드러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마치 집에 주현우가 없는 것처럼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했다. 한참 허아연을 바라보다 카톡 알림이 오자 주현우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짐을 챙겨 나갔다.침실 문이 쾅 닫히자 허아연은 두 손에 옷을 든 채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봤다.문을 한참 응시하던 허아연은 문득 정신을 차렸다. 손에 든 옷을 개어놓고 준비를 마친 뒤 차를 몰고 할아버지한테 갔다.집에서 허민수와 점심을 먹고 옆집 할아버지가 장기 두러 오자 허아연은 모자를 쓰고 마당에서 가지치기를 했다.요즘 젊은 사람들은 할 줄 아는 사람이 적었지만 허민수 손에서 자란 허아연은 노인들이 할 줄 아는 건 웬만하면 다 할 수 있었다.분재 소나무 하나를 다 다듬었을 때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하니 김민희였다.경주 그룹을 떠난 뒤로 김민희와는 한동안 연락이 없었다.허아연은 가위를 내려놓고 휴대폰을 들고 포도 덩굴 그늘 아래로 걸어가서 받았다."민희 씨, 무슨 일이에요?"전화기 너머에서 약간 억울한 듯한 김민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며칠 동안 생각하다가 전화드려서 보고해야 할 것 같아서요."왼손으로 휴대폰을 들어 귀에 대고 오른손으로는 얼굴에 부채질하던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말해봐요."허아연의 다정한 목소리에 김민희가 말했다."대표님,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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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3화

김민희가 속상해하자 허아연도 마음이 좀 복잡했다."알았어요, 방법 생각해 볼게요."허아연이 수긍하자 김민희가 말을 돌리며 부드럽게 물었다."대표님, 스타라이트에 제가 일할 수 있는 자리 있을까요? 경주 그룹에 남기가 좀 싫어서요. 가능하면 스타라이트에 가서 대표님 비서 계속하고 싶어요."전화를 받던 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나 아직 스타라이트에서 비서까지 둘 만한 위치가 아니에요. 그래도 다른 자리는 알아봐 줄 수 있어요.""네. 감사해요, 대표님."두 사람은 또 한참 얘기를 나누다 전화를 끊었다.지금은 경주 그룹의 부대표가 아니었기에 김민희도 친구와 얘기하는 느낌이 좀 들었다. 성격도 자연스럽게 조금 드러났다. 김민희도 사실 만만치 않은 사람이었다.전화를 끊은 허아연은 방금 다듬은 화분들을 돌아보다 핸드폰을 들고 햇볕이 안 닿은 돌 의자를 골라 앉았다.고개를 숙여 핸드폰을 보던 허아연은 몇 년 동안 본인도 속상했지만 김민희까지 덩달아 속상한 일을 겪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아까 주현우에게 어떻게든 말해보겠다고 한 건 김민희를 달래려고 한 말이었다.주현우 마음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아는데 어찌 주현우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을까. 허아연은 길게 한숨을 내쉬고 sns를 열어 확인하지 않은 단톡방 메시지를 훑었다.햇살이 포도 덩굴 사이로 비치고 바람이 선들선들 불어 쌀쌀한 기운이 느껴졌다.주현우가 비범 인수 건을 오지은한테 넘긴 건 아마 오성 그룹이 스타라이트 프로젝트에서 빠진 것에 대한 보상일 것이다.다만…… 이 프로젝트에 관해 오성 그룹은 애초에 자격이 없었다. sns를 열어 별생각 없이 밑으로 내리던 허아연은 오지은의 게시글을 발견했다. [할아버지 생신 축하해요! #네가_있어서_참_좋아.]여전히 심플한 문구였지만 마지막 해시태그 뒤에 오지은은 아주 행복한 이모티콘을 추가했다.아홉 장 사진 속 화기애애한 오씨 가문이 보였고 오현민 얼굴도 혈색이 좋았다. 그리고 그 사진들 사이에 주현우의 모습이 있었다.아홉 장 중에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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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4화

