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잃고서야 알았던 사랑: Chapter 51 - Chapter 60

145 Chapters

제51화

채연서가 눈시울을 붉히면서 고개를 떨구었다.“우리 엄마 돌본다고 넌 직장까지 잃었잖아. 내가 감사해도 모자랄 판인데 어떻게 너를 탓하겠어.”유시진의 그 한마디에 안도한 채연서는 그의 팔에 살며시 머리를 기대었다.“그런데 지나윤 정말 대단하지 않아? 피닉스 대표하고도 아는 사이라니. 들리는 말로는 요즘 피닉스가 이씨 가문하고 꽤 가깝대. 아마 블루웨이브엔터의 새 대표가 소개해준 거겠지!”채연서의 말을 듣던 유시진은, 방혜교와 이야기를 마친 지나윤이 이준혁에게 다가가서 말을 거는 모습을 보았다.유시진은 엄지로 와인잔 받침을 천천히 문질렀다.잠시 후, 그는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채연서에게 말했다. “우리 춤출까?”...한편 지나윤이 먼저 다가오자 이준혁은 황송할 만큼 놀랐다.둘의 스캔들 기사가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한 뒤, 그는 수습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결국 해명이 나오면서 열기도 가라앉았다.이준혁은 감히 지나윤을 직접 만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자신이 신분을 숨긴 걸 탓할까 봐 두려웠기에.지나윤은 그날 밤, 실시간 검색어 열풍이 터진 직후에 이준혁에게서 온 해명 메시지를 받았다.그 메시지에서 이준혁은 자신이 NS그룹의 장남이라고 털어놓았다.원래는 남동생이 하나 더 있었지만, 사춘기에 반항심이 폭발했던 동생은 형이 가업을 잇게 되는 미래를 질투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그 일로 이준혁은 큰 죄책감에 시달렸고, 그래서 스스로 ‘이씨 가문의 장남’이라는 신분를 버렸다.그가 소년원에서 봉사를 시작한 것도, 비뚤어진 길로 들어선 아이들을 돕고 싶어서였다. 동생에게 해주지 못한 걸 조금이나마 대신하려는 마음에서였다.하지만 지금 다시 이씨 가문으로 돌아온 이유는 지나윤을 만났기 때문이었다.이준혁은 생각했다. ‘내가 충분한 위치에 서지 못한다면, 절대 유시진에게서 빼앗을 수 없겠지.’‘그렇지 않으면, 지나윤 씨가 영원히 나를 철부지 애로 여기던가.’지나윤은 아직도 정장 차림에 올백 머리를 한 이준혁의 모습이 낯설었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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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화

지나윤은 그 여자가 바로 채연서라는 걸 알아차렸다.채연서는 양화영을 돌보느라 며칠씩 무단결근을 했고, 결국 FY주얼리에서 해고되었다.하지만 FY주얼리에서는 개인적인 이유로 휴가를 신청할 수도 있었지만, 채연서는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지나윤은 이제서야 채연서가 HF그룹에 들어오기 위한 속셈으로 일부러 그랬다는 걸 깨달았다.“걱정 말아요. 나윤 씨 디자인은 절대 지지 않을 거예요. 난 나윤 씨를 믿어요.” 지나윤의 굳은 표정을 본 피터가 부드럽게 위로했다.지나윤은 씁쓸하게 웃었다.그녀가 걱정하는 건 디자인 자체가 아니기에.그 후 며칠 동안, 지나윤은 꼼짝도 하지 않고 디자인에만 몰두했다.‘남편은 이미 채연서에게 빼앗겼는데, 만약 디자인마저 밀리기라도 한다면 내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는 느낌일 거야.’하지만 시장은 그녀를 외면하지 않았다. 블루웨이브엔터에서 투자한 가 대박을 터뜨렸고, 두 주연 배우뿐 아니라 여주인공이 착용했던 액세서리까지 함께 유행했다. FY주얼리에서 재빨리 양산해서 출시하자, 판매량도 아주 대단했다.오늘도 지나윤은 평소처럼 출근하면서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섰다.지나윤의 디자인이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자, 피터는 그녀를 더 높은 직급으로 올릴 생각이었다. 다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이기에 회사의 여러 고위임원들과 직접 면접을 치를 예정이었다.하지만, 차에서 막 내린 순간, 그녀는 회사 정문 앞에 젊은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는 걸 보았다. 심지어 펼쳐진 현수막에는...[표절 도둑 지나윤 사과해!]