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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지나윤은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며 최대한 다크서클을 가리려고 했다.그때, 유시진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 한 잔을 화장대 위에 내려놓았다.“어떤 커피를 마시는지 몰라서, 도우미 아주머니한테 가장 흔한 라테로 해 달라고 했어.”지나윤은 고맙다고 말했지만, 오늘 유시진은 어딘가 평소와 많이 달라 보였다.예전에도 용돈을 주거나 명절 선물을 챙겨줄 때는 있었지만, 커피를 직접 가져다주는 일은 절대 없었다.‘역시 이 집에 있으니까... 겉모습이라도 그럴듯하게 보이려는 거겠지.’지나윤은 그저 그렇게만 생각했다.커피의 카페인이 들어가자 정신이 한결 맑아졌다. 지나윤은 곧바로 유희봉 생신 잔치 준비에 몰두했다.점심 시간이 가까워지자, 손님들이 하나둘 저택으로 들어섰다.오는 사람들도 예년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지나윤도 모두 익숙한 얼굴들이었다.손님들 역시 지나윤이 유희봉의 손주며느리인 걸 잘 알고 있었다.단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올해는 초대받은 손님에 한 명이 추가됐다는 것이다.바로 유시진이 직접 초대한 사람이었다.“시진아, 내가 늦진 않았지?”채연서는 환한 미소를 띠면서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오늘따라 그녀는 평소의 달콤한 스타일이 아니라, 성숙한 분위기의 모란디핑크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흐르는 듯한 실루엣에 단정한 라인, 그리고 고급스러운 소재감까지... 엄청 공을 들인 차림이 분명했다.액세서리 역시 화려함보다는 정교하고 섬세한 데 포인트를 줘서 생동감이 느껴졌다.지나윤은 곧바로 알아차렸다.‘할아버지 마음에 들어보려고 저렇게 꾸민 거네.’“할아버지, 이건 제가 드리는 선물이에요.”채연서가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를 내밀었다.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하지만, 유희봉은 그녀에게 그 흔한 미소조차 보여주지 않았다.“아주머니, 저건 저쪽에다 둬요.”오늘 생신을 맞아서 수많은 선물을 받았고, 그것들은 구석에 있는 다용도실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미소 짓고 있던 채연서의 얼굴이 순간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드디어 점심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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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해? 나윤이가 이렇게 살이 빠진 걸 보면, 회사에서 얼마나 괴롭힌 건지 뻔하지!”유희봉이 손주며느리 편을 강하게 들고 나섰다.그러자 난감해진 유시진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할아버지, 정말 그런 일 없어요.”그리고 오골계탕을 떠서 지나윤의 앞에 살며시 놓았다.지나윤은 작은 소리로 감사 인사를 건넸다.유시진이 떠 준 국을 마실 수 있는 곳은, 오직 여기 본가뿐이었다.“부부 일에 괜히 끼어들지 말고 그냥 둬, 이 늙은이야.”유희봉의 옛 전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그러게. 시진이가 저렇게 자기 아내 챙기는 것 좀 봐.”“시진이하고 나윤이는 말이야, 딱 맞는 선남선녀라니까. 결혼식 때도 내가 그랬잖아. 두 사람 얼굴이 정말 닮았다고.”연이어 쏟아지는 칭찬에 지나윤은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유시진도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었다.그러나 이들 외부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은, 두 사람이 이혼을 준비 중이고 이미 오래전부터 따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식사 도중에 누군가 채연서하고 어떤 사이냐고 물었다.유시진은 담담히 말했다. “고등학교 동창입니다.”그녀가 귀국한 뒤부터, 누가 물어도 그는 늘 고등학교 동창이라고 같은 대답을 반복했다.두 사람이 졸업할 때 실제로 헤어진 것도 사실이었다.평소라면 채연서도 그 말에 크게 불만을 품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지금 법적인 아내인 지나윤과 자신이 비교되면서, 자기만 철저하게 ‘외부인’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연서야, 너는 왜 아무것도 안 먹니? 입맛에 안 맞아?”양화영이 물었다.채연서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입맛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좀 걱정이 돼서요. 제가 드린 선물을 할아버지가 좋아해 주실지...”그 말을 들은 양화영은 도우미 아주머니 강수정을 불러서 채연서의 선물을 가져오게 한 뒤, 그 자리에서 바로 포장을 뜯었다.채연서가 준비한 생신 선물은 최고급 백옥으로 조각한 장수를 기원하는 장식품이었다.