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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춘귀》全部章節:第 861 章 - 第 870 章

900 章節

제861화

심서준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 그제야 계연수는 그에게 더 이상 이런 장난을 쳐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깨달았다.“제가 누구에게 보이려고 그러겠습니까. 여인들끼리 모이면 아무래도 서로 비교하게 되잖아요. 위씨 부인도, 최씨 가문의 셋째 아가씨도, 심씨 가문의 아가씨들도 하나같이 아름다운데 저만 살이 붙어 둥글둥글해지면 웃음거리가 될지도 모르지요. 괜히 부군의 체면까지 깎일 수도 있고요.”계연수는 조금 전 다른 사람에게 예뻐 보이고 싶다고 한 말도 그저 심서준을 놀리려고 일부러 한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그러고는 한숨을 내쉬며 그의 어깨에 손끝을 얹었다.“부군께서는 여전히 농담이 통하지 않으시는군요.”심서준은 잠자코 그녀를 바라보다가 말했다.“내 곁에는 감히 농을 건네는 사람이 없다. 사건을 다룰 때는 더더욱 농담이 통할 리 없지. 내게 이러는 사람은 너뿐이다.”말투가 여전히 딱딱했지만, 계연수는 굳이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대로 그의 무릎에서 내려가려는데 심서준이 허리를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연수야, 먹고 싶으면 먹어라.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심서준은 계연수를 품에 붙든 채 조용히 덧붙였다.“나 역시 언젠가는 늙고 추해질 것이다. 그래도 너는 언제까지나 내게 걸맞은 사람이다.”그 순간 계연수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언제까지나 내게 걸맞은 사람.’그 한마디가 가슴 깊은 곳을 세차게 울렸다. 심서준을 보며 이토록 강렬하게 가슴이 설렌 적은 거의 없었다.계연수도 알고 있었다. 바깥 모임에서 다른 부인들이 아무리 살갑게 다가와도, 그 눈에는 늘 부러움이 어려 있었다는 것을. 뒤에서는 하나같이 그녀가 참으로 좋은 팔자를 타고났다고 수군거리곤 했다.그들은 계연수가 심서준의 선택을 받은 것을 부러워했고, 심씨 가문에 시집온 것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 말속에는 결국 계연수가 심서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도 은근히 담겨 있었다.계연수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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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2화

계연수가 아직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장원에서 올라온 것들을 대조하는 일은 모두 방 어멈에게 맡겼습니다. 저는 우선 어머님 생신을 준비하는 데만 신경 쓰고 있어요.”심서준은 안쓰러운 마음에 계연수의 손을 꼭 쥐었다.“전에는 네가 안채 살림에 익숙하지 않을까 걱정되어 일을 나누어 맡게 한 것이다. 헌데 이제 보니 무슨 일이든 훌륭히 처리하더구나. 힘에 부치면 넷째 형수님에게 다시 돌려주어도 된다.”그가 차분히 덧붙였다.“언젠가는 분가할 터인데, 네가 굳이 이토록 고생할 필요는 없어.”뜻밖의 말에 계연수는 잠시 멍해졌다가 고개를 들어 심서준을 바라보았다.“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곧 어머님의 생신인데 지금 주방 일을 돌려드리면, 어머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형수님이나 심씨 가문의 아랫사람들도 제가 고생을 견디지 못해 내놓았다고 뒤에서 수군거릴 겁니다.”심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네가 말하기 어렵다면 내가 이야기하마.”계연수가 황급히 만류했다.“절대로 그러시면 안 됩니다. 부군께서 말씀만 해놓고 가시면, 나중에 제가 문안을 드리러 갈 때 어머님께서 또 저를 탓하실 겁니다.”그러더니 조금 수줍은 듯 덧붙였다.“게다가 요즘은 어머님께서 저를 제법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요.”심서준이 웃었다.“그건 사실이지. 무슨 일이든 잘 처리해 마음을 놓게 해주니, 누구라도 너를 좋아할 수밖에.”심서준과 몇 마디를 나누는 동안 계연수의 눈물은 어느새 잦아들었다. 긴장이 풀리자 온몸이 나른해진 그녀가 물었다.“부군, 이제 주무실 건가요?”심서준은 아직 눈가에 눈물이 맺힌 계연수를 바라보았다. 촛불 아래 앉은 그녀는 온몸에서 힘이 빠진 듯 말랑하고 나른해 보였다. 품 안에 넣고 마음대로 어루만져도 순순히 받아줄 것 같은 모습이었다.심서준은 계연수가 남긴 과자 접시를 다시 그녀 앞으로 가져왔다.“정말 한 입도 더 먹지 않을 것이냐? 너를 주려고 일찍부터 사람을 보내 사 오게 했다. 조금만 늦으면 살 수도 없었단 말이다.”달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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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3화