지나윤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누군가 그녀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표절 도둑 당장 사과해!”“우리 오빠한테 피해 주지 마!”“혜진이가 왜 너 같은 표절 도둑이 만든 액세서리를 쓰겠어!”“...”지나윤은 피할 틈도 없이 그들에게 둘러싸였다.그녀가 아무리 무술을 할 줄 안다 해도, 아직 미성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을 때릴 수는 없었다.결국 경비들이 나선 뒤에야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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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화

“그러게.” 유시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걔가 너처럼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실 디자인쪽하고는 안 맞아.”“그러니까... 그냥 표절했다고 인정하고, 정식으로 사과해서 얼른 이 일을 끝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 사실... 내가 피아노 시리즈를 디자인한 그 대가의 제자거든...”채연서가 그렇게 말하자, 유시진의 눈이 반짝였다.“그분이 제일 싫어하는 게 표절이거든. 지나윤이 계속 버티다가는... 소송이 걸릴 수도 있고, 배상액도 어마어마할 거야...”채연서는 온 얼굴에 ‘지나윤이 걱정된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유시진은 그런 그녀의 부드러운 머릿결을 쓸어내리면서, 선한 마음을 칭찬하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지나윤의 피아노 시리즈 표절 논란은 계속 실시간 검색어 상위에 올랐고, 팬들은 하루 종일 FY주얼리 앞을 떠나지 않았다.밤이 깊어 팬들이 흩어진 뒤에야, 지나윤은 겨우 회사를 나설 수 있었다.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다 되어 있었다.집 앞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놀란 지나윤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 집 주소까지 털려서 팬들이 또 찾아온 건 아니겠지...?’돌아선 유시진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굳어버린 그녀의 표정을 보자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나를 그렇게 보고 싶지 않은 거야?”지나윤은 유시진이 여기에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그럼... 안 보고 싶지...”솔직한 말을 했지만, 유시진은 전혀 믿지 않는다는 듯이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여기엔... 무슨 일로 왔어?”“들어가서 말하지.”명령조의 말투는 여전했다. 지나윤은 문을 열면서도 들여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를 막을 수 없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유시진이 그녀보다도 먼저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지나윤은 그가 이혼서류를 돌려주려고 마지막으로 집에 왔던 때를 떠올렸다.‘혹시... 오늘 이혼에 동의하러 온 건가?’지나윤이 긴장으로 가슴을 조이고 있을 때, 유시진이 정말로 종이 한 장을 꺼내서 내밀었다.하지만 그건 이혼 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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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힌 지나윤은 본능적으로 도망치려고 했다.그러나 그녀가 돌아서는 순간, 유시진이 문을 ‘쾅’ 닫아버렸다.두 팔을 붙잡힌 지나윤이 반사적으로 버둥거렸지만 결국 침대 위로 밀쳐졌다.지나윤은 옷깃을 꽉 움켜쥔 채 핏발 선 눈으로 그를 경계했다. 유시진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비웃음을 흘렸다.“지나윤, 우리가 아직 이혼하지 않은 이상... 넌 여전히 내 아내야.”지나윤의 눈에 비친 유시진은 그저 동물적 욕구에 굶주린 짐승에 불과했다. 그는 외투를 벗어 의자 위에 던지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면서 압박해왔다.