정교한 조각은 척 봐도 가격이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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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게다가 매년 생일마다, 지나윤은 늘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을 정성껏 준비했다.손주며느리의 빼어난 요리 실력은 유희봉이 오랜 친구들에게 자랑할 만한 자부심이기도 했다.그래서 여태까지 한 번도 지나윤에게 생일 선물을 바란 적이 없었다.하지만 이번에 지나윤이 직접 선물을 준비했다.유희봉은 감동하면서도 어딘가 씁쓸한 감정이 느껴졌다.‘나윤이가 시진이하고 선을 그으려는 마음을 이런 방식으로 드러내는 건가...’“뭘 그렇게 택배로 보냈어? 설마 배달 음식 시킨 건 아니겠지?”오희란이 참지 못하고 빈정거렸다.늦게 도착한 이 생일 선물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단 한 사람, 유시진만 제외하고.이혼 얘기를 꺼낸 지나윤이 허락도 없이 운정 힐스에서 짐을 빼서 나간 그날 이후, 유시진은 지나윤에게 단 한 푼도 준 적이 없었다.그리고 지나윤 역시 한 번도 돈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그래서 유시진은 생각했다.‘아마 직접 만든 선물이겠지. 돈도 적게 들고, 정성도 들어가니까.’‘직접 뜬 목도리나, 집에서 구운 케이크 따위.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바로 그런 종류의 선물일 거야.’채연서도 유시진과 비슷한 생각이었다.지나윤의 선물이 뭔지 궁금하긴 했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준비한 선물과는 비교도 안 될 테니까.유희봉은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고, 다시 그 안의 상자를 열었다.그런데 상자 안에는 또 다른 상자가 있었다. 바로 바이올린 케이스였다.그 순간, 유희봉의 두 눈이 환하게 빛났다.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바이올린을 보자, 유희봉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나윤아... 네가 이 할애비의 옛날 꿈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구나...”어릴 적부터 바이올린을 배웠던 유희봉의 한때의 꿈은 바로 바이올린 연주자였다.그러나 생계를 위해 군에 입대했고, 사업을 시작한 뒤로는 음악과 점점 멀어졌다.지나윤이 유씨 가문에 들어온 뒤, 어느 날 우연히 이 못다 이룬 꿈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설마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이야!’유희봉이 그 바이올린을 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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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유시진의 시선에는 뭔가 탐색하는 기색이 깔려 있었다.지나윤은 괜히 마음이 쿵 내려앉으면서 시선을 피했다.사람들 앞에서 ‘맥도널드 스트라디바리’를 선물하는 건 확실히 너무 튀는 일이었다.하지만 기회는 지금뿐이고, 이번에 놓치면 다시는 오지 않을 순간이었다.유희봉을 위해서라면, 유시진이 돈의 출처를 의심하더라도 기꺼이 감수할 수 있었다.‘들켜도 상관없어. 오늘만큼은 할아버지가 가장 행복하셔야 하니까.’며칠 전, 지나윤은 피터에게서 엄청난 거액의 돈이 입금되었다.피아노 시리즈의 분배금뿐 아니라, 신제품 디자인료, 그리고 피아노 시리즈가 X국 왕실의 공식 주얼리로 선정되면서 받은 후원금까지... 그 금액은 상상을 초월했다.지나윤은 사실 오래전부터 유희봉에게 바이올린을 선물하고 싶어 했다.하지만 그런 비싼 악기를 살 돈이 그녀에게 있을 리 없었다.이제야 비로소 자금이 마련되었고, 그래서 곧장 심우림에게 연락한 것이다.심우림은 나이는 젊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피아니스트 중 한 명이다.클래식 음악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압도적인 데다가 인맥도 넓었다.게다가 결정적으로 그는 지나윤의 제자였다.결국 지나윤은 2천만 달러를 들여서 ‘맥도널드 스트라디바리’를 살 수 있었다.지금 지나윤의 계좌에는 수십억 원 정도만 남아 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평소 드는 생활비는 일반 직장인과 다를 바 없고, 남은 돈으로 어머니의 치료비만 충당할 수 있으면 됐다.‘그리고... 할아버지가 좋아해주셨으니까, 그걸로 된 거야.’생신 잔치 전체를 통틀어서, 주인공인 유희봉을 제외하면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사람은 지나윤과 그녀의 선물이었다.채연서의 얼굴은 이미 잿빛으로 굳어 있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양화영과 유태산이 자신의 백옥 장식품을 극찬하고 있었지만, 지나윤의 선물이 등장하자 그 모든 칭찬은 거품처럼 사라졌다.채연서도 눈이 높은 편이라, ‘맥도널드 스트라디바리’가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억 원대라는 건 알고 있었다.‘지나윤이 어디서 그런 돈이 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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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유씨 가문 본가 바깥. 