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고서야 알았던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161 - 챕터 170

397 챕터

제161화

지나윤의 눈은 참 예뻤지만 그 눈빛은 꽤나 복잡했다.분노, 실망, 고통이 뒤섞여 있었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복합적이었다.이에 유시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뭐야? 질투라도 하는 거야?”그러자 지나윤은 입을 다물었다.더 할 말이 없어진 유시진은 몸을 돌려 걸음을 떼었다.막 지나윤의 사무실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뒤에서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유시진. 넌 정말로 내가 대회 포기했으면 하는 거야?”그 말에 유시진이 고개만 돌렸다.대답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곧 대답이었다.“그러면 우리 내기 하나 할까?”그 말에 무표정하고 차갑던 유시진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흥미를 띠었다.“무슨 내기?”지나윤은 그 미세한 반응을 정확히 알아챘다.유시진의 관심을 확실히 붙잡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이번 뉴스타 주얼리 디자인대회에서 나하고 채연서 중 누가 우승하는지로 내기해.내가 이기면 넌 나랑 이혼하는 데 동의해야 해.”지나윤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두 글자가 나오자, 유시진의 깊은 눈동자 속에서 폭풍 같은 기류가 일었다.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지나윤의 속은 뒤집힐 만큼 긴장해 있었다.사실 지나윤이 두려운 건 채연서에게 진다는 게 아니라 유시진이 이 내기를 거절할까 봐서였다.정적이 길어졌고 예상보다 훨씬 길었다.서로 말없이 얼마나 오래 마주 보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가 될 때, 유시진이 입술을 조금 열었다.“좋아. 내기해.”그 말을 남기고는 유시진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사무실을 나갔다.곧 지나윤은 그대로 의자에 주저앉았고 심장은 쿵쿵 뛰었다.‘유시진이 정말로 받아들였다고?’가슴에 손을 얹고 있어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그렇게까지 이혼을 거부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쉽게 승낙하다니.채연서에 대한 자신감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있었다.몇년째 제자리만 맴돌던 이혼이 처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지나윤에게 이번 대회는 단지 회사를 위한 경쟁이 아닌 이혼을 위한 싸움이기도 했다.절대 질 수 없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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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유시진과의 내기가 생긴 뒤, 지나윤은 오히려 더 의욕이 생겼다.뉴스타 주얼리 디자인대회의 초반 라운드 주제는‘바다’였다.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파란색이었다.장효연과 양나언은 사파이어나 블루 다이아몬드를 중심으로 디자인하자고 지나윤에게 제안했다.지나윤은 그 둘이 아직도 타이타닉 속 ‘바다의 심장’에 대한 환상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바다의 심장은 물론 클래식했지만 너무나도 어려웠다.그 명작이 이미 앞에 버티고 있으니, 아무리 새롭게 디자인해도 넘어서기 어렵고, 조금만 비슷해도 카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지나윤은 하루 종일 고민하다가 마침내 펜을 들었다.그림을 그리다 지치면 책상에 엎드려 잠깐씩 눈을 붙였고, 생각보다 스케치는 훨씬 순조롭게 진행됐다.한편, CL 쪽에서 채연서는 지나윤도 뉴스타 주얼리 디자인대회에 참가했다는 소식을 듣고 곧바로 임무를 내렸다.