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주문춘귀: Bab 531 - Bab 540

553 Bab

제531화

심정우는 지금 이 꼴을 계연수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고개를 푹 숙였다.그저 조용히 고개만 저으며, 옆 의자에 앉아 바닥을 내려다본 채 낮게 물었다.“좀… 나아졌습니까?”계연수는 눈을 감은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온몸의 통증을 참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심정우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괜히 손에 쥔 나뭇가지만 만지작거렸다.본래는 그녀가 어떻게 산적들에게 붙잡혔는지 묻고 싶었지만 그게 계연수에게는 아픈 기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입을 다물었다.“걱정 마십시오. 이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몸이 좀 나아지면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 다음에 산적들은 전부 처리하겠습니다. 영원히 아무도 알지 못하게 말입니다.”그는 말을 마치고서야 고개를 돌려 계연수를 바라보았다.“제가 대신 갚아드리겠습니다.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처리하기 전에는 돌아가지 않겠습니다.”계연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그를 바라보았다.예전 심정우의 눈은 늘 느슨하고 장난기 어린 빛을 띠고 있었는데, 지금 그의 눈은 전혀 달랐다.소년의 눈동자에 담긴 단단한 결심은 묘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계연수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말했다.“고맙습니다. 헌데 그 산적들은 흉악해요. 당신이 무사한 게 제일입니다. 저를 위해서… 무언가 할 필요는 없습니다.”심정우는 잠시 말을 잃었다.지친 듯 창백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이 뜨거워졌다.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저 고개를 숙인 채, 낮게 물었다.“오숙부께서… 여기 계신 걸 아십니까? 만약 모르신다면, 걱정 마십시오. 제가 반드시 숨기겠습니다.”계연수는 창밖을 한 번 바라보았다가 다시 그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괜찮습니다. 대신… 오숙부를 불러 줄 수 있겠습니까?”그 말을 듣는 순간, 심정우는 멈칫했다.그제야 깨달았다.오숙부가 그렇게까지 크게 산을 포위한 이유가 계연수 때문이었다는 것을.그리고 떠올랐다. 자신에게 보내졌던 비밀 서신을.그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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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2화

심서준은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심정우를 노려보고 있었다.말에서 내리는 순간에도, 가슴 깊이 맺힌 울분은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수현 곳곳을 뒤져도 심정우의 흔적을 찾지 못해 애를 태웠는데 정작 그는 사람을 데리고 절까지 들어와 있었다.덕분에 헛수고를 한 셈이었다.심정우는 심서준을 보는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자신이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자각이 들었다.오숙부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이야...하지만 곧 고개를 숙였다.역시 오숙부는 무엇 하나 자신보다 허술한 법이 없었다.그는 어쩔 줄 몰라 그저 가만히 서서 제멋대로 행동한 일을 꾸중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심서준은 굳은 얼굴로 심정우를 한 번 훑어본 뒤, 그의 손에 들린 약으로 시선을 옮겼다.그리고 숨을 한 번 고른 뒤, 다가가 물었다.“그 애는?”심정우는 오해를 살까 두려워, 급히 고개를 들어 말했다.“제가 오숙모를 만났을 때는, 마차에서 막 떨어진 직후였습니다. 아직 산적들에게 잡히기 전이었고, 그들이 손대지도 못했습니다. 오숙부, 걱정 마십시오. 오숙모는 아무 일 없습니다.”말을 마치고는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여기로 모신 건… 제가 멋대로 판단한 겁니다. 그때는 상처만 생각하다 보니, 오숙부 말씀을 잊었습니다…”심서준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거짓말을 할 때마다 흔들리는 눈빛. 그건 계연수와 닮아 있었다.심정우는 애초에 거짓말에 서툰 사람이라 마음속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눈이었다.그럼에도, 계연수를 감싸려 하는 그의 태도에 심서준은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그러나 적어도 그가 이 일을 밖으로 흘리지 않을 사람이라는 점만큼은 분명했다.그것으로 심서준의 가슴에 얹혀 있던 돌이 조금 내려앉았다.팽팽히 긴장했던 몸도 잠시 힘이 풀렸다.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묵직하고도 조심스럽게 심정우의 어깨를 두드렸다.“정우야, 고맙다. 큰일을 해냈구나.”어깨에 내려앉은 손의 무게에 심정우는 멍하니 굳어졌다.핏발 선 눈과 깊은 피로가 밴 오숙부의 눈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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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3화