어느덧 심한율의 혼례일이 되었다.이번 혼사는 심씨 가문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태후의 의지로 맺어진 만큼 거부할 수는 없었다.태후 측에서는 이 혼사를 무척 중시했다. 예부에 직접 혼례를 주관하게 한 덕에 식은 온 경성에 소문이 날 만큼 성대하게 치러졌다. 손보경의 오라버니도 선주에서 말을 달려 급히 올라왔다. 손씨 가문으로서는 더없이 만족스러운 혼사였다.손보경이 가져온 혼수도 상당했다. 백여 짐이 넘는 혼수에 태후의 하사품까지 더해져, 창고 하나로는 모두 들여놓지도 못할 정도였다.새색시가 시댁 어른들에게 처음 인사를 올리는 날, 계연수는 대청 앞쪽에 앉아 나란히 들어오는 심한율과 손보경을 바라보았다.손보경은 단정하게 차려입었고, 몸가짐에도 흠잡을 만한 구석이 거의 없었으며, 아름다운 눈매에는 온화한 웃음까지 어려 있었다. 시어머니에게 차를 올리는 태도 역시 더없이 공손했다.그러나 대청에 모인 심씨 가문 사람들 가운데 진심으로 기뻐하는 이는 몇 되지 않았다.애초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혼사였다. 더욱이 손보경이 태후가 심씨 가문에 심어둔 사람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뻔히 아는데, 누가 반갑게 맞이할 수 있겠는가.심씨 가문에서는 혼사를 물리기 위해 세 차례나 입궁하여 간청했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손보경의 뒤에는 태후가 직접 붙여준 시녀 둘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러니 속마음이 어떻든 모두 얼굴에는 웃음을 띨 수밖에 없었다.태후 때문에 심씨 가문의 젊은이 둘이 연달아 서둘러 혼처를 정했고, 두 혼사 모두 당사자들의 뜻과는 멀어지고 말았다.오전에 치러진 새색시의 첫인사가 끝나자 계연수도 오래 머물지 않고 백씨 일행과 함께 돌아섰다.길을 걷던 백씨가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정우가 저런 여인과 혼인하지 않은 것이 그나마 다행이에요. 겉보기에는 단정하지만, 저런 사람이야말로 결코 만만치 않은 법이지요. 태후마마께서 무슨 속셈으로 저 아이를 심씨 가문에 들여보냈는지도 알 수 없고요. 나중에 저 아이 때문에 집안이 화를 입을까 걱정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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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4화

