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를 모르는 그가 내 상사라니!의 모든 챕터: 챕터 201 - 챕터 210

388 챕터

제201화

그 순간 허설아는 허민정이 아빠도 사랑했고 허설아도 사랑했다는 걸 깨달았다.어쩌면 대학 때 허설아가 추구했던 사랑도 그런 달콤한 사랑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문득 권지헌이 떠올랐다.허설아는 입에 넣은 완두콩을 씹는 것도 잊고 그대로 삼켜버렸다.물을 몇 모금 마셨지만 더 이상 밥을 먹을 마음이 사라졌다.집에 있을 때 이미 배불리 먹었기에 그저 허민정의 식사가 제대로 나오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몇 입 먹어보니 괜찮은 편이었다."아빠가 그 집은 엄마랑 결혼한 곳이라고 했었어요. 엄마가 팔고 싶으시면 팔아요, 난 상관없어요."허민정이 빙그레 웃었다."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 퇴원하고 나서 내가 처리할게. 판 돈은 수영이랑 연희가 반반씩 나눠 가져."허설아가 도시락 뚜껑을 덮으며 무심히 말했다."민규 오빠 새 와이프도 임신했대요."허민정이 단호하게 손을 내저었다."내 딸 괴롭힌 사람한테는 단 한 푼도 안 줄 거야. 나 허민정은 절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야."안수영한테 주는 건 연민규가 허설아한테 정말 잘해줬기 때문이다.게다가 안수영은 지금 연중근이 키우는 게 아니니까 삐뚤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허민정은 고마운 것들과 나쁜 것들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현서 아이한테는 절대 단 한 푼도 주지 않을 것이다.허설아는 가슴속에 따스한 온기가 감돌았다."네, 엄마 말대로 할게요."허민정은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한편 마음속으론 어쩌면 양옥집에서 남편이 생전에 남긴 자료를 좀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허민정은 며칠 동안 누워 있으면 계속 옛날 꿈을 꿨다.어느 날은 연동근이 세상 떠나기 전 며칠간 계속 양옥집 얘기를 하던 꿈을 꿨다.허민정도 그때 몸이 안 좋아서 그 일을 잊고 있었다. 이번에 가면 뭔가 찾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형, 조사해 봤는데 형수…… 허설아 씨 집안 회사에 문제가 생긴 건 사고였어. 직원 한 명이 기계에 눌려 사망했는데 책임자가 유가족까지 속였대.""유가족한테 직원이 기계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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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가슴 속의 답답한 기운을 몰아내고 싶었다.하지만 한참을 애써도 소용이 없었다.권지헌은 휴대폰을 옆에 놓고 눈썹을 찌푸린 채 권지혁을 보았다."허준 그룹은 지금 어떤 상황이야?""자산 동결됐어, 유가족 쪽에서 계속 물고 늘어져서 합의를 안 해주고 있거든. 그리고 당시 그 일 때문에 손해 본 협력사들이 있는데 허설아 씨가 계속 그 빚을 갚고 있는 것 같아."권지혁은 권지헌의 안색을 슬쩍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그중 한 곳이 권율 계열사인데……"권지헌의 분위기가 점점 더 싸늘해지는 게 느껴졌다.권지혁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말을 마쳤다."우리 그룹 주문량이 좀 컸거든. 당시 영향도 적지 않아서……"권지혁이 침을 꿀꺽 삼켰다."그러니까 형이…… 사실은 현재 허설아 씨의 최대 채권자야."허설아가 빚을 갚는 협력 기업들 중엔 권율 계열사도 있었다.그렇다면 정말 간접적으로는 권지헌한테 갚는 것이었다.권지헌이 허리를 굽혀 떨리는 손으로 바닥에 떨어진 펜을 주웠다.권지헌의 머릿속엔 온통 다시 만난 후 허설아의 궁핍한 모습들뿐이었다.자기한테는 옷 사는 걸 아까워하고 연희 옷도 전부 안초희가 안 입는다고 준 것이었다.택시 타는 것도 아까워했고 돈을 아끼려고 아주 먼 교외의 낡고 작은 집에 사는 걸 택했다.배달 음식 하나 시키는 것도 어느 플랫폼이 얼마라도 더 싼지 여러 플랫폼을 꼼꼼히 비교했다.허설아가 언제 이런 서러움을 겪은 적 있을까.전에 권지헌은 허설아가 무능한 다른 남자 때문에 이런 초라한 생활을 견디는 거라고 생각했다.