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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짜 결혼, 진짜 신분: Chapter 351 - Chapter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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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1화

하지만 김태하의 맹목적인 총애는 때로 서지아에게 지루함으로 다가오기도 했다.그녀는 더 이상 사춘기 소녀가 아니었다.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발을 내딛자,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보다 친구나 가족에 더 가까워졌다.김태하가 아무리 정성을 쏟아부어도 그녀에겐 이미 설렘이 사라진 지 오래였다.주변 친구들의 연애가 화려하게 바뀌는 동안 김태하와의 관계는 한결같이 정체되어 있으니, 마치 결혼 생활 끝이 내다보이는 것만 같았다.결국 결혼을 미루기 위해 서지아는 몇 년간 해외 유학을 떠났다.김태하가 기다려줄 것이라는 확신은 있었다.책임감이 강하고 심리적 결핍이 큰 사람이라 한 번 내어준 마음을 쉽게 거두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이다.동시에 그녀에게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이 감정이 정말 사랑인지, 아니면 그를 위해 기꺼이 결혼이라는 감옥에 갇힐 수 있을지 확인해야만 했다.서지아는 결국 떠나기로 했고, 김태하는 못내 아쉬운 마음을 억누르며 그녀의 결정을 지지했다.하지만 그때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그녀의 출국과 동시에 두 사람의 세계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할 줄은.김태하는 숨 가쁜 일정 속에서도 잠을 줄여가며 며칠이 멀다 하고 서지아에게 날아갔다.그녀가 원하면 언제든 기꺼이 맞춰주었다.김태하는 무결점의 연인이었으나, 안타깝게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이다.서지아는 그의 헌신을 당연한 권리처럼 여기기 시작했고, 익숙해진 배려는 더 이상 설렘을 주지 못했다.타지에서의 자유는 그녀의 사교 범위를 무한히 넓혀주었다.빼어난 미모와 독보적인 분위기, 그리고 젊음까지 갖춘 서지아에게 구애하는 남자는 차고 넘쳤다.선을 넘진 않았으나, 그녀의 곁을 채우는 이들은 점차 동성 친구에서 매력적인 남자들로 바뀌어 갔다.어느덧 유학이 끝나갈 무렵, 김씨 가문의 어른들로부터 결혼 압박이 들어왔다.김태하는 그녀가 귀국하는 대로 약혼식을 올리기로 했다.그러나 약혼식 직전, 김태하에게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술자리에서 갑자기 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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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2화

김태하는 스킨십에 있어서도 결벽에 가까운 완벽주의자였다.손을 잡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했고, 입맞춤은 감히 엄두도 내지 않았다.자신이 그토록 신성시하며 지켜온 것들이 정작 서지아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는 사실이 잔인하게 증명되었다.그 순간 김태하의 심장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에게 버려지는 것에 익숙한 사람이었다.필사적으로 발버둥 치던 과정과 달리, 막상 그 순간이 닥치면 도리어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김태하는 서지아가 눈치챌 때까지 조용히 서서 기다렸다.그리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며 변명을 늘어놓는 그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약혼식 당일, 신부만이 자리를 지킨 식장에 김태하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최소한의 해명도 없이 약혼을 파기한 그의 오만함은 양가의 거센 비난을 샀다.십수 년을 이어온 소꿉친구의 인연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다.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재회했다.그사이 서지아는 두 명의 남자를 만났지만, 관계는 모두 짧게 끝났다.도저히 김태하를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먼저 마음이 흔들린 것도, 결국 가장 먼저 후회하게 된 것도 그녀였다.시간이 흐를수록 후회는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번져갔다.사랑은 결국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법이고, 행복이란 어쩌면 그 단조로운 반복을 갈망하는 일일지도 모른다.김태하와 떨어져 지낸 모든 날, 서지아는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그 시절로.사람까지 써서 김태하의 근황을 꾸준히 살핀 결과, 그녀가 떠난 뒤 곁에 여자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더는 못 참았다.마침 귀국하여 주최한 자선 파티에 김태하가 모습을 드러냈고, 그가 자신을 보기 위해 왔을 거라고 확신했다.그래서 그날 밤 무도회에서 용기를 내어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김태하에게 춤을 제안했다.혹여나 거절당할까 봐 춤 한 번을 자선 기부와 엮어버리는 승부수까지 띄웠다.김태하가 승낙하기도 전에 구경꾼들에 의해 거액의 기부금이 쌓여갔다.자선 행사에 참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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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화

