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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331 - Chapter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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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1화

“그날 나랑 부딪힌 사람, 태하 너였어?”강지현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응, 나야.”김태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웃었다. 그녀의 흔들리는 눈빛이 그의 눈동자에 그대로 비쳤다.“첫눈에 바로 알아봤어. 평소엔 꽤 차분해 보이는데, 왜 그렇게 덤벙대? 그때 네가 들이받아서 가슴 꽤 아팠거든.”타박하는 말인데도 어딘가 장난스러운 기색이 묻어 있었다.특히 ‘가슴’이라는 말을 일부러 더 낮추어 말하는 바람에, 강지현은 그 순간이 떠오르며 괜히 온몸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비 와서 그랬어. 정신이 없기도 했고, 어두워서 잘 안 보이기도 했고. 너...”강지현은 손을 뻗어 그의 가슴에 살짝 닿았다.“지금은 안 아파? 내가 좀 주물러 줄까?”그 말에 김태하가 소리 내 웃었다. 맑게 터지는 웃음이 괜히 사람 마음을 흔들었다.“지금은 안 아프지.”그는 장난스럽게 움직이던 그녀의 손을 잡아 쥐었다.“그날 바로 안 간 건 사실이야. 차에 올라서도 한참 너를 봤거든.”“몰래 봤어?”“연달아 두 번이나 마주쳤고, 또 기억에 남은 여자는 너 하나뿐이니까.”그날 김태하는 그냥 떠나지 않았다.비를 피하고 있는 강지현을 보고 사람을 시켜 우산을 사다 주라고 했었다.하지만 우산이 도착하기도 전에, 강지현은 다시 빗속으로 뛰어들었다. 길 건너편에서 폐지를 줍던 노인이 넘어지며 짐을 다 쏟은 걸 본 것이다.강지현은 그걸 도우러 간 것이었다.짐을 절반쯤 정리했을 때,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다가와 함께 도와주었고 두 사람에게 우산까지 건넸다.그때 강지현은 그들이 왜 나타났는지 조금 의아했었다.“아, 그 사람들, 태하 네가 보낸 거였구나?”이제야 이해가 된 듯 강지현이 말했다.‘그래서 돈을 받지 않았던 거였구나.’김태하는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그때 넌 일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던 모양이네.”“맞아.”강지현은 떠올려 보니, 자기가 꽤 눈치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더 기대 섞인 눈으로 물었다. “그럼 세 번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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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2화

그는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은 채,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는 숨을 가볍게 들이켰다.“그만 좀 움직여. 이러다 진짜 상처 벌어지겠어. 조금 있다가 다시 병원 가는 게 낫지 않을까?”강지현은 김태하가 더 무리할까 봐 걱정됐다.방금까지의 일만으로도, 얼굴이 훨씬 더 창백해져 있었다.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었지만 억지로 버티고 있는 건 아닌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벌어지면 벌어지는 거지. 병원 안 가. 그냥 너랑 있고 싶어.”그 한마디에 강지현의 표정이 굳었다.그녀는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돌아섰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그를 똑바로 노려봤다.“그렇게 몸 함부로 쓰면 나 진짜 너 안 봐.”“그런 뜻으로 한 말 아닌데.”강지현이 화난 걸 보자, 김태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하지만 그녀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그는 늘 자기 몸보다 주변 사람이나 상황을 먼저 생각해왔고 주변에도 이렇게까지 화를 내주는 사람이 없었다.“무슨 뜻이든 상관없어. 지금 나 기분 안 좋아. 그러니까 지금부터는 말 잘 듣고 의사 말 그대로 다 따라. 알겠어?”강지현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완전히 화를 낼 수가 없어서인지, 말투엔 달래는 기색도 섞여 있었다.김태하가 뭐라 더 말하려다, 강지현이 눈으로 한 번 제지하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태하야.”그녀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내려앉았다.“나 걱정하게 하지 마. 응?”“알았어.”부드럽게 달래면서도 단호하게 밀어붙이는 그 방식이 그 어떤 명령보다 더 잘 통했다.김태하는 결국 그녀에게 몸을 맡긴 채, 부축을 받아 침실로 돌아가 누웠다.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의료진이 장비를 들고 급히 도착했다. 어제 은주희가 부른 개인 의료팀까지 합류한 상태였다.검사가 진행되는 내내, 강지현은 긴장한 얼굴로 김태하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붕대 아래로 비치는 붉은 자국들 사이로 아직도 미세하게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그 흉터와 봉합 자국을 보는 순간, 가슴이 다시 조여왔다.손끝에 힘이 저절로 들어갔다.“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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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3화

