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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춘귀의 모든 챕터: 챕터 711 - 챕터 720

721 챕터

제711화

계연수는 심서준이 제 잘못이라며 먼저 이렇게 다정하게 사과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속으로는 이 방법이 생각보다 꽤 효과가 있다는 사실에 은근히 놀랐다.역시 심서준도 심씨 노부인과 마찬가지였다.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보다 부드럽게 구는 쪽에 약한 성미였다.겉으로는 여전히 조금 서운한 기색을 하고 있었지만, 속마음은 오히려 들떠 있었다. 심서준을 다루는 방법을 하나 알아낸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그가 또 이렇게 강압적으로 굴거나 화를 내더라도, 어쩌면 자신 나름대로 대응할 방법이 생긴 셈이었다.계연수는 몰래 기뻐하면서도 얼굴에 감정이 드러나 심서준에게 들킬까 봐 다시 그의 품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금방이라도 울 듯 풀이 죽은 모습이었지만, 사실 입꼬리는 이미 슬며시 올라가 있었다.심서준의 눈에 들어온 것은 계연수의 희고 깨끗한 옆얼굴뿐이었다. 부드러운 등불 아래 그녀의 뒷모습은 한층 더 온화해 보였고, 옷자락에 수놓인 꽃무늬는 살아 움직이는 듯 선명했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몸이 제 품으로 먼저 기대어 오자, 심서준의 마음은 이미 오래전에 녹아내린 뒤였다.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계연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머리칼에 가볍게 이마를 부볐다.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편안하고 충만했다.그의 목소리도 한결 낮고 부드러워졌다.“아직도 아프냐?”품 안에서 계연수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많이 괜찮아졌어요.”심서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목덜미 가까이 얼굴을 가져갔다.계절은 어느새 초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계연수의 옷차림도 한결 가벼워져 있었고, 둥근 깃의 상의 아래로 길고 가느다란 목선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계연수가 먼저 안겨 온 탓에 기분이 좋아진 심서준은 말끝마다 은근한 다정함을 담았다. 그는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며 낮게 속삭였다.“밤에 내가 직접 주물러 줄까?”잠시 뜸을 들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아니면 지금 해 줄까?”계연수는 귓가가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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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2화

심서준은 고개를 숙여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옅은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네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로 하면 된다.”심서준은 원래 좀처럼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 가끔 미소를 짓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이 곧 기분이 좋다는 뜻으로 보이는 경우는 드물었다.하지만 지금의 심서준은 어딘가 한결 부드러워 보였다.그의 긍정적인 말에 계연수도 조금 안심이 되었다. 그녀는 심서준의 품에서 장부를 꺼내 들고 몸을 일으키려 했다.“오늘 밤에 다 써 놓을게요.”심서준은 금세 자리를 뜨려는 그녀를 보며 허리를 감싸 안은 채 미간을 찌푸렸다.“방금 뭐라고 했느냐?”그러더니 다시 말했다.“게다가 지금 네게 그런 힘이 남아 있긴 하냐?”그 말을 듣고 나서야 계연수는 정말 기운이 빠져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온몸이 나른하게 풀려 있었고, 슬슬 졸음까지 밀려오고 있었다.계연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부군은 오늘 안 바쁘세요?”심서준은 시선을 내리며 그녀와 눈을 맞췄다.“안 바쁘다.”계연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아직도 관복을 입고 있는 그를 보고 말했다.“그럼 제가 먼저 옷 갈아입는 것부터 도와드릴까요?”심서준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는 다시 계연수를 품 안으로 끌어당겨 단단히 안았다.그의 눈매에는 감추지 못한 만족감이 어려 있었다.*이틀이 더 흘렀다.그동안 계연수는 주방 장부를 거의 다 살펴본 상태였다.그날 오전, 그녀는 방 어멈에게 주방의 관사들과 하인들을 모두 불러오라고 지시했다. 곧바로 의사청 옆 작은 화청으로 모이라는 명이었다.사람들이 모두 도착했을 때 계연수는 상석에 앉아 있었다.그녀의 앞 탁자 위에는 며칠 동안 직접 검토한 장부들이 놓여 있었다.아래에 모인 사람들은 계연수의 냉담한 표정을 보자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방 안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관사들은 하나같이 눈치 빠른 사람들이었다. 새로 들어온 둘째 부인을 며칠 동안 지켜본 결과, 말투는 부드럽고 온화했지만 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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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3화