어떻게 해서든 지나윤의 디자인 스케치를 찍어 오라는 지시였다.고도겸은 원래 채연서의 직원이었고 누구보다 충성했다.그래서 채연서는 일부러 고도겸을 지나윤의 회사에 몰래 심어 두었던 것이었다.그 덕분에 지나윤의 움직임을 언제든지 파악할 수 있었다.대표실에서 채연서는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채연서가 스케치한 주얼리는 얼핏 보면 바다의 심장을 떠올리게 했지만 훨씬 더 화려했다.기존의 하트 모양 주석 주변을 무려 세 겹의 작은 다이아몬드로 둘렀다.그렇게‘바다’라는 주제를 살리면서도, 과거 바다의 심장을 재해석하고 업그레이드한 디자인이라는 점을 드러내고자 했다.채연서가 막 스케치를 끝낸 순간, 휴대폰이 짧게 울렸는데 고도겸이 보낸 사진이었다.사진을 보는 순간, 채연서의 두 눈이 반짝였지만 입가에 걸린 미소는 사진을 열수록 점점 굳어 갔다.뉴스타 주얼리 디자인대회의 준비 기간은 고작 일주일이었다.일주일 뒤, 대회 공식 홈페이지에 디자인 스케치와 완성품 사진을 제출해야 했고,그 후 2주가 지나면 홈페이지에서 본선 진출자 명단과 작품 점수가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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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지나윤은 디자인에 크게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원래부터 디자인 자체가 본인의 취향은 아니었다.하지만 이제 스스로 디자인으로 먹고살겠다고 정한 이상, 대충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사무실에서 고도겸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지나윤 손 가까이에 놓았다.고도겸은 이곳에서 일하는 동안 늘 자잘한 일을 도맡아 했고, 평소에도 지나윤에게 차를 가져다주는 일이 많았다.그래서 요즘 조금 더 부지런하게 굴어도 의심받을 일이 없었다.그리고 고도겸은 지나윤이 디자이너로서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왜냐하면 지나윤이 직접 그린 스케치는 항상 사무실 여기저기 흩어져 있곤 했다.그렇게 되면 자신처럼 속셈이 있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잠깐 들렀다 카드 만들라고 설득하는 은행 직원조차 볼 수 있는 상태였다.디자인을 이렇게까지 대충 대하는 사람이 디자이너를 할 수 있다면, 전태지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또한 채연서는 약속했다.지나윤의 회사에서 제대로 잠복해 일을 해내기만 하면, 디자인팀 팀장으로 올려주고, 디자인 자원까지 제공해 주겠다고.다시 말해 지나윤이 본선에서 떨어지는 순간, 자신이 앞에 나서는 날이 된다는 의미였다.“나윤 씨, 요즘 본선 준비하는 걸 통 보질 못했는데, 마감 바로 코앞이잖아요.]며칠 내내 고도겸은 지나윤이 서류만 보거나 이동 중에 서류를 들여다보는 모습만 봤고, 펜을 드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이에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을 꺼냈다.“걱정하지 마. 완성본은 이미 제출했으니까요.”그 말을 들은 고도겸은 놀라거나 축하하는 표정이 아닌 오히려 불안함이 밀려온 듯한 표정이었다.“왜 그래요?”“아무것도 아니에요.”고도겸은 고개를 저으며 가짜 미소를 지었다.“다 준비하셨다니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아서요.”그렇게 고도겸은 적당한 핑계를 대고 작업실을 떠난 뒤, 급히 채연서에게 연락했다.사흘 뒤, 뉴스타 주얼리 디자인대회 공식 홈페이지에 새로운 명단이 올라왔다.디자이너 10명이 본선을 통과해 결승 라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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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보통 이런 정장엔 타이트한 H라인 미니스커트를 매치하는 거 아닌가요?”신고혁이 자신을 훑어보는 순간부터 온몸에 소름이 돋았지만 겉으론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신 변호사님 때문에 일부러 바지로 갈아입고 왔는데 어때요? 감동이죠?”