김태하는 이미 많이 지친 상태였지만 그래도 옅게 웃으며 말했다.“맞아요. 저 빨리 나아야죠.”평소라면 두 어른이 결혼 얘기나 손주며느리 얘기로 놀려도, 김태하는 대충 웃고 넘기거나 아예 받아치지도 않았다.그런데 이제는 진짜로 아내가 생기자 말투부터 달라졌다.역시 사람은 결혼을 해야 바뀌는 건지, 할아버지나 손자나 하나같이 똑같았다.다만 김태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없었다. 부드러울수록 더 약하게 들려서, 오히려 듣는 사람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은주희는 두 사람의 사이가 이렇게 좋은 걸 보자, 안도감에 눈물이 자꾸 차올랐다.그녀는 얼른 눈가를 훔치며 지순옥의 손을 잡았다.“어머니, 우린 가요. 여긴 지현이한테 맡기면 될 것 같아요.”지순옥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돌렸다.지금 두 사람에게 필요한 건 서로였지,어른들의 걱정은 그걸 대신해 줄 수 없었다.“지현아, 그럼 태하 좀 부탁할게.”“할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 태하 돌보는 거, 하나도 힘들지 않아요.”“필요한 거 있으면 최 비서한테 말하거나, 나나 네 어머니한테 바로 전화해. 우린 언제든 있으니까. 너도 무리하지 말고 좀 쉬어.”지순옥은 몇 마디 더 당부한 뒤 김태하를 한 번 바라봤다.김태하는 말없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할머니와 은주희가 자리를 비켜준 덕분에 생긴 이 시간에 그는 무척 만족스러웠다. 은주희를 바라보는 눈에도 고맙다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모두가 나가고 나자, 방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강지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김태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강지현이 웃으며 말했다.“나 안 가. 먹을 거 좀 가져올게. 약 먹어야 하잖아.”“응.”김태하는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놓았다. 바로 앞에 있는데도 한 발짝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가슴 깊숙이 묻어뒀던 불안과 집착이 또다시 고개를 들려 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그 생각을 눌러버렸다.이제는 다르다.그는 이미 그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났다. 강지현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거고, 그녀 앞에서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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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4화

강지현은 더는 듣고 있을 수 없어 급히 말을 끊었다.김태하는 희미하게 웃으며 짧게 대답했다.“나, 원래 그런 거 안 믿어. 귀신이나 그런 거.”“알아. 전에 말해준 적 있잖아.”강지현이 한결 차분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 둘이 같이 공포영화를 보다가, 김태하가 그렇게 말했었다.“그래도 네가 기도한 거라면, 나도 내 수명 써서라도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김태하!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강지현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막 생사의 고비를 넘긴 사람에게서 그런 말은 더더욱 듣고 싶지 않았다.“근데 너도 그때 말했잖아.”김태하의 목소리가 점점 흐려졌다.“그건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거지.”강지현은 그제야 자신이 말려든 걸 깨닫고, 입술을 꾹 깨물었다.그리고는 작게 덧붙였다.“아니야. 그런 말 한 적 없어.”말을 마치고 나서야, 김태하가 조용해진 걸 느꼈다.고른 숨소리와 규칙적인 심장 박동.그는 이미 깊이 잠든 상태였다.그가 완전히 잠든 걸 확인한 뒤, 강지현은 이불을 덮어주고는 곁에 기대었다.졸음이 몰려올 정도는 아니라서, 그녀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다 괜히 속눈썹을 하나, 둘 세어봤다. ‘김태하 속눈썹, 진짜 많네.’한편, 국내.엄경미는 김태하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당황했다.그쪽이라면 일을 깔끔하게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곧바로 암호화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이게 무슨 상황이야? 당신들 사람, 이 정도밖에 안 돼? 난 확실하게 끝내달라고 했잖아.”다짜고짜 쏟아지는 질책에, 전화 너머의 남자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시간이 너무 촉박했어. 아직 손도 못 댔어.”“뭐라고?”엄경미의 얼굴이 굳었다.“아직 아무것도 안 했다고?”그럼 김태하 사고는 단순한 우연이라는 건가?“알아서 처리할 거야. 대신 하나만 알아둬. 당신은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할 자격 없어.”말을 마치자마자, 상대는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엄경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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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5화