“오늘 어때? 몸은 좀 괜찮아? 어디 아픈 데는 없고?”질문을 쏟아붓는 강지현의 호흡이 조심스럽게 잦아들었다. 마치 조금이라도 닦달했다가는 상대가 바스러질까 염려하는 듯한 기색이었다.“응, 괜찮아.”김태하가 목을 가다듬었지만, 목소리는 약간 잠겨 있었다.“몇 시에 끝나? 내가 데리러 갈까?”“꼼짝 말고 누워 있어. 최대한 빨리 끝내고 갈 테니까.”강지현은 그의 터무니없는 제안을 서둘러 거절했다.수화기 너머로 낮은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정말로 데리러 오겠다기보다는, 자신을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하는 강지현의 반응을 즐기는 듯했다.김태하는 순순히 대답했다.“알았어, 기다릴게. 조심히 와.”그때, 강지현의 귀에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발소리가 포착됐다.집에 누가 있냐고 물으려던 찰나, 주병찬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강지현은 마지못해 전화를 끊었다.‘최 비서님이나 의사 선생님이 아직 계신 거겠지. 나랑 약속했으니까 함부로 돌아다닐 리 없어.’그리고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스스로를 안심시켰다.주병찬이 오늘 이 식사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강지현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기 위함이었다.회사 내 심복이 있기 마련이기에 엄경미의 수작을 머지않아 알게 될 터였다.어설프게 숨기느니 차라리 선수를 쳐서 오해의 벽을 허무는 편이 나았다.물론 주병찬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나면, 강지현이 다시는 자신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으리라는 것을.“사실 저도 큰아버지 처지를 이해해요. 누구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있잖아요. 제가 주씨 가문에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손 내밀어 주신 분이 큰아버지셨고요. 나중에 저희가 서 있는 자리가 달라지더라도 큰아버지가 계속 제 가족으로 남아주셨으면 좋겠어요.”주병찬의 고백이 끝나자, 강지현도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그녀는 진심으로 주병찬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반드시 자신의 편에 서야 한다며 압박하지는 않았다.이러한 강지현의 태도는 주병찬에게 숨 쉴 틈과 선택의 여지를 동시에 안겨주었다.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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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하지만 문을 연 순간, 시야에 들어온 것은 고요하고 어두컴컴한 거실이었다.예상치 못한 적막에 강지현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거실 한 면을 가득 채운 넓은 통창으로 도시의 불빛이 스며들어 맞은편 소파 옆 카펫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집 안에는 마치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태하야?”웬일인지 가슴 한구석에 불안감이 스쳤다.행여나 이 고요한 공기를 깨뜨리기라도 할까 봐 그녀의 목소리는 절로 낮아졌다.그리고 소파 쪽으로 다가갔을 때야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는 남자의 실루엣을 발견했다.얇은 담요 한 장을 덮고 눈을 감은 채 잠든 모습은 숨이 막힐 정도로 고요해서 이유 모를 애틋함에 마음이 아려왔다.“태하야...”강지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던져두고 소파 옆에 주저앉았다.어디 이상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하는 걱정에 그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며 이마와 손을 조심스레 짚어 보았다.“왔어?”금방 잠에서 깬 탓인지, 김태하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층 더 낮게 가라앉았다.그가 천천히 눈을 떴다.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더니, 이내 온기 어린 시선으로 그녀를 응시했다.“빨리 왔네.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왜 불도 안 켜고 있어? 많이 피곤해? 차라리 방에 들어가서 자지 그랬어. 어디 불편한 데라도 있는 건 아니지?”질문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자 김태하는 도저히 대답할 틈이 없었다.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녀를 보며 아예 손을 뻗어 자신의 품 안으로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혔다.“조금 졸리긴 했어. 아까는 하늘이 이렇게 어둡지 않았거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잠들었나 봐.”김태하의 나직한 음성과 함께 온기가 섞인 숨결이 강지현의 귓가를 간지럽히며 타고 올라왔다.훅 끼쳐오는 그의 향취에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였다.강지현은 서둘러 남자의 얼굴을 밀어내고는 다시 한번 서로의 이마를 번갈아 짚어 보았다.“아무래도 이상해. 열나는 거 맞지? 내 이마보다 훨씬 뜨겁잖아!”김태하는 낮게 읊조리며 부인했다.“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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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5화