신고혁은 지나윤이 자신을 음흉하다고 꼬집는 걸 알아차렸다.“왜죠? 내가 그런 사람처럼 보여요?”“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요?”신고혁은 어깨를 으쓱하며 웃으며 신사적인 척 지나윤의 의자를 직접 빼주었다.곧 지나윤은 자리에 앉았다.오늘 신고혁을 만난 건 먼저 연락을 해 이혼 소송 상담을 해줄 수 있다고 했기 때문이었다.사실 지나윤은 신고혁의 속셈이 따로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런데도 듣고 싶은 말은 있었다.무엇보다 지나윤은 확신이 없었다.이번 내기에서 자신이 이겨도 유시진이 과연 약속을 지킬지가 아직도 의문으로 남았으니까.“남자가 여색을 밝히는 건 본능이죠. 예를 들어 남편도 지나윤 씨가 별로 섹시하지도 않고 여성스러움이나 재미도 부족하니까 바람피운 거겠죠.”신고혁은 술을 들이켜며 제멋대로 말을 이어갔다.사실 지나윤은 신고혁에게 남편 이야기를 털어놓은 적이 없었다.심지어 유시진이 남편이라는 사실조차 말한 적 없을뿐더러 바람 이야기도 꺼낸 적 없었다.하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엔 정보 수집 루트가 있는 법이니, 지나윤은 신고혁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난 어떻게 하면 남편이랑 이혼할 수 있는지 그 얘기만 듣고 싶거든요.”지나윤은 이런저런 쓸데없는 말을 더 듣기 싫어 바로 본론을 꺼냈다.이에 신고혁은 미소를 지으며 잔을 하나 건네자 지나윤은 그대로 마셨다.지나윤이 시원하게 마시자 신고혁도 바로 대답을 내놓았다.“협의이혼이 안 되면 소송밖에 없죠. 판결을 유리하게 받으려면 남편의 잘못을 더 많이 입증해야죠.”“잘못이라...”지나윤은 예전에 큰돈을 들여 사설탐정을 고용해 유시진을 미행했다가 확실한 외도 증거를 하나도 못 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만약 잘못을 입증 못 한다면, 두 사람의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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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이 말을 하던 신고혁은 문득 맞은편의 지나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설마 내 의뢰인한테 관심 있는 건 아니겠죠?”유시진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담담하게 되물었다.“사건을 맡은 건가요?”“아직은...”“그럼 의뢰인이 아니죠.”신고혁은 입을 달싹였지만 반박할 말이 없었다.식탁 위 공기는 순식간에 어색하게 굳었으나 유시진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히 말했다.“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하세요.”셋 모두 말문이 막힌 채 침묵이 흐르다가 신고혁의 휴대폰 전화벨이 울렸다.“네, 네... 지금 바로 가죠.”전화를 끊고 난 뒤 신고혁은 지나윤을 보고는 다시 유시진을 보았다.“의뢰인 쪽에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보죠. 식삿값은 계산해 놓았으니까 두 분 천천히 얘기 나누시죠.”일어나기 직전, 신고혁은 몸을 숙여 지나윤의 귀가에 낮게 속삭였다.“이따 다시 연락해요.”그렇게 신고혁은 자리를 떴지만 지나윤은 일부러 빠져나갈 핑계로 전화받는 척한 것임을 눈치챘다.전화기 벨 소리는커녕 진동조차 없었고 심지어 화면도 켜지지 않았다.그렇다는 건 가능성이 딱 하나만 남았다.신고혁과 의뢰인이 텔레파시가 통한다는 가능성.지나윤은 신고혁이 이미 자신과 유시진의 관계를 의시마기 시작했다고 확신했다.아까 귀에 속삭이는 척하면서도 눈은 온통 유시진에게 고정돼 있었으니.신고혁이 나간 뒤, 두 사람 사이의 침묵은 오히려 더 길어졌다지나윤은 오늘 술을 마셔 운전이 불가능했기에 대리운전을 부르려고 휴대폰을 꺼냈다.하지만 전화를 누르자마자, 휴대폰은 유시진의 손에 낚아챘다.“뭐 하는 거야?”지나윤의 말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곧 유시진은 대리운전 전화를 끊고는 휴대폰을 다시 건넸다.“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내가 데려다줄게. 네 차로”“괜찮아. 대리 부르면 돼.”“대리운전 비싸잖아. 너 신고혁한테 이혼 소송 맡길 거면 돈 꽤나 들거야. 그러니까 내가 너 절약하게 좀 도와주는 거야.”