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hat ng Kabanata ng 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 Kabanata 221 - Kabanata 230

388 Kabanata

제221화

횡단보도를 건너는 내내 권지헌은 허설아의 손을 놓지 않았다.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맞게 끼워진 부품처럼 도무지 뺄 수가 없었다.병실에 들어오니 연희는 아직 자고 있었다.권지헌은 여전히 손을 놓지 않았다.허설아는 손을 뒤로 잡아당기고 눈을 부릅뜬 채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권지헌 씨, 손 놔요.""날 놀래킨 거에 대한 정신적 피해 보상이야."허설아는 할 말을 잃었다. 허설아가 스스로 교통사고 났다는 소문을 퍼뜨린 것도 아닌데!권지헌의 뻔뻔함이 생각보다 훨씬 수준급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손을 빼려 하자 권지헌은 병상 위의 연희를 보며 말했다."연희 깨우지 말고 얌전히 있어요."연희가 침대 위에서 뒤척이자 허설아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왠지 모르게 아이 앞에서 불륜이라도 저지르는 것 같은 이상한 착각이 들었다.설마 밤새 이러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허설아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나 화장실 가야 해요, 이제 놔줘도 되죠.""같이 가줄게."허설아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미쳤어?'권지헌은 그 표정을 읽었는지 몇 초 빤히 바라보다가 손을 놓았다.대신 허설아의 뺨을 살짝 잡고 꼬집으며 말했다."그러면 약속해. 앞으로 나한테 욕하고 싶을 때는 참지 말고 그냥 해."이번엔 허설아가 진짜 참기 어려운 듯했다. 허설아는 발을 들어 권지헌의 정강이를 툭 걷어찼다. 세게 찬 건 아니었지만 손을 놓게 하기엔 충분했다.그리고 나지막하게 한마디 내뱉었다."진짜 미쳤네요!"허설아는 몸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 문을 닫은 뒤 허설아는 문에 등을 기댄 채 숨을 골랐다.밤새 심장이 진정될 새가 없었다. 오늘 하루 너무 많은 일이 있어 마음이 쉽게 가라앉을 줄 몰랐다. 심장이 한참을 쿵쾅거렸다. 방금 전 차 사고도 그렇고, 당황한 얼굴로 사방을 뒤지며 허설아를 찾던 권지헌의 표정도 그렇고, 모든 것이 허설아의 심장을 계속 자극했다.숨을 몇 번 깊게 들이쉬고 나서야 겨우 진정되었다.화장실 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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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2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설아가 해명하려는데 권지헌이 한발 앞서 고개를 끄덕였다."조만간 연희 데리고 두 분 찾아뵐게요.""그래, 기다리고 있을게. 우리 집사람도 직접 탕수육 해주겠다고 계속 얘기했어."어른들이 아랫사람을 챙기는 방식 중 가장 단순한 건 역시 먹이는 것이었다.권지헌은 이제 명실상부 권율 그룹의 실권자였지만 주영훈 교수 눈에는 여전히 어릴 때와 똑같았다.자기 아이가 생겨서인지 권지헌도 그 마음을 이해했다.권지헌도 항상 연희를 데리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고 싶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영훈 교수를 배웅하고 병실로 돌아온 권지헌은 연희와 함께 아침을 먹었다.아침은 유혜원이 방금 가져다준 것이었다.박희수가 어제 밤새 주방에 붙어서 직접 죽을 끓였는데 쌀알이 먹기 좋게 완전히 퍼질 때까지 끓인 거라 전서준도 아침에 몇 그릇이나 먹었다고 했다.박희수가 연희를 그리워하고 있었기에 유혜원에게 죽을 가져다주라 한 것이었다.그 광경을 떠올리기만 해도 유혜원은 절로 감탄이 나왔다.언젠가 연희가 친손녀라는 걸 박희수가 알게 된다면 기쁨에 겨워 어쩔 줄 모를 것이다. 하지만 같은 엄마로서 유혜원은 허설아의 결정을 전적으로 지지했다.그래서 더 말은 보태지 않았다.오전에 권지헌은 휴대폰을 들고 비어 있는 다른 병실로 가서 회의를 했다.허설아는 태블릿을 들고 그림을 계속 그렸다.병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과일 바구니와 꽃다발을 든 안지혜가 문 앞에 서 있었다.허설아가 고개를 드는 걸 보고도 몇 번을 더 확인하고 나서야 안으로 들어왔다.몇 년 만에 보는 허설아 얼굴이라 선뜻 확신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허설아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지혜 언니, 어떻게 왔어요?""그러게 말이야, 우리 수영이가 연희한테 준 것 때문에 입원까지 했는데 내가 안 올 수가 있어?"간호사 스테이션에서 물어봐서야 겨우 병실을 찾을 수 있었다. 계속 마음에 걸렸던 안지혜는 가방에서 용돈 봉투를 꺼내 연희에게 건넸다."자, 연희야. 이거 지혜 이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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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3화