침대에서 뒤척이던 허아연은 그래도 일어나기 싫어서 베개를 끌어안고 다시 잠들어버렸다.침대 옆 소파에 주현우가 편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몸매도 좋고 얼굴도 눈에 띌 정도로 잘생겼다.지금 이 고요한 모습은 만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았다.허아연을 담담하게 쳐다보던 주현우는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면서도 자신이 왔다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걸 보고 책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다가갔다.허아연 앞에 다가간 주현우는 허리를 굽히고 이마를 어루만지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요즘 왜 이렇게 잠이 늘었어?"갑작스러운 주현우의 목소리에 깜짝 놀란 허아연은 눈을 번쩍 떴다. 황급히 주현우의 손을 밀어내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풀려버린 잠옷 깃 단추를 채우며 주현우를 보고 부드럽게 물었다."어떻게 왔어요?"오늘은 오지은 할아버지 생일이라 저녁에도 꽤 시끌벅적할 텐데 지금쯤엔 오씨 가문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다. 주현우가 침대 옆에 걸터앉으며 말했다."오면 안 돼?"허아연이 손을 들어 머리카락을 가다듬으며 작게 말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아직 잠이 덜 깬 탓에 머리가 좀 멍했다.허아연의 하얀 얼굴, 몽롱한 눈빛,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실크 잠옷을 본 주현우는 오래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전, 학교에 다닐 때였다.그때 허아연은 잠에서 깨면 항상 이렇게 살짝 멍한 상태였다.뚫어지게 허아연을 바라보던 주현우는 손을 올려 턱을 잡아 자기 쪽으로 돌리고 엄지로 턱을 살며시 쓸었다.밖에서는 바람에 나뭇잎이 사락사락 흔들렸다.주현우의 애정 어린 행동에 분위기도 미묘해졌다. 아까보다 잠이 좀 더 깨서 주현우를 바라보던 허아연은 오지은의 재스민 향을 맡을 수 있었다. 생일 잔치의 사람들 냄새도 났다.허아연은 주현우의 손을 치우고 시선을 피하며 슬리퍼를 신고 말했다."내일 일요일이니까 오늘 아레아 베이 안 돌아갈 거예요. 주현우 씨는 저녁에 바쁘면 일 보러 가봐요."오씨 가문에 저녁에도 모임이 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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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5화

왠지 허아연 마음속으로 다시는 들어갈 수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을 것 같았다.친구가 될 수도 없을 것 같았다.오른손을 들어 허아연의 얼굴에 올리자 주현우의 손이 얼굴보다 훨씬 컸다.허아연이 손을 밀어내려 하자 주현우가 그대로 목덜미를 눌러 앞으로 끌어당겼다.휘청거리며 주현우의 품에 부딪힌 허아연은 본능적으로 두 손을 올려 주현우의 가슴을 짚어 너무 가까이 밀착되지 않으려 했다.그리고…… 오지은 냄새가 싫었다.소리 없는 실랑이가 벌어졌다. 허아연이 거부하는데도 주현우는 목덜미를 잡은 채 몸을 숙여 입을 맞추려 했다. 허아연이 두 손으로 가슴을 밀며 고개를 돌려 주현우를 피했다.입맞춤을 허락하지 않았다.허아연이 거부하자 주현우는 더 밀어붙이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한참을 내려다보던 주현우는 천천히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숙였다. 허아연 이마에 이마를 갖다 대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허아연도 말이 없었다. 그저 고개를 살짝 돌려 입 맞출 기회를 주지 않았다.잠시 침묵이 흐르고 다시 평소의 무심함을 되찾은 주현우가 허아연의 얼굴을 잡아 돌리고 웃으면서 물었다."손도 못 대게 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고개를 들어 주현우를 바라보던 허아연은 낮에 걸려 온 김민희의 전화와 오지은의 SNS 게시물이 떠올랐다 그 순간, 주현우가 눈앞에 있는데도 허아연은 자기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낌이 들었다.예전에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다.비범 인수 얘기도 꺼내지 않고 오지은 SNS도 언급하지 않았다. 허아연은 주현우를 빤히 쳐다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주현우 씨가 싫어요.