권지헌은 이런 삶을 살면서도 미소 한 번 보여주지 않는 허설아에게 화가 났다.분명 허설아가 손짓만 하면 권지헌이 스스로 달려갈 텐데.하지만 이 모든 안쓰러움이 알고 보니 대부분 권지헌 때문인 것이었다.권지헌이 손으로 얼굴을 세게 문질렀다.손을 뗐을 땐 눈가가 온통 빨갰다.권지혁은 간담이 서늘해졌다.허설아 씨가 이렇게 대단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니.권지혁이 입을 열었다."형, 내가 계열사 쪽에 연락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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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권지헌은 딸한테 남길 것이다, 두 사람의 딸인 연희에게. 허설아는 권지헌이 주는 걸 받지 않겠지만 연희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건 막지 않을 것이다.권지헌의 모든 것을 연희한테 주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다만 허설아가 유일한 보호자가 될 것이다.-일주일 연속 비가 내렸다.허민정은 퇴원한 후 처음으로 허설아가 새로 세 맡은 집에 도착했다.들어가자마자 이곳저곳 둘러보던 허민정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가격을 들은 허민정이 좀 경계하며 말했다. "이렇게 싸? 이 아파트 단지면 최소 2백만 원은 넘어야 하는 거 아니야?"이 아파트는 위치상 도심 중심이었고 이렇게 큰 집이면 임대료가 적어도 2백만 원은 넘어야 했다.허설아가 빨대를 꽂고 물을 마셨다."집주인이 돈이 부족한 게 아니라고 집만 잘 관리해 줄 세입자를 찾고 싶대요.""돈이 부족하지 않다고 공짜로 주는 사람은 못 봤어. 이 냉장고 봐봐, 새건데 싸 보이지도 않아."허민정이 베란다의 건조기를 가리켰다."몇 년 전에 외할머니한테 저 브랜드 건조기 사드렸는데 베란다에 있는 것보다 고급스러운 것도 아닌데 7백만 원이었어." 허설아도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졌다.바로 휴대폰을 꺼내 같은 모델 냉장고 가격을 검색했다.허설아는 화면에 적힌 숫자를 세 번이나 세어보고서야 제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수백만 원짜리 냉장고였다.게다가 그날 중개인이 말하기를 집주인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새 냉장고를 주문했다고 했다.전에 냉장고가 없었다는 건 이 집에 계속 사람이 안 살았다는 뜻이었다.사람이 안 사는 집은 계속 비워두면 되지 굳이 싸게 임대할 필요가 없었다.하물며 이렇게 비싼 냉장고까지 사다니. 허설아가 중개인 프로필을 눌러 메시지를 보냈다."전에 집주인 분 연락처 추가하는 걸 깜빡했는데 연락처 보내줄 수 있을까요? 나중에 월세 내기 편하게요."지난번 월세는 중개인한테 직접 줬었다.30분이 지났는데도 중개인은 답장을 하지 않았다.허설아가 그리던 원고를 거의 다 마무리할 때쯤 중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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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또 메시지 알림이 왔다."원래는 정일우한테 연락하려고 했는데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아."허설아는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보았다.연희는 옆에 엎드려 허설아 머리카락만으로도 신나게 잘 놀고 있었다. 허설아가 답장을 안 하자 권지헌이 또 메시지를 보냈다."네 집도 내 집이고 옆집도 내 거고 위층도 내 거야. 등기부등본, 수도 전기 가스 고지서 다 내 이름이니 너도 조만간 알게 됐을 거야.""거기서 살면 너희들이 훨씬 안전해."허설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권지헌이 지금 해명하는 거야?'전에 연애할 때 권지헌은 한 번도 이렇게 많이 말한 적이 없었다.늘 귀찮다는 듯이 대충 몇 마디 얼버무렸다.예전에 뭘 하든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해 줬으면 허설아는 분명 기뻐서 방방 뛰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허설아는 너무 냉정했다.