하지만 강지현에게서 특별히 이상한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아마도 서지아가 아직 별다른 말은 없었던 모양이었다.“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염증이 있어서 약 제때 챙겨 먹어야 한대.”마침내 통화를 마친 강지현이 다가와 애정 어린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알약과 따뜻한 물을 챙겼다.그때, 김태하가 가볍게 헛기침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다시 달려왔다.“안 되겠어. 의사 선생님 불러서 진찰 한 번 받아보자.”“선생님 가신 지 두 시간도 안 됐어.”김태하가 강지현의 팔을 가볍게 붙들며 만류했다.“그냥 좀 쉬면 돼. 약 먹었으니까 금방 나을 거야.”“하지만...”“가끔은 환자의 의견도 좀 존중해줘.”김태하가 정색하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무척이나 진지했다.“알았어.”강지현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집을 꺾었다.이내 온기가 남은 물컵을 건네며 그가 약을 삼키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남자의 목울대가 두어 번 크게 움직이며 약이 완전히 넘어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는 무릎 위의 담요를 꼼꼼히 여며주었다.그러고는 김태하를 부축해 방으로 이끌려 했지만,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아직 자기 싫은데.”김태하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강지현의 손을 잡아 옆에 앉혔다.이어 자연스럽게 품 안으로 끌어당겨 가둔 뒤 나른하게 물었다.“오늘 큰아버지가 무슨 일로 널 부르신 거야?”“늘 그렇듯 주씨 가문 일이지, 뭐. 엄경미가 어떻게든 내가 주상 그룹에서 실수하기만 바라고 있거든. 이제는 주변에 쓸 만한 사람도 없는지 큰아버지까지 찾아가서...”강지현은 말을 이어가려다 멈칫했다. 괜히 김태하가 신경 쓸까 봐 걱정되었다.“어쨌든 다 잘 풀렸어. 큰아버지는 엄경미랑 결이 다르셔. 권력에 그렇게 집착하는 분도 아니시고.”“이번엔 나를 미끼 삼아서 너 흔들어 보겠다는 속셈이었나 본데.”강지현이 끝까지 함구했음에도 김태하는 이미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다치고 나서 의식을 잃기 직전, 그는 최동윤에게 철저한 함구령을 내렸기에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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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6화

강지현은 웃음이 터져 나와 김태하의 말을 툭 끊었다.그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김태하도 곱게 자란 편은 아니었다. 김무언이 워낙 엄격하고 냉정했으니, 그 영향으로 약간의 위축된 마음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 정도는 이해했다.그래도 그는 김태하였다. 김씨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이자, 미래 그룹을 이끄는 총수.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손만 뻗으면 판을 뒤집는 사람이고, 그 모든 걸 내려놓고도 그저 혼자 서 있기만 해도 시선이 쏠리는 사람이었다.처음 그를 봤을 때만 해도 자신이 이 남자와 사랑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굳이 누가 더 자신 없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오히려 그 앞에서는 그녀 쪽이 더 그랬다.“말해봐.”김태하는 그녀의 농담을 흘려듣지 않았다.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꼭 확실한 대답을 듣겠다는 듯 시선을 고정했다.강지현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차분히 입을 열었다.“너한테 좋은 점이 많다는 건 맞아. 좋아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도.”“근데 내가 널 좋아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야.”그녀의 시선이 부드럽게 내려앉았다.“너랑 같이 있으면 그냥 삶이 행복해지고 기대가 생겨. 이대로 쭉, 평생을 같이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그리고 난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 꼭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좋아하게 되면 그냥 자연스럽게, 같이 있고 싶어지잖아.”“그 사람이 어떤 모습이든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어지고, 결국 그 사람이니까 좋은 거지.”강지현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김태하는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언가 깊이 생각에 잠긴 듯, 표정이 묘하게 굳어 있었다.강지현은 그런 그의 얼굴을 보다가 가볍게 웃으며 손을 들어 그의 뺨을 감쌌다.“걱정하지 마. 연애할 때랑 결혼하고 나서는 당연히 달라질 수도 있지. 난 네가 나한테만 매달리는 거 원하지 않아. 그냥 너답게 살면 돼.”“우리 약속했잖아. 끝까지 함께할 거라고 믿기로.”“...”김태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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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7화