그는 고개를 숙여 계연수를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하며,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를 다독였다.“연수야, 이제 괜찮다.”눈앞에는 익숙한 체취가 감돌았다. 심서준의 가슴은 여전히 넓고 단단했다. 계연수는 눈을 감은 채,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자신이 울 줄 알았다. 심서준의 품에 매달려 한껏 울음을 터뜨릴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순간, 그녀의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마치 찰나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든 듯했다.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다.그녀가 분명히 아는 것은 단 하나였다. 지금, 자신은 살아 있다는 것. 확실히 살아서 믿을 수 있을 만큼 든든한 품에 안겨 있다는 것.이내 그녀의 얼굴이 다시 심서준의 큰 손에 감싸였다. 그의 손끝이 부드럽게 뺨을 어루만졌다. 흐릿하게 번지는 시야 속에서, 그녀는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낮게 깔린 목소리가 뜨거운 숨결을 실어 그녀에게 닿았다.“아직도 무서운 것이냐?”계연수의 눈가에는 옅은 물기가 맺혀 있었다. 놀란 새끼 사슴처럼 떨리는 눈빛이었지만, 울음을 터뜨리지 않은 채 조용히 말했다.“이제는 무섭지 않습니다.”“정우... 도련님께서 저를 구해줬습니다. 후작께서도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 주세요.”정말로 두렵지 않았다.생사의 경계를 한 번 넘고 나니, 지금 이 순간이 오히려 가장 다행스럽게 느껴졌다.심서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은 보는 이의 마음을 저리게 만들 만큼 연약하고도 애틋했다. 애교도, 흐느낌도 없었지만, 놀라움에 흔들린 여린 기색은 또렷이 남아 있었다.그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여전히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다만 계연수에게는 부드러움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어떤 단단함이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안쓰럽고, 또 사랑스러웠다.심서준의 손끝이 그녀의 눈가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는 차라리 그녀가 자신의 품에 파고들어 마음껏 울며, 자신을 탓해 주었으면 했다. 그 편이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덜 괴롭게 만들 것 같았으니까.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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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장원 밖에는 이미 마차가 준비되어 있었다. 마차는 널찍했고, 수행하는 호위들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었다.심서준은 계연수를 안은 채 마차에 올랐다. 마차 안에는 부드러운 방석이 깔려 있었는데, 계연수는 몸을 눕히자마자 저도 모르게 다시 몸을 작게 웅크렸다.심서준은 그녀의 흐트러진 몰골을 한 번 보고, 다시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가녀린 모습이 너무나도 안쓰러워 보였다.그는 몸을 굽혀 계연수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안았다. 감긴 눈을 바라보며, 손바닥을 살며시 그녀의 등 위에 얹었다.혹여 잠자리가 불편할까 싶어, 머리칼에 꽂혀 있던 비녀를 빼냈다. 길게 늘어진 검은 머리칼이 흘러내려 겹겹이 그녀의 뒤를 덮으며, 어지럽혀진 얼굴을 반쯤 가렸다.계연수의 얼굴에 묻은 피는 이미 말라 있었다. 심서준의 손가락이 그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그는 고개를 떨군 채, 이미 잠든 듯하면서도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눈을 조용히 바라보았다.계연수의 손가락은 내내 심서준의 옷깃을 꽉 쥔 채였다. 얼굴은 그의 품속에 깊이 묻혀 있었다.심가에 도착했을 때, 심서준은 이미 문하에게 미리 손을 써두라 일러 두었다. 하인들을 물리고, 동쪽 측문으로 들어가게 한 것이다.그런데 작은 화원을 지나던 중, 한 사람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가, 심서준이 멀어지자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그녀는 큰방의 첩인 유 소실이었다. 그녀는 오후에야 친정에서 돌아와 자신의 처소로 가던 길에 우연히 마주친 장면이었다.심서준이 사람 하나를 안고 앞을 지나가는 것을 보았는데, 거리가 조금 있어 자세히 보이진 않았다. 하지만 꽁꽁 감싼 검은 망토 아래로 드러난 자수 신발 위에 어둡게 번진 핏자국 같은 것이 보였다.아마 잘못 본 것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똑똑히 보인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심서준의 표정에 겁을 먹어, 괜히 자신이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건 아닌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본능적으로 가산 뒤에 몸을 숨기고, 감히 소리도 내지 못했다.심 후작의 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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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5화