다시는 거짓말하기 싫었다는 건 어차피 수도 전기 가스 요금 낼 때 조만간 들킬 거니까 그런 것뿐이다.허설아는 아마 이제는 자기를 속이기 어려워서일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만약 전에 이 집이 권지헌 집이라는 걸 알았으면 아마 밤새 뒤척였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허민정도 양옥집을 팔 생각이고 그 돈이면 새집을 사기에 충분했다.허설아가 휴대폰 키보드를 두드려 다음 분기 월세를 이체했다.권지헌이 빠르게 답장했다."?"허설아가 꼭 이렇게까지 따지려는 게 화가 나는 건지 아니면 허설아의 차가운 태도가 불쾌한 건지 알 수 없었다.전에는 허설아도 권지헌의 생각을 디테일하게 알아보려 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권지헌이 뭘 생각하든 알 바 아니었다."연희가 내 집에 사는 건 당연한 거야."권지헌은 이체를 반송했다.허설아는 담담하게 알았다는 말만 답장하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잠을 자려는데 연희가 허설아 휴대폰을 들고 에그팡을 보고 있었다."엄마, 전화 왔어요.""그래, 고마워. 우리 공주님."받아보니 갑측 회사의 채권추심 회사였다.평소엔 전화할 때마다 허설아한테 빨리 송금하라고 독촉했는데 이번엔 태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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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영상통화 괜찮아요?"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권지헌한테서 영상통화가 걸려왔다.통화가 연결되자마자 권지헌 눈에 들어온 건 카메라에 바싹 붙은 아이의 얼굴이었다.심장이 녹을 만큼 귀여웠다.권지헌 얼굴을 보자 연희가 활짝 웃으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지헌 삼촌, 안녕하세요."권지헌의 목소리도 자연스레 다정하면서도 부드러워졌다."연희야, 안녕."허설아는 힐끗 쳐다보고 떨어질 수 있으니 연희한테 혼자 침대에서 내려오지 말라고 당부했다.이어 몸을 돌려 맞은편 작은 방으로 향했다.허민정한테 방금 있었던 일을 얘기하자 허민정도 좀 놀란 듯했다. "홍원이 이렇게 결단력이 있었어? 한밤중에 직인을 찍고 회계팀을 불러서 송금까지 하다니, 참 고생을 사서 하네.""아마 전에 이미 절차를 밟았는데 지금 처리가 끝난 거 아닐까요?""그럴 수도 있지. 어쨌든 좋은 일이야."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허민정이 피곤한 듯 하품을 했다.허설아는 허민정 방에서 나와 문을 살짝 닫고 자기와 연희 방으로 돌아왔다.연희는 킹사이즈 침대에서 아주 작은 공간만 차지한 채 웅크리고 잠들어 있었다.볼이 빨개진 채 입가에는 침까지 조금 묻어 있었다.그 모습이 귀여웠던 허설아는 허리를 숙여 연희 이마를 만졌다. 땀이 나지 않은 걸 확인하고서야 연희를 유아용 침대로 옮겼다.연희를 옮긴 뒤 허설아는 자그마한 유아용 침대를 보았다.이 집은 권지헌 거였다.벽면이 깨끗했고 가전제품은 새것이었고 바닥에 긁힌 자국도 없었다.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그렇다면 이 유아용 침대도 아마 권지헌이 새로 샀을 것이다.침대 다리에는 박쥐 몇 마리가 조각되어 있었다.연희가 침대에 놓고 쿠션에 기댄 휴대폰은 영상통화가 아직 연결된 상태였다. 고개를 든 허설아가 권지헌과 시선이 마주쳤다.권지헌은 계속 허설아를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허설아가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권지헌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화면을 사이에 두고 있어서 무언가 한 겹 가로막힌 것 같았다."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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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다음 날 아침.허설아가 일어났을 때 베갯잇이 전부 축축했다.어젯밤 그 꿈이 허설아를 넋이 나가게 했다. 허설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일어나 씻으러 갔다.주방에서는 허민정이 이미 아침을 차려놓고 연희 머리를 빗겨주고 있었다."