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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춘귀》全部章節:第 851 章 - 第 860 章

900 章節

제851화

갑작스러운 심서준의 움직임에 놀란 계연수는 짧은 비명을 내지르며 다급히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심서준은 그런 계연수를 안은 채 서재로 향하더니, 그대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당황한 계연수가 내려오려 했지만, 곧 커다란 손이 허리를 눌러 움직임을 막았다. 뒤이어 심서준의 몸이 가까이 기울어지며 시야를 가득 채웠다.낮고 관능적인 목소리가 귓가로 스며들었다.“연수야, 오늘 여기서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계연수는 자신이 거절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심서준은 본래 제 뜻을 좀처럼 굽히지 않는 사내였으니까. 그녀가 싫다고 해도 못 들은 척 넘기고는 결국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야 말았다.여름옷은 한층 얇고 가벼웠다. 목욕을 마친 계연수는 긴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틀어 올린 채 옥비녀 하나로 고정해 두었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듯 비스듬히 꽂힌 비녀와 흐트러진 머리칼이 어우러져, 사람의 넋을 빼앗을 만큼 고혹적인 자태를 자아냈다.옷깃이 풀리고 옷자락이 어깨 아래로 흘러내리자, 희고 매끄러운 살결이 등불 아래 은은하게 빛났다. 심서준은 귀하게 길러진 그녀의 보드라운 몸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커다란 손이 그 위를 천천히 어루만졌고, 이내 고개를 숙인 그가 계연수의 붉은 입술을 머금으며 길고도 깊은 입맞춤을 이어 갔다.계연수는 속수무책으로 고개를 젖혔다. 귓가를 파고드는 심서준의 낮고 거친 숨결에, 계연수는 이럴 때의 그를 감당하기가 여전히 벅차다고 느꼈다.차라리 침상에서만 이러는 것이라면 나았을 터였다. 하지만 심서준은 유독 책상이나 의자 위, 작은 침상 곁과 의걸이 옆, 심지어 욕조 안에서까지 그녀를 끌어안기를 즐겼다. 그런 곳에서는 평소보다도 유난히 흥이 오르는 듯했다.정사를 나눌 때의 심서준은 평소의 냉담하고 정갈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계연수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보아 온 터라, 여태껏 그의 곁에 다른 여인이 없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괜한 의심을 품었을지도 모른다.그나마 다행인 것은 심서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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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2화