“난 하기 싫어! 억지로 이러지 마!”지나윤은 온 힘을 다해 소리쳤지만, 떨리는 목소리는 제대로 나오지도 못했다.“난 당연히 할 수 있어.”남자의 목소리는 차갑고 위협적이었다.유시진은 두말하지 않고 억누르듯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지나윤은 맹수 앞에 겁에 질린 먹잇감처럼 그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떨면서,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결혼 3년 동안, 지나윤은 늘 남편의 요구에 조용히 순응하는 편이었다.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관계는 무미건조하기만 했다.하지만 오늘의 지나윤은 달랐다. 오히려 그를 잔뜩 흥분하게 만든 것이다.“뭐야, 이렇게 반항하는 방식으로 날 유혹하겠다는 거야?”옷이 하나씩 떨어져 나갈수록 지나윤은 견딜 수 없는 무력감과 두려움에 눈물을 흘려야 했다.“그동안 오랫동안 안 했잖아 ... 날 실망시키지 마.”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그녀의 얼굴에 손을 댔지만, 강하게 움켜쥔 손목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그날 밤, 두 사람의 감정은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날카롭게 뒤엉켰다.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유시진은 장우영에게 새 정장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불필요한 질문을 하지 않는 성격인 장우영은, 정장을 전달하자마자 차로 돌아갔다.유시진이 옷을 다 갈아입었을 때까지도, 지나윤은 아직 자고 있었다.유시진은 마지막으로 곁눈질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깊이 잠들어 있는 지나윤의 눈가는 여전히 부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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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국내외 많은 주얼리 디자이너들이 앞다투어 지나윤을 지지하고 나섰다.디자이너들은 과거에 유사 사례가 수없이 있었다는 점을 들면서, 지나윤의 디자인이 표절로 볼 수 없다는 걸 증명했다.곧이어 문혜윤의 온갖 치부가 폭로되었다.표절은 물론 상사와의 부적절한 관계, 심지어 내연녀 논란까지... 계속 이어졌다.순식간에 여론의 관심은 모두 문혜윤에게로 쏠렸다.하루 사이에 지나윤은 롤러코스터처럼 격변을 겪은 셈이었다. 그래도 최소한 그녀를 둘러싼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했다.지나윤은 아무 곳도 나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만 머물렀다.눈이 너무 부어 있었기 때문이었다.아무리 화장을 해도 붓기를 가릴 수가 없자, 화가 난 지나윤은 셰이딩을 던져버렸다.원래는 오이팩이라도 붙이면 다음 날 좀 가라앉을까 기대하기도 했지만 모두 허사였다.저녁시간이 다 되었을 때, 이준혁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칭찬받으려고 전화했어요.]그 말만 듣고도 지나윤은 곧바로 알아차렸다. 여론이 반전된 건 이준혁이 손을 쓴 게 분명하다는 사실을.“정말 고마워요.”[말로만 고맙다고 하고 끝이에요? 너무 성의가 없는데요?]이준혁의 장난스러운 말투에 지나윤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럼 말해봐요. 어떻게 고마움을 표현하면 될까요?”[나한테 평생을 맡기는 건 어때요?]이준혁이 장난스럽게 말했다.지나윤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평소 같았으면 ‘예물이 필요 없으면 생각해볼게요’라면서 가볍게 맞받아쳤을 것이다.하지만 어젯밤 일 때문에, ‘평생을 맡기라’는 이준혁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유시진의 프로포즈를 떠올렸다. 그 기억이 가슴을 쿡 찔렀다.침묵이 이어지자 이준혁은 불안해졌다.[장난친 거예요! 화내지 마세요!]그제서야 지나윤은 정신을 차렸다.원래라면 이렇게 큰 도움을 준 이준혁에게 자신이 밥이라도 사야 마땅했다.그런데 이준혁은 완강하게 자신이 사겠다고 하면서 그녀가 오기만 하면 된다고 우겼다....밤의 A시는 화려한 네온사인과 현란한 불빛으로 가득한 호화롭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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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화

