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가짜 결혼, 진짜 신분 / Chapter 341 - Chapter 350

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341 - Chapter 350

476 Chapters

제341화

아무런 반응이 없는 남자를 보며 백하린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정말... 나한테 이럴 수 있어?”“지금 우리 집안은 그 돈이 절실해.”이도운은 무거운 목소리로 대답했지만 차마 그녀와 시선을 맞추지 못했다.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고, 백하린은 허탈한 웃음을 터뜨렸다.“돈 때문이야? 아니면 강지현 때문이야?”그가 철저히 실리를 쫓는 사람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기금도, 강지현도 아마 둘 다 손에 넣고 싶을 것이다.이제는 이혼하지 않겠다고 매달린다 해도 믿을 자신이 없었다.그래서일까, 이제 비겁한 거짓말조차 하기 귀찮아진 모양이었다.“...미안해.”이도운은 눈을 질끈 감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그가 강지현을 찾아가 매달렸던 그 날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상태였다.“보상은 충분히 해줄게. 네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다.”“보상?”백하린의 입술 사이로 서늘한 조소가 흘러나왔다.동시에 그녀의 눈동자 속 마지막 생기마저 자취를 감췄다.무언가를 얻기 위해 절실히 발버둥 칠수록 가장 소중한 것부터 잃게 되는 법일까?아니면, 인과응보인 걸까?기억은 돌연 스무 살 그해로 거슬러 올라갔다.유학 시절, 치기 어린 허영심이 불러온 빚더미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차마 부모님께 고백할 용기가 없어 마지막으로 발을 들인 곳이 바로 밤의 세계였다.‘유일한 여대생’이라는 수식어는 그녀를 금세 최상급의 상품으로 만들었고, 곧 상당한 재력가인 한 노신사를 소개받았다.처음에는 그저 곁을 지키며 잔을 채우는 것뿐이었다.하지만 풋풋한 생기에 매료된 노신사는 매일같이 찾아왔고, 그가 내미는 막대한 돈은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상대방은 마지막 만남을 제안하며 그녀에게 값을 부르라고 했다.백하린은 그 질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치열한 내면의 갈등 끝에 결국 타협을 선택하고 말았다.다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이 선택이 훗날 하늘이 던진 가장 가혹한 농담이 되어 돌아올 줄은.그 무렵,
Read more

제342화

백하린의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난데없는 질문의 의중을 파악하려 애썼지만, 이내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침묵을 택했다.이도운은 어린 시절부터 영민함이 남달랐다.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무렵, 그는 이미 진학과 인맥이라는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상류층 자제들의 사교 모임을 드나들었다.이도운과 어울리는 무리는 주로 해원시 명문대 졸업을 앞둔 이들이었고, 그중에는 백하린의 친구도 섞여 있었다.백하린은 그 모임에서 이도운에게 첫눈에 반했다.이후 친구를 통해 다방면으로 정보를 수집하며 그가 어떤 스타일의 여성을 좋아하는지 파악하려 애썼다.그런데 조사하면 할수록 두 사람의 인연이 보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이도운이 여섯 살이던 해부터 운명의 톱니바퀴는 이미 돌아가고 있었다.그해, 해원시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수십 명의 아이를 이끌고 떠나는 세계 설산 탐험 캠프로 들썩였다.천문학적인 참가비 탓에 소수의 부유층 자제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프로그램이었다.하지만 출발 직전 결원이 생기자, 주최 측은 교육국과 손을 잡고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었다.올림피아드 수학 경시를 통해 선발된 상위 열 명의 수재에게 참가비 전액 면제라는 기회를 준 것이다.백하린은 바로 그 행운을 거머쥔 아이 중 한 명이었다.여정은 호화로움의 극치였으나, 설산 탐험 도중 예상치 못한 사고가 발생했다.대열에서 이탈한 한 소년이 실종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산기슭 텐트에서 초조한 며칠이 흐르고, 돌아오는 길에는 구조 헬기까지 동원될 만큼 소동은 컸다.당시 열두 살이었던 백하린에게 그 일은 꽤 강렬한 기억으로 남았다.집으로 돌아온 뒤 뉴스까지 챙겨 보았는데, 길을 잃었던 소년은 같은 팀원의 등에 업혀 극적으로 구조되었으며 병원에서 이틀간 안정을 취한 뒤 무사히 퇴원했다는 소식이었다.그리고 그 소년이 바로 이도운이었다.백하린은 이도운이 자신을 구해준 소녀를 잊지 못하고 줄곧 그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하지만 소녀는 병원까지 동행하지 않았고, 귀국 직
Read more