꽤 우스운 말에 지나윤은 냉소적으로 말했다.“대리가 비싸면 너는 싸?”“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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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곧 아니게 될 거야.”지나윤이 안전벨트를 풀자 유시진도 따라 벨트를 풀었다.그 동작만으로도 이미 긴장해 있던 지나윤의 몸은 한층 더 굳어졌다.“뭘 그렇게 무서워해?”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시진은 몸을 기울여 지나윤의 쪽으로 밀고 들어왔다.한 손으로 조수석 문을 짚고, 다른 팔로 움직이는 지나윤을 막았다.조수석과 유시진의 팔 사이에 갇힌 지나윤은 숨을 고르지도 못했다.“나를 무서워해?”유시진의 입꼬리는 가볍게 올라가 있었고, 그 웃음은 치명적인 매력을 품고 있었다.시선은 밤하늘의 별처럼 빛났지만 날카롭게 지나윤을 바라봤다.지나윤의 심장은 점점 더 조여오는 것처럼 답답했다.“내가 너 만질까 봐 겁나?”지나윤의 눈에 스친 당혹감을 본 유시진은 낮고 짧게 웃었다.그리고는 뜻밖에도 지나윤에게서 몸을 떼고 휴대폰을 꺼냈다.“장 비서, 도착했나?”전화기 너머에서 장우영의 목소리가 작게 흘러왔다.[이미 도착했습니다. 지나윤 씨 차량 뒤에 있습니다.]“그래.”전화를 끊고 유시진은 지나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내가 네 차를 끌고 돌아갈 순 없잖아.”그러니까 유시진이 안전벨트를 푼 이유는 차에서 내려 자기 차로 돌아가기 위해서였다.자신이 상상하던 그 어떤 그림도 아니게 되자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유시진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도 모자라 오해까지 했다.그리고 유시진은 분명 스스로 생각하는 매력을 너무 과대평가한다는 눈빛으로 지나윤을 쳐다봤다.동시에 차에서 내린 둘은 유시진은 뒤쪽으로, 지나윤은 앞쪽으로 걸어갔다.스쳐 지나가는 순간, 유시진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한 줄기 바람처럼 지나윤의 귀를 스쳤다.“결승 잘해. 기대하고 있으니까.”얼핏 들으면 응원 같지만 지나윤은 절대 그 말을 응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당연히 잘할 거야.”지나윤은 돌아서서 유시진의 길고 단단한 등 뒤를 향해 소리쳤다.“너랑 이혼하기 위해서라도!”유시진의 걸음이 갑자기 멈춰 섰고 가로등 아래, 남자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져 차갑고 외로웠다.지나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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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그때 채연서는 HF그룹 주얼리 디자인 부문의 팀장이었고, 고도겸이 보기에 채연서는 재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게다가 외모도 워낙 단정하고 예뻐서, 고도겸은 정상적인 남자라면 누구라도 채연서 같은 예쁘고 능력 있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런 채연서가 지나윤을 경쟁자로 여겼다.그래서 고도겸은 지나윤에게 분명 남들보다 뛰어난 뭔가가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그런데 지나윤이 스케치를 다 끝낼 때까지 자신이 옆에 서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 고도겸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무슨 일 있어요?”지나윤이 묻자 고도겸은 커피를 내밀려다가 컵에 손을 대는 순간 이미 커피가 식어버려 있다는 걸 깨달았다.“아니에요.”고도겸은 머쓱하게 혼자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너무 집중해서 그리는 것 같아서 방해 안 했어요. 이번 결승 주제는 정말 추상적이잖아요.”“그래서 혹시 로봇 디자인하려는 건가요? 근데 다른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떡해요? 게다가 로봇은 주얼리라고 하기도 애매하고요.”고도겸의 말투는 자연스럽고 평범했다. 