방 어멈이 목소리를 낮추어 계연수에게 말했다.“주방의 청우가 아침에 보양탕을 올리러 갔다가 보았다는데, 새로 들어온 부인께서 사람 대하는 솜씨가 여간 좋으신 게 아니랍니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시녀들에게도 빠짐없이 상금을 내리셨고, 노부인께는 무려 백 년 묵은 산삼 한 뿌리를 드렸다고 합니다.”방 어멈은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백 년 된 인삼도 구하기 어려운데, 산에서 저절로 자란 백 년 산삼은 더 말할 것도 없지요. 새로 들어온 부인께서 참으로 큰마음을 쓰신 모양입니다. 노부인께서야 그런 물건이 아쉽지는 않으시겠지만, 그 정성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지요.”계연수는 느긋하게 화병에 꽃을 꽂으며 물었다.“형수님께는 무엇을 드렸다더냐?”방 어멈이 고개를 저었다.“큰부인께 무엇을 드렸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 처소에는 저희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래도 새로 들어오신 부인께서 이토록 일 처리가 빈틈없으시니, 큰부인께도 꽤 괜찮은 물건을 드렸을 겁니다.”백씨는 제 처소를 빈틈없이 지키고 있었다. 계연수도 처음에는 사람을 들여놓을까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시녀가 들어와 손보경이 찾아왔다고 전했다.계연수는 안으로 모시라고 한 뒤, 방 어멈에게 차와 다과를 준비하라고 일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손보경이 방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계연수를 보자마자 깍듯이 예를 올렸다.“다섯째 숙모님을 뵙습니다.”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했다. 손보경은 목소리가 무척 고왔다. 얼굴과 몸매 또한 빼어났고, 수수한 옷차림마저 차분하면서도 세련되어 보였다.더구나 들어서자마자 이토록 공손히 예를 갖추니, 평소 그녀를 달갑게 여기지 않던 사람이라도 겉으로는 예의를 갖춰 대할 수밖에 없었다.계연수는 격식을 차릴 것 없다며 자리를 권했다.“편히 앉으렴.”손보경은 계연수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시녀가 차를 올리는 동안 손보경의 시선은 자연스레 계연수에게 향했다.계연수는 한없이 평온하고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짙은 남빛 장화단으로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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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5화

손보경은 지금의 계연수에게 부족한 것이 없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방 안을 둘러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곳곳에 놓인 기물과 장식품이 하나같이 귀한 것들이었으니, 계연수 역시 자신 못지않게 좋은 물건을 숱하게 보아왔을 터였다.그러니 선물에서 중요한 것은 값이 아니었다.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 해도 심씨 가문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그런 물건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바라는 바를 헤아려 그에 맞는 정성을 보이는 일이었다.손보경은 계연수가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이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송자관음상을 준비한 것이었다.“어제 제가 직접 법화시에 가서 숙모님을 위해 구해온 것입니다. 부디 마음에 들어 하셨으면 좋겠습니다.”계연수는 함 안의 송자관음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저런 관음상이라면 창고 안에 이미 몇 개나 들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네가 간직하거라. 네게도 필요한 물건일 테니.”손보경의 표정이 잠시 굳었다가 이내 수줍은 빛을 띠었다.“저는 아직 이릅니다.”그러고는 다시 함을 계연수 앞으로 밀어놓았다.“제 작은 성의이니 부디 받아주십시오, 숙모님.”계연수는 손보경의 표정을 잠시 살폈다. 어차피 손보경은 심씨 가문 사람들에게 빠짐없이 선물을 돌린 터였다. 자신이 이것 하나를 받든 말든 달라질 것도 없었다. 더는 사양하며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던 계연수는 용춘에게 눈짓해 함을 받아두게 했다.그제야 손보경은 안도한 듯 숨을 내쉬었다. 이어 곁에 있던 시녀들을 물리고 계연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숙모님과 허심탄회하게 몇 말씀 나누어도 되겠습니까?”계연수 쪽에서도 방 안에 용춘만 남아 있었다. 그녀는 엷게 웃으며 답했다.“편히 말해보거라.”그러자 손보경의 눈시울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얼굴에도 애처로운 기색이 어렸다.“심씨 가문 사람들이 저를 태후마마의 사람으로 여기고,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계연수는 아무 말 없이 차를 한 모금 마셨다.손보경은 은근히 계연수의 반응을 살폈다. 먼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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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6화