허설아가 놀라며 물었다."민규 오빠가 양육비를 안 줬어요?""양육비? 주기는 개뿔! 양육비 달라고 전화할 때마다 그 어린 와이프가 받더니 돈 없으면 몸이라도 팔든지 돈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하는 거야!"허설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현서가 그런 말까지 한다고?안수영은 어쨌든 연민규의 아들인데 2년 넘게 양육비 한 번 안 줬다니.아무리 생각해도 너무했다.안지혜가 말을 이었다."연중근이 직접 수영이 데려다가 개명시키려 했어. 데리고 가 보니까 이혼해도 아이 성을 바꾸려면 양쪽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걸 안 거지. 내가 허락할 리가 없잖아. 연씨 성 달고 다니는 것들이랑 한 핏줄이라는 것도 재수 없는데!"연희가 말랑말랑한 작은 손을 번쩍 들었다."나도 연씨예요."안지혜가 얼른 환한 웃음을 띠며 말했다."연희 얘기가 아니야. 우리 연희 이름은 세상에서 제일 예뻐! 연희 외할아버지도 진짜 좋은 분이고."연희가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외할아버지가 좋은 사람이라는 건 연희도 알고 있었다.외할머니도 엄마도 항상 그렇게 말했으니까.연희의 말에 안지혜의 화도 한결 가라앉았다."연민규 새 와이프 만나본 적 있어?"허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대학 때 룸메이트였던 친구예요. 집안 사정이 좀 어려워요."허설아가 아는 것이라고는 현서가 시골 출신에 부모님이 농사를 지었다는 것과 친엄마가 일찍 돌아가셔서 지금 엄마는 새엄마이고 새엄마가 여동생 둘과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키우는 남동생 하나 있다는 것 정도였다.허설아 말을 다 듣고 난 안지혜는 잠깐 놀란 표정을 짓더니 그대로 빵 터졌다."쌤통이야!""연민규도 인과응보지. 그런 집안 여자와 결혼하면 편하게 살 것 같아? 나는 두어 번 맞자마자 바로 도망쳐서 이혼이라도 쉬웠지. 그런 집안은 딸이 맞아 죽어도 이혼은 절대 안 시켜."허설아도 속으로는 같은 생각이었다.당시 안지혜가 가정폭력을 당했을 때 인기척을 들은 연동근이 연중근 집으로 달려가 말리고 안지혜를 데리고 나왔다.그리고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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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4화

