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잃고서야 알았던 사랑: Bab 331 - Bab 340

390 Bab

제331화

유시진은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고 남자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채연서 역시 숨을 죽인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마침내, 휴대폰 수화기 너머로 지나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내가 묻고 싶은 건 말이야. 우리의 이혼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영사 인증까지 받으면 A국에서는 다시 서류를 발급해 주는 거야?]유시진의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가 서서히 굳어 갔고 눈동자에는 순식간에 거센 비바람이 몰아치는 것만 같았다.“그건 없어.”유시진이 답하자 지나윤은 조금 어리둥절했다.유시진의 목소리는 갑자기 차갑게 식어 있었고, 무엇이 불만인지 알 수 없었다.이혼을 증명할 수 있는 서류를 발급하지 않는 건 A국 시스템의 문제이지, 지나윤의 잘못은 아니었다.[그럼 지금 주민센터에 가면 업데이트된 이혼 정보는 조회할 수 있어?]“안 돼.”[왜?]“시스템에 지연이 있어서 정보가 업데이트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어.”[그렇구나.]지나윤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났고, 유시진의 얼굴빛은 마치 구리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그을음처럼 어두워졌다.“시진아, 네가 제일 좋아하는 최고급 한우 다 익었어.”그때 수화기 너머로 여자의 목소리가 끼어들자 지나윤은 눈꺼풀을 살짝 들어 올렸다.익숙한 목소리였는데 채연서였다.A시에서 최고급 한우를 샤부샤부로 내는 곳은 단 한 곳뿐이었고, 엄청난 매운맛으로 유명한 샤부샤부 가게였다.지나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HF그룹에 근무하던 시절, 유시진이 채연서를 데리고 그 가게에 갔다가 위출혈로 응급실에 실려 갔던 일을.그날, 계단에서 유시진을 업고 내려온 사람은 지나윤이었다.예전에 유시진과 재회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교통사고를 당한 유시진을 업고 구급차를 찾아 뛰어다닌 것도 지나윤이었다.유시진이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마다, 곁에서 남자를 구한 사람은 늘 지나윤이었다.하지만 지나윤이 납치되고 인신매매 위기에 처했을 때, 여자는 스스로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유시진이 구한 사람은 항상 채연서였다.옆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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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2화

지나윤이 눈을 크게 뜨자, 고아라는 난처한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했다.“고아라가 평소엔 좀 덜렁대 보이긴 해도 바보는 아니거든. 네가 아무 대가도 없이 돈만 냈다면, 백이천 어머니가 그걸로 끝냈겠어?”이 이야기가 나오자 고아라는 금세 화가 치밀어 올랐다.“애초에 백이천 교통사고는 네 잘못도 아니잖아. 네가 가해자도 아닌데 왜 치료비를 네가 내야 해?”고아라는 생각할수록 분이 풀리지 않아 지나윤을 대신해 억울함을 토해 냈다.“너는 나한테 제대로 말도 안 했고, 나도 정확한 금액은 모르지만, 네 성격상 적게 냈을 리가 없어.”“몇천만 원, 몇억 원 수준은 절대 아니었을 거야. 지금 네가 이렇게 힘든데, 치료비는 그 집에서 당분간 받지 말라고 하면 되잖아.”“백이천 집이 형편이 없는 것도 아니고.”고아라는 자신의 말이 충분히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했다.지나윤은 가볍게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실 지나윤이 백이천 집에 지급해 온 치료비는 몇천만 원이나 몇억 원이 아니라 매년 20억이었다.FY에서 나오는 배당금이 아니었다면, 그 금액은 애초에 감당조차 할 수 없었다.M국으로 떠나기 직전에도, 백이천의 어머니는 치료비를 연 40억 원으로 올려 달라고 연락해 왔고, 반년에 한 번씩 지급하라고 요구했다.그래서 며칠 안에, 지나윤은 또다시 백이천 어머니에게 20억 원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었다.그렇게 되면, 지나윤의 회사는 파산 신청 외에는 선택지가 남지 않았다.백이천에 관한 이야기는 더 이어지지 않았고, 고아라는 지나윤이 이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느끼고 화제를 바꿨다.그러다 보니, 이야기는 다시 유시진을 욕하는 쪽으로 흘러갔다.다음 날, 지나윤과 고아라는 해가 중천에 떠서야 잠에서 깼다.두 사람은 바닥에서 잤지만, 바닥 난방이 켜져 있어 감기에 걸릴 걱정은 없었다.고아라는 하루 휴가를 냈고, 지나윤과 함께 바람을 쐬고 싶어 했다.사람이 계속 집 안에만 있으면 더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하지만 지나윤은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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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화

