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이혼 다음 날, 사라진 아내와 100억: Chapter 531 - Chapter 540

546 Chapters

531. 청천벽력

최준혁의 시점.'해인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군……. 늦는 건 정말 드문 일인데.' 약속한 오후 세 시가 지나고도 십오 분이 흘렀지만 호텔 로비 라운지 어디에도 서해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항상 성실하고, 약속 시간보다 훨씬 먼저 도착해 기다리던 사람이 바로 서해인이었다. 결혼 생활을 하던 시절에도 약속 시간에 늦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시간과 약속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는 그녀가 아무 연락도 없이 십오 분이나 늦는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서해인을 기다리며 초조한 마음을 달래려고 휴대폰 화면을 켜 뉴스 사이트를 넘겨 보았지만, 화면에 떠 있는 글자들은 그저 의미 없는 기호처럼 보일 뿐 머릿속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평소라면 열심히 챙겨 보던 해외 축구 경기 결과나 이적 기사조차 지금의 나에게는 그저 소음일 뿐이었다. 다시 시계를 확인하니 어느새 삼십 분이 지나 있었다. “이 정도면 정말 이상한데…… 길이 막히는 건가? 아니, 그렇더라도 '조금 늦어요' 정도는 해인이라면 반드시 미리 연락했을 텐데. ……설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가슴을 짓누르는 불길한 예감에 더는 참지 못하고 나는 서해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하지만 귓가에는 신호음만 허무하게 울릴 뿐, 서해인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심장이 불길한 박자로 뛰기 시작했다. 열몇 번째 신호음이 끝난 뒤 자동응답으로 넘어가려는 순간―― 딸깍. 작은 연결음과 함께 통화가 이어졌다. “해인아!? 나야…… 지금 어디야?” 튀어나오듯 다급하게 물었다. 하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는 서해인의 맑고 가느다란 목소리가 아니었다.“……최 사장님이십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낮고, 분명히 동요를 감추지 못하는 남자의 목소리였다. 잘못 건 줄 알고 휴대폰을 귀에서 떼어 화면을 확인했다. 하지만 화면에는 분명히 '서해인'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해인이…… 휴대폰 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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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 기도

최준혁의 시점.“더 속도를 내! 긴급 상황이야. 서둘러 줘!” “사장님, 이 이상은 위험합니다! 저희까지 사고가 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운전석 뒤에서 고함을 쏟아 내는 나를 향해, 평소 온화한 운전기사가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외쳤다. 그 말에 간신히 남아 있던 이성이 머릿속을 찔렀다. 운전기사의 말이 맞았다. 여기서 우리까지 사고가 나 도착이 늦어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초조함에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 같았고, 심장은 갈비뼈를 뚫고 나올 듯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손에 땀이 차 미끄러질 것 같은 휴대폰을 세게 움켜쥐고 응급실 주소를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게 했다. 창밖으로 흘러가는 도심의 풍경은 지나치게 빠르게 감기는 필름처럼 보이면서도, 끔찍할 만큼 길게 늘어진 느린 화면처럼 느껴졌다. '해인아…… 해인아, 제발. 무사해 줘. 나에게서 더는 아무것도 빼앗아 가지 마……!' 마지막으로 통화에서 들었던 전민수의 떨리는 목소리가 몇 번이고 귓속에서 반복되었다. ‘머리를 강하게 부딪히신 것 같아 의식이 흐려져 있었고…….’ ‘마지막으로 최 사장님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내 이름을 불렀다고? 이혼한 뒤 그토록 상처를 주고 멀어지게 만든 내 이름을, 왜 서해인은 불렀던 걸까. 나와 만나기로 약속했기 때문인가? 돌이켜 보면 늘 그랬다. 나는 언제나 오만함과 나약함 때문에 서해인이 가장 절실하게 도움을 원하던 순간에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 결혼했을 때도, 이혼하고서야 서해인의 소중함을 깨달은 뒤에도 나는 서해인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돕거나 지키지 못했다. 이제야 비로소 “모든 것을 말하겠다”, “곁에서 지키겠다”라고 맹세했는데, 또다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만약 그 편지를 보낸 사람이…… 서아영이나 신우석이 해인을 노리고 일부러 사고를 일으킨 거라면…….”문득 머릿속을 스친 최악의 가설에 분노로 어금니가 맞부딪치며 떨렸다. 신우석은 도주했고, 서아영은 그 뒤에서 움직이고 있다. 내가 서해인에게 접근하려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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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 공통점