이튿날 아침, 심서준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계연수가 문득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부군, 정우도 이번 한 번만큼은 제 뜻대로 살아보게 할 수는 없는 겁니까? 자신이 원하는 여인을 부인으로 맞이하게 해주면 안 되는 겁니까?”심서준의 움직임이 멎었다. 그가 고개를 돌려 계연수를 바라보았다.계연수는 새하얀 옷을 입은 채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느슨하게 흘러내린 긴 머리카락이 허리를 지나 명주 이불 위로 부드럽게 퍼졌다. 가늘고 고운 몸매에는 나른한 운치가 배어 있었으며, 눈가에는 아직 붉은 기운이 남아 있었다. 맑은 눈동자 안에서는 휘장 너머의 촛불이 잔잔히 일렁였다.심서준은 고요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게 물었다.“정우가 가엾어진 것이냐?”계연수는 순간 멈칫했다.그것을 동정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아는 이수옥은 결코 선량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심정우마저 그 여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니, 두 사람의 혼사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그러나 이런 속내를 누구에게도 말한 적은 없었다. 큰방의 일에 함부로 끼어들 수는 없었으니, 오직 심서준에게만 조심스레 꺼내 본 것이었다.계연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그저 정우가 요즘 몹시 소란을 피운다는 말을 들어서 문득 여쭈어 본 것입니다.”심서준의 눈에 옅은 냉소가 떠올랐다.“정우는 늘 제 기분과 성정에 따라 일을 벌인다. 그날도 손보경을 안아 들지 말았어야 했다. 이제 와 서둘러 정한 혼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작 그런 치기 어린 행동으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보니, 여전히 달라진 것이 없구나.”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냉정했다.“정말로 원치 않는 혼사라면 제 손으로 피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매번 남들이 대신 뒤를 수습해 주기만 기다려서는 안 되지. 이수옥이 그토록 싫었다면 그날 밤에 바로 말했어야 했다. 제 어머니에게 마음에 드는 여인으로 정해 달라고 청하면 될 일이었다. 정작 아무 말도 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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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3화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심씨 노부인은 이번 일에는 더는 돌이킬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태후가 의지를 내릴 수 있었던 것부터가 황제의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황후도 직접 황제를 찾아가 혼사를 거두어 달라 청했지만 황제는 두 집안의 격이 서로 잘 맞는 혼사이며, 태후가 나서서 양가의 화목을 도모한 것뿐이라고 잘라 말했다. 황후가 다시 사정을 이야기하려 했을 때는 아예 만나 주지도 않았다.황제는 분명 명군이었다.그동안 조정의 세력 균형을 안정적으로 유지했고, 민생을 다스리는 일에서도 뚜렷한 치적을 쌓았다. 정사에 부지런했으며 후궁의 미색에 빠지는 일도 없었다.하지만 그는 무엇보다 균형을 중시했다.심씨 가문의 세력이 지나치게 커진 이상, 아무리 신뢰한다 해도 마음을 놓을 수는 없는 상황. 심씨 가문에 태후 측 여인을 들여보내 서로를 견제하는 일은 결국 시간문제였던 셈이다.본래 이 혼사는 순리대로라면 심정우에게 내려졌어야 했다. 그는 심씨 가문의 적손인 데다 마침 공까지 세웠으니, 손보경의 배필로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그러나 심정우는 이미 다른 여인과 정혼했다. 이제 심씨 일족의 자제 가운데 적출이면서 나이까지 알맞은 사람은 심한율밖에 남지 않았다.이것은 처음부터 황제의 뜻이었다.다만 황제가 직접 나서는 대신 태후의 손을 빌렸을 뿐이었다.황제는 심씨 가문과 태후 측이 이미 원한으로 얽힌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이 혼인을 밀어붙였다. 심씨 가문의 기세를 누르려는 뜻이 분명했다. 그 과정에서 손보경은 그저 한낱 바둑돌에 불과했다. 그녀가 심씨 가문에 들어가 어떤 대접을 받고 살아갈지는 황제의 관심사가 아니었다.오히려 손보경이 불우하게 지내다가 태후를 찾아가 호소한다면, 황제는 그 일을 빌미로 심씨 가문을 압박할 수도 있었다.심씨 노부인의 말이 끝나자 대청 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황제의 뜻이라면 이 혼사를 뒤집기는 어려웠다.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황제의 성정을 잘 알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온화하고 대화가 통하는 듯해도, 속으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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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4화

심서준은 계연수를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네 아버지는 생전에 일 처리가 과감하고 빈틈이 없었으며, 노련한 수완까지 갖춘 분이셨다.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거나 부정에 눈감는 법도 없이 흐트러진 기강을 바로잡았지. 대리시에 몸담았을 때 처리한 일들 역시 하나같이 남의 원한을 살 만한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변변한 배경 하나 없는 한미한 출신으로 그 모든 일을 끝내 해냈으니… 네 생각에는 그분이 능신이었겠느냐, 충신이었겠느냐?”계연수는 한동안 곰곰이 생각한 뒤 조심스럽게 답했다.“아마도 능신이셨을 겁니다.”심서준이 눈을 내리깔았다.“헌데 막상 화를 당하자 그분을 위해 나서는 이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면 고신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아버지가 겪었던 일을 떠올린 계연수는 가슴이 저릿해져 나직이 대답했다.“그렇습니다.”심서준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그렇다면 네 아버지는 스스로 고신이 되기를 택한 것이겠느냐, 아니면 달리 선택할 길이 없어 고신이 된 것이겠느냐? 부패한 자들과 한통속이 되었다면 충신으로 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차분히 덧붙였다.“능신이라도 뜻한 바를 이루려면 때로는 세력을 모아야 하고, 충신이라도 누군가를 지키려면 형편에 따라 수단을 달리해야 한다. 고신 또한 제 목숨을 보전해야 할 때는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하지.”그러자 계연수가 물었다.“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어떤 신하를 원하시는 겁니까?”등불이 일렁일 때마다 심서준의 검은 눈동자에도 희미한 빛이 점점이 떠올랐다.“명군이 신하를 부릴 때에는 제 직분을 넘어 공을 세우는 것도 허락하지 않고, 합당하지 않은 말을 아뢰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직분을 넘으면 죽고, 말이 합당하지 않으면 죄를 받는 법이지.”그의 음성에는 한 치의 동요도 없었다.“폐하께서 원하시는 것은 충신도, 능신도, 고신도 아니다. 언제든 자신의 뜻대로 부릴 수 있으면서 쓸모 있는 신하를 원하실 뿐이다.”심서준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폐하께서 심씨 가문을 의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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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5화