“누가 누굴 가르치는 거죠? 파산했으면서 아직도 사장인 줄 아나 보네요. 잘 들어요. 이 작업실 안에 있는 건 전부 우리 은행 소유예요.”“제가 주겠다고 하면 줄 수 있는 거라고요.”조진훈은 지나윤을 노려보며 험악하게 말한 뒤, 고개를 돌려 채연서를 향해 금세 얼굴 가득 웃음을 띠었다.“자, 가져. 폐지로 팔아도 상관없어.”채연서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조진훈에게 감사 인사를 하며, 지나윤 작업실에 있던 완성된 도면과 반쯤 그려진 디자인 도면까지 모두 자신의 서류 가방에 쑤셔 넣었다.결국 지나윤의 회사는 완전히 파산했고, 법원에서 붙인 딱지가 문 위에 붙었다.자기 손으로 일궈 온 회사가 이렇게 망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지나윤은 입술을 꼭 다물었고, 가슴이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다.지나윤은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나 고아라는 끝내 눈가가 붉어졌다.채연서와 송려화, 오희나가 모두 지켜보고 있었기에, 고아라는 웃음거리가 되기 싫어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급히 휴지로 닦아 냈다.채연서와 송려화, 오희나는 노골적으로 고소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세 사람은 그렇게 같이 중청빌딩을 떠났다.길가에 세워진 블루 벤틀리가 유독 눈에 띄었다.차창이 내려가자 운전석에 앉아 있는 유시진의 모습이 보였다.“연서야, 진짜 행복하겠다. 대표님이 직접 데리러 오다니.”“그러게 말이야. 연서는 곧 HF그룹의 안주인이잖아. 대표님이 직접 나서는 게 당연하지. 완전 애처가시니까.”“맞아, 맞아.”송려화와 오희나는 번갈아 가며 맞장구를 쳤다.고아라는 속이 뒤집힐 것 같았지만, 유시진과 지나윤은 이미 이혼한 사이였다.유시진이 채연서와 함께 다니는 걸 두고, 고아라는 뭐라 할 자격이 없었다.채연서는 일부러 더 얌전하고 요란하게 차로 다가갔다.그러나 차 안의 유시진은 시선을 거두지 않고 줄곧 지나윤만 보고 있었다.“회사 파산했어?”유시진이 물었다.“덕분에.”지나윤의 답에 유시진은 잠시 멈칫하더니, 잘생긴 입꼬리를 비틀며 냉소를 띠었다.“남녀 관계를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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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4화

지나윤은 회사가 파산한 뒤, 흰색 BMW3 시리즈마저 담보로 넘겼다. 지금의 지나윤은 말 그대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였다.FY에서 최근 들어온 마지막 배당금마저도, 지나윤은 백이천의 어머니에게 송금했다.변해대교 위를 걷는 동안, 바닷바람이 불어와 지나윤의 머릿속을 유난히 맑게 만들었다.지나윤은 휴대폰을 꺼내 비밀번호가 설정된 비밀 앨범을 열었고, 그 앨범 안에는 사진이 단 한 장뿐이었다.지나윤과 유시진이 함께 찍힌 사진이었다.소년원에 있을 당시, 어렵게 한 번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었던 날, 지나윤이 몰래 찍어 둔 사진이었다.그때 유시진이 자신이 촬영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고,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수도 있었다.A시 소년원은 학교와 교도소가 반쯤 섞인 형태로 운영되었고, 아주 가끔 휴대폰을 사용할 기회가 있었다.그 시절의 지나윤은, 유시진과의 사진을 한 장이라도 남길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겼다.그때는, 자신이 먼저 유시진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느꼈다.풋풋하게 마음이 트이던 시기에는 유시진의 매력을 견뎌 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후 유시진 역시 진심으로 자신을 좋아했을 것이다.그렇지 않았다면 절대 잊지 않겠다고 영원히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소년과 소녀에게 있어, 영원과 맹세는 그 자체로 너무도 치명적인 말이었다.지나윤은 그렇게 깊이 빠져들었다.이 유일한 사진 한 장을, 지나윤은 휴대폰을 몇 번이나 바꾸는 동안에도 보물처럼 아끼며 간직해 왔다.마치 그 사진이 자신의 전부, 자신의 청춘이자 가장 진실되고 뜨거웠던 사랑의 증거인 것처럼.지나윤은 휴대폰 화면 속 사진을 아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그리고 그 사진을 삭제했다.사진이 사라지자, 따로 설정해 두었던 비밀 앨범도 함께 사라졌다.이제 지나윤의 휴대폰에는 더 이상 비밀도, 족쇄도 남아 있지 않았다.지나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짠 기운이 섞인 바닷바람을 깊게 들이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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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5화