최준혁의 시점.병실 문 앞에 서서 가볍게 노크한 뒤 조용히 문을 열었다.“……해인아.”서해인의 무사함을 빌며 진료실 앞에서 줄곧 기다렸던 나는 팽팽하게 이어진 긴장과 목마름 탓에 목소리가 완전히 쉬어 있었다. 병실 침대 위에는 머리에 흰 붕대를 감은 서해인이 누워 있다가 천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팔의 상처에는 거즈가 붙어 있었지만, 그 눈동자는 분명 또렷하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준혁 씨……?”희미하게 쉰 서해인의 목소리.그 모습을 본 순간, 오랜 세월 쌓여 온 후회와 사랑스러움, 그리고 ‘해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에서 한꺼번에 해방되며 이성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조용히 침대 곁으로 다가가 서해인의 가느다란 어깨를 끌어당긴 뒤, 감싸 안듯 힘껏 품에 안았다. 품에 안긴 서해인의 몸은 붕대를 감고 있어서인지 예전보다 훨씬 작고 너무도 연약하게 느껴졌다. 내가 조금이라도 힘을 과하게 주면 그대로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해인아……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전 기사님에게 전화로 상황을 듣고, 네가 너무 걱정돼서…… 혹시라도 네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정말 무서웠어…….”서해인의 체온, 머리카락에서 희미하게 풍기는 찻잎 향, 그리고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 소리. 그 모든 것을 온몸의 감각으로 확인하자, 둑이 무너지듯 눈물이 쏟아져 멈추지 않았다. 내 눈물이 서해인의 뺨을 조용히 적셨다.서해인은 놀란 듯 순간적으로 몸을 굳혔다. 하지만 곧 긴장이 풀린 것처럼 숨을 내쉬더니, 가느다란 두 팔을 내 등에 조심스럽게 두르고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준혁 씨…… 울어요?”다쳐서 아픈 것도, 갑작스러운 사고로 무서운 일을 겪은 것도 서해인일 텐데,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를 달래는 어머니처럼 내 등을 일정한 박자로 부드럽게 두드리고 있었다. 그립고 다정한 울림이 담긴 서해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편안하게 떨렸다.조심스럽게 팔의 힘을 풀자, 서해인은 몸을 조금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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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 퇴원

서해인의 시점.다음 날, 오전 정밀검사를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어두컴컴한 검사실로 이동했다. MRI의 비좁은 장치 위에 누워 몸을 고정하자, 검사대가 천천히 새까만 원통 안으로 들어갔다. 머리 위에서는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안대를 썼는데도 카메라 플래시처럼 번쩍이는 빛의 잔상이 느껴졌고, 귓가에서는 마치 공사 현장 한가운데 던져진 것처럼 가가가, 쿵쿵하는 거센 굉음이 불규칙하게 울리며 귀마개 너머로 머릿속을 흔들었다. 보통이라면 숨이 막힐 것 같은 그 소란스러운 공간 속에서, 나는 그저 어제저녁 병실로 달려왔던 최준혁의 온기를 필사적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해인아……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최준혁은, 깨지기 쉬운 물건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손을 대면서도 힘껏 나를 끌어안았다. 최준혁의 목덜미에서는 땀 냄새와 뜨거운 체온이 전해졌다. 그리고 정장 너머로 느껴지는 가늘지만 단단하게 다져진 팔의 감촉. 그 모든 것이 너무도 그리워 내 심장은 순식간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최준혁의 얼굴에서 눈물이 서서히 흘러나와 내 피부를 적셨다. 그 눈물은 얼어붙어 있던 내 가슴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 따뜻한 물결처럼 천천히 퍼져 나가는 것 같았다.'준혁 씨, 정말 급하게 달려와 준 거구나. 약속에 늦은 데다 사고까지 났으니 걱정했겠지. 목소리도 조금 떨리고 있었어…….'내 손을 잡고 있던 그의 손끝도 줄곧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언제나 냉정하고, 기업의 대표로서 당당한 최준혁이 저토록 어린아이처럼 필사적으로 체면도 잊은 채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첫 번째는 이동현의 아파트에서 나를 데리고 나와 구해 줬을 때였다.그때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 오는 팽팽한 긴장감 때문에, 아버지와 최준혁의 모습을 보고 안도한 순간 의식이 어둠 속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 자리에서 무너지려던 나를 누군가가 강한 힘으로 붙들어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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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 뜻밖의 마주침