계연수의 목소리는 차갑고 담담했다. 크지 않은 음성이었지만, 한 번 내린 결정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단호함이 담겨 있었다.장 관사는 온몸의 힘이 빠져 주저앉다시피 했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도 그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동안 어느 정도 이득을 챙겨 둔 덕에 부족한 금액을 메울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번에 돈을 채워 넣고 나면 손에 남는 것은 거의 없을 터였다. 더 큰 몫은 대부분 백씨 쪽으로 들어갔으니 말이다.하지만 그는 감히 백씨를 끌어들일 수 없었다.만약 백씨를 불어 버린다면 단순히 장부를 잘못 적은 실수가 아니라, 고의로 장부를 조작해 은자를 빼돌린 죄가 된다. 그렇게 되면 매를 맞아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더구나 백씨는 주인이었다. 어쩌면 그녀는 가벼운 처벌만 받고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모든 것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지금으로서는 끝까지 눈이 침침해 실수했다고 우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 백씨가 자신을 구해 줄 가능성이라도 남아 있을 테니까.계연수는 장 관사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리 없었다.하인 하나가 장부를 제대로 기록했는지 아닌지, 백씨가 모를 리 없었다.계연수는 입술을 가볍게 다문 뒤 장 관사를 먼저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다시 임 관사를 바라보았다.“구매 내역마다 문제가 있더구나. 방금 내가 말한 것은 고작 일부에 불과하다. 네 말대로 시세가 변동될 수는 있겠지. 헌데 백 냥 넘게 차이가 날 수도 있단 말이냐?”임 관사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소인, 소인이…”계연수는 더 이상 그의 변명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아래에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예전 주방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었는지는 상관없다. 설령 예전 규정에 허점이 가득했다 해도, 그런 규정은 더 이상 쓸 이유가 없지. 내일부터 주방의 모든 장부는 새 장부로 바꾸어 처음부터 다시 기록하도록 하여라. 나는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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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4화

계연수는 심씨 노부인의 말을 듣고서야 마음을 놓았다.심씨 노부인은 다시 말을 이었다.“이전 장부는 지난 일로 여기고 더는 따지지 않겠다. 앞으로 주방 장부를 네게 맡긴다면 나도 안심이 되겠구나.”계연수는 심씨 노부인을 바라보았다.심씨 노부인은 장부가 잘못된 진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그 말은 곧 백씨를 추궁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었다.계연수가 장부를 들고 찾아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하나는 임 관사를 어떻게 처리할지 보기 위해서였고, 다른 하나는 백씨를 향한 시어머니의 태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그리고 지금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심씨 노부인은 백씨에게 어느 정도 관대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사실 계연수 역시 처음부터 장부 문제를 끝까지 파헤칠 생각은 없었다.두꺼운 장부 속에는 오래된 묵은 장부가 너무 많았고, 거기에 얽힌 관사와 관련자도 적지 않았으니까.이미 떠난 사람도 있었고 다른 곳으로 옮겨 간 사람도 있었다.그런 장부를 하나하나 뒤쫓기 시작하면 오히려 일이 더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렇다면 집안 분위기만 뒤숭숭해지고 사람들의 마음 역시 흔들리게 되겠지.그것은 그녀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그래서 본보기로 두 관사만 처벌할 생각이었다.게다가 백씨는 오랫동안 집안 살림을 맡아 온 사람이다. 분명 미리 대비책도 마련해 두었을 것이고, 자기 사람들도 곳곳에 심어 두었을 것이다.결국 끝까지 파고든다 해도 지난번 백합 일처럼 흐지부지 끝날 가능성이 컸다.무엇보다 이번에는 백씨가 스스로 살림을 넘겨준 것이었다.계연수 역시 그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었다.심씨 노부인은 다시 말했다.“앞으로는 주방 장부를 굳이 내게 가져올 필요 없다. 다만 내가 생각이 나면 언젠가 한 번쯤 들여다볼 수도 있으니, 네가 알아서 처리하면 된다.”겉으로는 가져오지 말라고 했지만, 사실상 보이지 않는 압박을 남긴 말이었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장부를 확인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하지만 계연수는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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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5화