장씨는 잠시 넋을 잃은 채 계연수의 반응을 살폈다. 계연수의 얼굴에는 예의 바르면서도 거리감이 선명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그 미소를 보고 있자니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번졌다. 그동안 자신이 계연수를 대했던 일들이 하나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그제야 장씨는 선명하게 깨달았다. 눈앞의 계연수는 이미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는 자신과 고씨 가문이 의지해야 할 귀인이 되었건만, 정작 두 사람 사이에는 지난날 쌓인 앙금만이 남아 있었다.막상 용건을 꺼내려니 장씨는 좀처럼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곁에 앉아 있던 고하운은 어머니가 한참이나 머뭇거리자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제 혼례 날짜가 정해졌어요. 다음 달이에요. 오늘 찾아온 것도 그 소식을 사촌 언니께 전해 드리기 위해서예요.”계연수는 고하운을 바라보았다. 반짝이는 눈동자에는 마침내 남들 앞에서 기를 펼 수 있게 되었다는 득의양양함이 어려 있었다.영국공부는 손꼽히는 명문가였고, 고하운이 혼인할 상대 역시 훌륭한 인물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저토록 의기양양해하는 것도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계연수는 그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고하운은 그 반응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재차 물었다.“제가 영국공부로 시집가게 되었는데, 사촌 언니는 기쁘지 않으세요?”계연수는 눈을 내리깔고 찻잔 뚜껑을 가볍게 매만지며 나직이 답했다.“네 혼사이니, 무엇보다 네가 기쁘면 된 일이지.”고하운은 뜻밖의 대답에 잠시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본래 꺼내려던 용건을 곧바로 입에 올렸다.“저는 이제 곧 영국공부의 둘째 부인이 되잖아요. 헌데 영국공부의 셋째 대감께서는 아직도 도찰원에 갇혀 계십니다. 언니께서 형부에게 말씀드려 그분을 풀어주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그녀는 당연한 부탁이라도 하는 양 말을 이었다.“혼례를 치르는데 집안 어른 한 분이 빠지시면 백씨 가문 사람들도 마음이 불편할 테고, 저 역시 제 부군께서 셋째 숙부의 일로 근심하시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계연수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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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6화

계연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외숙모의 말씀이 옳습니다. 지난 일은 그만두고, 지금의 일만 이야기하죠.”그녀는 잠시 말을 고른 뒤 차분히 이어갔다.“이번 혼사가 처음 거론되었을 때부터 저는 영국공부의 의도가 석연치 않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헌데 외숙모께서는 제가 하운이가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해 그러는 것이라 하셨지요.”계연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평온했다.“이제 혼사가 정해졌으니 저도 하운이가 잘 살기를 바랍니다. 헌데 영국공부에서 진심으로 하운이를 며느리로 맞으려는 것이고, 백씨 큰부인 역시 진심으로 하운이를 마음에 들어 하신다면, 백씨 가문의 셋째 대감께서 풀려나지 못하더라도 하운이와는 아무 상관이 없지 않습니까? 설마 그 일로 하운이를 박대하기라도 하겠습니까?”장씨의 얼굴이 몇 번이나 굳어졌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그녀는 마침내 고하운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실망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예전에 잘못한 것이 있다 해도 그렇지. 어릴 적, 내가 너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벌써 잊은 것이냐?”계연수는 자리에서 일어선 장씨를 올려다보았다.“만약 제가 어렸을 때 아버님께서 화를 당하셨다면, 그때도 외숙모께서는 제게 잘해주셨을까요?”장씨의 낯빛이 희게 질렸다.계연수의 시선은 한없이 담담하면서도 서늘했다. 모든 속내를 이미 꿰뚫어 보고도 굳이 입 밖에 내지 않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 앞에서 장씨는 순간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져, 차마 젊은 조카의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고하운 역시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계연수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따졌다.“도와주기 싫으시다면 그만이지, 어째서 어머니께 그런 말씀까지 하시는 겁니까? 예전에 어머니께서 언니를 잘 대해주신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때는 고모부께 아무 일도 없었는데, 굳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정해 어머니를 몰아세우실 필요는 없잖아요.”고하운은 어머니를 감싸듯 덧붙였다.“게다가 어머니는 언니의 웃어른이세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안 되지요.”계연수는 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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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7화