유희봉의 손님들을 한 명씩 배웅한 뒤 이제 슬슬 지나윤 자신도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멀지 않은 곳에 채연서가 서 있었다. 별다른 일도 없으면서, 그렇다고 돌아갈 생각도 없어 보였다.지나윤은 그녀가 유시진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어젯밤 생신 준비 때문에 잠시 두 사람이 함께 본가에 온 걸 제외하면, 요즘 유시진 곁을 계속 지키고 있는 사람은 늘 채연서였다.마침내 유시진이 나왔을 때는 이미 하늘이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지나윤은 그에게 인사만이라도 하려고 걸음을 옮겼다.오늘 자신은 여전히 유씨 가문의 며느리였다. 유태산, 양화영에게도 다 인사했는데, 굳이 유시진만 빼놓을 이유는 없었다.“난 이제 갈게...”“내가 데려다 줄게.”지나윤은 순간 멈칫했다.유시진의 잘생긴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지나윤에게 그렇게 말한 뒤, 다가오는 채연서에게 시선을 돌렸다.“장우영이 곧 올 거야. 너를 집까지 데려다 줄 거야.”채연서의 두 눈이 크게 흔들렸지만,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도 그저 잠시뿐이었다,“응... 알겠어...”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실망감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지나윤이 보기에도, 마음 약한 사람은 단번에 달려가서 위로하고 싶을 만큼 애처로운 모습이었다.“시진아, 나는 너를 이해해. 그러니 절대 너를 곤란하게 하지는 않을게.”말을 마친 뒤, 고개를 들고 유시진을 바라보는 채연서의 눈빛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그녀는 속으로는 유희봉 회장이 시진이한테 뭔가 얘기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장우영이 도착했다.유시진이 차가 있는데도 채연서를 직접 데려다 주지 않고 장우영에게 맡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자신이 직접 데려다 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채연서를 장우영의 차까지 배웅했다.두 사람이 서로 헤어지는 걸 아쉬워하는 모습이 지나윤의 눈에 그대로 비쳤다.그 모습을 보면서 지나윤은 문득 생각이 들었다.‘이런데도 내가 굳이 유시진의 차를 탈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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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그리고 유시진의 얼굴에 드러난 미소에는 조롱의 기색만 가득했다.“나는 일부러 할아버지 비위를 맞추려고 한 게 아니야...”“왜? 그 ‘맥도널드 스트라디바리’는 네가 드린 게 아니야?”“나는...”유시진이 갑자기 지나윤의 손목을 움켜잡았다.“그 바이올린이 최소한 수백억 원은 할 텐데. 지나윤. 너 그 돈은 어디서 났어? 나한테 숨기는 게 도대체 얼마나 더 있는 거야?”유시진에게 잡힌 지나윤의 손목은 으스러질 듯이 아팠다. 안전벨트를 하고 있는 상태라 제대로 저항하기도 어려웠다.“유시진, 아파...”지나윤이 그의 손을 뿌리치기도 전에, 안전벨트를 푼 유시진이 그대로 덮쳐왔다.나지막하고 분위기 있는 그의 목소리가 마치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듯, 지나윤의 귓가를 스쳤다.“너를 더 아프게 할 수도 있어. 해볼까?”당황한 지나윤이 몸부림쳤지만, 움직일수록 유시진은 더 거칠게 제압했다.그녀는 유시진이 왜 또 이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두 사람은 서로 팽팽하게 대치한 채, 누구도 물러서지 않았다.지나윤이 깨물어버린 유시진의 입술에서 피가 배어 나오면서, 그녀도 피냄새를 느낄 수 있었다.그때 날카로운 경적 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의 격한 움직임은 그대로 멈췄다.이어서 검은색 마이바흐 옆에 강렬한 붉은색의 페라리 스포츠카가 멈춰 섰다.유시진은 누구 차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가 거리낌 없이 조수석 창문을 내리자, 예상대로 페라리를 타고 있는 이준혁과 눈이 마주쳤다.이준혁은 유시진이 지나윤의 몸을 누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저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딱 붙은 채 엉켜 있는 두 사람의 자세는 충분히 오해를 부를 만했다. 지나윤의 옷과 머리카락도 완전히 흐트러져 있었다.그녀는 여기서 이준혁을 보게 될 거라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급히 유시진을 밀어낸 뒤,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하지만 잠긴 문은 열리지 않았다.그때 운전석으로 돌아간 유시진은 태연하게 잠금을 해제한 뒤, 핸드폰을 꺼내서 장우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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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지나윤은 이준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유시진과 정반대로, 맑은 개울물처럼 투명한 이준혁의 눈은 진심을 그대로 드러내는 듯했다.