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요."싫다고? 가까이하고 싶지 않다고?허아연의 이유를 들은 주현우는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허아연의 얼굴에서 손을 떼고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주현우는 옆으로 몸을 돌려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시 허아연을 보며 우습다는 듯 말했다."내가 싫고 손대는 것도 싫으면서 나랑 결혼은 왜 했어?"허아연이 표정 하나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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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6화

주현우가 폭풍처럼 몰아치는 키스를 퍼부으며 거칠게 허아연의 옷을 찢었다. 하지만 허아연은 이미 예상이라도 한 듯 놀라지 않았다.반항하지 않고 그저 주현우를 차갑게 바라보며 묵묵히 이 모든 것을 견뎌냈다.마치 상관없는 사람이 된 것처럼.주현우가 허아연의 목에 키스하며 그녀의 바지를 벗겨 옆으로 던졌다.주현우가 옷을 벗기 시작할 때도 허아연은 여전히 저항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살짝 돌려 주현우를 외면한 채 주현우가 감정을 분출하도록 내버려 뒀다.허아연도 알고 있었다. 주현우가 이번에 화를 다 풀고 나면 앞으로는 다시는 아무런 관계도 없을 거라는 것을.돌아갈 수 없었다. 영원히 돌아갈 수 없었다.고개를 돌린 채 주현우의 폭풍 같은 감정을 담담히 마주하던 허아연은 옆에 있는 옷장을 보다가 문득 지난날들이 떠올랐다.--현우야, 나 너 좋아해.--현우야, 너 진짜 잘생겼다.--현우야, 네가 있어서 너무 좋아.이런 말들은 모두 주현우가 잠든 사이에 몰래 속삭였던 것들이었다.허아연은 그해 초여름 저녁이 아직도 기억났다. 허아연이 하교 시간에 교실로 갔을 때 주현우는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 반 친구들은 이미 다 하교했는데 주현우만 혼자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었다.허아연은 의자를 끌어당겨 옆에 앉아서 한참 동안 주현우를 바라봤다.그러다가 몰래 일어나서 살며시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는 허리를 숙여 주현우에게 다가가 살짝 입을 맞췄다. 그건 허아연의 인생에서 가장 대담한 행동이었다.과거의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그러다 오지은을 향한 주현우의 온갖 배려가 떠올랐고 오늘 낮에 오지은이 올린 SNS도 떠올랐다.눈시울이 붉어진 허아연은 생각했다. 주현우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면 애초에 그렇게 잘해주지 말았어야 했다. 오해하게 해서 점점 깊이 빠져들게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허아연을 수없이 방에서 자게 하거나, 허아연을 데리고 담을 넘어 땡땡이 치거나, 자전거에 허아연을 태우고 자기 허리를 안으라고 하지 말았어야 했다.주현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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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7화

곧이어 전서진이 SNS로 단체 채팅방에 올라온 대화들과 오씨 집안 생신 잔치 영상을 보내왔다. 오지은의 부모와 오현민이 대놓고 주현우를 오씨 집안 사위라고 말하는 영상이었다.전서진이 보낸 대화 기록과 영상을 보던 주현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주현우가 오늘 오씨 집안 생신 잔치에 간 건 오예은 때문이었다. 오예은과의 인연 때문이었다.주현우가 미간을 찌푸린 채 영상을 끄자 전서진이 또 메시지를 보냈다.이번엔 대화 기록이나 영상이 아닌 메시지 한 마디만 보냈다. [현우야, 네가 아연이한테 대하는 태도가 곧 남들이 아연이한테 대하는 태도야. 정 안 되겠으면 그냥 놓아줘.]전서진의 메시지를 다 읽은 주현우는 답장도 하지 않고 바로 SNS를 종료했다.주현우가 휴대폰을 옆 캐비닛에 툭 던지고 고개를 돌렸을 때 허아연은 이미 바닥에 떨어진 바지를 주워 입고 상의 단추를 채우고 있었다.오씨 집안의 시끌벅적한 모습을 떠올리다 고요한 허씨 집안과 아무 말 없는 허아연을 비교하니 주현우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그럴 생각은 아니었고 방금은 너무 화가 났을 뿐이었다.