장씨가 갑자기 무릎을 꿇으리라고는 계연수도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곁에 서 있던 고하운 역시 바닥에 무릎 꿇은 어머니를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계연수로서는 장씨의 절을 받을 수 없었다. 시비가 누구에게 있든 자신은 어디까지나 아랫사람이었다. 이 일이 밖으로 알려지면 결국 손상되는 것은 자신의 평판일 터였다.그나마 미리 방 안의 시녀들을 모두 물려두었으니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또 어떤 뒷말이 생겼을지 모를 일이었다.계연수는 허리를 굽혀 장씨의 팔을 붙잡았다. 눈물 어린 얼굴을 내려다보면서도, 그녀가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쳤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이기적인 사람은 좀처럼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지 않는다. 장씨의 행동 역시 진심 어린 참회가 아니라, 이해득실을 따진 끝에 내린 선택에 불과했다.장씨가 어리석지 않은 이상, 영국공부에서 갑자기 이 혼사를 추진한 까닭을 모를 리 없었다.계연수가 조용히 말했다.“외숙모께서 이러실수록 저는 앞으로 외숙모를 더욱 뵙고 싶지 않을 겁니다.”그녀는 장씨를 일으키며 차분히 덧붙였다.“앞으로도 이런 식으로 나오시면, 남들이 저를 어떻게 보겠습니까?”장씨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눈앞의 계연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분명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에 서린 분위기는 이미 예전과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과거의 계연수는 외가인 고씨 가문에 유난히 애착이 깊었다. 특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이미 혼인한 몸인데도 자주 고씨 부저를 찾아왔다.그때의 계연수는 비단과 찻잎, 제비집과 향유 같은 물건들을 틈틈이 보내오곤 했다. 사씨 가문에서 순탄치 않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외가 사람들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계연수는 그들을 잊지 않고 살뜰히 챙겼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온몸에 부귀가 넘치고 머리에는 화려한 금비녀와 옥 장신구를 꽂은 계연수는, 이제 장씨가 감히 손댈 수도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외가에는 예전처럼 물건을 보내지 않았다.그 풍요로운 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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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8화

계연수는 좀처럼 사람에게 모난 태도를 보이지 않는 성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망설임 없이 장씨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괜찮습니다.”단호한 거절에 장씨의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장씨와 고하운이 밖으로 나가자, 곁에서 기다리던 용춘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고씨 부인께서 어쩌다 저리 변하신 걸까요? 저는 그분이 우시는 모습을 오늘 처음 보았습니다.”용춘은 아직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게다가 갑자기 무릎까지 꿇으셔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계연수는 고개를 숙여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은은한 향이 입안을 부드럽게 적셨다.그녀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했다.“외숙모께서는 그동안 영국공부에서 하운이를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 해 혼담을 넣었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덕분에 이제야 남들 앞에서 기를 펼 수 있게 되었다고 여겼겠지.”계연수의 시선이 잔잔히 가라앉았다.“헌데 이제는 그들이 진정으로 탐낸 것이 무엇인지 깨달으신 게다.”*한편 계연수의 처소를 나온 장씨와 고하운은 얼마 가지 않아 길목에서 백씨와 마주쳤다.백씨는 장씨가 심씨 부저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그녀는 웃는 얼굴로 계연수의 처소에서 따라 나온 시녀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일렀다.“고씨 부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것이니, 너는 이만 돌아가거라.”시녀를 돌려보낸 백씨는 장씨에게 근처의 수사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가자고 권했다.심씨 부저의 정원은 어느 곳 하나 허투루 꾸민 데가 없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풍경이 정갈하고 아름다웠다.수사에 자리를 잡은 백씨는 아직 눈물기가 남아 있는 장씨의 얼굴을 살피며 웃음 띤 목소리로 물었다.“고씨 부인께서는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장씨도 백씨가 자신을 붙잡은 까닭을 모르지 않았다. 계연수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떠보려는 것이 분명했다.장씨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별일은 아닙니다. 조카와 지난날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둘 다 잠시 마음이 울적해졌을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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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9화