“제가 처음 경성에 올라온 것은 좋은 혼처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경성에서 가장 훌륭한 사내에게 시집가고 싶었고, 제 앞날만큼은 제 뜻대로 정하고 싶었습니다.”손보경은 계연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언젠가는 숙모님께서도 오늘 제가 드린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계연수는 손보경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손보경에게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차분한 기색이 있었고, 그런 침착함이 그녀를 더욱 영민해 보이게 했다.사람의 마음을 얻는 법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약한 면과 힘겨운 처지를 솔직히 드러내 상대의 연민을 자아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마음을 열게 하는 데 능숙했다.그러나 계연수 역시 이미 숱한 연회를 거치며 안채 여인들의 교제 또한 하나의 학문임을 깨달은 뒤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아직 가까워지지도 않은 사이에 깊은 속내부터 털어놓는 일이었다.그렇다고 손보경의 말에 담긴 막막함까지 느끼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심서준도 태후가 손보경을 그다지 아끼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진심으로 아꼈다면 이토록 껄끄러운 심씨 가문에 시집보내지는 않았을 터였다. 결국 손보경의 말대로, 그녀 역시 한낱 바둑돌에 불과한 셈이었다.계연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어찌 되었든 이미 이 가문에 시집왔으니, 앞으로는 잘 살아가도록 하거라.”돌아온 것은 그 짤막한 한마디뿐이었다. 손보경은 말없이 눈길을 내리깔았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앞으로도 종종 숙모님을 찾아뵙고 이야기를 나누어도 되겠습니까?”계연수는 손보경을 바라보며 대답했다.“오고 싶다면 언제든 와도 된다. 다만 이제 곧 연말이라 내 손으로 챙겨야 할 일이 갈수록 많아질 테니, 오래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는 어려울 듯하구나.”완곡한 거절이었다. 손보경도 그 뜻을 알아들었지만, 물러서지 않고 미소를 지었다.“잠시라도 숙모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저는 그것만으로도 기쁠 것입니다.”계연수는 손보경이 거듭 자신을 숙모라 부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몇 번을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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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7화

어느덧 해가 저물어 연말이 다가왔고, 며칠 전에는 첫눈도 살풋 내렸다. 올해는 예년보다 눈이 일찍 찾아온 편이었다.연말이 가까워질수록 계연수의 손을 거쳐야 할 일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납팔절(臘八節: 음력 12월 8일에 한 해의 풍요와 안녕을 기원하며 여러 곡물을 넣고 끓인 납팔죽을 먹고 나누는 전통 명절)을 이틀 앞둔 이날도 작은 연회와 백성들에게 죽을 나누어주는 일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주방의 장 관사에게 필요한 사항을 하나하나 일러준 뒤에도 잠시 숨을 돌릴 틈조차 없었다.문간에는 각지의 장원과 점포 관사들이 올린 방문첩이 세 치나 쌓여 있었다. 연말을 맞아 장부를 바치러 온 이부터 앞으로의 일을 지시받으려는 이, 은전을 청하러 온 이까지 저마다 사정이 달랐다. 어느 것 하나 계연수의 확인을 거치지 않고 넘길 수는 없었다.계연수는 우선 장원에서 올라온 이들부터 만나보기로 했다.가장 먼저 들어온 사람은 임산장원의 오 장두였다. 쉰이 넘은 그는 방 안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엎드려 절을 올렸다. 다시 일어날 때는 무릎에서 우두둑 소리까지 났다.계연수가 자리를 권했지만 오 장두는 감히 의자에 깊숙이 앉지 못했다. 엉덩이 반쪽만 겨우 걸친 채 두 손을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모습은 몹시 긴장한 듯 보였다.계연수를 직접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눈앞의 계연수는 젊고 온화해 보였지만, 일을 처리할 때만큼은 빈틈이 없고 작은 실수도 허투루 넘기지 않는다는 소문을 익히 들은 터라 마음이 조마조마했다.계연수는 평소 장두들을 직접 만나는 일이 드물었다. 새로 마련한 규정에 따라 단계마다 담당자를 두었기에, 그녀는 중요한 기록과 장부만 확인하면 되었다. 장원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장두가 이 먼 곳까지 직접 찾아올 일은 없었다.이날 계연수는 모란무늬가 놓인 두툼한 분홍빛 깃옷을 입고, 두 손으로 도금한 손화로를 감싸 쥐고 있었다. 잔뜩 긴장한 오 장두를 바라본 그녀가 되도록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늘은 날이 몹시 추우니 우선 따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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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8화