또한 이런 정도 질문이면 지나윤이 수상하게 여기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로봇 자체를 만드는 게 아니라, 로봇을 모티브로 한 귀걸이를 만들 거예요. 좀 미래지향적인 느낌으로요.”“다른 사람도 같은 생각이면 어쩌고요?”“안 겹쳐요.” 지나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하게 웃었다.“내가 디자인하는 로봇 귀걸이는 이어폰이랑 연동되는 구조거든요. 그래서 미래지향적인 느낌도 확 살고, 기술적인 느낌도 분명히 표현되죠.”고도겸은 그제야 지나윤이 채연서의 맞수로 꼽히는 이유를 처음으로 실감했다.“아, 이거요. 머리 쓰면 당 떨어지니까요.”고도겸은 초콜릿을 하나 건넸고, 점심시간이 되자 밥을 사러 밖으로 나갔다.한편 채연서는 결승 준비로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몇 번의 경험으로 보아, 자신이 떠올리는 아이디어는 조금만 틀어지면 누군가와 겹칠 가능성이 높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물론, 지나윤의 것을 베끼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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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지나윤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채연서를 바라봤다.“너는 유시진을 어시스트로 부르려고 얼마를 줬어? 혹시 똑같이 10만 원?”지나윤이 일부러 덧붙인 그 ‘똑같이’라는 표현에 채연서의 미소가 살짝 굳었다.이에 채연서는 재빨리 유시진의 팔을 끼고 말했다.“시진아, 지나윤이 왜 그렇게 말하는 거야? 네가 어떻게 그렇게 싸겠어?”“대리운전은 다 10만 원이더라고.”지나윤은 일부러 그 일을 꺼냈다.채연서의 반응을 보니, 그날 밤 유시진이 자신을 차로 데려다준 사실은 모르는 듯했다.지나윤은 유시진과 이혼할 생각이었다.그렇다고 해서 채연서가 속으로 불편해하는 모습을 즐기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곧 채연서의 시선은 그대로 유시진에게 향했는데 마치 10만 원의 의미를 캐묻고 싶은 눈빛이었다.하지만 유시진의 시선은 끝내 지나윤에게서 벗어나지 않았다.“난 대리운전만 10만 원인 게 아니라, 자는 것도 10만 원이거든.”유시진은 무심하게 그렇게 말하자 이번엔 지나윤이 조금 어색해졌다.물론, 가장 불편한 사람은 채연서였다.억지 미소를 유지하는 듯한 표정이었으나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어떻게 그렇게 오래 떨어져 살았는데도, 유시진은 여전히 지나윤에게 가는 거야?’이에 채연서는 유시진의 팔을 너무 세게 쥐자 그 압력에 유시진이 눈썹을 찡그렸다.“연서야, 어디 아파?”“아니.”정신이 든 채연서는 머리를 저었다.“아무래도 햇빛 때문에 그랬나 봐.”유시진은 손을 들어 채연서의 얼굴에 비치는 햇살을 막아주었다.그 넓은 손이 드리운 그림자가 채연서 얼굴 위에 드리우는 모습을 보며, 지나윤은 조용히 캐리어를 끌고 걸음을 옮겼다.“결승 참가하는데 피터는 안 왔어?”갑자기 유시진이 말을 걸어오자 지나윤은 짧게 대답했다.“오후에 회의 있어.”피터는 원래 함께 오려고 했다.하지만 FY주얼리 이사회가 열리는 날이었고, 아무리 사적 감정이 있어도 이사 자리에서 빠질 수는 없었다.“줘.”유시진은 지나윤의 동의도 없이 캐리어를 빼앗아 휙 밀고 갔다.양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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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아냐, 난 더 이상 바라는 거 없어. 이미 나한테 너무 많은 걸 줬잖아.”“이번엔 달라. 이번엔 네 우승 축하 선물.”유시진이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리며 지나윤과 시선이 스쳤다.지나윤은 즉시 눈을 피하고는 행여 티라도 날까 싶어 괜히 캐리어를 정리하는 척했다.곧 유시진의 입꼬리는 더 크게 올라갔다.준비실 한편에 서 있던 주성훈과 노승철도 두 사람이 서로를 아쉬워하는 듯한 분위기라며,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들 같다고 속으로 감탄했다.“아, 피터 상무가 추천했다던 그 디자이너군요?”주성훈은 그제야 지나윤을 알아봤다.