이전에도 지나윤은 조승헌에게 같은 태도를 보였다.사진기자를 상대로 한 전자기기 해킹을 부탁했을 때도 그랬고, 조승헌이 먼저 나서서 심고혁의 약점을 찾아 주겠다고 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조승헌이 ‘채영이’라고 부르면, 지나윤은 아예 응답하지 않았다.하지만 이번에는 호칭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았다.“실검은 네가 내려 준 거지?”[정상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추적은 못 할 거야.]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조승헌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이에 지나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조승헌은 겉으로는 이씨 집안의 운전기사이자 비서였지만, 동시에 경호원이었고 해커였으며, 능력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고마워. 이렇게 큰 도움을 줘서.”[오히려 내가 사과해야 하지.]조승헌의 목소리는 무척 진지했다.[C국에 있다 보니 A국 실검에는 둔감했어. 내가 조금만 더 일찍 알았으면, 여론이 커지기 전에 막을 수 있었을 거야.]“네 잘못도 아닌데 왜 사과를 해?”지나윤은 어깨를 으쓱했다.실검에 오르는 일은 처음도 아니었다.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진짜든 가짜든, 이미 익숙해질 만큼 겪어 왔다.만약 키보드 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의 말에 무너져 버린다면, 그건 뒤에서 판을 짠 사람의 뜻을 그대로 이뤄 주는 꼴이었다.그러나 지나윤은 그렇게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배후가 누구든, 상대의 목적이 자신의 명성을 짓밟고 회사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면, 오히려 다시 일어설 생각이었다.“그런데 말이야. 그 두 사람은 내 일 모르는 거지?”조승헌은 지나윤이 말하는 ‘그 두 사람’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들었다.지나윤이 ‘지나윤’이 된 이후로, 그 사람들을 더 이상 부모라 부르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걱정하지 마. 아무한테도 말 안 했어. 실검 내린 것도 몰래 한 거야.]“역시. 괜히 세계 최고 해커가 아니네.”칭찬을 들은 조승헌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지나윤은 얼굴을 보지 않아도, 조승헌이 지금 꽤 쑥스러워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채영아, 네가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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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6화

낮의 아차산은 밤처럼 흉측하고 섬뜩하지는 않았다.다만 산길은 여전히 구불구불했고, 달리기에는 쉽지 않은 코스였다.지나윤은 노을빛 오렌지 색의 BMW 소형 스포츠카에 앉아 차창을 내리고 옆에 선 우원재를 바라보며 말했다.“우원재, 진심이야?”지나윤이 타고 있는 이 차는 우원재가 준비해 준 차량이었다.우원재 역시 BMW 소형 스포츠카를 몰고 있었고, 튜닝 사양은 지나윤의 차와 똑같았다.색상만 무광 그레이였다.사실 성격으로만 보면, 지나윤은 무광 그레이가 더 어울리고, 우원재는 노을빛 오렌지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남아일언중천금, 근데 내가 한 말을 번복을 하겠어?”우원재는 지나윤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두 사람은 앱으로 출발 신호를 맞췄고, 동시에 출발했다.출발 초반까지는 나란히 달렸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우원재의 무광 그레이 차량은 지나윤의 노을빛 오렌지 차량에 한참 뒤처졌다.지나윤은 먼저 결승 지점에 도착해 차에서 내린 뒤, 차 옆에 서서 우원재를 기다렸다.다리가 저릴 만큼 기다린 뒤에야 우원재가 도착했다.“솔직히 요즘 기분 안 좋아 보이길래, 운전 실력도 좀 떨어졌을 줄 알았거든. 이번엔 내가 이길 수도 있겠다 싶었어.”우원재의 말에 지나윤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운전 실력이 기분 영향을 받는 건 맞을지도 모르지. 그런데 누가 요즘 내가 기분 안 좋다 그랬어?”“그야...”우원재는 말문을 열다가 급히 입을 막았다.지나윤의 스캔들은 이미 업계 전체에 퍼질 대로 퍼져 있었기에 그 판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우원재는 진작 지나윤에게 연락하고 싶었지만 아버지가 말렸다.요즘 업계에서는 지나윤이 ‘재수 없는 존재’로 여겨지고 있었고, 엮이면 누구든 끝이 좋지 않다는 분위기였다.우원재는 유시진과 지나윤이 이혼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지나윤의 회사가 파산했다는 소문도 들었다.부정적인 이슈가 가라앉은 뒤 연락하려고 기다렸는데, 실검이 갑자기 전부 사라지자 곧바로 지나윤에게 전화를 걸어 레이스를 제안했다.“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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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7화