제343화

“네가 어떻게 날 찾아냈는지, 그때 나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이젠 기억나지 않아.”백하린은 자신이 그토록 갈망하던 환영이었고, 생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유일한 온기였다.그 감각은 어떤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었다.물론, 지금 눈앞에 있는 백하린조차 예외는 아니었다.기이하게도 그녀가 실체가 되어 나타난 순간부터 마음속을 지배하던 강렬한 갈증은 마법처럼 증발해 버렸다.이도운은 이제야 깨달았다.지난 10년 동안 모든 것을 내던지며 매달렸던 그 절절한 사랑이 실은 우스꽝스러운 집착에 불과했음을.인간이 끝내 극복하지 못하는 대상은 결국 얻지 못한 것, 혹은 가질 수 없다고 믿었던 것, 아니면 이미 잃어버린 것뿐이다.백하린과의 관계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않았다.“하고 싶은 말이 뭐야?”백하린은 그의 의중을 알아챈 듯 비참한 조소를 흘렸다.“기억이 희미해졌으니, 다 없었던 일로 치고 깨끗이 지워버리겠다고?”“네가 베푼 은혜는 변하지 않아. 하지만 널 향한 내 감정은... 조각난 기억들처럼 언제부턴가 형태를 잃었어.”이도운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다.스스로가 비겁하고 이기적인 냉혈한이라는 자책이 들었지만, 이제는 너무 지쳐 연기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백하린의 귀 뒤에는 이미 붉은 점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그는 무슨 수를 써도 강지현을 못 잊었다.“이도운, 딱 하나만 묻자. 만약 설산에서의 일이 없었더라도... 넌 지난 세월 동안 날 사랑하긴 했을까?”백하린은 차오르는 눈물을 머금은 채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이도운은 고개를 푹 숙이고 한참이 지나서야 씁쓸하게 입을 뗐다.“...모르겠어.”10년이라는 긴 세월의 종착지가 고작 ‘모르겠다’라는 한마디였다.백하린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지만, 온몸의 신경이 마비된 듯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아빠! 엄마!”두 사람이 팽팽하게 대치하던 그때, 방문 너머에서 이윤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옆방에서 자고 있던 아이가 두 사람의 대
Read more

제344화

일전에 강지현의 논문이 담긴 USB를 백하린에게 건네준 뒤, 아직 돌려받지 못한 상태였다.다행히 한참을 뒤진 끝에 침대 옆 협탁 서랍에서 발견했다.자신이 괜한 의심으로 과민반응 했던 모양이라며, 이도운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밤은 깊어갔고, 도시의 불빛들은 하나로 엉겨 붙어 질주하는 차창 위로 파편 같은 잔상을 남겼다.이윤후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말없이 창밖만 응시했다.방금 의문스러운 통화를 마친 백하린은 노트북으로 데이터를 전송한 뒤, 그제야 아들의 안색을 살폈다.“윤후야, 걱정하지 마. 잠시 여행을 떠나는 것뿐이니까. 엄마 믿지?”그 말에 이윤후가 고개를 끄덕였다.“네!”하지만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의 얼굴엔 다시 그늘이 드리워졌다.“그렇지만 아빠랑 떨어지기 싫단 말이에요. 아빠가 그 나쁜 아줌마랑 같이 있는 것도 싫고...”“안심해.”백하린이 이윤후의 작은 머리를 감싸 안았다.“엄마가 있는 한, 아빠는 절대 널 버리지 못해.”‘이혼? 꿈도 꾸지 마, 이도운.’‘우리를 무너뜨리겠다고? 강지현, 그건 더더욱 가당치 않은 소리지.’그녀는 이미 강지현의 미발표 데이터를 서경시의 한 상장 기업에 전송한 뒤였다.그곳은 다름 아닌 그녀의 부모님이 재직 중인 회사였다.백하린의 집안은 비록 재벌가는 아니었으나, 부모 모두 국가급 학술 엘리트였다.그들이 몸담은 기업 역시 국가적 배경을 지녔다.해원시에서 일이 꼬인다면, 자신의 본거지로 돌아가 판을 다시 짜면 그만이었다.그녀는 이미 며칠 전 상대 기업과 협의를 마친 상태였다.상대측은 백하린이 제공한 논문 데이터에 매우 큰 관심을 보이며 그녀에게 지사 책임자 자리를 제안했다.자신의 구역으로 돌아가 부모에게 고개를 숙이고 조력을 받는다면, 이도운과 함께 이경 그룹에 필적하는 상장 기업을 일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백하린은 증명하고 싶었다. 자신이 강지현보다 뛰어나다는 것을.강지현이 이경 그룹을 상장시켰듯, 그녀 또한 이씨 가문의 재기를 이끌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하지만
Read more

