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연수와 백씨가 스쳐 지나간 뒤, 한참 거리를 둔 뒤에야 용춘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큰부인께서 주방을 맡은 지도 오래됐는데 장부가 저 지경이니, 은자를 빼돌리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겠어요?”그러더니 더욱 목소리를 낮추었다.“정말 손을 댔다면 대체 얼마나 챙긴 걸까요?”계연수는 백씨가 분명 은자를 빼돌렸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그토록 영리한 사람이 장부에 드러난 문제를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을 테니까.다만 얼마나 챙겼는지는 그녀도 짐작할 수 없었다.오랜 세월 살림을 맡아 왔으니 적지 않은 액수일 것만은 분명했다.게다가 심씨 노부인 역시 백씨가 가져간 돈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계연수는 그저 용춘에게 조용히 말했다.“이 일은 여기서 끝난 것으로 하자. 밖에 나가서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용춘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부인, 걱정 마세요. 제 입은 무거운 편이니까요.”계연수가 처소로 돌아오자 하인이 편지 한 통을 가져왔다. 어머니가 보낸 편지였다.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계연수의 눈길이 잠시 멈췄다.고준안이 어제부터 조금씩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아직 몸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깨어난 뒤 줄곧 그녀를 찾으며 한 번 만나고 싶어 한다고 했다.어머니는 내일 함께 친정으로 돌아가 고준안을 한 번 보고 오자고 권하고 있었다.계연수는 가볍게 미간을 좁혔다.그러고는 편지를 한쪽에 내려놓았다.밤이 되어 심서준이 돌아왔을 때, 그는 드물게도 문 앞에서 자신이 보고 싶어 하던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그 여인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이쪽으로 걸어왔다. 가벼운 걸음에 치맛자락이 어둔 밤빛 속에서 잔잔히 흔들렸다.처마 밑에 걸린 등불이 고운 윤곽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고, 그녀가 지닌 차분하고 서늘한 분위기마저 어느새 부드럽게 녹아들고 있었다.그 순간, 심서준은 다시 한번 가슴속에 번지는 따뜻함을 느꼈다.부군이 된 기쁨과 집 안에 자신을 위해 남겨진 등불 하나, 그리고 자신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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