설아야, 먼저 밥 먹어. 이따가 내가 연희 학교에 데려다줄게."허민정은 오늘 옛날 양옥집에 가려고 했다.허설아가 밥을 먹으며 물었다. "내가 휴가 내고 같이 갈까요?""따라오긴 뭘 따라와. 내가 두 살짜리 애도 아니고, 길을 몰라 아니면 글을 몰라?"연희가 고개를 들어 허민정을 보며 진지하게 말했다."할머니, 나 길도 알고 글자도 알아요."허민정이 연희의 작은 얼굴을 받쳐 들고 뽀뽀를 퍼부었다."어머, 우리 연희가 제일 똑똑해."허설아는 팔에 닭살이 돋아나 벅벅 문질렀다.지금까지 허민정이 이렇게 모기같이 높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허설아한테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손녀 사랑이 이렇게 무서웠다. 식사를 마친 세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탔다.문이 아직 닫히기도 전에 손 하나가 쑥 들어오며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깔끔한 정장을 입고 문 앞에 서 있던 권지헌이 엘리베이터에 탔다.허설아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옆집도 위층도 전부 자기 집이라던 권지헌이 말이 떠올랐다. 그러니 권지헌이 여기 사는 게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연희가 신나하며 허민정한테서 몸을 기울이며 권지헌에게 손을 뻗어 안아달라고 했다."지헌 삼촌!"허민정이 급히 사과했다."미안해요. 연희야, 어떻게 함부로 다른 사람에게 안아달라고 해?"권지헌이 빙긋 웃으며 손을 뻗어 연희를 받아 안았다."괜찮아요, 제가 안을게요."허민정이 그 모습에 안도하며 말했다."여기도 살아요?""옆집에 사는데 이쪽엔 오는 일이 거의 드뭅니다."뒤의 말은 허설아에게 하는 듯 힐끗 쳐다보며 했다.허민정 앞에서 허설아는 권지헌한테 고개를 끄덕였다."대표님, 안녕하세요.""좋은 아침이야. 어머님도 안녕하세요."허민정 얼굴의 웃음이 멈추질 않았다."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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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허민정이 손을 뻗어 허설아 등을 두드렸다."알았어, 알았어. 네 말 들을게, 네 말대로 할게. 결혼하지 않아도 우리 둘이서 연희 잘 키울 수 있어."수술을 한 번 한 뒤로 허민정의 성격은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졌다.허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찾을 순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절대 다시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엘리베이터 거울엔 권지헌의 어두운 얼굴이 비쳤다. 한없이 어두운 눈빛과 달리 입가엔 가벼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연희는 어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하지만 권지헌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연희가 작은 손을 뻗어 억지로 웃고 있는 권지헌의 입꼬리를 아래로 내리며 달콤한 목소리로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지헌 삼촌, 엄마가 그러는데 기분 안 좋을 땐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된대요."잠시 멍하니 있던 권지헌이 웃으며 말했다."엄마가 정말 잘 가르쳤네."연희가 아이답게 말했다."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엄마한테 삼촌도 가르쳐달라고 할까요? 그럼 삼촌도 나처럼 착해질 거예요!"허민정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애도 참.'권지헌도 따라 웃으며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권지헌은 연희를 허민정한테 건네주고는 허설아를 보며 말했다. "차 가져왔으니 태워줄게."지금 지하철 타러 간다고 하면 너무 일부러 거절하는 것 같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허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감사합니다, 대표님. 