서해인의 시점.“준혁 씨…….” 목에서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발치에 나뒹군 고급 과일 전문점 종이봉투에서는 싱싱한 멜론과 젤리 컵 몇 개가 흘러나와 병실 바닥을 무정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최준혁은 그것을 바라볼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크게 뜬 그의 눈동자는 나와 성시우를 번갈아 격렬하게 헤매고 있었다. 어제 내 사고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걱정하며 가장 먼저 병실로 달려와 나를 힘껏 끌어안았던 최준혁.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눈물을 흘려주었던 최준혁이――지금은 마치 배신당한 아이처럼, 처절한 눈빛으로 그대로 얼어붙어 있었다. “해인아……. 성시우 씨……? 왜, 여기에…….” 억지로 짜내듯 내뱉는 최준혁의 목소리는 극심한 혼란과 끝을 알 수 없는 절망으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최준혁 씨. 오랜만입니다. 저는 오늘 해인 씨가 퇴원하셔서 모시러 왔습니다. 설마 대표님도 병문안을 오실 줄은 몰랐네요…….” 얼어붙은 듯한 어색한 침묵을 가장 먼저 깬 것은 성시우였다. 성시우는 내 앞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자연스럽게 나를 감싸듯 최준혁의 날카로운 시선을 가로막았다. 목소리는 평소처럼 부드럽고 온화했지만, 나를 감싸고 선 그의 모습에서는 여기서부터는 한 발짝도 지나가게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퇴원하러…… 왔다고요?” 최준혁의 시선이 성시우의 손에 들린 내 보스턴백과, 침대 옆에 가지런히 정리된 퇴원 짐으로 내려갔다. “왜 서 씨 가문 사람도 아닌 당신이 해인을 데리러 온 겁니까……?” 최준혁의 목소리와 말끝에는 미세한 가시가 배어 있었다. 하지만 성시우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미소를 띤 채 차분하게 대답했다.“최준혁 씨는 모르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해인 씨의 전담 운전기사인 전민수 씨가 어제 사고로 타박상을 입으셨습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는 않으셨지만 안정을 위해 당분간 쉬시게 됐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신 온 겁니다.”“대신…… 왔다고요?”미소를 잃지 않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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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 뜻밖의 마주침②

최준혁의 시점.무기질적인 병원 복도를 도망치듯 빠르게 걸었다. 구두의 마른 발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하지만 아무리 걸음을 재촉해도 머릿속에 선명하게 새겨져 떠나지 않는 그 광경을 떨쳐 낼 수는 없었다.병실 문을 열기 직전 들려왔던 두 사람의 은밀한 대화와, 성시우의 품에 조용히 안겨 있던 서해인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다. 성시우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서해인의 가느다란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서해인도 놀란 기색은 보였지만, 성시우를 거부하려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해인 씨…… 정말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저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요.’'함께 집으로 돌아가자고? 소식을 들었다고……?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을 해인이 성시우에게 연락한 건가? 그래서 성시우가 데리러 온 거야? 게다가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니…… 설마 이미 같이 살고 있는 건가……?'서해인의 상태가 걱정돼 견딜 수가 없어 밤새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이라도 조금 가져다주고 싶어 병문안 선물까지 사 들고 왔다. 그런데 나는 오늘이 퇴원일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내가 서해인의 인생에서 완전한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잔인할 수 없는 현실로 들이민 것만 같았다.'나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어제 서해인이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며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나 때문에, 내가 경솔하게 그녀를 불러내 사건에 휘말리게 한 탓에 또다시 서해인을 죽음의 위험으로 내몰았다는 생각에 자신의 무력함과 절망으로 미쳐 버릴 것 같았다.병실에서 서해인의 모습을 본 순간, 억눌러 두었던 감정이 한꺼번에 치솟아 체면도 잊은 채 그녀를 끌어안고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렸다. 서해인도 그런 나를 거부하지 않고 다정하게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 순간만큼은 잃어버렸던 부부의 유대가 되돌아온 듯 달콤한 착각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 혼자만의 환상이었고, 다친 서해인이 잠시 보여 준 정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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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 뜨거운 마음