하지만 이때 엄경미는 주단우에게 신경 쓸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막 감았던 눈을 번쩍 뜨며 물었다.“뭐라고?”주시언이 오래 붙잡혀 있을 거라곤 애초에 생각하지 않았다.임씨 가문 수로는 많아야 한 번 압박하는 게 고작이고,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더라도 주병찬 쪽에서 손해를 좀 감수하면 결국 풀려날 게 뻔했다.그래도 이렇게까지 빠를 줄은 몰랐다.그녀는 일부러 임씨 가문을 자극해, 주병찬과 계속 맞붙게 만들 생각이었으니까.“주시언, 어젯밤에 이미 몰래 귀국했습니다.”주단우가 덧붙였다.“주병찬 쪽 계속 주시하고 있었는데, 일부러 숨기는 분위기였습니다. 정보도 다 막혀 있고, 집에도 드나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이 마침 주병찬 기사랑 연결돼 있어서, 그쪽 통해 알아냈습니다.”엄경미의 표정이 한층 더 굳어졌다.무의식적으로 탁자를 ‘탁’ 치더니 기가 막힌 듯 웃음이 새어 나왔다.“주병찬, 주시언...”그제야 주병찬이 결국 강지현 편에 선 이유가 보였다.주씨 가문 사람들, 이제는 하나도 믿을 수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그녀도 더는 정에 얽매일 생각이 없었다. “주병찬이 선을 넘었으니 저희도 움직일까요?”주단우가 낮게 물었다.엄경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눈빛을 가라앉히며 말했다.“당연하지. 나 며칠 해원시 좀 떠나야겠어.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넌 회사로 돌아가서 강지현 계속 주시해.”“네.”주단우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늦은 밤, 이도운을 비롯한 이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이규진의 병실에 모여 있었다.막 의식을 되찾긴 했지만 이규진의 상태는 심각했다. 의식만 겨우 돌아왔을 뿐, 말도 못 하고 몸도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의사 말로는 뇌간에 광범위한 경색이 생겨, 목숨은 건졌지만 회복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그 한마디에, 이씨 가문은 그대로 무너져 내린 분위기였다.문수정은 하루 종일 울었고 옆에 있던 이민지도 짜증 섞인 불만을 쉬지 않고 쏟아냈다.이도운과 백하린이 뒤늦게 병실에 들어서자, 이민지가 곧장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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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6화

“백하린! 당장 나가!”문수정은 더는 참지 못했다. 딸이 당하는 걸 보자마자 백하린에게 소리쳤다.이도운이 백하린을 데리고 나가려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버티며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말을 보탰다.“어머님, 오늘 먼저 시비 건 건 어머님 딸이에요. 저는 그냥 아버님 보러 온 건데요. 나갈 거면 그쪽이 먼저 나가야죠.”“백하린!”이도운이 말을 듣지 않자 버럭 소리쳤다.“그만 좀 해. 아버지도 여기 계신데, 아무리 억울해도 좀 참을 수 없어?”“왜 내가 참아야 하는데.”백하린은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놔!”이민지도 가만있지 않고 맞서려다가, 말리던 진태웅과 거의 몸싸움 직전까지 갔다.진태웅은 이민지 성격을 잘 알았다. 더 커지면 체면만 구긴다고 판단하고, 억지로 끌어안다시피 해서 병실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한쪽이 나가고 나서야 이도운도 손을 놓았다. 그래도 눈빛으로는 강하게 경고를 던졌다.백하린 역시 감정이 완전히 가라앉은 건 아니었지만, 이민지만큼 막 나가지는 않았다. 금방 표정을 추스르더니 말없이 가져온 물건을 한쪽에 내려놓고 이규진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아버님, 걱정 마세요. 집은 저랑 도운이가 잘 보고 있으니까요. 치료 잘 받으시고 얼른 나으세요.”이규진의 눈동자가 살짝 움직였다. 숨도 조금 가빠졌다. 뭔가 말하려는 듯했지만 입이 제대로 떨어지지 않았다.의식은 또렷한 상태였다. 아까 이민지와 백하린이 거의 싸울 뻔했을 때도, 그의 손은 침대 옆에서 계속 떨리고 있었다.지금도 얼굴만 봐도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게 티 났다.백하린의 말은 분명 진심이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더 씁쓸하게 들릴 뿐이었다.“집안 꼴이 이게 뭐냐...”권미숙이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더는 못 보겠다는 듯 한마디를 남기고 부축을 받으며 병실을 나섰다.이도운 옆을 지나며 차갑게 한 번 쏘아보자, 그는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하지만 권미숙은 이미 기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집안에 이런 일까지 겹치고 며칠째 먹지도 자지도 못해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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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7화