장 어멈이 아무리 체면이 있다 한들 결국은 노복일 뿐이니 저런 말투로 묻는 것은 무례한 것이었다. 그러나 장 어멈을 대하는 유 소실의 태도는 유난히 공손했다. 지금 이 심부는 백씨가 홀로 쥐고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장 어멈은 그 곁에서 총애받는 노복이라 아무 배경도 없는 첩실에 불과한 유 소실로서는, 장 어멈 앞에서 감히 체통을 내세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장씨어멈이 오해한 것을 눈치채자, 그녀는 다급히 손을 저으며 말했다.“어멈, 오해했구나. 나는 막 바깥에서 돌아오는 길이라 지금 이곳으로 지나온 것뿐이다.”하지만 장 어멈은 유 소실에게 뭔가 수상한 점이 있다고 단정한 듯, 한 걸음 더 몰아붙였다.“소실께서도 큰부인의 성정을 모르실 리는 없을 텐데요. 만약 무슨 일을 저지르신 게 들통나면, 그땐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옵니다.”그 말을 듣자 유 소실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백씨가 이 집 안에서 얼마나 막강한 권세를 쥐고 있는지,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후원 일은 대감이 일절 간여하지 않았으니 백씨가 마음만 먹으면 자신 같은 이는 맞아 죽는다 해도, 그저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으로 끝나고 말 터였다.더구나 그녀는 나 소실처럼 뒷배가 있는 처지도 아니었다.나 소실은 홍로사 소경의 서녀로, 대감과 이십 년 넘게 함께한 정이 있었고, 슬하에는 장래가 촉망되는 아들까지 두고 있었다. 그에 비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장 어멈의 말 한마디에 겁을 집어먹은 유 소실은 방금 전에 본 일을 서둘러 털어놓았다. 다만 피를 보았다는 사실만큼은 끝내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건 함부로 말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이야기를 다 들은 장 어멈은, 유 소실의 낯빛을 한 번 더 훑어본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저 그 일이었습니까. 이방의 후작 일이라면, 입조심하셔야 합니다. 괜히 말을 흘리다간 화를 부를 수 있어요.”유 소실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나도 그저 놀라서….”장 어멈은 몇 마디 더 나눈 뒤, 돌아가 보고를 해야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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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6화

그렇다면, 그 여자가 바로 계연수일 터였다.어제 거리에서 벌어졌던 일을 떠올리며 곰곰이 되짚어 보니, 문득 마음 한구석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옆의 작은 탁자 위에 내려놓고, 다시 장 어멈을 바라보았다.“지금 당장 가서 나 소실을 모셔 오너라. 꼭 서둘러야 한다.”장 어멈이 물러나자, 백씨는 시녀들을 모두 물리치고 곁에 두는 큰 시녀인 은향을 불러들여 시중을 들게 했다.그녀는 침상 위에 몸을 눕히고, 은향에게 이마를 감싸는 두건을 가져와 씌우게 한 뒤, 물수건을 적셔 얼굴의 분을 닦아내게 했다. 이어 노파에게 명해 자신의 장롱 속에 넣어둔 영정환을 꺼내오게 했다.그 영정환은 귀한 약재들로 만든 최상품 보약으로, 평소 백씨조차 아껴 먹을 정도였다.녹각교와 숙지황, 해마, 황련 따위를 넣어 만든 약이었는데, 그중 황련이 들어가 있어 몹시 쓰고 약 냄새 또한 진했다. 그래서 백씨는 늘 대감이 오지 않는 밤에만 몰래 복용하곤 했다.그녀는 영정환을 반으로 쪼개 한 입 베어 물고, 남은 것은 잘게 으깨어 곁의 시녀에게 향로 속에 뿌리게 했다.순식간에 방 안 가득 짙은 약 냄새가 번졌다.이윽고 머리를 괴고 은빛 베개에 기대어 앉아, 일부러 안색이 쇠약한 듯한 기색을 만들어냈다.은향은 백씨의 이런 일련의 행동을 보고 병을 가장하려는 것임을 알아차리고는, 눈치 좋게 밖으로 나가 분부를 내렸다.백씨가 병이 나 쉬고 있으니, 모두 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하라는 것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나 소실이 부드러운 걸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백씨의 시선이 그녀를 훑었다.복숭아빛 금사가 섞인 운금 비단 옷, 몸과 머리를 장식한 값비싼 비녀와 장신구들.겉으로는 공손함을 갖추고 있었지만, 온몸에서 풍기는 기색과 윤기 도는 얼굴은 그녀가 얼마나 편안하게 살고 있으며 또 얼마나 총애를 받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나 소실은 백씨가 시집온 지 삼 년째 되던 해에 들어온 첩이었다.그녀의 아버지가 대감에게 바친 여인이었고, 타고난 미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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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7화