계연수는 나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예전에 백씨가 살림을 맡았을 때는 실제로 그리 고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원이든 주방이든 세세한 장부까지 일일이 대조하지 않고 얼추 넘어갈 만하면 그대로 두었으니 말이다. 백씨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 틈에서 제 몫을 얼마나 챙길 수 있느냐였다. 주방 장부는 수지조차 제대로 맞춰놓지 않았으니, 힘들 일도 별로 없었을 터였다.그러나 계연수는 아랫사람들이 눈을 속이고 사실을 감추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가문에 뿌리내린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으려면 어느 곳 하나 허투루 넘기지 않고 직접 살펴야 했다.지금부터 삼오 년만 이렇게 기틀을 단단히 잡아두면 그 뒤로는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주방과 장원의 사람들이 그녀의 일 처리 방식에 익숙해지고, 새로 세운 규정이 당연한 관행으로 자리 잡게 된다면 굳이 일일이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아서 따르게 될 테니까.계연수는 이런 생각을 용춘에게 낮은 목소리로 몇 마디 들려주었다. 그러다 납팔절이 지나면 연말 공물을 비롯해 또 한바탕 일이 밀려들리라는 생각에 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그때 용춘이 건너편 큰백부 댁의 이야기를 꺼냈다.“손보경 아가씨도 참 딱합니다. 시집오신 지 며칠 되지도 않아 심한율 도련님께서 명을 받고 경성을 떠나셨다가 어제야 돌아오셨다는데, 아직도 아가씨의 처소에는 들르지 않으셨답니다.”그 탓에 손보경이 부군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소문이 벌써 이쪽까지 퍼져 있었다.계연수는 그들 부부의 일에 관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다만 그런 소문이 집안에 퍼지는 것은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단호하게 말했다.“그런 말은 더 퍼뜨리지 말거라. 누군가 일부러 흘리는 소문인지도 모르지 않느냐.”계연수의 표정이 한층 엄중해졌다.“태후마마께서 직접 내려주신 혼사다. 손보경이 심씨 가문에서 박대받는다는 말이 퍼지면, 훗날 우리를 옥죌 빌미가 될 수도 있어. 내일 아침 어머님께 가서 이 일을 말씀드려야겠구나.”그 엄한 목소리에 용춘은 얼른 입을 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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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9화