과거의 그 사건은 허준 그룹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허설아는 회사 경영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연동근도 허설아가 회사 일에 관심이 없다는 걸 알고 억지로 배우게 하지 않았었다.허민정도 병으로 쓰러졌기에 많은 일은 연중근에게 처리하라고 맡겼었다. 연동근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마음이 여리다는 것이었다.가족에게는 더없이 좋은 사람이었지만 사업가로서는 맞지 않는 성격이었다.회사 내부에 친척들도 적잖이 있었지만 다들 요직에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연민규는 연동근의 비서였고 연중근은 줄곧 공장 라인 관리직으로 있었다.그러다 보니 공장과 쉽게 접촉할 수 있었던 것도 연중근이었다.그때 사고가 난 공장도 연중근이 관리하던 곳이었다.그리고 전에 갑측 회사에서 걸려 온 전화가 떠올랐다.생각하면 할수록 그 일에 아직 반전의 기회가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커졌다.연희의 수액 병이 바닥을 드러냈다.간호사가 와서 바늘을 뽑고 퇴원 시 주의사항을 몇 가지 일러준 뒤 퇴원시켰다.간호사 스테이션을 지나치는데 간호사가 허설아를 불러 세웠다."아, 맞다. 남편분이 옆 병실에서 통화 중이신 것 같던데 같이 안 가요?"간호사는 피식 웃었다.'남편을 두고 간다니, 이 여자도 참.'허설아는 잠깐 멈칫했다.권지헌이 계속 병원에 있을 줄 몰랐고 해명하기도 귀찮았기에 고맙다고 말하고 바로 몸을 돌려 옆 병실 문을 두드렸다.권지헌은 휴대폰을 들고 병실 안에 서 있었다. 눈가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고 말투도 상당히 거칠었다.거래처와 통화 중인 것 같았다.낮고 묵직한 목소리와 팔뚝에 선명하게 튀어 오른 핏줄 때문에 좀 무서워 보였다.연희가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지헌 삼촌."허설아가 얼른 손으로 연희 입을 막으며 쉿 했다.권지헌은 문 쪽에서 나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허설아와 연희를 본 순간, 눈썹 사이를 짓누르던 먹구름이 걷히며 표정이 단번에 풀렸다.권지헌은 능숙한 영어로 상대에게 사과했다."회의 일정 바꿔. 딸이 방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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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5화

어쨌든 권씨 집안 일이었다.권지헌이든 박희수든 권호성에게 불만이 있다는 건 유혜원도 알고 있었다.권호성이 전화하라고 시키지 않았으면 이런 일을 유혜원이 굳이 떠안을 이유가 없었다.전화를 끊은 권지헌이 담담하게 말했다."걱정 마. 아무도 너한테서 연희 빼앗을 사람은 없어. 연희는 영원히 네 딸이야. 성이 연씨든 허씨든 상관없이 네 딸이야."권지헌은 잠깐 뭔가를 떠올린 듯 쓴웃음을 지었다."나도 그럴 일 없어."허설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고마워요."잠시 말이 없던 허설아가 고개를 들며 백미러 속 권지헌과 눈이 마주쳤다.눈 속에 먹구름이 걸려 있는 듯 뭔가 깊고 짙은 것이 담겨 있는 것 같으면서도 도무지 감정을 읽어낼 수 없었다.그 먹구름 아래에는 커다란 슬픔이 숨겨져 있었다.속눈썹에 힘만 주면 그대로 비가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허설아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방금 혜원 씨가 말한 분 지헌 씨 할아버지예요?"권지헌이 티 나지 않는 코맹맹이 소리로 짧게 답했다."응, 할아버지야.""어젯밤에 지헌 씨 어머니도 할아버지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잖아요?"차가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엄마는 할아버지를 좋아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원수지. 내가 태어나고 나서 할아버지가 한 명 더 낳으라고 했는데 엄마가 싫다고 하니까 할아버지가 이혼하라고 했거든.""이래저래 독한 말로 엄마를 자극해서 우울증까지 걸렸어. 그래서 한번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데 아빠도 엄마가 잘못된 줄 알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 다행히 둘 다 살았지만."권지헌의 입가에 소리 없는 조롱 섞인 미소가 스쳤다."우리 할아버지는 그런 사람이야. 자기가 다 쥐고 흔들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통제 못 하는 거야."다만 그 일을 계기로 오히려 권지헌 부모님은 사이가 꽤 좋아졌다. 고생을 같이 겪으면서 정이 든 셈이었다.박희수의 우울증도 나았다.허설아도 전에 집안 형편이 좋았기에 재벌가의 이면들을 적지 않게 봐왔다.허민정과 연동근처럼 진심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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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6화