마침 업무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었어요."허민정은 답답했다.'이렇게 좋은 기회에 업무 얘기나 하겠다니!''됐어, 어차피 지금 연애할 마음이 없으니까. 억지로 강요하진 말자.'차에 타자 눈에 띄는 랭글러가 차량 행렬에 합류했다.권지헌이 핸들을 잡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야?"허설아가 서풍 원고 문제를 말했다."서풍 선생님한테 연락했는데 가격이 본인 포지셔닝과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어요. 대표님도 오늘 회사에 가면 소식 들으실 거예요."권지헌이 눈살을 찌푸렸다."가격은 진작에 협의했던 걸로 기억하는데."처음부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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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연희가 놀이공원 가고 싶대서 우리가 작은 거래를 했어."권지헌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우리가 약속한 단어를 연희가 다 외우면 내가 데려가기로 했어.""연희가 네가 잘 가르쳐줬고 내 방식엔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으니까 네 말을 들으라고 하더라."허설아도 연희와 일상생활에서 이런 조건 교환을 협상 카드로 쓰곤 했다. 허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좋네요, 언제 갈 건지만 나한테 말해줘요. 방해하지 않을게요."권지헌이 씁쓸하게 웃었다."꼭 나랑 선 그어야 돼?"엘리베이터에서도 허설아는 권지헌과 나란히 서려고 하지 않았다.모르는 사람이 보면 완전 남남처럼 보일 정도였다.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었다.마치 둘 사이엔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차가 신호등을 기다리는 틈에 나뭇가지 그림자가 허설아 얼굴에 드리워졌다.허설아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대표님은 우리 사이에 선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요?"권지헌이 무의식적으로 담뱃갑을 꺼내려다가 허설아가 차에 있다는 걸 떠올리고 포기했다.핸들을 꽉 잡은 손이 하얗게 질렸다.분명 전에는 허설아의 태도가 이렇지 않았었다.지금은 차가울 뿐만 아니라 가시 돋친 말까지 쏟아냈다.마치 고슴도치의 모든 가시가 마침내 권지헌이 원하던 대로 권지헌을 향하는 듯했다. 차가 다시 출발해서 권율 그룹 근처 편의점 앞에 멈춰 섰다.허설아는 권지헌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걸 싫어했다.이것도 허설아가 처음부터 그어놓은 선이었다.허설아가 문을 열려고 했지만 아무리 해도 열리지 않았다.허설아를 한참 지켜보던 권지헌이 차 문을 열어주었다.두 사람은 더 이상 대화가 없었다. 차 안에서 나눈 말을 더해보면 택시 기사와 승객 사이보다도 적었다.권지헌은 차에 앉아 허설아의 아름다운 뒷모습이 길모퉁이로 사라지는 걸 지켜보았다.몇 분 후 권지헌의 휴대폰에 허설아의 출근 기록 추적 알림이 왔다.휴대폰 위에서 손가락을 빙빙 돌리던 권지헌이 대화창 하나를 눌러 메시지를 보냈다.-조민규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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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안유민 얼굴에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안유민이 연락한 일러스트레이터는 안유민의 친구였다.권율 그룹의 이번 의뢰 예산 금액이 상당했기에 안유민은 이미 친구한테서 30% 리베이트를 받기로 약속했었다.서풍과 가격 협의할 때도 50%를 줄인 가격이었다. 안유민이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서풍의 태도가 정말 무례해서 보면 화나실 거예요. 이런 사소한 일은 대표님이 신경쓰실 거 없어요."권지헌의 태도가 싸늘해졌다."조 비서, 사내 계정 스크린샷 확보하고 서풍한테도 스크린샷 하나 요청해요.""