“직접 가서 보는 것도 좋지.”김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지만 어딘가 아쉬운 기색을 감추진 못했다.“신혼집도 정해야 하고 결혼식도 올려야 하잖아. 너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고 싶지 않아.”강지현은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있던 말을 김태하가 먼저 꺼내자,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결혼식이라니.이렇게까지 기대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예전에 이도운과 가까웠을 때도 결혼식을 하지 말자는 그의 말에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그저 형식일 뿐이라고 여겼다.하지만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비록 형식일지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순간이라면 그 자체로 인생의 의미가 된다는 걸.그녀는 진짜 신부가 되고 싶었다. 김태하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행복한 신부로.“넌 몸만 잘 회복하면 돼. 그럼 나도 오래 기다리진 않을 거야.”강지현은 그 말을 빌려 다시 한 번 김태하를 다독였다. 컨디션을 잘 유지하고 잠도 충분히 자고 약도 제때 먹고 의사의 지시를 잘 따르라고.정말 그녀의 말을 들은 건지, 아니면 약기운 때문이었는지 두 사람이 침대에 누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태하는 강지현을 끌어안은 채 잠들어버렸다.하지만 강지현은 결혼식을 떠올리느라 마음이 들떠,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그녀는 괜히 몸을 뒤척이지도 않고 그저 가만히 김태하를 바라보며 그의 숨소리를 들었다.이내 서서히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잠들기 직전, 김태하가 낮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강지현은 놀라 그의 굳은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리며 긴장을 풀어주려 했다. 그 순간, 귓가에 익숙한 이름이 스쳤다.“서지아, 안 돼...”“...”다음 날 정오, 주상 그룹.현다영이 문을 두드리고 강지현의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그녀는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한참을 노크해도 답이 없어, 문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들어와 본 참이었다.“지현 언니.”현다영이 가까이 다가서자, 그제야 강지현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줘.”조금 전 메일로 결재 요청을 보냈던 서류들이었다. 강지현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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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8화

하원영은 대학에서 전공도 이쪽이었다.어머니의 뒤를 잇는 셈이기도 했다. 어머니는 제약 연구개발 분야에서 일하며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었고 평생 수많은 신약 개발을 총괄했다. 임종 직전에는 한 건의 특허 기술까지 완성해 전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다.하지만 하원영에게는 어머니만큼의 재능이 없었다. 학교에 다닐 때 아무리 애써도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다.졸업 후 관련 업계 회사들을 수도 없이 찾아다녔지만 능력이 특별히 뛰어나지 않은 데다 ‘하씨 가문 딸’이라는 신분 때문에 오히려 채용에서 배제됐다.하원영은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게 하씨 가문의 의도라는 걸.그들은 하원영이 자신들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걸 원치 않았고, 그래서 그녀의 앞길을 막아버렸다. 어머니처럼 뭔가를 이루게 될까 봐 두려워서였다.하지만 하원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건 그들이 괜한 걱정을 하는 거라고.지난번 주시언과 연세영이 가게에서 소동을 벌인 이후, 징계나 퇴학까지는 아니었지만 하원영의 진로 평가는 사실상 바닥이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하씨 가문에서 벗어나기 위한 평가를 통과하는 건 불가능했다.그런데 마침 주상 그룹의 제안이 그 막막한 상황을 해결해 줬다.주상 그룹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하씨 가문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일할 수 있고, 그제야 평가를 통과할 가능성도 생긴다.다만 하원영은 강지현이 왜 갑자기 자신을 도와주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강지현은 전화를 걸기 전에 이미 하씨 가문 쪽과 이야기를 마쳐 둔 상태였다.현실적인 그들은 주상 그룹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상대였고, 강지현이 비록 사생아라 하더라도 겉으로는 충분히 예의를 갖췄다.어차피 하원영은 그들이 보기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성격이라 주상 그룹에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오히려 강지현이 괜히 도와주려다 자기 발목을 잡힐 수도 있었다. 이전에 주시언이 좋은 예였다.그래서 그들은 그냥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하지만 강지현이 충분한 이유를 제시했음에도, 하원영은 아무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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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9화