손에 들었던 슬리퍼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허설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자 문밖에 있던 남자가 또 한 번 개 짖는 소리를 냈다.이번엔 방 안에 있던 연희까지 들었다.칫솔을 물고 양치를 하다 말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엄마, 강아지 있어요? 강아지 소리가 들렸어요!"허설아는 이를 악물고 지금 당장이라도 문 열고 권지헌을 한 대 패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눌렀다."없어. 다른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인가 봐."연희는 그래도 근처에 정말 강아지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엄마, 문 열어서 우리 집 문 앞에 강아지가 있는지 봐봐요."허설아는 어쩔 수 없이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권지헌은 여전히 문 앞에 서 있었다.허설아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으로 권지헌의 등을 두드리며 소리 없이 쫓아냈다.강아지가 있는지 궁금했던 연희는 양치를 마치자마자 쪼르르 달려왔다.고개를 내밀자 권지헌이 문밖에 서 있었다."지헌 삼촌, 여기 왜 있어요?"권지헌은 옆집 문을 열며 태연하게 말했다."강아지 소리가 들려서 혹시 문 앞에 강아지 있나 보러 왔지."당연히 없었다.강아지 소리를 낸 건 강아지가 아니라 강아지보다 더한 남자였으니까.권지헌은 연희의 실망한 표정을 보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연희 생일 때 삼촌이 강아지 한 마리 사줄까?"연희의 눈이 금세 반짝였다.그러다 이내 고개를 저으며 풀이 죽어 말했다."됐어요. 강아지는 너무 좋아하지만 저는 돌볼 수가 없어요. 엄마는 바쁘고 할머니는 몸이 안 좋아서 강아지 돌보기 힘들잖아요."강아지가 집에 오면 행복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권지헌이 허리를 굽혀 연희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그럼 삼촌이 돌볼게. 그것도 안 되면 큰곰 할머니한테 맡기면 되잖아, 할머니 엄청 한가하거든.""진짜요?""진짜야, 거짓말 아니야. 엄마만 허락하면 돼."연희는 신이 나서 폴짝 뛰어올라 권지헌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볼에 뽀뽀를 쪽 했다.그러고는 허설아 등 뒤로 달려가 권지헌 집 안으로 밀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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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7화

이러니 위장염이 안 걸리는 게 이상한 거였다.허설아는 다시 옆집으로 돌아갔다.침실 문을 열어보니 허민정과 연희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주방에는 허민정이 끓여둔 국이 조금 남아 있었고 밥도 조금 남아 있었다.많지 않고 딱 한 그릇 정도였다.잠깐 망설이던 허설아는 결국 앞치마를 두르고 냄비에 면을 한 줌 넣어 끓인 뒤 국물을 부어 담고 옆집으로 건너갔다.아무리 두드려도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다시 몇 번 두드려도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방금 문 열리는 소리도 엘리베이터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돌아가려는데 휴대폰 알림이 울렸다."그냥 들어와, 비밀번호 알잖아."문을 열고 들어가니 권지헌은 긴 다리를 아무렇게나 테이블 위에 걸친 채 소파에 누워 있었다.허설아네 세 식구에게도 넓은 거실인데 권지헌 혼자 누웠는데 벌써 남은 공간이 없어 보였다.집 안 가득 권지헌의 숨결과 술 냄새가 배어 있었다.허설아는 닭고기 면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나가려는데 눈을 감은 채 피부가 온통 빨개져 있는 권지헌이 눈에 들어왔다. 허설아가 권지헌을 불렀다. "권지헌 씨?"아무 반응이 없었다.아까 문을 열 기운도 없었던 걸 보면 몸이 꽤 안 좋은 것 같았다.허설아가 다가가 권지헌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이내 한숨을 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이렇게 뜨거울 줄 알았으면 아까 계란 프라이 하지 말고 그냥 올 걸.'다행히 권지헌 집에도 같은 자리에 구급함이 있었다.허설아네 집에 있는 것과 완전히 똑같은 것이었다.허설아는 해열제를 꺼내 손바닥에 올린 채 권지헌에게 건넸다.약을 먹는 걸 확인하고 자리를 뜨려는데 권지헌이 고통스러운지 잠꼬대처럼 낮게 신음했다. "설아야."아주 작은 소리였다.마치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 같았다.허설아는 그 자리에 걸음이 멈추고 말았다. 마음 한 구석이 자꾸 갈팡질팡했다. 허설아는 눈을 감고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 휴대폰을 봐서 시간이 짝수 분이면 조금 더 남아서 챙겨주고 홀수 분이면 돌아가서 조민규나 유혜원을 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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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8화