시녀가 돌아와 장씨와 백씨가 길에서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전했지만, 계연수는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두 사람이 나눌 이야기야 뻔했기 때문이다.사실 요즘 들어 백씨는 제법 잠잠했다. 더는 계연수에게 트집을 잡거나 귀찮게 굴지 않았다. 심씨 가문의 총창고 열쇠를 여전히 백씨가 관리하고 있어 종종 찾아갈 일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순순히 협조할 뿐 별다른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다.그날 밤 심서준이 돌아왔을 때도 계연수는 낮에 있었던 일을 굳이 꺼내지 않았다. 도리어 먼저 물어온 쪽은 심서준이었다.“오늘 네 외숙모가 찾아왔다지?”계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서준이 사 온 과자를 부지런히 먹으면서도 시선만은 그에게 향했다.“그런데요?”심서준은 그녀가 과자를 먹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먹는 속도는 조금도 느려지지 않았다. 여전한 먹보의 모습에 그의 입가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무슨 말을 하더냐?”계연수는 그제야 백씨 가문의 셋째 대감에 관한 부탁을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져 물었다.“부군께서는 그분을 언제쯤 풀어주실 생각이십니까?”심서준이 그녀를 한번 바라보고는 답했다.“아마 다음 달쯤. 가둬둘 만큼 가둬두었고, 경고도 충분히 되었으니까.”계연수는 고개만 끄덕이고 더 묻지 않았다. 그러고는 은숟가락으로 부드러운 우유 과자를 한 숟갈 떠먹었다.그런데 몇 입 먹지 않아 갑자기 손을 멈추더니 숟가락을 내려놓았다.“이제 안 먹을래요.”지금껏 심서준이 사 온 과자는 매번 남김없이 먹어 치웠던 계연수였다. 고작 몇 입 만에 손을 놓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심서준이 그녀가 쓰던 숟가락으로 한입 맛을 보았다.맛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맛이 없느냐?”계연수가 고개를 저었다.맛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살이 쪘기 때문이었다.요즘 심서준은 밤마다 돌아오는 길에 과자를 사 왔고, 먹는 것을 좋아하는 계연수는 그때마다 남김없이 먹어 치우곤 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용춘이 옷 입는 것을 도와주는데 문득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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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0화

심서준은 계연수의 허리를 손바닥으로 천천히 매만졌다. 손끝에는 부드러운 살집이 느껴졌지만, 평소와 별반 다를 것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살이 쪘는지조차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그는 계연수를 달래듯 말했다.“조금 살이 붙었어도 상관없다. 어떤 모습이든 다 좋으니까.”계연수는 두 팔로 심서준의 목을 끌어안고 그의 어깨에 턱을 살며시 얹었다.“부군께서 싫어하지 않으셔도, 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나야 하잖아요.”심서준이 옅게 웃었다.“너보다 살집이 있는 여인도 수두룩하다. 그들은 어떻게 남들 앞에 나선단 말이냐?”계연수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그건 다르지요.”심서준은 품 안의 말랑한 몸을 단단히 끌어안았다. 잠시 뒤에는 서재로 가야 했지만, 지금만큼은 느긋하게 그녀의 투정을 받아주었다.“무엇이 다르다는 것이냐?”계연수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그의 어깨 너머로 들려왔다.“살이 찌면 예쁘지 않잖아요.”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더욱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저는 못생겨지고 싶지 않습니다.”심서준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그는 몸을 조금 뒤로 물린 뒤 두 손으로 계연수의 얼굴을 감싸고 찬찬히 들여다보았다.계연수가 이토록 제 외모에 마음을 쓰는 줄은 미처 몰랐다.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전에 궁에서 가져다준 향로와 머릿기름, 피부를 가꾸는 고약과 진주분, 열택방까지 계연수는 모두 무척이나 아꼈다. 한번 화장대 앞에 앉으면 한참 동안 일어날 줄을 몰랐고, 심지어 손에도 빠짐없이 고약을 발라 정성껏 가꾸곤 했다.그 모습이 심서준의 눈에는 더없이 사랑스러웠다.지금의 계연수는 어린 시절의 그녀와 꼭 닮아 있었다. 조금 응석받이 같고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모습이었지만, 그만큼 마음에 아무런 짐도 없이 평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심서준의 마음 한구석이 따스하게 녹아내렸다.그는 고개를 숙여 계연수의 코끝에 입을 맞추고, 다시 붉은 입술을 가볍게 머금었다. 마지막으로 미간에도 입술을 내린 뒤 나직이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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