제345화

회의가 한창일 때, 김태하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저녁 몇 시에 돌아오는지, 최동윤을 마중 보내겠다는 평범한 내용이었다.하지만 아침에 집을 나설 때와 점심때에 이어 벌써 세 번째 같은 질문이었다.강지현은 행간에 숨겨진 그의 진심을 읽어냈다. 그저 자신이 보고 싶어 안달이 났다는 것을.회의 중이라는 답장에 더는 보채지 않았지만, 문득 돌이켜보니 무뚝뚝한 남자가 이토록 여러 번 연락해온 건 꽤 노골적인 어리광이었다.어리광이 심한 사람은 대개 내면의 불안이 깊은 법이다.김태하는 자신의 욕구를 거의 드러내지 않았으나,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강지현은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불안을 뼈저리게 느꼈다.사실 사랑 앞에서 불안하기는 그녀도 매한가지였다.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예감이 들면 습관처럼 입을 닫고 인내했다.상대를 밀어내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만이 그녀가 아는 유일한 자기방어였다.처음에는 남자의 서늘한 태도에 지레 같은 부류라 짐작했건만, 실상은 정반대였다.그는 불안할수록 오히려 필사적으로 상대를 움켜쥐려 하는 사람이었다.상처 입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자신의 욕구는 짓누른 채 상대에게 아낌없이 쏟아붓는 식이었다.치부와 약점까지 온전히 내보인 그 마음을,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다루듯 조심스레 보듬어야만 했다.전화를 걸자마자 연결음이 채 울리기도 전에 김태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마치 온종일 휴대폰만 쥐고 그녀의 연락만을 기다려온 아이처럼.“지현아.”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지만, 귀를 간지럽히는 중저음의 울림은 영혼을 홀릴 만큼 섹시했다.“일은 다 끝났어?”“응.”강지현은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지금 바로 갈게. 30분 정도면 도착해.”“그래, 저택 말고 네 집으로 와. 나 지금 거기 아니니까.”뜻밖의 대답에 강지현은 몇 초간 당황하더니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누가 마음대로 돌아다니래? 의사 선생님 말씀 못 들었어? 집에서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했잖아.”본가에는 전
Read more

제346화

“당연하지...”강지현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아, 미안. 방금 큰아버지 전화를 좀 받느라고.”남자의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은 다이얼 패드에 멈춰 있었다.조금 전 통화가 너무 급하게 끊겼던 터라, 집 앞이기도 해서 주병찬과 몇 마디 더 나눈 것뿐이었다.그런데 그 찰나의 공백 사이에 김태하가 이토록 초조해했을 줄은 몰랐다.강지현의 설명을 듣고서야 김태하는 꽉 쥐고 있던 주먹을 서서히 풀었다.이내 얼굴에 멋쩍은 기색이 스치더니 그녀를 가볍게 끌어안았다.“다음부터는 그냥 최 비서더러 픽업 오라고 해.”“나도 다 큰 어른이야. 그나저나, 최 비서님을 과로사시킬 작정이야?”강지현은 마음 한구석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들었다.이내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가뜩이나 예민한 시기라 김태하는 수시로 사람을 부려야 하는 상황이었다.손발이 잘 맞는 최동윤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볶고 있는 그를 알기에 하는 소리였다.“그럼...”김태하도 제 생각이 짧았음을 인정하며 덧붙였다.“다른 사람으로 붙여주지.”강지현은 그를 찬바람이 드는 문가에 오래 세워두고 싶지 않아 서둘러 문을 닫고 방 안으로 이끌었다.현관에는 차 키가 놓여 있었고, 김태하는 신발까지 신은 상태였다.하지만 몸에는 그녀가 직접 골라준 잠옷 차림 그대로였다.“너 설마, 이러고 나 찾으러 나가려고 했던 거야?”“응.”김태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강지현은 기가 막혔다.“김태하!”“왜?”김태하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정했고, 표정엔 한 점의 동요도 없었다.“나 진짜 너랑 말 안 할 거야!”강지현은 이번에 정말로 화가 났다.“내가 분명히 몸조리 잘해야 한다고 했잖아. 왜 이렇게 제 몸을 혹사하는 건데? 지금 네 상태가 어떤지 본인이 더 잘 알면서 그래? 꼭 사람을 피 마르게 해야겠어?”강지현은 남자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단호하게 쏘아붙였다.서슬 퍼런 말투에는 장난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녀가
Read more