계연수는 조금 전까지 누워 있었던 탓에 옷자락이 흐트러지고 군데군데 구김까지 져 있었다. 미처 매무새를 다듬기도 전에 심서준이 방 안으로 들어섰다.바깥의 찬 기운을 고스란히 묻혀온 그가 가까이 다가서자 서늘한 냉기가 훅 끼쳐왔다. 심서준은 익숙한 손길로 계연수를 안아 올려 제 무릎 위에 앉혔다.방 안에는 화롯불이 넉넉히 피워져 있어 훈훈했다. 심서준은 계연수의 미간에 어린 피로를 알아보고 손끝으로 그곳을 부드럽게 쓸었다.“요 며칠 많이 고단했겠구나.”오늘은 심서준이 평소보다 일찍 돌아온 터라, 창밖에는 아직 날이 훤했다.계연수는 나른하게 고개를 저었다.“괜찮습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심서준도 연말이면 부저 안의 일이 얼마나 많아지는지 알고 있었다. 그는 계연수의 등을 가볍게 토닥이다가 품 안에서 귀고리 한 쌍을 꺼내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너를 위해 새로 맞춘 것이다.”심서준은 이따금 이렇게 새로운 장신구를 가져다주곤 했다. 이것이 계연수를 아끼는 그만의 방식인 듯했다. 그가 건네는 장신구는 하나같이 값비싸고 정교했으며, 어느 것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계연수는 예전에 장신구를 그만 가져오라고 몇 번이나 말한 적이 있었다. 몸이 하나뿐인데 그 많은 것을 언제 다 착용하겠느냐는 이유였다.얼마 전 연회에서도 최은조와 최민정이 그녀의 장신구는 한 번도 같은 것을 본 적이 없다며, 가진 은자를 모두 치장하는 데 쓰는 게 아니냐고 웃으며 놀렸다. 뒤에서는 계연수가 외모를 꾸미는 데만 공을 들여 심서준의 혼을 빼놓았다고 수군대는 부인들도 있다고 했다.그 이야기는 최민정이 몰래 전해준 것이었다. 물론 자신이 그 자리에서 대신 따끔하게 쏘아붙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계연수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심서준은 한번 선물한 장신구를 함 속에 넣어둔 채 착용하지 않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반드시 몸에 걸친 모습을 제 눈으로 확인해야 했고, 연회에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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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0화

조 점주는 계연수가 자신의 이름을 명부에 올리게 하자 얼굴에 기쁜 빛을 띠었다. 곧이어 더욱 공손한 태도로 목록 한 장을 받들어 올렸다.“부저의 여러 부인께 명절 인사로 올릴 옷감 목록입니다. 둘째 부인께서 살펴봐 주십시오.”계연수가 목록을 받아 펼쳤다. 심씨 노부인에게는 짙은 청색 바탕에 여덟 개의 둥근 무늬를 짜 넣은 비단, 큰부인에게는 짙은 갈색의 각사 비단, 큰도련님의 부인에게는 연보랏빛 장화 비단, 둘째 도련님의 부인에게는 은은한 붉은빛의 견사가 배정되어 있었다. 그 밖에도 부저 안의 각 처소를 맡은 이들에게 돌아갈 옷감까지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하나같이 질 좋은 옷감이었으며, 각 방의 서열과 신분에 맞추어 물목도 분명하게 나뉘어 있었다.한 해 동안 수확이나 장사가 잘된 장원과 점포에서 각 방에 선물을 올리는 것은 오랜 관례였다. 그해의 수확과 수익에 따라 품목만 해마다 달라질 뿐이었다.이뿐만 아니라 점포의 연간 수익 중 일부도 각 방에 배당되었고, 건너편 큰백부 댁까지 몫을 받았다. 그야말로 온 집안이 함께 기뻐하는 때였다.다만 조 점주가 맡은 가게는 심씨 가문의 공용 재산이 아니라 심서준 개인의 점포였다. 이번에 각 방에 물건을 나누기로 한 것도 계연수가 심서준과 의논하여 정한 일이었다. 물량은 많지 않았지만 집안의 인심을 두루 챙겨두면 훗날 일을 처리할 때도 한결 수월할 터였다.계연수는 목록을 모두 확인한 뒤 그대로 준비하라고 지시했다.조 점주는 환히 웃으며 다시 한번 예를 올렸다. 그러고는 문가까지 물러났다가, 문득 생각난 일이 있는 듯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둘째 부인께 여쭙고 허락을 구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계연수는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물었다.“무슨 일인가?”조 점주가 잠시 말을 고른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연말을 맞아 각 점포에서 오래 일해온 일꾼들에게 은전을 내려주셨으면 합니다. 예년에는 한 사람당 은자 두 냥과 옷감 한 필씩을 내렸습니다만, 올해는 장사가 잘되었으니 엽전 한 꿰미씩 더 얹어주고 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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