계연수와 백씨가 스쳐 지나간 뒤, 한참 거리를 둔 뒤에야 용춘이 그녀의 귓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큰부인께서 주방을 맡은 지도 오래됐는데 장부가 저 지경이니, 은자를 빼돌리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겠어요?”그러더니 더욱 목소리를 낮추었다.“정말 손을 댔다면 대체 얼마나 챙긴 걸까요?”계연수는 백씨가 분명 은자를 빼돌렸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그토록 영리한 사람이 장부에 드러난 문제를 알아채지 못했을 리 없을 테니까.다만 얼마나 챙겼는지는 그녀도 짐작할 수 없었다.오랜 세월 살림을 맡아 왔으니 적지 않은 액수일 것만은 분명했다.게다가 심씨 노부인 역시 백씨가 가져간 돈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듯했다.계연수는 그저 용춘에게 조용히 말했다.“이 일은 여기서 끝난 것으로 하자. 밖에 나가서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용춘은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부인, 걱정 마세요. 제 입은 무거운 편이니까요.”계연수가 처소로 돌아오자 하인이 편지 한 통을 가져왔다. 어머니가 보낸 편지였다.편지를 읽어 내려가던 계연수의 눈길이 잠시 멈췄다.고준안이 어제부터 조금씩 의식을 되찾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아직 몸을 일으킬 수는 없지만, 깨어난 뒤 줄곧 그녀를 찾으며 한 번 만나고 싶어 한다고 했다.어머니는 내일 함께 친정으로 돌아가 고준안을 한 번 보고 오자고 권하고 있었다.계연수는 가볍게 미간을 좁혔다.그러고는 편지를 한쪽에 내려놓았다.밤이 되어 심서준이 돌아왔을 때, 그는 드물게도 문 앞에서 자신이 보고 싶어 하던 사람의 모습을 발견했다.그 여인은 그를 발견하자마자 곧장 이쪽으로 걸어왔다. 가벼운 걸음에 치맛자락이 어둔 밤빛 속에서 잔잔히 흔들렸다.처마 밑에 걸린 등불이 고운 윤곽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고, 그녀가 지닌 차분하고 서늘한 분위기마저 어느새 부드럽게 녹아들고 있었다.그 순간, 심서준은 다시 한번 가슴속에 번지는 따뜻함을 느꼈다.부군이 된 기쁨과 집 안에 자신을 위해 남겨진 등불 하나, 그리고 자신을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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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6화

심서준은 고개를 숙였다.“그 일의 자세한 경위는 정종현이 이미 모두 진술했다.”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면 저는 돌아가지 않는 편이 낫겠네요.”심서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래도 가서 한번 보고 싶다면 상관없다.”계연수는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저었다.“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고준안 오라버니도 보고 싶지 않고요.”그녀는 정말 고준안을 보고 싶지 않았다. 어렵게 그날 밤의 악몽을 잊고 지내고 있었는데,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만약 고준안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자신의 손으로 사람을 죽일 뻔했던 기억도 함께 되살아날 터였다. 그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불안해졌다.다행히 고준안은 무사했고, 그녀 또한 그 일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었다.심서준은 나직이 응한 뒤 말했다.“나중에 시간이 나면 내가 함께 데리고 가 보마.”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인 뒤 갈아입을 옷을 가져와 그에게 입혀주었다.심서준은 순순히 그녀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그러다 문득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끝났느냐?”계연수는 잠시 멈칫했다.“뭐가요?”심서준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월경 말이다.”계연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아직 안 끝났어요.”심서준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계연수의 손을 잡고 함께 정원을 거닐러 나갔다.심서준은 원래 여유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풍류를 즐기거나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일은 더욱 드물었다.지금 이 순간 계연수와 함께 정원을 걷고 있으면서도 책상 위에는 그가 처리해야 할 일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그는 이미 모든 일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밤늦게 정원을 거니는 일은 계연수의 성미와도 그리 맞지 않았다.원래부터 게으른 편이라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심서준이 드물게 흥을 낸 만큼 그녀도 조용히 곁을 지켰다.오늘 밤은 달빛이 유난히 좋았다.심서준은 계연수를 데리고 한 누각으로 올라갔다.그 누각은 심서준의 서재가 있는 뜰 옆에 자리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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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7화