제347화

김태하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달싹였다.흔들리는 눈동자는 무언가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했다.“도대체 왜 그래? 무슨 일인데?”강지현은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그의 몸을 확인하려다, 혹여 어디가 잘못될까 봐 겁이 나 차마 닿지도 못한 채 허공을 맴돌았다.“그게...”김태하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그는 여자의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너 진짜! 자꾸 사람 놀라게 할래?”강지현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음이 났고, 또 한편으론 맥이 풀렸다.투정 섞인 목소리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다.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띄우려던 김태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여자를 보자마자 당황하며 사색이 되었다.“바보야, 왜 울어...”이내 다급히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려 했으나, 강지현이 한발 앞서 그를 끌어안았다.마치 조금만 힘을 주어도 부서져 버리는 유리를 다루듯, 아주 조심스럽고도 간절한 손길이었다.“태하야, 나 정말 무서워... 난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야. 헤어지는 일도, 누군가를 잃어버리는 것도 너무 두려워. 앞으로 네 얼굴 다시는 못 보게 될까 봐 그게 제일 겁나.”여자의 목소리에 짙은 울음기가 배어 나왔다.뜨거운 숨결이 남자의 어깨를 타고 심장까지 파고들었다.김태하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차마 어떤 말도 내뱉지 못했다.찰나의 순간, 죄책감이 해일처럼 밀려왔다.이내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 눈물을 닦아주려 했으나, 강지현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떨어지지 않으려 고집을 피웠다.“네가 병실에 누워 있는 거 보면서 나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 너랑 정말 오래오래 행복하고 싶어. 그러니까 제발, 나만 덩그러니 남겨두고 떠날 생각 마. 너 없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으니까.”강지현은 좀처럼 속마음을 직설적으로 내뱉는 성격이 아니었다.한때 진심을 다했던 사람에게조차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보인 적 없었다.하지만 김태하 앞에서만큼은 속수무책으로 무
Read more

제348화

강지현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곧장 휴대폰을 돌려주었다.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진 걸 보니 김태하도 방금 기사를 확인한 모양이었다.사실 강지현은 사고 전후로 이런 내용을 이미 숱하게 봐왔기에 꽤 담담했다.현재 화제의 중심인 서지아가 SNS에 올린 [일 끝]이라는 짧은 문구는 간신히 사그라들던 열애설에 다시금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렉카 채널과 연예 매체들은 대중의 호기심을 먹잇감 삼아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냈지만, 정작 주인공인 서지아는 세상이 제 사진으로 도배되어도 아무런 반응 없이 침묵을 지켰다.“요즘 연예 뉴스들 다 지어낸 얘기뿐이잖아. 나 정말 괜찮으니까 너도 그냥 무시해.”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는 김태하를 보자, 강지현이 먼저 담담한 위로를 건넸다.그는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피식 웃었다.이내 강지현을 끌어당겨 옆에 앉혔다.“대사가 좀 바뀐 것 같은데? 스캔들 당사자는 나인데, 왜 도리어 위로받고 있을까.”“설마, 내가 질투라도 하길 바라는 거야?”강지현이 그의 속내를 꿰뚫어 보듯 장난스럽게 눈을 깜빡였다.김태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심해처럼 깊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강지현의 입가에 걸린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가만히 지켜보다가 입을 열었다.“응, 네가 질투했으면 좋겠어. 그만큼 나를 원한다는 뜻일 테니까. 그런데 또 한편으론 겁이 나. 혹시라도 날 오해하고 멀어질까 봐.”강지현이 멈칫하더니 입꼬리가 서서히 내려갔다.그녀는 손을 뻗어 남자의 뺨을 어루만지며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속삭였다.“당연히 질투했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여자랑 엮여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데 아무렇지 않을 리가 있겠어? 근데 이 기사들, 네가 사고 났을 때 이미 다 봤던 거야. 질투는 그때 질리도록 했으니까 괜찮아.”김태하의 진지한 태도에 그녀도 속내를 털어놓기로 했다.질투보다 앞선 건 반쪽을 향한 굳건한 믿음이었고, 사고 소식을 들은 직후엔 온통 그의 안위뿐이라 이런 소음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무엇보다 공과 사가 분
Read more