“됐어요.”하원영은 주단우와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런데 주단우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힘이 센 그가 가볍게 당겼을 뿐인데, 하원영은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끌려왔다. 하이힐까지 미끄러지면서 중심을 잃고 그대로 주단우 품에 넘어졌다.주단우는 여자를 대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편이라, 바로 하원영을 끌어안으려 했다.그녀의 몸매도 꽤 매력적인 편이었기에 이 기회를 그냥 넘길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그의 손이 닿기도 전에 하원영이 그의 허벅지 안쪽을 세게 눌렀다.순간 주단우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비명을 겨우 참아냈다.하원영 역시 옆으로 넘어지듯 바닥에 떨어졌지만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하원영 씨.”주단우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좋은 마음으로 도와주려 했는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이 여자는 왜 이렇게 거칠지?남자들한테 인기가 많다는 소문도 있었고 주시언도 완전히 빠져 있었다. 그래서 주단우는 늘 겉은 차가워 보여도 속은 뜨거운 타입일 거라고 짐작해 왔다.그런데 지금 보니 남자들이 다 괜히 빠진 건가 싶었다. 어쨌든 그는 이런 스타일은 취향이 아니었다.“원영 씨!”그때, 현다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주단우는 순간 시선을 돌렸다.현다영은 방금 벌어진 상황을 전부 목격한 상태였다. 속에서 불쾌감이 올라왔다.‘대낮부터 왜 저러는 거야?’그녀는 다가와 하원영을 일으켜 세웠다.“죄송해요, 제가 늦었네요. 많이 놀라셨죠.”“현다영, 그게 무슨 말이야? 저 사람이 혼자 넘어진 거야. 다친 건 오히려 나라고.”주단우가 발끈하며 말했다. 현다영이 말하는 내내, 흘끗 자신을 째려보는 걸 분명 봤기 때문이다.현다영은 고개를 돌려 주단우를 보며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었다.“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부대표님이 너무 예민하신 거 아닌가요?”하원영은 옷을 툭툭 털며 정리한 뒤, 더 얽히고 싶지 않다는 듯 말했다.“가요.”“네.”현다영은 곧바로 대답하고 주단우가 뭐라 더 말할 틈도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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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0화

그때, 서이정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이도운은 화면에 뜬 이름을 보자마자 눈빛이 가라앉았고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이 타이밍에 서이정이 연락할 이유는 뻔했다. 백하린 때문일 것이다.두 사람은 워낙 친한 사이였고 그동안 이도운과 백하린 사이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백하린이 늘 찾아가던 사람이 바로 서이정이었다.겉으로는 화해를 권하는 쪽이었지만, 이도운 입장에서는 매번 도덕적으로 몰아붙이며 한 소리 듣는 게 일상이었다.그래서 점점 서이정을 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 지금 전화가 온 것도 분명 이혼 문제 때문일 게 뻔했다.서이정은 집요하게 굴지는 않았다. 이도운이 전화를 받지 않자 더 이상 연락하지 않았다.그런데 곧이어 단체 채팅방에서 그를 태그한 메시지가 올라왔다. 대학 시절 룸메이트가 생일이라 저녁에 모이자고 연락해왔다.강지현이 두 사람의 스캔들을 공개한 이후, 이도운은 거의 모든 동문 단톡방에서 나왔다.다만 게임을 같이 하던 몇몇 친구들과의 방만은 그대로 두고 있었다.그 방도 워낙 조용해서, 존재조차 잊고 지낼 정도였다.메시지를 본 이도운은 습관처럼 방을 나가려 했지만 상대가 곧바로 개인 메시지를 보내왔다.[형, 오늘 저녁에 한 번 모이자. 나 결혼했어. 다들 보고 싶네.]이도운의 손이 잠깐 멈췄다.그는 곧바로 축의금을 보내고 짧게 답했다.[결혼 축하한다.]그 문자를 보내고 나서, 곧 거절할 핑계를 찾으려 했다.그때 상대가 결혼사진을 보내왔다.[형, 기억나? 내 와이프 예전에 강지현이랑 같은 반이었잖아. 그때 내가 강지현한테 소개 좀 해달라고 해서 알게 된 건데, 졸업할 때까지는 이어지지 못했어. 그러다 나중에 둘 다 해외 나갔다가 같은 회사에서 다시 만나게 됐고, 결국 이렇게 이어졌네.]그 말을 읽은 순간, 이도운의 눈빛이 미묘하게 흔들렸다.기억이 났다. 강지현과 사귀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저 친구가 계속 여자 소개 좀 해달라며 귀찮게 굴었었다.강지현은 학교에서도 손꼽히는 미인이었고 그 친구는 그녀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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