백씨는 표정을 감추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럴 필요는 없네. 괜히 그대까지 병기운이 옮으면 어쩌려고. 그대를 부른 건, 그대가 일을 단정히 처리하는 편이라 맡길 일이 있어서 그러네.”그러자 나 소실이 재빨리 물었다.“부인께서 무슨 일을 맡기시려는지요?”백씨는 몸을 옆으로 기댄 채, 붉은 보석 반지를 낀 손가락으로 손수건을 꽉 쥐어 입가를 가리고, 목이 쉰 듯 낮게 말했다.“오늘 오전에 상숙 쪽 장원의 관리가 다녀가며 올해 새로 딴 차를 가져왔네. 알다시피 노부인께서는 햇차를 가장 좋아하시지 않나. 그대가 일을 꼼꼼히 하는 데다 예전에 집안 일도 도와본 적이 있으니, 지금 가서 그 새 차를 각 처소에 나눠 보내는 일을 맡아 주시게. 그리고 이틀 정도는, 집안 일도 그대가 대신 돌봐주시게.”나 소실은 과거에도 백씨를 도와 집안 살림을 맡아본 적이 있었다.그때는 백씨가 심정우를 낳으며 산후 출혈로 목숨까지 위태로웠던 시기였다. 몸을 추스르던 동안, 대감이 노부인에게 아뢰어 집안 일을 나 소실에게 맡기도록 했던 것이다.그 일은 지금까지도 백씨가 가장 원망하고 잊지 못하는 일이었다.심씨 집안의 후사를 위해 목숨을 내놓다시피 했던 자신을 두고, 대감은 그녀가 애써 지켜온 살림 권한을 가장 총애하는 첩인 나 소실에게 넘겨버렸다는 것이 이유였다.그 일 이후로는, 백씨가 조금이라도 손이 부족하면 집안 일은 자연스레 나 소실에게 넘어가곤 했다.그러나 백씨는 본디 승부욕이 강하고 자존심이 높은 사람이라 지난 몇 년 동안 몸이 아무리 힘들고 바빠도, 심지어 병이 들어도 이를 악물고 버티며 나 소실이 손대지 못하게 해왔다.나 소실 역시 백씨의 말을 듣고는 적잖이 의아했다.이미 삼사 년은 손을 떼고 있었고, 백씨가 자신이 개입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마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자신은 첩의 신분이었고, 백씨는 워낙 강단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었기에 차츰 그 마음도 접어두고 있었다.예전에는 집안 일을 맡으려 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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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8화

방 안에는 잠시 고요가 내려앉았다.백씨는 느릿하게 머리칼을 매만진 뒤, 은향이 건넨 찻잔을 받아 들었다. 옅은 미소를 띤 채, 다시 은향을 향해 말했다.“이 일은 입에 올리지 말거라. 후작께서 돌아오신 일도 모르는 것으로 해라. 알겠느냐?”은향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부인, 염려 마십시오. 절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게 하겠습니다.”백씨는 베개에 몸을 기대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다 문득 심정우가 토벌에 나간 일을 떠올리자, 마음 한켠이 다시 무거워졌다. 혹여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앞섰다.하지만 끝내 그를 말리지 못했다.고집 센 황소처럼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더니, 무슨 공명을 세우겠다고 나서서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백씨는 그가 출세하기를 바라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목숨을 내걸고 얻어오길 바란 것은 아니었다.그 생각이 스치자 가슴이 두어 번 불안하게 요동쳤다. 설명할 수 없는 불길함이 스며들었다.그녀는 급히 몸을 일으켜 은향에게 겉옷을 걸치게 하고, 향을 가져오게 해 상 앞에 향 한 자루를 올렸다.심정우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설령 아무 공도 세우지 못하더라도 그저 평안히 돌아오기만을 빌었다.심정우가 토벌에 나선 이후로, 백씨의 마음은 줄곧 편치 않았다.늘 마음을 졸이며 밤에도 깊이 잠들지 못하고, 끊임없이 그를 걱정했다.*한편, 나 소실이 밖으로 나오자 장 어멈이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얼른 다가와 창고 쪽으로 안내했다.이미 차는 나누어 두었으니 적절한지 살펴보라는 말도 덧붙였다.나 소실은 이런 일을 처리해 본 경험이 있어 손에 익었다. 본래도 손이 빠른 성격이라, 각 처소에 나눌 분량을 금세 정리해냈다.다만 그녀에게도 나름의 계산과 속내가 있었다.백씨 곁의 사람들을 쓰지 않고, 자기 처소의 시녀들을 불러 곁에 두고 일을 시켰다.장 어멈은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전에도 그랬다. 나 소실은 큰방 쪽 시녀들을 함부로 부리기 어렵다며 늘 자기 사람을 썼지만, 실상은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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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9화