계연수에게 물에 빠졌던 그날의 일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그녀는 가끔 그날을 떠올릴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심서준이었는데도, 어쩐지 모든 기억이 흐릿했다.그날의 심서준은 그녀의 기억 속에서 지나치게 희미했다. 마치 애초에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였다.계연수는 뒤돌아 심서준을 바라보았다.심서준은 한 걸음 뒤에 서서 검은 눈동자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기억나느냐?”계연수는 고개를 저었다.“물에 빠진 뒤의 일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잠시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오래전부터 품어 왔던 의문을 꺼냈다.“그 일 이후로는 부군께서 저를 만나려 하지 않으셨잖아요.”심서준은 계연수를 한번 바라보았다.“보고 싶지 않았으니까.”그 무렵의 그는 이미 마음을 접은 뒤였으니, 굳이 그녀를 만날 이유도 없었다.그러자 계연수는 다시 물었다.“왜 보고 싶지 않으셨는데요?”심서준은 몸을 돌려 누각 창가로 걸어갔다. 그리고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귀찮았으니까.”계연수는 잠시 멍하니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었다. 심서준은 예전부터 늘 자신을 귀찮아했다.계연수도 그의 곁으로 다가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제야 이곳의 시야가 얼마나 탁 트여 있는지 알 수 있었다.뒷마당은 물론 이곳으로 이어지는 길들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길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보일 정도였다.문득 옛일이 떠올랐다.예전에 이곳으로 오던 길에 일부러 느릿느릿 걸어오거나, 몰래 작은 돌멩이를 연못에 던져 물고기를 놀리곤 했었다.설마 그 모습도 전부 심서준이 보고 있었던 걸까?그래서였을까.언제나 만년설처럼 차갑기만 하던 심서준이 어느 날 갑자기 먼저 말을 걸어 왔다.연못 속 물고기들이 싫으냐고.계연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도대체 자신은 심서준의 눈에 어떤 사람으로 보였던 걸까?가장 초라하고 민망한 모습까지 모두 보여 준 마당에, 이제 와서 어떻게 보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을 것 같았다.그 순간 계연수는 문득 아득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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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8화

계연수는 아직도 조금 믿기지 않았다.싫어하지 않았다면서, 예전에는 만날 때마다 어딘가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하지 않았던가.그때 심서준이 말했다.“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경치가 꽤 좋다. 네가 책 읽는 것을 좋아하니, 앞으로는 종종 올라와 보아도 된다.”계연수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제가 와도 되는 건가요?”그녀의 기억 속 이곳은 심서준만의 영역과도 같은 장소였다.듣기로는 심씨 노부인조차 함부로 드나들 수 없었고, 입구에는 늘 사람이 지키고 있다고 했다.예전부터 심서준의 서재에는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지만, 이곳만큼은 단 한번도 와 본 적이 없었다.심서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당연히 올 수 있다. 넌 이미 내 부인이지 않느냐. 내가 갈 수 있는 곳이라면 당연히 너도 갈 수 있다.”그러고는 계연수를 깊이 바라보며 덧붙였다.“다만 이곳 책들은 네가 읽는 이야기책들보다 훨씬 읽을 가치가 있겠지.”계연수는 곧바로 그의 뜻을 알아들었다. 결국 이야기책 읽는 버릇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는 말이었다.그녀는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심서준의 말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사람이 한평생 사는 이유는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 아닌가.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보는 것이고, 설령 그것이 시정잡배들이 즐겨 읽는 이야기책이라 해도 자신을 즐겁게 해 준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었다.심서준처럼 엄숙한 사람은 뜻을 조정에 두고 있으니, 그의 즐거움과 자신의 즐거움은 애초에 같을 수 없었다.심서준은 다시 계연수의 손을 잡고 바깥 회랑으로 나갔다.그곳에 서자 시야가 한층 더 탁 트였다.계연수는 난간을 짚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다가 문득 몇 개의 공명등을 발견했다.그녀는 급히 심서준의 소매를 붙잡았다.“부군, 저것 좀 보세요.”심서준의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계연수가 저토록 기뻐하는 모습을 보자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애초에 그녀를 위해 준비한 것이었으니, 좋아해 주기만 하면 충분했다.두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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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9화