그녀는 이준혁이 이런 핑계를 대면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유시진은... 오늘 밤엔 나한테 안 올 거예요.”“어떻게 알아요?”여전히 안심하지 못하는 이준혁을 향해서, 지나윤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그 사람은... 채연서한테 갔어요.”...해변의 별장.유시진이 도착했을 때, 별장 안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문을 열자, 채연서가 현관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채연서는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누드 핑크색의 실크 슬립은 여자의 늘씬하고 볼륨 있는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발끝을 세운 그녀가 유시진의 넥타이를 풀어주었다.유시진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재킷을 벗었다....다음 날, 평소보다 훨씬 일찍 회사에 도착한 지나윤은 대표이사 집무실 앞에서 기다렸다.거의 점심시간이 다 될 때까지 줄곧 기다렸다.드디어 유시진이 나타났지만, 그는 시큰둥한 눈빛으로 그녀를 힐끗 볼 뿐이다.“무슨 일이지?”유시진의 뒤를 따라 집무실 안으로 들어간 지나윤이 조용히 자신의 사직서를 내밀었다.사직서를 받아든 유시진은 곧바로 찢어버리고는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유시진...”“지금 뭐라고 불렀지?”그가 여유롭게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지나윤은 입술을 꽉 깨물고 말투를 고쳤다.“대표님... 어젯밤에 대표님이 채연서 씨를 만났다고... 충동적으로 사직서를 내는 게 아니에요.”그녀는 정말로 유시진과 조금이라도 더 멀리 있고 싶을 뿐이다.유시진이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이유가 뭔지는 관심 없어. 난 그날 네가 HF그룹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고아라가 구치소에 안 가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는 것만 기억할 뿐이지.” “그런데 이제 와서 약속을 뒤집겠다고? 혹시... 이 대표가 너한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어?”유시진이 겉으로는‘이 대표’라고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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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오늘도 퇴근할 때, 이준혁이 어김없이 지나윤을 데리러 왔다.어젯밤에 큰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지나윤은 자기가 저녁을 사겠다고 말했다.하지만 차가 막 백화점 근처에 도착했을 무렵, 회사에 갑작스러운 문제가 발생해서 이준혁은 급히 회사로 복귀해야 했다.“혼자 있어도 정말 괜찮겠어요?”길가에 차를 세운 이준혁은 떠나기 아쉬운 듯 지나윤을 바라보며 물었다.지나윤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느낌이었다.“제가 어린애도 아닌데요. 게다가 백화점이 위험한 곳도 아니고요.”지나윤도 곧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기왕에 여기까지 온 김에, 오랜만에 혼자 쇼핑이라도 할 생각이었다.고급 백화점에 올 때마다, 지나윤은 늘 FY주얼리 매장울 들렀다. 자신이 디자인한 액세서리들이 어떻게 진열되어 있는지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서.피아노 시리즈는 이미 FY주얼리의 주력 모델이자 대표 상품이 되어 있었다.FY주얼리의 특허 커팅 기술을 적용해서 흑백이 조화를 이룬 다이아몬드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업그레이드된 인비저블 세팅 기술 덕분에, 육안으로는 프롱 세팅이 보이지 않아서 전체적인 아름다움이 한층 더 도드라졌다.지나윤이 이 시리즈에서 디자인한 건 총 다섯 가지였다.오선지, 높은음자리표, 8분음표, 피아노 건반, 그리고 그랜드피아노.그 중에서도 ‘그랜드피아노’는 가장 고급스럽고 비싼 작품이었다.보츠와나산 다이아몬드 300개와 중부 아프리카산 최고 등급의 블랙 다이아몬드 700개가 빼곡하게 세팅된 작품! 독창적이고 화려한 ‘그랜드피아노’의 디자인은 출시되자마자 주얼리 업계와 상류층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와... 이게 소문으로만 듣던 피아노 퀸 펜던트야?”송려화는 ‘그랜드 피아노’의 전시함 앞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감탄했다.“응, 그거 맞아.”채연서는 마치 자기 작품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부심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진짜 너무 화려해... 눈이 부셔서 못 볼 정도야.”