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연수와 심서준이 자리를 뜨자, 황후는 곁에서 고개를 숙인 채 줄곧 말없이 서 있던 태자비를 차갑게 바라보았다.“듣자 하니, 어젯밤에도 또 소란을 피웠다지?”정여미는 순간 굳었다가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전하께서 한 달째 제 처소에는 발걸음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탕을 들고 찾아가도 만나 주지 않으셨고요. 그저 문밖에서 잠시 운 것뿐인데, 어찌 그것을 소란이라 하십니까?”정여미는 말끝을 흐리며 창가에 서 있는 태자에게 슬쩍 시선을 보냈다. 억울함을 호소하는 척했지만, 실상은 황후에게 일러바치려는 뜻이 역력했다.태자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냉랭하게 돌아보았다.애초에 이 태자비는 황조모가 억지로 떠맡기듯 정해 준 사람이었다. 좋아하고 싫어할 만큼의 감정도 없었다. 다만 쓸데없는 일을 벌이지 않는다면, 자신도 예를 지키며 대했고 결코 박대하지 않았다.하지만 요 며칠 태자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영춘하 제방 문제를 부황이 직접 조사하라 명했고, 그는 불과 이틀 전에야 돌아왔다. 돌아온 뒤에도 산더미 같은 문서를 정리해 부황께 보고해야 했고, 태자비의 친정 일에 자신까지 휘말려 허점을 잡히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해야 했다.그런데도 정여미는 상황을 헤아릴 줄 모르고, 오직 다정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며 서운해하거나 고자질할 생각뿐이었다. 그런 모습은 태자의 짜증만 더욱 부추겼다.어젯밤에도 그는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바빴고, 무슨 탕 따위를 마실 여유는 없었다. 그런데도 정여미는 기어코 들고 들어오려 했고, 막아 세우자 또 문밖에서 울음을 터뜨렸다.태자비로서 체면을 깎는 행동이었다.지금 당장 함부로 태자비를 폐할 수 있는 처지만 아니었다면, 정여미를 향해 겉으로나마 남겨 둔 정마저 진작 닳아 없어졌을 것이다.정여미의 말을 들은 황후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두워졌다.“그리도 분별을 익히지 못하겠거든 네 외숙모가 어떻게 처신하는지 보고 배워라. 조용히 제 본분을 지키고, 괜한 소란도 피우지 않지 않느냐. 시키지도 않은 일에는 나서지 말거라. 어차피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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