계연수는 심서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그에게는 분명 이유가 있을 거라 여기며 그의 뒤를 따라 침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막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심서준이 말했다.“그 책은 더 이상 보지 말거라.”계연수는 순간 멈칫했다.무슨 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책을 읽는 사람이 한둘도 아닌데, 어째서 자신만 읽어선 안 된다는 걸까.그녀는 자신의 생각을 말해 보려 했다.화본을 읽는다고 해서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심심풀이로 보는 것뿐이었다. 게다가 아직 결말도 남아 있었고, 용춘과 은자 열 냥을 걸고 내기까지 한 상태였다. 한창 궁금증이 절정에 달한 지금 읽지 못하게 되는 건, 다른 어느 때보다 괴로운 일이었다.심서준은 이미 침상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그는 곁으로 다가온 계연수를 느긋하게 올려다보았다. 따라 들어오면서부터 잔뜩 불만이 쌓인 듯한 그녀의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왠지 모르게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굳이 그녀와 이 문제로 이치를 따질 생각은 없었다.“내 누각에 책이 그렇게 많은데, 그걸로는 부족하더냐?”계연수는 눈을 크게 떴다.그제야 오늘 심서준이 자신을 누각에 데려간 이유를 깨달았다.앞으로는 그곳에 있는 책만 읽으라는 뜻이었다.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그녀는 곧바로 항의했다.“전 싫어요.”심서준은 침상 위로 올라앉은 채, 여전히 침상 곁에 서 있는 그녀를 바라보았다.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얼굴에는 차갑고도 나른한 기색이 어려 있었다.“싫어도 상관없다. 천천히 찾아보면 되지. 언젠가는 네 마음에 드는 책도 있을 테니.”그는 다시 계연수를 한번 바라보며 말했다.“이리 와서 누워라.”계연수는 이 사람이 어쩌면 이렇게 막무가내일 수 있나 싶었다.그녀는 홱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 버렸다.심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돌이켜 생각해 보니 계연수에게도 이렇게 큰 성미가 있다는 건 미처 몰랐다.예전에는 자신만 보면 늘 조심스럽고 눈치를 살피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오히려 제 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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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0화

계연수는 촉촉이 젖은 눈으로 심서준을 올려다보았다.“고작 화본 하나라면서요. 헌데 왜 못 보게 하시는 건데요?”심서준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한참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연수야. 네가 꼭 이유를 원한다면, 나는 네가 그런 화본을 읽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계연수는 멍하니 심서준을 바라보았다.그의 눈빛도, 태도도 늘 그랬다.어렴풋이 기억 속 어린 시절의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안 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굳이 이유를 설명하는 것조차 탐탁지 않아 했다. 언제나 자신이 옳다고 여겼고 모든 일은 그의 뜻대로 돌아가야 했다.심서준은 모든 것을 통제했고, 누구도 안중에 두지 않았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이는 일은 더더욱 없었다.계연수는 자신이 그의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이 못내 서러웠다.심서준은 계연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를 바라보았다.감았던 눈 사이로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려 귀밑으로 늘어진 머리카락을 적셨다.희고 고운 뺨도 어느새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그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 준 뒤 몸을 돌려 계연수를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가슴 한가운데가 꽉 조여 오는 듯했다. 그 자신이 더 괴로울 정도였다.심서준은 그녀의 등을 가만히 토닥였다.“모레쯤 시간이 날 것 같구나. 그때 밖으로 데리고 나가 주마.”계연수는 눈물을 모조리 심서준의 옷깃에 문질러 버렸다. 평소 그가 얼마나 깔끔한 성격인지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더 그랬다. 몇 번 문질러도 성이 차지 않자 아예 그의 옷깃을 잡아당겨 목덜미에까지 눈물을 닦아 냈다.눈물은 짭짤하고 축축했다.한번 서러움이 터지자 마치 둑이 무너지듯 멈추지 않았다.심서준의 옷깃은 어느새 흠뻑 젖어 있었지만, 그는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꼭 안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계속 등을 토닥이며 달래 주면서, 그녀가 제 몸에 마구 기대고 문지르도록 내버려 두었다.아이처럼 구는 계연수의 모습에 심서준의 마음도 조금씩 무너졌다.향기롭고 부드러운 몸이 품 안에서 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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