오희나도 감탄하면서 눈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내가 HF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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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사실 지나윤은 원래 구매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네가? 네 주제에 이런 걸 살 수나 있어?”오희나가 콧방귀를 끼며 눈썹을 파르르 올렸다.“지난번에 네가 나한테 6억 원 배상했는데, 벌써 잊은 건 아니지?”지나윤의 말에 오희나는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그건 네가 사기친 거잖아!”“유시진처럼 IQ가 높은 사람이 사기를 당하고 돈도 순순히 냈을 거라고 생각해?”이번엔 오희나도 아무 말도 못 했다.채연서도 옆에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다.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지나윤이 대체 무슨 돈이 있어서 수억 원짜리 드레스를 사고, 수백 억짜리 선물을 할 수 있는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나윤이 잘난 체하도록 놔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나는 네가 정말 부러워. 악세서리를 매번 자기 돈으로 사니까 말이야. 나는 시진이가 다 사 주거든.”“아 맞다. 지나윤, 넌 시진이한테 몇 년 동안 빨래에 집안일까지 다 해줬다면서? 그런데 너한테 악세서리도 하나 안 사줬어?”지나윤의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앉았다.유시진이 여러 번 자신에게 보석을 선물하긴 했다.하지만 그건 전부 핑크 다이아몬드, 바로 채연서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기세가 꺾인 지나윤의 모습을 보자, 채연서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지나윤, 좀 있으면 유시진이가 올 거야. 나하고 같이 주얼리 고르기로 했거든.”“그래도 내가 워낙 마음이 넓잖아? 너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내가 유시진이한테 말해서 하나쯤 사 주라고 할 테니까.”그 말에 송려화와 오희나는 곧바로 채연서를 칭찬하며 말했다.“역시 마음씨가 달라! 누구하고는 전혀 다르지!”지나윤이 돌아서서 가려던 순간, 유시진과 정면으로 마주쳤다.하지만 그는 지나윤은 아는 척도 하지 않고 곧바로 채연서에게로 향했다.유시진이 채연서에게 사 주려는 주얼리는 예상대로 ‘피아노 퀸 펜던트’였다.‘내 디자인이... 저 여자 목에 걸린다고?’그런 상상을 하기만 해도 지나윤은 속이 메스꺼웠다.“죄송합니다. 고객님은 아직 FY 주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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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씁쓸하게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지만, 지나윤의 마음 한구석은 쥐어짜듯 아파왔다.‘그때... 내가 유시진이 날 사랑한다고 착각해서 운 게 아니라 정말로 큰 다이아에 감동해서 울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더 이상 말하지 않고, 지나윤은 조용히 뒤돌아서서 나가려고 했다.‘나를 돈 때문에 매달리는 여자라고 오해한다 해도... 그래도 상관없어.’“지나윤 씨!”뒤에서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돌아선 지나윤은 곧바로 눈이 휘둥그레졌다.금발에 푸른 눈, 온몸에 명품을 걸친 전형적인 상류층 부인처럼 보이는 여성이 서 있었다.방금 전까지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여주며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있던 채연서는, 유시진이 갑자기 그 낯선 귀부인에게 다가가는 걸 보자 멈칫했다.“사모님, 오랜만입니다. 여전하시네요.”유시진이 먼저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오랜만이에요, 유 대표님.”웨스터 리가 가볍게 손을 내밀면서 악수를 교환했다.두 사람이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지만, 웨스터 리의 태도는 그저 예의를 갖춘 정도일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유시진이 돌아오자, 궁금해진 채연서가 물었다.“시진아, 저 여사님은 누구야?”“석유 재벌의 외동딸이자, 국내 부동산 업계의 거물인 이지평 회장님 부인인 웨스터 리야.”놀란 채연서는 입이 딱 벌어졌다.그런 사람이라면 유시진이 먼저 다가가서 인사할 이유도 충분했으니까.유시진의 기억 속에서 웨스터 리는 아주 눈이 높은 사람이었다. 왠만한 부호나 유명 인사들은 눈에 차지도 않을 정도로.그런데 지금 그 웨스터 리가 환한 표정으로 지나윤의 손을 덥석 잡자, 유시진은 순간 멈칫했다.“지나윤 씨! 여기서 만나다니, 정말 놀랍네요! 혹시 저처럼 주얼리 보러 오신 거예요?”웨스터 리의 시선은 단독 전시되어 있던 ‘피아노 퀸 펜던트’로 향했다.“아, 알겠어요! 저거 갖고 싶으신 거죠?”지나윤이 말릴 새도 없이, 웨스터 리는 순식간에 카드를 꺼내서 결제를 마쳤다. 그리고 직접 그녀의 목에 펜던트를 걸어주었다.찬란하게 빛나는 피아노 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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