지나윤은 M국에 가기 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화장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더 도드라졌다.우원재는 요 며칠 사이 지나윤이 분명 많은 고생을 했을 거라 생각했다.온라인에 쏟아졌던 지나윤을 향한 악플들은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힐 정도였다.우원재는 깊이 후회했고, 동시에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지나윤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그 10억은 그나마 자신이 할 수 있는 보상이었다.“너를 곤란하게 하려던 건 아니야...”우원재는 낮게 중얼거렸다.어느 정도는 지나윤의 마음을 짐작하고 있었다.지나윤이 자신의 돈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는, 십중팔구 유시진 때문일 터였다.유시진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지나윤은 늘 지금과 같은 표정을 지었다.이에 우원재는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예전에는 지나윤이 유시진에게 온 마음을 쏟는 모습을 보며 속으로 경멸했다.스스로 매달리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달랐다.지나윤의 감정이 단 조금이라도 유시진과 얽히는 순간, 남자는 설명하기 힘든 짜증을 느꼈다.이미 이혼까지 했는데, 왜 아직도 신경을 쓰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결국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삼켜졌다.“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일단 직장부터 구해야지.”지나윤은 고개를 돌려 옅게 웃었다.분명 쓴웃음이었지만 우원재는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결국 두 사람은 약속했다.언젠가 지나윤이 정말 그 10억 원이 필요해지면, 언제든 우원재에게 연락하기로.그제야 우원재는 카드를 다시 거두어들였다.직장을 구하는 것보다, 지나윤은 사실 혼자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우원재가 지나윤의 디자인 실력을 보고 투자하겠다고 했다면 굳이 거절하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현실은 달랐다.요즘 같은 때에 일자리를 구하는 일은 쉽지 않았고, 특히 주얼리 디자인 업계는 더 그랬다.업계 자체가 크지 않은 데다, 지나윤은 이미 ‘유명 인사’였다.악명이라 해도 이름이 알려진 건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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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8화

“지나윤? 네가 왜 여기 있어?”등 뒤에서 채연서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나윤은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최대한 피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눈썰미 좋은 채연서에게 들키고 말았다.채연서는 신기한 걸 발견한 사람처럼 눈을 번쩍였다.곧바로 박시현의 팔을 잡아끌고 지나윤 앞으로 다가왔다.“여기서 서비스 직원으로 일하는 거야?”위아래로 훑어보는 시선에, 지나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이 모든 걸 설명하고 있었다.“정말 너무 처참하다.”채연서는 일부러 연민을 담은 표정을 지었다.“회사 망하고 나서, 내가 시진이한테 네 좀 도와주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긴 했어. 그런데 안 된다고 하더라.”“나도 솔직히 너무 냉정하고 무정하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시진의 의견을 넘어서 뭘 해줄 수는 없잖아.”“여기서 일하는 거 많이 힘들지? 자, 여기 4만 원 있으니까 일단 받아.”채연서는 핸드백에서 현금 4장을 꺼내 지나윤에게 내밀었다.이 일련의 말에 지나윤은 어이가 없었다.채연서가 일부러 상처를 후벼 파고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다만, 지금의 지나윤에게는 그 말들이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너라면 4만 원 말고도 더 갖고 있을 텐데? 현금인지 아닌지는 따지지 않을게. 이렇게 선의로 도와주고 싶으면, 계좌 이체로 해줘.”“일단 2천만 원부터 보내봐. 유시진한테는 절대 말 안 할 테니까.”채연서는 지나윤이 이런 말을 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원래 의도는 4만 원으로 굴욕을 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채연서의 얼굴이 굳어지는 걸 보며, 지나윤은 옅게 웃었다.“왜?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은 거 아니었어? 기회는 줬으니 잡아야지.”“너...”채연서는 혀를 깨물 뻔하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정말 뻔뻔하다.”그 말에 지나윤의 표정도 살짝 굳었고 이번에는 물러서지 않았다.“뻔뻔한 게 누군데? 먼저 도와주겠다고 한쪽은 너잖아. 위선 떤다고 말 안 한 것만 해도 다행이지.”옆에서 시끄럽다는 듯, 박시현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지나윤 씨, 여기서 일하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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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9화