제349화

서지아가 단념하지 않는 한, 이런 스캔들은 언제든 반복될 게 뻔했다.강지현이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김태하는 아내의 자리가 타인에게 의심받는 상황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그럼...”고민에 잠긴 틈을 타서 김태하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이내 가느다란 손을 겹쳐 잡더니, 열 손가락을 단단히 깍지 끼고 자신의 허벅지 위에 눌러 고정했다.강지현이 당혹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사이, 김태하는 휴대폰을 들어 두 사람의 손을 촬영했다.사진에는 서로 맞물린 손 위로 커다란 약혼반지와 커플 팔찌가 보란 듯이 빛나고 있었다.평소 개인 SNS를 하지 않는 그였으나, 미래 그룹의 소식을 전하는 공식 계정은 존재했다.업로드 속도가 뜸하긴 했지만 워낙 국제적인 인지도가 높아 팔로워 수는 상당했다.“정말 이렇게 올리게? 내일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때? 이건... 회사 공식 계정이잖아.”강지현의 만류에도 김태하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았다.그는 곧장 최동윤에게 연락해 계정 정보를 받아내더니 로그인을 마쳤다.강지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진이 업로드되었다.[기혼. 방해 금지.]구구절절한 설명은 생략했다.김태하는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 남기면서도, 혹여 사람들이 오해할까 봐 서지아와의 루머를 퍼뜨린 대형 렉카 채널들을 태그했다.심지어 두 사람의 재결합설을 주장하던 유명 블로거의 게시글에는 직접 답글까지 달아 쐐기를 박아버렸다.“됐다.”김태하의 동작은 평소 일할 때처럼 빠르고 단호했다. 망설임이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었다.강지현이 멍하니 있다가 급히 그의 휴대폰을 뺏어 들었다.게시물을 확인하는 사이, 이번엔 김태하가 그녀의 휴대폰을 가져갔다.“개인 계정 있어?”그가 물었다.“있긴 한데... 자주 안 쓰는 부계정 같은 거야.”“로그인해 봐. 공식적으로 선언할 상대가 필요하니까.”김태하의 의도를 이미 눈치채고 있었음에도 막상 두 귀로 듣게 되니 괜히 쑥스러웠다.그러면서도 순순히 그의 뜻을 따랐다.강지현은 자신의 계정에 똑같은 사
Read more

제350화

서지아의 계정은 이미 초토화 상태였다.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녀를 태그하며 해명을 요구했다.지난 며칠 동안 팬들은 두 사람의 가십을 즐기며 열광해 왔다.만약 모든 소문이 근거 없는 낭설이었다면, 김태하가 직접 등판해 참교육을 시전할 이유가 뭐 있겠는가.게다가 평소답지 않게 왜 ‘럽스타그램'까지 올리며 애정을 과시했겠느냐는 말이다.결국 폭발한 팬들은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우상에게 의도적인 상처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단정 지었다.어쩌면 상대방이 멋대로 그녀를 버렸고, 이별의 상처 때문에 서지아가 극단적인 선택까지 생각했다는 추측이 돌기 시작했다.그쪽에서 먼저 입장을 밝힌 이상, 팬들은 서지아 또한 용기를 내어 응수해주길 바랐다.과거를 낱낱이 공개해서라도 짓밟힌 자존심과 정의를 되찾아야 한다는 논리였다.정작 기사와 여론을 확인한 서지아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귀국한 후 줄곧 불면증에 시달리다 간신히 잠든 참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깨어 버렸다.그 와중에도 휴대폰에는 절친들이 보낸 걱정 어린 메시지와 전화가 쉴 새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서지아가 김태하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는 사실은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었다.김태하가 이토록 거창하게 공식 입장을 발표한 마당에 주변 사람들은 혹여나 그녀가 다시 무너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눈치를 살폈다.하지만 서지아는 그 누구에게도 답장할 기운이 없었다.그녀의 휴대폰 화면은 줄곧 김태하가 올린 사진에 멈춰 있었다.[기혼. 방해 금지.]단 두 마디의 선언은 그녀를 수치심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었다.서지아의 눈시울이 뜨거워졌지만, 이미 말라버린 눈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누군가를 완전히 잃는다는 것이 이토록 고통스러운 일임을 그제야 처절하게 깨달았다....다음 날 아침, 강지현이 출근한 뒤 김태하의 휴대폰에 낯선 번호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꽤 시간이 흐른 뒤에야 확인한 그 메시지는 서지아가 보낸 것이었다.[몸은 좀 괜찮아졌어?
Read more
PREV
1
...
3334353637
...
48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