창가에 서서 한동안 허아연을 바라보던 주현우가 그제야 발걸음을 옮겼다.앞으로 다가간 주현우가 주머니에서 오른손을 꺼내 허아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아까는 내가 너무 과격하게 굴어서 놀랐지?"허아연은 고개도 들지 않고 단추를 다 채운 뒤 말없이 자기 머리에 올려진 주현우의 손을 치웠다.허아연은 담을 쌓고 있었다.허아연이 거리를 두는 탓에 주현우의 오른손이 허공에 한참 동안 멈춰 있었다. 옷과 침대를 다 정리한 뒤에야 허아연은 주현우를 힐끗 보더니 차갑게 말했다."내려가서 밥 먹어요."말을 마친 허아연이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쓸쓸하고 서글픈 허아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주현우가 담담하게 말했다."허아연, 이혼 동의할게."주현우가 이혼 얘기를 하자 허아연이 움찔했다.문손잡이를 잡고 있던 손을 멈춘 채, 잠시 말없이 서 있던 허아연이 주현우를 돌아보며 조용히 말했다."그래요."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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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놓아줘서 고마웠다.허아연의 고맙다는 말에 주현우가 씁쓸하게 웃었다. 오래 알고 지냈으니 허아연도 어떻게 하면 주현우에게 칼을 꽂는지 알고 있었다.포옹을 푼 주현우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있는 허아연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려가자."허아연이 '네' 하고 고개를 끄덕이자 두 사람은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주현우가 앞서 걸었고 허아연이 뒤따랐는데 주현우의 걸음은 평소보다 훨씬 느렸다.다만 두 사람은 내려오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래층에 도착하자 허민수가 두 사람이 내려오는 걸 보고 허아연에게 말했다."잠 깼어? 현우가 오후 내내 너 기다렸다."허아연이 웃으며 말했다."현우 씨가 온 줄 몰랐어요, 깨워주지도 않아서요."허민수가 허아연의 말을 듣고는 웃는 얼굴로 주현우를 바라봤다."현우야, 저녁까지 아직 시간 있으니까 나랑 바둑이나 몇 판 두자."주현우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시원하게 대답했다."좋아요."비록 허아연의 이혼을 지지하고 일이 빨리 진행되길 바랐지만 어쨌든 허민수는 어른이었다. 주현우를 볼 때마다 이혼 얘기를 꺼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주현우가 본가에 올 때마다 허민수는 여전히 다정하게 대했다.게다가 두 사람의 일은 결국 두 사람이 직접 처리해야 했다.허민수가 할 일은 손녀에게 태도를 분명히 보여주고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는 것이었다.바둑판 앞에서 허민수와 주현우가 대국을 벌였고 허아연은 옆에 앉아 조용히 관전했다. 가끔 허민수의 수가 너무 답답하면 묵묵히 한두 수 조언해주기도 했다.마당에서 저녁 준비로 분주하게 오가던 정아 이모는 집 안의 화목한 모습을 보고는 입이 귀에 걸려 있었다. '날마다 이랬으면 얼마나 좋아.'아가씨가 몇 년을 고생하더니 드디어 좋은 날이 왔다고 생각했다.집 안에서 허민수와 바둑에 푹 빠져 있을 때 주현우의 휴대폰이 울렸다.바둑판을 보던 주현우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무심하게 발신자를 확인했다. 익숙한 번호와 익숙한 이름을 보자 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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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9화