“주 회장님, 노 선생님.”지나윤이 정중하게 인사했지만, 주성훈의 시선은 차갑고 노골적인 불쾌감으로 가득했다.“그때는 기회를 달라고 매달리더니, 결국 완성품조차 내지 않았죠.”주성훈의 말에 지나윤의 기억이 단번에 루비 원석 사건으로 되돌아갔다.그때 디자인을 바꾼 뒤, 추천서가 이미 채연서에게 넘어갔다고 들은 탓에 더 제출할 필요가 없다고 오해했던 것이다.“죄송해요.”지나윤은 솔직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주성훈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심지어 노승철도 지나갈 때 실망스러운 한숨을 흘렸다.두 사람은 채연서에게만 따뜻한 격려를 건네고 유시진과 함께 대기실을 나갔다.채연서는 지나윤의 굳어진 얼굴을 보며, 속으로 승리를 확신한 듯 또다시 눈빛을 반짝였다.결승전이 시작되었다.디자이너 10명은 각각 준비해 온 재료와 장비를 들고 무대 위로 입장했다.관객석 한편에는 고도겸이 장효연과 양나언 사이에 앉아 있었다.조명은 어둑했고 그 속에서 고도겸의 얄팍한 미소는 은은하게 드러났다.오늘, 채연서는 반드시 우승할 것이라고 고도겸은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앞선 라운드를 보며 다른 디자이너들의 실력은 분석이 끝났고 지나윤은...고도겸은 무대 위 조명 아래에서 빛나는 채연서를 올려다보며 입꼬리를 올렸다.결승을 준비하는 동안, 고도겸은 지나윤이 그린 스케치를 1번부터 31번까지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채연서에게 넘겼다.지나윤이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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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지나윤 파이팅.”제품을 꺼내기도 전에, 관객석에서 먼저 지나윤을 향한 응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지나윤이 놀라 고개를 들자, 객석 한가운데서 우원재가 두 팔을 흔들며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잠시 멍해있다가 우원재는 곧장 직원에게 제지받고 머쓱하게 자리에 앉았다.우원재가 뉴스타 주얼리 디자인대회에 오는 것 자체도 예상 밖이었는데, 이렇게 대놓고 응원까지 한다니.지나윤은 어이가 없고, 황당하고, 속으로는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감정이 뒤섞였다.바로 옆 작업대의 채연서는 화사하게 풀메이크업을 했음에도, 얼굴에 드리운 불만은 감추지 못했다.‘우원재, 지금 뭐 하는 거지. 지나윤을 응원한다고?’자신이 이렇게 바로 옆에 서서 있는데 못 봤을 리가 없었다.우원재가 지나윤에게 다른 감정을 보인다는 걸 채연서도 알아채고 있었다.하지만 오늘만큼은 자신이 우승하는 순간, 우원재의 눈에는 오직 자신만 비칠거리고 굳게 믿었다.입술을 살짝 올리며 마음을 다잡은 채연서는 다시 지나윤을 향해 가볍게, 그리고 우월하게 시선을 흘겼다.지나윤의 반제품이 아무리 공들여 만들어진다 한들, 자신이 완성한 디자인을 넘을 수는 없을 거라고 확신하면서.그러나 지나윤이 상자에서 제품을 꺼내는 그 순간, 채연서의 입가에 걸린 비웃음은 서서히 굳어갔다.곧 관객석에서는 고도겸이 벌떡 일어섰다.“도겸 씨, 왜 그래요? 화장실 가고 싶어요?”장효연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그... 그런 거 아니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고도겸은 로봇처럼 천천히 자리에 다시 앉았다.다행히도 대회장은 어두웠고 조명은 무대 위에만 집중돼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고도겸의 충격과 멘붕에 가까운 표정을 둘에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고도겸은 무의식적으로 채연서를 바라보았다.채연서의 얼굴은 이미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자신을 향한 눈빛은 살의를 담은 듯 날카로웠다.이에 고도겸은 즉시 고개를 숙였고 더 이상 눈을 마주칠 용기도 없었다.채연서와 가까이 붙어 있던 탓에, 그 얼굴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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