네, 대표님."조민규한테 계정에 남아있는 스크린샷을 확보하고 서풍한테도 스크린샷을 요청해 대조하라는 뜻이었다.그 말은 안유민이 스크린샷을 조작할 것을 의심한다는 뜻이었다! 안유민은 설레던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안유민을 바라보는 권지헌의 시선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 본 것 같았다."대표님, 그럴 필요까지는……"권지헌이 언짢아하며 말했다."지금 나한테 가르치려고 들어? 이만 나가, 더는 볼 일 없어."안유민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지만 속으로는 그렇게 당황하지 않았다.최악의 경우 가격을 잘못 기억했다고 둘러대면 끝이었다.말실수쯤이야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오후가 되자 안초희가 휴대폰을 들고 말했다. "설아 씨, 회사에서 이번 주말에 섬 여행 가는데 가족도 데려갈 수 있대. 갈 거야?"매년 이맘때면 권율 그룹은 직원들이 인근 도시 여행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었다. 안초희와 김아림은 이미 아이를 데리고 갈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허설아한테 연희도 데려갈 거냐고 물었다."연희 아직 바다 못 봤지?"허설아가 싱긋 웃었다."연희가 태어난 병원이 바닷가에서 멀지 않아서 임신했을 때 자주 갔으니 어느 정도 봤다고 할 순 있지.""그래도 같을 순 없잖아, 연희도 데려가지 않을래? 자기 남편도 같이 불러!"허설아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연희는 아직 어려서 바닷가 가는 게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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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두 사람은 금방 어린이집에 도착했다.권지헌이 온 걸 본 전서준은 자기도 병원에 같이 가서 연희를 돌보겠다고 떼를 썼다.권지헌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네가 가면 너까지 신경 써야 되잖아. 여기 있다가 하원하면 네 엄마 올 때까지 기다려."전서준은 작은 입만 삐죽거릴 뿐 감히 말하지 못했다.허설아가 사인을 하는 동안 권지헌은 이미 고열로 잠든 연희를 안아 든 채 넋이 나간 허설아 어깨를 감싸며 차에 태웠다.가는 내내 허설아는 뜨거운 연희를 품에 안은 채 눈물만 뚝뚝 흘렸다. 권지헌은 운전하면서 신호 대기하는 틈에 소아과 의사들한테 전화했다."바로 도착하니 미리 준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주 교수님."주영훈 교수는 건영시에서 유명한 소아과 의사였는데 일반 진료는 보지 않았다.권씨 집안과 주영훈 교수는 오래된 지인이라 금방 연락이 닿았다.주영훈 교수가 바로 승낙했다."병원 근처에 있으니 지금 바로 갈게."권지헌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맺혔다.하지만 안정적이면서도 빠르게 차를 몰았다.병원에 도착했을 땐 병원 입구에서 마침 주영훈 교수를 마주쳤다. 진료실에 들어간 주영훈 교수가 꼼꼼하게 검사했다."식중독이라 며칠 입원해야 하니 입원 절차 밟아요. 토한 적 있어요?"권지헌이 바로 일어나 입원 절차를 밟으러 갔다.허설아가 고개를 끄덕였다."선생님이 유치원에서 몇 번 토했대요. 심각한가요?"주영훈 교수가 손가락으로 연희 배를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다행히 위 세척은 안 해도 돼요. 아이가 너무 어리니 부모님들도 신경 쓰셔야 해요. 탈수 상태가 돼서 며칠 링거 맞아야 하니 요즘 잘 돌봐주세요."입원 절차를 마친 권지헌이 서류를 들고 돌아왔다.1인실인 걸 본 주영훈 교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병실에서 링거를 맞히고 나자 연희도 열이 점점 내렸다.허설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주영훈 교수가 연희의 이마를 만져보고는 큰 문제는 없다며 안심시켰다.다만 권지헌의 초조한 얼굴을 보더니 권지헌과 허설아 그리고 연희를 번갈아 보며 농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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