허설아는 완전히 말문이 막혔다.새삼 권지헌에 대해 아는 게 아직도 너무 적다는 걸 깨달았다.권지헌의 가정환경도 성격도, 지금껏 허설아 앞에서 보여준 건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어쩌면 권지헌도 권호성이나 박희수와 권정우처럼 고집스러운 면이 있는지도 몰랐다. 지금의 권지헌은 허설아가 전에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집요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했다.허설아는 수도 없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말하고 싶었다.그런데 매번 권지헌은 또 허설아의 상식선을 뛰어넘는 행동을 해버렸다.권지헌을 처음 만나는 건가 싶을 정도였다.허설아가 권지헌의 가슴을 슬쩍 밀어내고 조금 전 화제를 피하며 말했다."밥 해왔어요, 다 먹으면 갈게요."권지헌은 그제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몸을 일으키더니 고개를 숙여 허설아 얼굴에 입을 살짝 맞추고 허설아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일어나 식탁으로 걸어갔다.젓가락을 들고 면을 크게 떠먹기 시작했다.조금 오래 둔 탓에 면이 조금 불어 있어서 젓가락으로 집으면 툭툭 끊겼다.그래도 권지헌은 다 먹었다.허설아는 다 먹으면 그릇 받아서 가려고 옆에 서서 기다렸다.얼굴이 조금 달아올랐다.손으로 살짝 짚어보니 방금 권지헌의 입술이 닿았던 자리가 그의 열기에 전염된 것처럼 뜨겁게 느껴졌다.권지헌은 면을 다 먹고 일어나 주방에서 그릇을 씻어 물기를 닦은 뒤 허설아에게 건넸다.허설아가 받으려 손을 뻗는데 권지헌이 놓지 않았다.두 사람이 그릇 하나를 사이에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꼴이었다.권지헌이 고개를 숙여 허설아를 내려다봤다.아까 셔츠를 벗은 채 아직 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다. 팔과 복근에는 그릇을 씻으면서 물방울들이 근육에 튀어 외면하기 힘든 강한 남성 호르몬을 뿜어냈다. 권지헌의 눈빛 속에 허설아가 외면할 수 없는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어? 설아야."밤하늘의 별처럼, 여름날의 반딧불처럼 그냥 그렇게 허설아를 바라봤다.허설아는 고개를 숙인 채 기대감으로 반짝이는 눈길을 피해 그릇을 가져갔다."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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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9화