“여기 간병인들이 다 해주는데, 저더러 뭘 더 하라는 거예요?”백하린은 낮게 말했지만 태도는 전혀 물러서지 않았다.문수정이 일부러 시비 거는 걸 알고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다시 사과를 집어 들었다.“어머니, 사과 드실래요?”문수정은 순간 말문이 막혀 속이 더 부글거렸지만, 더 이상 말싸움을 이어갈 힘도 없었다.깊게 숨을 들이쉰 뒤, 의미심장하게 말했다.“사람은 말이다, 비교를 해봐야 아는 거야. 뭐가 제대로 된 건지, 뭐가 형편없는 건지.”직접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누굴 겨냥한 건지 뻔한 말이었다.백하린이 바로 발끈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지금 그 말, 무슨 뜻이에요? 강지현이 낫다는 거예요? 저 비꼬는 거죠?”“난 아무 말도 안 했는데?”문수정이 코웃음을 쳤다.“강지현이 낫다고요? 낫긴 뭐가 좋아요. 이씨 집안을 이 꼴로 만든 게 누군데. 도운이랑 집안에서 그 정도로 챙겨줬는데, 보복할 때 조금이라도 봐준 적 있어요? 그렇게 독하고 음흉한 여자를 어떻게 좋다고 생각해요?”백하린이 가장 못 견디는 말이 바로 ‘강지현이 낫다’는 소리였다.지금까지 겪은 고생도 다 강지현 때문인데, 이씨 집안과 이도운을 위해 자기가 얼마나 버텨왔는데 결국 비교 대상이 강지현이라니.이도운의 얼굴이 굳어졌다.그는 거칠게 백하린의 팔을 잡아끌었다.백하린이 반응할 틈도 없이 그대로 병실 밖으로 끌려 나갔다.“이도운!”세게 잡힌 탓에 아팠지만 이도운은 전혀 봐주지 않았다. 병실에서 시작해 병원 입구까지 그대로 끌고 나갔다.사람들이 오가는 와중에도, 백하린이 아무리 버티고 소리쳐도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병원 밖에 도착해서야 그는 차 키를 던지듯 건넸다.“집에 가. 앞으로도 올 필요 없어. 여기 너 필요 없어.”“이도운!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당신 엄마랑 이민지가 나한테 어떻게 대하는지 안 보여?”백하린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일부러 문수정한테 무례하게 굴려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당하기만 할 수도 없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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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8화

하지만 이도운은 알고 있었다. 강지현이 자신을 위해 기꺼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날카로움을 감추며, 모든 걸 쏟아부어 왔다는 걸.강지현의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는 법이 없었지만 그가 받아본 감정 중 가장 깊고도 다정한 것이었다.가질 땐 모르지만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가치를 알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들은 대개 그렇다.이도운이 병실로 돌아오자, 백하린이 없어진 덕분인지 문수정의 표정도 한결 풀려 있었다. 숨 쉬는 것조차 편해진 듯했다.이규진은 계속 이도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뭔가 전하고 싶은 눈치였다.이도운은 아버지의 속뜻을 알고 있었다. 지금 가장 궁금한 건 회사 상황일 터였다.하지만 그는 차마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지금 그들은 회사에서 실권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강지현이 어디서 자금을 끌어왔는지, 이씨 집안 사람들의 지분을 거의 바닥까지 희석시켜 버렸고 수십 년 쌓아온 재산도 사실상 날아간 거나 마찬가지였다.그 정도면 보복도 끝났겠거니 했는데, 며칠 사이에 이경 그룹의 핵심 사업까지 무너져 내렸다.핵심 인력과 거래처는 거의 다 빠져나갔고 지금 회사에는 빚만 조금 남은, 사실상 껍데기뿐이었다.이대로 가면 결말은 하나였다.파산.하지만 이도운에게는 회사에 손댈 권한조차 없었다. 뒤집어볼 기회 자체가 없었다.회사까지 무너지면 이씨 집안도 그 빚에 그대로 휘말리게 된다.“아버지, 치료에만 집중하세요. 강지현이 회사로 돌아갔으니까, 상장 가능성은 아직 있어요. 회사가 좀 안정되면 그때 방법을 찾아보죠.”그 말을 듣고 나서야 이규진의 호흡은 조금 가라앉았다.이도운은 한동안 병실에 머물다가, 이규진이 잠든 뒤에야 자리를 떴다. 문수정은 밤을 지키겠다며 남았고 문 앞까지 그를 배웅했다.“회사 정말 괜찮은 거 맞니?”걱정스레 묻는 말에, 이도운은 고개를 피하며 말했다.“어머니는 아버지나 잘 챙기세요. 회사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정면으로 답하지 않은 것 자체가 이미 답이었다.무슨 수를 낸단 말인가. 이제 와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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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9화