지나윤과 이준혁은 옷도 갈아입지 못한 채 그대로 경찰서로 향했다.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고아라가 책상 앞에 얌전히 앉아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한쪽 눈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아라야!”지나윤은 곧바로 달려가서 꽉 끌어안았다.“어떻게 이렇게 맞은 거야!”지나윤의 눈에서 불꽃이 치솟았다.경찰에 따르면, 고아라가 누군가와 싸움을 벌였는데 하필 상대가 송려화와 오희나였다.‘진짜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이런 말이 절로 나올 상황이었다.퇴근길에 잠깐 쇼핑을 하던 고아라는 우연히 송려화와 오희나가 지나윤의 욕을 하는 걸 들었다.그 말이 얼마나 악질적이었던지 참지 못하고 따지다가, 말다툼이 커지면서 결국 몸싸움까지 번지게 된 것이다.경찰이 세 사람 모두를 데려와서 조서를 받았지만 먼저 폭력을 쓴 건 고아라였다.지나윤이 주먹까지 꽉 쥐고 있는 걸 보자, 고아라가 씩 웃으면서 말했다.“경고하는데, 여긴 경찰서야. 나처럼 사고 치지 말고.”고아라는 알고 있었다.무술을 연마한 지나윤이 평소엔 차분하지만, 한번 불붙으면 누구보다 무섭다는 걸.“걱정 마. 쟤네 둘이 나보다 더 맞았어.”처음엔 지나윤도 고아라가 달래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하지만 송려화와 오희나의 모습을 보자, 지나윤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대단하네. 둘 다 완전히 돼지머리가 됐잖아.”친구의 칭찬을 듣자, 팬더 눈을 하고 있어도 고아라는 당당했다.“려화야! 희나야!”갑자기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지나윤과 고아라의 미소가 동시에 사라졌다.채연서가 경찰서 안으로 들어왔고, 그 뒤에는 유시진이 있었다.유시진은 지나윤을 보고도 전혀 놀라지 않았다.채연서가 ‘려화하고 희나가 맞았다’고 말했을 때부터, 여기서 지나윤을 보게 될 거라고 짐작하고 있었다.하지만... 이준혁과 함께 있는 건 예상 밖이었다.유시진의 시선이 이준혁과 지나윤 사이를 천천히 오갔다.며칠 전 일식집에서, 지나윤의 옆에 선 이준혁을 보자마자 곧바로 NS그룹의 장남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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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화

“시진아, 려화랑 희나는 나하고 제일 친한 친구들이야. 네가 꼭 좀 도와줘!”채연서가 울먹이면서 유시진의 손을 꼭 붙잡았다.“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유부남 손을 덥석 잡다니... 부끄럽지도 않아?”평소부터 채연서가 눈에 거슬렸던 고아라에게, 드디어 제대로 말할 기회가 온 셈이었다.지나윤이 급히 고아라의 소매를 잡아당기면서 고개를 저었다.지금은 채연서를 자극할 때가 아니다. 그 뒤에는 유시진, 그리고 HF그룹이 버티고 있다.지나윤은 친구가 괜히 자기 때문에 전과라도 남을까 걱정이 되었다.채연서가 떨리는 입술을 깨물면서 손을 빼려고 했지만, 유시진이 놓아주지 않았다.“저 쓰레기 새끼...”고아라가 작은 목소리로 욕을 뱉었다.유시진은 채연서의 손을 잡은 채 경찰과 대화했지만, 시선은 지나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저 사람 정식으로 사건 처리해 주세요.”“그건 안 됩니다!” 다급해진 지나윤이 외쳤다.“저희가 합의금을 드릴게요...”“얼마나 줄 건데?”유시진이 비웃듯 말했다.“그리고 그 돈은... 누구 돈이지?”“적어도 당신 돈은 아니지.”이준혁이 블랙카드를 책상 위에 탁 내려놓았다.그 모습을 본 고아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아까의 패기 있던 기세도 싹 사라졌다.고아라는 평범한 가정 출신이다. 만약 유시진이 거액을 부른다면... 신장을 팔아도 감당할 수 없을 테니까.게다가 지나윤은 몇 년 동안 전업주부였고, 쓰던 돈도 대부분 유시진의 돈이었다.이준혁이 돈은 많지만, 사실 지나윤 때문에 이렇게 나오는 게 분명했다.지나윤이 이준혁에게 아직 그런 마음이 없다는 걸 알기에, 고아라는 친구가 빚을 지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블랙카드를 집어든 지나윤은 조용히 카드를 이준혁에게 돌려주었다.