권호성이 코웃음을 쳤다."밖에서 파는 국수가 집 국수보다 낫다는 거냐? 어떤 대단한 요리사가 만든 건데 그렇게 마음에 들었어?""맛도 그냥 그렇고 면도 좀 불었지만 제가 좋아하는 거니 당연히 마음에 들죠."권지헌이 허설아가 만든 음식을 먹은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예전엔 허씨 집안 아가씨가 주방에 들어갈 일 자체가 없었다.오늘 국수는 권지헌의 예상을 뛰어넘었다.아들이 구박받는 걸 보기 싫었던 박희수가 웃으며 말을 돌렸다."연희 퇴원했어?""네, 강아지가 갖고 싶대요."역시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박희수가 바로 가슴을 탁 치며 말했다."내가 사줄게, 내가! 연희가 어떤 품종 좋아해? 집이 좁아서 키우기 힘들면 우리 집에 두고 주말에 놀러 오면 되잖아!"박희수는 이미 다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연희가 좋아하는 강아지를 집에서 키우면 연희가 자주 놀러 오겠지!'전서준이 옆에서 투덜댔다."작은 할머니, 내가 전에 토끼 갖고 싶다고 했을 때는 안 사줬잖아요.""토끼가 얼마나 냄새나는데, 땅도 파고 다녀서 안 돼. 우리 강아지 키우자!"이렇게 대놓고 편애하는 박희수가 권지혁도 신기했다. 권지헌에게 눈썹을 씩 올리며 낮게 말했다."큰 엄마가 진짜 허설아 씨 딸을 좋아하시나 봐요."권지헌이 가볍게 웃었다.국 한 숟갈을 뜨고 바로 그릇을 내려놓고 이따금 반찬만 집었다.권호성이 식탁에 둘러앉은 자손들을 한 바퀴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지헌아, 송 아저씨 딸이 이번 달에 미국에서 들어온다. 돌아오면 두 사람 약혼해."식탁은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권지헌은 태연하게 반찬을 집으며 권호성의 말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다.권지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권호성도 더 말을 잇지 않았다.두 사람이 그렇게 팽팽하게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권호성이 먼저 고집을 꺾고 입을 먼저 열었다."대답을 해. 하겠다는 거냐, 안 하겠다는 거냐."권지헌이 담담하게 말했다."안 해요. 할아버지가 기어이 밀어붙이신다면 저는 수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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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0화

식탁 앞에서 감히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정적 속에서 잔이 부딪히는 소리만이 조용히 울렸다.권호성 슬하에는 아들이 셋이었다.장남 권정우는 골동품과 서화를 좋아했고 차남 권정민은 무협 영화와 예술 영화에 심취해 있었다.막내 권정열은 하루가 멀다 하고 술과 여자에 빠져 지내는 방탕한 도련님이었다. 젊을 때 강성시에서 사고를 한 번 쳐서 권호성이 직접 찾아가 피해자 앞에서 두 다리를 부러뜨리고 별장에 눌러앉혀버렸다.그렇게 완전히 폐인이 된 것이다.그때만 해도 권호성은 권씨 집안이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았다.그러다 권지헌이 태어났다.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어릴 때부터 권지헌은 남달랐다. 어린 나이답지 않은 배짱과 수완을 보였다.권씨 집안 손자, 손녀 다섯 명 모두 함께 자랐는데 권호성이 아이들에게 집 안에 딴마음을 품은 도우미를 찾아보라고 한 적이 있었다.그날은 권호성의 회중시계가 사라졌었다.권지헌은 그저 이렇게 말했다."할아버지한테 시계 없어졌다고 말한 바로 그 사람이에요."권호성이 놀라서 물었다."어떻게 알았어?"권지헌이 손을 펼치자 손바닥 위에 회중시계가 놓여 있었다."제가 가져간 거예요. 그리고 모든 사람한테 할아버지한테 말하면 안 된다고 했고 다들 약속했거든요. 그러니까 그 말을 한 사람이 나쁜 사람이에요."권호성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흐뭇했다.그러면서도 권씨 집안을 이어갈 사람이 생겼구나 싶었다.다른 손자들보다 권지헌을 훨씬 더 엄격하게 키운 것도 그래서였다.권호성은 문득 당혹감이 느껴졌다. 눈앞에 있는 손자가 언제 자신이 더는 통제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걸까?권호성이 눈을 치켜뜨고 권지헌을 노려봤다."송씨 집안과 혼인하면 너한테 얼마나 큰 이득인지 몰라서 그래?""할아버지가 정씨 할머니랑 혼인하셔도 권씨 집안에는 똑같이 이득이에요."정씨 집안과 송씨 집안은 같은 업계였다.정씨 집안 장남과 송씨 집안 장남이 같은 정부 부처 사무실에서 일할 정도였다.권지헌은 여유롭게 자리에서 일어나 잔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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