그녀가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남아 있다면 지금 이 순간도 훨씬 덜 괴로울 텐데.완전히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그게 차라리 나았다.“내 생각엔 말이야, 이왕 이렇게 된 거 백하린이랑은 깔끔하게 이혼해. 애는 걔가 데려가면 되고. 강지현이 애 못 낳는 것도 아니잖아. 나중에 다시 낳으면 되지.”“그래도 말이 안 통하면 아예 밀어붙여. 여자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 아무리 차가워도 계속 들이대면 결국 무너지게 돼 있어.”“그리고 강지현이 이번에 벌인 일은, 회사만 되찾고 나면 그때 가서 천천히 따져도 늦지 않아.”문수정은 이제 확신하고 있었다. 이도운 인생에서 강지현과 백하린, 이 두 여자는 끝까지 얽혀 있을 거라는 걸.그렇다면 선택은 하나였다.강지현.이도운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문수정의 터무니없는 말에도 그저 대충 넘겼다.하지만 그날 밤 내내, 그 말들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이도운은 새벽까지 차 안에 앉아 있었다.강지현은 그의 번호를 차단했고 모든 연락 수단을 끊어버렸다. 메시지는 전송되지 않았고 친구 요청도 닿지 않았다. 그녀의 일상조차 더는 엿볼 수 없었다.이도운도 마음을 정리해보려 했다. 둘 사이를 차분히 되짚어보려 했지만 생각은 금세 다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특히, 이경 그룹 앞에서 보였던 강지현의 냉정한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더 그랬다.그는 휴대폰 앨범을 열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예전 사진을 눌렀다.가장 많은 건 대학 시절이었다. 그때의 기억이 가장 또렷했다.결혼 후 지난 2년은 강지현은 늘 바빴고 자신도 회사 일에만 매달렸다. 둘만의 시간을 제대로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다.한 번만, 단 한 번만 다시 선택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모든 잘못을 지워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지금의 자신이 싫었다. 강지현처럼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었다.날이 밝고 나서야, 이도운은 집으로 돌아왔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용인들도 막 일어나 아침 준비조차 안 된 상태였다.그를 보자마자 무엇을 드실지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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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0화

어쨌든 회사만 남아 있으면 이씨 집안이 완전히 무너지진 않는다. 이 정도 대가는 이도운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강지현이 회사를 사실상 껍데기로 만들어버리고 직원과 거래처까지 대부분 빼돌린 상황이었다.이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권미숙은 도저히 이 일을 삼킬 수 없었다. 어젯밤, 남편 영정 앞에서 속죄까지 했다.그리고 이 기금을 이도운에게 넘기기로 결국 결심했다.이규진은 이미 쓰러졌고 지금 이씨 집안을 살릴 수 있는 건 이도운밖에 없었다.“그래. 이 돈 가져가서 다시 시작해. 회사를 다시 일으키든, 담보 잡아서 자금 끌어오든 방법은 있어. 강지현 그 애, 집안도 변변치 않잖아. 비즈니스 업계에서 오래 버티지도 못할 거다. 네가 마음만 먹으면 복수할 수 있어.”권미숙은 세간의 말을 믿지 않았다. 회사가 강지현 덕에 굴러갔다는 소리 같은 건 더더욱.오히려 강지현이 이씨 집안에 붙어서 실력을 키운 거라고 생각했다.집안 걸 가져간 것도 모자라, 이도운과 백하린 문제까지 세상에 떠들어대며 숨통까지 조여왔다.그런 독한 애를 자기가 왜 그렇게 감싸고 돌았는지. 지금 생각하면 예전에 눈이 멀었던 것 같았다.“하지만 할아버지 유언이...”이도운은 잠깐 희망을 품었다가 곧 현실적인 문제를 떠올렸다.“내가 관리 책임자야. 너랑 백하린이 이혼만 하면 이 기금은 네 거다.”그 말에, 이도운의 마음이 다시 흔들렸다. 문수정도, 권미숙도 모두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어쩌면 이혼이 지금 상황에서 유일한 출구일지도 몰랐다.“할머니, 너무하신 거 아니에요!”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문이 거칠게 열리며 백하린이 들어왔다. 그녀의 눈은 벌겋게 충혈돼 있었고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저, 가족들 위해서 계속 참고 있었어요. 근데 이제 와서 다 같이 짜고 우리 모자만 몰아붙이시는 거예요?”집안이 이렇게 됐는데 그녀도 편할 리가 없었다.권미숙과 이도운이 잠을 설친 것처럼 백하린 역시 마찬가지였다.밤새 이도운을 기다리며 메시지까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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