그리고 차분하게 유시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예전에 준 돈과 물건들은 이미 다 돌려보냈어. 내가 지금 쓰는 돈은 한 푼도 네 돈이 아니야. 그러니까 말해. 합의하려면 얼마면 되겠어? 얼마든, 내가 줄게.”경찰서 안이 곧바로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모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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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8화

유시진은 서류에 고개를 묻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연서는 지나윤처럼 괜히 트집이나 잡는 사람이 아니야.”사무실 밖, 서류철을 끌어안은 지나윤은 마치 굳어버린 기둥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이제 그녀도 HF그룹의 직원이다.직함은 대표이사의 비서로, 특보인 장우영의 업무를 거들어주는 자리다.이것이 바로 어젯밤 경찰서에서 유시진이 내건 조건이었다.지나윤이 FY 회사를 그만두고 HF그룹으로 옮기기만 하면, 합의에 응하고 고아라가 구속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다.고아라는 차라리 자기가 감옥에 가겠다면서, 지나윤이 그 조건을 받아들이는 걸 완강하게 거부했다.하지만 지나윤은 단번에 수락했다.고아라의 앞날에 비한다면, 이런 조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왜 자신이 이렇게 몰래 유시진의 집무실 앞에서 엿듣고 있는지, 지나윤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그렇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유시진이 왜 굳이 자신을 HF그룹으로 데려온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채연서도 HF그룹에 있는데.’‘본처와 내연녀를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일하게 하다니, 뭐 자기가 대단한 플레이보이라도 된다는 거야?’지나윤은 씁쓸하게 웃었다.그때, 사무실 안에서 다시 유시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내 밑에서 일해보면 알겠지. 전업주부가 얼마나 편한지.”지나윤의 마음이 싸늘해졌다.‘결국... 그런 이유였구나...’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던 터무니없는 기대감이 곧바로 실망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길게 숨을 내쉬었다.‘이미 오래전에 정신 차렸어야 했어.’‘유시진이 내 능력을 높게 사서 HF그룹으로 불러들인 게 아니라는 건,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사무실 안에서는 우원재도 유시진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전업주부를 노골적으로 깎아내리는 말을 늘어놓고 있었다.그러나 실제로 해본 사람만이 전업주부의 고단함을 안다.지나윤처럼.신선한 재료를 사기 위해서, 매일 아침 다섯 시면 일어나 새벽 시장으로 향했다.시어머니는 그날 음식은 그날 구매하고 조리하라고 했다. 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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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화

채연서가 들어가고 나자, 지나윤은 더는 엿듣고 싶지도 않았다. 마치 자기가 굉장히 신경을 쓰는 사람처럼 여길 것 같아서였다.‘신경이 쓰이나?’물론 신경은 쓰였다.자기 자리로 돌아온 지나윤은 억지로 마음을 다잡았다. 신경 쓰지 말자고, 애써 다짐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우원재가 안에서 나왔다.지나윤은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둘 사이에서 눈치 보이는 게 싫어서 먼저 나온 거겠지.’“내연녀 주제에.”지나윤의 자리 앞을 지나며, 우원재가 느닷없이 그렇게 말했다.지나윤은 천천히 눈을 들어 우원재를 바라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내연녀는 채연서겠죠.”