나 소실은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이가 문하인 것을 보고, 그 안에 심 후작이 있다는 것을 짐작했다.문하에게 가로막혔음에도, 그녀는 얼굴에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드러내지 않았다.오히려 부드럽게 물었다.“그럼 둘째 부인께서는 돌아오셨느냐?”문하는 눈살을 찌푸리며 나 소실을 한 번 훑어보았다.이 시각에 와서 부인이 돌아왔는지를 묻는 속셈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본래라면 첩 하나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지만, 주인이 미리 돌아왔을 때 어떻게 답할지를 일러둔 터라, 마지못해 인내심을 내어 말했다.“후작께서 방금 부인을 모시고 절에서 돌아오셨습니다. 부인께서 풍한을 얻으셔서 지금은 쉬고 계십니다.”그 말 속에는 더 볼 것 없이 돌아가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나 소실은 속으로 오늘은 어째 모두가 병이냐고 생각하면서도, 곧바로 얼굴에 걱정스러운 기색을 띠었다.“마침 풍한에 잘 듣는 처방을 하나 알고 있다. 꽤 효험이 있는데, 내가 들어가서 그 처방을 둘째 부인께 전해 드리는 건 어떻겠느냐?”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하는 다소 짜증 섞인 기색으로 말을 끊었다.“방금 의원이 다녀갔습니다. 더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이처럼 노골적으로 손님을 돌려보내려는 태도를, 나 소실이 모를 리 없었다.그녀는 어색하게 웃으며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문하는 심 후작 곁을 지키는 측근이니, 괜히 미움을 살 수는 없었다.직접 찾아왔음에도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그녀는 들고 있던 새 차 한 통을 건네며, 안으로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문하는 물건을 받아 들고 나 소실을 한 번 더 바라본 뒤, 손짓으로 돌아가라는 표시를 했다.결국 나 소실은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막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마침 안에서 한 시녀가 옷을 들고 나오고 있었다.그녀는 그 모습을 힐끗 보다가 잠시 멈칫했으나, 제대로 보기도 전에 문하의 몸이 시야를 가로막았다.“소실께서는 돌아가십시오.”나 소실은 서둘러 대답하고, 곧장 시녀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몇 걸음이나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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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0화

그녀의 뺨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던 그때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다.손끝으로 계연수의 부드러운 얼굴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심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물처럼 고요한 그의 눈동자에는 말로 다 담지 못할 깊은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그가 낮게 물었다.“졸리느냐?”계연수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따뜻한 침상과 익숙한 휘장, 그리고 그녀가 좋아하던 향기였다.핏비린내도, 흙내도 없었다.심서준은 곁에 있었고 주위의 모든 것이 익숙했다. 이제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몸은 몹시 지쳐 있었고, 그대로 잠들고 싶었다.그러나 가슴 깊은 곳에서 불안하게 요동치는 심장이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눈을 감기만 하면, 밤의 불길과 피, 그리고 음흉하고 잔혹한 얼굴들이 번뜩이며 떠올랐다.심서준은 반쯤 감긴 눈으로 지쳐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지난 이틀의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그저 그녀의 손을 단단히 쥐며 말했다.“먼저 목욕을 하겠느냐? 뜨거운 물은 이미 준비해 두었다.”계연수는 그의 손에 잡힌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소매 끝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핏자국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곧 고개를 끄덕였고, 심서준은 그녀를 안아 욕실로 향했다.방 안에는 시중드는 시녀 하나 없었고 필요한 물건들은 이미 한쪽에 가지런히 준비되어 있었다.심서준은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손은 그의 몸을 꼭 붙잡고 있었다.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하얗게 질린 손가락 마디가 지금의 의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본래 그녀는 깊은 규방 속에서 곱게 자란 사람이었다.십수 년 동안 보호 속에서 살아왔고, 겁도 그리 많지 않았다.어릴 적에는 큰 잉어 한 마리에도 놀라 아버지 품으로 달려들었고, 누군가 그녀를 성가시게 바라보기만 해도 금세 눈물이 고이던 사람이었다.심서준은 처음 계연수를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그때의 그는 그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처음에는 무엇이든 신기해하며 그의 물건을 함부로 만지고, 소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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