서해인의 시점.최준혁이 떠난 뒤, 불안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병실. 고요하게 가라앉은 병실 안에서 나는 침대 옆에 놓인 가방 손잡이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머리의 상처는 미세한 맥박과 함께 욱신거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선명하게 가슴을 파고든 것은, 떠나기 직전 최준혁이 보여 준 절망에 가득 찬 눈빛과 쓸쓸히 돌아서던 뒷모습이었다. '준혁 씨………….' "해인 씨."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성시우가 돌아왔다. 걸음은 조용했고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병실로 들어온 그의 분위기는 어딘가 확실히 달라져 있었다. 무겁고 뜨거운 공기를 두른 채, 조금 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시우 씨. 준혁 씨와 무슨 이야기를 하신 건가요?" 불안을 애써 감추며 묻자, 성시우는 내 앞으로 다가와 그대로 침대 가장자리에 천천히 걸터앉았다. 평소라면 이렇게 내게 가까이 다가올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나 신사답게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따뜻하게 나를 지켜봐 주는 사람……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성시우'였다. "최준혁 씨한테…… '이제 더 이상 해인 씨 앞에 나타나지 말아 달라'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네……?" "그리고 그분도 받아들이셨습니다. '해인과 아이들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며, 물러날 각오를 하신 것 같더군요." "그럴…… 수가……!"벌떡 일어나려 했지만 놀람과 충격에 힘이 풀려 그대로 주저앉을 뻔했다. 그런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성시우의 길고 아름다운 손이 내 양어깨를 단단히 받쳐 주었다. "……해인 씨, 왜 그렇게까지 그 사람을 놓지 못하는 거예요." 성시우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언제나 맑고 청량했던 그의 목소리에는 처음 듣는 짙은 열기와 애틋한 슬픔이 배어 있었다. "시우…… 씨……?" "해인 씨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요. 해인 씨를 잃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눈앞이 새까매졌고 숨 쉬는 법조차 잊어버릴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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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 엇갈린 마음

서해인의 시점.“해인과 아이들을 부탁합니다.…… 최준혁 씨에게도 그런 부탁을 받았어요.”성시우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그 말이 차갑게 내 고막을 때렸다. 지척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숨이 막힐 만큼 달아올랐던 열기가 한순간에 얼어붙는 듯했다. 내 뺨에 닿아 있던 성시우의 손끝과, 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등에 둘러져 있던 팔의 감촉이 빠르게 현실감을 잃어 갔다.“……준혁 씨가요? 정말로…… 그렇게 말했나요?”쉰 목소리로 되묻는 것이 고작이었다.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성시우는 내 놀람을 다정하게 감싸듯 애처로움이 담긴 온화한 눈빛으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하지만 저는 최준혁 씨가 부탁하지 않으셨어도 해인 씨와 아이들을 지키고 싶었어요. 지킬 각오는 오래전부터 되어 있었어요. 그러니…… 제 곁에 있어 주세요. 그것이 제 바람이자, 최준혁 씨의 바람이기도 합니다.”최준혁의 바람이기도 하다――.그 한마디가 날카로운 칼이 되어 가슴 깊숙이 꽂혔다. 시야가 휘청이며 현기증이 일었다.'준혁 씨…… 왜? 어째서 그런 말을……?'어제저녁 병실에서 내 손을 꽉 붙잡은 채 흘리던 뜨거운 눈물은 거짓이었던 걸까.‘해인아…… 무사해서 정말 다행이야. 네가 죽는 건 아닐까 싶어서…… 정말 무서웠어.’나를 힘껏 끌어안고 깨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애틋하게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었던 최준혁. 최준혁의 안에서 타오르던 분노와,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그토록 강한 맹세.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전했던 말들이 겨우 하룻밤이 지났다고 모두 사라진 것일까?‘괜찮아, 해인아. 내가 여기 있어. 곁에 있을게.’어제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끌어안았을 텐데. 아버지들이 아무리 ‘최준혁과 엮이지 마라’라며 막아도, 나는 최준혁의 올곧은 온기를 믿고 싶었다. 그래서 주위에서 아무리 반대하고 아무리 위험한 어둠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이번에는 최준혁의 손을 놓지 않고 함께 싸우겠다고 이제 막 마음먹었는데.그런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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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 엇갈린 마음②