전화기 너머로 주현우가 아연이라고 부르는 소리와 허아연과 허아연 할아버지와 저녁을 먹는다는 말을 들은 오지은이 침묵에 빠졌다.한참을 침묵하던 오지은이 부드럽게 주현우에게 물었다."현우야, 아연이랑 아연이 할아버지랑 그냥 밥 한 끼 먹는 게 우리 할아버지 생신 만찬보다 더 중요해?"허아연의 쓸쓸한 뒷모습에서 시선을 거둔 주현우가 오지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먼저 끊을게."말을 마친 주현우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오씨 집안.오지은이 혼자 마당에 서서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신호음 소리를 듣고 있었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오른손이 천천히 밑으로 흘러내리고 표정도 점점 어두워졌다.주현우가 달라졌다.주현우가 허아연을 신경 쓰고 있었다. 두 눈에 초점 없이 화단의 꽃과 풀을 바라보던 오지은이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혼잣말을 했다."주현우, 허아연이 그렇게 중요하면 나는 뭐야? 나는 대체 뭐야? 오예은은 또 뭐야?""지은아, 현우한테 전화했어? 온대? 할아버지가 현우 기다린다고 식사 시작 안 하셔."그때 이은빈도 저택에서 나오며 환한 얼굴로 오지은에게 물었다.엄마 목소리에 오지은은 재빨리 감정을 추스르고는 웃는 얼굴로 돌아보며 태연하게 말했다."엄마, 현우가 바쁜 일이 좀 있어서 저녁엔 못 온대. 기다리지 말고 먼저 밥 먹자."이은빈이 물었다."토요일인데 바쁜 일이 그렇게 많아? 뭐가 그렇게 중요한데?"오지은이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큰 회사인데 당연히 바쁘지. 먼저 먹자, 기다리지 말고."오지은이 회사 일이라고 하자 이은빈이 손을 잡으며 말했다."지은아, 현우는 정말 괜찮은 애야. 너한테도 더할 나위 없이 잘해주고 운범 인수 건도 우리한테 줬잖아. 너 절대 현우한테 삐지거나 그러지 말고 현우 입장 이해해. 현우도 중간에 끼어서 힘든 게 있을 거야."오지은이 웃으며 말했다."엄마, 알았어. 걱정 마."오지은 모녀가 말하며 함께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 시각 허씨 본가.주현우가 전화를 받고 집 안으로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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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화

이미 샤워를 마친 주현우는 허민수의 옷을 입고 있었다.색다른 느낌이었다.허아연이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고개를 숙여 주현우를 바라봤다. 지금 주현우는 학창 시절의 주현우와 무척 닮아 있었다. 그렇게 차갑지도 않았고 허아연을 그렇게 못마땅해하지도 않았다.한참 동안 주현우를 바라보던 허아연이 침대 끝에 앉았다.허아연이 앉는 걸 본 주현우는 바로 본론을 꺼내지 않고 계속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주현우의 시선에 살짝 불편해진 허아연은 시선을 피하며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허아연이 시선을 피하자 주현우가 오른손을 들어 얼굴을 쓰다듬었다.허아연은 손을 올려 주현우의 손목을 잡고 내리려 했다.하지만 주현우의 힘에 상대가 되지 않았다. 주현우는 허아연이 자기 손을 내리지 못하게 했다.손가락으로 얼굴을 어루만지던 주현우가 허아연의 입술도 살짝 쓰다듬었다.주현우의 손목을 잡은 허아연 손에 힘이 더 느껴졌다. 주현우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어릴 때랑 똑같네. 한번 입 밖으로 낸 말은 황소 열 마리가 와도 못 돌린다니까."주민경이 했던 말과 똑같았다.허아연이 담담하게 주현우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그때는 내가 철이 없었어요.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 했어요."이미 이혼을 제안했고 주현우도 저녁 무렵 진지하게 이혼에 동의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얘기를 하려는 것 같았다. 허아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모든 문제를 자신이 철이 없었다며 본인 탓으로 돌렸다. 사실 이혼하려는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철이 있든 없든 중요하지 않았다.주현우가 물었다."뭘 제대로 파악 못 했는데?"말을 마친 주현우가 허아연 얼굴에서 손을 치우고 똑바로 바라봤다.아무 일도 없는 듯한 예전의 주현우 같은 모습에 허아연이 고개를 들어 눈을 바라보며 솔직하게 말했다."주현우 씨가 나를 좋아하는 줄 알았어요."허아연이 말을 마치자 주현우 얼굴에 순간 웃음기가 사라진 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두 사람은 눈을 마주친 채 한참을 그렇게 쳐다봤고 주현우가 갑자기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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