막 가려던 우원재가 그 한마디에 멈춰 서더니 다시 몸을 돌렸다.그는 책상에 양손을 짚은 채 몸을 앞으로 숙였다. 앉아 있는 지나윤에게 자연스러운 압박감이 느껴지는 자세였다.예전의 지나윤은 대부분의 시간을 집안일에 매달리느라, 유시진의 주변 친구들에 대해선 대충 알고 있을 뿐 제대로 알지 못했다.그래서 그들의 태도도 비슷하리라 생각했다.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았다.우원재가 정말로 자신을 싫어한다는 사실을.“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내연녀인 거예요.”우원재가 독하게 뱉어낸 말이 끝나자, 지나윤이 오히려 환하게 웃으면서 받아쳤다.“결혼을 못 한 사람이 진짜 내연녀인 거예요.”“당신...!”우원재가 지나윤에게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얼마나 까불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우원재가 떠나자, 지나윤의 어깨가 푹 내려앉았다.‘모든 걸 덮어두고 감정만 놓고 본다면, 사랑받지 못하는 쪽이 내연녀라는 말... 틀린 말도 아니야.’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유시진이 사무실 블라인드를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보통은 사적인 행동을 할 때만 블라인드를 내린다.게다가 채연서도 아직 방 안에 있었다.지나윤은 유시진이 그런 쪽으로 욕구가 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수 년 간 마음에 둔 여자와 사무실에서 무슨 일을 벌이더라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마음 한쪽이 어수선해지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자, 그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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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화

“바로 줄이겠습니다!”유시진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한 장우영이 단숨에 뛰어갔다.지나윤은 오래 자면 안 된다는 생각에 알람을 맞춰 뒀기에, 점심시간이 끝나기 전에 눈을 떴다.눈을 떴을 때, 주변에는 이미 자리로 돌아가서 일하고 있는 장우영뿐이었다.그제야 자신의 어깨 위에 언제부터인지 담요 하나가 걸쳐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짙은 회색의 얇은 울 담요였다. 손끝에 울의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고마워요!”지나윤은 담요를 장우영에게 건네며 먼저 감사 인사를 했다.장우영은 담요를 받긴 했지만, 왜 자신이 감사 인사를 받은 건지 영 이해가 가지 않는 눈치였다.지나윤이 HF그룹에서 일하기 시작한 첫날 밤, 바로 밤 열 시까지 꼬박 야근을 해야 했다.그리고 일주일 내내, 단 하루도 정시에 퇴근하는 날이 없었다.매일 전화를 걸어 상황을 물었던 고아라는 야근 중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유시진을 피도 눈물도 없는 돈벌레가 일부러 괴롭히는 거라고 욕을 해댔다. 지나윤도 유시진이 일부러 그러는 걸 알고 있었다.자신이 다시 전업주부로 돌아가길 원하기에.“지나윤 씨, 지난번에 맡긴 가격 목록은 다 정리했어요?”지나윤의 자리 옆으로 누군가 다가왔다. 총무부 소속의 강수향이라는 직원이었다.채연서와 꽤 가까운 사이라는 것 정도는 지나윤도 알고 있었다.“아직요.”대답을 듣자마자 강수향은 실망한 얼굴로 투덜거렸다.“아직도요? 사흘 전에 드렸잖아요. 내일 바로 써야 하거든요.”“오늘 밤에 완성할게요.”지나윤은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사실 가격 목록 정리는 지나윤의 업무가 아니었다. 처음 강수향이 떠넘기려고 했을 때 지나윤은 거절했다.하지만 채연서가 유시진의 귀에 대고 은근히 부추기자, 결국 유시진도 일을 맡으라고 했다.“수향 씨, 무슨 일이에요?”그때 채연서가 다가왔다. 그녀는 오늘도 핑크빛 투피스에 정교한 메이크업, 화려한 주얼리까지 완벽하게 갖춘, 그야말로 전형적인 엄친딸의 모습이었다.회사 사람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채연서가 유시진의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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