서해인의 시점.“준혁 씨가 저를 부탁했다고 해도, 얌전히 ‘알겠어요, 부탁해요’라고 할 수는 없어요. 저는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이가 아니에요…… 준혁 씨가 뭐라고 하든, 제 일은 제가 스스로 결정하고 싶어요.” “해인 씨…….” “저더러 ‘보호받기만 하는 존재’로 있으라는 거라면, 준혁 씨도 시우 씨도……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예요.” 분함과 슬픔, 그리고 최준혁을 향한 격렬한 분노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어쩌면 이것은 그저 성시우 씨에게 화풀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절대로 눈앞의 성시우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입술을 깨물며 견뎠다. 제멋대로 나를 누군가에게 ‘맡기는’ 것으로 지켰다고 생각하는 최준혁의 나약함과 안일함. 그리고 나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품 안에 가두려는 성시우의 강압적인 태도. 두 사람 모두 나를 생각해서 그러는 것임을 알고 있어도, 그 마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내 외로움과 두려움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아낌없이 온기를 건네려 하는 성시우를 매정하게 밀어낼 수도 없었다. 사고의 공포에 떨던 나를 지탱해 주고 진지하게 마주해 준 그의 호의는 거짓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죄송해요. 해인 씨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행동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최준혁 씨가 해인 씨를 포기한다고 해도, 저는 해인 씨를 혼자 두지 않을 거예요.” 성시우는 조용히 내 짐을 들고 천천히 복도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성시우를 따라 세 걸음 뒤에서 걸었다. 뒷모습만으로는 표정을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섣불리 말을 걸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주차장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차에 올라탄 뒤에도 우리 사이에는 대화가 없었다. 차 안에 조용히 흐르는 음악이 평소보다 이상할 정도로 크게 들렸다.성시우는 화가 난 것도, 냉담하게 구는 것도 아니었다. 신호에 걸릴 때마다 거울 너머로 내 상태를 살피듯 애틋하고 다정한 시선을 보내왔다. 거절당했는데도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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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 방문

서해인의 시점.“다도 수업은 제게 맡기시고, 해인 씨는 충분히 쉬어요.” 병원에서 받은 검사 결과는 다행히 가벼운 타박상 정도였고, 통증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다다미 위에 정좌하거나 몸을 숙이는 등 기모노를 입었을 때 특유의 섬세한 동작을 하면 다시 통증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성시우 씨의 배려로 한 달간 휴가를 받게 되었다. 성시우도 아버지도 내 몸을 걱정해, 내가 곧바로 다도 교실에 복귀하는 것을 결코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 이외에는 누구와도 만나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홀로 격리된 듯한 외로움을 동반한 생활은, 청운 산장에서 조용히 지내던 시절의 쓸쓸함을 떠올리게 했다. 그런 어두운 생각에 빠져 지내기 쉬웠던 어느 날의 일이었다. 거실에서 쉬고 있는데 휴대폰에 심예련의 전화가 걸려 왔다. “해인 씨, 갑자기 전화드려서 죄송해요! 시우 씨에게 해인 씨가 사고를 당하셨다고 들어서…… 너무 놀랐어요. 몸은 정말 괜찮으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심예련의 빠른 목소리에는 감추지 못한 초조함과 깊은 걱정이 묻어 있었다. 나를 위해 이렇게 진심으로 걱정하고 신경 써 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외로움에 지쳐 가던 마음을 다정하게 감싸 주었다. “예련 씨,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정말 가벼운 타박상이라 이제 괜찮아요. 다만 시우 씨가 무리하면 안 된다며 휴가를 주셨어요.” “후후…… 역시 시우 씨답네요. 평소에도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따뜻한 분이시지만, 해인 씨는 다른 분들보다 훨씬 더 신경 쓰고 계시잖아요. 해인 씨가 시우 씨에게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줄곧 하고 있었어요.” 심예련의 말에 가슴이 덜컥 뛰었다. 성시우가 내게 품고 있는 올곧은 마음은 주변의 심예련이 보기에도 감출 수 없을 만큼 분명했던 것이다.성시우가 나를 향해 품은 마음을 심예련은 이미 꿰뚫어 보고 있었던 듯했다. 평소 우리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었을지 조금 궁금해졌다. 약간의 부끄러움과 어색함이 뒤섞인 감정이 밀려왔고, 내가 대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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