‘지나윤에게 남은 게 얼굴 하나 말고 또 뭐가 있어? 명문가 출신이라는 배경이 있어? 돈을 물 쓰듯 쓰는 재력이 있어?”‘재계에서 손쉽게 꺼내 쓸 수 있는 인맥이라는 카드가 있어? 지나윤이 나랑 뭐로 비교가 될 수 있다는 거야!’박시현의 눈에는 이준혁의 도망 결혼이 분명 지나윤의 사주였다.유시진에게는 채연서가 있으니 지나윤과 이혼하는 건 시간문제였다.지나윤은 이혼 후에도 기댈 밥줄을 확보하려고 이준혁을 유혹했고, 그 결과 자신의 결혼식을 망쳐놓았다고 박시현은 확신했다.지나윤에게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하지만 남자를 홀리는 재주 하나만큼은 타고났다고 박시현은 그렇게 믿고 있었다.생각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어 오른 박시현은 이를 악물었다.“대표님, 대인배답게 한 번만 기회를 주시죠?”채연서가 몸을 비틀며 과장된 태도로 박시현의 눈치를 살폈다.“지나윤은 이미 시진에게 버림받아서, 지금 가진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여기서마저 일자리를 잃으면 정말 길거리로 나앉을 수도 있겠어요.”채연서는 연신 눈짓을 보내며 말을 잇자 박시현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억눌렀다.“그럼 연서 씨 말대로 하면 되겠네요.”“별수 있나요? 그냥 여기서 계속 일하게 두죠. 괜히 로비 매니저까지 엮을 필요도 없고요.”채연서의 말은 겉으로 보기엔 꽤 선심 쓰는 것처럼 들렸다.박시현은 노희서를 따로 불러 몇 마디를 지시했다.그 뒤 채연서와 함께 로비에서 식사했다.원래는 룸을 예약해 두었지만, 일부러 대중의 시선이 있는 곳을 택한 것이었다.노희서는 지나윤을 구석으로 끌고 가 거의 울먹이다시피 했다.지나윤이 그만두는 순간, 자신의 자리도 끝이라는 말이었다.지나윤은 알고 있었다.자신이 이 호텔에서 하루라도 더 서비스 직원으로 남아 있는 한, 대표인 박시현은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다는 사실을.“제발 부탁드려요, 나윤 씨.”노희서는 연거푸 허리를 숙였다.“어차피 근로계약도 한 달짜리잖아요. 한 달만 채우고 나가면 대표님도 막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 그만두면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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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0화

유시진과 지나윤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와인에 눈이 젖어 시야가 흐려진 탓인지, 아니면 유시진의 표정 자체가 그렇게까지 차가운 탓인지 알 수 없었다.지나윤은 유시진이 마치 빙산처럼 자신 앞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유시진은 미동도 없이 지나윤을 보고 있었다.지나윤은 유시진의 눈에서 자신을 향한 조롱이나 경멸을 보게 될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현실의 유시진은, 눈빛이 얼어붙은 듯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시진아, 왔어?”채연서가 유시진을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고, 그제야 유시진은 지나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유시진은 채연서의 옆자리에 앉았다.지나윤의 곁을 스쳐 지나갈 때조차, 마치 그 자리에 지나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했다.유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지나윤 역시 침묵을 지켰다.채연서는 유시진이 지나윤이 와인을 뒤집어쓴 모습을 보고서라도 한마디쯤 할 거라 기대했으나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침묵이 채연서에게는 더없이 통쾌했다.지나윤이 아무리 불쌍한 척해도, 유시진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채연서는 기분이 한껏 좋아져,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입에 들어가는 음식마저 유난히 맛있게 느껴졌다.지나윤은 화장실로 가 얼굴과 옷에 묻은 와인을 간단히 닦아냈다.적어도 너무 처참해 보이지는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옷은 갈아입을 수 없었는데 서비스 직원 유니폼은 이 한 벌뿐이었다.다행히도 원단이 두꺼워, 와인을 뒤집어써도 완전히 젖지는 않았다.겉면만 닦아내면 계속 입을 수 있었다.대충 정리한 뒤, 지나윤은 화장실을 나섰고 고개를 들자마자 유시진과 마주쳤다.유시진은 말없이 손수건 한 장을 내밀었으나 지나윤은 받지 않았다.호의든 동정이든, 유시진에게서 건네지는 것은 무엇이든 받고 싶지 않았다.손이 뻐근해질 때까지 손수건을 받지 않자 유시진은 결국 팔을 내렸다.그 사이 지나윤은 이미 완전히 무시한 채 유시진의 뒤를 지나치고 있었다.유시진은 지나윤의 뒷모습을 향해 말했다.“나랑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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